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김일성주석/金日成主席’ Category

김일성  총련의 결성은 재일조선인운동발전에서 근본적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사변이다(발취) -총련결성 35돐 재일조선인감사단과 한 담화 1990년 5월 25일-

주체111(2022)년 5월 25일 웹 우리 동포

 

끝으로 조국통일문제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오늘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는것입니다. 미제는 민족분렬의 장본인이며 조국통일의 기본장애물입니다. 지금 우리 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민들도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할것을 강력히 요구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미제는 내외의 강력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는 우리의 《남침위협》을 구실로 남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계속 틀어쥐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고있습니다. 북과 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자는 우리의 제의를 남조선괴뢰도당이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는것도 그들에게 조국통일의 의사가 없는데 원인이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미국의 간섭책동과 관련되여있습니다.

우리는 북과 남이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우리와 미국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하자는것을 시종일관하게 제기하고있습니다. 북과 남이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우리와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이 남조선에 저들의 군대와 핵무기를 남겨둘 구실이 없게 됩니다. 미국당국자들은 이것을 알고있기때문에 겉으로는 북과 남사이의 대화를 환영하는것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대화도 평화도 우리 나라의 통일도 다 반대하고있습니다. 현실은 미제침략자들을 남조선에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미제침략자들을 남조선에서 몰아내자면 남조선인민들이 반미자주화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지난 시기에는 남조선인민들이 미국을 해방자, 원조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조선인민들의 사상정신상태를 지배한것은 미국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숭미, 공미사상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숭미, 공미사상에서 벗어나 반미자주화, 반전반핵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서고있습니다.

투쟁에 일떠선 인민대중의 힘은 그 무엇으로써도 당해낼수 없습니다. 이란에서는 모든 회교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사람같이 떨쳐나 싸웠기때문에 파흐라비독재정권을 꺼꾸러뜨리고 회교공화국을 선포할수 있었습니다. 남조선인민들도 멀지 않아 이란인민들처럼 모두가 떨쳐나서 현 파쑈독재정권을 력사의 무덤속에 매장하고 그우에 외세가 없고 파쑈가 없는 자주의 새 세상, 민주의 새 세상을 일떠세울것이며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힘을 합쳐 통일된 하나의 조선을 세울것입니다.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서 총련과 재일동포들이 맡고있는 임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총련은 조국통일사업을 대중화할데 대한 우리 당의 방침을 높이 받들고 이 사업을 전기관적, 전동포적인 사업으로 확고히 전환하여야 합니다. 총련은 특히 민단계동포들, 미조직동포들과의 민족단합사업을 더욱 강화하며 일본에 오는 남조선사람들과의 사업도 잘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겠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자 (발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 1990년 5월 24일-

주체111(2022)년 5월 24일 웹 우리 동포

 

3

 

동지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는것은 공화국정부와 전체 조선인민앞에 나서고있는 가장 절박한 민족적과업입니다.

나라가 분렬된 다음 오늘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력사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잇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투쟁의 력사였습니다.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속에서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 마련되고 통일운동이 전민족적운동으로 전환되게 되였습니다.

북과 남이 공동으로 합의하고 내외에 선포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온 민족의 슬기와 의지를 한데 모아 조국통일의 앞길을 뚜렷이 밝힌 위대한 통일강령입니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우리 공화국정부가 내놓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우지 않고 공정하게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실현할수 있게 하는 가장 정당하고 현실성있는 통일방안입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조국이 통일된 다음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고 그 어떤 정치군사동맹이나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적인 나라로 발전할것을 예견하고있는것만큼 그것은 전체 조선민족의 자주적요구에 맞을뿐아니라 주변나라들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념원에도 부합되는것입니다.

공화국정부와 전체 조선인민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힘있게 벌려나가야 할것입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우리 민족의 사활적인 요구이며 자주화의 력사적흐름이 제기하는 시대적과제입니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가혹한 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의 구호를 높이 들고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떨쳐나서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고있습니다. 남조선청년학생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이 굴함없이 벌리고있는 정의로운 투쟁은 우리 민족의 높은 자주정신과 꺾을수 없는 통일의지를 뚜렷이 보여주고있으며 이것은 세계 진보적인민들속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은 의연히 계속되고있지만 통일운동은 전민족적범위에서 날로 더욱 앙양되고있습니다.

온 민족의 절박한 념원에 맞게 하루빨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옳게 해결하여야 할것입니다.

첫째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는것은 우리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사이에 서로 상대방을 침략하지 않을데 대한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여야 하며 북과 남의 무력을 대폭 줄이고 남조선에서 핵무기와 외국군대를 철수시켜야 합니다.

공화국정부는 북과 남의 무력을 단계적으로 축감하여 10만명이하로 줄이며 그에 따라 남조선에서 핵무기와 미국군대를 철수하여야 한다는것을 주장하여왔습니다.

우리가 조선의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정한 념원으로부터 북과 남의 무력을 대폭 줄이자고 하며 세계적으로도 외국군대의 철수가 하나의 추세로 되고있는 조건에서 미국군대가 남조선에 계속 남아있어야 할 아무런 구실도 있을수 없습니다. 남조선에서 미군이 철수하는것은 평화와 완화에로 나아가는 시대의 흐름에도 맞는것이며 미국인민의 리익에도 부합되는것입니다.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조선의 통일을 더욱 촉진하게 될것이며 우리 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을것입니다. 미국이 남조선주둔 미군을 한꺼번에 완전히 철수할수 없다면 단계별로 나누어 철수할수도 있을것입니다.

둘째로,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사이의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국토와 민족을 갈라놓고있는 장벽을 제거하고 북과 남사이에 자유로운 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는것은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조건으로 됩니다.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의 동포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서로 만나 동포애의 정을 나누고 북과 남의 현실을 직접 보아야 인위적으로 갈라진 삼천리금수강산을 하나로 통일하여 조국의 휘황한 미래를 열어나가려는 의지를 굳게 다지고 통일운동에 더욱 힘차게 떨쳐나설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의 광범한 인민들과 각계 인사들이 북을 방문하는데 대하여 열렬히 환영할것이며 남에서 오는 동포들을 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고 그들의 신변안전을 철저히 보장할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이 남을 방문하는데 대하여 아무런 제한도 하지 않을것이며 적극 보장하여줄것입니다.

지금 남조선당국자들은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에 대하여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남조선인민들과 각계 인사들이 북으로 오려고 하는것을 가로막고있으며 숭고한 통일의 념원을 안고 북에 왔다간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 처형하고있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진정으로 민족적화합과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려고 한다면 그들자신이 쌓아놓은 콩크리트장벽부터 허물어야 하며 조국통일을 위한 접촉과 상봉에 장애로 되는 악법들을 페지하고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할것입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 (발취) -당선전선동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1955년 12월 28일-

주체111(2022)년 5월 11일 웹 우리 동포

 

다음으로 나는 사상사업에서 제기되는 당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말하려 합니다.

4월전원회의문헌학습을 돕기 위하여 당중앙위원회에서 우리 혁명의 성격과 과업에 대한 제강을 내려보낸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는 더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우리 나라 혁명의 전도에 대하여 다시한번 강조하려 합니다. 우리 혁명에는 두가지 전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평화적으로 통일되는것이 하나의 전도요, 큰 전쟁으로 인하여 제국주의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조건하에서 나라의 통일이 실현되는것이 다른 하나의 전도입니다.

우리는 물론 첫째 전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북반부에서 건설을 잘하며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을 잘하는 이 두가지 문제에 귀착됩니다.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촉진하여 민주기지를 강화하며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을 잘하여 남반부인민들을 해방투쟁에 궐기시킨다면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수 있습니다.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이란 남반부인민들에 대한 북반부의 영향을 강화하여 남반부의 광범한 인민대중이 우리를 지지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잘해야 합니다. 북반부에서 경제건설을 잘하여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경제토대를 강화하며 전체 인민을 우리 당 주위에 단결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리승만이 제아무리 발악해도 북반부의 사회주의건설에 의하여 부단히 고무되고있는 남반부인민들의 투쟁기세를 꺾지 못할것입니다.

얼마전에 남반부에서 들어온 어떤 사람이 《북반부에는 인구가 300만밖에 없고 평양은 재더미가 되여 아무것도 없다고 리승만이 선전했는데 정작 와보니 대동강다리는 원상대로 복구되였고 평양은 이전보다 훨씬 더 훌륭한 도시로 건설되고있다. 리승만이 개소리를 쳤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건설을 잘하면 바로 이와 같이 되는것입니다.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련석회의가 열렸던 1948년 당시 우리는 북반부에서 그리 크게 해놓은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조선에서 리승만과 김성수를 제외하고는 우익인사들까지도 다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이 련석회의의 의의는 매우 큽니다. 그때 북반부에 들어왔다가 남은 사람이 많습니다.

김구는 말하기를 《북조선에 와보니 마음에 든다. 상해에서도 남조선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그가 만나보았다면 물론 화요파나 엠엘파였을것이다.) 북조선공산주의자들은 다르다. 나는 이전에 공산주의자들이란 협애하고 몹쓸 사람들인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와보니 당신들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여 얼마든지 합작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나는 결단코 당신들과 합작하겠다. 이제 늙은 나에게는 정권욕망은 없다. 내가 만일 남조선에 나가지 않는다면 리승만은 틀림없이 내가 억류당하였다고 주장할터이며 또 내자신의 소원으로 말한다 하더라도 나가서 좋은 선전을 하여야 할터이니 불가불 나가기는 나가야 하겠다. 내가 미국놈들과 합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뒤에 내가 다시 들어오면 촌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 하니 사과밭이나 하나 주기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김규식도 같은 뜻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후 김구는 미국놈들을 반대하여 싸웠습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김구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본래 제국주의도 반대하고 공산주의도 반대하였는데 공산주의자들과 한번 담판이나 해본다고 왔던것입니다. 공산주의를 불구대천의 원쑤로 알고있던 김구조차 조국건설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대하여 자기의 생각을 고치게 되였는데 하물며 남조선의 로동자, 농민과 민족적량심이 있는 인사들이 북반부에 와본다면 어떻게 될것인가를 넉넉히 짐작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방전에 쏘련에 가보지도 못하고 쏘련에서는 로동계급이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말만 듣고도 쏘련을 무한히 동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남반부인민들이 어떻게 같은 민족인 우리 북반부인민들의 사회주의건설을 동경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렇기때문에 북반부에서 건설을 잘하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잘하고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을 잘하여 남반부인민들이 미제국주의와 리승만통치제도를 반대하여 일떠설 때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은 실현될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내부적요인입니다.

나라의 평화적통일에 유리한 외부적요인을 또한 고려해야 할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5~10년동안 평화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면 쏘련은 물론 6억이상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위력은 비할바 없이 강대해질것이며 전체 사회주의진영의 력량이 더욱 강화될것입니다.

사회주의진영의 위력이 장성하는것과 함께 식민지예속국가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이 더욱 강화되고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민족적독립을 달성하였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버마 등 아세아의 독립국가들과 아랍국가인민들은 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며 평화를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제국주의 특히 미제국주의에 대한 심대한 타격으로 됩니다. 평화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력량이 더욱 강화되면 미제국주의자들은 마침내 조선에서 물러가지 않을수 없게 될것입니다.

물론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투쟁은 장시일을 요하는 간고한 투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강해지고 국제적으로 평화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력량이 더욱 강화되면 우리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조선에서의 혁명발전과 조국통일의 하나의 전도입니다.

