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8月 20th, 2015
서포혁명사적지를 찾아서 : 강철의 령장의 걸출한 위인상 전하는 력사의 땅
위대한 전승사를 빛내여주는 선군혁명의 만년재보
평양시 련못동입구의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지나 교외로 얼마간 달리느라면 푸른 숲 우거진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서포혁명사적지에 이르게 된다.
오래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은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에 떠받들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력사의 땅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서포혁명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39(1950)년 12월 27일부터 주체40(1951)년 1월 5일까지 계시면서 전쟁승리를 위한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39(1950)년 7월 10일부터 9월 21일까지 계시면서 백두령장의 비범한 예지와 슬기를 보여주신 뜻깊은 곳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적을 대를 이어 길이 전하여야 합니다.》
서포혁명사적지는 참으로 묘한 곳에 자리잡고있었다.큰길에서도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 지휘소였다.(전문 보기)
군국주의부활에 광분하는 아베일당에게 경종을 울린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담화 –
지난 14일 일본수상 아베가 《태평양전쟁패전 70년 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이에 앞서 일본수상관저에서 진행된 각료회의에서는 아베의 이 《담화》를 정부의 공식립장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일제의 패전 70년과 관련한 아베의 《담화》는 마땅히 우리 인민과 아시아인민들에게 영원히 가셔지지 않을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끼친 피비린 죄악의 과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석고대죄로 일관됐어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담화》는 발표되자마자 내외의 증오와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그것은 《담화》내용이 일본의 죄과를 한사코 회피하고 무작정 덮어버리며 어떻게 하나 군국주의망령을 되살리려는 흉심으로 가득차있었기때문이다.
아베는 우선 《담화》에서 19세기에 서양나라들의 식민지지배의 여파가 아시아에도 들이닥치고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발생하여 커다란 타격을 받은 속에서 일본은 대세를 따라 《힘의 행사》로 이를 극복할 목적으로 《전쟁에로의 길에 나섰다.》는 식으로 일본의 해외침략이 불가피한 선택인듯이 합리화해나섰다.
더구나 《어떤 행위가 침략에 해당되는가에 대하여서는 력사가들의 론의에 맡겨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2년전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있지 않다.》고 떠벌인 망언이 불변의 립장임을 꺼리낌없이 공개하였다.
이것은 과거죄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로골적인 선언이나 다름없다.(전문 보기)
더러운 악설만을 내뱉는 박근혜를 한시바삐 공동묘지에 묻어버려야 한다 – 전국련합근로단체 대변인담화 –
해방의 드높은 환호성은 어느덧 70돌기의 년륜을 내 나라 삼천리강토에 새겨놓았다.
오늘도 진할줄 모르는 그날의 감격과 환희가 이 땅에 넘쳐나는 시각에 때아닌 악설이 터져나와 온 겨레로 하여금 경악을 넘어 격노케 하고있다.
민족의 재앙거리인 박근혜의 입부리에서 또다시 독기어린 악담이 쏟아져나왔던것이다.
사실 박근혜의 사유기능이 정상이라면 적어도 이날만은 제 집안에 들어박혀 죄악에 찬 가문의 친일행적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해보아야 했을것이다.
일제《황군》의 오까모도중위로 둔갑하여 우리 인민의 항일운동을 야만적으로 탄압한 악명높은 천하친일역적인 애비 박정희를 그대로 닮은 박근혜가 《한미일》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나토》식다자기구를 설립한다는 미명하에 아베의 품에 안기려고 각종 요사를 다 떨어대고 친동생인 박근령이 왜왕을 《천황》으로 섬겨올리고 《위안부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일본을 압박하는것은 심히 잘못된 처사》라고 망발하여 지탄받은것도 불과 며칠전의 일이다.
이러한 박근혜가 《8.15경축사》를 한다는것도 어불성설이지만 늘어놓은 수작 또한 하나에서 열까지 동족을 헐뜯는 극도의 대결적망발로 일관되였다.
언제 봐야 개주둥이에서 짖는 소리가 나올뿐이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제정신없이 동족을 걸고드는데 대해 몇마디 언급해보는것이 필요할것 같다.
박근혜는 《경축사》서두에서부터 우리가 국제사회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고 역설해댔다.(전문 보기)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의 거점 신천박물관을 찾아서(1) : 원쑤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낱낱이 발가놓는 력사의 고발장
땅도 그 땅,하늘도 그 하늘이였다.사백어머니와 백둘어린이의 묘도 원암리 밤나무골의 그 자리에 오늘도 옛 모습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곳은 소년단넥타이를 휘날리던 시절부터 눈에 익혀온 어제날의 그 신천이 아니였다.나무와 풀,공기와 물마저도 달라진 땅이였다.
우리의 혁명진지,계급진지의 사상적보루로 새롭게 일떠선 신천박물관,그와 더불어 신천은 그자체가 증오이고 분노였으며 원쑤에 대한 복수심과 적개심의 거대한 응어리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의 피가 흐르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신천군이 제일 참혹한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한계단,두계단…
언덕은 나지막하고 계단은 높지 않았으나 우리는 쉽게 오를수 없었다.숙연해지는 마음으로 계단을 톺아 사백어머니묘,백둘어린이묘,애국자묘에 추모의 꽃송이를 얹고나니 새로 일떠선 신천박물관의 자태가 우렷이 안겨왔다.
력사의 고발자,증견자인 신천박물관은 피젖은 쇠사슬을 얼기설기 휘감고 신천땅 어디서나 보이는 언덕에 거연히 솟아있었다.(전문 보기)
을미사변을 도발한 일제의 만고대죄를 준렬히 폭로단죄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비망록 –
올해는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의 자주권을 엄중히 침해한 을미사변을 도발한 때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을미사변을 도발한 일본지배층의 야만적행위는 곧 우리 인민의 자주권을 강도적으로 침해한것으로 되며 전통적인 왕가의 존엄을 침해한것으로 되는것이다.》
19세기말 조선을 식민지로 예속시키기 위한 침략책동에 피눈이 되여 미쳐날뛰고있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저들의 야망이 뜻대로 실현되지 못하게 되자 그 주되는 원인이 당시 조선봉건정부의 국권을 한손에 거머쥐고있던 명성황후의 친로배일정책에 있다고 간주하고 그에 대한 강도적인 살해음모를 꾸미였다.
1895년 10월 일본반동정부는 당시 조선주재 일본공사 미우라를 돌격대로 내세워 일본군수비대무력과 경찰무력 지어는 깡패들과 불량배들로 살인집단을 뭇고 그들을 내몰아 한밤중에 조선황궁인 경복궁을 강도적으로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도록 하였다.미우라를 우두머리로 한 살인집단은 황궁안의 침실에서 자고있던 명성황후를 일본도로 란도질하여 무참히 살해하고는 저들의 범죄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그 시체를 불태우고 남은 유골을 경복궁안의 못속에 내던지는 천인공노할 만고대죄를 저질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감행된 명성황후살해사건(을미년에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살해된 사건이라고 하여 을미사변이라고 함)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예속화를 실현하려는 흉계밑에 꾸며진 특대형의 범죄행위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