Archive for the ‘김일성주석/金日成主席’ Category

다시금 새기자, 애국의 고귀한 금언을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펼치고

2026년 8월 16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뜻깊은 조국해방절과 더불어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잊을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할 업적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안아보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경건한 마음으로 펼친다.

어버이수령님의 회고록이 세상에 나온지도 이제는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회고록의 갈피갈피, 구절구절에 담겨진 고귀한 금언들은 오늘도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천만인민을 애국에로 떠밀어주고있다.

조국을 위해 온넋과 육신을 다 바친 사람들만이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수 있다

조국의 귀중함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써는 다 알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권 《독립군의 녀걸 리관린》에서 한번 떠나면 다시 넘어서기 어려운 만리타향에 사랑하는 자식들을 죄다 남겨두고 홀몸이 되여 조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한 리관린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그가 한창나이때 나라를 위해 청춘을 고스란히 바치지 않았더라면 그런 용단을 내릴수 없었을것이라고 쓰시였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을 위해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피도 흘리면서 온넋과 육신을 다 바친 사람들만이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심장으로 깨달을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여 어리신 시절부터 나라잃은 인민의 불행과 고통을 속속들이 체험하시며 조국의 귀중함을 사무치게 절감하신 위대한 수령님,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누구보다 가슴속깊이 새겨안으시고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시며 결연히 조국해방을 위한 피어린 투쟁의 길에 나서시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조국을 찾아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조국의 귀중함을 얼마나 사무치게 절감하시였으면 우리 수령님께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만이 조국이 얼마나 귀중하고 조국에로 다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시련에 찬 길인가를 진정 뼈에 사무치게 느낀다고 말할수 있다는 뜻깊은 글발을 회고록에 남기시였겠는가.

조국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지닌 사람만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바칠수 있으며 그런 사람만이 진정 조국의 귀중함을 똑똑히 알고 조국을 위하여 만짐을 걸머지고 투신하게 된다.

조국과 운명을 함께 하라!

이것이 우리 수령님의 고귀한 금언을 통하여 새세대들이 새겨안는 철리이다.

향토애가 강한 사람은 조국애도 강하며 조국애가
강한 사람은 혁명열도 높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서 항일혁명투사 강건동지에 대하여 겉보기에 메마르고 랭철해보이는 사람이 고향에 대한 화제를 꺼내기만 하면 시인들처럼 감정을 걷잡지 못하였고 평상시보다 말도 많이 하였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강건이처럼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혁명을 해도 열렬하게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향토애가 강한 사람은 조국애도 강하며 조국애가 강한 사람은 혁명열도 높다고 쓰시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고향을 열렬히 사랑한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일제침략자들을 쳐부시는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그리운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처자에 대하여 늘 생각하였으며 수난당하는 우리 인민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었다.

밀영의 깊은 밤 우등불가에서 우리 수령님께서 불러주시는 《사향가》를 들으며 떠나온 고향땅을 삼삼히 그려보았고 아름다운 만경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그이의 절절한 말씀에서 힘과 용기를 백배하며 한목숨 바쳐서라도 기어이 조국해방위업을 성취할 굳은 결의를 가다듬던 그들이였다.

고향땅과 부모처자를 그처럼 열렬히 사랑한 항일혁명투사들이였기에 뜨거운 조국애를 지니고 일제를 반대하는 싸움에서 언제나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발휘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렇다.

애국주의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애국은 자기 집뜨락에서부터 시작된다.애국심은 자기 부모처자에 대한 사랑, 자기 고향마을과 일터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싹트게 되며 그것이 나아가서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자라나게 된다.

자기 고향, 자기 부모처자를 귀중히 여기고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혁명에 투신할수 있음을 회고록의 금언을 통하여 다시금 새겨안는다.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고 막돌 한개라도
더 주어다가 성새를 높이 쌓으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는 스무해만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였던 우리 수령님의 심정이 그대로 서술되여있다.

1945년 10월 14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그립고그립던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고향집사립문으로 들어서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은 참으로 뜨거우시였다.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오겠다는 큰뜻을 품고 고향집사립문을 나서시였던 일가분들가운데 조국으로 돌아오신분은 우리 수령님뿐이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망국 40년만에 조국을 찾고 리향 20년만에 고향을 찾았다면 우리는 그 조국과 고향을 위해 너무도 많은 세월을 바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시였다.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는것이 항일혁명 20년의 로정을 걸으면서 자신께서 얻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였다고, 잃기는 헐해도 찾기는 힘든것이 바로 조국이라는 뜻이라고, 순간에 잃은 조국을 찾느라고 수십년, 지어는 수백년의 고생을 해야 하는것이 이 세상의 준엄한 리치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조국해방, 정녕 그것은 너무도 값비싼 희생과 피의 대가로 이루어진 애국의 고귀한 전취물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종종 젊은 사람들에게 조국을 잃으면 살아도 죽은 목숨과 같다, 망국노가 되지 않으려거든 나라를 잘 지키라, 나라잃은 설음으로 통곡하기 전에 조국을 더 부강하게 하고 막돌 한개라도 더 주어다가 성새를 높이 쌓으라고 말해주군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고귀한 금언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마다에 순간도 잃어서는 안될 조국의 귀중함과 참다운 애국은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헌신분투하는데 있다는 진리를 더욱 깊이 새겨주고있다.

가정을 지키자면 나라를 지켜야 하고 나라를 지키자면
각자가 공민적의무를 책임적으로 리행해야 한다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에는 앓고계시는 어머님을 두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달만에 다시 안도로 오시였을 때의 일이 상세히 서술되여있다.

그날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님과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시면서 가정과 혁명의 호상관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서 자신께서는 혁명과 분리된 순수한 효성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고 하시면서 왜냐하면 가정의 운명과 조국의 운명은 서로 뗄래야 뗄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놓여있기때문이였다, 나라가 편안해야 가정도 편안할수 있다는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나라의 비운은 곧 그것을 이루는 수백만 가정들에도 어김없이 미치기마련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지키자면 나라를 지켜야 하고 나라를 지키자면 각자가 자기앞에 부과된 공민적의무를 책임적으로 리행해야 하는것이다라고 쓰시였다.

애국의 진리가 빛발치는 이 금언은 가정과 혁명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국가의 일원으로서 공민적의무를 다할 때에만 가정도 나라도 지킬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똑똑히 새겨주고있다.

 

* *

 

해마다 찾아오는 8.15이건만 모두다 애국으로 더 굳게 단결하자는 우리 당의 뜻을 받들어 어딜 가나 비상히 격앙된 애국열이 끓어넘치는 올해의 조국해방절을 맞이하는 인민의 감정은 류다르다.

사회주의전면적발전의 위대한 개척기를 일대 고조기로 이어나가기 위한 오늘의 투쟁은 애국으로 단결된 전체 인민의 힘, 불굴의 정신력에 의하여 전진하는 애국성업이다.

전면적국가부흥의 시대에 그가 누구이건 조국의 귀중함을 잘 알아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조국을 위하여 더욱 투신할수 있다.

전체 인민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기신 고귀한 사상정신적재보인 회고록의 금언들을 언제나 가슴깊이 간직하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애국헌신의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어나갈 때 이 땅에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념원하신 전면적으로 륭성번영하는 나라, 세상에 둘도 없는 천하제일강국이 일떠서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고귀한 가르치심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온 세상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바꾸지 말아야 할 귀중한 정신적재보이다

2026년 8월 12일《로동신문》

 

오늘 우리 조국은 력사의 온갖 풍파속에서도 끊임없는 기적과 변혁의 서사시를 이 땅우에 아로새기며 광명한 미래에로 향한 보무를 더욱 가속화해나가고있다.

도도히 사품쳐흐르는 대하에도 그 시원이 있고 아름드리거목에도 억센 뿌리가 있듯이 우리 국가의 줄기찬 전진과 발전의 밑바탕에도 그 걸음걸음을 떠밀어주는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안고 살면 세상에 무서울것도 없고 못해낼 일도 없습니다.》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 이 위대한 정신에 대해 생각할 때면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온 세상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꾸지 말아야 할 제일 귀중한 정신적재보이라는데 대해 밝혀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고귀한 가르치심이 뜨겁게 되새겨진다.

온 세상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꾸지 말아야 할 제일 귀중한 정신적재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이 가르치심에는 피어린 항일의 혈전장에서 창조된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이 얼마나 값비싸고 고귀한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대답이 있으며 오직 이 정신으로써만 력사의 모진 폭풍우속에서도 끄떡없이 전진하고 영원히 승리해나갈수 있다는 불변의 철리가 담겨져있다.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 제힘으로 기어이 이 땅우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락원을 건설하려는 숭고한 혁명정신이 바로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이다.

이에 대해 생각할 때면 사나운 천교령의 눈보라속에서 10여명의 대오를 이끌고 한치한치 전진하시던 그때 력사는 우리에게 아직 죽을 권리를 주지 않았다고, 반혁명이 이처럼 게거품을 물고 악을 쓰고있는데 그것을 타승하려고 결심했던 우리가 어찌 한시인들 절망에 잠겨 오늘의 이 역경을 한탄만 하고있겠는가고 하시며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반일전가》로 쓰러졌던 대원들을 하나둘 일으켜세우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억척의 의지와 필승의 기개가 우리의 넋속에 뜨겁게 흘러든다.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서 조국을 알고 혁명을 배우며 성장한 투사들은 또 얼마나 강의한 투쟁정신, 혁명신념의 체현자들이였던가.

원쑤들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불을 토하듯 웨친 녀투사의 목소리도,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은 육탄용사의 전설같은 위훈도 항일빨찌산의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 가슴에 끝없이 파고든다.맨손으로 폭탄을 만들어낸 자력갱생의 강자들과 제손으로 제다리를 자르면서도 끝까지 혁명에 충실하였던 투사의 불굴의 넋도 이 땅에 맥맥히 살아높뛰고있다.

바로 이런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에 의해 창조된 위대한 정신이기에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우리 인민에게 그처럼 크나큰 긍지로, 자부로 되며 대를 이어 이 땅의 후손들을 성스러운 투쟁의 길로 힘차게 떠밀어주는 고귀한 활력소로 되고있는것이다.

눈보라치는 백두광야에 그 시원을 두고 세기와 년대를 이어 우리의 투쟁에 끊임없는 승리와 영광의 길을 열어주며 이 조선을 세계가 우러르는 상상봉에로 이끌어온 그렇듯 위대한 정신을 과연 온 세상의 금은보화를 다 준다 한들 어찌 바꿀수 있으랴.

지나온 나날들이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영원히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승리떨치며 이 땅우에 하루빨리 인민의 모든 꿈과 리상이 꽃펴나는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고 찬란한 공산주의미래를 안아오시려는것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확고부동한 신념이고 의지이다.

눈보라세찬 광야에 천리준마의 발굽소리 높이 울리시던 7년전 력사의 그 나날 세월이 흘러 강산도 변하고 세대가 바뀌고있지만 백두산의 그 웅자는 변함이 없다고 하시면서 언제 와보아도, 걸으면 걸을수록 몸과 마음에 새로운 혁명열, 투쟁열이 흘러들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곳이라고 말씀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백두의 혁명전구들을 찾아 행군길을 이어가시고 차디찬 눈무지우에 앉으시여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실 때, 하많은 사연 안고 흐르는 소백수물결우에 소중한 추억도 실어보내실 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심중에 뜨겁게 자리잡고있은것은 무엇이였던가.

오늘의 강대한 사회주의조국을 소중히 그려보시며 강인한 의지로 만난을 이겨내신 수령님의 심중을 가슴뜨겁게 새겨안아보느라니 어떤 시련과 고난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야 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지고 우리가 어떤 신념과 의지로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한길만을 가야 하겠는가 하는 각오를 가다듬게 된다고, 그래서 마음과 어깨는 더더욱 무거워지지만 새로운 힘이 용솟음친다고 하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그날의 말씀이 가슴을 세차게 울려준다.

바로 이런 결심, 이런 신념과 의지를 안으시고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우리 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여 이 조선을 존엄과 영광의 상상봉에 세워주시였다.

그처럼 짧은 기간에 눈부신 도약으로 조국의 힘을 최강의 높이에로 끌어올린 경이적인 사변들,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이 제시되고 지방공업혁명이 개시되여 그 희한한 실체들이 련이어 태여나고있는 속에 보건시설과 종합봉사소를 비롯한 3대필수대상건설을 추가병행하고있는 거창한 시대상, 전국의 탄광마을들을 현대적으로 일신시킬 웅대한 설계도가 펼쳐져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기를 힘차게 열어나가는 주체조선의 발전속도를 힘있게 과시하고있는 오늘의 눈부신 현실, 바로 그 밑바탕에는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이 땅우에 끝없이 번영하는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확고부동한 의지가 억척의 주추로 놓여있는것 아니던가.

그렇다.온 세상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꿀수 없는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가슴마다에 굳게 간직하고 위대한 당의 령도를 받들어 만난을 짓부시며 억세게 나아가는 이길에 우리 조국의 무궁강대한 래일이 있고 영원한 승리와 영광이 있다는것이 천만인민모두의 철석의 신념이고 의지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두해전 조국해방의 날을 맞으며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찾으시였던 못잊을 그날 주체혁명의 백승사와 억년청청함을 담보하는 백두의 혁명정신이 후세토록 진함없이 순결하게 계승될 때 그 시원에 있어서 숭고하고 력사와 전통에 있어서 성스러운 우리의 위업은 그 무엇으로써도 멈춰세울수 없고 거스를수 없는 백절불굴의 힘을 터치며 무궁한 영광과 승리에로 노도칠것이라고 확언하시였다.

모두다 필승의 의지와 무비의 용기를 안겨주는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위해 굴함없이, 억세게 싸워나가자.

어제와 오늘이 그러하듯이 래일도 언제나 승리는 이 위대한 정신을 만장약하고 용기백배, 신심드높이 광활한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우리 인민에게 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빨찌산 김대장의 영웅신화는 우리 조국과 인민의 영원한 긍지이다

2026년 8월 11일《로동신문》

 

8월 15일, 이날은 우리 인민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룩한 일대 경사, 자주강국건설의 광활한 길을 열어놓은 거대한 정치적사변의 날이다.누리에 떨치는 존위와 명성, 과감하고도 줄기찬 투쟁으로 자기 위업의 진리성을 립증해가는 우리 국가의 강용한 위세도 이날에 새 기원을 두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고한 항일대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8월 15일이 있어 세계지도에서 빛을 잃었던 우리 조국은 당당한 자주독립국가로, 승승장구하는 주체의 사회주의국가로 솟구쳐오르고 우리 인민은 나라의 주인으로, 영웅인민으로 존엄떨칠수 있었다.

어느덧 8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세대는 바뀌고 산천도 변하였다.그러나 이 땅에 생을 둔 인민의 마음속에서 나라를 찾아주신 항일의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러 기쁨과 환희의 눈물짓던 그날의 크나큰 감격은 언제한번 떠나본적 없었다.

항일의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만고의 영웅,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드린 불멸의 호칭이다.

이 성스러운 부름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위대한 수령님을 경건히 우러르기 시작한 때로부터 우리 인민의 운명에서도, 우리 조국의 력사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백두산 줄기줄기, 압록강 굽이굽이마다에 숭엄히 아로새겨진 빨찌산 김대장의 불멸할 영웅신화는 항일혁명이라는 력사의 구간이 어떻게 기적과 승리로 빛날수 있었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이 무엇으로 마련되였는가를 깊이 새겨주며 우리 인민에게 무한한 긍지와 영예를 끝없이 안겨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신 그때로부터 20성상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고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이는 칠흑같이 어둡던 일제통치의 암담한 시기에 우리 인민에게 재생의 희망과 신념을 안겨주신 절세의 위인이시다.

10대의 시절에 벌써 《ㅌ.ㄷ》의 결성으로 세계제국주의와의 정면대결을 선언하시고 주체사상의 창시와 더불어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히시며 주체로 빛나는 전혀 새로운 혁명의 불길을 지피신 위대한 수령님,

무장에는 무장으로라는 피끓이는 호소로 백두산야에 전인민적항쟁의 총검이 번쩍이게 하시고 《무적황군》을 자랑하는 일제침략자들을 전률케 하시는 백두산청년장군의 그 걸출한 위인상을 우러르며 우리 인민은 동서고금의 그 어느 영웅전기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만고불멸의 영웅신화를 새겨안았고 동트는 조선의 새 아침을 보았다.

일찌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이시자 곧 빨찌산이고 빨찌산이자 곧 수령님이시라고, 우리 인민들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수령님을 빨찌산 김대장이라고 높이 칭송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빨찌산 김대장!

우리 수령님의 항일혈전사는 정녕 인민이 대를 이어 전해가고 세상사람들이 놀라와 경탄하는 신화적인 영웅전으로 숭엄히 아로새겨져있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영웅신화는 조국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열렬한 사랑으로 만고의 항쟁사를 수놓으신 절세의 애국자의 불멸할 영웅서사시이다.조국의 모든것을 자신의 피와 살처럼 귀중히 여기시는 백두산장군의 불같은 애국의 세계가 세상을 놀래우는 영웅신화를 떠올렸다.

우리 인민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있다.

조국을 위해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피도 흘리면서 온넋과 육신을 다 바친 사람들만이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심장으로 깨달을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절절한 교시,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정의하실수 있는, 조국에 대한 사랑의 열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새겨주는 이 금언에는 항일혈전사에 어린 그이의 사무친 체험이 있고 조국의 귀중함에 대한 위인의 고결한 진정의 세계가 있다.

력사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불행하고 비참한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피어린 20성상의 자욱자욱에 고결한 애국의 넋을 묻으시며 조국의 해방을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같으신 절세의 애국자를 알지 못하고있다.

백두의 천고밀림에서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며 조국해방을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의 항쟁사는 그이께서 어떤 불같은 조국애로 사선천리, 눈보라만리를 영웅적으로 헤치시였는가를 눈물겹게 전해주는 산 화폭들로 엮어져있다.

우리 인민 누구나가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풍상을 되새겨볼 때면 숭엄한 격정속에 자신들을 세워보군 하는 설한풍 휩쓸던 천교령,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던 그때를 추억하시며 우리는 기를 쓰고 살아서 혁명을 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그대로 주저앉으면 조선인민이 일제의 영원한 노예가 된다고 생각하시며 《반일전가》를 지으신데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의 20성상 넘으신 이런 천교령이 천이런가 만이런가.

갓 창건된 유격대를 이끌고 단행하신 남만진출, 대포, 비행기로 무장한 대적과의 결전에서 기적적승리를 이룩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시련을 끝끝내 이겨낸 고난의 행군, 무송원정…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상상할수 없는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렇듯 강인하게 헤치신 혈전만리, 눈보라만리끝에 조국해방의 날이 있었으니 백두산 줄기줄기, 압록강 굽이굽이에 력력한 항일전의 자욱자욱은 오늘도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과 시련을 열렬한 조국애로 영웅적으로 이겨내신 빨찌산 김대장의 전설적인 승전사를 숭엄히 전하고있다.