조국의 통일문제는 평화적방법이 아니라 전쟁에 의하여 해결될수도 있습니다. 만일 제국주의자들이 세계적범위에서 큰 전쟁을 도발한다면 불가불 우리는 싸워야 하는데 그때에는 우리 힘으로도 조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과 싸워 능히 승리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독으로 미제국주의를 상대로 싸우기는 좀 힘들겠지만 그들이 세계적범위에서 자기의 힘을 분산시키지 않을수 없을 때에는 우리는 비교적 쉽게 그들을 타승할수 있을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조선에서 미제국주의세력을 소탕하고 나라의 통일을 달성하게 될것입니다. 이것이 조선혁명의 발전과 나라의 통일의 다른 하나의 전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도를 원하지 않으며 첫째 전도 즉 평화적방법에 의한 통일을 념원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3. 카륜회의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2 제 4 장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

주체111(2022)년 5월 11일 웹 우리 동포

 

6월하순이 되자 동무들은 약속한대로 카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카륜에는 이미 우리의 혁명조직들이 들어가있었다. 우리는 1927년경부터 만주각지로 쉽게 래왕할수 있는 교통의 분기점에 활동기지를 하나 만들어둘 필요를 느끼고 공청핵심들을 파견하여 이 일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카륜에서 회의를 하려고 결심하게 된것은 이곳이 교통상 편리한 지점에 자리잡고있다는 점과 회의참가자들의 신변안전과 비밀보장을 전적으로 담보할수 있는 은페된 활동기지라는 점을 고려해서였다.

카륜은 반일운동자들의 래왕이 잦은 고장이였지만 적들에게는 로출되지 않은 곳이였다. 이 고장 인민들이 또한 우리의 일이라면 후원을 아끼지 않았기때문에 회의장소로는 리상적인곳이였다.

내가 카륜에 도착하니 소년탐험대 총대장인 정행정이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내가 카륜에 갈 때면 늘 그가 역에 마중을 나왔다가 나와 동행하군 하였다.

카륜에 와보니 돈화나 길림보다는 분위기가 좀 평온하였다.

5.30폭동이 휩쓸고 지나간 뒤여서 그 당시 간도의 공기는 대단히 험악하였다. 그런데다가 일본군대의 동만출병이 박두한것과 관련하여 정세는 더 긴장해졌다. 일제가 간도에 군대를 들이밀려고 한것은 이 일대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혁명운동을 진압하고 만몽을 점령하며 쏘련을 침공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자는데 있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라남에 주둔하고있는 일본군 제19사단 사단장 가와시마중장이 룡정, 연길, 백초구, 두도구지방을 순시하고있었다. 국민당 길림군참모장과 민정청 청장도 때를 같이하여 동만을 시찰하였다.

간도지방의 혁명조직들이 동만으로부터 일본군 중장과 국민당 참모장, 민정청 청장을 내몰라고 호소한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나는 그때 카륜에 가서 진명학교 교원들인 류영선과 장소봉의 집에 숙소를 정하였다.

장소봉은 진명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동아일보》지국장의 일도 겸하여보았다. 그는 차광수처럼 글도 잘 쓰고 식견도 높은데다가 일도 잘하여 동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것이 흠이였다.

동무들이 충고를 주면 자기 안해가 지나치게 봉건적인 녀자여서 도무지 뜻이 맞지 않는다고 타발하였다. 장소봉이 가정생활에 취미를 붙이게 하느라고 내가 여러번 설복도 하고 비판도 하였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장소봉은 조선혁명군이 조직된후 무기를 구입하려고 장춘에 나갔다가 경찰에 체포되여 전향하였다. 한때는 나에 대한 《귀순공작》에도 동원되였다고 한다.

카륜을 혁명화하는데서 김혁과 장소봉은 특별히 많은 공로를 세웠다. 그들은 이 지방의 유지들과 힘을 합쳐 학교와 야학을 세우고 그것을 거점으로 교육운동을 벌리였으며 농민회, 청년회, 소년회, 부인회 등 종래의 계몽단체들을 농민동맹, 반제청년동맹, 소년탐험대, 부녀회 등의 혁명적인 조직들로 개편하여 각계각층 군중을 항일혁명의 담당자로 훌륭히 교양육성하였다.

김혁의 주관하에 잡지 《볼쉐위크》가 창간된곳도 바로 카륜이였다.

나는 카륜에 가서도 사도황구에서처럼 조선혁명의 진로를 두고 사색을 계속하였다. 한달가량 사색하고 정리한것을 종합해보니 퍼그나 부피가 큰 글이 되였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것은 우리 나라의 민족해방투쟁이 새로운 지도리론을 요구하고있는 현실적절박성을 뼈에 사무치도록 통감하였기때문이다.

새로운 지도리론이 없이는 혁명을 한걸음도 전진시킬수 없었다.

자주성을 요구하는 피압박인민들의 혁명적진출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도 세계적규모에서 더욱 더 확대되였다. 지구상에서 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는 피압박인민들의 해방투쟁이 가장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던 대륙은 아세아였다.

아세아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중심무대로 된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이무렵에 와서 아세아후진국들의 리권을 강탈하기 위한 침략을 더욱 로골화하였기때문이며 동방의 여러 나라 인민들이 과감히 떨쳐일어나 도처에서 민족적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결사적으로 전개하였기때문이였다.

외세를 구축하고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새 사회에서 살아가려는 동방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은 그 어떤 힘으로써도 멈춰세울수 없었다.

쏘련, 몽골혁명의 약진에 발을 맞추어 중국, 인도, 윁남, 버마, 인도네시아 등 아세아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의 억센조류는 격랑처럼 끓어번지였다. 비폭력불복종운동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도의 거리에서 방직공들이 붉은기를 들고 시위를 단행한것도 이무렵이였다.

중국인민은 제2차 국내전쟁의 불길속에서 1930년대를 맞이하였다.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 여러 나라들에서 벌어지고있는 혁명투쟁과 국내인민들의 적극적인 진출은 우리를 끝없이 흥분시키고 분발시켰다.

당을 내오고 옳은 지도리론만 내놓는다면 인민을 궐기시켜 얼마든지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할수 있다는 자신심이 우리의 마음속에 움직일수 없는 신념으로 뿌리를 내리였다.

이 시기에 와서도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무대에는 각당, 각파의 립장과 리해관계를 대변하는 여러가지 주의주장이 등장하여 대중을 이렇게도 이끌고 저렇게도 이끌고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리론들은 이러저러한 시대적, 계급적 제한성을 면치못하고있다.

그때까지의 민족해방투쟁에서 우리가 그중 높은 형태의 투쟁이라고 본것은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이였다. 이 투쟁에는 민족주의좌익진영에서 가장 적극적인 반일독립운동자들과 애국자들이 참가하였다. 그들이 독립군부대를 조직해가지고 무장투쟁을 시작한것은 독립전쟁을 해야 나라를 찾을수 있다고 믿었기때문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부대에 의한 군사활동으로써만 독립을 쟁취할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직접적인 테로전술만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을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도라고 주장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군대를 잘 훈련시켜두었다가 쏘련, 중국,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일본과 전쟁을 할 때 그들과 련합하여 독립을 이룩하는것이 조선의 실정에 맞는 전략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주장들은 어느것이나 다 일제와의 혈전을 지향하고있었다.

그러나 독립군의 투쟁은 이러한 초지를 끝가지 관철할만한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갖추지 못하였고 독립전쟁을 끝까지 해나갈수 있는 강력하고 세련된 지도부를 가지지 못하였으며 그 투쟁을 인적, 물적, 재정적으로 뒤받침할수 있는 튼튼한 대중적지반을 꾸리지 못하였다.

개량주의리론가운데서는 《실력양성론》이라는 안창호의 《준비론》이 독립운동자들의 화제거리로 되고있었다.

우리는 안창호란 인물자체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에 일생을 고스란히 바친 청렴하고 량심적인 애국지사로 존경하고있었지만 그의 리론에 대해서는 환영하지 않았다.

상해림시정부의 비폭력적독립운동로선도 대중의 지지와 공감을 받지 못하였다.

상해림시정부가 조직된지 얼마 안되여 사람들의 실망을 자아낸 존재로 된것도 이 단체가 시종일관 한가닥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폭력적인 외교로선에 매달려 세월을 보냈기때문이였다. 그런것만큼 군사로선을 절대화하고있던 독립군은 이것을 한사코 랭대하였다.

조선을 국제련맹의 위임통치하에 두어달라고 애걸한 리승만의 청원에 대해서는 무슨 로선이라고 말할것도 없으며 민족주의우파가 제창한 《자치론》역시 민족의 독립정신에 배치되는 하나의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1925년에 창건된 조선공산당도 조선의 실정에 맞는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세우지 못한채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총괄적으로 말하여 선행세대의 전략이나 로선이 가지고있는 보편적인 약점은 인민대중의 힘을 믿지 않고 외면한데 있었다.

선행세대의 운동자들은 한결같이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진리를 무시하고있었다. 수백만대중의 조직된 힘에 의거해야 일제를 타도할수 있겠는데 우리 나라의 반일운동자들은 혁명도 독립전쟁도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공산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이런 립장에서 기초축성은 별로 하지 않고 몇몇 상층인물들로써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당을 만들었으며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3인1당, 5인1파식으로 서로 분렬되여 여러해동안 헤게모니싸움을 벌렸다.

선행세대의 로선이나 전략들은 또한 조선의 산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지 못한 심중한 약점을 가지고있었다.

나는 조선의 산 현실에 부합되는 옳은 지도리론을 내놓자면 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였다. 지도리론을 마련한다고 하여 10월혁명의 경험같은것을 통채로 받아들여도 안되였고 국제당이 그 어떤 만병통치의 처방을 가져다줄것같이 기대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도 안되였다.

《우리가 믿을것은 인민대중의 힘밖에 없다. 2천만의 힘을 믿고 그 힘을 하나로 묶어세워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혈전을 벌리자.》

나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자주 울리였다.

나는 이런 충동을 안고 오늘 우리가 주체라는 이름을 달아서 부르고있는 사상을 보고의 구절구절에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보고에 담으려고 한 내용들은 모두 우리 혁명의 전도와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들이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조국광복회10대강령 -1936년 5월 5일-

주체111(2022)년 5월 5일 웹 우리 동포

 

1.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2. 재만조선인들은 조중민족의 친밀한 련합으로써 일본 및 그 주구 《만주국》을 전복하고 중국령토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진정한 민족자치를 실행할것.

3. 일본 군대, 헌병, 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

4. 일본국가 및 일본인 소유의 모든 기업소, 철도, 은행, 선박, 농장, 수리기관 및 매국적친일분자의 전체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독립운동의 경비에 충당하며 일부분으로는 빈곤한 인민을 구제할것.

5. 일본 및 그 주구들의 인민에 대한 채권, 각종 세금, 전매제도를 취소하고 대중생활을 개선하며 민족적 공, 농, 상업을 장애없이 발전시킬것.

6.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전취하고 왜놈의 공포정책실현과 봉건사상장려를 반대하며 일체 정치범을 석방할것.

7. 량반, 상민 기타 불평등을 배제하고 남녀, 민족, 종교 등 차별없는 인륜적평등과 부녀의 사회상 대우를 제고하고 녀자의 인격을 존중히 할것.

8. 노예로동과 노예교육의 철페, 강제적군사복무 및 청소년에 대한 군사교육을 반대하며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 의무적인 면비교육을 실시할것.

9. 8시간로동제실시, 로동조건의 개선, 임금의 인상, 로동법안의 확정, 국가기관으로부터 각종 로동자의 보험법을 실시하며 실업하고있는 근로대중을 구제할것.

10. 조선민족에 대하여 평등적으로 대우하는 민족 및 국가와 친밀히 련합하며 우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선의와 중립을 표시하는 나라 및 민족과 동지적친선을 유지할것.(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로동계급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투쟁에서 핵심부대가 되자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에서 한 연설 주체70(1981)년 11월 30일-

주체111(2022)년 5월 1일 웹 우리 동포

 

동지들!

오늘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는 우리 나라 전체 로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서 자기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고있습니다. 전당과 전체 인민이 이 대회를 열렬히 축하하고있으며 대회의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하고있습니다.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는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투쟁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됩니다. 대회는 우리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조선로동계급의 단결된 위력과 높은 혁명정신을 온 세상에 널리 시위할것이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체 로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힘있게 불러일으킬것입니다.

