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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전집》증보판 제20권 출판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총서인 《김일성전집》증보판 제20권을 출판하였다.
전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40(1951)년 9월부터 주체41(1952)년 3월까지의 기간에 하신 력사적인 연설, 보고, 결론, 명령을 비롯한 98건의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승리에 대한 신심과 락관을 굳게 가지고 전쟁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더욱 힘차게 투쟁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전적로작《당장성사업과 당규률문제취급에서 발로되고있는 오유를 시정할데 대하여》, 《당조직사업을 개선할데 대하여》등에서 당과 조국을 위하여 희생성과 영웅성을 발휘하고있는 선진분자들을 조선로동당에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당대렬을 질적으로 장성강화하며 각급 당단체들과 일군들속에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뿌리빼고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더욱 공고화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로작《새 학습년도에 당사상교양사업을 더욱 개선강화할데 대하여》에는 당사상교양사업에서 나타난 편향들을 철저히 극복하고 일군들과 당원들속에 우리 당과 정부의 로선과 정책을 깊이 인식시키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이 뚜렷이 명시되여있다.
전선에서 계속 주도권을 틀어쥐고 다양한 전법으로 적들에 대한 강력한 타격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군사활동을 활발히 벌리기 위한 전략전술적과업들이 《1211고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모범중대운동을 벌릴데 대하여》, 《저격수조를 조직할데 대하여》를 비롯한 로작들에 제시되여있다.
신문을 비롯한 출판보도물을 통하여 인민군군인들이 발휘한 용감성과 희생성, 대중적영웅주의를 널리 소개선전하며 인민군신문에 후방소식도 많이 싣고 기자들이 최전선에 나가 취재집필활동을 전투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로작《인민군군인들의 영웅적투쟁을 널리 소개선전하여야 한다》에 담겨져있다.
《1952년도 영농준비와 실행대책을 빈틈없이 세울데 대하여》, 《경공업성앞에 나서는 당면과업》, 《군수품생산을 늘이며 근로자들의 물질문화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에 대하여》등의 로작들에는 전선에 군수물자와 식량을 넉넉히 보장해주기 위해 생산을 늘이며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이 전면적으로 밝혀져있다.
대학생출신의 군인들을 소환하여 그들을 전후복구건설과 나라의 부강발전에 한몫 단단히 할수 있는 훌륭한 민족간부로, 믿음직한 과학기술인재로 키울데 대한 사상이 로작 《전선에서 전투원들을 소환하여 대학에 보낼데 대하여》, 《민족간부양성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한다》에 천명되여있다.
전집에는 이밖에도 김일성종합대학창립 5돐을 성대히 기념하는데서 나서는 문제,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잘할데 대한 문제, 산림을 보호할데 대한 문제, 문학예술작품창작에서 자연주의적경향을 철저히 경계할데 대한 문제 등을 밝혀주는 고전적로작들이 수록되여있다.
《김일성전집》증보판 제20권에 수록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을 앞당기기 위한 총진군에 떨쳐나선 전체 인민의 영웅적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위력한 사상리론적무기로, 우리 혁명의 영원한 승리의 기치로 빛날것이다.(전문 보기)
《김구와 합작을 못할 리유가 없소》
주체37(1948)년 3월이였다.
남북련석회의준비와 관련하여 바쁘신 시간을 보내고계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어느날 깊은 밤에 한 일군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남북련석회의소집과 관련한 자료를 넘겨주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가 미제의 분렬책동과 <단선>, <단정>음모를 파탄시키려면 반드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하오.그러자면 남조선에서 미제를 추종하지 않는 우익민족주의세력과도 대담하게 합작을 해야 하오. 구체적으로는 김구와도 말이요.》
《예?! 김구와 말입니까?》
위대한 수령님의 앞이라는것도 잊고 그 일군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김구로 말하면 한때 《상해림시정부》의 요직에 있으면서 《반일》과 《독립운동》을 표방하였지만 안속으로는 반공사상과 우익민족주의에 매달려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을 가장 철저한 《반공투사》로 자처하고있었다.
그런것만큼 김구와 손을 잡는다는것이 그 일군에게는 상상밖의 일이였던것이다.
그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왜 김구와는 합작을 해서 안될것 같소?》 라고 물으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는 물론 반공을 해온 사람이고 민족주의자요. 그러나 그에게는 반일감정이 있고 지금은 미국도 좋아하지 않소. 리승만을 내세워 <단독정부>를 만들고 나라를 분렬하려는 미제를 그가 좋아할리 없소. 그에게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애국심도 있는것이요.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공동의 위업을 수행하는데서 김구와 합작을 못할 리유가 없소.》
천만근의 무게를 가지고 울리는 그이의 말씀, 그것은 비록 지나온 경력에는 어지러운것이 많은 정객이지만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한가닥의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고 주의주장에는 관계없이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시려는 한없이 넓은 포옹력에서 우러나온것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한지맥, 한피줄로 잇닿아있는 나라의 절반땅이 외세에 짓밟히는 참상을 기어이 가셔내시려는 가장 숭고하고 열렬한 애국심에서 흘러나온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그 일군의 감동은 실로 컸다.
사상과 리념의 차이보다 민족적대의를 먼저 앞세우시며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넓은 포옹력에 그 일군의 머리는 저절로 수그러졌다.
정녕 애국애족의 마음이 한구석에라도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사상과 리념의 차이도, 어지러운 과거도 백지로 쳐주시고 한품에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하늘같은 도량과 포옹력은 민족대단결이라는 거목을 무성하게 자래운 비옥한 대지였다.(전문 보기)
김일성 민족의 분렬을 방지하고 조국을 통일하자 -체스꼬슬로벤스꼬사회주의공화국 당 및 정부대표단을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에서 한 연설 1973년 6월 23일-
존경하는 구스따브 후싸끄동지!
존경하는 루보미르 슈뜨로우갈동지!
존경하는 체스꼬슬로벤스꼬의 손님 여러분!
친애하는 동지들과 벗들!
오늘 평양시의 각계층 인민들은 형제나라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서 오신 친선의 사절들과 상봉하게 되는 커다란 기쁨을 안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나는 먼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조선인민의 이름으로 체스꼬슬로벤스꼬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구스따브 후싸끄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체스꼬슬로벤스꼬사회주의공화국 당 및 정부대표단을 다시한번 열렬히 환영합니다.
나는 또한 당신들을 통하여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에게 보내는 조선인민의 뜨거운 형제적친선의 인사를 전하는바입니다.
우리는 이번에 체스꼬슬로벤스꼬로부터 가장 높은 급의 당 및 정부대표단이 우리 나라를 찾아준것을 우리 인민에 대한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의 두터운 친선의 정의 표시로서,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 대한 굳은 련대성의 표시로서 높이 평가하고있습니다.
당신들의 이번 우리 나라 방문은 두 나라 인민들사이의 호상리해를 더 깊이하고 친선협조관계를 보다 새롭게 발전시키는 획기적계기로 됩니다.
우리는 당신들과의 상봉을 통하여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이 걸어온 간고하고도 빛나는 투쟁로정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룩한 성과에 대하여 그리고 귀 당과 귀국인민의 앞으로의 투쟁전망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습니다.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은 력사적으로 나라들사이의 분쟁이 심하였던 구라파대륙의 한 중심부에서 오래동안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며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위하여 줄기차게 투쟁하여왔습니다. 히틀러파시스트도당에 의하여 나라가 강점되였던 어려운 나날에 체스꼬슬로벤스꼬의 공산주의자들과 애국적인민들은 손에 무장을 들고 반파쑈해방투쟁을 용감히 벌렸습니다.
파쑈독일이 패망하고 나라가 해방된 이후에도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은 복잡한 투쟁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1948년 2월승리후 사회주의의 길에 들어선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은 애국적헌신성과 창조적적극성을 발휘하여 짧은 기간에 자기 나라를 발전된 공업을 가진 사회주의나라로 전변시켰으며 계급적원쑤들의 거듭되는 파괴암해책동을 물리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였습니다.
오늘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은 구스따브 후싸끄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체스꼬슬로벤스꼬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령도밑에 사회주의사회를 더욱 전면적으로 공고발전시킬데 대한 체스꼬슬로벤스꼬공산당 제14차대회의 강령에 따라 인민경제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고 인민생활을 높이며 제5차 5개년계획을 넘쳐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고있습니다.
체스꼬슬로벤스꼬는 국제관계분야에서도 활동무대를 날로 넓히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형제적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이 새 사회건설에서 이룩하고있는 모든 성과를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들의 앞으로의 투쟁에서 보다 큰 승리가 있을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인민은 또한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정책을 반대하며 구라파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체스꼬슬로벤스꼬공산당과 정부와 인민의 노력에 련대성을 표시합니다.
우리 인민은 자체의 체험을 통하여 사회주의의 길이 결코 평탄치 않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해방후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된 어려운 조건에서 새 사회건설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 인민은 우리 당의 령도밑에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전쟁책동을 짓부시면서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함으로써 지난날 뒤떨어졌던 우리 나라를 짧은 기간에 발전된 사회주의나라로 전변시켰습니다.
오늘 우리 인민은 당 제5차대회가 제시한 웅대한 강령을 받들고 사상혁명을 앞세워 온 사회의 혁명화, 로동계급화를 다그치면서 6개년계획과 3대기술혁명과업을 앞당겨 수행하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키고있습니다.
조선과 체스꼬슬로벤스꼬는 제2차 세계대전후 서로 다른 조건에서 사회주의건설의 길에 들어섰으나 두 나라에서의 공통된 경험은 근로자들에게 참다운 자유와 독립, 행복과 번영을 보장하여주는 유일한 길은 오직 사회주의의 길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습니다.
조선과 체스꼬슬로벤스꼬 두 나라 인민들은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평화와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한 공동의 목적으로 하여 오래전부터 굳은 친선의 뉴대를 맺고 긴밀히 협조하여왔습니다. 맑스-레닌주의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에 기초하고있는 이 친선은 두 나라 인민들이 전진도상에서 난관과 시련에 부닥칠 때마다 보다 큰 생활력을 나타냈습니다.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은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시기와 전후복구건설시기에 우리 인민에게 물심량면으로 많은 원조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있습니다.
오늘도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적극 지지협조하여주고있습니다. 얼마전 체스꼬슬로벤스꼬사회주의공화국 련방회의는 우리 나라 최고인민회의가 세계 각국 국회와 정부들에 보낸 편지에 대한 회답에서 우리의 평화통일방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우리 인민의 정당한 위업을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지지방조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체스꼬슬로벤스꼬인민이 우리 인민을 형제적으로 지지협조하여주고있는데 대하여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구스따브 후싸끄동지와 체스꼬슬로벤스꼬공산당과 정부와 인민에게 다시한번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이번 체스꼬슬로벤스꼬 당 및 정부대표단의 우리 나라 방문이 그대로 보여주는바와 같이 우리 두 나라사이의 관계는 계속 좋게 발전하고있으며 국제주의적련대성은 강화되고있습니다.
사회주의나라들사이의 단결의 강화는 사회주의의 전반적위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있으며 세계사회주의의 진지가 공고하다는것을 말하여주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앞으로도 우리 나라에서 혁명과 건설을 잘함으로써 자기에게 맡겨진 민족적임무와 국제적임무를 더욱 충실히 실행해나갈것입니다.
동지들과 벗들!
오늘 국제정세는 계속 사회주의와 혁명력량에 유리하게, 제국주의와 반동력량에는 불리하게 전변되고있습니다.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운동, 로동운동과 민주주의운동의 장성하는 력량앞에서 제국주의는 내리막길을 걷고있으며 그 처지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로부터 출로를 찾기 위하여 더욱더 교활한 량면전술에 매여달리고있습니다.
미국은 《평화》의 간판밑에 세계 여러곳에서 침략과 간섭책동을 계속하고있으며 큰 나라들과는 관계를 개선하고 작은 나라들을 힘으로 내리눌러 자기의 식민지패권을 유지하려 하고있습니다.
조선, 캄보쟈, 윁남, 라오스, 일련의 아랍나라들 그리고 꾸바와 그밖의 세계 여러 나라들에 대하여 감행하고있는 미국의 침략과 간섭책동은 이것을 잘 말하여줍니다.
미국은 아세아에서 전면적으로 파산몰락되고있는 자기의 식민지지배체계를 수습하기 위한 중요한 지탱점으로서 남조선을 언제까지나 틀어쥐려 하고있습니다.
미국은 《닉슨주의》에 따라 량면전술을 쓰면서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조선의 북과 남사이에 대화가 시작된 이후에도 남조선의 호전분자들을 부추겨 조선사람끼리 싸우게 하며 조선의 분렬을 영구화하고 《두개 조선》을 만들려는 책동을 버리지 않고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책동에 발맞추어 남조선당국자들도 역시 량면전술을 쓰고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평화통일》의 간판을 내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있는 대결》, 《대화있는 경쟁》, 《대화있는 공존》을 공공연히 부르짖으면서 분렬의 영구화를 꾀하고있으며 군사력증강에 온갖 힘을 다 돌리고있습니다.
바로 이 모든것으로 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성의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 조선의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있으며 통일의 앞길에는 의연히 큰 난관이 가로놓여있습니다. 그리하여 한해전에 력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였을 때 우리 민족앞에 열리였던 조국통일의 밝은 전망은 도로 흐려지고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평화적조국통일의 민족적숙원을 하루빨리 실현하려는 진지한 념원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자주적평화통일방침을 새로이 내외에 천명합니다.
1. 오늘 조선의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먼저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긴장상태를 가셔야 합니다.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긴장상태를 가시는것은 현시기 남북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호상리해와 신임을 두터이 하며 민족적대단결의 분위기를 마련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긴절하고도 관건적인 문제입니다.