정녕 조국해방은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비상한 책임감으로 만고의 영웅적항쟁사를 수놓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걸출한 위인상이 안아온 고귀한 결실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전의 영웅신화는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군사적기적을 창조하시여 조선혁명의 백전백승사의 시원을 열어놓으신 전설적위인의 거룩한 업적을 길이 전하는 고귀한 재보이다.

우리 경건한 마음 안고 조선인민혁명군이 창건되던 백두의 수림속에 다시금 마음을 세워본다.

드넓은 광장도 아니였고 요란한 주악도 없었다.천고의 밀림속 등판에 애국으로 피끓는 열혈청년들이 정렬해있었다.

청소한 이 대오가 백두전장을 메주밟듯 하며 일제의 명줄을 단숨에 휘여잡을줄을, 《무적황군》의 《강대성》의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리며 조국의 운명에 그렇게도 근본적인 전환을 안아올줄 세상은 알지 못하였다.

그때로부터 간악한 일제의 정수리에 멸적의 철퇴를 안긴 통쾌한 전투들을 우리는 다 꼽을수 없다.

소영자령전투, 동녕현성전투, 무송현성전투, 보천보전투, 간삼봉전투, 서강전투, 홍기하전투, 대사하치기전투…

세계전쟁사 그 어디에 발톱까지 무장한 제국주의침략자들과의 간고한 대전에서 정규군도 아닌 유격대가 백전백승하는 이러한 놀라운 영웅신화가 기록된적 있었던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 어느 병서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변화무쌍한 군사행동으로 일제를 쳐부시던 나날에 우리 인민은 반만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높이 모신 전설적위인, 빨찌산 김대장을 우러르며 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 신화적인 영웅전을 끝없이 전해갔다.

해방후 어느날 우리 나라를 방문한 미국녀류기자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김일성장군님은 명성높은 청년장군, 나라와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시라고 높이 칭송하며 항일무장투쟁시기 인민들속에서 전설같은 이야기가 많이 돌았는데 그에 대해 말씀해주실것을 정중히 요청하였다는 사실은 나라의 지경을 넘어 세계인민들속에도 널리 퍼진 빨찌산 김대장의 전설적위인상에 대하여 잘 말해준다.

위대한 수령님의 백전백승의 전략전술과 기묘한 전법에 적들은 넋을 잃었다.

보천보전투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타격을 받고 《후두부를 꽝 하고 강타를 당한것같다.》느니, 《천날동안 베여들인 새초를 한순간에 태워버린듯한 한을 남겼다.》느니 하고 비명을 지른 군경당사자들의 고백은 그대로 빨찌산 김대장의 전설적인 영웅신화에 대한 꾸밈도 가식도 없는 생동한 반증인것이다.

빨찌산 김대장의 령도따라 그 어느 전쟁사도 알지 못하는 주체적인 군사전법들로 항일의 격전장들을 들었다놓은 조선인민혁명군의 혁혁한 전과는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총을 잡고 일떠선 우리 인민은 다시는 패하지도 굴종하지도 않는다는것을 세계의 면전에서 힘있게 과시하였다.

빨찌산 김대장의 영웅신화는 항일혁명의 위대한 승전사와 더불어 탁월한 수령의 령도따라 전면적발전의 휘황한 미래를 향하여 도도한 진군을 다그쳐나가는 천만인민에게 참다운 투쟁의 진리, 영원한 승리의 법칙을 가르쳐주는 우리 혁명의 귀중한 교본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혈전사를 펼쳐보면 혁명위업수행의 전 행정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주체의 고귀한 진리가 있고 모든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나가는 자주의 정신도 있으며 우리 혁명의 풍부한 투쟁경험과 고귀한 업적이 집대성되여있는 백두의 혁명전통이 있고 주체조선의 백승을 담보하는 단결의 리념도 있다.자기의 힘을 확신시켜주는 주체의 신념도 있고 모진 고난도 웃으며 헤치게 하는 필승의 락관도 있으며 우리가 대를 이어 영원히 승리만을 떨치게 하는 모든 방법론이 다 있다.

빨찌산 김대장의 영웅신화에서 혁명하는 법, 투쟁하는 법, 승리하는 법을 배우며 강의하고 억세게 자라난 우리 인민이기에 준엄했던 전화의 나날로부터 사회주의건설의 격동기는 물론 간고했던 고난의 시기, 승승장구하는 전면적발전의 새시대에 이르기까지 혁명의 년대마다에서 지구상의 그 어느 인민도 창조할수 없는 영웅적인 투쟁사를 엮으며 세상사람들을 놀래운것 아니던가.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의 억센 피줄기에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부어주는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향도따라 강국의 꿈과 리상, 부국강병의 대업을 성취해나가는 오늘의 투쟁에서 빨찌산 김대장의 영웅신화는 우리 인민에게 고귀한 진리와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는 영원한 활력소로, 백승의 교본으로 되고있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전의 영웅신화는 우리 인민의 무궁한 영예이고 우리 조국의 영원한 긍지이다.

자기 수령의 영웅신화를 고귀한 유산으로 간직하고 그 성스러운 교본으로 투쟁과 승리의 길을 열어나가는 인민의 힘은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한다.

천리혜안의 예지와 특출한 정치실력, 백두의 담력과 기상으로 조국의 존엄과 국력을 만방에 떨쳐나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이를 높이 모시여 년대와 세기를 이으며 이 땅우에 장엄하게 굽이친 걸출한 위인의 력사, 백전백승의 력사는 용용히 흐르고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과 변혁의 서사시가 끊임없이 수놓아지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주체조선의 승리의 력사를 끝없이 빛내이며 폭풍쳐나아가는 우리 조국과 인민의 앞길에는 휘황찬란한 미래만이 약속되여있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님 따라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 조국해방을 안아온
혁명선렬들의 백절불굴의 정신 오늘도 백두전구에 차넘친다.

본사기자 찍음

 

[Korea Info]

 

김일성 1.소할바령에서 회고록《세기와 더불어》(계승본) 8 제 22 장 혁명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하자

2026년 8월 10일 웹 우리 동포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8
제 22 장 혁명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하자

1.소할바령에서

소할바령회의는 항일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기며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튼튼히 갖추어나갈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채택한 중요한 력사적회합이였다.

소할바령회의는 항일혁명이 시련을 겪고있을 때 조선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이 안고있던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화를 복으로 바꾸기 위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바치신 피타는 로고와 열정의 소산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회의의 준비와 그 진행과정을 두고 하신 여러차례의 교시를 새롭게 되새겨본다.

홍기하에서 《마에다토벌대》를 소멸한 다음 우리는 화라즈의 수림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걸어온 로정에 대한 총화를 하였습니다. 그것을 20만리장정총화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로정이 20만리나 된다는 뜻입니다.

이 장정에서 거둔 성과를 공고히 하고 혁명투쟁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자면 일도 더 많이 하고 험한 길도 더 많이 걸어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장정에서 이길수 있게 된 기본요인은 정치사상적우월성과 유격전술에 있다, 이것이 20만리장정의 주되는 총화이다, 조성된 정세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엄중하다, 조성된 정황과 지대적특성에 맞게 다양한 유격 전술과 전법을 능숙하게 활용하자,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며 대중정치사업도 강화하자,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수십만리를 더 걸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추호의 동요도 없이 혁명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해나가자, 앞으로도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적들을 호되게 답새기자고 호소하였습니다.

1940년 봄이면 《노조에토벌사령부》가 인민혁명군에 대한 공세를 종전보다 더 요란스럽게 할 때였습니다. 병력도 더 많이 들이밀고 혁명군을 소멸하기 위한 《토벌》계획도 이모저모로 더 빈틈없이 세웠습니다.

형세가 이런 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도권을 잡자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주동에 서서 계속 적들을 압도해왔는데 시국이 어떻게 변하든지간에 주도권만은 앞으로도 계속 틀어쥐자는것이였습니다.

무엇을 믿고 주도권을 쥐자고 했는가. 정신력과 전술을 믿었습니다. 우리 혁명군이 인적후비나 무장장비에서는 적들보다 렬세했지만 정신력이나 전술에서는 그들보다 훨씬 우세했습니다. 문제는 어느쪽이 더 우월한 용병술을 가지고있는가 하는것인데 그게 우리 편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화라즈골안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노조에토벌대》들은 다 산간지대들에 있었습니다. 혁명군이 드나들만한 길목들에 떡 버티고 서서는 좀처럼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회의에서 주도권문제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정황은 몹시 불리했습니다. 노조에는 동만의 병력으로는 성차지 않아 통화쪽에서도 응원대의 명목으로 병력을 끌어온다고 하였습니다. 오백룡의 말에 의하면 그 병력이 벌써 연길, 돈화현경의 량병대쪽에 도착했다는것이였습니다. 장백쪽에서도 무슨 공작대라는 명칭을 가진 병력이 새로 증강해왔다고 하였습니다.

적들이 력량을 증강하면서 《토벌》을 계속 확대하고있는 형편에서 장차 어떤 방법으로 그에 대처해야 하는가.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의 미명하에 감행된 적의 첫 단계 대《토벌》은 대부대선회작전의 방법으로 격파했는데 그보다 더 악랄하고 집요한 공세는 무엇으로 파탄시키겠는가 하는것이 문제였습니다. 대부대선회작전이 은을 냈다고 하여 지금에 와서도 그런 방법을 되풀이하겠는가, 아니면 다른 전술로 나가겠는가, 동서방의 정세를 보면 독일과 일본이 강행하고있는 전쟁의 불길이 조만간에 온 세계를 휩쓸게 되고 모든 렬강들과 군소국가들이 다 그 불길에 말려들어가게 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장래를 예견해서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가 하는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앞에는 당면한 적의 《토벌》을 격파하기 위한 전술적인 대책과 함께 급변하는 정세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확립해야 할 과제가 동시에 제기되였습니다.

나는 우선 홍기하전투후에 조성된 난국을 이겨내기 위한 전술적방안을 세워나가면서 새로운 전략적구상을 무르익히기로 하였습니다.

적들은 그 당시 산간지대에 모든 력량을 집결하고있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자면 분산활동으로 넘어가 야산쪽으로 빠져나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성시나 집단부락들은 경찰과 자위단에 맡기고 기본력량을 산간지대에 집중하고있는 조건에서 배후를 교란시켜 《토벌》력량을 분산시키는것만이 승산이 확고한 전술이였습니다.

이런 타산에 기초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1940년 4월중순 화라즈밀영에서 은밀히 빠져나와 적들의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을 최종적으로 파탄시키기 위한 싸움의 길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먼저 소사하류역에 있는 큰 집단부락들인 동남차와 양초구를 동시에 치고 뒤따르는 적들을 수개봉골짜기에서 소멸한 다음 적의 병력을 떼버리고 처창즈쪽으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연길과 왕청 일대에서 활동하던 안길, 최현의 부대들도 주력부대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현의 중심지대들에서 적배후교란작전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몇개 부락에서 총소리를 냈지만 적들은 별로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적들을 분산시키자면 좀더 큼직한 미끼를 던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도현성 동쪽에 있는 3개 부락을 동시에 치기로 하고 어느날 밤 남2도구, 북2도구, 신성툰에 대한 동시타격전을 벼락같이 해제꼈습니다.

이번에는 적들이 미끼를 덥석 받아물었습니다. 안도와 화룡현 남부접경지대에서 완강히 버티고있던 관동군부대들이 안도현성이 당장 떨어지는줄 알고 와 하고 몰려왔습니다. 조만국경을 지키던 국경수비대도 거기에 합세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품을 들여 적들을 안도현 중심부로 끌어들인것은 적의 력량을 분산시켜 타격하는것과 함께 두만강일대에 진을 치고있던 일본군이 움직이는 틈을 타서 또다시 국내에 무장투쟁의 불길을 확대하자는데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국내진출임무를 맡고있던 부대는 김일이네 8련대였습니다. 나는 8련대에 국경일대로 서서히 내려가면서 분산활동을 하라는 과업을 주고 7련대와 경위중대는 안도현 북부로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적을 쳤습니다.

그후 김일은 소부대 하나를 데리고 살금살금 국내로 들어갔습니다. 그 소부대는 5월중순경에 무산군 삼장면일대에 진출하여 국경수비대에 대한 기습작전을 벌리면서 이틀동안이나 인민들과의 사업을 하였습니다.

미나미총독이 국경으로는 단 한명의 유격대원도 스며들지 못하게 하라고 호통치던 때에 조선인민혁명군의 1개 소부대가 국내에 뻐젓이 나타나 총소리도 내고 여유작작하게 정치사업도 한것은 1940년대 전반기의 항일혁명력사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진출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두만강연안과 안도현의 중부, 북부에서 타격전을 더 맹렬하게 벌려 적들을 녹여냈습니다.

이렇게 되자 《노조에토벌사령부》의 새로운 《토벌》작전은 그 첫걸음부터 된타격을 받게 되였습니다. 《토벌사령부》와 《지구토벌대》, 《소지구토벌대》사이에서는 매일같이 우가 아래에 책임을 추궁하고 한 린접이 다른 린접에 책임을 전가하는 소동들이 일어났습니다. 《노조에토벌사령부》는 새로운 《토벌》지침을 하달한다 어쩐다 하면서 복닥판을 벌렸습니다.

우리가 새 작전 준비를 한창 하고있을 때 남만에서 한인화가 50∼60명가량 되는 1로군의 잔존부대를 데리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위증민이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우리 부대에 합류해서 활동할 의향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인화는 1로군 참모 겸 경위려단 정치위원이였습니다.

우리는 남만부대와의 공동투쟁을 통해 그들의 사기를 높여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6월에 접어들며 동경평과 상대동을 쳤습니다. 치고보니 동경평은 거의 무방비상태였습니다. 10여일전에 친 부락을 또 치겠는가 하고 모두가 방심하였던것입니다. 우리는 그후에도 몇개의 부락을 동시에 들이쳤습니다.

고동하목재소를 습격한 다음날에는 남만에서 온 동무들과 함께 전투에서 로획한 후방물자로 단오명절을 푸짐히 쇠였습니다.

한인화는 술이 몇잔 들어가자 내 손을 잡고 위증민이 왜 나를 김사령한테 보냈는지 이제야 알겠다, 지금정세를 보면 간도쪽이 남만쪽보다 훨씬 더 험악한데 적《토벌대》들이 노조에나 우메즈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김사령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행한 작전에서 얼마나 큰 인상을 받았던지 그는 2방면군이 제일이다, 김사령부대야말로 백전백승하는 부대이다, 이제는 우리도 자신이 있다, 액목이나 돈화쪽에 가서 진한장을 만나고 녕안쪽에 가서 주보중을 만난 다음 한바탕 본때있게 싸워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담무쌍한 활동앞에서 일본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였습니다.

적들이 내리막길로만 굴러가는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의 형세를 조금이라도 역전시켜보려고 간도전역에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있을 때 우리 대오에서는 전혀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대마록구부근 밀영에서 치료를 받고있던 방면군 정치주임 려백기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부대의 비밀을 속속들이 다 불었습니다.

우리는 려백기의 체포와 투항으로 하여 조성된 난국을 적들에 대한 부단한 공격과 다양한 전술상 변화로 타개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우선 부대를 소부대화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방면군의 력량을 여러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도처에서 과감하고 령활한 소모전을 벌리자는것이였습니다. 부대를 소부대화하면 활동에서도 기동성을 보장할수 있었고 적의 조밀한 경계망도 용이하게 뚫고나갈수 있었으며 적들을 다시금 혼란에 빠뜨릴수 있었습니다.

부대를 소부대화해야 덩지가 작아지기때문에 적들에게 발견되였다 하더라도 날쌔게 자취를 감출수 있었습니다.

이런 타산이 서게 되자 우리는 지체없이 방면군력량을 여러개의 소부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소부대에 의한 전면적인 소모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보는바와 같이 우리는 일본사람들의 공세앞에서 주춤거린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맞받아나갔습니다.

만일 그때 우리가 적들의 대공세에 위축되여 안전한곳을 찾아 피해다니기만 했더라면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두말할것도 없이 우리는 큰 손실을 입었을것입니다. 우리가 이길수 있은것은 주동에 서서 적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연거퍼 답새겨댔기때문입니다.

주체29(1940)년 봄, 여름 작전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승리했다는것은 적들자신도 인정하였다.

《추기, 춘기 토벌의 예봉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비단은 번무기를 타서 여러곳에서 맹활동을 하며 특히 최근에 있어서는 제2, 제3선의 후방부락까지 적극적습격을 하여오는데 그 상태는 참으로 방약무인이며 피해도 또한 적지 않게 보고있는것은 여러분과 함께 극히 유감으로 생각하는바이다. 일만 군대, 헌병, 경찰, 철도경호대, 협화회 등 모두 수만명이다. 아무리 계절의 영향과 지형이 불리하다 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위력을 떨칠수 있게 하는 그 원인은 첫째로 토벌사령관인 나를 비롯하여 모두의 책임에 있다는것은 물론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최근의 정황을 관찰하여 보면 특히 토벌대 및 각 기관의 융화단결과 그의 동태에 내포된 수많은 약점과 결함이 현저하여 숙정제공작의 추진을 저애하며 나아가서 비단의 활동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것이 아닌가를 통감하게 되는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움을 금할수 없는바이다.》[《치안숙정관계서류》 노조에토벌사령부, 소화15년(1940년)]

1940년 봄과 여름의 작전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소부대활동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하게 되였습니다. 종전까지 우리는 경우에 따라 소부대활동도 했지만 주로는 대부대활동을 벌려왔습니다.

그러나 1940년 여름에는 소부대들을 단위로 하여 도처에서 련속타격, 반복타격, 동시타격과 같은 령활한 전법들을 많이 적용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우리는 적들이 《토벌》력량을 증강하고 포위망과 경비망을 물샐틈없이 칠 때일수록 전투단위를 작게 하여 소부대활동방식으로 유격전을 벌리는것이 유리하다는 중요한 경험을 새롭게 얻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다음단계의 전략적과업과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방도를 수립하는데서 큰 밑천으로 되였습니다.

이런 밑천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해 8월에 열린 소할바령회의에서 대부대활동대신 소부대활동을 하자고 주장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이미 축적한 경험도 있고 자신심도 있었기때문에 우리는 소부대활동을 1940년대 전반기의 주되는 투쟁형식으로 삼고 계속 주도권을 틀어쥐고나갈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소할바령회의 이전에는 대부대활동만 하고 소부대활동은 그 이후에만 한것으로 생각하고있는데 그것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유격전의 특성은 조성된 군사, 정치 정세와 환경에 따라 림기응변하는데 있습니다. 소부대활동은 대부대활동이 위주였던 1930년대 후반기에도 중시되여왔으며 필요에 따라 적용하였습니다.

1940년 상반년에 활발히 진행된 소부대분산활동의 시험적인 단계를 거쳐 소할바령회의 이후부터는 모든 빨찌산부대들이 대부대활동으로부터 소부대활동으로 이행하였습니다.