나는 대표동지들의 높은 정치적열의와 적극적인 참가밑에 대회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있는데 대하여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우리 당의 옳바른 령도밑에 직업동맹은 지난 기간 당과 혁명앞에서 지닌 자기의 숭고한 사명과 무거운 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여왔습니다. 직업동맹은 우리 당의 믿음직한 대중교양단체로서 동맹원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웠으며 그들을 당이 내세운 혁명과업수행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습니다.

근로대중속에서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린 결과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의 사상정신적풍모에서는 커다란 전변이 일어났습니다. 전체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이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확고한 혁명적신념으로 삼고있으며 당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간직하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고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로동계급속에는 개인의 리익보다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며 혁명하는 나라, 투쟁하는 시대의 로동계급답게 혁명적으로 일하며 생활하는 기풍이 차넘치고있습니다.

직업동맹은 지난 기간 강선의 로동계급이 지펴올린 천리마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고 근로대중속에서 천리마운동을 힘있게 벌려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우리의 로동계급은 당과 혁명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안고 천리마에 속도전을 가한 기세로 힘차게 전진하여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켰습니다. 우리의 영웅적로동계급의 헌신적로력투쟁에 의하여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이 일어나고 만년대계의 창조물들이 일떠섰으며 나라의 위력이 더욱 강화되였습니다.

나는 지난 기간 우리의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이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올린 커다란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자기의 헌신적인 투쟁과 창조적로동으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키고 조선로동계급의 전투적위력과 주체조선의 영예를 빛내인 전체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동지들!

오늘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있으며 우리 혁명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있습니다.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는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데 대한 웅대한 강령을 내놓았습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총적임무이며 로동계급이 책임지고 끝까지 수행하여야 할 력사적위업입니다.

로동계급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모든 근로자들을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에서 해방하고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여야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완수할수 있습니다.

로동계급은 혁명의 령도계급이며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떠메고나갈 우리 혁명의 핵심부대입니다. 로동계급의 령도적역할과 핵심적활동을 떠나서는 우리 혁명을 전진시킬수 없으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력사적위업을 완성할수 없습니다.

로동계급은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깊이 자각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하여서는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으로 만들고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로동계급의 모양대로 개조하여 공산주의의 사상적요새와 물질적요새를 성과적으로 점령할수 있습니다.

3대혁명을 힘있게 벌리는것은 직업동맹의 기본과업입니다. 직업동맹은 3대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직업동맹은 사상혁명을 강화하여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을 철저히 혁명화하여야 합니다.

사상혁명에서 기본은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것입니다.

우리 당의 주체사상은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속에서 창시되고 그 정당성이 확증된 불패의 혁명사상이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투쟁에서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지도적지침입니다. 로동계급은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언제나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삼고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합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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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6차회의에서 채택 1976년 4월 29일-

주체111(2022)년 4월 29일 웹 우리 동포

 

제1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의 기본

 

제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어린이들은 조국의 미래이며 공산주의건설의 후비대이며 대를 이어 혁명할 우리 혁명위업의 계승자들이다.

제2조 어린이들을 사회적으로 키우는것은 사회주의국가의 중요한 시책의 하나이며 사회주의교육학에 근거한 교육방법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어린이들을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운다.

제3조 어린이들이 비록 탁아소에 갈 나이라 하더라도 탁아소에 보내지 않고 자기 집에서 키우는것은 그들 부모의 자유에 속한다.

제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에서 이룩된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법이다.

제5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조선로동당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삼는다.

제6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우리 나라에 전반적으로 확립된 선진적인 보육교양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켜 모든 어린이들을 주체형의 혁명적 새 인간으로 키우며 녀성들을 어린이를 키우는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하는 신성한 사업을 실현하며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며 온 사회를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 력사적위업수행에 이바지한다.

제7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어린이들이 가장 훌륭하게 마련된 현대적인 보육교양조건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자라도록 온갖 배려를 돌린다. 이 배려는 우리 나라에 세워진 우월한 사회주의제도와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 그리고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끊임없이 높이는것을 자기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삼고있는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사회주의적시책에 의하여 확고히 담보되며 나라의 경제토대가 강화되는데 따라 끊임없이 증대된다.

제8조 국가는 어린이보육교양사업에 대한 지도와 관리에서 우가 아래를 도와주고 정치사업을 앞세워 보육원, 교양원들과 양육기관 복무자들의 자각적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의 군중로선을 관철한다.

제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평화와 민주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주의를 위하여, 과학, 문화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망명하여온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어린이들도 부모의 희망에 따라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의 부담으로 키워준다.

제10조 이 법에서 어린이라 함은 세상에 태여난 때로부터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어린이를 말한다.

 

제2장 국가와 사회적부담에 의한 어린이양육

 

제11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어린이들을 보육교양하는 사업에서 모든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하는 주체사상의 요구를 철저히 관철한다.

제12조 국가와 사회협동단체들은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라는 원칙에 따라 어린이보육교양사업에 필요한 모든것을 책임지고 보장한다.

제13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훌륭한 보육교양설비와 체육 및 놀이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탁아소와 유치원을 제일 좋은 자리에 건설하고 꾸려준다.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 악기, 놀이감, 출판물, 교구비품 등을 갖추어준다.

제14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거리와 마을, 어린이들이 있는 곳곳에 아동공원과 놀이터를 꾸리고 여러가지 놀이시설을 갖추어준다.

제15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태여나자부터 식량을 공급받는다.

제16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 젖, 고기, 알, 과일, 남새 등과 당과류를 비롯한 여러가지 가공된 식료품을 보장한다.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에게 공급하는 식료품의 값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부담한다.

제17조 국가는 어린이옷, 신발과 여러가지 어린이용품을 제일 좋게 만들며 그에 대해서는 생산비를 보상하는 정도 또는 그보다 낮게 값을 정하고 그 차액은 국가에서 부담한다.

제18조 국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수 없는 어린이들을 육아원과 애육원에서 키운다.

제19조 국가는 혁명렬사, 애국렬사,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의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며 그들의 보육교양에 깊은 배려를 돌린다.

제20조 국가는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들을 특별히 보호한다.

국가는 녀성들에게 산전산후휴가를 보장한다. 산전산후휴가기간의 로임과 식량, 분배몫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부담한다.

국가는 산원시설을 비롯한 의료기관을 통하여 임신한 모든 녀성들을 제때에 등록하고 그들에게 체계적인 의료봉사와 해산방조를 무료로 주며 산후의 건강을 보호한다.

국가는 임신한 녀성들에게 그에 맞는 헐한 일을 시키며 어린이들을 가진 어머니들에게는 로동시간안에 젖먹이는 시간을 보장한다.

국가는 여러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들에게는 로동시간을 줄이고 옹근로임을 준다.

제21조 국가는 한꺼번에 여러 어린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와 그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베푼다.

한꺼번에 둘이상의 어린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에게는 유급으로 일정한 기간 산후휴가를 더 준다.

삼태자에게는 옷과 포단, 1년분의 젖제품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학교에 갈 나이에 이르기까지 양육보조금을 주며 어린이와 어머니에게 의료일군을 따로 담당시켜 그들의 건강을 책임적으로 돌본다.

 

제3장 문화적이며 과학적인 어린이보육

 

제22조 나라의 꽃봉오리인 어린이들을 튼튼하고 슬기롭게 키우는것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숭고한 의무이다.

국가는 어린이들을 문화적으로, 과학적으로 키우는데 깊은 관심을 돌린다.

제23조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어린이들을 어머니의 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피며 집단보육규범과 위생방역규범의 요구에 맞게 키운다.

어린이들의 생활환경을 깨끗이 꾸리고 방안의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보장한다.

어린이들을 위생적으로 거두어주고 공기, 해빛, 물과 의료기구, 체육기재에 의한 몸단련을 나이와 체질에 맞게 정상적으로 시켜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제24조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영양기준에 따라 여러가지 주식과 새참을 어린이들의 나이와 특성에 맞게 충분히 먹인다.

제25조 국가는 탁아소, 유치원의 어린이들에게 체계적인 의료봉사를 준다.

어린이들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한 모든 의료봉사는 우리 나라에서 실시하고있는 전반적무상치료제에 따라 무료로 한다.

탁아소, 유치원마다 의료일군들을 배치하고 의료기구와 의약품을 공급하며 전문의료기관들을 통하여 어린이들의 병을 제때에 예방치료한다.

제26조 국가는 어린이들의 건강을 철저히 보호하며 녀성들의 사회적활동을 적극 보장하기 위하여 탁아소가 있는 모든 곳에 아동병동을 둔다.

아동병동에서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앓는 탁아소의 어린이들을 받아 치료한다.

제27조 국가는 온천과 약수터, 바다가, 경치좋은 곳들에 어린이들을 위한 료양시설들을 잘 꾸려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제28조 국가기관과 보육교양기관들은 어린이들의 건강과 발육상태를 종합분석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우며 어린이보육사업을 과학화하고 끊임없이 발전시킨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즈음하여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에서 한 연설 주체21(1932)년 4월 25일-

 

주체111(2022)년 4월 25일 웹 우리 동포

 

동무들!

오늘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려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달성하기 위하여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게 됩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조국을 강점한지 20여년이 됩니다. 오늘 우리 나라 삼천리금수강산은 일제놈들의 말발굽밑에서 완전한 식민지로 되였고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일제놈들의 식민지노예가 되여 가혹한 착취와 압박을 받고있습니다. 우리 조국과 민족의 비운은 일제의 대륙침략야망이 확대되는데 따라 더욱더 커가고있습니다.

지난해 9월에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만주를 강점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륙침략을 확대하기에 광분하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백색테로를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고있습니다.

일제놈들은 조선을 대륙침략의 《견고한 후방》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 인민들로부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초보적인 정치적자유마저 모조리 빼앗고 그들의 혁명적진출을 총칼로 가로막아나서고있으며 도처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대중적으로 검거투옥, 학살하고있습니다.

조선인민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야수적인 만행은 동만을 비롯한 만주땅에서도 극도에 이르고있습니다. 일제놈들은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없애버리려고 매일과 같이 조선사람들이 사는 부락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잡아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략탈하는 책동을 미친듯이 감행하고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빼앗긴 우리 동포들은 이국땅에 와서까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있습니다. 정세는 우리 인민들로 하여금 앉아서 죽느냐, 삶을 위하여 일어나 싸우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그 어느 하나를 택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지금 일제의 야수적만행에 항거하여 결연히 일어나 도처에서 싸우고있습니다.

로동자, 농민들은 일제의 파쑈적폭압에 폭력적진출로 대답하고있으며 애국의 피끓는 청년들은 삼삼오오 조를 무어 새로운 투쟁의 길을 찾고있습니다. 춘궁기에 들어선 지금 두만강연안의 연길, 왕청, 화룡, 훈춘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 10여만명의 농민들이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의 지도밑에 일제와 그 주구 및 반동적지주를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섰습니다.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중국인민들속에서도 힘차게 벌어지고있습니다. 중국인민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주강점을 반대하여 반일구국운동을 벌리고있으며 동만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 항일구국군, 항일의용군과 같은 반일부대들을 조직하고 일제와 싸우고있습니다.

이 모든 정세발전은 우리가 이미 2년전에 장춘현 카륜에서 제시한 무장투쟁로선의 정당성을 확증하여주고있습니다. 사실상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이 혁명무력을 대대적으로 조직하여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며 적당한 시기입니다.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과 혁명적인민들은 장기간의 피어린 투쟁을 통하여 인민유격대를 조직할수 있는 토대를 닦아놓았습니다.