북과 남이 방대한 무력을 가지고 군사적으로 대치하여있는것은 그자체가 우리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큰 요인으로 되고있을뿐아니라 오해와 불신을 낳는 근원으로 되고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풀려야만 북과 남사이의 긴장상태와 불신임을 없애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으며 호상신뢰의 기초우에서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습니다. 속에 칼을 품고 평화통일을 하겠다고 하며 대화를 한다는것자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속에 품고있는 칼을 내놓지 않고서는 서로 믿음의 분위기를 마련할수 없으며 북과 남사이의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나라의 통일과 관련된 크고작은 어떤 문제도 원만히 풀어나갈수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나라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의 중지,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군대와 군비의 축소,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반입의 중지, 평화협정의 체결을 내용으로 하는 5개 항목의 제안을 여러차례에 걸쳐 남조선당국에 제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당국자들은 이 긴절한 문제를 뒤로 미루고 부차적문제들이나 이러저러한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해결하자고 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호상신임을 두터이 하고 민족적대단결을 도모하자는것이 아니며 민족분렬의 쓰라린 상처를 그대로 두고 나라의 분렬을 유지하며 고정화하자는것입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참말로 평화통일을 바라고 통일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이러한 립장을 버리고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는 길로 나와야 합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재일조선출판보도부문 일군들앞에 나서는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발취) -재일조선출판보도일군대표단과 한 담화 1977년 11월 20일-
다음으로 남조선혁명문제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지난 기간 남조선혁명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남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이 튼튼히 꾸려져있지 못하고 조직안에 미제의 간첩들이 들어박혀있었기때문입니다.
력사적으로 보면 박헌영이 미제의 간첩으로서 당안에 들어박혀있으면서 남조선혁명을 말아먹었습니다. 그는 남조선에서 단결할수 있는 력량과도 단결하지 않았습니다. 박헌영은 려운형을 당수로 하는 인민당과 합작할수 있었으나 합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인민당은 적들의 탄압에 의하여 파괴되고말았습니다.
그후에 남조선에서 진보당이 나와 괜찮게 투쟁하였습니다. 진보당의 당수였던 조봉암은 리승만과의 괴뢰대통령선거경쟁에서 나라의 평화통일을 주장하여 많은 지지표를 얻었습니다. 진보당의 영향력이 남조선인민들속에 급격히 퍼지는데 겁을 먹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조봉암을 학살하고 진보당을 강제로 해산시켰습니다. 이 당에도 간첩이 배겨있으면서 당내 형편을 적들에게 밀고하였습니다.
진보당이 탄압당한 다음 1960년 4월에 인민봉기가 일어났고 뒤이어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대두하였으며 그 과정에 사회대중당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당도 대오안에 기여든 간첩들의 책동과 원쑤들의 야수적폭압으로 파괴되고말았습니다. 그리하여 4. 19인민봉기의 좋은 영향력이 맥을 출수 없게 되였습니다.
사회대중당이 파괴된 다음에는 김종태동무를 비롯한 남조선혁명가들에 의하여 통일혁명당이 새로 조직되였습니다. 김종태동무는 견결한 혁명사상을 가진 훌륭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러나 통일혁명당을 조직하는데서 조직성원들을 엄선하여 꾸리지 못하였기때문에 대오안에 나쁜 놈들이 기여들게 되였으며 그놈들의 밀고로 말미암아 많은 조직성원들이 적들에게 체포되여 학살당하였습니다. 지금 통일혁명당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계속되는 탄압속에서 어려운 투쟁을 벌리고있습니다.
오늘 남조선혁명정세는 좋습니다. 미제와 박정희괴뢰도당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불만이 날로 높아가고있습니다.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숭미공미사상이 점차 없어지고있으며 반미반일감정이 높아가고있습니다. 남조선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뿐아니라 종교인들까지도 미제와 박정희독재정권을 반대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조선에는 인민들을 조직적으로 묶어세우고 그들의 반미반파쑈민주화투쟁을 주동적으로 이끌어나갈수 있는 지도핵심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조선에서 혁명의 지도핵심을 키우는것이 중요합니다. 혁명의 지도핵심이 있어야 정세발전의 요구에 맞게 옳은 전략전술을 세우고 투쟁을 기동성있게 벌려나갈수 있습니다. 만일 자체의 힘으로 남조선혁명을 완성하고야말겠다는 각오를 가진 참다운 혁명가들로 지도핵심이 꾸려진다면 그들은 하나가 열, 열이 백, 백이 천, 천이 만을 교양하고 묶어세워 남조선혁명을 수행해나갈수 있을것입니다.
나는 지난날 지하투쟁도 해보았고 감옥생활도 해보았으며 무장투쟁도 해보았습니다. 나의 20년간의 항일혁명투쟁경험을 놓고보아도 주체형의 공산주의혁명가들로 꾸려진 핵심만 있으면 많은 동정자들과 청년들을 묶어세워 혁명을 할수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견결한 공산주의혁명가들이 자라나자면 오랜 시일이 걸릴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견결한 공산주의혁명가는 오랜 혁명투쟁경험을 가진 나이많은 사람만이 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나는 항일혁명투쟁을 나이가 들어서 한것이 아니라 청소년때부터 하였습니다. 사람은 젊었을 때 더 용감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젊은 청년들을 견결한 공산주의혁명가로 키워야 합니다. 남조선에서 혁명의 지도핵심을 키워내면 사회의 민주화도 빨리 실현할수 있을것이며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도 앞당길수 있을것입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통일전선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이번에 남조선괴뢰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하던 사람이 미국망명성명을 발표한것을 보면 그가 괜찮은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지난날에는 공산주의를 반대하였지만 지금은 조국을 통일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사람들과의 통일전선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통일전선사업을 잘하자면 반드시 근로대중에 의거한 주체적인 혁명력량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주체적인 혁명력량이 튼튼하지 못하면 통일전선사업을 잘할수 없습니다.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투쟁하면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할수 있습니다. 조국을 통일하는 사업이 막연한것도 아닙니다. 남조선사회를 민주화하면 조국통일을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와 념원에 맞게 얼마든지 실현할수 있을것입니다.
다음으로 국제혁명력량과의 련대성문제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국제적지위는 공화국이 갓 창건되였을 때나 조국해방전쟁시기와는 비할수 없이 높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만 하여도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나라들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나라들과 제3세계나라들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의 지지와 동정을 받고있습니다. 특히 새로 독립한 나라들과 사회주의나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있습니다.
지금 미제국주의자들이 분렬, 리간책동을 하고있지만 제3세계나라들은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적극 지지하고있으며 자주의 길로 나아가고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국통일 5대방침에 대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한 연설 1973년 6월 25일-
우리는 이틀전 6월 23일에 한 연설에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5대방침을 새로이 내외에 천명하였습니다.
우리의 연설은 세상에 발표된 첫날부터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전체 조선인민이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조국통일 5대방침을 열렬히 지지환영하고있을뿐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정부와 인민들속에서 이 방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이 울려나오고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방문한 체스꼬슬로벤스꼬 당 및 정부대표단은 우리가 조국통일 5대방침을 발표한 즉시로 그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표명하였으며 뒤이어 여러 나라들에서 우리가 내놓은 조국통일 5대방침을 지지하는 립장을 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신문, 통신, 방송들은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조국통일 5대방침을 널리 소개하고있으며 그것을 환영하는 론평도 많이 발표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조국통일 5대방침을 새로이 내놓은것은 매우 엄중한 단계에 이른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의 민족분렬영구화책동을 짓부시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됩니다.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은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에도 민족분렬책동을 계속하여왔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두개 조선》을 조작해보려고 남북대화의 막뒤에서 남조선당국자들을 분렬행동에로 끊임없이 부추겨왔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북과 남사이의 대화에서 남조선이《힘의 립장》에 서도록 하여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벌이면서 남조선에 새로운 군사장비들을 계속 끌어들였으며 남조선에서 침략적인 전쟁연습소동을 그칠사이 없이 벌렸습니다. 일본군국주의자들도 미제국주의자들의 책동에 장단을 맞추면서 북과 남사이의 대화를 방해하고 우리 나라의 통일을 가로막는 행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과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결국 우리 나라를 영원히 둘로 갈라놓고 남조선을 자기들의 영원히 식민지로, 상품시장으로 만들자는것입니다.
미제의 적극적인 부추김밑에 남조선당국자들은 남북공동성명의 합의사항을 공공연히 짓밟고 통일이 아니라 분렬의 길로 계속 나갔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 더욱더 외세에 매여달렸으며《대화있는 대결》,《대화있는 경쟁》을 부르짖으면서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며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자는 우리의 제의를 다 거부하고 긴장상태를 격화시키는 침략적도발행동을 끊임없이 감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반공》소동을 계속 벌렸으며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파쑈적탄압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입으로는 통일에 대하여 떠들어댔으나 실지행동에서는 분렬을 고착시키고 영구화하기 위한《두개 조선》조작책동에 미쳐날뛰였습니다.
미제의 부추김밑에《두개 조선》조작음모를 각방으로 추진시켜오던 남조선당국자들은 드디여 지난 6월 23일 오전에《특별성명》이라는것을 발표하여 조국의 분렬을 영구화할데 대한《정책》을 공공연히 세상에 선포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이른바《특별성명》에서 내세운 주장은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나라가 분렬된 상태에서 북과 남이 따로따로 유엔에 들어가자는것입니다.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반민족적인 주장입니다. 만일 남조선당국자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둘로 갈라지게 될것이며 남조선인민들은 영원히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노예로 남아있게 될것입니다.
미제의 부추김밑에 남조선당국자들이 감행한 민족분렬영구화책동으로 말미암아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엄중한 난국이 조성되였습니다.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위업을 촉진하기 위하여서는 남조선당국자들이 들고나온 반민족적인 주장을 제때에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온 민족앞에 조국통일의 확고한 전망과 뚜렷한 방도를 제시하는것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6월 23일 오후에 새로운 구국대책으로서 조국통일 5대방침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내놓은 조국통일 5대방침은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의 완화, 북과 남사이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의 소집, 고려련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련방제의 실시, 단일한 고려련방공화국 국호에 의한 유엔가입을 그 내용으로 하고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무엇보다먼저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긴장상태를 가시자는것입니다.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고 긴장상태를 가시는것은 현시기 남북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호상 리해와 신임을 두터이하며 민족적대단결의 분위기를 마련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긴절하고도 관건적인 문제입니다.
북과 남이 방대한 무력을 가지고 군사적으로 대치하여있는 그자체가 우리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큰 요인으로 되고있을뿐아니라 오해와 불신을 낳는 근원으로 되고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풀려야만 북과 남사이의 긴장상태와 불신임을 없애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으며 호상 신뢰의 기초우에서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습니다. 속에 칼을 품고 평화통일을 하겠다고 하며 대화를 한다는것자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속에 품고있는 칼을 내놓지 않고서는 서로 믿음의 분위기를 마련할수 없으며 북과 남사이의 합작과 교류를 실현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나라의 통일과 관련된 크고작은 어떤 문제도 원만히 풀어나갈수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나라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의 중지,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군대와 군비의 축소,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반입의 중지, 평화협정의 체결을 내용으로 하는 5개 항목의 제안을 여러차례에 걸쳐 남조선당국에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이 긴절한 문제를 뒤로 미루고 부차적문제들이나 이러저러한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해결하자고 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진심으로 호상 신임을 두터이 하고 민족적대단결을 도모하자는것이 아니며 민족분렬의 쓰라린 상처를 그대로 두고 나라의 분렬을 유지하며 고정화하자는것입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참말로 평화통일을 바라고 통일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이러한 립장을 버리고 군사적대치상태를 해소하는 길로 나와야 할것입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해외동포들속에서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갈데 대하여 -독립국가협동체 조선통일촉진위원회 위원장일행과 한 담화 1993년 6월 6일-
오늘 1년만에 동무들과 이렇게 다시 만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동무들은 그동안 반동들과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동무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와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사는 동포들과의 사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면서 높이 평가합니다.
동무들은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조국통일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벌려나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혁명의 안팎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며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앞길에는 의연히 많은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여있습니다.
동무들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최근년간에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이전 쏘련과 동구라파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쏘련은 고르바쵸브가 말아먹었지만 쏘련이 와해되기 시작한것은 흐루쑈브때부터입니다. 흐루쑈브는 《개인미신》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쓰딸린을 악랄하게 헐뜯었으며 혁명투쟁에서 수령이 노는 역할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때로부터 쏘련당에서는 령도의 중심이 없어지게 되였습니다. 로동계급의 당이 령도의 중심을 잃고 수령의 령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 전투력이 마비되여 혁명과 건설을 옳게 령도해나갈수 없습니다.
나는 최근에 구라파나라들의 이전 공산당들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을 만나주는데 그때마다 그들에게 혁명과 건설에서 당과 수령이 노는 역할에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수령, 당, 대중의 호상관계를 복숭아에 비유하여 설명해주군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복숭아는 겉에 살이 있고 그속에 굳은 껍질이 있으며 그속에 씨가 있다, 복숭아의 씨는 수령과 같고 굳은 껍질은 당과 같으며 살은 대중과 같다, 당을 강화하려면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당의 두리에 대중을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 우리 당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전체 인민의 통일단결을 실현하였기때문에 오늘과 같이 강유력한 당으로 될수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수령의 역할을 거부하는것은 결국 당을 파괴하기 위한것이며 혁명을 말아먹기 위한것입니다. 흐루쑈브가 집권하여 수령의 역할을 거부하다보니 쏘련공산당은 점차 무력해졌으며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당의 령도를 반대하여나섰습니다. 쏘련공산당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거의나 하지 않았습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하지 않고 물질적자극만 강조하다보니 사람들은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가 되고말았습니다. 그들의 안중에는 당도 조국도 인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자동차를 사고 별장을 구입하여 잘살겠는가 하는것만 생각하게 되였으며 처녀들은 자동차나 별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집을 가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사상정신상태가 이렇게 한심한 형편에 이르다보니 그들은 고르바쵸브가 내놓은 《새로운 사고방식》의 반동성을 가려보지 못하였습니다. 《새로운 사고방식》이란 오늘날에 와서는 적이 따로 없으므로 제국주의자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쏘련사람들은 고르바쵸브가 《새로운 사고방식》이라는 기만적인 구호를 들고나와 《공개성》이요, 《개편》이요 하고 떠들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물었습니다. 그리하여 1 800만명의 당원을 가진 쏘련공산당이 하루아침에 녹아나고 쏘련은 붕괴되고말았습니다.