이상에서 말한것은 대부대선회작전의 후일담입니다. 력사학자들이 이부분 연구에서 공백이 많다고 하기때문에 오늘 품을 들여 말해주었습니다.

소할바령회의를 기준으로 하여 문제를 본다면 1940년 봄과 여름에 우리가 벌린 활동은 그 회의의 준비과정이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세의 흐름에 맞게 전략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것은 구라파에서 일어난 전쟁이 급속히 확대되고있던 때부터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전쟁을 결속하지 못한채 동남아세아지역에로 전쟁의 불길을 확대하려고 미쳐날뛰면서 《후방의 안전》을 보장하려고 최후발악을 하였습니다.

앞에서 말한 적들의 우리에 대한 대대적이고 끈질긴 《토벌》공세와 우리 인민에 대한 파쑈적 폭압과 략탈이 그 어느때보다도 악랄해진것은 바로 이러한 침략정책의 강화에서 오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국제국내적으로 더욱더 고립되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깊숙이 빠져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

전반적인 정세는 일제의 멸망이 확정적이고 시간문제이며 우리 인민이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 날이 가까와오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지난 10년간의 항일무장투쟁행정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들을 총화하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력량보존축적을 잘할데 대한 새로운 로선을 구상하게 되였습니다.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잘해나가는것은 당시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칙적요구로 되였습니다.

새로운 전략적단계에로 넘어가자면 객관적인 정세변화 일면만 보고 거기에 피동적으로 따라가는 식으로 되여서는 안되며 언제나 주동에 서서 투쟁을 끌고나가며 최후승리를 앞당길수 있는 주체적력량에 대한 타산과 지난 시기의 투쟁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하는것입니다.

나는 우선 선행단계에서 규정한 전략적과제가 해결되였는가를 따져보았습니다.

남호두회의에서 제시된 전략적임무를 꼼꼼히 따져보았지만 미해결문제는 없었습니다.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기초축성,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결성과 확대발전, 국경지대에로의 진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하는 문제… 어느것이나 해결되였다고 총화할수 있었습니다.

무장투쟁의 전략적단계를 규정하는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다른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적아의 력량관계의 변화입니다.

수자상으로 볼 때 적아의 력량은 대비도 되지 않았습니다. 적들은 그때 우리를 《창해일속》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다속의 좁쌀알만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보통상식으로써는 력량대비라는 말이 성립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력량대비방법은 그런 산술적비교법이 아니였습니다. 우리 군대 한명이 백명의 적, 천명의 적을 당해낸다는것이 우리 식의 비교법이였습니다.

남호두회의가 있은후 조선인민혁명군은 정치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급속히 자라났습니다. 우리 군대는 수적으로는 비록 적들보다 적었으나 수십배 또는 수백배되는 대적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승리하는 싸움만 해왔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 인민혁명군은 그 어떤 정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할수 있는 다양한 전법과 전술을 소유한 강군으로 자라났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군사적사명과 함께 정치적사명도 동시에 수행하는 새형의 특수한 혁명군대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뿐아니라 전반적조선혁명수행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차지하고있는 확고한 령도적지위와 증대되는 핵심적역할은 우리가 혁명무력건설을 튼튼히 틀어쥐고 그것을 모든 사업에 선행시키는 원칙을 견지한것이 천백번 옳았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주권전취를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서 정치적령도기관으로서의 당을 먼저 꾸리고 그 다음에 무력건설에 착수하는것이 하나의 원리로 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혁명투쟁, 특히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서 혁명무력, 폭력적진출이 가지는 결정적역할과 당시 우리 나라의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먼저 무력을 건설하고 다음에 당을 건설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우리는 1932년 4월에 첫 혁명적무장력으로서의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고 그것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확대발전시켰으며 바로 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의거하여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의 불길을 높여나가면서 전반적반일민족해방투쟁을 새로운 앙양에로 불러일으켰을뿐아니라 조선인민혁명군의 령도와 무력적담보밑에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도, 조국광복회 조직과 통일전선운동의 확대발전도, 전민항쟁준비도 성과적으로 이끌어나갔습니다.

사실에 있어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항일혁명시기 우리 혁명의 중추적핵심력량이며 정치적향도자이며 민족적리익의 무력적담보자였던 조선인민혁명군은 그대로 우리의 군대이자 당이고 정권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새로운 전략적단계의 과업을 능히 맡아 수행할수 있는 주체적핵심력량이 믿음직하게 준비되여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습니다.

인민대중의 의식화, 조직화를 다그쳐 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키는 사업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때 조국광복회산하 회원이 20여만이나 되였습니다.

국내에는 또한 로동자돌격대나 생산유격대와 같은 반군사조직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조직들이 모체가 되여 도처에서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부대들을 조직하고있었습니다.

비조직군중들의 동향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무렵에 김일이네가 국내에 나와 적을 치고 두만강쪽으로 행군해가고있을 때의 일이였습니다.

대오의 뒤로 어떤 절름발이농사군이 부지런히 따라오고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유격대어른들이 이곳으로 두만강을 건느자고 하는것 같은데 오늘 저녁에는 다른 길로 가야 하우다. 이 근방에는 놈들이 쭉 깔렸수다.》하고 말했습니다.

김일이네는 그가 제공해준 정보를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결단을 내릴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파악이 전혀 없었기때문입니다.

우리 동무들이 망설이는것을 보고 그 농민은 품에서 신문쪼박지를 꺼내보이였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런 사람이니 믿어도 되우다.》라고 하였습니다. 손바닥만한 신문쪼박지를 내놓고 자기를 믿어달라 하니 우리 동무들은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한참 훑어보니 거기에 실린 글이 1939년 5월의 무산지구전투를 소개한 보도기사였습니다. 오랜 유격투쟁의 감각으로 정보를 가지고온 사람이 좋은 사람일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더러 어느쪽으로 가야 두만강을 무탈하게 건너갈수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농민은 자기가 안내하는데로 가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거기도 경비는 서지만 다 혁명군편을 드는 좋은 사람들이라는것이였습니다.

그날밤 우리 동무들은 그 농민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무사히 건너갔습니다.

경비에 끌려나왔던 마을의 주민들은 유격대가 강을 건너가는것을 보면서도 못본체하고 눈을 감아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얕수다.》, 《거기는 깊수다.》하면서 길안내까지 해주었습니다.

인민대중의 정치사상적준비의 강화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는 항일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키는데서 여전히 위대한 추동력으로 되고있었습니다.

무장투쟁의 전략적단계를 규정하는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다른 하나의 문제는 적의 전략전술적기도에서 일어나는 변화였습니다.

1940년 여름에 우리는 황구령도로공사장에서 일본공병장교를 포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장교를 심문하는 과정에 우리 동무들은 적들이 간도일대와 남만쪽에서 방대한 군용도로망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였습니다. 안도현을 중심으로 하여 화룡, 연길, 돈화, 화전, 무송은 물론, 국내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백두산동북부의 험한 골짜기들에까지 도로를 건설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군용도로들의 건설정형은 《노조에토벌사령부》를 거쳐 관동군사령부에까지 매일같이 보고되였습니다. 포로된 공병장교의 말에 의하면 노조에사령관이 오래지 않아 공사중에 있는 도로들을 시찰한다는것이였습니다. 이 도로는 인민혁명군을 《토벌》할 때 써먹자는 기동로였습니다. 령만 떨어지면 이 도로들로 조선과 동북땅 여기저기에서 우리가 활동하고있는 지역으로 숱한 병력들이 쓸어들판이였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주변에 비행장들도 대대적으로 건설하였습니다. 야전비행장들은 노조에의 극비지령에 따라 동남부 3성에다 건설된다고 하였습니다. 공병장교는 자기가 아는 야전비행장의 위치와 비행기들이 《지구토벌대》는 물론, 《소지구토벌대》에도 전속된다는것까지 실토하였습니다.

그 장교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적의 야전비행장들로 포위되여있는셈이였습니다.

적들은 이무렵에 《노조에토벌사령부》를 길림으로부터 연길로 옮기려 하였습니다. 연길에 있던 《동지구토벌대》사령부도 도문으로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활동지역들에 적의 병력이 끊임없이 증강되고있다는 정보자료들과 정찰자료들이 사령부로 계속 날아들었습니다. 징후들을 보면 적들이 오래지 않아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판을 내려고 잡도리를 한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적정의 급격한 변화는 종전의 전략적방책만으로써는 대처할수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의 전략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무모한 전투로 인한 손실을 피하면서 주동적인 행동으로 혁명력량을 보존축적하는것을 우리 혁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과업으로 제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전략적방침은 1940년 8월에 소집된 소할바령회의에서 채택하였습니다.

우리가 안도ㅡ돈화현경에 이르렀을 때 15련대장 리룡운과 임철중대장이 4∼5명의 호위성원들을 데리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주재일에게 소할바령에서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게 되는 취지를 말해주고 그 회의를 위해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이상의 군정간부들을 다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도착날자는 8월 9일, 음력으로 7월 7석전까지 다 모이게 하되 왕청, 동녕쪽에 가있는 안길, 최현에게는 후날 회의결과를 통보하게 하고 13련대와 14련대들에서는 가까이에서 활동하는 중대들에만 련락하라고 하였습니다. 15련대에서는 이미 리룡운과 임철이 왔기때문에 더 부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소할바령회의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동안 하였습니다.

회의과정에 크게 론의된 문제는 앞으로의 전략적단계를 혁명적대사변의 시기로 규정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달리말하여 다음단계에 들어가서 조국해방을 성취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한마디로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들에게 물론 지금도 일본군대는 강하다, 그러나 망해가는 군대다, 일본군이 망해가는 군대라는것은 관동군의 정예라고 하는 공군부대에서 폭동이 일어난 사실만 보고서도 알수 있다, 도주자와 의거자가 속출하기때문에 중일전쟁마당에서도 그 단속을 하느라고 쩔쩔맨다고 한다,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일본이 패망할 날도 오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은 얼마전부터 특별지원병령인가 뭣인가 하는것을 만들어가지고 조선청년들을 대포밥으로 내몰고있었습니다. 대만과 만주에서도 이런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일본이 자기네한테 원한을 품고있는 식민지나라의 청장년들을 대포밥으로 끌어갈 지경이 되였으니 병력의 부족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9.18사변후 7.7사변전까지 일본군은 만주에서만도 근 20만에 달하는 병력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중일전선에서는 한해에 그보다 더 큰 손실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이 보유하고있는 전략물자의 예비도 한계점에 이르고있었습니다.

소할바령회의 직전에는 적들이 탄알도 1939년 이후에 생산한것을 썼습니다. 간삼봉전투시기에 사용한 탄알들은 1920년대에 생산한것들이였습니다. 탄약의 예비도 바닥이 났다는걸 의미하는것입니다.

일본의 정계도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사흘이 멀다하게 내각이 교체되고 입씨름질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군부도 모순투성이였습니다. 군장성들과 장교들이 여러파로 갈라져 옥신각신하게 되니 작전에서 통일성과 협동도 보장할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로자간의 모순, 군민간의 모순, 종주국과 식민지간의 모순이 폭발직전에 이르고있었습니다. 본토의 주민부락들에도 정보원들을 박아넣어 국민의 입에 자갈을 물리는판이였습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나는 회의에서 우리가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는데서 일본의 국책이 구라파에서 일어난 전쟁을 리용하여 동남아를 치자는 속심을 공공연히 내비친것으로서 만일 일본이 동남아세아로 진출하는 경우 그것은 그들자신이 제 무덤을 파는 길로 되리라는 점을 특별히 고려하였다는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회의에서는 대사변의 시기에 실행해야 할 전략적과업에 대해 토의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때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사업에서 조선혁명의 중추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의 력량을 보존축적하면서 그들을 유능한 정치군사간부로 키우는것을 새로운 전략적과업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 대사변은 적아쌍방의 정치군사적잠재력이 최대한으로 동원되는 최후결전을 전제로 하는데 그런 결전에서 승리자가 되자면 매개 대원들이 종전보다 몇등급 높은 직무를 수행해야 하였습니다. 조국이 광복되면 바로 그 대원들이 핵심이 되여 새 조국 건설도 해야 하였습니다.

최후결전과 새 조국 건설, 이 두가지는 우리 나라의 력사를 새롭게 창조하고 우리 인민의 운명에서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전략적과제로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서 대신해줄수도 없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해야 하고 조선인민이 해내야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을것은 우리자신이 장기간의 항일혁명과정을 통해 마련한 주체적력량뿐이였습니다. 우리가 주인이 되여 최후결전을 벌릴 때 남들이 스스로 우리를 도와주면 좋은것이다, 그래서 동무들, 수준을 두세등급씩 높일수 있는가고 물었더니 다들 자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민을 무장시켜 항쟁에 동원시킬수 있는가고 물었더니 그것도 해낼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전략적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 이행할데 대한 새로운 투쟁방침을 제시하였습니다.

물론 이 안을 두고서도 론의는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적이 도처에서 대무력으로 달려들 때 우리가 대부대로 맞서지 않고 소부대로 대결하게 되면 각개격파당하지 않겠는가고 우려하였습니다.

나는 그런 동무들에게 대부대전성기는 지나갔다, 대부대로 와와 밀려다닐 때가 아니다, 적들이 대병력을 동원하여 우리를 단꺼번에 그물에 잡아넣어 일망타진하려고 할 때 우리가 대부대작전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적들의 계책에 빠져 자멸을 가져오게 될것이다, 말하자면 호박을 쓰고 돼지우리로 들어가는 격으로 된다, 소부대단위로 움직이면서 싸움도 하고 대중정치사업도 하면 식량도 쉽게 해결할수 있고 기동도 자유자재로 할수 있다,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식량을 해결하려다가 적들에게 희생되였는가, 그런데 그렇게 목숨과 바꾼 식량도 대부대가 나누어 먹다나니 얼마 못가고 인차 바닥이 나군하지 않았는가, 소부대로 활동하게 되면 적의 력량도 최대한으로 분산시킬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이번 봄과 여름에 진행한 소부대타격전의 전과정이 증명해준다, 과녁을 작게 하자는것이 우리의 의도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전략적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조선과 만주의 광활한 지대에서 소부대군사활동을 령활하게 전개하면서 대중정치사업을 강력히 벌리며 매개 전사들과 지휘관들의 정치군사지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빨리 조직하며 세계의 모든 반제력량과의 련대성을 강화할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고 구체적인 대책들을 합의한 다음 회의를 끝냈습니다.

소할바령회의는 항일무장투쟁의 중요한 전략적로선들을 제시한 1931년 12월의 명월구회의, 1936년 2월의 남호두회의와 더불어 우리 혁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던 시기에 전략적로선을 바꾸기로 결정한 력사적인 회의입니다.

만일 그때 우리가 대세의 흐름을 제때에 보지 못하고 목전의 성과에만 급급하여 대부대활동을 계속했더라면 력량도 보존하지 못하고 자기 존재를 끝마쳤을것이며 력사에 순국한 렬사들로만 남아있게 되였을것입니다.

소할바령은 돈화현과 안도현의 경계를 타고 뻗어내린 할바령의 꼬리부분입니다. 회의는 그 령의 북쪽비탈면에서 하였습니다. 앞에는 새초밭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소할바령회의라 하면 그 새초밭이 생각납니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곳이여서 그런지 새초를 베여가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새초밭을 굽어보며 김책이랑, 허형식이랑, 박길송이랑 말을 타고다닌다는데 북만동무들이 이런 새초밭을 보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소할바령의 새초밭에서 그려보았던 북만의 전우들을 나는 원동에 들어가서야 만나보았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70여년전의 화폭이 전하는 못잊을 이야기  전승혁명사적관에 모셔진 한상의 사진문헌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연을 되새기며

2026년 7월 25일《로동신문》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을 길이 빛내이려는 우리 인민의 열화같은 마음이 모여오는 전승혁명사적관에는 참관자들이 깊은 감동속에 우러르는 뜻깊은 사진문헌이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3년 1월 전국농민열성자대회에 참가한 함경북도 어랑군의 한 할머니를 만나주시는 사진문헌이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따뜻한 정이 넘치는 말씀을 하시는 어버이수령님, 그이의 곁에서 무한한 행복과 감격에 넘쳐있는 할머니…

당과 국가의 일군도 아닌 너무도 평범한 농촌할머니가 위대한 수령님을 제일 가까이 모시고 전국농민열성자대회의 주석단에 앉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자애로운 어버이의 각별한 사랑을 거듭 받아안은것이다.

70여년전의 그 숭고한 화폭은 얼마나 위대한 사랑과 정의 세계를 뜨겁게 전하고있는것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사적관의 학술실 실장 엄근숙동무는 뜻깊은 사진문헌에 깃든 사연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앞에 서있는 저 할머니는 전국농민열성자대회에 참가한 당시 함경북도 어랑군 팔경대리의 윤옥기할머니입니다.그때 할머니는 예순살을 넘긴 나이였습니다.

8명의 아들을 고향과 조국을 지키는 성스러운 전장에 내세우고 마을녀인들로 담가대를 무어 부상병후송사업을 도왔다고 합니다.며느리들과 함께 3 000평의 논에서 거둔 많은 량의 쌀과 〈인민군포전〉이라고 부르는 새로 일군 500평의 땅에서 거둔 알곡 그리고 성의껏 짠 베를 전선원호에 바치여 국기훈장 제1급까지 수여받은 할머니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윤옥기할머니의 소행을 보고받으시고 전국농민열성자대회에 그를 불러주시였던것입니다.》

1953년 1월 5일 전국농민열성자대회가 진행되는 모란봉지하극장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윤옥기할머니를 만나주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의 험한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먼길을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고, 힘들었겠는데 어서 앉으라고 하시며 자리를 권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윤옥기할머니는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많은 자식들을 키워 인민군대에 보내고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가고 다심히 물으시였다.

순간 할머니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해방전 그에게는 원래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세번째는 아들쌍둥이였다.그런데 그 애들을 낳아 5개월이 되였을 때 아들쌍둥이는 끝내 굶어죽게 되였고 그는 한많은 세상에서 피눈물속에 여덟 아들을 키우게 되였다.

조국의 해방은 윤옥기할머니에게 행복한 새 생활을 마련해주었고 그의 아들들에게도 아름다운 꿈과 희망, 가슴벅찬 로동의 희열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참된 존엄과 행복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애쓰던 할머니는 전쟁이 일어나자 주저없이 귀한 아들들을 조국보위성전에 내세웠다.

그는 마을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군 했다.

《오늘과 같은 이런 세월에 내 쌍둥이를 낳았다면 그 애들은 절대로 죽지 않았을것입니다.그 애들이 살았다면 오늘 나는 그 애들도 모두 전선에 내보냈을것입니다.그랬으면 미제원쑤놈들을 한놈이라도 더 잡을수 있었을걸… 이걸 생각하면 원통합니다.》

이것이 할머니의 진심이였다.

할머니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소중히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엄혹한 전쟁의 환경속에서 자기 집의 안위보다 조국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며 년로한 몸이지만 전선원호와 전시식량증산에 언제나 앞장선 할머니, 끌날같은 자식들을 조국보위성전에 남먼저 내세운것을 더없는 긍지로, 영예로 간직한 할머니의 그 모습은 영웅조선의 강의한 녀성들의 사상정신적면모를 그대로 체현하고있었다.