우리는 무장투쟁의 준비를 위한 첫 사업으로서 1930년 7월에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습니다. 조선혁명군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맑스-레닌주의적무장조직이였습니다. 조선혁명군 대원들은 도시와 농촌의 광범한 지역에 진출하여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속에서 정치 및 군사활동을 힘있게 벌려 유격대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후 우리는 각 지방에 공산주의청년동맹을 비롯한 혁명조직을 수많이 결성하고 반군사조직인 적위대도 광범히 조직하였으며 동만의 각지에서 비록 크지는 못하지만 유격대소조들을 조직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유격대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을 적극 다그침으로써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할수 있는 튼튼한 밑천을 마련하여놓았습니다.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조직적골간을 키워내기 위한 사업에 큰 힘을 넣고 조선혁명군 대원들, 공청원들과 반제청년동맹원들 속에서 조직생활을 강화하여 그들의 사상의지를 혁명적으로 더욱 튼튼히 단련하였으며 혁명투쟁에 필요한 귀중한 경험을 축적하도록 하였습니다.

반일인민유격대조직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나선것은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것이였습니다.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일으킨 5. 30폭동의 후과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민과 중국인민간에 리간을 조성하고 만주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조작한 《만보산사건》으로 인하여 만주에서는 한때 일부 중국사람들과 중국인반일부대들이 조선인민과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인민과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적대시하고 모해하는 행동을 하였으며 조선에서는 일제의 사촉을 받은 일부 불량배들이 소위 《중국인배척운동》을 벌림으로써 조중인민간의 관계는 매우 험악한 상태에 이르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인반일부대들속에 들어가 희생적이고 인내성있는 사업을 벌리고 일제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는 실천적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조중인민간의 관계를 일정하게 개선하고 우리를 적대시하던 일부 중국인반일부대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그릇된 인식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반일투쟁을 벌려나갈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인민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벌려 두만강연안일대의 수많은 농촌지구에 무장투쟁을 벌릴수 있는 혁명화된 대중적지반도 튼튼히 닦아놓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민유격대조직을 위한 준비사업과정에 달성한 이 모든 성과에 토대하여 우리 나라에서 첫 맑스-레닌주의적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그 창건을 선포하게 됩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고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는 로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써 조직되였으며 진정으로 인민의 리익을 보호하는 혁명적인 무장력입니다.

인민유격대의 목적과 사명은 조선에서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조선인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달성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을 마련하게 되였으며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일제의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신음하고있는 조선인민에게 큰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그들로 하여금 반일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함으로써 반일통일전선로선과 맑스-레닌주의당창건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게 될것입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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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항일투사들은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첫 세대들이다 -강반석어머님탄생 100돐기념 오찬회참가자들과 한 담화 주체81(1992)년 4월 21일-

주체111(2022)년 4월 21일 웹 우리 동포

 

오늘은 강반석어머님탄생 100돐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만경대에 계실 때부터 아버님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드렸으며 독립운동자들의 시중을 드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시였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혁명사업을 위하여 국내는 물론, 중국의 상해와 간도지방을 비롯하여 여러곳을 다녀오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독립운동자들을 데리고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무시로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혁명활동에 참가하시면서 나와 나의 동무들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주시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 때 있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앓는 몸이였지만 우리가 창건한 반일인민유격대를 보려고 동생과 함께 유격대원들이 정렬해있는 곳으로 나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유격대원들의 름름한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다가 그들이 어깨에 멘 총을 만져보시며 이런 총을 가지면 일제와의 싸움을 잘할수 있을것이다, 독립군들처럼 닭다리같은 총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인민들한테서 군자금이나 모아가지고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자네들의 어머니들이 오늘의 경사를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조선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머저리구실을 하거나 몹쓸짓을 하는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 울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한 장한 싸움길에 나선것을 보면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때 유격대원들은 어머님의 고무적인 말씀을 들으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습니다.

우리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20살안팎의 열혈청년들이 유격대에 입대하려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이 자리에 참가한 최성숙동무도 우리가 유격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녀의 몸으로 목릉현에서 우리를 찾아 떠났는데 후에 왕청에서 만났습니다.

우리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며칠이 지나서 5. 1절을 맞이하였는데 그때 나는 부대를 거느리고 안도현성에 입성하여 보무당당히 열병행진을 하였습니다. 그후 나는 부대를 거느리고 남만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내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인차 남만으로 진출한것은 그곳에 있는 량세봉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독립군사령인 량세봉은 우리 아버님과 친한 사이였기때문에 남만에 가면 그의 독립군부대와 통일전선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남만으로 떠나기에 앞서 동무들이 모아준 돈으로 좁쌀 한말을 사가지고 어머님이 계시는 집에 들렸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몹시 앓고있었지만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시였습니다. 정작 남만으로 떠나자니 앓고있는 어머님이 걱정되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집둘레를 빙빙 돌면서 선뜻 집을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쓰는 법은 없으니 집걱정은 하지 말고 부대를 거느리고 빨리 떠나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동무들이 혁명영화 《조선의 별》을 보아서 알겠지만 량세봉의 독립군부대에서는 일제놈들이 박아넣은 밀정이 참모노릇을 하고있었는데 그놈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은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놈은 우리 유격대원들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한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떠나 류하, 몽강, 안도를 거쳐 왕청으로 갔습니다.

내가 남만원정에서 돌아와 집에 들려보니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의 병은 독립운동자들을 시중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여 생긴 병이였는데 그때는 그저 가슴앓이라고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암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의 나이는 40살이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다가 그처럼 바라던 조국광복의 날을 보지 못하고 너무나 일찌기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나는 오늘이 어머님탄생 100돐이 되는 날이므로 항일혁명투사들을 모두 참가시키고 식사를 같이하려고 하였는데 며칠후 조선인민군창건 60돐때 모일 기회가 있기때문에 이렇게 녀성항일투사들, 항일혁명의 녀성연고자들, 녀성간부들과만 자리를 같이하였습니다.

동무들이 나의 생일 80돐과 내가 대원수로 된것을 축하하고 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는데 감사합니다.

동무들은 4. 15를 계기로 하여 내가 대외사업을 너무 많이 하기때문에 나의 건강이 념려된다고 하는데 일없습니다. 이번 4. 15행사에는 세계 130여개 나라에서 온 420여개 대표단과 수천명의 외국손님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나를 축하하기 위하여 찾아온 외국손님들에게 집체적으로 연회를 한번 차려주는것으로 그들과의 사업을 대치할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찾아온 손님들인것만큼 내가 좀 힘들더라도 따로따로 다 만나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내가 만나주어야 할 대표단이 여러개 남아있습니다.

동무들이 텔레비죤화면을 통하여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는데 나는 건강합니다. 내가 이미 오래전에 60청춘, 90환갑이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원래 60환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나이가 90살이 되지 못한것만큼 환갑을 쇠지 못한셈입니다.

내가 80살이 되는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계속해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의 덕분입니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은 언제나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보호해주었으며 성심성의로 도와주었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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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5. 조국광복회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4  제 11 장 혁명의 분수령-

주체111(2022)년 4월 16일 웹 우리 동포

 

새 사단의 탄생으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더욱 강화발전된것으로 하여 우리의 앞길에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과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준비를 보다 폭넓고 깊이있게 전개할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였다. 새 사단의 출현은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하며 각계각층의 애국력량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군사정치적으로 뒤받침해주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되였으며 카륜회의이후부터 우리가 줄기차게 전개해 온 통일전선운동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수 있는 광활한 전망을 열어놓았다.

남호두회의 이후시기부터 우리의 통일전선운동은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의 조직을 위한 활동에로 집중되였다. 하나의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을 내오고 그 산하에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튼튼히 묶어세우는것은 우리 혁명발전의 견지에서 보나 내외정세의 요구로보나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나섰다.

자주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하는 전민항쟁에 있고 민족대단결이 자력독립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라는것은 우리가 일찍부터 주장해온 사상이였다. 통일전선은 주체확립과 더불어 항일혁명투쟁의 초시기부터 견지해온 가장 중요한 리념의 하나였다.

민족대단결과 통일전선의 리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여러갈래의 민족주의세력과 반일애국력량과의 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바쳐왔고 중국땅에서 투쟁하는 조건에 맞게 중국의 광범한 반일력량, 공산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 우리가 쌓아올린 적지 않은 성과와 경험은 통일전선운동의 폭넓은 발전을 위해서 값있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우리는 이런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통일전선운동을 전민족적인 범위에서 벌려나갈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것과 함께 그것을 맡아 수행할수 있는 핵심과 주체적력량을 빨리 키워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였다.

민족의 모든 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시도는 1930년대 이전시기에도 있었다.

조선의 근대력사에서 주의와 주장을 초월하는 민족의 대동단결문제가 처음으로 론의되기 시작한것은 1920년대 중기이후부터였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무대에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두개의 세력이 존재하고있었다. 일제의 폭정과 수탈이 강화될수록 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하던 선각자들은 애국력량의 단합과 민족대단결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런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초기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과의 련합을 모색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진영과의 제휴를 시도하였다.

민족해방과 민족자주권의 부활에 동일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두 진영 지도자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1927년 2월에 서울에서는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통일전선조직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였다. 당대의 애국인사들과 사가들이 신간회를 가리켜 민족단일당이라고도 부를만큼 이 단체에 대한 민중의 기대와 신뢰는 컸다. 신간회가 창립되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세력의 반목대립에 불만을 느끼고있던 대중은 환호를 올렸다.

주의주장의 차이로 하여 사이가 버그러졌던 공산주의운동자들과 민족운동자들이 때늦게나마 통일단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단일전선기관을 내온것은 민중의 념원과 시대적요구에 부합되는 하나의 큰 경사였다.

우리 나라 민족협동전선의 첫 산아라고 할수 있는 신간회는 그 취지와 목적이 애국적이고 반일적이였다.

민족을 대표한다고 말할수 있는 량대세력의 공동전선이 실현됨으로써 신간회는 발족한 순간부터 전민족을 대표하는 거족적인 유일조직으로 되였다. 이 단체의 창립취지는 그 발기인들이 《고목신간》이라는 뜻에서 신간회라고 한 명칭자체에 잘 반영되여있다. 《고목신간》이란 오랜 나무에서 새 줄기가 자라난다는 뜻이다. 명칭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신간회는 새로운 기초우에서의 민족력량의 총집결을 지향하였다.

리상재, 홍명희, 허헌과 같이 민중의 인망이 높은 진보적 애국지사들에 의하여 발기되고 추진되고 운영된 신간회운동은 민족의 정치적경제적각성을 촉진하고 민족적단결을 공고히 하며 일체 기회주의를 부인한 강령의 내용도 혁신적이고 혁명적이였으며 회원들의 직업별 구성도 다양하고 광폭적이였다. 신간회에는 로동자, 농민, 려관업자, 사진업자, 기자, 상업가, 의사, 회사원, 교원, 대서업자, 목축업자, 인쇄업자, 어업자, 운수업자, 직공, 재봉공, 학생, 변호사, 저술가, 은행원, 교역자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3만 7,000여명이 참가하였다.

좌우합작으로 민족의 총력을 하나로 집결시키려고 한 그 훌륭한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신간회는 1931년 5월에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신간회의 해산원인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공산주의운동자들은 그 해산의 원인을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찾으려 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고 하였다. 한때 일부 력사가들은 신간회가 해산된 근본적인 원인을 상층의 분렬과 개량주의적경향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이 조직의 애국적성격과 민족사적의의자체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나는 그런 허무주의적견해에 동의할수 없었다. 해산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놀음을 하는것은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신간회 상층에 개량주의자들이 더러 있었다고 하여 이 조직자체를 부정해서도 안되며 그 민족사적의의를 령으로 만들어도 안된다.

신간회가 해산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의 반일항쟁력량이 하나로 단합되는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그 내부에 쐐기를 박아 분렬을 꾀하고 개량주의적상층을 매수한데 있었다. 적들의 암해책동과 파괴공작을 물리치고 신간회를 능숙하게 운영하고 이끌어나갈만한 중심적인 지도력량이 없은것도 하나의 주요한 해산원인이였다.

신간회의 와해에서 뼈저린 교훈을 찾은 우리는 애국적민족력량의 통일을 우리가 주도해야겠다는 비상한 각오와 결의 밑에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를 중요한 방침으로 제기하고 민족의 총력을 항일구국위업의 기발아래 결집시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 과정에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만한 핵심도 키워내고 유익한 경험도 축적하였다.