쏘련공산당과 쏘련의 붕괴에서 교훈을 찾은 이전 쏘련사람들은 지금 사회주의를 재건하기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쓴맛을 어지간히 보았기때문에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에게나 좋았지 인민들에게는 나쁘다는것을 깨달은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회주의를 다시 복구하려면 하나의 대오에 뭉쳐 적극적으로 투쟁하여야 합니다.
최근에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오는데 그들은 우리보고 어떻게 하나 사회주의를 고수해달라고 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는 사회주의기발을 놓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사회주의 붉은 기발을 계속 높이 들고 나갈것이라고 말해주군 합니다. 나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투쟁하면 멀지 않아 자기들의 목적을 실현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조국의 정세도 매우 긴장합니다. 이전 쏘련과 동구라파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 엄혹한 정세속에서도 우리가 끄떡하지 않고 사회주의기치를 고수해나가자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우리 나라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어떻게 하나 우리 공화국을 압살해보려고 책동하고있습니다. 지금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부 불순세력들을 내세워 우리의 두개 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강요해나섬으로써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있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요구와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최고리익을 지키기 위하여 전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를 선포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지금 미국은 우리의 《핵문제》를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끌고가 우리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지 않으면 그 무슨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해나서고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그 어떤 압력과 위협공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 《핵문제》를 가지고 조미회담이 진행되고있는데 우리는 절대로 원칙을 양보하지 않을것입니다.
혁명적원칙을 고수하는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간직하고있는 확고한 신념입니다. 그전에 쏘련 원동지방과 중국 동북지방에서 레닌에 대한 찬가를 많이 불렀는데 그 노래가사에 레닌을 로동자의 사랑동, 자본가의 미움동이라고 한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12살때부터 그 노래를 부르며 혁명을 할 각오를 다지였습니다. 로동자들에게는 사랑동이 되고 자본가들에게는 미움동이 되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적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데 대하여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적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원칙을 양보하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핵문제》를 걸고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지만 결코 우리 인민을 굴복시키지 못할것입니다. 우리는 적들의 책동에 단호히 맞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해나갈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혁명하는 시대, 투쟁하는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혁명의 길에는 일시적인 난관도 있을수 있고 시련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것만큼 동무들은 일시적인 애로와 난관에 동요하지 말고 동포들속에서 조국통일운동을 더 과감히 벌려나가야 합니다.
동무들이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리자면 무엇보다도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살고있는 모든 동포들을 조선통일촉진위원회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합니다. 동무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체의 신문사를 내온것은 잘한 일입니다. 동포들을 각성시켜 조선통일촉진위원회의 두리에 묶어세우자면 신문사를 내오고 신문발행부수를 늘여 모든 동포들이 다 신문을 보도록 하여야 합니다.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 조선사람들이 적지 않게 살고있는데 신문을 많이 발행하면 동포대중을 교양하는데서 큰 효과를 볼수 있을것입니다.
동포들속에서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리기 위하여서는 예술축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행사들을 많이 조직하는것이 필요합니다. 동무들이 모스크바에 있는 국회쎈터회의실에서 조선통일촉진위원회 제2차대회를 하겠다고 하는데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동포들속에서 조선통일촉진위원회의 권위가 높아지고 그들의 사기도 오르게 될것입니다.
동무들은 동포청년들과의 사업도 잘하여야 합니다. 동무들이 9월에 모스크바에서 동포청년대회를 열고 청년조직을 내오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앞으로 청년조직을 내오고 거기에 모든 동포청년들을 묶어세우면 그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것입니다.
동무들은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살면서 조국통일운동을 하고있는것만큼 그 나라의 공산당과 공청조직을 비롯한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과 련계를 밀접히 가지고 공동투쟁을 적극 벌려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정의의 위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동무들이 독립국가협동체나라들에서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리라고 믿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자 -보천보인민들앞에서 한 연설 1937년 6월 4일-
동포형제들!
우리들은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일제와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우리는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눕힌 승리의 결전장에서 그립던 조국동포들과 이처럼 뜻깊은 상봉을 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대표하여 우리 혁명군을 물심량면으로 적극 지지성원하여준 여러분과 국내 애국적인사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오늘 강도 일제는 온 삼천리강토를 군대와 헌병, 경찰망으로 뒤덮고있으며 각종 악법을 조작하고 수많은 애국자들을 야수적으로 검거투옥, 학살하며 우리 인민에게 치욕스러운 노예적굴종을 강요하고있습니다.
교활한 일제는 우리 인민의 숭고한 민족정신을 거세하려고 《내선일체》니, 《동조동근》이니 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황도정신》을 강제로 불어넣으려 하며 심지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민족문화와 아름다운 우리 말까지 유린말살하려 하고있습니다.
강도 일제는 우리 인민에 대한 착취와 략탈을 더욱 강화하고있으며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재부를 깡그리 빼앗아가고있습니다. 일제놈들은 이곳 산간벽촌에까지 략탈의 마수를 뻗치고 우리의 귀중한 산림자원을 모조리 략탈해가고있습니다. 일제놈들은 여러분을 마소와 같이 온갖 고역에 내몰면서 피땀을 여지없이 짜내고있으며 화전농사마저 제대로 짓지 못하게 하고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해가고있으며 토스레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오막살이에서 눈물겨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강도 일제는 최근에 이르러 중국대륙침략책동을 더욱 강화하면서 우리 인민에 대한 파쑈적탄압과 강도적략탈을 미친듯이 감행하고있습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 민족은 생사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였으며 온 나라는 황페화되여 암흑천지로, 인간생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압제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투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우리 나라의 열혈청년들과 애국인사들은 일제의 폭압정책을 짓부시기 위한 반일성전에 거연히 떨쳐나섰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우리 민족의 출로를 개척하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 손에 무장을 잡고 6~7년간 조선과 만주광야에서 일제침략자들과 영용무쌍하게 싸워왔습니다. 우리 혁명군은 도처에서 적들을 족치고 일제의 식민지통치체계에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었으며 망국노의 설음안고 짓밟혀사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의 서광을 안겨주고있습니다.
우리의 힘도 강화되고 세계혁명력량도 강대해지고있으며 우리의 투쟁에 대한 전세계 진보적인민들의 지지도 커가고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달성할것이며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고야말것입니다.
혈로를 뚫고 나아가는 우리 혁명군용사들의 대담무쌍한 활동과 혁혁한 전과에 당황망조한 일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으며 최근에 와서는 어리석게도 우리 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아보려고 국경경비진강화에 혈안이 되여 날뛰고있습니다. 심지어 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토벌》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선전놀음까지 벌리고있습니다.
여러분! 일제놈들이 이처럼 발악적으로 책동하여도 조선인민혁명군은 여전히 건재하며 그 위용을 만천하에 시위하고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가 《철벽》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국경경비진을 뚫고 국내에 진격하여 며칠전에는 무산방면에서 종횡무진의 활동으로 원쑤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였으며 오늘은 여기 보천보에서 우리 민족의 불굴의 투지와 숭고한 기개를 유감없이 시위하였습니다.
우리 혁명군은 방금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를 비롯한 일제의 폭압기구와 통치기관들을 짓부시고 거기에 도사리고앉아 여러분들에게 온갖 불행과 고역을 들씌우던 우리 민족의 피맺힌 원쑤 일제침략자들을 소탕하여버렸습니다.
여러분! 저 불길을 보십시오. 거세차게 타번지는 저 불길은 놈들의 최후를 보여주고있습니다. 저 불길은 우리 민족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날강도 일제놈들과 싸우면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고있습니다. 저 불길은 학대와 주림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희망의 서광으로 빛날것이며 투쟁의 불씨로 되여 온 삼천리강토에 퍼지게 될것입니다.
조선민족은 일제놈들과 《동조동근》이 아니며 우리는 놈들이 떠드는 《내선일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복수의 총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기아와 빈궁, 무지와 몽매속에서 허덕이는 2천 300만 겨레를 해방하고 기어이 조국을 광복하고야말것이며 독립된 조국땅우에 착취없고 압박없는 인민의 나라를 세울것입니다.
여러분! 조국을 광복하는것은 오늘 조선민족의 사활적요구입니다.
우리모두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억울하고 비통한 처지에 놓이게 된것을 앉아서 한탄만 하지 말고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아래 더욱 굳게 뭉쳐 침략자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광복의 대업을 실현하기 위한 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섭시다. 투쟁만이 살길이며 민족재생의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만난을 극복하고 온갖 성의와 열의를 다해서 합심협력하며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조선독립을 위한 반일성전에 총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각종 투쟁으로 우리 민족의 피를 빨아 배를 불리는 흡혈귀 조선총독부의 온갖 반인민적책동을 철저히 파탄시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일제침략자들의 허위선전을 철저히 짓부시고 우리 말과 글, 우리의 민족적정신을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조선민족으로서의 불굴의 기개를 떨쳐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백전백승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존재하는 한 우리 나라가 반드시 독립된다는 확고한 신심과 민족적자부심을 굳게 가지고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심량면으로 지원하며 억세게 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 불길이 온 삼천리강토에 활활 타번지게 합시다.
동포형제들!
최후승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의것입니다.
우리모두 광복된 조국땅에서 다시 만나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부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그날을 위하여 총매진합시다.
조선독립 만세!
조선혁명 만세!(전문 보기)
김일성 총련의 결성은 재일조선인운동발전에서 근본적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사변이다(발취) -총련결성 35돐 재일조선인감사단과 한 담화 1990년 5월 25일-
끝으로 조국통일문제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오늘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는것입니다. 미제는 민족분렬의 장본인이며 조국통일의 기본장애물입니다. 지금 우리 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민들도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할것을 강력히 요구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미제는 내외의 강력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는 우리의 《남침위협》을 구실로 남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계속 틀어쥐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고있습니다. 북과 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자는 우리의 제의를 남조선괴뢰도당이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는것도 그들에게 조국통일의 의사가 없는데 원인이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미국의 간섭책동과 관련되여있습니다.
우리는 북과 남이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우리와 미국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하자는것을 시종일관하게 제기하고있습니다. 북과 남이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우리와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이 남조선에 저들의 군대와 핵무기를 남겨둘 구실이 없게 됩니다. 미국당국자들은 이것을 알고있기때문에 겉으로는 북과 남사이의 대화를 환영하는것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대화도 평화도 우리 나라의 통일도 다 반대하고있습니다. 현실은 미제침략자들을 남조선에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미제침략자들을 남조선에서 몰아내자면 남조선인민들이 반미자주화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지난 시기에는 남조선인민들이 미국을 해방자, 원조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조선인민들의 사상정신상태를 지배한것은 미국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숭미, 공미사상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숭미, 공미사상에서 벗어나 반미자주화, 반전반핵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서고있습니다.
투쟁에 일떠선 인민대중의 힘은 그 무엇으로써도 당해낼수 없습니다. 이란에서는 모든 회교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사람같이 떨쳐나 싸웠기때문에 파흐라비독재정권을 꺼꾸러뜨리고 회교공화국을 선포할수 있었습니다. 남조선인민들도 멀지 않아 이란인민들처럼 모두가 떨쳐나서 현 파쑈독재정권을 력사의 무덤속에 매장하고 그우에 외세가 없고 파쑈가 없는 자주의 새 세상, 민주의 새 세상을 일떠세울것이며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힘을 합쳐 통일된 하나의 조선을 세울것입니다.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서 총련과 재일동포들이 맡고있는 임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총련은 조국통일사업을 대중화할데 대한 우리 당의 방침을 높이 받들고 이 사업을 전기관적, 전동포적인 사업으로 확고히 전환하여야 합니다. 총련은 특히 민단계동포들, 미조직동포들과의 민족단합사업을 더욱 강화하며 일본에 오는 남조선사람들과의 사업도 잘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겠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자 (발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 1990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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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는것은 공화국정부와 전체 조선인민앞에 나서고있는 가장 절박한 민족적과업입니다.
나라가 분렬된 다음 오늘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력사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잇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투쟁의 력사였습니다.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속에서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 마련되고 통일운동이 전민족적운동으로 전환되게 되였습니다.
북과 남이 공동으로 합의하고 내외에 선포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온 민족의 슬기와 의지를 한데 모아 조국통일의 앞길을 뚜렷이 밝힌 위대한 통일강령입니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우리 공화국정부가 내놓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우지 않고 공정하게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실현할수 있게 하는 가장 정당하고 현실성있는 통일방안입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조국이 통일된 다음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고 그 어떤 정치군사동맹이나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적인 나라로 발전할것을 예견하고있는것만큼 그것은 전체 조선민족의 자주적요구에 맞을뿐아니라 주변나라들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념원에도 부합되는것입니다.