바로 이런 애국적인 녀성들, 억세고 미더운 어머니들이 후방을 든든히 지켜섰기에 인민군전사들은 멸적의 총창을 억세게 틀어쥐고 승리의 진격로를 과감히 열어나간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지난날과 같이 나라없는 백성으로, 남의 노예로, 머슴군으로 살수 없습니다.오래지 않아 미제침략자들은 이 땅에서 반드시 쫓겨나고야말것입니다.우리는 꼭 승리합니다.승리할 날은 오래지 않았습니다.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하면 할머니의 아들들도 다 고향에 돌아올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에게 자식들이 집을 떠난 다음 소식들이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군대에 나간 자식들이 모두 잘 싸우고있으며 편지도 온다는 할머니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들들의 편지주소와 사진을 가지고왔는가고 재차 물으시였다.

사진을 가지고오지 못하였다는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아쉬워하시며 아들, 손자들의 뒤를 잘 돌봐주고 공부도 잘 시키라고 당부하시였다.

할머니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그만 눈앞이 흐려져 얼굴을 숙이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 머리를 드시고 웃으시면서 이야기하십시오.》라고 하시고는 자신과 같이 회의에도 참가하고 사진도 찍자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어랑군의 평범한 할머니가 위대한 수령님의 곁에 앉아 력사적인 전국농민열성자대회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제일 가까이에, 대회의 주석단에 앉은 할머니의 모습에는 피눈물을 흘리던 망국노로부터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 안겨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준엄한 시기 조국을 위해 불사신마냥 떨쳐일어나 피와 땀,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는 열혈의 애국자, 불굴의 투사들로 성장한 조선녀성들의 모습이 그대로 응축되여있었다.

이 나라 녀인들의 고결한 애국심, 강의한 신념과 의지를 할머니의 모습에서 뜨겁게 안아보시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각별한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할머니에게 건강에 주의를 돌릴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으며 숙소에 전화까지 거시여 피곤하지 않은가, 아픈데는 없는가도 물어주시고 유능한 의사도 보내주시였다.

할머니에게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크나큰 행복과 영광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마지막날에는 은정어린 선물도 안겨주시였다.

허나 윤옥기할머니는 미처 알수 없었다.이제 자기가 얼마나 다심한 어버이의 사랑을 또다시 받아안게 될지.

대회가 끝나고 모든 대표들이 다 돌아갔지만 윤옥기할머니만은 평양에 얼마동안 떨어져있으라는 지시를 받게 되였다.그는 영문을 알수 없었다.빨리 집으로 돌아가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여 전선에 보내주고 인민군군인들을 위해 더 뜨거운 지성을 바쳐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싶은것이 할머니의 열망이였다.그런데 무엇때문에 평양에 더 눌러있으라는것인지…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뜻밖에도 군복을 입은 일곱째 아들이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났다.

윤옥기할머니는 기별없이 나타난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다.

언제나 보고싶던 아들들이였다.불비속에서 곡식을 가꾸며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려보면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던 그 모습들, 대회의 나날에도 늘 그들을 그려보면서 이제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을 품에 안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전해주리라 속다짐하던 그였다.

아들들을 그리워하는 그의 그 심정을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조선인민군 제46보병사단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던 일곱째 아들을 평양에 불러주시여 감격적인 상봉을 마련해주시였던것이다.

그것은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윤옥기할머니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참으로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은 세상에 없다고, 우리 수령님처럼 다심하신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고 하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이런 감동깊은 사실들을 전하며 엄근숙동무는 말했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적기의 맹폭격속에서도 폭탄구뎅이를 메우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전시식량증산투쟁과 전선원호사업을 더 힘있게 벌렸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의 이런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조선로동당원의 고귀한 영예도 안겨주시였습니다.》

우리는 숭엄한 마음으로 또다시 뜻깊은 사진문헌을 우러러보았다.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인민사이에 맺어진 불보다 더 뜨거운 혈연의 정, 인류사가 알지 못하는 위대한 혼연일체가 준엄한 전화의 나날 어떻게 굳건해졌는가를 웅변하는 력사에 불멸할 화폭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렬한 전화의 나날 조국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불철주야 헌신하시는 속에서 우리 인민에게 안겨주신 뜨거운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는 정녕 천이던가 만이던가.

진정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불같은 사랑과 정은 우리 인민이 《강대성》의 신화를 자랑하던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침략자들과 맞서 가장 엄혹한 국난속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룩할수 있게 한 무한한 힘의 원천이였다.

전승혁명사적관을 나서며 우리는 고귀한 진리를 더욱 깊이 새기였다.

절세위인의 사랑과 정을 가슴깊이 간직한 인민은 그 어떤 강적과 맞서도 반드시 백전백승한다는것을.(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령장, 참다운 인민의 수령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룡포혁명사적지를 찾으시여 하신 뜻깊은 가르치심들을 되새기며  그 어느 나라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만고불멸의 전승업적

2026년 7월 24일《로동신문》

 

인골천 흐르는 소리가 가슴을 청신하게 하여주는 숲속길을 우리는 걷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이 깃들어있는 룡포혁명사적지의 참관길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가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전승업적을 우리는 이 사연깊은 참관길에서 뜨거움에 젖어 되새겨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사적지들을 원상대로 꾸려놓고 새세대들에게 수령님께서 어떤 곳에 계시면서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력사상 처음으로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은 기적을 창조하시였는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룡포혁명사적지가 위치하고있는 곳은 주변산들에 잣나무, 소나무, 전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있고 인골천의 물소리만 들려오는 한적한 산골이다.

룡포혁명사적관 관장 박춘화동무는 우리를 안내하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떻게 되여 1951년 4월 전선이 가까운 이처럼 외지고 험한 막바지골에까지 오시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당시 적들은 거듭되는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지상전선에서의 공격과 함께 해안상륙작전을 획책하고있었다.놈들의 이러한 기도를 간파하시고 이미 해안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산지구해안방어임무를 수행하고있는 이곳 인민군부대를 찾아 멀고 험한 화선천리길에 오르시여 이렇게 외진 산골에까지 오신것이였다.

2018년 7월 룡포혁명사적지를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주변의 풍치수려한 산발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며 정말 산골은 산골이라고, 이렇게 깊은 산골에도 전승을 안아오기 위하여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가 깊이 새겨져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절로 뜨거워진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그이의 말씀을 되새기느라니 무성한 숲, 청고운 새들의 지저귐소리, 골짜기에서 조잘대며 흘러내리는 맑은 개울물, 이 모든 산골풍경이 전화의 불비속을 헤치시며 전사들을 찾아 이곳에 오시여 승리의 신심을 북돋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불러왔다.

잠시후 혁명사적표식비앞에서 걸음을 멈춘 우리에게 관장은 이곳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차를 멈춰세우시고 개울물을 건느신 곳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날은 4월이라고 하지만 아직 룡포리의 산발마다에는 흰눈이 그대로 쌓여있었고 며칠째 내리는 봄비와 눈석임물로 하여 개울물이 불어나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건너갈수 없었습니다.그때 수원들이 차길을 마련하려고 서두르는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만류하시며 미국놈들과 싸우고있는 전사들을 찾아가는데 내물을 한번 건는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고 하시며 캄캄한 어둠속에서 장화를 벗고 개울물을 건느시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는 생각이 깊어졌다.

빼앗긴 조국을 찾아주시느라 허리치는 백두의 찬눈길을 그렇게도 많이 걷고걸으신 우리 수령님께서 전화의 그날에는 포연탄우속을 헤쳐오시여서도 산골의 차디찬 개울물까지 건느시였으니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위해 그이께서 바치신 로고를 정녕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마치 사연깊은 그날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듯 격정으로 가슴을 들먹이는 우리에게 책임강사 전경춘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4월 28일 부대의 장병들을 만나주실 때였다.

감격과 환희의 세찬 물결속에 그만 질서있게 정렬하였던 대오가 흩어지고 전사들은 저마끔 수령님을 가까이에서 뵙자고 몰려왔으며 키돋움을 하다 못해 어떤 전사들은 돌을 고여놓고 그우에 올라서기도 하고 지어 주변의 소나무우에까지 오르는 대원들도 있었다.

당황해난 지휘관들이 손짓, 눈짓을 해가며 대오를 수습하려고 어쩔바를 몰라할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냥 놔두라고, 전사들이 자기 최고사령관을 보겠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겠는가고 하시며 전사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다로 기여드는 적들을 해상과 해안에서 결정적으로 포위소멸함으로써 적들의 상륙기도를 완전히 파탄시킬수 있는 주체적인 해안방어전법을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해안방어진지들을 갱도화하고 모든 력량과 기재들을 해안연선가까이에 이동배치해서 강력한 화력망을 조성할데 대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부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하기에 룡포혁명사적지를 찾으시였던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을 높이 드시고 연설하시는 력사적인 사진문헌이 바로 여기에서 남기신것이라고, 그날 수령님께서 하신 연설내용은 참으로 심오하고 유명한 가르치심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장병들앞에서 연설하실 때 적비행기가 나타났지만 수령님께서는 태연자약하게 연설을 마지막까지 계속하시였다고 하는데 그 사실만 놓고서도 우리 수령님의 담력과 배짱에 대하여 잘 알수 있다고, 참관자들이 연설터에 깃든 혁명사적에 대한 해설을 듣게 되면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하여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해할것이라고 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그 어느 나라 력사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전승업적을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가야 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 이 고귀한 가르치심을 받아안던 영광의 그날이 어려오는듯 책임강사 전경춘동무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그득히 고여있었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에 오시여 리용하신 사적물들앞에서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 오시여 수수한 농촌집에서 류숙하시면서 그지없이 소박한 밥상과 밥사발, 국사발, 접시를 비롯한 집기류들을 리용하시였다고 한다.

더우기 그이께서 리용하신 이불은 보면 볼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겸허하고 소탈한 위인적풍모가 더욱 가슴뜨겁게 안겨오게 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하많은 사연을 전하는 혁명사적물들을 보아주시면서 이것만 보아도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검소하게 생활하시였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다고, 세상에는 우리 수령님처럼 언제나 인민들과 꼭같이 생활하시면서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령장, 참다운 인민의 수령은 없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뜻깊은 말씀을 되새기느라니 위대한 수령님의 친근한 모습, 우렁우렁한 음성, 열화같은 조국애가 가슴속에 숭엄히 어리여오고 력사의 증견자마냥 키높이 자란 푸른 소나무도 영광의 땅에 수놓아진 귀중한 혁명사적들을 길이 전하며 솨솨 설레이고있는듯싶었다.

그렇다.불세출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군사적예지와 억센 담력과 배짱앞에서 미제와 추종세력들은 무주고혼의 신세를 면할수 없었으며 마침내 무릎을 꿇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월은 흐르고흘러 이 땅우에 뜻깊은 전승 73돐이 다가오고있다.

절세위인을 모셔야 인민의 존엄을 지키고 행복을 꽃피우며 언제나 승리한다는 철의 진리는 또 한분의 희세의 령장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높이 모신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가슴속에 억척의 암반처럼 더욱 굳게 자리잡고있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계시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은 천만년 길이 빛나리라는 확신을 안고 이곳을 떠나는 우리의 마음은 형언할수 없는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룡포리!

실로 숭고한 업적과 위대한 력사를 안고있는 사연깊은 고장이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를 펼치고 : 위대한 령장의 화선천리길

2026년 7월 22일《로동신문》

 

전승의 축포가 오른 때로부터 어느덧 70여년이 흘렀다.

세월은 모든것을 망각속에 묻는다지만 위대한 전승에 대한 우리 인민의 추억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만진다.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빛나는 승리에 대한 우리 인민의 추억은 단순히 승리에 대한 감회만이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전승을 안아오시고 주체조선의 영원한 승리전통을 마련해주신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이며 언제나 백전백승을 떨쳐갈 우리 조국에 대한 굳은 믿음이다.

주체적이며 독창적인 군사사상과 전략전술, 인민군장병들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보병총으로 원자탄을 이기는 세계전쟁사에 특기할 기적을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위하여 불비쏟아지는 전선길을 끝없이 이어가시며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령장의 그 업적은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세차게 격동시킨다.지금 우리 인민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몸의 위험도 무릅쓰시고 이어가신 화선천리길을 뜨거운 격정속에 숭엄히 되새겨보며 승리의 7.27을 안아올린 위대한 힘에 대하여 다시금 절감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고한 시련의 길을 헤치시며 안아오신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빛나는 승리와 우리 군대와 인민이 발휘한 1950년대 투쟁정신을 영원히 잊지 말고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오늘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의 사적물앞에서 쉬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리용하신 승용차,

전화의 포연이 그대로 슴배여있는듯싶은 승용차앞에 서면 아츠럽게 울리던 폭음이며 적의 기총사격소리가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수수한 승용차를 타시고 우리 수령님께서 헤치신 포연탄우속은 그 얼마이던가.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몸의 위험도 무릅쓰시고 화선천리길을 달려 광주에까지 나가시였던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감동깊이 서술되여있다.

1950년 8월 10일,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에서 작전토의를 마치시고 전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수안보에로의 전선시찰의 길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일행이 충주계선에 이르렀을 때였다.갑자기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적기들이 나타났다.

승용차로 내리꽂히는 적기들, 어지럽게 울리는 폭음과 기총사격소리, 삽시에 삼단같은 불길과 화약내로 뒤덮이는 도로와 숲…

참으로 위험한 순간이였다.

폭격이 점점 더 심해져 파편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 가까이까지 날아왔으나 그이께서는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대피를 지휘하시였다.

적비행기들이 사라지자 수행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더는 이런 위험한 길을 다니시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을 쏟으며 말씀드리였다.

그러는 수행성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시며 그러나 전선에서 싸우는 전투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는데 최고사령관이 어떻게 사무실에만 앉아있겠는가고, 위험하더라도 우리가 전선에 나가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을 고무해주면 그만큼 전쟁승리의 날이 앞당겨지게 된다고 하시면서 전쟁이 승리한 다음 우리가 준엄했던 이 난국을 어떻게 이겨내고 미제침략자들을 어떻게 때려부셨는가를 긍지높이 추억하자고, 승리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또 떠나자고 자신의 절절한 심중을 터놓으시였다.

사선의 고비를 넘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수안보에 도착하시였을 때는 늦은저녁이였다.그길로 잠시의 휴식도 없이 작전회의를 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종작전임무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며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 지휘성원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총매진할것을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잠시후 전선사령부의 일군들과 수행원들은 놀라운 사실에 접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밤으로 또다시 광주에로의 전선시찰을 떠나려고 하시였던것이다.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광주일대는 아직도 반동들의 준동이 심하다고, 최고사령관동지의 신변안전이 걱정된다고, 절대로 가시면 안된다고 그이의 전선길을 거듭 만류해나섰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타깝게 간청하는 그들에게 일없다고, 놈들의 준동이 있다고 해도 갈길은 가야 한다고 하시며 길을 떠나시였다.

위험한 전선길을 떠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히였다.

력사에는 전쟁을 지휘한 군사령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지만 우리 수령님과 같이 최고사령관으로서 폭탄이 우박치는 최전선길들을 헤치시며 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불러일으키신 그런 령도자가 과연 있었던가.

수안보를 떠나신 그이께서는 대전시에서 해방지역의 여러 사업을 지도하시고 8월 11일 아침녘에 광주시에 도착하시였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쌓인 로고를 푸실 사이도 없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주시에 있는 제26해안방어려단 지휘부를 찾으시였다.

이곳 부대의 한 일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위대한 수령님께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멀고도 위험한 곳까지 나오시였는가고, 신변이 걱정된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를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일제놈들과 싸울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때 우리는 대원 몇명을 데리고 걸어서 만주에서부터 온성에도 가고 신흥에도 나오군 했는데 지금이야 차를 타고 큰길로 다니는것이 무슨 고생이고 위험인가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전선길은 이렇듯 결사의 각오로 헤치신 위험천만한 사선의 고비고비였고 불면불휴의 행로였다.

정녕 가렬했던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이어가신 화선천리길은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멸적의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이 땅우에 전승의 날을 앞당겨온 승리의 길이였다.

포화속의 전선길을 이어가시며 인민군전사들에게 다심한 사랑과 은정을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

위대한 전승에 대한 우리의 추억은 인민군전사들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불같은 사랑으로 하여 그토록 뜨거운것 아니던가.

최고사령관과 병사,

이 말을 외울 때면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가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눈물겹게 되새겨진다.

1951년 9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2군단 지휘부가 자리잡고있는 전선일대에 나오시였다.

그때 군단장인 최현동지는 너무도 당황하여 인사말도 잊고 이렇게 위험한 전연지대에까지 나오시면 어떻게 하시는가고 목메여 웨치였다.

1211고지가 지척인 이곳은 적들의 집중사격구역이여서 군인들과 전선원호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출입도 불허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내가 위험한 최전선에까지 나왔다고 근심하는데 우리 전사들이 원쑤들과 싸우고있는 곳인데 왜 나라고 오지 못하겠는가고, 우리 전사들이 싸우고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위험하여도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최현동지에게 우리가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언제한번 이런 곳을 위험하다고 한적이 있었는가고, 그때 우리는 항상 적을 뒤에 달고다니면서도 혁명동지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데를 막론하고 그들을 찾아다니지 않았는가고 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군인들에 대한 생각이 꽉 차있었다.그이께서는 어서빨리 군인들이 싸우고있는 1211고지가 바라보이는 고지로 가자고 하시며 차에 오르려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최현동지는 위험한 적정에 대하여 보고올리면서 먼저 군단지휘부에 들리실것을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이곳까지 온 목적은 군인들이 싸우고있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라고, 위험해도 어서 가자고 하시면서 먼저 차에 오르시였다.

가시는 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로가 없어 더는 앞으로 가실수 없게 되자 차가 못가면 걸어서라도 가자고 하시며 몸소 무성한 숲을 앞장에서 헤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포연속을 뚫고 헤쳐가신 화선길우에 새겨진 감동깊은 이야기들은 정녕 그 얼마이던가.

인민군전투원들이 피흘려 싸운 문경고개에 오르시여 그들이 발휘한 위훈과 업적을 조국과 인민은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값높이 내세워주신 사실, 멀고 험한 길을 헤쳐가시여 전사들과 함께 오락회도 하신 이야기, 머나먼 화선휴양소를 몸소 찾으시여 우리가 화선휴양소를 내온것은 세상에 없는것을 새롭게 창조하자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군인 한사람한사람이 더없이 귀중하기때문이라고 하시며 휴양생들에게 친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신 사연…

참으로 자애로운 어버이의 따사로운 손길은 우리 인민군군인들모두를 불사신의 영웅으로 키운 자양분이였고 위대한 승리를 안아온 원동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화선천리길, 그 자욱자욱이야말로 그 어느 나라 령도자도 걸어보지 못한 필승의 신념과 의지,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이어진 길,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사랑,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심으로 빛나는 승리의 길이였음을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는 가슴뜨겁게 전하고있다.