남호두회의는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의 창립에 대한 결정을 채택함으로써 우리 나라 통일전선운동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력사적인 분수령으로 되였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제국주의의 침략을 저지시키기 위한 인민전선운동이 대두하여 파시즘과 대결하고있을 때였다.

독일 나치스의 정권탈취에서 커다란 자극을 받은 프랑스로동계급은 자기 나라에서도 파시즘의 위협이 증대되여가고있는것을 보고 반파쑈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였다. 대중의 강렬한 통일열망에 따라 사회당은 1934년 7월 공산당의 제기를 받아들여 반전, 반파쑈통일행동협정을 체결하였다. 두 당의 영향밑에 분리되여있던 로동조합도 통합되였다. 이런 흐름을 타고 《로동과 자유와 평화의 인민전선》이 결성되였다. 추세는 이 전선을 중산계급들과의 통일에로까지 확대발전시킬것을 요구하였다. 1935년 6월말 사회당, 공산당의 련합에 소부르죠아정당인 급진사회당이 가담함으로써 이른바 《인민집합》이 이룩되였다. 7월 14일 빠리에서는 수십만명의 참가하에 인민전선의 대시위가 진행되게 되였다. 3당 수뇌자들인 모리스 토레즈와 레온 블륨, 달라지예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위행진의 선두에 섰다. 1936년 1월에는 3당을 중심으로 반전, 반파쑈 투쟁에 떨쳐나선 진보적그루빠의 통일에 기초한 인민전선강령이 정식으로 발표되였으며 그해 4∼5월에 진행된 하원총선거에서 인민전선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결과 사로내각은 총사직하고 레온 블륨을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내각이 탄생하였다. 물론 인민전선정부는 대중의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공황을 극복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에스빠냐인민전선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이른바 불간섭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였다. 결국은 인민전선도 붕괴되고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스에서의 로골적인 파쑈정권의 수립을 저지시켰으며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반파쑈투쟁에서 하나의 유익한 경험으로 되였다.

국제공산당은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운동의 발전에서 좋은 시사를 받고 전세계공산주의자들앞에 인민전선결성을 중요한 투쟁목표로 제기하게 되였다.

이에 따라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자본주의의 즉시 타도를 목적한 세계혁명이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전쟁과 파쑈를 반대하는 운동을 당면한 과제로 내세웠다. 이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의 하나의 로선상 전환이라고 할수 있었다. 제2국제당계렬의 여러 정당들은 국제당의 통일전선제의를 거부하였으나 프랑스, 에스빠냐,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인민전선운동은 현저한 발전을 보게 되였다.

1936년 2월 에스빠냐에서의 아싸니아인민전선정부의 출현은 그 단적인 실례로 된다.

에스빠냐인민전선은 프랑꼬의 반란과 독일, 이딸리아의 군사적간섭에 직면하여 곤경에 처하였다.

에스빠냐인민전선에 있어서 치명적인것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주도하에 추진된 이른바 불간섭정책이였다. 엄정중립과 무기금수를 결정한 부당한 불간섭정책은 결국 반란군을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쏘련도 처음에는 불간섭적립장을 취하였으나 그것이 인민전선정부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는것이 명백해지자 태도를 바꾸어 인민전선정부에 비행기, 땅크 등을 보냈다. 에스빠냐인민전선이 겪고있던 곤경은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과 근로자대중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각국에서 숱한 지원병들이 에스빠냐로 달려갔다. 이리하여 에스빠냐는 파시즘세력과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진보적세력간의 국제적교전무대로 되였는데 그 교전은 작은 규모의 세계전쟁을 련상시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동강에서 조국광복회를 결성하던 때를 전후하여 벌어졌던 국제적인 반파쑈운동형편이였다. 우리는 이딸리아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궐기한 에티오피아 애국자들의 영웅적항전에서도 커다란 고무를 받고있었다.

국제당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재빨리 포착하고 각국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들을 반전, 반파쑈 투쟁에로 묶어세워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수호하며 파쑈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고수하는것을 당면한 전략적과업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계혁명의 령도기관으로서의 명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반파쑈인민전선운동과 관련한 국제당의 력사적공적이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파시즘은 새로운 적이 아니였다. 국제파시즘이 대두함으로써 우리 나라 혁명의 대상이 달라진것도 없었고 성격이 변화된것도 없었다. 우리는 국제당이 반파쑈인민전선운동로선을 제기하기전부터 우리 식의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제기해왔고 그 궤도를 따라 우리 혁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왔다.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로서의 조국광복회를 창립하기 위한 준비사업은 남호두회의이후부터 시작되였다. 그전까지는 주로 내가 혼자서 광복회창립을 두고 사색을 무르익혀왔을뿐이다. 김산호, 최현, 박영순을 비롯한 몇몇동무들이 이따금씩 필요한 조언을 주느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대체로 그거야 사령관동지가 좋을대로 하시지요 하는 식의 립장을 취하였다. 그러다가 돈화지방에 있는 옥수천부근의 한 산간부락에서 어떤 나이많은 서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그가 훌륭한 조언자가 되고 의논대상이 되여주었다.

그 부락에 조선사람이 사는 집이 둘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집에 들었다. 그때 화룡지방에서 활동하고있던 어느 한 소부대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 소부대동무들은 나를 만나자 괴이한 사람을 달고왔다고 보고하였다. 화룡의 어느 벽촌에서 만난 사람인데 소부대가 사령부로 찾아온다는 낌새를 알고 김일성장군을 만나야겠다고 하면서 자기네를 뒤따라왔다는것이였다. 정체불명의 사람을 사령부로 데려올수 없다고 생각한 소부대성원들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몇번이나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네들은 자네들대로 가라, 나는 나대로 갈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호상 남의 일에 간참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고는 장바 한두기장쯤 되는 거리를 두고 그냥 태연하게 소부대를 따라왔다는것이다.

그 사람은 만나기전부터 나의 호기심을 끌더니 첫 상봉좌석에서도 별스럽게 굴었다. 소부대동무들이 사령관이라고 하면서 나를 소개하였으나 괴이한 손님은 그 말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자기의 나이와 열성을 봐서라도 진짜 김일성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때 주인집장작을 패주다가 그를 맞아들였는데 나의 차림새가 아마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나를 이리 훑어보고 저리 훑어보고 하다가 아무렴 김장군이 그렇게 젊을수 없고 장군되는 사람이 머슴처럼 장작을 팰리도 없으며 막된 옷을 입고 다닐수도 없다고 하였다.

북만의 관지부근에서 야숙할 때 불무지보초를 선 신입전령병이 조는 바람에 내 바지를 태운적이 있었다. 헌 솜옷이였던데다 기워입기까지 하였으니 사실 나의 옷주제가 허술하게 보였을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가 괴짜였다. 그는 호지명의 수염 같은 턱수염을 달고있었다. 실제는 마흔네댓살밖에 안되는 사람이였으나 나이보다는 겉늙어서 쉬나문살이나 돼보이였다.

그는 항간에서 떠도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면서 하도 소문이 났길래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자고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내가 소문난 잔치 먹을 알이 없다고 대꾸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장군이 입은 옷만 봐도 로고가 짐작된다고 하였다.

심한 나이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우리는 대뜸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였다. 자기자신에 대한 그의 첫 소개부터가 아주 괴이하고 호탕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이룩해놓은것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좌왕우왕하기만 해온 기회주의자올시다.》

나는 한평생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초면에 자기를 기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소개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무한히 량심적인 사람만이 무한히 솔직한 법이다. 솔직성은 흰눈처럼 깨끗한 량심의 반사이며 감춰내지 못하는 량심의 빛이다. 그는 우리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할 정도로 솔직한 그 몇마디의 말로 대뜸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자기를 스스로 비하하는 그 꾸밈없는 이야기에서 나는 도리여 그의 인격적높이를 보았다.

우리는 미혼진으로 빨리 나가야 했던것만큼 그 마을에서 지체할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섭섭해하지 않을 정도로 만나주고 헤여질 작정이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길을 떠나려 하자 그는 집으로 돌아갈 대신 우리를 따라나섰다. 김장군을 만나고보니 인차 헤여지고싶지 않은데 몇시간동안만이라도 같이 따라가며 이야기나 나누게 해달라는것이였다. 웬일인지 나도 그와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와 함께 줄창 이야기를 하다나니 행군에서 지루한줄을 몰랐다. 이야기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나는 대원들이 쉬고싶어할 때 쉬우지 못하고 행군을 계속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김산호가 우리곁에 다가와 좀 쉬다가 가야 하지 않느냐고 귀띔해주군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당 력사에 조국광복회 발기인으로 기록된 《대통령감》 리동백이였다. 《대통령감》이란 리동백의 별명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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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략력

주체111(2022)년 4월 14일 조선외무성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1912)년 4월 15일 평양시 만경대에서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의 맏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아드님의 이름을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성주》라고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의 혁명활동로정을 따라 조선과 중국의 여러곳으로 이사하시며 어린시절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선견지명으로 어린시절부터 중국말을 배우시고 중국인소학교에서 중어공부를 하시여 중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시였는데 이것은 후날 중국땅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는데 커다란 도움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자기 나라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주체12(1923)년 3월 중국 팔도구로부터 만경대까지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외가가 있는 칠골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였다.

주체14(1925)년 1월 아버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결연히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주체15(1926)년 6월, 아버님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주의단체가 중국 화전에 세운 2년제군사정치학교인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으며 그곳에서 같은 해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그 책임자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에서 반년간 공부를 하신 후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기 위하여 그곳을 떠나 혁명활동의 무대를 길림으로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주체16(1927)년 8월 2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보다 대중적인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고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여러 대중단체들을 조직하시고 반일투쟁들을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와 그 기본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월 3일 카륜에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조직하시고 7월 6일에는 이통현 고유수에서 항일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정치 및 반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4월 25일 상비적인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그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를 창건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주체34(1945)년 8월 15일 조국을 해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조직하시고 당창건을 선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8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시고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으며 20개조 정강을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을 합동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짧은 기간에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민주선거를 조직하시여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시고 새로운 중앙정권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으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임무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2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인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발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고 전체 조선인민의 일치한 념원에 따라 공화국정부수상,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6월 30일 북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들의 련합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6월 25일부터 주체42(1953)년 7월 27일까지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시고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5일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을 위한 투쟁을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회주의혁명을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와 주체50(1961)년 9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시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그 기본내용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날로 로골화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4차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부터 주체59(1970)년까지 공업화의 력사적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 따라 공화국주석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9(1970)년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와 주체69(1980)년에 있은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또다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조선혁명의 총적과업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5월에 조국통일3대원칙을, 주체69(1980)년 10월에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주체82(1993)년 4월에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후계자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6월 평양에서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접견하시고 핵문제와 관련한 조미협상을 시작하며 북남수뇌자상봉을 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다가 주체83(1994)년 7월 8일 새벽 2시에 집무실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민위천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3차),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 당지도자들을 비롯한 연 7만여명의 외국인사들을 접견하시였으며 106차에 걸쳐 16개 나라들을 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와 국제기구들로부터 372개의 훈장과 메달, 명예칭호를 받으시였다.

중국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있고 100여개 나라 480여개의 거리, 기관, 단체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불리우고있으며 세계적으로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되여 수여되고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련재기사] : 열화같은 민족애와 동포애를 지니시고 (2)

주체111(2022)년 3월 19일 《우리 민족끼리》

 

열화같은 민족애와 동포애, 바다와 같이 넓은 도량을 지니시고 온 겨레를 사랑의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이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하기에 해가 바뀌고 날이 갈수록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더더욱 솟구치는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오늘도 그이의 애국애족의 고귀한 한평생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분렬로 하여 우리 민족이 당하는 불행을 무엇보다도 가슴아파하시였으며 후대들에게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시려고 생의 마지막시각까지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53(1964)년 가을 어느날 한 재일동포상공인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꿈같은 영광의 자리에 서고보니 그는 조국을 위해 이렇다하게 해놓은 일이 없는 자신이 민망스러웠고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께 꼭 사죄하지 않으면 안될 일도 떠올랐다.