공화국정부와 전체 조선인민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힘있게 벌려나가야 할것입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우리 민족의 사활적인 요구이며 자주화의 력사적흐름이 제기하는 시대적과제입니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가혹한 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의 구호를 높이 들고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떨쳐나서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고있습니다. 남조선청년학생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이 굴함없이 벌리고있는 정의로운 투쟁은 우리 민족의 높은 자주정신과 꺾을수 없는 통일의지를 뚜렷이 보여주고있으며 이것은 세계 진보적인민들속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은 의연히 계속되고있지만 통일운동은 전민족적범위에서 날로 더욱 앙양되고있습니다.
온 민족의 절박한 념원에 맞게 하루빨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옳게 해결하여야 할것입니다.
첫째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는것은 우리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가장 선차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사이에 서로 상대방을 침략하지 않을데 대한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조미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여야 하며 북과 남의 무력을 대폭 줄이고 남조선에서 핵무기와 외국군대를 철수시켜야 합니다.
공화국정부는 북과 남의 무력을 단계적으로 축감하여 10만명이하로 줄이며 그에 따라 남조선에서 핵무기와 미국군대를 철수하여야 한다는것을 주장하여왔습니다.
우리가 조선의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정한 념원으로부터 북과 남의 무력을 대폭 줄이자고 하며 세계적으로도 외국군대의 철수가 하나의 추세로 되고있는 조건에서 미국군대가 남조선에 계속 남아있어야 할 아무런 구실도 있을수 없습니다. 남조선에서 미군이 철수하는것은 평화와 완화에로 나아가는 시대의 흐름에도 맞는것이며 미국인민의 리익에도 부합되는것입니다.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조선의 통일을 더욱 촉진하게 될것이며 우리 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을것입니다. 미국이 남조선주둔 미군을 한꺼번에 완전히 철수할수 없다면 단계별로 나누어 철수할수도 있을것입니다.
둘째로,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사이의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국토와 민족을 갈라놓고있는 장벽을 제거하고 북과 남사이에 자유로운 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는것은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고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조건으로 됩니다.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의 동포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서로 만나 동포애의 정을 나누고 북과 남의 현실을 직접 보아야 인위적으로 갈라진 삼천리금수강산을 하나로 통일하여 조국의 휘황한 미래를 열어나가려는 의지를 굳게 다지고 통일운동에 더욱 힘차게 떨쳐나설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의 광범한 인민들과 각계 인사들이 북을 방문하는데 대하여 열렬히 환영할것이며 남에서 오는 동포들을 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고 그들의 신변안전을 철저히 보장할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이 남을 방문하는데 대하여 아무런 제한도 하지 않을것이며 적극 보장하여줄것입니다.
지금 남조선당국자들은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에 대하여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남조선인민들과 각계 인사들이 북으로 오려고 하는것을 가로막고있으며 숭고한 통일의 념원을 안고 북에 왔다간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 처형하고있습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진정으로 민족적화합과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려고 한다면 그들자신이 쌓아놓은 콩크리트장벽부터 허물어야 하며 조국통일을 위한 접촉과 상봉에 장애로 되는 악법들을 페지하고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할것입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 (발취) -당선전선동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1955년 12월 28일-
다음으로 나는 사상사업에서 제기되는 당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말하려 합니다.
4월전원회의문헌학습을 돕기 위하여 당중앙위원회에서 우리 혁명의 성격과 과업에 대한 제강을 내려보낸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는 더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우리 나라 혁명의 전도에 대하여 다시한번 강조하려 합니다. 우리 혁명에는 두가지 전도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평화적으로 통일되는것이 하나의 전도요, 큰 전쟁으로 인하여 제국주의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조건하에서 나라의 통일이 실현되는것이 다른 하나의 전도입니다.
우리는 물론 첫째 전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북반부에서 건설을 잘하며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을 잘하는 이 두가지 문제에 귀착됩니다.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촉진하여 민주기지를 강화하며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을 잘하여 남반부인민들을 해방투쟁에 궐기시킨다면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수 있습니다.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이란 남반부인민들에 대한 북반부의 영향을 강화하여 남반부의 광범한 인민대중이 우리를 지지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잘해야 합니다. 북반부에서 경제건설을 잘하여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경제토대를 강화하며 전체 인민을 우리 당 주위에 단결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리승만이 제아무리 발악해도 북반부의 사회주의건설에 의하여 부단히 고무되고있는 남반부인민들의 투쟁기세를 꺾지 못할것입니다.
얼마전에 남반부에서 들어온 어떤 사람이 《북반부에는 인구가 300만밖에 없고 평양은 재더미가 되여 아무것도 없다고 리승만이 선전했는데 정작 와보니 대동강다리는 원상대로 복구되였고 평양은 이전보다 훨씬 더 훌륭한 도시로 건설되고있다. 리승만이 개소리를 쳤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건설을 잘하면 바로 이와 같이 되는것입니다.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련석회의가 열렸던 1948년 당시 우리는 북반부에서 그리 크게 해놓은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조선에서 리승만과 김성수를 제외하고는 우익인사들까지도 다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이 련석회의의 의의는 매우 큽니다. 그때 북반부에 들어왔다가 남은 사람이 많습니다.
김구는 말하기를 《북조선에 와보니 마음에 든다. 상해에서도 남조선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그가 만나보았다면 물론 화요파나 엠엘파였을것이다.) 북조선공산주의자들은 다르다. 나는 이전에 공산주의자들이란 협애하고 몹쓸 사람들인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와보니 당신들은 도량이 크고 관대하여 얼마든지 합작할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나는 결단코 당신들과 합작하겠다. 이제 늙은 나에게는 정권욕망은 없다. 내가 만일 남조선에 나가지 않는다면 리승만은 틀림없이 내가 억류당하였다고 주장할터이며 또 내자신의 소원으로 말한다 하더라도 나가서 좋은 선전을 하여야 할터이니 불가불 나가기는 나가야 하겠다. 내가 미국놈들과 합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뒤에 내가 다시 들어오면 촌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 하니 사과밭이나 하나 주기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김규식도 같은 뜻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후 김구는 미국놈들을 반대하여 싸웠습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김구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본래 제국주의도 반대하고 공산주의도 반대하였는데 공산주의자들과 한번 담판이나 해본다고 왔던것입니다. 공산주의를 불구대천의 원쑤로 알고있던 김구조차 조국건설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대하여 자기의 생각을 고치게 되였는데 하물며 남조선의 로동자, 농민과 민족적량심이 있는 인사들이 북반부에 와본다면 어떻게 될것인가를 넉넉히 짐작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방전에 쏘련에 가보지도 못하고 쏘련에서는 로동계급이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말만 듣고도 쏘련을 무한히 동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남반부인민들이 어떻게 같은 민족인 우리 북반부인민들의 사회주의건설을 동경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렇기때문에 북반부에서 건설을 잘하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잘하고 남반부에 대한 정치사업을 잘하여 남반부인민들이 미제국주의와 리승만통치제도를 반대하여 일떠설 때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은 실현될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내부적요인입니다.
나라의 평화적통일에 유리한 외부적요인을 또한 고려해야 할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5~10년동안 평화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면 쏘련은 물론 6억이상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위력은 비할바 없이 강대해질것이며 전체 사회주의진영의 력량이 더욱 강화될것입니다.
사회주의진영의 위력이 장성하는것과 함께 식민지예속국가인민들의 민족해방운동이 더욱 강화되고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민족적독립을 달성하였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버마 등 아세아의 독립국가들과 아랍국가인민들은 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며 평화를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이 모든것은 제국주의 특히 미제국주의에 대한 심대한 타격으로 됩니다. 평화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력량이 더욱 강화되면 미제국주의자들은 마침내 조선에서 물러가지 않을수 없게 될것입니다.
물론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투쟁은 장시일을 요하는 간고한 투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강해지고 국제적으로 평화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력량이 더욱 강화되면 우리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조선에서의 혁명발전과 조국통일의 하나의 전도입니다.
조국의 통일문제는 평화적방법이 아니라 전쟁에 의하여 해결될수도 있습니다. 만일 제국주의자들이 세계적범위에서 큰 전쟁을 도발한다면 불가불 우리는 싸워야 하는데 그때에는 우리 힘으로도 조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과 싸워 능히 승리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단독으로 미제국주의를 상대로 싸우기는 좀 힘들겠지만 그들이 세계적범위에서 자기의 힘을 분산시키지 않을수 없을 때에는 우리는 비교적 쉽게 그들을 타승할수 있을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조선에서 미제국주의세력을 소탕하고 나라의 통일을 달성하게 될것입니다. 이것이 조선혁명의 발전과 나라의 통일의 다른 하나의 전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도를 원하지 않으며 첫째 전도 즉 평화적방법에 의한 통일을 념원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3. 카륜회의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2 제 4 장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
6월하순이 되자 동무들은 약속한대로 카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카륜에는 이미 우리의 혁명조직들이 들어가있었다. 우리는 1927년경부터 만주각지로 쉽게 래왕할수 있는 교통의 분기점에 활동기지를 하나 만들어둘 필요를 느끼고 공청핵심들을 파견하여 이 일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카륜에서 회의를 하려고 결심하게 된것은 이곳이 교통상 편리한 지점에 자리잡고있다는 점과 회의참가자들의 신변안전과 비밀보장을 전적으로 담보할수 있는 은페된 활동기지라는 점을 고려해서였다.
카륜은 반일운동자들의 래왕이 잦은 고장이였지만 적들에게는 로출되지 않은 곳이였다. 이 고장 인민들이 또한 우리의 일이라면 후원을 아끼지 않았기때문에 회의장소로는 리상적인곳이였다.
내가 카륜에 도착하니 소년탐험대 총대장인 정행정이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내가 카륜에 갈 때면 늘 그가 역에 마중을 나왔다가 나와 동행하군 하였다.
카륜에 와보니 돈화나 길림보다는 분위기가 좀 평온하였다.
5.30폭동이 휩쓸고 지나간 뒤여서 그 당시 간도의 공기는 대단히 험악하였다. 그런데다가 일본군대의 동만출병이 박두한것과 관련하여 정세는 더 긴장해졌다. 일제가 간도에 군대를 들이밀려고 한것은 이 일대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혁명운동을 진압하고 만몽을 점령하며 쏘련을 침공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자는데 있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라남에 주둔하고있는 일본군 제19사단 사단장 가와시마중장이 룡정, 연길, 백초구, 두도구지방을 순시하고있었다. 국민당 길림군참모장과 민정청 청장도 때를 같이하여 동만을 시찰하였다.
간도지방의 혁명조직들이 동만으로부터 일본군 중장과 국민당 참모장, 민정청 청장을 내몰라고 호소한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나는 그때 카륜에 가서 진명학교 교원들인 류영선과 장소봉의 집에 숙소를 정하였다.
장소봉은 진명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동아일보》지국장의 일도 겸하여보았다. 그는 차광수처럼 글도 잘 쓰고 식견도 높은데다가 일도 잘하여 동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것이 흠이였다.
동무들이 충고를 주면 자기 안해가 지나치게 봉건적인 녀자여서 도무지 뜻이 맞지 않는다고 타발하였다. 장소봉이 가정생활에 취미를 붙이게 하느라고 내가 여러번 설복도 하고 비판도 하였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장소봉은 조선혁명군이 조직된후 무기를 구입하려고 장춘에 나갔다가 경찰에 체포되여 전향하였다. 한때는 나에 대한 《귀순공작》에도 동원되였다고 한다.
카륜을 혁명화하는데서 김혁과 장소봉은 특별히 많은 공로를 세웠다. 그들은 이 지방의 유지들과 힘을 합쳐 학교와 야학을 세우고 그것을 거점으로 교육운동을 벌리였으며 농민회, 청년회, 소년회, 부인회 등 종래의 계몽단체들을 농민동맹, 반제청년동맹, 소년탐험대, 부녀회 등의 혁명적인 조직들로 개편하여 각계각층 군중을 항일혁명의 담당자로 훌륭히 교양육성하였다.
김혁의 주관하에 잡지 《볼쉐위크》가 창간된곳도 바로 카륜이였다.
나는 카륜에 가서도 사도황구에서처럼 조선혁명의 진로를 두고 사색을 계속하였다. 한달가량 사색하고 정리한것을 종합해보니 퍼그나 부피가 큰 글이 되였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것은 우리 나라의 민족해방투쟁이 새로운 지도리론을 요구하고있는 현실적절박성을 뼈에 사무치도록 통감하였기때문이다.
새로운 지도리론이 없이는 혁명을 한걸음도 전진시킬수 없었다.
자주성을 요구하는 피압박인민들의 혁명적진출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도 세계적규모에서 더욱 더 확대되였다. 지구상에서 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는 피압박인민들의 해방투쟁이 가장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던 대륙은 아세아였다.
아세아가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중심무대로 된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이무렵에 와서 아세아후진국들의 리권을 강탈하기 위한 침략을 더욱 로골화하였기때문이며 동방의 여러 나라 인민들이 과감히 떨쳐일어나 도처에서 민족적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결사적으로 전개하였기때문이였다.
외세를 구축하고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새 사회에서 살아가려는 동방인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은 그 어떤 힘으로써도 멈춰세울수 없었다.
쏘련, 몽골혁명의 약진에 발을 맞추어 중국, 인도, 윁남, 버마, 인도네시아 등 아세아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의 억센조류는 격랑처럼 끓어번지였다. 비폭력불복종운동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도의 거리에서 방직공들이 붉은기를 들고 시위를 단행한것도 이무렵이였다.
중국인민은 제2차 국내전쟁의 불길속에서 1930년대를 맞이하였다.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 여러 나라들에서 벌어지고있는 혁명투쟁과 국내인민들의 적극적인 진출은 우리를 끝없이 흥분시키고 분발시켰다.