사생결단의 전선길을 헤치시며 위대한 전승을 안아오신 강철의 령장의 영원불멸할 업적을 우리 인민은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한다.

주체조선의 승리의 력사는 오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빛나게 이어지고있다.

강인담대한 배짱과 천리혜안의 선견지명, 비범한 령도력으로 우리 국가의 존엄과 위용을 최고의 경지에서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불세출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높이 모시여 우리 조국은 승리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강대하고 존엄높은 국가로 영원히 빛을 뿌릴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세기와 더불어 강렬해지는 그리움, 충성과 애국의 열망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온 나라 인민들 가장 경건히 추모

2026년 7월 9일《로동신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서거 32돐에 즈음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은 혁명의 대성인이시며 존엄높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어버이수령님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하였다.

위대한 당중앙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면적국가부흥의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성스러운 려정에서 절세위인의 고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여갈 천만인민의 충성과 애국의 열망이 더욱 세차게 분출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주체혁명위업의 승리적전진과 완성을 위한 만년초석을 마련하신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며 주체의 태양이시다.》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최대의 추모의 날인 8일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자욱이 뜨겁게 어리여있는 북방의 철의 기지, 황남의 전야와 외진 섬마을에 이르는 방방곡곡의 각급 기관, 공장, 기업소, 농장, 대학을 비롯한 모든 단위들에 조기가 띄워져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그리움의 대하가 끝없이 흘렀다.

절세위인들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을 안고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 들어선 근로자들과 인민군장병들, 청소년학생들은 탁월한 사상과 령도, 불멸의 애국헌신으로 자주강국의 새 력사를 개척하시고 조국번영의 만년토대를 굳건히 다져주신 혁명의 대성인들을 우러러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였다.

만수대언덕을 비롯한 각지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과 절세위인들의 영상을 모신 모자이크벽화를 찾아 군중들은 영생축원의 꽃바구니와 꽃다발, 꽃송이들을 진정하였다.

전국의 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 인민군군인들, 청소년학생들이 일터와 초소, 가정들에서 기록영화 《만민이 우러러 칭송하는 우리 수령님》, 《어버이수령님 농업근로자들과 함께 계시여》, 《자력으로 승리떨쳐온 빛나는 력사》를 시청하였다.

혁명령도의 전 기간 주체의 기치를 추켜드시고 사회주의위업, 인류자주위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을 기록영화들은 숭엄한 서사시적화폭으로 펼쳐보이였다.

기록영화들은 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하시려고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농장길, 포전길을 쉬임없이 걷고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더해주었다.

절세의 애국자의 거룩한 한평생을 뜨거운 격정속에 되새겨주는 기록영화들을 보면서 천만인민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수령으로 모시고 혁명하여왔는가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각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만고불후의 업적을 칭송하는 덕성발표모임과 덕성이야기모임이 있었다.

모임들에서 출연자들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간직하시고 언제나 인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의 려정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격찬하였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당 제9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장엄한 총진군길에서 백배의 분발심과 완강한 실천력을 발휘하여 혁명의 새 승리를 앞당겨나갈 철석의 의지를 가다듬었다.(전문 보기)

 

[Korea Info]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시였다

2026년 7월 8일《로동신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서거 32돐에 즈음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이민위천, 부국강병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우리 당과 국가를 참다운 인민의 당, 진정한 인민의 나라로 일떠세우시였으며 자주, 자립, 자위로 승승장구하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만년기틀을 다져주신 희세의 대성인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경모심에 넘쳐있다.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최대의 추모의 날인 7월 8일 0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시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을 비롯한 당과 정부의 지도간부들과 당중앙위원회 일군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위원회, 성 책임일군들, 무력기관의 지휘성원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립상에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참가자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립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시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영생홀들을 찾으시여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영생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리시였다.

전체 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의 완수를 위하여, 우리 당과 국가, 인민의 무궁한 존엄과 영광을 위하여 새시대 거창한 변혁투쟁의 전위에서 더욱 견결히, 더욱 과감히 분투해나갈 엄숙한 의지를 가다듬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수령님께서 쌓으신 만고불멸할 업적이 있어 부강번영하는 우리 조국의 오늘이 있다

2026년 7월 8일《로동신문》

 

위대한 수령님께서 쌓으신 만고불멸할 업적이 있어
부강번영하는 우리 조국의 오늘이 있다

 

 

[Korea Info]

 

위대한 수령님께서 쌓으신 만고불멸할 업적이 있어 부강번영하는 우리 조국의 오늘이 있다  100년, 200년앞을 내다보신 위인중의 위인

2026년 7월 8일《로동신문》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시며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가장 걸출한 수령, 불세출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우리 혁명이 중첩되는 시련의 언덕을 넘어 전면적국가부흥의 장엄한 새 전기를 열어나가고있는 지금 천만인민은 조국의 100년, 200년미래를 내다보시며 후손만대의 행복과 번영을 담보하는 억척의 기틀을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선견지명을 지니신 위인중의 위인이십니다.》

예로부터 예지는 위인의 등불이라고 일러왔다.

모든것이 변하고 진보하는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절대적인 생명력을 안고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통찰력과 탁월한 선견지명의 세계에 대하여 돌이켜볼 때마다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하늘이 낸 위인, 인류의 대성인이시라는 생각으로 마음숭엄해짐을 금할수 없다.

국가와 인민의 장래를 가장 과학적으로, 정확히 내다보시는 비범한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성스러운 책임감, 특출한 정치실력을 지니시고 우리 조국의 백년대계를 세워 완강하게 실천하여오신 위대한 수령님,

력사의 모진 광풍속에서도 사회주의의 한길로 승승장구해나가는 조국의 강용한 기상을 안아볼 때면 우리 인민을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억세게 키워준 주체사상의 빛발이 어려오고 이 땅우에 주체의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사무쳐와 격정을 금치 못하는 우리 인민이다.

일찌기 혁명의 개척기에 조선혁명의 진로를 명시하시고 장구하고도 간고한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길에서 당건설과 국가건설, 군대강화, 인간개조와 사회변혁에 이르는 모든 령역에서의 사상리론적지침들, 투쟁원칙과 방법론들을 확립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다.

우리가 더더욱 경탄하게 되는것은 그이께서 밝혀주신 모든것이 백과전서적일뿐 아니라 하나하나가 완전무결하고 우리 혁명의 휘황한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영구불멸의 만년기틀이라는것이다.

오늘도 전국도처에서 증산의 힘찬 동음을 울리는 무수한 공장들과 새 생활에 대한 자신심에 넘쳐있는 인민의 긍지로운 모습을 대할 때면 새 조국건설의 숨결 드높던 70여년전 3월의 어느한 회의장에로 마음 달려간다.

1947년 3월 어느날 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지 않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려는것은 모래우에 루각을 세우려는것과 같은것이며 결국 그것은 하나의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락후하고 뒤떨어진 식민지경제를 물려받은 우리 나라에서 자립경제를 일떠세울 용단을 내린다는것은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할수 없는것이였다.

하지만 이길만이 피로써 찾은 조국땅우에 만년터전을 다지고 후손만대의 번영을 담보할수 있는 길이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장구한 혁명령도의 전 기간 자립경제건설로선을 일관하게 고수하고 견지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천리혜안의 선견지명과 비범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어찌 이뿐이랴.

1950년대의 위대한 전승사를 돌이켜보아도 사람들을 끝없는 격동에 휩싸이게 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도 아로새겨져있는것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이 가렬하게 벌어지던 준엄한 시기에 벌써 승리할 래일을 내다보시고 전선에서 싸우던 대학생들을 소환하여 학업을 계속하도록 하시고 류학도 보내주신 이야기를 우리 인민은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떠메고나가는데서 한몫 단단히 하게 될 국가과학원을 새로 내오도록 하신 사실,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설계일군들이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하도록 하신 이야기, 서해안의 간석지와 북부고산지대를 개발하기 위한 사업의 첫걸음을 떼여주신 사연을 비롯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렬한 포화속에서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시고 중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기에 우리 인민은 전쟁이 끝나자 곧 전후복구건설을 시작할수 있었고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갈수 있은것 아니던가.

혁명은 수출할수도 없고 수입할수도 없다고 하신 그이의 유명한 명제는 자기 나라 혁명은 자기가 책임지고 자체의 힘으로 수행하여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로 오늘도 우리 인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하고있으며 공산주의는 인민정권에 3대혁명을 더한것이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되새길 때면 우리 수령님은 정말 혁명의 먼 앞날까지 내다보신 불세출의 위인이시라는 격정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과학축산의 불바람이 세차게 일어번지는 목장과 방목지들에 가면 고기문제를 풀자면 알곡먹이대신 풀을 리용하여 집짐승을 길러야 한다는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듯싶다.

아이들의 글소리 랑랑한 학교들에 가보아도 우리 조국의 무궁한 미래를 위하여 일찌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작성하실 때 벌써 의무적인 면비교육을 실시할데 대한 사상을 담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이 숭엄히 어려온다.

고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나날까지도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시여 사회주의경제건설의 휘황한 전망을 열어주시며 조국의 부강번영할 앞날을 위해, 찬란한 미래를 위해 끝없이 헌신하시였으니 정녕 우리 수령님은 얼마나 위대한분이신가.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다보신 조국의 미래속에, 이 땅의 후손들에게 안겨주신 다함없는 축복속에 살고있으며 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부흥과 번영의 토대를 밑천으로 하여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의 장엄한 려정을 개척해나가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한 령도아래 조국의 방방곡곡에 펼쳐지고있는 눈부신 현실을 가슴뿌듯이 안아볼 때마다 어버이수령님 따라 걸어온 길에 대한 긍지와 자부, 보다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필생의 강국념원을 반드시 실현하려는 불같은 맹세로 혁명열, 투쟁열을 끝없이 배가하고있는 우리 인민이다.

우리 인민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펼쳐주신 우리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향해 굴함없이 나아갈것이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이 땅에 부흥강대한 사회주의강국을 기어이 일떠세울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고귀한 가르치심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것을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크나큰 긍지로 간직하여야 한다

2026년 7월 7일《로동신문》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현명한 령도따라 눈부신 기적과 변혁의 력사를 수놓으며 주체혁명의 새로운 진군길을 줄기차게 이어나가는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언제 어느때나 영원불멸할 신조로 간직되여있는 고귀한 가르치심이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셔야 합니다.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우리 수령님을 모신것을 자랑으로, 긍지로 간직하여야 합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이 고귀한 가르치심에는 한평생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여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만년기틀을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감정이 뜨겁게 담겨져있다.

혁명하는 인민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은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시는것이다.수령이 위대하면 당도 위대하고 인민도 위대하며 국가도 강대해지는 법이다.

우리 인민이 반만년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시여 우리 인민에게 생명과도 같은 자주적존엄을 되찾아주시고 이 땅우에 자주, 자립, 자위의 국가를 일떠세우신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

사회주의조선의 시조, 이 성스러운 부름에 만고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만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할 업적이 뜨겁게 응축되여있다.

세계지도에서 영영 자기의 존재가치를 잃을번했던 우리 조국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오늘과 같은 력사적인 전환을 이룩하게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시였기때문이다.

항일의 눈보라만리,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일제에게 빼앗겼던 나라를 찾아주신 절세의 애국자, 해방의 은인이시고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대참패를 안기시고 세계전쟁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기적을 이룩하신 인민의 운명의 수호자,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락후와 빈궁이 지배하던 땅에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신 걸출한 정치가, 탁월한 령도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업적을 우리 어찌 천만년세월이 흐른들 잊을수 있으랴.

진정 이 땅의 모든 귀중한것들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쳐오신 사색과 심혈, 로고가 깃들어있으며 그 하나하나는 수령님께서 처음부터 새롭게 개척하시고 완성해놓으신 사회주의의 본보기이고 우리 인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한없이 귀중한 재부이다.

력사에는 나라와 민족의 시원을 열어놓은 건국시조들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수많이 전해지고있다.인류의 자주위업수행에 불멸의 공헌을 한 위인들의 업적에 대하여서도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우리 수령님처럼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원해주시였을뿐 아니라 인민이 자손만대 복락할 존엄있고 강력한 나라, 인류가 리상으로만 그려오던 참다운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워 고귀한 유산으로 물려주신 그렇듯 걸출한 위인, 만고의 은인은 없었다.하기에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높이 받들며 그이를 모신 최대의 행운과 크나큰 긍지를 가슴뜨겁게 노래하고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고귀한 가르치심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길이 빛내여야 하며 수령님께서 바라시던 뜻대로 우리 조국을 온 세계가 우러러보는 사회주의강국으로 전변시켜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맥박치고있다.

오늘 우리 조국이 최강의 군력을 갖추고 전체 인민이 떨쳐나 번영하는 사회주의락원을 눈부시게 일떠세우는것은 결코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준 우연이 아니다.

세인을 경탄시키며 이 땅우에 끝없이 펼쳐지는 모든 눈부신 현실들에는 바로 사회주의국가건설의 새 기원을 열어놓으시고 강국건설의 만년기틀을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초석처럼 놓여있다.

우리 혁명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여주신것이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우리 인민에게 드놀지 않는 신념을 주고 필승의 락관을 배가해주는 우리 혁명의 고귀한 전통도 수령님께서 항일의 혈전만리, 전화의 불길만리를 헤치시며 마련해주신 백승의 전통, 영원한 조선의 정신이다.

인류해방투쟁사에 빛나는 본보기로 아로새겨진 두차례의 혁명전쟁과 여러 단계의 거창한 사회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신 고귀한 투쟁경험들,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우리 인민의 근본요구를 반영하여 세우신 모든 정책들과 로선들, 억만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귀중한 가르치심들은 오늘도 우리 혁명의 줄기찬 전진에 무한한 생명력을 부어주고있다.

당대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먼 후날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길이길이 찬양하는 위인의 업적은 국가와 인민의 장래발전을 통찰하는 원대한 안광과 미래에 대한 성스러운 책임감에 의하여 이룩되는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경축 열병식의 높은 연단에서 조선혁명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치시며 민족자주의 새 기원을 열어놓으시고 나라의 강성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담보하는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성스러운 혁명실록과 불멸의 업적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신것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로선과 정책들은 우리 후대들이 걸어갈 길에 영원한 디딤돌을 고여주고 필승불패의 만년기틀을 마련해준 고귀한 사상정신적재보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다》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과 새해를 맞으며 하신 신년사들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하여, 조국청사와 인류자주위업수행에 길이 빛날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생애와 업적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하여 이 땅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업적이 대를 이어 빛을 뿌리는 수령영생의 숭고한 장이 펼쳐지게 되였으며 우리 수령님의 거룩한 영상이 인민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더욱 숭엄히 자리잡게 되였다.

오늘 우리 인민은 누구나 김일성조선의 공민이 된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열어주신 주체의 길, 사회주의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불후의 업적을 빛내여나가려는것은 조국방선을 지켜선 인민군장병들과 기간공업부문의 로동계급들, 사회주의전야를 지켜선 농업근로자들, 혁명의 계승자인 청년들을 비롯한 이 땅에 생을 둔 누구나의 한결같은 지향으로 되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계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위업이 굳건히 고수되고 이 땅우에 반드시 천하제일락원이 일떠서게 되리라는 우리 인민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다.

우리 인민은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것을 크나큰 자랑으로, 긍지로 간직하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광명한 미래를 향하여 더욱 억세게 전진해나아갈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에 해외동포조직, 단체들과 외국의 단체, 인사, 재중동포들이 꽃바구니를 보내여왔다

2026년 7월 7일《로동신문》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에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32돐에 즈음하여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일본조선상공련합회 상임리사회, 재중조선경제인련합회,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재중조선인청년협회, 재일본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재중조선인녀성협회, 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중국 단동시조선족련합회, 단동시조선족총상회가 꽃바구니들을 보내여왔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에 6일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꽃바구니들의 댕기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영생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라는 글발이 모셔져있었다.

한편 이날 총련 조선대학교 졸업학년학생조국방문단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 *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동상에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32돐에 즈음하여 외국의 단체, 인사, 재중동포들이 꽃바구니들을 보내여왔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에 6일 김일성김정일기금 중국 단동시 태양궁전영생기원회, 김일성김정일기금리사회 부리사장 새철군, 리사 김선, 명예리사 구수파, 구견량, 기금 회원 최동군, 왕수려, 가덕승, 성숙봉, 리발인, 양지성, 번사도, 범명해, 최염, 국덕리, 고풍림, 려량, 중국 료녕예달물류유한공사 총경리 당예명과 중국 길림성연변동윤흥상무무역유한공사 사장 혁룡, 길림성연길부흥수출입무역유한공사 사장 조덕춘, 홍콩향통첩달국제무역유한공사 총경리 한기수, 단동유산수출입무역유한공사 경리 전원쌍, 재중항일혁명투쟁연고자 황백하가족, 재중조선인총련합회 부의장 김영녀, 재중조선경제인련합회 위원 리설희, 회원 김일남, 림선화, 재중동포 최수진가족, 중국 단동시조선족련합회 명예회장 겸 료녕조전문화발전유한공사 동사장 심청송, 총회장 겸 단동중국국제려행사 동사장 전순희, 료녕신성실업유한공사 동사장 표성룡, 심양시조선족련의회 회장 길경갑, 료양시조선족련의회 회장 리림, 영구성풍물류유한공사 총경리 최규철, 최옥희부부, 단동회흥경제무역유한공사 리사장 박산호, 도문시삼천대외경제무역유한공사 총경리 김상화, 강산유한회사 총사장 리황, 부사장 리길, 심양성달실업유한공사 총경리 성백도, 료녕성소백수문화전파유한공사 총경리 최걸, 연변전래상업무역유한공사 총경리 마매화, 심양조경생물과학기술유한공사 총경리 조숙진일행, 단동보림무역유한공사 총경리 리향단, 심양청평무역유한공사 총경리 김철, 료녕화려실업유한공사 경리 박치헌, 연변북두무역유한공사 총경리 박광현, 단동순성무역유한공사 총경리 계애순, 준성세가관리자문(베이징)유한공사 총경리 로영철, 천진구강상무유한공사 대표 안평남, 훈춘영동수출입유한공사 총경리 김동련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꽃바구니들의 댕기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영생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립니다》라는 글발이 모셔져있었다.

한편 이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찾아 김일성김정일기금리사회 리사 최동문과 평양과학기술대학 공동운영부학장 최룡호가 꽃바구니들을 진정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덕의 대성인, 세계가 매혹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숭고한 덕망이 꽃피운 감동깊은 사연들을 뜨겁게 되새기며

2026년 7월 6일《로동신문》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속에 7월의 날과 날이 흐르고있다.

