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 사령관동지의 전사된 영예는 목숨보다 귀중하다 -혁명투사 리순희동지의 한생에서-

주체109(2020)년 7월 30일 로동신문

 

항일혁명이 낳은 불굴의 투사이며 공청원이였던 리순희동지!

녀투사가 혁명을 위하여 18살의 꽃나이청춘을 바친 때로부터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붉은기앞에서 다진 맹세를 지켜 원쑤의 총구앞에 스스럼없이 나서던 그의 모습은 오늘도 우리 혁명의 계승자들의 가슴마다에 열혈충신의 참모습으로 뜨겁게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을 보위하여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고 사령관동지의 명령관철을 위하여 적진속에도 주저없이 뛰여들며 필요하다면 생명도 아낌없이 바친 항일혁명투사들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모두가 본받아야 할 귀감입니다.》

태양의 빛과 열을 떠나 푸르른 거목을 생각할수 없듯이 리순희동지도 위대한 수령님의 따사로운 품에 안겼기에 참된 녀성혁명가로 자라날수 있었다.

일제의 간악한 식민지통치하에서 시들어가던 리순희동지가 진정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것은 유격구에 들어와 아동단생활을 할 때부터였다.

그 나날 어린 리순희동지의 마음속에는 김일성장군님은 조선민족의 태양이시며 장군님을 따르는 길에 조국의 자유와 해방, 인민의 행복이 있다는 철석의 신념이 굳건히 자리잡았다.

리순희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성스러운 혁명위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칠 불같은 맹세를 안고 혁명의 길에 서슴없이 나섰으며 그 과정에 공청원으로, 왕청현 아동국장으로 성장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에서 리순희동지를 처음으로 만나시던 때를 두고 이렇게 쓰시였다.

《내가 리순희를 처음으로 만나본것은 1934년 초겨울이였다고 생각된다.그때 나는 적들의 〈토벌〉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만나려고 아동단학교에 갔다가 리순희를 보게 되였다.연길에서 현아동국장으로 사업하던 그가 왕청현 아동국장으로 소환되여온지 얼마 안되는 때였다.

내가 아이들속에 싸여 아동단학교마당에 서있을 때 리순희가 급히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눈매가 시원하게 생긴 그는 시내가의 물망초처럼 청초한 기운을 풍기는 처녀였다.》

이렇듯 리순희동지는 유격구의 그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처녀였다.

그에게 남다른것이 있다면 아동단원들을 조선의 꽃봉오리로, 앞날의 기둥으로 내세워주시며 친어버이정으로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을 누구보다 깊이 절감한 체험자의 한사람이라는것이였다.

하기에 리순희동지의 심장속에 높뛰는 신념은 결코 평범한것이 아니였다.

나에게는 목숨보다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된 영예가 더 귀중하다!

바로 이것이 공청원 리순희동지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였고 단두대우에서도 혁명의 승리를 확신할수 있게 한 사상정신적원천이였다.

아동단원들을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들로 억세게 키우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충실하게 받들어가던 리순희동지는 요영구회의방침에 따라 유격구가 해산된 후 자진하여 적구공작의 길에 나섰다.

일제군경들의 총검과 밀정들의 감시가 무시로 뒤따르는 위험천만한 환경속에서도 리순희동지는 라자구에 수많은 공청조직과 아동단조직을 내오고 확대해나감으로써 원쑤들의 아성에 강유력한 혁명의 포대를 쌓아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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