당을 내오고 옳은 지도리론만 내놓는다면 인민을 궐기시켜 얼마든지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할수 있다는 자신심이 우리의 마음속에 움직일수 없는 신념으로 뿌리를 내리였다.
이 시기에 와서도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무대에는 각당, 각파의 립장과 리해관계를 대변하는 여러가지 주의주장이 등장하여 대중을 이렇게도 이끌고 저렇게도 이끌고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리론들은 이러저러한 시대적, 계급적 제한성을 면치못하고있다.
그때까지의 민족해방투쟁에서 우리가 그중 높은 형태의 투쟁이라고 본것은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이였다. 이 투쟁에는 민족주의좌익진영에서 가장 적극적인 반일독립운동자들과 애국자들이 참가하였다. 그들이 독립군부대를 조직해가지고 무장투쟁을 시작한것은 독립전쟁을 해야 나라를 찾을수 있다고 믿었기때문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부대에 의한 군사활동으로써만 독립을 쟁취할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직접적인 테로전술만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을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도라고 주장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군대를 잘 훈련시켜두었다가 쏘련, 중국,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일본과 전쟁을 할 때 그들과 련합하여 독립을 이룩하는것이 조선의 실정에 맞는 전략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주장들은 어느것이나 다 일제와의 혈전을 지향하고있었다.
그러나 독립군의 투쟁은 이러한 초지를 끝가지 관철할만한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갖추지 못하였고 독립전쟁을 끝까지 해나갈수 있는 강력하고 세련된 지도부를 가지지 못하였으며 그 투쟁을 인적, 물적, 재정적으로 뒤받침할수 있는 튼튼한 대중적지반을 꾸리지 못하였다.
개량주의리론가운데서는 《실력양성론》이라는 안창호의 《준비론》이 독립운동자들의 화제거리로 되고있었다.
우리는 안창호란 인물자체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에 일생을 고스란히 바친 청렴하고 량심적인 애국지사로 존경하고있었지만 그의 리론에 대해서는 환영하지 않았다.
상해림시정부의 비폭력적독립운동로선도 대중의 지지와 공감을 받지 못하였다.
상해림시정부가 조직된지 얼마 안되여 사람들의 실망을 자아낸 존재로 된것도 이 단체가 시종일관 한가닥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폭력적인 외교로선에 매달려 세월을 보냈기때문이였다. 그런것만큼 군사로선을 절대화하고있던 독립군은 이것을 한사코 랭대하였다.
조선을 국제련맹의 위임통치하에 두어달라고 애걸한 리승만의 청원에 대해서는 무슨 로선이라고 말할것도 없으며 민족주의우파가 제창한 《자치론》역시 민족의 독립정신에 배치되는 하나의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1925년에 창건된 조선공산당도 조선의 실정에 맞는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세우지 못한채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총괄적으로 말하여 선행세대의 전략이나 로선이 가지고있는 보편적인 약점은 인민대중의 힘을 믿지 않고 외면한데 있었다.
선행세대의 운동자들은 한결같이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진리를 무시하고있었다. 수백만대중의 조직된 힘에 의거해야 일제를 타도할수 있겠는데 우리 나라의 반일운동자들은 혁명도 독립전쟁도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공산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이런 립장에서 기초축성은 별로 하지 않고 몇몇 상층인물들로써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당을 만들었으며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3인1당, 5인1파식으로 서로 분렬되여 여러해동안 헤게모니싸움을 벌렸다.
선행세대의 로선이나 전략들은 또한 조선의 산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지 못한 심중한 약점을 가지고있었다.
나는 조선의 산 현실에 부합되는 옳은 지도리론을 내놓자면 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였다. 지도리론을 마련한다고 하여 10월혁명의 경험같은것을 통채로 받아들여도 안되였고 국제당이 그 어떤 만병통치의 처방을 가져다줄것같이 기대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도 안되였다.
《우리가 믿을것은 인민대중의 힘밖에 없다. 2천만의 힘을 믿고 그 힘을 하나로 묶어세워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혈전을 벌리자.》
나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자주 울리였다.
나는 이런 충동을 안고 오늘 우리가 주체라는 이름을 달아서 부르고있는 사상을 보고의 구절구절에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보고에 담으려고 한 내용들은 모두 우리 혁명의 전도와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들이였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국광복회10대강령 -1936년 5월 5일-
1.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
2. 재만조선인들은 조중민족의 친밀한 련합으로써 일본 및 그 주구 《만주국》을 전복하고 중국령토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진정한 민족자치를 실행할것.
3. 일본 군대, 헌병, 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
4. 일본국가 및 일본인 소유의 모든 기업소, 철도, 은행, 선박, 농장, 수리기관 및 매국적친일분자의 전체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독립운동의 경비에 충당하며 일부분으로는 빈곤한 인민을 구제할것.
5. 일본 및 그 주구들의 인민에 대한 채권, 각종 세금, 전매제도를 취소하고 대중생활을 개선하며 민족적 공, 농, 상업을 장애없이 발전시킬것.
6.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전취하고 왜놈의 공포정책실현과 봉건사상장려를 반대하며 일체 정치범을 석방할것.
7. 량반, 상민 기타 불평등을 배제하고 남녀, 민족, 종교 등 차별없는 인륜적평등과 부녀의 사회상 대우를 제고하고 녀자의 인격을 존중히 할것.
8. 노예로동과 노예교육의 철페, 강제적군사복무 및 청소년에 대한 군사교육을 반대하며 우리 말과 글로써 교육하며 의무적인 면비교육을 실시할것.
9. 8시간로동제실시, 로동조건의 개선, 임금의 인상, 로동법안의 확정, 국가기관으로부터 각종 로동자의 보험법을 실시하며 실업하고있는 근로대중을 구제할것.
10. 조선민족에 대하여 평등적으로 대우하는 민족 및 국가와 친밀히 련합하며 우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하여 선의와 중립을 표시하는 나라 및 민족과 동지적친선을 유지할것.(전문 보기)
김일성 로동계급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투쟁에서 핵심부대가 되자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에서 한 연설 주체70(1981)년 11월 30일-
동지들!
오늘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는 우리 나라 전체 로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서 자기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고있습니다. 전당과 전체 인민이 이 대회를 열렬히 축하하고있으며 대회의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하고있습니다.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는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투쟁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으로 됩니다. 대회는 우리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조선로동계급의 단결된 위력과 높은 혁명정신을 온 세상에 널리 시위할것이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체 로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힘있게 불러일으킬것입니다.
나는 대표동지들의 높은 정치적열의와 적극적인 참가밑에 대회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있는데 대하여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면서 조선직업총동맹 제6차대회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우리 당의 옳바른 령도밑에 직업동맹은 지난 기간 당과 혁명앞에서 지닌 자기의 숭고한 사명과 무거운 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여왔습니다. 직업동맹은 우리 당의 믿음직한 대중교양단체로서 동맹원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여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웠으며 그들을 당이 내세운 혁명과업수행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습니다.
근로대중속에서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린 결과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의 사상정신적풍모에서는 커다란 전변이 일어났습니다. 전체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이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확고한 혁명적신념으로 삼고있으며 당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간직하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고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로동계급속에는 개인의 리익보다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며 혁명하는 나라, 투쟁하는 시대의 로동계급답게 혁명적으로 일하며 생활하는 기풍이 차넘치고있습니다.
직업동맹은 지난 기간 강선의 로동계급이 지펴올린 천리마운동의 봉화를 높이 들고 근로대중속에서 천리마운동을 힘있게 벌려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우리의 로동계급은 당과 혁명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안고 천리마에 속도전을 가한 기세로 힘차게 전진하여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켰습니다. 우리의 영웅적로동계급의 헌신적로력투쟁에 의하여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이 일어나고 만년대계의 창조물들이 일떠섰으며 나라의 위력이 더욱 강화되였습니다.
나는 지난 기간 우리의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이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올린 커다란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자기의 헌신적인 투쟁과 창조적로동으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키고 조선로동계급의 전투적위력과 주체조선의 영예를 빛내인 전체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동지들!
오늘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있으며 우리 혁명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고있습니다.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는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데 대한 웅대한 강령을 내놓았습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총적임무이며 로동계급이 책임지고 끝까지 수행하여야 할 력사적위업입니다.
로동계급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모든 근로자들을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에서 해방하고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여야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완수할수 있습니다.
로동계급은 혁명의 령도계급이며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떠메고나갈 우리 혁명의 핵심부대입니다. 로동계급의 령도적역할과 핵심적활동을 떠나서는 우리 혁명을 전진시킬수 없으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력사적위업을 완성할수 없습니다.
로동계급은 자기의 력사적사명을 깊이 자각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하여서는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주체형의 공산주의적인간으로 만들고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로동계급의 모양대로 개조하여 공산주의의 사상적요새와 물질적요새를 성과적으로 점령할수 있습니다.
3대혁명을 힘있게 벌리는것은 직업동맹의 기본과업입니다. 직업동맹은 3대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는 앙양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직업동맹은 사상혁명을 강화하여 로동계급과 직맹원들을 철저히 혁명화하여야 합니다.
사상혁명에서 기본은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것입니다.
우리 당의 주체사상은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속에서 창시되고 그 정당성이 확증된 불패의 혁명사상이며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한 투쟁에서 확고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지도적지침입니다. 로동계급은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언제나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삼고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합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6차회의에서 채택 1976년 4월 29일-
제1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의 기본
제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어린이들은 조국의 미래이며 공산주의건설의 후비대이며 대를 이어 혁명할 우리 혁명위업의 계승자들이다.
제2조 어린이들을 사회적으로 키우는것은 사회주의국가의 중요한 시책의 하나이며 사회주의교육학에 근거한 교육방법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어린이들을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운다.
제3조 어린이들이 비록 탁아소에 갈 나이라 하더라도 탁아소에 보내지 않고 자기 집에서 키우는것은 그들 부모의 자유에 속한다.
제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영광스러운 항일혁명투쟁에서 이룩된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법이다.
제5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조선로동당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삼는다.
제6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은 우리 나라에 전반적으로 확립된 선진적인 보육교양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켜 모든 어린이들을 주체형의 혁명적 새 인간으로 키우며 녀성들을 어린이를 키우는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하는 신성한 사업을 실현하며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며 온 사회를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 력사적위업수행에 이바지한다.
제7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어린이들이 가장 훌륭하게 마련된 현대적인 보육교양조건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행복하게 자라도록 온갖 배려를 돌린다. 이 배려는 우리 나라에 세워진 우월한 사회주의제도와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 그리고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끊임없이 높이는것을 자기 활동의 최고원칙으로 삼고있는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사회주의적시책에 의하여 확고히 담보되며 나라의 경제토대가 강화되는데 따라 끊임없이 증대된다.
제8조 국가는 어린이보육교양사업에 대한 지도와 관리에서 우가 아래를 도와주고 정치사업을 앞세워 보육원, 교양원들과 양육기관 복무자들의 자각적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의 군중로선을 관철한다.
제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평화와 민주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주의를 위하여, 과학, 문화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망명하여온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어린이들도 부모의 희망에 따라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의 부담으로 키워준다.
제10조 이 법에서 어린이라 함은 세상에 태여난 때로부터 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어린이를 말한다.
제2장 국가와 사회적부담에 의한 어린이양육
제11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어린이들을 보육교양하는 사업에서 모든것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게 하는 주체사상의 요구를 철저히 관철한다.
제12조 국가와 사회협동단체들은 《제일 좋은것을 어린이들에게》라는 원칙에 따라 어린이보육교양사업에 필요한 모든것을 책임지고 보장한다.
제13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훌륭한 보육교양설비와 체육 및 놀이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탁아소와 유치원을 제일 좋은 자리에 건설하고 꾸려준다.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 악기, 놀이감, 출판물, 교구비품 등을 갖추어준다.
제14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거리와 마을, 어린이들이 있는 곳곳에 아동공원과 놀이터를 꾸리고 여러가지 놀이시설을 갖추어준다.
제15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태여나자부터 식량을 공급받는다.
제16조 국가기관과 사회협동단체들은 탁아소와 유치원에 젖, 고기, 알, 과일, 남새 등과 당과류를 비롯한 여러가지 가공된 식료품을 보장한다.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에게 공급하는 식료품의 값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부담한다.
제17조 국가는 어린이옷, 신발과 여러가지 어린이용품을 제일 좋게 만들며 그에 대해서는 생산비를 보상하는 정도 또는 그보다 낮게 값을 정하고 그 차액은 국가에서 부담한다.
제18조 국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수 없는 어린이들을 육아원과 애육원에서 키운다.
제19조 국가는 혁명렬사, 애국렬사,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의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며 그들의 보육교양에 깊은 배려를 돌린다.
제20조 국가는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들을 특별히 보호한다.
국가는 녀성들에게 산전산후휴가를 보장한다. 산전산후휴가기간의 로임과 식량, 분배몫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부담한다.
국가는 산원시설을 비롯한 의료기관을 통하여 임신한 모든 녀성들을 제때에 등록하고 그들에게 체계적인 의료봉사와 해산방조를 무료로 주며 산후의 건강을 보호한다.
국가는 임신한 녀성들에게 그에 맞는 헐한 일을 시키며 어린이들을 가진 어머니들에게는 로동시간안에 젖먹이는 시간을 보장한다.
국가는 여러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들에게는 로동시간을 줄이고 옹근로임을 준다.
제21조 국가는 한꺼번에 여러 어린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와 그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베푼다.
한꺼번에 둘이상의 어린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에게는 유급으로 일정한 기간 산후휴가를 더 준다.
삼태자에게는 옷과 포단, 1년분의 젖제품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학교에 갈 나이에 이르기까지 양육보조금을 주며 어린이와 어머니에게 의료일군을 따로 담당시켜 그들의 건강을 책임적으로 돌본다.