우리 인민이 뜻밖에 대국상을 당한 그날로부터 어느덧 서른두돌기의 년륜이 새겨지였지만 세계의 곳곳마다에서는 우리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칭송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려나오고있다.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을 위한 해방투쟁의 력사적전환점을 마련하신 세계적인 정치원로이실뿐 아니라 한없이 너그럽고 자애에 넘친 인품과 넓은 도량을 지니시고 진보적인류를 따뜻이 품어주신 만민의 어버이 우리 수령님에 대한 뜨거운 경모와 다함없는 매혹의 감정은 세기와 년대를 넘어 끝없이 이어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대해같은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닌 성인이시였다.》

도량과 포옹력은 참다운 인간애의 중요한 표현이다.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을 충분히 헤아려주고 한품에 너그럽게 안아주는 도량과 포옹력을 지닌 위인은 참다운 인간애의 체현자라고 할수 있다.

세계가 그토록 경모하고 칭송하며 절절히 그리는 위대한 수령님, 그이는 력사의 그 어느 위인과도 비길수 없는 가장 숭고한 덕망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만민을 품어안아 보살펴주신 인덕의 대성인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후부터 위대한 혁명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136개 나라의 7만여명에 달하는 외국인들을 만나주시였다.

그들가운데는 여러 나라 당과 국가의 수반급인물들로부터 시작하여 각이한 국적과 정견, 각이한 직무와 나이를 가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 있었으니 정녕 열화같은 사랑과 인덕의 힘으로 끌어당기는 절세위인의 품으로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국의 인사들을 만나실적마다 가까운 벗이 되여 우정을 나눌것을 약속하시였고 다시 만나시면 구면친구라고 다정히 불러주시며 뉴대를 두터이 하시였다.

온 세계가 오늘도 경탄해마지 않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덕망에 대한 하많은 사실들가운데는 그이께서 중국의 주은래총리에게 부어주신 열화같은 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은래총리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20여년간 수없이 만나주시며 우정을 두터이 하신 외국인들중의 한사람이다.

그런 주은래총리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불치의 병으로 수술을 받을 때에는 찾아가시여 따뜻이 위로해주시였다.1975년 4월에는 그가 치료를 받고있는 병원에까지 찾아가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전세계가 주은래동지의 병에 대하여 관심을 돌리고있는데 빨리 치료를 잘할데 대하여 따뜻하게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시는 혁명적우애와 고매한 인덕에 감복한 주은래총리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수령님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세계혁명문제는 앞으로도 세계정치의 공인된 령도자이신 김일성동지의 지도를 받아야만 옳게 해결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일성동지께서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세계혁명을 이끌어주실것을 바랍니다.》

주은래총리는 우리 수령님보다 나이도 14살이나 우인 오랜 혁명가였고 세계적으로 공인된 탁월한 정치활동가였다.하지만 나이나 혁명년한을 초월하여 천하를 감복시키시는 우리 수령님의 인덕에 완전히 매혹되였기에 림종을 앞두고 이런 진심어린 부탁을 남긴것 아니랴.

덕행의 기념비는 피라미드보다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그 누구든 한번 만나뵙기만 하면 그 환한 미소에 반하고 인격에 매혹되며 그 위대한 사상을 따르고 고매한 풍모에 허리굽히게 되는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위인중의 위인, 인덕의 대성인이시였다.

외국의 한 학자가 자식을 보지 못한 마음속고충을 안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친히 신선로와 인삼탕을 보내주시였고 또 언제인가는 어느한 나라의 항쟁투사가 대통령이 된것이 기쁘시여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금시계를 채워주시고 사람들앞에 의젓하게 차리고 나서라고 고급양복천까지 마련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캄보쟈의 노로돔 시하누크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그에 대한 인간적인 뉴대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고 오히려 더 따뜻이 대해주시며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고 아낌없는 방조도 주시였다.

언제인가 아프리카의 어느한 나라 대통령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기 위해 평양으로 달려왔다.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고 존엄높은 사회주의국가를 일떠세우신 자주시대의 정치원로이신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새 사회건설과 관련한 귀중한 경험을 배우고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그를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주독립국가건설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비범한 예지로 자주적발전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면서도 서로 배우며 손잡고나가자고 허심하게 이야기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겸허하신 인품에 대통령은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 모르게 마음이 끌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존심이 높고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던 그였지만 어버이수령님의 인품에 매혹되여 대통령은 우리 수령님을 맏형님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며 따르고 존경하였다.

우리 수령님의 하늘같은 덕망에 끌린 사람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윁남의 호지명주석,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대통령, 유고슬라비아의 찌또대통령을 비롯하여 세계의 수많은 당 및 국가수반들, 유명무명의 인사들이 그러하였다.

참된 인간사랑의 화원을 찾아 모대기던 외국의 한 인사는 육친의 정으로 따뜻이 안아주시고 마음속고충까지도 헤아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인덕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친아버지를 모르는 저에게 있어서 참다운 생명의 아버지는 주석각하이십니다.》라고 격정을 터놓았고 절세위인의 고결한 인정미에 매혹된 서방의 녀류작가는 《나는 주석님을 받들다 죽겠습니다.》라고 자기의 마음속진정을 토로하였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인간적풍모와 덕망은 하늘도 울릴 숭고하고도 열화같은것이여서 각계각층 외국의 벗들과 이름있는 정치가들까지도 우리 수령님을 공식적인 부름이 아니라 동지, 형님, 아버님, 할아버님 등으로 스스럼없이 부르며 따랐으며 운명과 미래까지도 의탁하였다.

온 누리에 넘치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덕망은 외국의 저명한 인사들뿐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미치였으니 그를 전하는 하많은 사실들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1965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시던 나날 당시 우리 나라 주재 인도네시아공화국 림시대리대사를 알게 되시였다.

평양으로 돌아온 그는 얼마후 귀여운 딸을 보게 되였는데 세계가 우러러보는 조선에서 첫 자식을 본 그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 딸의 이름을 지어주셨으면 하는 소원이 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헤아려 딸의 이름을 《친선녀 모란》이라고 지어주시고 몸소 그 이름을 적은 친서도 보내주시였다.

너무도 크나큰 감격으로 하여 그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흔히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은 망각을 동반한다고 한다.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바뀌여도 지워지지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신 하늘같은 덕망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모란의 가슴속에는 자기의 이름을 몸소 지어주시고 크나큰 사랑을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고마움이 가득찼다.하여 모란은 위대한 수령님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 건강과 안녕을 축원하는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한 인도네시아처녀가 삼가 올린 편지와 사진을 친히 보아주시고 은정어린 회답친서를 보내주시였다.그후 모란이 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서는 무척 반가와하시면서 그에게 결혼선물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또다시 베풀어주시였다.

그 사랑, 그 은정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느 친아버지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숭고하고 뜨거운것이 아니랴.

자연계의 태양은 그 빛과 열이 아무리 밝고 뜨겁다고 하여도 지구상에는 그늘이 있고 동토대가 있다.하지만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덕망의 빛발은 음지가 따로없이 온 누리를 비치였다.

첫 순간에 온넋을 완전히 매혹시키는 열렬한 인간애, 숭고한 인정미는 인민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체현하신 우리 수령님의 특출한 인품이였으니 한없이 뜨거운 인정미와 넓은 도량에 적대관계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머리를 숙이였다.

조선전쟁시기 마카오주둔 뽀르뚜갈군 참모장을 한 뽀르뚜갈 전 대통령 고메스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그를 몸소 만나주시고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대답을 주시였다.

그후 그가 또다시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찬도 함께 하시며 이젠 구면친구로 되였는데 우리 나라에 자주 오라고, 인민을 위하여, 유럽의 자주화를 위하여, 발전도상나라들의 자주화를 위하여 함께 싸워나가자고 하시며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만나뵈올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신비한 친화력에 온넋이 끌린 고메스는 《김일성주석은 인덕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위인이시다.》라고 진정을 고백하였다.

이것이 어찌 그의 심정이라고만 하겠는가.

수많은 외국의 벗들이 폭과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우리 수령님의 대해같은 인덕과 포옹력을 열렬히 격찬하며 그리움의 정을 터치였다.

《참된 인간의 미덕중의 미덕인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것은 오로지 인간사랑을 최상의 경지에서 체현하신
김일성주석께서만이 풍길수 있는 특별한 인간향기였다.》, 《김일성주석의 인간사랑은 우주공간에 끝없이 비쳐가는 해빛마냥 한계를 모르는 사랑, 시공간을 모르는 위대한 사랑이다.》…

인류는 장구한 세월 사랑에 대하여 론의해왔고 력사에는 선정을 베풀었다는 정치가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 력사에도, 그 어느 시대의 갈피에도 인간에 대한 그처럼 뜨겁고도 진실한 사랑을 지니시고 만민을 품어안아 위대한 력사, 위대한 시대를 창조하신 우리 수령님과 같으신 위인은 없었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이야말로 온 인류의 운명과 미래를 맡아안아주고 꽃피워주는 위대한 사랑의 품이였기에 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품으로 물결쳐왔고 가슴속에 차고넘치는 열화의 진정을 담아 진귀한 선물들을 삼가 드린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혁명생애의 전 기간 세계 170여개 나라의 당 및 국가수반들과 단체, 각계인사들과 인민들, 국제기구들로부터 수많은 선물을 받으시였다.놀라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에도 인류의 지성이 변함없이 이어진것이다.이 사실은 정녕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수령으로, 어버이로 모시고 살아왔는가를 웅변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우리 인민들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신다.

우리 조선의 지정학적지위를 근본적으로 개변시키고 세계의 변화발전에 미증유의 공적을 남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고매한 위인상은 우리 인민뿐 아니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영원히 빛을 뿌릴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우리 수령님의 전승령도업적은 동서고금에 있어본적이 없는 특출하고 위대한 업적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돌아보시면서 하신 뜻깊은 가르치심을 되새기며

2026년 7월 3일《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류력사에는 우리 수령님처럼 한평생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고 반제대결전의 최전방에서 특출한 군사전략과 령군술로 백승을 떨쳐온 만고의 령장, 문무를 겸비한 장군형의 수령은 일찌기 없었다.》

이 땅우에 전승의 환희로운 축포가 터져오른 때로부터 어느덧 73년이 되여온다.

73년, 장구한 그 세월과 더불어 우리 조국에서는 참으로 무수한 기적과 전변이 일어났다.순간도 멈춤없이 내닫는 그 세월속에 세기가 바뀌고 세대도 바뀌였다.

허나 조국땅 방방곡곡에 자리잡고있는 전승의 성지들은 70여년전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가렬처절했던 3년간의 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후세토록 길이 전하고있다.

얼마전 우리는 뜻깊은 전승의 성지인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찾았다.10여년전 이곳에 거룩한 자욱을 새기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엄한 전화의 나날 이곳에 최고사령부를 정하고계시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을 령도하시여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타승하고 조국의 운명과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주시였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 대한 참관을 통하여 우리는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우리 수령님의 걸출한 위인상과 위대한 전승업적을 다시금 가슴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반미대전승리의 시원이 열린 전승의 성지

높고낮은 산발과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숨결과 체취가 그대로 슴배여있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찾아가신 그날은 2015년 6월 8일이였다.

이날 사적지에 도착하시여 최고사령부지휘처와 그 주변을 둘러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성스러운 사적지를 옹위하듯 소소리높이 자란 바늘잎나무들과 그 너머의 수려한 산발들을 바라보시며 조국해방전쟁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령도사가 응축되여있고 반미대전승리의 시원이 열린 전승의 성지이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군대와 인민을 이끌고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은것은 결코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지닐수 없는 탁월하고 특출한 령도력, 천리혜안의 지략과 고매한 덕성을 지니시였기때문이라는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에 대한 강사의 해설을 듣는 우리의 생각은 깊어졌다.

나라가 해방된 때로부터 5년, 공화국이 창건된 때로부터 2년도 채 안되였던 그때, 말그대로 신생국가였던 우리 조국에 세계《최강》을 떠들던 미제가 제국주의침략무리를 이끌고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왔던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였던가.

세상사람들은 가렬했던 조국해방전쟁을 보병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 말하고있다.실지로 미제는 전쟁기간 미륙군의 3분의 1, 미공군의 5분의 1, 미태평양함대의 대부분 그리고 많은 추종국가군대를 포함한 200여만의 방대한 무력을 조선전선에 투입하였으며 막대한 군사비를 쏟아부었다.

우리 인민앞에 닥쳐든것은 또다시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목숨걸고 싸워 조국의 촌토를 지켜내느냐 하는 심각한 운명문제였고 해방후 처음으로 겪어야 했던 준엄한 시련이였다.

그러나 우리가 제국주의련합세력을 거꾸러뜨리고 빛나는 승리를 안아올수 있은것은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시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고 전체 인민과 인민군대가 그이의 두리에 굳게 뭉친 불패의 단결이 있었기때문이다.

위대한 전승이 마련된 곳, 우리 수령님께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는 승리의 화살표를 그으시던 최고사령부지휘처앞에 서니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렇듯 수수하고 소박한 집에 계시였다는 생각으로 눈굽이 달아올랐다.

다름아닌 이곳에서 우리 인민의 앞길에 빛나는 승리의 진군로가 펼쳐지고 20세기의 군사적기적이 창조되였음을 더없는 긍지와 무한한 자부속에 가슴깊이 새겨안으며 우리는 참관길을 이어갔다.

우리 수령님은 하늘이 낸분

최고사령부지휘처와 그 주변에는 수십년세월 찾아오는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케 하여온 미제공중비적들의 기총탄자리와 터지지 않은채로 땅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500kg짜리 폭탄이 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 불발탄을 바라보시며 저 폭탄이 터졌더라면 큰일이 날번 했다고, 우리 수령님은 정말 하늘이 낸분이시라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리용하시던 집무실벽에 난 적의 기총탄자리와 최고사령부지휘처가까이에 떨어진 500kg짜리 폭탄만 보아도 수령님께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곳에서 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였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 다 와보게 하여야 한다고, 여기에 와보아야 우리 수령님의 전승령도사를 잘 알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적들이 최고사령부지휘처를 공습한것은 1951년 7월 29일 밤이였다.

이날 고용간첩들의 무선련락을 받고 불의에 이곳에 날아든 미제공중비적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집무실을 향해 기총사격을 가하였다.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앉아계신 곳으로부터 기총탄이 박힌 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2m도 되나마나한 위험한 거리였다.

최고사령부에 대한 기총사격으로도 제놈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미제의 고용간첩들은 그때로부터 1년후인 1952년 8월 어느날 또다시 무선으로 적기들을 지휘하여 이곳을 폭격하게 하였다.

원쑤들이 근 140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150개의 폭탄을 퍼부으면서 휘발유통까지 뿌려 그 지대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고있던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갱도문어구에 서시여 최고사령부주변 구분대들의 대피를 지휘하고계시였다.

바로 그 순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부터 불과 20여m 되는 곳에 500kg짜리 폭탄이 떨어졌던것이다.하지만 그것은 천만다행히도 불발탄이였다.

적들이 떨군 150개의 폭탄들중에서 유일하게 터지지 않은 단 한발의 불발탄이였다.

한 나라의 최고사령부가까이에 그런 불발탄이 떨어진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한 일일것이다.오죽했으면 언제인가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를 자기들의 참관일정에 포함시켜달라고 해당 일군에게 설명하다가 그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종이장우에 집 하나를 그려놓고 그곁에 땅속에 반나마 박힌 불발탄을 그려보였겠는가.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용하시던 집무실벽에 난 적의 기총탄자리와 주변에 떨어진 불발탄은 최고사령부를 해치려던 원쑤들의 악랄한 책동과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준엄한 결전을 치르시였는가를 생동한 실체로 보여주는 력사적증거물들이다.

바로 그렇듯 위험천만한 환경속에서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필승의 신심과 락관을 안으시고 3년간의 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오시였다.

혁명의 모든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전승령도사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여러 사적터를 지나 사연깊은 작전실앞에 이르렀다.

척 보기에도 집무실과 마찬가지로 너무도 수수한 반토굴식으로 된 작전실이였다.

이곳에도 들리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수수한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있고 군용지도들이 벽면을 꽉 채운 작전실안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며 작전실도 한 나라의 최고사령관이 리용한 작전실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소박하다고 하시면서 혁명의 모든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검소하게 생활하시면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미제를 멸망의 구렁텅이에 처넣으시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작전지도조차 한 벽면에 걸수 없어 다음벽면에까지 걸지 않으면 안되였던 이 크지 않은 작전실앞에서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우리에게 강사는 이 작전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적들의 《하기공세》 및 《추기공세》와 《신공세》를 짓부시기 위한 독창적인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제시하시고 전쟁승리를 위한 작전적구상을 무르익히시였으며 당중앙위원회 제5차전원회의 보고문을 비롯한 고전적로작들도 집필하시였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2시간동안 30분에 한번씩 포부대들의 기동정형을 보고받으시며 직접 전투를 지휘하시였다고, 예술영화 《5시부터 5시까지》가 그러한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창작되였다고 하면서 최고사령부에 와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만경대가문의 사연깊은 권총을 받아안으신 뜻깊은 곳도 바로 이 작전실이라고 격정에 겨워 말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전사들을 위하여 기울여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미제의 끊임없는 침략기도를 짓부셔버리기 위해 그처럼 분망하신 나날을 보내시면서도 온 나라를 돌보시느라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신 우리 수령님의 로고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사적지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가슴뜨겁게 새겨안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석수떨어지는 갱도공사장에도 자주 나오시여 나어린 전사에게 착암기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시였으며 몸소 가꾸신 과일나무에서 딴 과일을 군인들의 손에 들려주기도 하시였습니다.그리고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만나시여 그들의 위훈담을 일일이 들어주시고 기관단총과 손목시계를 선물로 주시였습니다.》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잊지 못할 전화의 나날을 더듬어보는 우리의 생각은 깊어만졌다.

몸소 닭을 기르시며 현대적인 닭공장을 건설할 구상을 무르익히신 사연을 전하는 닭장, 군인들과 함께 잉어를 기르시던 못을 비롯하여 사적지의 곳곳을 돌아볼수록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걸머지시고도 승리한 조국의 미래까지 내다보시며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하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이 세상에 또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숭엄해지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때로는 말을 타시고, 때로는 야전차를 타시고, 때로는 험한 산길을 걸으시며 우리 수령님 전화의 나날에 이어가신 불멸의 자욱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끊임없는 로고와 헌신속에서 당의 두리에 전체 인민과 인민군대가 더욱 튼튼히 뭉쳐 위대한 전승의 날을 앞당겨올수 있었다.

돌아보면 볼수록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을 천으로, 만으로 새겨안게 되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였다.

영원히 전해가야 할 혁명의 만년재보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적지의 여러곳을 깊은 감명속에 돌아보던 우리는 최고사령부지휘처앞에서 다시금 걸음을 멈추었다.

한것은 못잊을 그날 최고사령부지휘처앞에서 동행한 일군들과 사적지일군모두를 부르시여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주신 뜻깊은 가르치심이 숭엄히 되새겨져서였다.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지휘처를 돌아볼수록 빨찌산장군이신 우리 수령님의 위인적풍모가 더욱 가슴뜨겁게 느껴진다고, 최고사령부지휘처는 대를 이어 영원히 전해가야 할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영원히 전해가야 할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

이 뜻깊은 가르치심에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전승령도업적을 끝없이 빛내여나가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철석의 의지가 그 얼마나 세차게 맥박치고있는것인가.