상공인은 그이께 자기가 지난날 정치적으로 암둔하여 남조선으로 드나들면서 거기에 공장을 하나 지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잘못이였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조국의 부강발전에 기여하려는 자기의 소망에 어긋나기때문에 남조선에 지으려던 공장을 공화국북반부에 지을 생각이라고 말씀올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인정넘치는 음성으로 남조선도 조선사람의 남조선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남조선에 공장이 하나라도 더 서면 조선사람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것이 없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동포상공인을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앞으로 통일되면 남조선에 세운 공장도 조선사람의 재산일것이고 나라의 장래발전을 위해 유익할것이라고, 그러니 남조선에 공장을 세워주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동포애와 넓으신 도량앞에 상공인은 탄복을 금치 못하며 자신의 진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수령님, 수령님은 참으로 이 나라 만백성을 굽어살피시는 조선의 하느님이십니다!》

진정 위대한 수령님은 한평생 한치의 간격도 없이 온 민족을 따뜻이 보살피는 숭고한 애족애민의 사상과 동포애를 지니시고 곁에 둔 자식보다 먼곳에 있는 자식에게 더 마음쓰는 어머니심정으로 온 겨레를 따뜻이 품어 안아주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뜨락또르공장을 찾으시여서는 남녘인민들에게 보내줄 뜨락또르를 더 많이 생산할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고 관개공사장을 찾으시여서는 통일된 다음 남조선의 관개건설에 이바지할 기술자들을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하시던 우리 수령님,

전후복구건설의 그 어려운 시기에 일본땅 한복판에 민족교육의 최고전당인 조선대학교를 덩실하게 세워주시고 해마다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여 재일동포자녀들이 근심걱정없이 마음껏 배울수 있도록 극진히 보살펴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그 사랑을 우리 무슨 말로 다 전하랴.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도 온 겨레의 숙원을 가슴에 안으시고 조국통일을 앞당길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며 통일문제와 관련한 문건을 보아주시고 그 문건에 후세에 길이 전할 력사적친필을 남기신 우리 수령님 아니시던가.

정녕 열화같은 민족애와 동포애를 지니시고 온 겨레를 한품에 따뜻이 안아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전설들과 더불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영생하신다.(전문 보기)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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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항일혁명투사들 , 혁명가유자녀들과 한 담화 1992년 3월 13일, 1993년 1월 20일, 3월 3일-

주체111(2022)년 3월 13일 웹 우리 동포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나와 함께 투쟁하여온 오랜 전우들과 이미 우리의 곁을 떠나간 혁명가들의 유자녀들을 이렇게 만나니 매우 반갑고 감개무량합니다.

동무들이 나의 건강을 념려해주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는데 감사합니다.

나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의 지지와 사랑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내가 80살이 넘은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해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이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적극 보호해준 덕분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혁명의 길은 매우 준엄하고 시련에 찬 길이였습니다. 우리가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로 주체적인 혁명대오를 준비하면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나가던 초기혁명활동시기도 어려운 나날이였고 아무러한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자체로 유격대오를 조직하여가지고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면서 강대한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 싸우던 항일무장투쟁시기는 말할수 없이 간고한 나날이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의 나날에는 언제나 위험이 뒤따랐으며 사선의 고비도 수없이 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때마다 동지들과 인민들은 나를 적극 도와주고 위험에서 구원해주었으며 성심성의로 보호해주었습니다.

내가 얼마전에 한영애의 딸을 만나보았는데 한영애는 초기혁명활동시기에 나의 혁명사업을 도와주고 나의 신변을 보호해준 잊을수 없는 은인의 한사람입니다. 한영애는 우리가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여 투쟁할 때 내가 적들에게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해주었으며 5. 30폭동후 내가 파괴된 혁명조직을 복구하기 위하여 교하를 거쳐 할빈에 가서 활동할 때에도 모든것을 다하여 나를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그후 그는 할빈에서 내가 준 혁명임무를 수행하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였는데 적들의 고문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청년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내가 준 혁명임무에 충실하였을뿐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도 서슴없이 바쳤습니다.

오중흡동무는 항일유격대의 지휘관으로서 언제나 사령부의 안전부터 먼저 생각하였으며 나를 목숨으로 보위한 충직한 혁명투사였습니다. 내가 백두산지구에서 활동하던 어느해 겨울 홍두산밀영에 가서 얼마 안되는 대원들과 같이 음력설을 쇠고있었는데 거기에 적은 인원밖에 없다는것을 내탐한 적들이 사령부를 포위소멸해보려고 5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가지고 불의에 기습해왔습니다. 그때 오중흡동무는 부대를 거느리고 림강쪽으로 행군해가고있었는데 도중에 적《토벌대》가 사령부가 있는 홍두산밀영쪽으로 이동해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사령부가 위험에 처할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즉시 부대를 돌려세워가지고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는 사령부를 기습해오던 적들을 배후에서 공격하여 완전히 소멸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여 사령부는 위험을 면하고 무사하게 되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자기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고 나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나를 위험에서 구원해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나는 제1차 북만원정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에도 대원들과 인민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하여 구사일생으로 구원되였습니다. 북만에서 돌아오던 도중 내가 촉한을 만나 사경에 처하였을 때 목재소에서 만난 김로인과 로야령에서 살던 최일화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살아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나를 보호해준 은인들가운데는 장울화를 비롯한 중국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울화는 나와 련계를 가지고 지하활동을 하던 도중에 변절자의 밀고로 적들에게 체포되여 고문을 받았는데 혹시 무의식중에 헛소리라도 하여 내가 있는 사령부의 위치를 루설할가봐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잊을수 없는 나의 혁명동지이며 은인입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동지들이 생기고 어려운 때 은인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나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실지 겪은 체험을 놓고 그렇게 말하고싶습니다. 우리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 언제나 동지들의 방조를 받았고 어려운 고비에 처할 때마다 인민들의 구원을 받았기때문에 끝까지 싸워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속담에도 독불장군이라는 말이 있지만 혼자서는 결코 장군이 될수 없으며 인민들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수도 혁명에서 승리할수도 없습니다.

동무들이 텔레비죤을 통하여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였는데 나는 아직 건강합니다. 나는 앞으로 한 10년은 더 일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60청춘, 90환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60환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와 동무들은 아직 90살이 되지 못한것만큼 환갑을 쇠지 못한셈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희망과 락관에 넘쳐 일을 더 많이 할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오래 살면서 혁명을 하려면 승리에 대한 신심을 가지고 락관적으로 생활하여야 합니다. 나는 인민대중을 위한 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있기때문에 사업과 생활에서 비관을 모릅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든든한 배심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언제나 락관적으로 생활해왔으며 오늘도 여전히 락관적으로 생활하고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내가 몇해전에 북남고위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남조선 《국무총리》를 만나주었는데 그때 그는 나에게 주석님께서 이처럼 건강하신 비결이 무엇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가 건강한것은 비관을 모르고 락관적으로 생활하기때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언제나 비관을 모르고 락관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 동무들이 모두 건강한 모습을 보니 매우 기쁩니다.

동무들은 자신들이 건강한것이 나의 덕분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나의 덕분이라기보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덕분이고 당의 옳바른 령도의 덕분이라고 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진정한 인민의 사회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여있으며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주권도 생산수단도 다 인민의 수중에 장악되여있으며 전체 인민이 먹고 입고 쓰고살 걱정을 모르고 무료교육, 무상치료의 혜택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당과 국가의 모든 정책은 어떻게 하면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인민대중의 창조력을 더 높이 발양시키겠는가 하는데로부터 출발하고있으며 여기에 전적으로 복종되고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중심의 세계관이며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구현한 사회주의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가리켜 주체의 사회주의 또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라고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진정한 인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지난 수십년동안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으며 주체의 기치밑에 굴함없이 투쟁하여왔습니다. 우리는 력사상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사회주의건설에 구현하여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훌륭히 건설하여놓은데 대해서와 오늘 동방에서 사회주의기발을 튼튼히 지켜나가고있는데 대하여 응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전 쏘련과 동구라파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허물어보려고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허물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이전 쏘련이나 동구라파나라들의 무너진 사회주의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주체성이 강하고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주의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전과정에 일관하게 주체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였으며 모든것을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우리 식대로 하였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 -1946년 3월 5일-

주체111(2022)년 3월 05일 웹 우리 동포

 

제1조

북조선토지개혁은 력사적 또는 경제적필요성으로 된다.

토지개혁의 과업은 일본인토지소유와 조선인지주들의 토지소유 및 소작제를 철페하는데 있으며 토지리용권은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있다. 북조선에서의 농업제도는 지주에게 예속되지 않은 농민의 개인소유인 농민경리에 의거한다.

제2조

몰수되여 농민소유로 넘어가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일본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단체의 소유지.

ㄴ. 조선민족의 반역자, 조선인민의 리익에 손해를 주며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관에 적극 협력한자의 소유지와 일제의 압박밑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자기 지방에서 도주한자들의 소유지.

제3조

몰수하여 무상으로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한 농호에서 5정보이상 가지고있는 조선인지주의 소유지.

ㄴ. 자기가 경작하지 않고 모두 소작주는 소유자의 토지.

ㄷ. 면적에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소작주는 모든 토지.

ㄹ. 5정보이상을 가지고있는 성당, 승원 기타 종교단체의 소유지.

제4조

몰수되지 않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학교, 과학연구기관, 병원의 소유지.

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특별한 결정으로 규정하는,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공로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속하는 토지, 조선민족문화발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속하는 토지.

제5조

제2조, 제3조에 의하여 몰수한 토지는 모두 무상으로 농민의 영원한 소유로 넘긴다.

제6조

ㄱ. 몰수한 토지는 고용농민, 토지없는 농민, 토지적은 농민에게 분여하기 위하여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한다.

ㄴ. 자기 로력에 의하여 경작하는 농민의 소유지는 그대로 둔다.

ㄷ. 자기 로력으로 경작하려는 지주들은 본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 의하여 농민들과 같은 권리로써 다만 다른 군에서 토지를 가질수 있다.

제7조

토지를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것은 도인민위원회가 토지소유권에 대한 증명서를 교부하며 그것을 토지대장에 등록함으로써 완결된다.

제8조

본 법령에 의하여 농민에게 준 토지는 일반 부채와 부담에서 면제한다.

제9조

본 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에게서 차용한 고용농민과 농민의 모든 부채는 취소한다.

제10조

본 법령에 의하여 농민에게 분여된 토지는 매매하지 못하며 소작주지 못하며 저당하지 못한다.

제11조

본 법령 제3조 《ㄱ》항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의 축력, 농기구, 주택의 모든 건축물, 대지 등은 몰수하여 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하되 인민위원회는 본 법령 제6조에 의하여 토지를 가지게 되는 고용농민, 토지없는 농민에게 분여한다. 몰수된 모든 건물은 학교, 병원 기타 사회기관의 리용으로 넘길수 있다.

제12조

일본국가, 일본인 및 모든 일본인단체의 과수원 기타 과목들은 몰수하여 도인민위원회에 맡긴다. 본 법령 제3조 《ㄱ》항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조선인지주의 소유인 과수원 기타 과목들은 몰수하여 인민위원회에 맡긴다.

제13조

농민들이 가지고있는 적은 산림을 제외하고 모든 산림은 몰수하여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한다.

제14조

본 법령에 의하여 토지를 몰수당한 소유자에게 속한 모든 관개시설은 무상으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처리에 위임한다.

제15조

토지개혁은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지도하에서 실시된다. 지방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할 책임은 도, 군, 면 인민위원회에 맡기며 농촌에서는 고용농민, 토지없는 소작인, 토지적은 소작인들의 총회에서 선거된 농촌위원회에 맡긴다.