제3장 문화적이며 과학적인 어린이보육
제22조 나라의 꽃봉오리인 어린이들을 튼튼하고 슬기롭게 키우는것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숭고한 의무이다.
국가는 어린이들을 문화적으로, 과학적으로 키우는데 깊은 관심을 돌린다.
제23조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어린이들을 어머니의 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피며 집단보육규범과 위생방역규범의 요구에 맞게 키운다.
어린이들의 생활환경을 깨끗이 꾸리고 방안의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보장한다.
어린이들을 위생적으로 거두어주고 공기, 해빛, 물과 의료기구, 체육기재에 의한 몸단련을 나이와 체질에 맞게 정상적으로 시켜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제24조 탁아소와 유치원에서는 영양기준에 따라 여러가지 주식과 새참을 어린이들의 나이와 특성에 맞게 충분히 먹인다.
제25조 국가는 탁아소, 유치원의 어린이들에게 체계적인 의료봉사를 준다.
어린이들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한 모든 의료봉사는 우리 나라에서 실시하고있는 전반적무상치료제에 따라 무료로 한다.
탁아소, 유치원마다 의료일군들을 배치하고 의료기구와 의약품을 공급하며 전문의료기관들을 통하여 어린이들의 병을 제때에 예방치료한다.
제26조 국가는 어린이들의 건강을 철저히 보호하며 녀성들의 사회적활동을 적극 보장하기 위하여 탁아소가 있는 모든 곳에 아동병동을 둔다.
아동병동에서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앓는 탁아소의 어린이들을 받아 치료한다.
제27조 국가는 온천과 약수터, 바다가, 경치좋은 곳들에 어린이들을 위한 료양시설들을 잘 꾸려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제28조 국가기관과 보육교양기관들은 어린이들의 건강과 발육상태를 종합분석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우며 어린이보육사업을 과학화하고 끊임없이 발전시킨다.(전문 보기)
김일성 반일인민유격대창건에 즈음하여 -반일인민유격대창건식에서 한 연설 주체21(1932)년 4월 25일-
동무들!
오늘 우리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려 강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달성하기 위하여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게 됩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조국을 강점한지 20여년이 됩니다. 오늘 우리 나라 삼천리금수강산은 일제놈들의 말발굽밑에서 완전한 식민지로 되였고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은 일제놈들의 식민지노예가 되여 가혹한 착취와 압박을 받고있습니다. 우리 조국과 민족의 비운은 일제의 대륙침략야망이 확대되는데 따라 더욱더 커가고있습니다.
지난해 9월에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만주를 강점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대륙침략을 확대하기에 광분하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백색테로를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고있습니다.
일제놈들은 조선을 대륙침략의 《견고한 후방》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 인민들로부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같은 초보적인 정치적자유마저 모조리 빼앗고 그들의 혁명적진출을 총칼로 가로막아나서고있으며 도처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대중적으로 검거투옥, 학살하고있습니다.
조선인민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야수적인 만행은 동만을 비롯한 만주땅에서도 극도에 이르고있습니다. 일제놈들은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없애버리려고 매일과 같이 조선사람들이 사는 부락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잡아죽이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략탈하는 책동을 미친듯이 감행하고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빼앗긴 우리 동포들은 이국땅에 와서까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있습니다. 정세는 우리 인민들로 하여금 앉아서 죽느냐, 삶을 위하여 일어나 싸우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그 어느 하나를 택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지금 일제의 야수적만행에 항거하여 결연히 일어나 도처에서 싸우고있습니다.
로동자, 농민들은 일제의 파쑈적폭압에 폭력적진출로 대답하고있으며 애국의 피끓는 청년들은 삼삼오오 조를 무어 새로운 투쟁의 길을 찾고있습니다. 춘궁기에 들어선 지금 두만강연안의 연길, 왕청, 화룡, 훈춘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 10여만명의 농민들이 조선청년공산주의자들의 지도밑에 일제와 그 주구 및 반동적지주를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섰습니다.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중국인민들속에서도 힘차게 벌어지고있습니다. 중국인민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주강점을 반대하여 반일구국운동을 벌리고있으며 동만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서 항일구국군, 항일의용군과 같은 반일부대들을 조직하고 일제와 싸우고있습니다.
이 모든 정세발전은 우리가 이미 2년전에 장춘현 카륜에서 제시한 무장투쟁로선의 정당성을 확증하여주고있습니다. 사실상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이 혁명무력을 대대적으로 조직하여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려나갈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며 적당한 시기입니다.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과 혁명적인민들은 장기간의 피어린 투쟁을 통하여 인민유격대를 조직할수 있는 토대를 닦아놓았습니다.
우리는 무장투쟁의 준비를 위한 첫 사업으로서 1930년 7월에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습니다. 조선혁명군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맑스-레닌주의적무장조직이였습니다. 조선혁명군 대원들은 도시와 농촌의 광범한 지역에 진출하여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속에서 정치 및 군사활동을 힘있게 벌려 유격대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후 우리는 각 지방에 공산주의청년동맹을 비롯한 혁명조직을 수많이 결성하고 반군사조직인 적위대도 광범히 조직하였으며 동만의 각지에서 비록 크지는 못하지만 유격대소조들을 조직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유격대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을 적극 다그침으로써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할수 있는 튼튼한 밑천을 마련하여놓았습니다.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조직적골간을 키워내기 위한 사업에 큰 힘을 넣고 조선혁명군 대원들, 공청원들과 반제청년동맹원들 속에서 조직생활을 강화하여 그들의 사상의지를 혁명적으로 더욱 튼튼히 단련하였으며 혁명투쟁에 필요한 귀중한 경험을 축적하도록 하였습니다.
반일인민유격대조직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나선것은 중국인반일부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것이였습니다.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일으킨 5. 30폭동의 후과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민과 중국인민간에 리간을 조성하고 만주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조작한 《만보산사건》으로 인하여 만주에서는 한때 일부 중국사람들과 중국인반일부대들이 조선인민과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인민과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적대시하고 모해하는 행동을 하였으며 조선에서는 일제의 사촉을 받은 일부 불량배들이 소위 《중국인배척운동》을 벌림으로써 조중인민간의 관계는 매우 험악한 상태에 이르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인반일부대들속에 들어가 희생적이고 인내성있는 사업을 벌리고 일제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는 실천적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조중인민간의 관계를 일정하게 개선하고 우리를 적대시하던 일부 중국인반일부대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그릇된 인식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반일투쟁을 벌려나갈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인민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벌려 두만강연안일대의 수많은 농촌지구에 무장투쟁을 벌릴수 있는 혁명화된 대중적지반도 튼튼히 닦아놓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민유격대조직을 위한 준비사업과정에 달성한 이 모든 성과에 토대하여 우리 나라에서 첫 맑스-레닌주의적혁명적무장력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그 창건을 선포하게 됩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고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는 로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써 조직되였으며 진정으로 인민의 리익을 보호하는 혁명적인 무장력입니다.
인민유격대의 목적과 사명은 조선에서 일제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조선인민의 민족적독립과 사회적해방을 달성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주류인 무장투쟁을 직접 담당하고 이끌어나갈 원동력을 마련하게 되였으며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 일제의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신음하고있는 조선인민에게 큰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그들로 하여금 반일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함으로써 반일통일전선로선과 맑스-레닌주의당창건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게 될것입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데 대하여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에 즈음하여 항일혁명투사들과 한 담화 l972년 4월 22일-
나는 오늘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으며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나와 함께 오래동안 혁명투쟁을 하여온 동무들과 식사나 한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오랜 기간 함께 싸워온 동무들과 만경대에서 사진도 찍고 자리를 같이 하고보니 항일무장투쟁시기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만경대를 그리며 《사향가》를 부르던 때가 추억됩니다.
만경대는 나의 고향입니다. 나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고향생각이 날 때마다 동무들에게 아름다운 만경대와 대동강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이름난 평양랭면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면서 마음속으로 만경대를 그려보군 하였습니다.
만경대를 그려보느라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다음 있은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앓고계시던 어머니는 나에게 항일유격대원들을 한번 보고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광목천으로 만든 새 군복을 입고 행전을 친 유격대원들을 마을뒤산에 정렬시켜놓았습니다. 늘 독립군만 보아오시다가 끌끌한 유격대원들을 보신 우리 어머니는 당장 일제놈들을 때려부시고 조국광복을 이룩할것 같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하시였습니다. 그때의 어머니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권총을 나에게 주시던 일도 생각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조선독립을 위하여 늘 권총을 가지고 다니시였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있는 로인이 지금 있는데 그는 우리 아버지가 평양숭실학교에 다니실 때 평양녀자고보를 다니면서 아버지에게서 애국주의교양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넘겨주신 우리 아버지의 권총이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여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어머니의 탄생 80돐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날을 맞이하고보니 어머니가 더욱 그립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듯이 동무들도 자기 어머니를 사랑할것이며 그리워할것입니다. 우리가 두고온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일제놈들과 싸우던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이하고보니 우리가 강도 일제와 싸우던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들이 감회깊이 떠오릅니다. 항일혁명투쟁은 참으로 간고하고 시련에 찬 투쟁이였습니다. 국가적인 후방과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20성상이나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간고한 투쟁을 하다보니 항일혁명투사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기에 와있는 장철구동무만 하여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사령부작식대일을 하면서 늘 가마곁이 아니면 나무밑에서 풀을 깔고 잤습니다. 장철구동무는 그때 고생한것으로 하여 지금도 한쪽팔을 잘 쓰지 못하고있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 원장인 리오송동무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마안산아동단원들가운데 한사람입니다.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를 볼 때마다 사득판에서 적의 습격을 받던 때가 생각납니다. 소할바령회의가 있은 후 우리가 며칠간 행군을 하던 때 일입니다. 행군을 시작한 우리는 몇시간후에 사득판에 들어섰습니다. 사득판을 지나가야만 그 너머에 있는 목적지로 행군해갈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무렵 맞은켠쪽에서 전지불같은 불빛이 번쩍하는것을 보았는데 그 불빛은 한번 나타났다가는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갈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기때문에 우리는 그 길로 계속 행군해나갔습니다. 그때 사령부행군대오에는 대원들의 대부분이 전투임무를 수행하러 나가고 20명 되나마나한 성원만 떨어져있었는데 그들중에는 나보다 앞서가는 동무도 있었고 좀 뒤에 떨어져오는 동무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아마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가 나를 거의 따라섰던것 같습니다. 나는 사득판에 들어서기 전에 본 불빛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전령병이였던 전문섭동무에게 앞에 나가서 적정이 없는가를 알아보고 오라고 임무를 주어보냈습니다. 내가 그를 보내고 조금 있는데 갑자기 적들의 기관총탄알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비발치듯 날아왔습니다. 적의 기관총소리가 나자 어느 사이에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와 전문섭동무가 나에게 달려와 나를 호위하면서 적의 매복권을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우리가 적들을 뒤에 달고 큰길쪽으로 행군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또 앞에서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나는 적들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들을 우리에게 접근시킨 다음 행군대오를 슬쩍 옆으로 빼돌리고 적들끼리 싸움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자칫하면 사득판에서 큰 손실을 입을번 하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던 초시기에 우리의 력량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1933년에 왕청에 나온 다음부터는 항일유격대의 력량이 늘어났습니다. 항일유격대의 력량은 내가 장백에서 활동할 때에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와 함께 싸운 동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전투에서 희생되고 반《민생단》투쟁바람에 희생되고 조국이 광복될 때에도 희생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적지 않게 희생되였습니다.
오늘 나와 함께 혁명의 길을 걸어온 동무들이 이 자리에 다 모이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혁명투쟁에서 희생이 없을수는 없지만 우리 혁명이 류달리 간고하다보니 우리는 지난날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냈습니다.
지금은 항일혁명투사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남은 동지들도 늙었습니다.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창건 50돐을 맞이할 때에는 로혁명가들이 지금보다 더 늙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며 죽을 때까지 혁명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며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도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해놓은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조국의 통일과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더 힘찬 투쟁을 벌려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로혁명가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하겠습니다.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는것은 혁명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입니다.
혁명가들이 자기의 본분을 다하자면 두가지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첫째원칙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는것이고 둘째원칙은 생의 마무리를 잘하는것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계속 피여있어야 곱고 항기롭지 시들면 볼멋이 없습니다. 우리 혁명가들도 역시 혁명의 꽃을 변함없이 끝까지 피울 때만이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수 있지 중도에서 시들어버리면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걸어온 혁명의 길은 장구하고 간고하였지만 항일유격대원들가운데는 적들에게 투항한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항일유격대 참모장을 하던 림수산이 적들에게 투항하였는데 림수산은 이미전부터 사상적으로 병이 든 자였습니다.
혁명가가 한생을 보람있게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죽을 때 값있게 죽는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혁명가들이 혁명가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죽어서도 우리 당과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로혁명가들은 혁명의 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우리 혁명의 길에는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다가 먼저 떠나간 혁명동지들이 많습니다. 최춘국, 강건, 김경석동무들이 바로 그런 동지들입니다. 그들은 당과 혁명을 위하여 한생을 보람있게 살았고 최후도 값있게 마쳤습니다. 김경석동무는 평양시당위원장을 하면서 반당반혁명분자들의 반당적행위를 들추어내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실 그때 반당반혁명분자들의 죄행을 알고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평양시당에 김경석동무를 배치하였기때문에 혁명의 어려운 시기에도 끄떡없었습니다. 류경수동무도 혁명에 충실한 동무였는데 아깝게 잃었습니다.
동무들은 혁명의 길에서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념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혁명가들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자면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 로동계급화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 로동계급화할 때만이 혁명가로서의 의무를 다할수 있고 숨이 지는 순간까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울수 있습니다.