이어 새로 건설한 조국해방전쟁사적관을 돌아보시면서도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심으로써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고, 수령님의 령도를 받는 인민과 군대는 반드시 승리하며 혁명투쟁에서 수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조국해방전쟁사적지의 사적물들과 자료들은 지울수도 없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이라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를 더욱 빛내이시려는 숭고한 뜻을 지니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숨결과 체취가 슴배여있는 최고사령부지휘처주변을 반경화식으로 꾸려 주위의 자연지세와 어울리게 하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사적건물은 오늘과 같이 원상그대로의 최고사령부지휘처로 만대에 길이 전해질수 있게 되였다.

오늘날 최고사령부지휘처를 찾는 참관자들은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의 군복차림그대로 환히 웃으시며 집뜰안에 서계시는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결같이 말하고있다.

이곳을 찾는 참관자들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온 나라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이 사무치게 그리던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가 바로 여기로구나 하는것을 깊은 감동속에 느끼게 된다.

참으로 조국해방전쟁사적지는 위대한 전승사가 어떻게 창조되였으며 우리 혁명의 명맥이 어떻게 굳건히 이어지고있는가를,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혁명업적이 깃든 사적지의 모든것이 과연 어떻게 되여 혁명의 만년재보라는 값높은 부름속에 세세년년 빛을 뿌리고있는가를 말해주는 전승의 성지이다.

 

* *

 

오늘 우리 조국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전승의 력사를 빛나게 이어가고있다.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는 절세의 위인을 모신 인민과 군대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철의 진리가 천년암반처럼 억세게 자리잡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계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은 영원토록 빛날것이며 전승의 성지는 고귀한 혁명유산으로 길이 불멸할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간직하며 우리는 유서깊은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떠났다.(전문 보기)

 

 

[Korea Info]

 

천만의 가슴을 울리는 고결한 애국의 세계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뜨겁게 새겨보며

2026년 7월 2일《로동신문》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의 열기로 조국강산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7월이다.

한평생을 바치시여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일떠세워주시고 후손만대의 무궁한 번영을 위한 만년토대를 마련해주신 만고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정녕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모시였기에 세계지도우에서 빛마저 잃었던 우리 나라가 온 누리에 빛을 뿌리게 되였고 그이께서 이 땅우에 뿌려주신 만복의 씨앗들이 있어 우리 조국은 승승장구하며 승리와 번영의 한길로 줄달음쳐왔으니 어찌 인민의 마음이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을수 있으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민족과 전세계가 우러러받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것은 우리 인민의 최대의 영광이고 자랑이며 후손만대의 행복이다.》

력사에는 애국의 한생을 살며 후세에 길이 전해질 공적을 쌓아올린 위인들이 있었다.하지만 고금동서 그 어디에도 우리 수령님처럼 조국에 대한 가장 열렬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한 나라, 한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고 후손만대의 창창한 미래를 꽃피운 위인은 있어본적이 없다.

어리신 시절부터 나라잃은 인민의 불행과 고통을 속속들이 체험하시며 조국의 귀중함을 사무치게 절감하신 위대한 수령님,

조국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사랑의 감정은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강렬하고 숭고한것이였다.그 불같은 애국의 세계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에 그대로 맥박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시였던 숭고한 애국의 세계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그이께서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의 노래》가 제일먼저 숭엄히 떠오른다.

이 노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날소년동맹 연예대원들의 공연종목으로 창작하신 노래이다.

1928년초 무송에서 청소년들에게 조선의 넋을 심어주기 위한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시던 우리 수령님께서 몸소 가사를 쓰시고 곡을 붙이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의 노래》는 그후 《새날》신문에 실리여 청소년들과 인민들의 가슴속에 조국애와 혁명적락관주의를 뜨겁게 심어주며 널리 보급되였다.

눈부신 아침의 해빛에 아름다운 조국의 모습을 담으시며 간악한 원쑤들을 내쫓고 조국해방위업을 완수할 의지를 피력하신 우리 수령님,

명작의 구절구절을 새길수록 조선이 독립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애국의 굳은 맹세를 품으시고 혁명의 천리길을 걸으시며 조국을 한시바삐 되찾고 그 모든것을 영원한 우리의것, 조선의것으로 만들고싶으신 념원으로 가슴끓이시던 우리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삼삼히 어려온다.

조국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참으로 유별하시였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조국을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되찾고 세상에 빛내여야 한다는 애국의 큰뜻을 지니시고 10대에 벌써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와의 항전을 선포하시고 조국해방을 위한 피어린 투쟁의 길에 나서신 우리 수령님같으신 위대한 애국자는 력사에 일찌기 없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는 위대한 애국으로 빛나는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에 대하여 얼마나 뜨겁게 전하고있는것인가.

지금도 우리 수령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도 뜨겁게 불러보시였던 《사향가》의 선률이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여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을 관통하는 위대한 애국의 선률과도 같은 《사향가》, 단지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만이 아니였다.불후의 고전적명작은 그대로 아름다운 조국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불같은 사랑, 기어이 조국을 찾고야말 철석의 의지의 세찬 분출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향가》는 정말 잊을수 없는 노래라고, 우리는 산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더욱 뜨겁게 간직했고 그 노래에서 힘을 얻어 일제놈들을 용감히 쳐부셨다고 감회깊이 교시하시였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봄이 각별히 그리운 법이라고 하시며 우리 수령님 부르신 《사향가》는 그대로 투사들의 가슴마다에 애국의 넋과 의지를 끝없이 북돋아주는 자양분과도 같은것이였다.

건국의 어려운 초행길을 헤쳐나가실 때에도, 조국의 촌토를 지켜내시던 전화의 그날에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부강조국을 건설하실 때에도 언제나 우리 수령님께서는 이 노래를 부르시며 힘과 용기를 얻으시였다.

조국에 대한 감정이 그리도 뜨거우셨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일제에게 빼앗긴 사랑하는 조국을 기어이 해방하실 철석의 의지를 담아 수많은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몸소 창작하신것이다.

《반일전가》, 《피바다가》를 비롯하여 항일혁명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은 조국해방위업을 성취하고야말 그이의 불굴의 신념과 굳센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1차 북만원정을 마치시고 귀로에 오르시였을 때의 일을 잊을수 없다.

눈보라와 강추위가 대오의 앞길을 가로막았고 피를 물고 달려드는 적들의 끈질긴 추격, 혹심한 식량난이 대원들의 생사를 위협했다.대오가 시련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던 그때 앞장에서 대오를 이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만 중병으로 눕게 되시였다.

엄혹한 추위와 심한 고열, 희미해지는 의식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신것은 조국과 겨레의 운명이였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도 기어이 일어나 혁명을 구원하고 도탄에 빠진 나라와 인민을 구원해야 한다는 비상한 의지를 불후의 고전적명작 《반일전가》에 담으신 우리 수령님,

우리가 주저앉으면 조선이 다시는 소생하지 못한다는 자각, 일제를 기어이 조국땅에서 내쫓고 나라의 해방을 반드시 이룩하시려는 비상한 사명감, 이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으로 하여금 그 사지판에서 결연히 일떠서시게 한 불굴의 정신력의 원천이였다.

억천만번 죽더라도 끝까지 원쑤를 치자!

우리 수령님의 이렇듯 억센 신념은 대원들의 가슴마다에서 그대로 맥박쳤고 그 불굴의 정신에 떠받들려 조국에로의 진격로가 열리였다.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길에서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 언제나 불타오른 혁명에 대한 책임감과 필승의 의지, 진정 그것은 곧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의 분출이였음을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은 오늘도 뜨겁게, 소리높이 전하고있다.

항일전의 나날 조국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을 안으시고 무수한 사선의 고비를 헤치시여 마침내 조국해방이라는 력사적사변을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조국과 혁명앞에, 인민앞에, 후손만대앞에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신 절세의 애국자, 불세출의 위인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시였던 위대한 애국의 세계에 대하여 불후의 고전적명작 《묘향산 가을날에》는 오늘도 뜨겁게 새겨주고있다.

지금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인 1979년 10월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으신 그날 단풍이 붉게 타고 물소리 유정한 천하제일 묘향산절경을 바라보시며 우리 수령님 읊으시던 즉흥시의 구절구절이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불리워온 아름다운 우리 조국, 그 아름다움은 태고적부터였건만 인민과 더불어 빛을 뿌린 력사는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오는가고 울분을 터뜨리던 그때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명소는 많아도 그것은 남이 즐기는 명승지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의 피바다, 눈보라만리를 헤치시며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신 때로부터 내 조국은 그 이름 세상에 떨치게 된것 아니던가.

한없는 긍지와 자부, 만족감에 넘치시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읊으신 이 시는 우리 인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축되여있고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비낀 열렬한 조국애의 정화였다.

소용돌이치는 력사의 중심에 서시여 위대한 자주의 홰불로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의 앞길을 밝혀주시고 그 어떤 엄혹한 력사의 광풍속에서도 자주적대를 굳건히 세우시며 이 조선을 세계의 유일무이한 자주의 나라로 건설하신 위대한 수령님,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에서 어려오는 절세위인의 숭고한 애국의 세계를 더듬어보는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어버이수령님의 념원을 받들어 주체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만방에 떨쳐가고계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에 대한 한없는 경모심이 넘쳐흐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생을 바쳐 가꾸고 빛내여주신 주체의 우리 조국을 세상에서 제일 존엄높은 나라, 인민의 만복이 꽃피는 사회주의락원으로 전변시키시려는것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지니신 철석의 신념이다.

이런 숭고한 리상을 꽃피우시기 위하여 력사의 그 어느 정치가도 걸어보지 못한 험난한 길을 걸으시고 그 어느 위인도 체험해보지 못한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며 반만년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세기적변혁을 이룩하시고 전면적국가부흥의 새시대를 펼쳐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의 한평생이 어려있는 사회주의조국을 억척으로 지키고 세계만방에 빛내여갈 높으신 뜻을 지니시고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따라 힘차게 나아가는 길에서 우리 인민은 끝없이 번영하는 천하제일강국을 맞이하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세상에 없는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  한 전쟁로병이 창작한 서사시에 담겨진 감명깊은 사연을 전하며

2026년 6월 29일《로동신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보관되여있는 수많은 자료들가운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의 나날 전재고아들을 위해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사랑을 전하는 서사시 《고아가 없는 나라》도 있다.

이 작품은 윤일희전쟁로병이 1990년대초에 창작한것으로서 그의 가족들이 전승 7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보내여온것이다.

전쟁로병이 창작한 서사시 《고아가 없는 나라》!

창작가와 작품의 제목, 창작년대 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전후 인민군대에서 정치일군으로 오랜 기간 사업한 윤일희전쟁로병은 군복을 벗은 후 동사무장으로 사업하면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체험한 가지가지의 사실들을 시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인 서사시 《고아가 없는 나라》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동해안전선일대의 전재고아들을 후방으로 데려오던 때의 감동깊은 사실들을 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에도 전재고아들을 학원에 데려다 공부를 시킨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을것입니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나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미제침략자들과의 판가리싸움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분망하신 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에서는 전쟁의 참화로 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모습이 언제나 떠나지 않고있었다.

1950년 12월 2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기 위해 평안남도 순천군 내남면 사평리(당시)의 어느한 농가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그곳에서 한 녀인이 올망졸망한 세 아이를 데리고 살고있는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주인은 어디 갔는가고 물으시였다.순간 녀인은 밀려오는 설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기둥처럼 믿고 살아오던 남편을 원쑤놈들에게 빼앗긴 사연을 자초지종 말씀올리였다.

녀인의 이야기를 가슴아프게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교시하시였다.

아주머니, 얼마간만 참으시오.…주인의 뜻을 이어서라도 마음을 굳세게 먹고 살아야지요.애들문제는 그리 걱정마십시오.

농가를 나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지잃은 아이들의 정상이 마음에 걸리신듯 차가 내남벌을 지나 고개를 넘을 때까지 오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때로부터 한주일이 지난 1951년 1월 3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김책동지를 찾으시였다.

새해의 첫 명절날도 부모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온밤을 지새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동지에게 각 도와 중요도시들에 육아원과 애육원, 초등학원을 세워 전재고아들을 국가가 맡아키우도록 하자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1951년 1월 13일 유자녀학원을 설치할데 대한 내각결정이 채택되고 유자녀학원과 애육원들을 내오고 전재고아들을 맡아키우기 위한 국가적조치가 취해졌다.

이것은 혁명투쟁을 하는 목적도 우리의 후대들을 행복하게 잘살도록 하자는데 있다는 확고한 신조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결단이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재고아들과 관련한 명령과 결정, 조치들가운데는 1952년 6월에 하달된 군사위원회 명령 제288호 《강원도내 전재민 및 고아들을 이주시킬데 대하여》도 있다.

이에 따라 전재고아들을 무사히 후방으로 데려오기 위한 영예로운 전투임무가 윤일희동지가 속한 부대에도 맡겨졌다.

인민군군인들이 정렬한 자리에서 부대장은 새 전투임무를 주었다.

그것이 바로 강원도안의 전재고아들을 손가락 하나 다침이 없이 안전하게 정해진 지역까지 후송하는것이였다.

이 임무를 받아안은 윤일희동지를 비롯한 군인들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미제침략자들과 판가리결전을 벌리는 고지마다에서 한사람한사람의 군인이 귀한 때여서 자기들에게 전재고아들을 후송할데 대한 명령이 하달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한개 조를 책임진 조장으로 임명된 윤일희동지가 자기 조에 배속된 군용차들을 돌아볼 때였다.

군용차마다에는 큼직한 지함들이 실려있었다.

무슨 지함들인가고 묻는 그에게 후방일군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최고사령부에서 후송과정에 아이들에게 먹이라고 보내준 당과류들입니다.》

순간 윤일희동지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격정이 치밀어올랐다.

군용차들이 전재고아들을 위해 전선에서 후방으로 달리고 포탄과 탄약상자를 싣군 하던 적재함에 당과류지함이 올라있는 현실을 목격하며 군인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무조건 결사관철할 철석의 의지를 더욱 굳게 하였다.

강원도안의 전재고아들을 손가락 하나 다침이 없이 안전하게 정해진 지역까지 후송하는것!

바로 이것이 조국의 미래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을 안고계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비록 적들과 격돌하는 전투는 아니여도 한개 고지를 탈환하고 수백놈의 적유생력량을 소멸하는것보다 몇갑절 중요한 전투임무라는 생각이 군인들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갈마들었다.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오는 새벽, 아이들을 태우고 기운차게 달리던 군용차가 어느한 고장을 지날 때였다.선두차가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수많은 녀인들이 길옆에 모여있었던것이다.

그들을 헤치고나온 한 사람이 이 근방의 리인민위원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며 후방으로 가는 전재고아들의 휴식을 보장할데 대한 지시를 받고 나왔다고, 좀 쉬고가라고 하는것이였다.

이윽하여 녀인들이 아이들을 품어안고 미시가루를 탄 꿀물을 먹인다, 옷차림을 바로잡아준다 하며 따뜻한 정을 기울이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마치 친어머니며 할머니, 누나를 만난듯 그들에게 매여달렸다.어린 아기들은 그리고그리던 엄마품을 찾은듯 녀인들의 품을 정신없이 파고들었다.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그 화폭을 보며 감동을 금치 못해하는 군인들에게 리인민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지역의 전재고아들을 후방으로 무사히 데려오도록 하신 소식을 전해듣고 누구나 격정에 겨워있다고 하면서 이 휴식도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그이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절절히 말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군인들의 뇌리에는 지나온 로정에서 적기의 움직임을 알려주던 항공감시초소들이며 함포탄과 적기의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와 도로를 복구하면서 순간도 지체하지 말라고 손저어 바래주던 후방인민들의 모습이 격정속에 돌이켜졌다.

정녕 최고사령부의 작전도에는 전재고아들을 위한 후송길이 구간마다 표시되여있는것이 아닌가.

얼마후 청천강을 넘어선 자동차대렬은 세개 편대로 갈라져 박천, 운전, 정주지역에 꾸려놓은 아이들의 보금자리로 들어섰다.내각의 일군들과 교양원들, 교원, 의사들이 아이들을 반겨맞아주었다.

산수좋고 양지바른 아늑한 계곡, 마치 가렬처절한 전쟁과는 인연이 없는듯 새들의 지저귐소리, 시내물소리가 유정하게 들려오는 그곳은 그야말로 명당자리였다.

당에서는 이처럼 훌륭한 곳에서 전재고아들이 생활하도록 하고 교육과 교양, 건강을 돌봐줄 교원들과 교양원들, 의사들도 보내주었다.그리고 전재고아들속에 형제들이 있다는것까지 헤아려 그들이 아무때나 불편없이 만날수 있도록 하는데도 각별한 관심을 돌리였다.

그 사랑을 가슴뜨겁게 새겨안으며 인민군군인들은 앞으로도 중대한 후송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결의를 굳게 다졌다.

그들이 1차후송을 성과적으로 결속하고 새로운 후송길을 달리던 어느날이였다.

아이들을 태우고 떠날 차비를 하고있던 윤일희동지에게 한 군인이 달려왔다.그는 1211고지에서 백수십명의 어린이들이 떠났으니 기다려달라는 긴급통보를 보내온데 대하여 전하였다.

윤일희동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1211고지에서는 가렬처절한 혈전이 벌어지고있었던것이다.

최고사령관동지의 숭고한 의도를 높이 받들고 적들과의 가렬한 전투를 벌리는 속에서도 전재고아들을 한명한명 찾아내여 집결처로 보내였을 1211고지 용사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윤일희동지와 전우들은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전선가까이에로 맞받아나갈것을 결심하였다.

이렇게 되여 통천, 고성, 김화, 창도, 평강 등 여러 지역으로 아이들을 찾아 군용차는 밤낮없이 달리였다.

후송길이 늘어날수록 그것을 막으려는 적들의 책동도 발악적이였다.적들은 시간까지 맞추어가며 후송차들이 가는 곳마다에 줄폭탄을 퍼부었다.

후송대오가 어느한 고개를 지날 때였다.저녁어스름이 깃들무렵 적기들이 까마귀떼처럼 달려들어 후송대를 향하여 기총사격을 하고 폭탄을 마구 떨구기 시작하였다.

기총탄이 날아드는 순간 한 분대장이 날렵하게 몸을 날려 아이들을 덮었다.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품어안고 생의 마지막미소를 짓는 그의 잔등에서는 선혈이 뿜어져나왔다.

잠시후 섬광이 번뜩하더니 우리의 미더운 고사포병들이 반격을 가하였다.산중턱에서는 비행기사냥군조가 적기를 향해 맹사격을 퍼부었다.적들의 선두기가 총에 맞은 까마귀마냥 불타 떨어지고 나머지놈들은 줄행랑을 놓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윤일희동지와 전우들은 총포탄이 작렬하는 준엄한 사선의 고비들을 여러 차례나 뚫고헤치며 마침내 후송임무를 완결하였다.