제16조

본 법령은 공포한 때로부터 실행력을 가진다.

제17조

토지개혁실행은 1946년 3월말일전으로 끝낼것이다. 토지소유권증명서는 금년 6월 20일전으로 교부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산림조성사업을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리자 -문수봉에서 식수에 참가한 일군들과 한 담화 1947년 4월 6일-

주체111(2022)년 3월 2일 웹 우리 동포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은 금수강산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오래동안 우리 나라는 자기의 아름다운 빛을 잃고있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의 오랜 력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무참히 짓밟았을뿐아니라 우리의 풍부한 자연부원을 닥치는대로 략탈하여갔습니다. 특히 일제는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우리 나라의 산림자원을 강도적으로 략탈하여갔으며 우리의 조국산천을 혹심하게 파괴하였습니다.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의 산림자원을 얼마나 혹심하게 략탈하고 못쓰게 만들었는가 하는것은 문수봉을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원래 이 산은 비단에 수놓은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문수봉이라 불리웠습니다. 그러나 일제놈들에 의하여 문수봉은 자기의 옛모습을 잃고 보기 흉한 벌거숭이 산으로 되여버렸습니다. 보는바와 같이 지금 문수봉에는 나무 한대 제대로 서있는것이 없으며 눈에 뜨이는것은 일제침략군놈들이 쓰던 병영과 마구 파놓은 방공호들뿐입니다.

일제침략자들은 문수봉뿐아니라 우리 나라의 산들을 거의다 벌거숭이로 만들었습니다. 일제놈들에 의하여 벌거숭이로 된 산을 보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조림사업을 잘하여 일제식민지통치가 남겨놓은 이 후과를 하루빨리 가셔야 합니다.

산림은 나라의 귀중한 재부입니다. 나무는 공업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자재와 원료로 널리 쓰이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조림사업을 힘있게 벌려 산림자원을 잘 조성하는것은 인민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높이며 나라의 부강발전을 이룩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집니다.

산에 수림이 우거지게 하는것은 조국강토를 보호하고 나라의 풍치를 아름답게 하는데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풍수해로부터 농토와 산천을 잘 보호할수 있으며 우리 나라를 풍치좋고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모든 산들을 나무가 무성하고 풍만한 자원을 가진 산으로 전변시키면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고 그들의 애국심을 더욱 북돋아주게 될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민들은 우리 조국을 외래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튼튼히 지키겠다는 높은 각오를 가지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을 벌리던 그 간고한 나날 언제나 조국산천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느해 가을 일제《토벌대》놈들을 족치고 압록강기슭을 지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석양이 비낀 조국산천의 정경은 참으로 아름다왔습니다. 그곳 산들에는 곧게 자란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섰는데 그것이 하나의 아름다운 화폭을 이루고있었습니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이러한 조국의 자연풍경을 볼 때마다 반드시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광복을 이룩하고야말겠다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군 하였습니다.

우리 일군들은 조림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똑똑히 알고 이 사업을 잘하기 위하여 적극 힘써야 하겠습니다.

동무들은 오늘의 식수사업을 하나의 단순한 행사로만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고있는 이 식수사업은 악독한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를 가시고 민주수도를 록음이 우거지게 만들기 위한 보람찬 자연개조사업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군들이 오늘의 식수사업에 열성적으로 참가하여야 합니다.

문수봉은 아주 좋은 곳에 자리잡고있습니다. 문수봉에 나무가 우거지면 참으로 좋을것입니다. 우리는 일제놈들이 못쓰게 만든 문수봉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수도시민들의 문화휴식터로 만들어 모란봉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근로자들이 즐겁게 휴식할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문수봉을 잘 꾸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나무를 많이 심고 잘 키워야 합니다. 나무를 어느쪽으로 보나 줄이 곧고 보기 좋게 심어야 하겠습니다. 나무모는 어린애와 같이 조심히 다루어 뿌리와 줄기가 상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정성들여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은 나무들이 다 잘 살도록 물도 자주 주어야 합니다. 나무에 물을 주지 않고 비가 오기만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깨지 못한데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면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느님》에게 빌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비를 보내달라고 빌것이 아니라 대중을 동원하여 나무에 물을 주는 운동을 벌려야 합니다. 이 사업에 특히 청년들과 학생들이 앞장서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나무를 꺾지 않게 하며 심어놓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잘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문수봉에 심은 나무들이 하나도 죽지 않고 다 살아서 잘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평양시민들은 보통강개수공사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던것처럼 식수사업에도 적극 참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산들에 나무를 많이 심고 가로수도 보기 좋게 심어 민주수도를 록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평양시에서뿐아니라 온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산림조성사업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해방된 조국의 산들에 나무를 심어 잘 가꾸는것은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주며 후대들에게 풍만한 산림자원과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넘겨주기 위한 만년대계의 사업입니다. 우리는 조국의 앞날과 후손들의 행복을 생각하고 한그루의 나무라도 더 많이 심어야 하며 온 나라의 산들을 수림이 무성하게 만들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산림조성사업은 결코 몇해동안에 쉽게 끝낼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 사업은 자연을 개조하는 어려운 사업이며 장기적으로 해야 할 방대한 사업입니다.

이 어렵고 방대한 사업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전체 인민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을 발동시키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광범한 대중이 떨쳐나서 한 10년동안 계속 산에 나무를 심고 잘 가꾸면 벌거숭이산들은 다 없어질것이며 온 나라의 산들에 수림이 우거지게 할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닦아질것입니다.

우리 일군들은 올해부터 조림사업에 군중을 조직동원하기 위한 사업을 잘 짜고들어야 하겠습니다. 인민들에게 조림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잘 알려주어 그들이 높은 애국심을 가지고 이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나무 한대를 베면 열대를 심으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식수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것입니다. 우리는 대중교양사업을 잘하여 모든 사람들이 나무를 베여쓸 생각만 하지 말고 나무를 심는데 앞장서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일군들은 당면한 봄철식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봄철식수사업을 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려 적기를 놓치지 말고 짧은 기간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할것입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다고 하여 아무 나무나 심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산이 많고 경지면적이 적은 조건에서 산림조성을 질적으로 하여 산을 잘 리용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민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수 있는 경제적으로 유익한 나무들을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지대적특성에 맞게 심어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조림사업을 힘있게 벌리려면 나무모키우는 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조림사업은 장기적으로 하여야 할 사업인것만큼 지금부터 각 지방들에서 나무모밭을 잘 조성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무모밭에 좋은 나무종자를 많이 심어 요구되는 나무모를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는것과 함께 산림보호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인민들에게 산림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신이 부족합니다. 산림이 인민의 소유로 된것만큼 그것을 애호관리하여야 하겠으나 일부 사람들은 나무를 망탕 찍어 산을 못쓰게 만들고있습니다. 산림을 애호하지 않고 나무를 망탕 베여쓰기만 한다면 지금 좀 있는 나무마저 얼마 못가서 다 없어지고말것이며 우리 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수 없을것입니다.

산림을 애호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은 애국심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과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부강한 새 조국 건설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그루의 나무라도 아끼고 사랑하며 산림을 잘 보호하기 위하여 힘써야 할것입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것은 산림을 조성하는 사업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어만 놓고 그것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조국산천을 록음이 우거지게 하려면 나무를 많이 심을뿐아니라 심어놓은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애호관리하여야 합니다. 인민정권기관들에서는 산에서 나무를 무질서하게 베내는 현상들과 강하게 투쟁하며 산불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단속사업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병충해를 막기 위한 투쟁도 잘하여야 합니다. 우리 일군들은 대중속에서 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전체 인민이 주인다운 자각을 가지고 산림을 애호관리하는 사업에 적극 참가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전군중적운동으로 식수사업을 힘있게 벌리고 산림보호사업을 잘함으로써 모든 산들을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이게 하며 우리 나라를 더욱 아름다운 인민의 락원으로 만들어야 할것입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김일성  조선인민군창건에 즈음하여 -조선인민군열병식에서 한 연설 1948년 2월 8일-

주체111(2022)년 2월 8일 웹 우리 동포

 

조선인민군 군관, 하사, 전사 여러 동무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창립 2주년을 경축하면서 조선력사에서 처음으로 인민자신의 정규적무장력인 조선인민군의 창건을 선포하게 됩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총칼앞에서 갖은 박해와 탄압을 당하던 조선인민은 해방후 자기 손에 정권을 틀어쥐고 행복한 새 생활을 창조하는 길에 들어섰으며 이제는 조국과 민족을 보위하는 당당한 자기의 정규군대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나는 해방된 조선인민의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기쁨을 가지고 인민군대의 창건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이제는 남북조선의 전체 인민이 조국의 자유와 영예를 위하여 싸울 자기의 현대적인 정규군대를 가지게 되였다는것을 전세계에 자랑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민군대를 창건하는것은 조국의 민주주의적완전자주독립을 더욱 촉진하기 위해서입니다.

해방후 2년 남짓한 기간에 우리 인민은 북조선에 민주주의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적토대를 닦아놓았습니다.

우리는 인민의 정권을 수립하고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함으로써 광범한 인민대중의 절실한 민족적숙망을 실현하였으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광활한 발전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또한 작년에 인민경제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훌륭하게 완수함으로써 자주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는데서 커다란 첫 성과를 달성하였습니다. 화페교환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자기자신의 화페를 가지게 되였으며 나라의 자주적재정토대를 튼튼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북조선에서의 민주개혁과 민주건설의 성과를 법적으로 확인하며 장차 수립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기초로 되는 조선림시헌법초안이 작성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이 모든 성과를 무력으로 보위할만 한 조선인민의 정규군대가 없었습니다.

어떠한 국가를 물론하고 자주독립국가는 반드시 자기의 군대를 가지고있는것입니다. 자기의 군대를 가지지 못한 나라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될수 없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조국이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점되였던것도 그 당시에 조선인민이 일본제국주의침략군대를 격파할만 한 자기의 군대를 가지고있지 못하였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되기 위하여서는 나라와 민족을 보위하며 어떠한 원쑤들의 침범도 능히 물리칠수 있는 강력한 인민의 군대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더우기 우리 민족을 분렬시키고 우리 조국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제국주의자들과 그의 주구들의 흉악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해방후 2년이 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의 통일과 자주독립이 지연되고있는 엄중한 형편에서 조선인민이 자기의 군대를 창건하는것은 매우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로 나서게 되였습니다.

우리 인민은 미제와 그 주구들의 민족분렬정책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으며 또한 어느 누가 우리를 독립시켜주고 우리의 군대를 조직하여주기를 기다리고있을수 없습니다. 조선인민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힘으로 민주주의적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하며 자기의 손으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또한 조선인민은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군대를 조직하여 통일되고 독립된 민주조국의 창건을 촉진하여야 할것입니다.