지난날 혁명을 오래하고 공로를 세운 사람도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 혁명화하지 않으면 사상적으로 락후해지고 변질됩니다. 모든 사물이 변하듯이 사람도 변합니다. 사람은 좋게 변할수도 있고 나쁘게 변할수도 있습니다.
오늘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하는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경제분야에서 자본주의요소가 적지 않게 복귀되고있으며 사람들의 정신도덕생활에서도 자본주의적생활양식이 부식되고있습니다. 혁명은 지주, 자본가제도를 때려부시고 로동계급이 정권을 쥐였다고 하여 끝나는것이 아닙니다. 정권을 쥔 로동계급의 당은 혁명을 계속하여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야 합니다. 최근 어느한 나라에서 우리 나라 예술영화 《로동가정》과 《꽃피는 마을》에 대한 관평을 신문에 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로동계급이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로동계급이 되는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혁명가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것이기는 하지만 관평을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기 위하여서는 학습과 사상투쟁을 강화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책과 철학책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 없으면 먼곳에서라도 책을 얻어다보았으며 적들과 싸움할 때에는 로획한 책을 가지고다니면서 보았습니다. 나는 책을 보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였으며 혁명가의 의무를 다하여왔습니다. 지금은 내가 수상을 하고있지만 그때에는 수상을 할것을 생각하고 책을 많이 본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학습을 많이 한 덕을 지금 보고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신문과 여러 부문의 책을 보고있습니다. 사람이 학습을 하지 않으면 락후해지고 변질됩니다.
동무들은 당정책학습과 정세학습을 비롯한 여러가지 학습을 강화하여 자신을 부단히 수양하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완성하는데서 동지들사이에 맺어진 혁명적동지애를 귀중히 여기고 그에 기초하여 굳게 단결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혁명적동지애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혁명적동지애는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사이의 참다운 동지적관계와 혁명적동지애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혁명투쟁과정에서 이루어지며 공고발전되게 됩니다.
우리들사이의 동지적관계는 장구한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 새 사회건설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루어진 참다운 관계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부모슬하에서는 열다섯살까지 살고 그다음부터는 동지들의 사랑속에서 살아왔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항일투사들은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첫 세대들이다 -강반석어머님탄생 100돐기념 오찬회참가자들과 한 담화 주체81(1992)년 4월 21일-
오늘은 강반석어머님탄생 100돐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만경대에 계실 때부터 아버님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드렸으며 독립운동자들의 시중을 드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시였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혁명사업을 위하여 국내는 물론, 중국의 상해와 간도지방을 비롯하여 여러곳을 다녀오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독립운동자들을 데리고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무시로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혁명활동에 참가하시면서 나와 나의 동무들의 혁명사업을 적극 도와주시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 때 있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앓는 몸이였지만 우리가 창건한 반일인민유격대를 보려고 동생과 함께 유격대원들이 정렬해있는 곳으로 나오시였습니다. 어머님은 유격대원들의 름름한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다가 그들이 어깨에 멘 총을 만져보시며 이런 총을 가지면 일제와의 싸움을 잘할수 있을것이다, 독립군들처럼 닭다리같은 총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인민들한테서 군자금이나 모아가지고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자네들의 어머니들이 오늘의 경사를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조선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머저리구실을 하거나 몹쓸짓을 하는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 울지만 나라의 독립을 위한 장한 싸움길에 나선것을 보면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때 유격대원들은 어머님의 고무적인 말씀을 들으면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습니다.
우리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20살안팎의 열혈청년들이 유격대에 입대하려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이 자리에 참가한 최성숙동무도 우리가 유격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녀의 몸으로 목릉현에서 우리를 찾아 떠났는데 후에 왕청에서 만났습니다.
우리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며칠이 지나서 5. 1절을 맞이하였는데 그때 나는 부대를 거느리고 안도현성에 입성하여 보무당당히 열병행진을 하였습니다. 그후 나는 부대를 거느리고 남만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내가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 다음 인차 남만으로 진출한것은 그곳에 있는 량세봉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독립군사령인 량세봉은 우리 아버님과 친한 사이였기때문에 남만에 가면 그의 독립군부대와 통일전선을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남만으로 떠나기에 앞서 동무들이 모아준 돈으로 좁쌀 한말을 사가지고 어머님이 계시는 집에 들렸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몹시 앓고있었지만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시였습니다. 정작 남만으로 떠나자니 앓고있는 어머님이 걱정되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집둘레를 빙빙 돌면서 선뜻 집을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쓰는 법은 없으니 집걱정은 하지 말고 부대를 거느리고 빨리 떠나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동무들이 혁명영화 《조선의 별》을 보아서 알겠지만 량세봉의 독립군부대에서는 일제놈들이 박아넣은 밀정이 참모노릇을 하고있었는데 그놈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독립군부대와의 통일전선은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놈은 우리 유격대원들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한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떠나 류하, 몽강, 안도를 거쳐 왕청으로 갔습니다.
내가 남만원정에서 돌아와 집에 들려보니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의 병은 독립운동자들을 시중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여 생긴 병이였는데 그때는 그저 가슴앓이라고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암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의 나이는 40살이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다가 그처럼 바라던 조국광복의 날을 보지 못하고 너무나 일찌기 세상을 떠나시였습니다.
나는 오늘이 어머님탄생 100돐이 되는 날이므로 항일혁명투사들을 모두 참가시키고 식사를 같이하려고 하였는데 며칠후 조선인민군창건 60돐때 모일 기회가 있기때문에 이렇게 녀성항일투사들, 항일혁명의 녀성연고자들, 녀성간부들과만 자리를 같이하였습니다.
동무들이 나의 생일 80돐과 내가 대원수로 된것을 축하하고 나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는데 감사합니다.
동무들은 4. 15를 계기로 하여 내가 대외사업을 너무 많이 하기때문에 나의 건강이 념려된다고 하는데 일없습니다. 이번 4. 15행사에는 세계 130여개 나라에서 온 420여개 대표단과 수천명의 외국손님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나를 축하하기 위하여 찾아온 외국손님들에게 집체적으로 연회를 한번 차려주는것으로 그들과의 사업을 대치할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찾아온 손님들인것만큼 내가 좀 힘들더라도 따로따로 다 만나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내가 만나주어야 할 대표단이 여러개 남아있습니다.
동무들이 텔레비죤화면을 통하여 나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는데 나는 건강합니다. 내가 이미 오래전에 60청춘, 90환갑이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원래 60환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나이가 90살이 되지 못한것만큼 환갑을 쇠지 못한셈입니다.
내가 80살이 되는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혁명사업을 계속해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의 덕분입니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은 언제나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보호해주었으며 성심성의로 도와주었습니다.(전문 보기)
김일성 5. 조국광복회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4 제 11 장 혁명의 분수령-
새 사단의 탄생으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더욱 강화발전된것으로 하여 우리의 앞길에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과 당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준비를 보다 폭넓고 깊이있게 전개할수 있는 돌파구가 열리였다. 새 사단의 출현은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하며 각계각층의 애국력량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군사정치적으로 뒤받침해주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되였으며 카륜회의이후부터 우리가 줄기차게 전개해 온 통일전선운동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수 있는 광활한 전망을 열어놓았다.
남호두회의 이후시기부터 우리의 통일전선운동은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의 조직을 위한 활동에로 집중되였다. 하나의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을 내오고 그 산하에 광범한 반일애국력량을 튼튼히 묶어세우는것은 우리 혁명발전의 견지에서 보나 내외정세의 요구로보나 더는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나섰다.
자주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하는 전민항쟁에 있고 민족대단결이 자력독립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라는것은 우리가 일찍부터 주장해온 사상이였다. 통일전선은 주체확립과 더불어 항일혁명투쟁의 초시기부터 견지해온 가장 중요한 리념의 하나였다.
민족대단결과 통일전선의 리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여러갈래의 민족주의세력과 반일애국력량과의 련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바쳐왔고 중국땅에서 투쟁하는 조건에 맞게 중국의 광범한 반일력량, 공산주의자들과의 공동투쟁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 과정에 우리가 쌓아올린 적지 않은 성과와 경험은 통일전선운동의 폭넓은 발전을 위해서 값있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우리는 이런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통일전선운동을 전민족적인 범위에서 벌려나갈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것과 함께 그것을 맡아 수행할수 있는 핵심과 주체적력량을 빨리 키워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였다.
민족의 모든 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기 위한 시도는 1930년대 이전시기에도 있었다.
조선의 근대력사에서 주의와 주장을 초월하는 민족의 대동단결문제가 처음으로 론의되기 시작한것은 1920년대 중기이후부터였다. 그 당시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무대에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두개의 세력이 존재하고있었다. 일제의 폭정과 수탈이 강화될수록 민족해방운동을 지도하던 선각자들은 애국력량의 단합과 민족대단결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런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초기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들과의 련합을 모색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진영과의 제휴를 시도하였다.
민족해방과 민족자주권의 부활에 동일한 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두 진영 지도자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1927년 2월에 서울에서는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통일전선조직으로 신간회가 창립되였다. 당대의 애국인사들과 사가들이 신간회를 가리켜 민족단일당이라고도 부를만큼 이 단체에 대한 민중의 기대와 신뢰는 컸다. 신간회가 창립되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두 세력의 반목대립에 불만을 느끼고있던 대중은 환호를 올렸다.
주의주장의 차이로 하여 사이가 버그러졌던 공산주의운동자들과 민족운동자들이 때늦게나마 통일단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단일전선기관을 내온것은 민중의 념원과 시대적요구에 부합되는 하나의 큰 경사였다.
우리 나라 민족협동전선의 첫 산아라고 할수 있는 신간회는 그 취지와 목적이 애국적이고 반일적이였다.
민족을 대표한다고 말할수 있는 량대세력의 공동전선이 실현됨으로써 신간회는 발족한 순간부터 전민족을 대표하는 거족적인 유일조직으로 되였다. 이 단체의 창립취지는 그 발기인들이 《고목신간》이라는 뜻에서 신간회라고 한 명칭자체에 잘 반영되여있다. 《고목신간》이란 오랜 나무에서 새 줄기가 자라난다는 뜻이다. 명칭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신간회는 새로운 기초우에서의 민족력량의 총집결을 지향하였다.
리상재, 홍명희, 허헌과 같이 민중의 인망이 높은 진보적 애국지사들에 의하여 발기되고 추진되고 운영된 신간회운동은 민족의 정치적경제적각성을 촉진하고 민족적단결을 공고히 하며 일체 기회주의를 부인한 강령의 내용도 혁신적이고 혁명적이였으며 회원들의 직업별 구성도 다양하고 광폭적이였다. 신간회에는 로동자, 농민, 려관업자, 사진업자, 기자, 상업가, 의사, 회사원, 교원, 대서업자, 목축업자, 인쇄업자, 어업자, 운수업자, 직공, 재봉공, 학생, 변호사, 저술가, 은행원, 교역자 등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3만 7,000여명이 참가하였다.
좌우합작으로 민족의 총력을 하나로 집결시키려고 한 그 훌륭한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하고 신간회는 1931년 5월에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신간회의 해산원인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공산주의운동자들은 그 해산의 원인을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찾으려 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고 하였다. 한때 일부 력사가들은 신간회가 해산된 근본적인 원인을 상층의 분렬과 개량주의적경향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이 조직의 애국적성격과 민족사적의의자체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나는 그런 허무주의적견해에 동의할수 없었다. 해산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놀음을 하는것은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신간회 상층에 개량주의자들이 더러 있었다고 하여 이 조직자체를 부정해서도 안되며 그 민족사적의의를 령으로 만들어도 안된다.
신간회가 해산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조선민족의 반일항쟁력량이 하나로 단합되는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그 내부에 쐐기를 박아 분렬을 꾀하고 개량주의적상층을 매수한데 있었다. 적들의 암해책동과 파괴공작을 물리치고 신간회를 능숙하게 운영하고 이끌어나갈만한 중심적인 지도력량이 없은것도 하나의 주요한 해산원인이였다.
신간회의 와해에서 뼈저린 교훈을 찾은 우리는 애국적민족력량의 통일을 우리가 주도해야겠다는 비상한 각오와 결의 밑에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를 중요한 방침으로 제기하고 민족의 총력을 항일구국위업의 기발아래 결집시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그 과정에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만한 핵심도 키워내고 유익한 경험도 축적하였다.
남호두회의는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의 창립에 대한 결정을 채택함으로써 우리 나라 통일전선운동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력사적인 분수령으로 되였다.
이 시기는 국제적으로도 제국주의의 침략을 저지시키기 위한 인민전선운동이 대두하여 파시즘과 대결하고있을 때였다.
독일 나치스의 정권탈취에서 커다란 자극을 받은 프랑스로동계급은 자기 나라에서도 파시즘의 위협이 증대되여가고있는것을 보고 반파쑈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였다. 대중의 강렬한 통일열망에 따라 사회당은 1934년 7월 공산당의 제기를 받아들여 반전, 반파쑈통일행동협정을 체결하였다. 두 당의 영향밑에 분리되여있던 로동조합도 통합되였다. 이런 흐름을 타고 《로동과 자유와 평화의 인민전선》이 결성되였다. 추세는 이 전선을 중산계급들과의 통일에로까지 확대발전시킬것을 요구하였다. 1935년 6월말 사회당, 공산당의 련합에 소부르죠아정당인 급진사회당이 가담함으로써 이른바 《인민집합》이 이룩되였다. 7월 14일 빠리에서는 수십만명의 참가하에 인민전선의 대시위가 진행되게 되였다. 3당 수뇌자들인 모리스 토레즈와 레온 블륨, 달라지예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위행진의 선두에 섰다. 1936년 1월에는 3당을 중심으로 반전, 반파쑈 투쟁에 떨쳐나선 진보적그루빠의 통일에 기초한 인민전선강령이 정식으로 발표되였으며 그해 4∼5월에 진행된 하원총선거에서 인민전선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결과 사로내각은 총사직하고 레온 블륨을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내각이 탄생하였다. 물론 인민전선정부는 대중의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으로 공황을 극복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에스빠냐인민전선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이른바 불간섭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였다. 결국은 인민전선도 붕괴되고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스에서의 로골적인 파쑈정권의 수립을 저지시켰으며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반파쑈투쟁에서 하나의 유익한 경험으로 되였다.