서사시 《고아가 없는 나라》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사의 갈피에 새겨진 이런 감동깊은 내용을 담고있다.

파괴와 살륙의 상징인 전쟁은 불피코 전재고아들을 낳기마련이다.하지만 세계전쟁사의 어느 갈피에서도 전재고아들을 위한 군사위원회 명령이 내려진 례는 찾아볼수 없다.

가렬한 전쟁의 포화속에서 부모잃은 아이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친부모의 정으로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

그 하늘같은 은정속에 전재고아들은 비록 부모형제는 잃었어도 이 세상에서 제일 따사로운 품에 안겨 조국의 미래로, 앞날의 역군으로 씩씩하게 자라나지 않았던가.

당시 이 가슴뜨거운 사실들은 싸우는 고지들과 전선원호로 들끓던 후방의 곳곳에 전해져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에게 무비의 힘과 용기를 더해주었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미제침략자들과 맞서 피를 흘리며 싸우는것도 후대들의 행복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것이라고 하시며 불비속에서도 아이들을 더욱 뜨겁게 품어안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열화같은 사랑은 영웅조선의 빛나는 전승을 안아온 또 하나의 위력한 힘이였다.

오늘 우리 당은 하늘처럼 받드는 인민앞에, 인민우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는 숭고한 후대관을 지니고 후대들을 위해서는 억만자루의 품이 들어도 그것을 고생이 아니라 행복으로, 영광으로 간주하고있다.

후대들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전진하는 위대한 우리 당, 우리 조국의 앞길에는 언제나 승리만이 있을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를 펼치고 : 세계전쟁사에 일찌기 없었던 기적

2026년 6월 28일《로동신문》

 

청소한 우리 공화국이 100여년의 침략력사상 단 한번의 패전도 몰랐다는 미제를 우두머리로 한 세계제국주의련합세력과 맞서 싸워 승리를 이룩한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승전사에는 서울해방전투가 빛나게 기록되여있다.

세계전쟁사상 가장 기록적이며 경이적인 공격작전으로, 세계를 크게 놀라게 한 사변으로 되는 서울해방전투의 승리는 수령의 현명한 령도가 있고 전체 군대와 인민이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한마음한뜻으로 받들어 영웅적으로 싸울 때 아무리 강대한 적도 타승할수 있고 기적을 이룩할수 있다는 고귀한 철리를 력사의 갈피에 아로새기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승리는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적군사사상과 탁월한 군사전략의 승리였으며 귀중한 조국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싸운 인민군대와 인민들의 영웅적인 조국수호정신이 안아온 승리였다.》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 제1권에는 《주타격방향을 서울로》라는 제목아래 서울해방전투와 관련한 력사적사실자료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여있다.

반공격전략의 주타격방향을 서울로 하는것은 반공격의 첫날에 벌써 위대한 수령님께서 선정해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보위성 일군들에게 반공격전략의 주타격방향을 서울로 선정해주시면서 우리 당의 전략적방침을 실현하는데서 중심고리는 38゜선계선과 서울일대에 배치된 적들을 일격에 소탕하는것이라고 밝혀주시였다.그러시고는 군용지도우에 의정부-서울-수원방향으로 붉은 화살표를 쭉 그으신 다음 서울지역에 포위환을 힘있게 그리시였다.

그때 군사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 정해주신 주타격방향인 서울은 적의 력량이 밀집되여있는 가장 강한 고리, 적의 심장부였던것이다.

지금까지 전쟁교범에는 주타격방향은 적방어의 가장 약한 곳이여야 하며 그래야만 공격의 전과를 확대할수 있다는것이 일반적인 공리로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놀라움과 의혹에 잠긴 일군들에게 적의 기본집단은 38゜선계선과 한강이북의 의정부, 서울일대에 집중되여있으며 한강이남지역에는 보잘것없는 력량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이런 조건에서 우리가 짧은 시간에 38゜선계선과 서울일대에서 적의 기본집단을 포위소멸하게 되면 적의 전략적종심으로 신속히 성과를 확대할수 있다고 신심넘친 어조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리혜안의 통찰력과 선견지명의 판단력, 단호한 결단으로 우리 인민군대의 주타격방향을 서울로 정해주신것은 세계군사예술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일대 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와 공화국경비대가 반공격으로 넘어가 적을 여러곳에서 타격하는 동시에 서울일대의 적을 정면과 익측, 후방으로부터 타격하면 서울해방작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할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하시였다.

주타격방향을 서울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장병들은 적들의 공격을 일격에 좌절시키고 전 전선에서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갔으며 서울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무력침공을 개시한 때로부터 90분만에 공화국령토에서 퇴각하기 시작한 전선서부의 적들은 자연히 서울과 그 주변지역으로 몰려들었다.그런것으로 하여 서울계선에서의 적아간의 력량대비는 엄청나게 차이났다.적들은 급변한 불리한 정황을 어떻게 하나 호전시켜보려고 단말마적으로 발악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담하게 땅크부대를 앞세워 결전진입시킬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전연으로부터 불과 5㎞밖에 안되는 곳에서 땅크부대를 결전진입시킨것은 조성된 정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따른 현명한 조치로서 적의 완강한 방어를 돌파하고 공격성과를 적종심으로 재빨리 확대시켜나갈수 있는 믿음직한 담보였다.

땅크의 결전진입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반공격작전의 돌파구를 열어제끼기 위한 중요한 임무라는것을 가슴에 새긴 땅크병들은 무한궤도로 적진을 깔아뭉개며 돌진해나아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명령을 받들고 인민군군인들은 적의 아성을 향하여 파죽지세로 전진하였다.인민군용사들은 전투마다에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조국수호정신,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하였다.

그들가운데는 장태화동지도 있었다.

장태화동지는 불뿜는 적의 화점을 몸으로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어놓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그때 그의 나이는 22살이였다.

장태화동지의 희생적인 위훈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청춘을 바친 장태화와 같은 영웅전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칠줄 아는 인민군전사들이 있는한 우리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고.

조국을 위해 피흘려 싸운 전사들을 영광의 단상에 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장태화동지의 위훈은 공화국영웅칭호와 더불어 빛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해방작전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한개 대대력량의 전략적소부대를 먼저 서울시가에 침투시켜 적의 중요지휘거점들과 통치기구들을 습격함으로써 적내부를 혼란와해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전투임무에 따라 소부대는 밤에 서울시내로 진출한 다음 습격조단위로 수십개의 대상들을 일제히 타격하였다.항일의 전장에서 창조된 빨찌산식싸움법의 능숙한 활용이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312호땅크를 비롯한 5대의 땅크와 기계화보병들로 조직된 소부대도 서울시내에 들어가 중요대상들을 타격함으로써 대부대의 공격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완전히 절망상태에 빠진 적들은 그래도 잔명을 유지해보려고 시내에로 돌입하는 인민군부대들에 저항해나섰다.

그러나 능숙하고 령활한 전투활동으로 맹렬한 공격을 들이대는 인민군군인들앞에서 적들은 맥을 추지 못하였다.

서울시내로 돌입하는 무쇠철마들, 멸적의 총창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시내로 육박해들어가는 인민군용사들…

이무렵 적들은 괴뢰중앙청앞에 바리케드를 쌓아놓고 장갑차와 화염방사기로 대항하였고 중앙현관과 2층에 기관총들을 걸어놓고 사격을 퍼부었다.

312호땅크는 적의 마지막숨통을 조이는 피어린 격전을 벌리며 괴뢰중앙청으로 돌입하였다.고현빈동지가 땅크웃뚜껑을 열고 뛰여내려 기발게양대앞으로 달려갔다.그리고는 게양대에서 끌어내린 놈들의 저주로운 기발을 갈기갈기 찢어 짓밟아버리고 품에 안았던 공화국기를 올리였다.

서울상공에 오각별 찬연히 빛나는 우리의 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감히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침략의 불을 지핀 침략자들에게는 수치스러운 패배를 주고 우리 인민들에게는 승리에 대한 신념을 억척같이 새겨준 선언이기도 하였다.

서울시의 감옥문들이 순간에 깨여져 날아났다.

총공격이 시작되여 몇시간만에 서울시는 완전히 해방되였다.

적의 무력침공을 좌절시키고 반공격을 개시한 이후 서울해방까지 불과 72시간!

이 기적적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인 전략전술과 독창적인 전법을 훌륭히 보여준 현대전의 빛나는 모범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를 해방한 인민군장병들을 열렬히 축하하시면서 주타격방향의 전선련합부대들이 반공격으로 넘어간지 3일만에 적의 아성인 서울을 해방한것은 큰 정치군사적승리로 된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정녕 서울해방작전이야말로 독창적인 반공격전략사상과 주체적인 군사전법으로 사대와 교조를 짓부시며 대담한 군사작전을 단행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안아오실수 있는 빛나는 승리였다.

서울을 해방하기까지의 단 며칠동안에 인민군련합부대는 근 6만명의 적들을 살상포로하고 4만 3 000여정의 저격무기를 로획하였으며 자동차, 각종 포, 비행기, 함선들을 비롯한 수많은 전투기술기재들을 적의 전투서렬에서 제거해버리였다.서울해방전투에서는 적들의 군기까지 로획하였다.

이에 대하여 적들은 《전체의 반이상이 서울함락전 3일간에 전사했거나 부상, 포로당하였다.》라고 개탄하였으며 《륙군본부는 9만 8 000여명이 올라있던 병적부에서 불과 2만 2 000명밖에 확인할수 없었다.》라고 비명을 질렀다.놈들자신이 인정한바와 같이 적들의 기본집단은 단순히 《패배만 한것이 아니라 붕괴》된것이였다.

서울해방전투가 가지는 의의는 결코 수많은 적을 소멸하고 전투기술기재를 파괴하거나 로획한데만 있지 않다.우리 인민모두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가 있어 미제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억척의 신심을 안겨주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진정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을 진두에 높이 모시였기에 우리 인민은 조국해방전쟁의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고 영웅인민으로 세계의 단상에 우뚝 솟구쳐올랐다.

승리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이고 참패는 미제의 수치스러운 전통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높이 모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은 찬연히 빛나고 주체조선의 승리의 력사는 오늘도 줄기차게 흐른다.

백두산악과도 같은 필승의 신념과 비범한 예지, 담대한 배짱과 담력을 지니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명하고 세련된 령도가 있어 이 땅에는 언제나 승리만이 있을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를 펼치고 : 미제침략자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몰아넣자고 하시며

2026년 6월 25일《로동신문》

 

날강도 미제가 이 땅에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던 그날로부터 장장 76년의 세월이 흘렀다.

력사의 흐름속에 많은것이 삭막해진다고 하지만 청소한 신생조선에 존망을 판가름하는 가장 엄혹한 시각이 닥쳐왔던 그때를 우리 인민은 오늘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간악한 원쑤들은 해방이 되여 5년, 창건되여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은 우리 공화국을 요람기에 없애보려고 달려들었다.행복한 새 생활, 참다운 삶의 보람을 찾은 우리 인민에게 노예의 운명을 들씌우려고 무분별하게 날뛰며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았다.

바로 이러한 때에 침략의 무리들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린 위대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던가.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의 갈피들을 번지며 우리는 그 어떤 뢰성벽력에도 드놀지 않는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온 나라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을 불러일으키시여 세계전쟁사에 일찌기 없었던 기적과 승리를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삼가 되새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고한 시련의 길을 헤치시며 안아오신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빛나는 승리와 우리 군대와 인민이 발휘한 1950년대 투쟁정신을 영원히 잊지 말고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호시탐탐 전쟁발발을 노리던 미제는 자기의 주구들을 사촉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평화로운 일요일의 새벽에 적들이 강요한 이 가증스러운 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갑작스레 들이닥친 재앙이였다.

바로 그 전날까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부강조국건설의 휘황한 설계도를 현실로 꽃피우기 위한 투쟁에 지혜와 열정, 애국의 땀을 바치던 우리 인민이였다.

불의에 전쟁을 일으킨 미제는 세계에 대고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으며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것》이라고 떠벌이였으며 조선의 운명은 《72시간내에 결판》나게 될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허나 적들의 이 어리석은 망상은 산산이 깨여지고말았다.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 제1권에는 《단호한 반격》이라는 제목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밑에 우리 조국, 우리 인민이 전쟁이라는 난파도앞에서 어떻게 과감히 일떠섰는가를 보여주는 력사적사실들이 감명깊게 서술되여있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정황에 대해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침공을 순간도 용납하지 않으시였다.즉시 적들의 침공에 대처할데 대한 작전회의를 소집하신 그이께서는 신속히 주력부대들을 전선에 진출시켜 반공격집단을 편성하고 적들에게 강한 타격을 들이대여 조선사람의 본때를 단단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실현에서 나서는 전략적방침들을 제시하시였다.

작전회의가 끝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동지에게 미제가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하시면서 덮치려고 달려드는 적이니 가차없이 쳐갈겨대자고, 쳐갈겨댈바에는 조선사람과 다시는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게 미제침략자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몰아넣자고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이 또다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노예가 되는가 아니면 자주독립국가의 자유로운 인민으로 사는가가 판가름되는 엄중한 난국앞에서 단호한 결단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 6시 내각비상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청천벽력같은 급보에 회의참가자들모두가 마음을 조이고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회의실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내를 둘러보시며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알기를 우습게 안다고, 승냥이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과 같이 조선사람을 몰라보고 덤비는 놈들에게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세계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군림한 미제를 한갖 분별없이 덤벼드는 승냥이로 보시고 단호히 쳐갈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담대한 배짱과 강철의 의지가 넘쳐나는 그 말씀은 회의참가자들의 마음속에 서렸던 불안과 위구를 가셔내고 승리의 신심이 넘쳐나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회의에서는 조국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침공해오는 적들에게 반공격을 가하기 위한 대책적인 문제들을 토의하겠다고 하시며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무력침범자들을 소탕하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이 엄혹한 시각에 싸우기를 주저한다면 우리 인민은 또다시 망국노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라고, 우리는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와 영예를 수호하기 위하여 적들과 단호히 싸워야 한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우리 인민군대는 적들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즉시 결정적인 반공격전을 개시하여 무력침범자들을 소탕하여야 하겠다고 언명하시였다.

즉시적이며 결정적인 반공격!

회의참가자들모두가 놀라움에 휩싸여 위대한 수령님을 경건히 우러렀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내리기 힘든 결단이였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지구상에는 헤아릴수없이 많은 크고작은 전쟁들이 있었다.그러나 그 어느 전쟁사의 갈피를 뒤져보아도 적들의 불의의 공격앞에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맞선 례는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었다.불의의 공격에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대처한다는것은 거의나 불가능한 일이였다.

횡포무도한 대적이 떼를 지어 밀려드는 속에서도 너무나 여유작작하신 모습으로 적들의 공격을 반공격으로 격퇴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

침략의 무리들이 우리 조국을 집어삼키려 달려드는 위험천만한 순간에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킬 승리의 방략을 환히 밝혀주시는 강철의 령장의 비범한 예지와 강인담대한 기상앞에 누군들 탄복하지 않을수 있으랴.

당시 공화국 내각부수상이였던 홍명희동지는 전쟁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무너앉는것같았던 자기의 심정과 내각비상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놀라운 담력과 배짱에 온 심혼을 다 빼앗겼던 충격에 대해 후날 이렇게 감회깊이 이야기하였다.

《난 그때 장군님의 놀라운 담력과 배짱에 온 심혼을 다 빼앗겼댔네.생각들 해보라구.지금까지의 전쟁력사를 뒤져보면 아무리 강대한 나라라고 하여도 불의의 선제타격을 받았을 때에는 그로 하여 받은 손실과 혼란을 수습할 때까지는 어차피 뒤로 물러서는것이 상례였네.…

그런데 우리 장군님께선 즉시적인 반공격을 명령하시였으니 이게 글쎄 보통의 담을 가지고서야 상상이나 할번한 일인가.…》

진정 강철의 령장이신 우리 수령님께서 즉시적인 반공격작전을 펼치신 그 순간에 벌써 전쟁의 승패는 결정되였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날인 6월 26일 정각 10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력사적인 방송연설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가 전파를 타고 온 세상에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방송연설에서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용감히 나아가자고 하시면서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에게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모든 힘을 우리 인민군대와 전선을 원조하는데 돌리라!

모든 힘을 적들을 격멸소탕하는데 돌리라!

자기 조국을 끝없이 사랑하고 침략과 불의를 용서치 않는 대바르고 용감한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을 믿으시고 그들의 가슴마다에 불굴의 조국수호정신, 공격정신을 심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방송연설은 온 나라를 격동시켰다.

절세위인의 방송연설에 무한히 고무된 수많은 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이 전선에 탄원하였다.나가자 인민군대 용감한 전사들아 인민의 조국을 지키자 목숨으로 지키자라는 노래를 높이 부르며 우리 인민군대는 멸적의 총창을 비껴들고 적들을 무찔렀다.

우리 인민군대는 노도와 같이 진격하였다.이것은 그야말로 세계전쟁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기적이였다.불의의 무력침공을 당한 나라가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이행하여 적들을 무찌르는 력사에 전무한 경이적인 현실이 펼쳐진것이였다.

이 기적은 그때로부터 3년후 력사상 처음으로 미제침략자들에게 쓰디쓴 참패를 가져다준 7.27의 승리로 이어지게 되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쌓은 위인의 업적은 세월이 흐를수록 찬연한 빛을 뿌리는 법이다.

영웅조선의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는 전하여준다.

탁월한 수령을 모시면 그 어떤 침략자도 단매에 때려눕히고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영예롭게 수호할수 있다는 진리를.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빛나는 승리, 정녕 이것은 신념과 의지에 있어서나 담력과 배짱, 지략과 령군술에 있어서 이 세상 누구도 따를수 없는 가장 걸출한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높이 모시여 이룩된 력사의 필연이였다.

세월이 가고 산천이 변해도 우리 인민은 이 땅우에 위대한 전승사를 안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업적을 세세년년 칭송하고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에 즈음하여 당과 정부의 간부들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 표시

2026년 4월 16일《로동신문》

 

 

조선로동당 제9차대회가 밝힌 투쟁강령실현을 위한 력사적인 첫해 진군길에서 경사로운 태양절을 맞이하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혁명의 대성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영원무궁한 영광을 삼가 드리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114돐에 즈음하여 당과 정부의 간부들이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인 박태성동지, 조용원동지를 비롯한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성, 중앙기관 책임일군들, 무력기관 지휘성원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립상에 김정은동지께서 보내시는 꽃바구니가 진정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립상을 우러러 참가자들은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영생홀들에서 참가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영생축원의 인사를 삼가 드리였다.

전체 참가자들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기치높이 우리 국가의 륭성과 인민의 복리를 위한 력사적변혁기,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기를 줄기차게 펼쳐가시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일심충성으로 받들어 내 나라, 내 조국의 존엄과 위상을 만방에 떨쳐갈 굳은 결의를 다짐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웹 우리 동포》후원 안내
カレンダー
2026年8月
« 7月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31  
最近の記事
年度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