인민군대를 창건하는 과업이 북조선에서 실현된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된 북조선에서만 조국과 민족을 보위하는 인민군대의 창건이 가능하기때문입니다. 미군정이 실시되고있으며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정권》을 잡고 자기의 테로단을 양성하고있는 오늘의 남조선에서 조선인민의 진정한 민족적군대를 창건한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북조선에서 민주주의적개혁을 실시하고 경제문화건설을 성과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전조선이 나아갈 길을 용감히 개척하고있는 우리 인민은 이번 조선인민군대의 창건을 통하여 북조선민주기지의 위력을 더욱 강화하게 될것이며 멀지 않은 장래에 창건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의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게 될것입니다. 북조선의 민주건설에서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얻고있는 남조선인민들은 오늘 창건되는 우리 인민군대를 자기의 군대로 알며 자기의 힘으로 알게 될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인민군대의 창건은 미군정과 반동적매국도당의 탄압밑에서 신음하고있는 남조선의 부모형제자매들을 조국의 민주주의적통일독립을 위한 투쟁에로 힘차게 고무할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인민군대를 창건하는것은 통일적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의 토대인 북조선의 민주기지와 민주개혁의 성과를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튼튼히 보위하며 북조선인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미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우리 북조선의 민주주의적발전과 평화적건설을 방해하기 위하여 다만 비방과 허위선전만을 일삼고있는것이 아니라 살인, 방화,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테로단을 대량적으로 북조선에 파견하여 우리의 귀중한 국가재산을 파괴하며 북조선인민들의 생활을 혼란시키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습니다. 물론 적들의 이러한 시도는 우리 인민의 단결된 힘과 높은 혁명적경각성에 의하여 걸음마다 철저히 폭로분쇄되고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의 민주기지가 공고화되고 우리 인민이 더욱 큰 승리를 달성하면 할수록 미제와 남조선반동파의 발악은 더욱 심하여지며 북조선의 민주개혁과 경제건설의 성과를 파괴하려는 원쑤들의 책동은 더욱 악랄하여지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민군대를 창건함으로써 북조선에 수립된 민주제도와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굳건히 수호하며 어떠한 반동세력과 파괴분자도 해방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북조선인민들이 달성한 모든 고귀한 성과들을 털끝만큼도 해칠수 없도록 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강하고 민주세력이 절대로 우세할 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유지되고 조국과 인민의 자유가 보장될수 있으며 적들이 함부로 덤벼들수 없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북조선에서의 민주력량의 강화와 인민군대의 창건은 반동분자들이 악선전하고있는바와 같이 동족상쟁의 내란을 일으킬 위험성을 조성하는것이 아니라 도리여 미제와 남조선반동파들이 그러한 내란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전문 보기)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인민군대를 강화하며 군사를 중시하는 사회적기풍을 세울데 대하여》(19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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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헌법을 작성하자 -조선림시헌법제정위원회 제1차회의에 참가한 일군들과 한 담화 1947년 11월 20일-

주체110(2021)년 12월 27일 웹 우리 동포

 

북조선인민회의 제3차회의에서는 림시헌법을 제정할데 대하여 토의하고 조선림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오늘 진행한 림시헌법제정위원회 제1차회의에서는 헌법제정위원회 상임서기장을 선거하고 헌법초안작성사업을 맡아 할 일군들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헌법초안을 작성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헌법을 제정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크나큰 경사이며 완전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과 사회정치생활에서 일대 사변으로 됩니다. 우리는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우리 당의 령도밑에 해방후 새 민주조선건설에서 달성한 제반 성과들을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우리의 민주주의적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며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의 민족분렬책동을 분쇄하고 통일적민주주의완전자주독립국가건설을 가일층 촉진시키게 될것입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얼마전에 미제국주의자들은 남조선반동파들을 사촉하여 남조선《립법의원》에서 소위《림시헌법》이라는것을 조작하였습니다. 남조선반동들의 이 《헌법》조작은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와 리익을 무시하고 한줌도 못되는 남조선의 친일친미파, 민족반역자들과 반동분자들의 리익을 옹호하는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민적인 책동입니다. 미제와 그 주구 남조선매국역도들은 이 《헌법》에 기초하여 남조선에 단독적인 반동정부를 세움으로써 전체 조선인민이 그토록 갈망하는 통일적민주주의정부수립을 가로막으려 하고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또한 남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망으로부터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실행을 위한 쏘미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키고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끌고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날조해내는 음모를 꾸미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소위 남조선 《림시헌법》과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조작은 우리 나라에서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위험이 얼마나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는가 하는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하루속히 민주주의적인 조선림시헌법을 제정하여 남북조선 전체 인민들에게 통일된 조선인민이 가져야 할 헌법은 어떤것으로 되여야 하며 우리가 앞으로 세우려는 통일적민주주의정부는 어떤 정부로 되여야 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헌법은 나라의 기본법으로서 국가사회제도, 공민의 권리와 의무, 국가기관들의 조직과 활동원칙 같은 국가사회생활의 근본문제들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그런것만큼 헌법초안을 내용있게 잘 작성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제정하려는 헌법은 철저히 전체 조선인민의 요구와 리익에 부합되는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헌법으로 되여야 합니다. 우리의 헌법에는 착취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자본주의국가의 헌법요소가 추호도 반영되여서는 안됩니다.

해방후 북조선에서는 인민정권이 수립되고 제반 민주개혁이 성과적으로 수행됨으로써 우리 인민이 념원하던 참다운 민주주의제도가 확립되였으며 과거 착취받고 압박받던 근로인민대중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였습니다. 나는 해방후 민주건설에서 달성된 성과들을 법적으로 고착시키고 공고발전시키는 방향에서 헌법을 작성한다면 우리의 헌법이 의심할바없이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는 가장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헌법으로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에 우리 국가사회제도의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성격을 명확히 규제하여야 합니다.

헌법에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여야 하며 모든 주권은 인민대중에게 속하여야 한다는것을 규제하여야 합니다.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는것은 우리 당의 정치로선입니다. 우리 당은 지난 기간 민주주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과 힘을 합쳐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여왔습니다. 앞으로 창건될 우리 나라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규정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이며 념원입니다.

헌법에 인민들은 각급 주권기관을 통하여 자기의 주권을 행사하며 주권기관은 인민들이 직접 선거한 대의원들로 구성된다는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대의원들이 자기 사업에 대하여 선거자들앞에서 책임지며 인민의 신임을 상실하였을 때에는 선거자들에 의하여 소환되여야 한다는것도 규제하여야 합니다.

헌법에 나라의 경제제도를 명백히 규제하여야 합니다. 북조선에서 민주개혁이 성과적으로 수행된 결과 과거 일제와 민족반역자들의 소유였던 중요산업이 다 국가의 소유, 전체 인민의 소유로 되고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의 소유로 되였는데 헌법에 이런 경제제도를 그대로 규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협동단체소유와 개인소유도 법적으로 보호한다는것을 밝혀야 합니다. 헌법에 국가가 나라의 모든 자원을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리용할수 있도록 인민경제를 계획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것도 반영하여야 합니다.

헌법에 공민의 권리와 의무를 옳바로 규제하여야 합니다. 헌법의 민주주의적성격은 공민의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규제하는가 하는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됩니다.

우리 인민은 주권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성별과 사회적지위, 성분과 신앙, 재산과 지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한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향유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극소수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모든 공민은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며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고있습니다. 또한 로동과 휴식에 대한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과학예술활동의 자유를 비롯한 제반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보장받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이 보장받고있는 이러한 제반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그대로 헌법에 반영하여 법적으로 고착시켜야 합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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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전집》증보판 제16권 출판

주체110(2021)년 12월 27일 로동신문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년대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집대성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총서인
김일성전집》증보판 제16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39(1950)년 1월부터 6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하신 력사적인 연설, 담화, 결론을 비롯한 94건의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로작들이 발표되던 시기는 공화국북반부에서 민주개혁의 성과를 더욱 공고발전시키고 미제와 리승만반역도당의 무분별한 전쟁도발책동을 짓부셔버려야 할 투쟁과업이 나서고있던 력사적시기였다.

조성된 정치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여 통일적민주주의독립국가를 건설하는데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심오하고 독창적인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로동당과 그가 지도적력량으로 되여있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와 그 두리에 뭉친 전체 조선인민은 자기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향하여,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힘차게 나아갈것이며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고야말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작《통일적민주주의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서 민주주의독립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 인민이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에 대하여 분석총화하시였다.

당과 정부의 두리에 굳게 뭉친 전체 조선인민은 자기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향하여,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힘차게 나아갈것이며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할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군인들은 조국을 보위하는 투쟁에서 영웅적위훈을 떨쳐야 한다》, 《전투준비를 더욱 강화하자》, 《현정세와 경비대의 과업》등의 로작들에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모든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며 부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할데 대한 사상이 명시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을 위한 증산경쟁운동을 전개하며 농기구와 농약의 생산공급사업을 개선할데 대하여》, 《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나타난 결함들을 시정할데 대하여》, 《로동자들에게 좋은 집을 많이 지어주어야 한다》를 비롯한 여러 로작에서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였다.

우수한 민족간부를 많이 키워내고 근로자들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한 치료예방사업에 전심전력하며 우리의 우수한 민족예술에 대한 대외선전사업을 잘할데 대한 사상이 《대학교육의 수준을 높이자》, 《곡산광산병원 일군들과 한 담화》, 《우리의 우수한 민족예술을 대외에 광범히 소개선전하자》를 비롯한 로작들에 밝혀져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혁명가유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일군이 될데 대한 문제, 문화적인 농촌을 건설할데 대한 문제, 강하천정리와 간석지개간사업을 잘하여 농업을 발전시키고 국토의 면모를 일신시킬데 대한 문제, 조선어문법교과서편찬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 등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나서는 리론실천적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일성전집》증보판 제16권에 수록된 로작들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 결정과 공화국정부의 시정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산악같이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혁명적대진군을 고무추동하는 위력한 사상정신적무기로 될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군건설업적에 대하여 하신 교시 (발취)

주체110(2021)년 12월 24일 《우리 민족끼리》

 

 

《김정일동지는 문무를 겸비한 걸출한 지도자입니다. 김정일동지는 다재다능한 재사이며 무적의 장군입니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장군입니다. 김정일동지는 백두산의 기질과 기풍으로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무력으로, 당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켰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그의 군사적기질과 조직적수완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는 주체적인 군건설방침에 따라 인민군대안에서 당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고 당의 령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주체적인 령군체계를 세워 인민군대를 참다운 당의 군대, 혁명의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현대전의 요구와 우리 나라의 구체적조건에 맞게 주체전법을 발전시키고 강력한 현대적국방공업을 건설하여 인민군대의 전투력과 무장장비를 끊임없이 강화하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군대는 당과 혁명을 위하여 한목숨바쳐 싸울수 있는 충성의 전투대오로, 현대적인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다 갖춘 무적의 강군으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는 전인민적방위체계가 튼튼히 서게 되였습니다.》

《인민군대가 오늘과 같이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되여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보위자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고있는것은 전적으로 김정일동지의 옳바른 령도의 결과입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혁명생애에 대하여 하신 교시 (발취)

주체110(2021)년 12월 24일 《우리 민족끼리》

 

 

《김정숙동무는 언제나 자기자신보다도 조국과 인민, 동지들을 먼저 생각하였으며 조국의 자주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습니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자기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지니고 조국의 광복과 건국위업에 무한히 헌신하였으며 뜨거운 인간애와 강의한 혁명정신,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닌 녀성혁명가의 전형입니다.》

《김정숙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을 위해 한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남달리 조국을 사랑하였고 동지들을 사랑하였으며 혁명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동지를 위한것이였지 자기를 위한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김정숙은 인간을 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남을 위한 희생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것이 그의 성품입니다.》

《김정숙의 관념속에는 자기라는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굶어도 좋고 얼어도 좋고 아파도 좋다, 그러나 동지들이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내가 죽는 대가로 동지들을 살릴수 있다면 나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웃으면서 죽음의 길을 택할것이다 하는것이 바로 김정숙의 인생관이였습니다.》

《그는 늘 받는 재미보다 주는 재미가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남들의 정을 받는것도 좋지만 남들에게 자기 정을 줄 때가 훨씬 더 좋다는것이 바로 김정숙의 인생철학입니다.》

《그가 일생동안 해놓은 그 모든것은 다 동지들을 위하고 인민을 위하고 혁명을 위한것이였지 자신을 위한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평생 동지들과 인민들을 위해 모든것을 송두리채 바치고 세상을 떠나간 김정숙이였지만 자녀들을 위해서는 한푼의 돈도 재산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순하고 인정이 깊으면서도 이악하고 강의한 의지를 가진 녀성혁명가였습니다.》

《김정숙동무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김정일동무를 미래의 령도자로 키워 당과 조국앞에 내세워준것입니다.》

《동무들은 내가 김정일동무를 후계자로 키워냈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초는 김정숙이 쌓아놓은것입니다. 그가 혁명앞에 남긴 가장 큰 공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김정숙동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조국과 인민앞에 남긴 고귀한 업적은 길이길이 빛날것입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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