국제공산당은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운동의 발전에서 좋은 시사를 받고 전세계공산주의자들앞에 인민전선결성을 중요한 투쟁목표로 제기하게 되였다.
이에 따라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자본주의의 즉시 타도를 목적한 세계혁명이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전쟁과 파쑈를 반대하는 운동을 당면한 과제로 내세웠다. 이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의 하나의 로선상 전환이라고 할수 있었다. 제2국제당계렬의 여러 정당들은 국제당의 통일전선제의를 거부하였으나 프랑스, 에스빠냐,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인민전선운동은 현저한 발전을 보게 되였다.
1936년 2월 에스빠냐에서의 아싸니아인민전선정부의 출현은 그 단적인 실례로 된다.
에스빠냐인민전선은 프랑꼬의 반란과 독일, 이딸리아의 군사적간섭에 직면하여 곤경에 처하였다.
에스빠냐인민전선에 있어서 치명적인것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주도하에 추진된 이른바 불간섭정책이였다. 엄정중립과 무기금수를 결정한 부당한 불간섭정책은 결국 반란군을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쏘련도 처음에는 불간섭적립장을 취하였으나 그것이 인민전선정부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는것이 명백해지자 태도를 바꾸어 인민전선정부에 비행기, 땅크 등을 보냈다. 에스빠냐인민전선이 겪고있던 곤경은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과 근로자대중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각국에서 숱한 지원병들이 에스빠냐로 달려갔다. 이리하여 에스빠냐는 파시즘세력과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진보적세력간의 국제적교전무대로 되였는데 그 교전은 작은 규모의 세계전쟁을 련상시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동강에서 조국광복회를 결성하던 때를 전후하여 벌어졌던 국제적인 반파쑈운동형편이였다. 우리는 이딸리아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궐기한 에티오피아 애국자들의 영웅적항전에서도 커다란 고무를 받고있었다.
국제당은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재빨리 포착하고 각국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들을 반전, 반파쑈 투쟁에로 묶어세워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수호하며 파쑈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고수하는것을 당면한 전략적과업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계혁명의 령도기관으로서의 명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에 반파쑈인민전선운동과 관련한 국제당의 력사적공적이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파시즘은 새로운 적이 아니였다. 국제파시즘이 대두함으로써 우리 나라 혁명의 대상이 달라진것도 없었고 성격이 변화된것도 없었다. 우리는 국제당이 반파쑈인민전선운동로선을 제기하기전부터 우리 식의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을 제기해왔고 그 궤도를 따라 우리 혁명을 줄기차게 전진시켜왔다.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로서의 조국광복회를 창립하기 위한 준비사업은 남호두회의이후부터 시작되였다. 그전까지는 주로 내가 혼자서 광복회창립을 두고 사색을 무르익혀왔을뿐이다. 김산호, 최현, 박영순을 비롯한 몇몇동무들이 이따금씩 필요한 조언을 주느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대체로 그거야 사령관동지가 좋을대로 하시지요 하는 식의 립장을 취하였다. 그러다가 돈화지방에 있는 옥수천부근의 한 산간부락에서 어떤 나이많은 서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그가 훌륭한 조언자가 되고 의논대상이 되여주었다.
그 부락에 조선사람이 사는 집이 둘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집에 들었다. 그때 화룡지방에서 활동하고있던 어느 한 소부대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 소부대동무들은 나를 만나자 괴이한 사람을 달고왔다고 보고하였다. 화룡의 어느 벽촌에서 만난 사람인데 소부대가 사령부로 찾아온다는 낌새를 알고 김일성장군을 만나야겠다고 하면서 자기네를 뒤따라왔다는것이였다. 정체불명의 사람을 사령부로 데려올수 없다고 생각한 소부대성원들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몇번이나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네들은 자네들대로 가라, 나는 나대로 갈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호상 남의 일에 간참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고는 장바 한두기장쯤 되는 거리를 두고 그냥 태연하게 소부대를 따라왔다는것이다.
그 사람은 만나기전부터 나의 호기심을 끌더니 첫 상봉좌석에서도 별스럽게 굴었다. 소부대동무들이 사령관이라고 하면서 나를 소개하였으나 괴이한 손님은 그 말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자기의 나이와 열성을 봐서라도 진짜 김일성장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때 주인집장작을 패주다가 그를 맞아들였는데 나의 차림새가 아마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나를 이리 훑어보고 저리 훑어보고 하다가 아무렴 김장군이 그렇게 젊을수 없고 장군되는 사람이 머슴처럼 장작을 팰리도 없으며 막된 옷을 입고 다닐수도 없다고 하였다.
북만의 관지부근에서 야숙할 때 불무지보초를 선 신입전령병이 조는 바람에 내 바지를 태운적이 있었다. 헌 솜옷이였던데다 기워입기까지 하였으니 사실 나의 옷주제가 허술하게 보였을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가 괴짜였다. 그는 호지명의 수염 같은 턱수염을 달고있었다. 실제는 마흔네댓살밖에 안되는 사람이였으나 나이보다는 겉늙어서 쉬나문살이나 돼보이였다.
그는 항간에서 떠도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면서 하도 소문이 났길래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자고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내가 소문난 잔치 먹을 알이 없다고 대꾸하자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장군이 입은 옷만 봐도 로고가 짐작된다고 하였다.
심한 나이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우리는 대뜸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였다. 자기자신에 대한 그의 첫 소개부터가 아주 괴이하고 호탕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이룩해놓은것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좌왕우왕하기만 해온 기회주의자올시다.》
나는 한평생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초면에 자기를 기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소개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무한히 량심적인 사람만이 무한히 솔직한 법이다. 솔직성은 흰눈처럼 깨끗한 량심의 반사이며 감춰내지 못하는 량심의 빛이다. 그는 우리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할 정도로 솔직한 그 몇마디의 말로 대뜸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자기를 스스로 비하하는 그 꾸밈없는 이야기에서 나는 도리여 그의 인격적높이를 보았다.
우리는 미혼진으로 빨리 나가야 했던것만큼 그 마을에서 지체할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섭섭해하지 않을 정도로 만나주고 헤여질 작정이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길을 떠나려 하자 그는 집으로 돌아갈 대신 우리를 따라나섰다. 김장군을 만나고보니 인차 헤여지고싶지 않은데 몇시간동안만이라도 같이 따라가며 이야기나 나누게 해달라는것이였다. 웬일인지 나도 그와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와 함께 줄창 이야기를 하다나니 행군에서 지루한줄을 몰랐다. 이야기에 얼마나 열중했던지 나는 대원들이 쉬고싶어할 때 쉬우지 못하고 행군을 계속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김산호가 우리곁에 다가와 좀 쉬다가 가야 하지 않느냐고 귀띔해주군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당 력사에 조국광복회 발기인으로 기록된 《대통령감》 리동백이였다. 《대통령감》이란 리동백의 별명이였다.(전문 보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략력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1912)년 4월 15일 평양시 만경대에서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의 맏아드님으로 탄생하시였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아드님의 이름을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뜻에서 《성주》라고 지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의 혁명활동로정을 따라 조선과 중국의 여러곳으로 이사하시며 어린시절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선견지명으로 어린시절부터 중국말을 배우시고 중국인소학교에서 중어공부를 하시여 중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시였는데 이것은 후날 중국땅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는데 커다란 도움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자기 나라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주체12(1923)년 3월 중국 팔도구로부터 만경대까지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외가가 있는 칠골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였다.
주체14(1925)년 1월 아버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결연히 만경대를 떠나시였다.
주체15(1926)년 6월, 아버님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주의단체가 중국 화전에 세운 2년제군사정치학교인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으며 그곳에서 같은 해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그 책임자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에서 반년간 공부를 하신 후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기 위하여 그곳을 떠나 혁명활동의 무대를 길림으로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주체16(1927)년 8월 2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보다 대중적인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고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여러 대중단체들을 조직하시고 반일투쟁들을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와 그 기본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7월 3일 카륜에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조직하시고 7월 6일에는 이통현 고유수에서 항일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정치 및 반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1(1932)년 4월 25일 상비적인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그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를 창건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주체34(1945)년 8월 15일 조국을 해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조직하시고 당창건을 선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8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시고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으며 20개조 정강을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8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을 합동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짧은 기간에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민주선거를 조직하시여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시고 새로운 중앙정권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으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임무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2월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인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발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고 전체 조선인민의 일치한 념원에 따라 공화국정부수상, 국가수반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8(1949)년 6월 30일 북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들의 련합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6월 25일부터 주체42(1953)년 7월 27일까지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령도하시여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시고 미제의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8월 5일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을 위한 투쟁을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함께 도시와 농촌의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회주의혁명을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5(1956)년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와 주체50(1961)년 9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혁명에 관한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시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그 기본내용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날로 로골화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4차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부터 주체59(1970)년까지 공업화의 력사적과업수행을 성과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 따라 공화국주석으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9(1970)년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와 주체69(1980)년에 있은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또다시 추대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조선혁명의 총적과업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5월에 조국통일3대원칙을, 주체69(1980)년 10월에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주체82(1993)년 4월에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후계자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6월 평양에서 미국 전 대통령 카터를 접견하시고 핵문제와 관련한 조미협상을 시작하며 북남수뇌자상봉을 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온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다가 주체83(1994)년 7월 8일 새벽 2시에 집무실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민위천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3차),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나라의 국가 및 정부수반들, 당지도자들을 비롯한 연 7만여명의 외국인사들을 접견하시였으며 106차에 걸쳐 16개 나라들을 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와 국제기구들로부터 372개의 훈장과 메달, 명예칭호를 받으시였다.
중국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있고 100여개 나라 480여개의 거리, 기관, 단체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불리우고있으며 세계적으로 국제김일성상이 제정되여 수여되고있다.(전문 보기)
김일성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주체82(1993)년 4월 6일-
근 반세기에 걸치는 분단과 대결의 력사를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하는것은 온 민족의 한결같은 요구이며 의지이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전민족이 대단결하여야 한다.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사람이라면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무산자이건 유산자이건, 무신론자이건 유신론자이건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 단결하여야 하며 조국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야 한다.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모두다 나라의 통일과 통일된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특색있는 기여를 함으로써 민족분렬을 끝장내고 통일된 7천만겨레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떨쳐야 한다.
1. 전민족의 대단결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현존하는 두 제도, 두 정부를 그대로 두고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모든 민족성원들을 대표할수 있는 범민족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범민족통일국가는 북과 남의 두 지역 정부가 동등하게 참가하는 련방국가로 되여야 하며 어느 대국에도 기울지 않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쁠럭불가담적인 중립국가로 되여야 한다.
2.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단결하여야 한다.
전민족은 각자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과 하나로 련결시켜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으로 지키려는 하나의 뜻으로 단결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가지고 민족의 주체의식을 좀먹는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배격하여야 한다.
3.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서로 다른 사상과 리념,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침해하지 말고 함께 진보와 번영을 누려가야 한다. 지역적, 계급적리익에 앞서 전민족의 리익을 도모하여야 하며 모든 노력을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는데 기울여야 한다.
4. 동족사이에 분렬과 대결을 조장시키는 일체 정쟁을 중지하고 단결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대결을 추구하거나 조장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형태의 정쟁을 중지하고 비방중상을 그만두어야 한다. 동족끼리 적대시하지 말고 민족의 힘을 합쳐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공동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5. 북침과 남침, 승공과 적화의 위구를 다같이 가시고 서로 신뢰하고 단합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서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말아야 하며 침략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상대방에 자기의 제도를 강요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6. 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며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여 배척하지 말고 조국통일의 길에서 함께 손잡고나가야 한다.
통일론의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하며 정치적반대파라고 하여 탄압, 보복, 박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친북, 친남을 시비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정치범을 석방, 복권시켜 조국통일위업에 함께 이바지하게 하여야 한다.
7. 개인과 단체가 소유한 물질적, 정신적재부를 보호하여야 하며 그것을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데 리롭게 리용하는것을 장려하여야 한다.
통일되기 전에는 물론, 통일된 후에도 국가적소유, 협동적소유, 사적소유를 인정하고 개인 또는 단체의 자본과 재산, 외국자본과의 공동리권을 보호하여야 한다. 과학, 교육, 문학, 예술, 언론, 출판, 보건, 체육을 비롯한 모든 부문에서 각자가 가지고있는 사회적명예와 자격을 인정하며 공로자가 받고있는 혜택을 계속 보장하여야 한다.
8.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래왕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쌍무적, 다무적대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9.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북과 남, 해외의 전민족이 서로 련대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북과 남, 해외에서 조국통일에 유익한것은 편견없이 지지성원하고 해로운것은 함께 배격하여야 하며 각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서로 보조를 같이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사업에서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정당, 단체와 각계각층의 동포들이 조직적으로 련합하여야 한다.
10.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에 공헌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 애국렬사들과 그 후대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야 한다. 지난날 민족을 배반하였던 사람들도 과거를 뉘우치고 애국의 길에 나서면 관용으로 대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한 공로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여야 한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