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70년대에 발휘된 우리 인민의 충실성 : 당의 문화농촌구상을 현실로 꽃피운 건설자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주체50(1961)년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당 제4차대회에서 7개년계획기간에 농촌에서 수십만동의 문화주택을 건설할데 대한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방대한 건설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매개 군마다 농촌건설대를 조직하여 농민들의 생활에 편리하고 아담한 주택들을 전망성있게 지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농촌문화주택건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농촌의 세기적락후성을 퇴치하고 농촌을 개명하기 위한 영예롭고 중대한 사업이였다.
우리 농촌을 더욱 살기 좋고 문명한 사회주의문화농촌으로 전변시킬 웅대한 설계도를 펼쳐준 당의 숭고한 뜻을 받아안은 농촌건설자들은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연안군일군들과 인민들의 열의는 남달리 높았다.
그들앞에 나선 건설과제는 군의 힘으로는 사실 불가능한것이였다.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열의를 식힐 근거로는 되지 않았다.군농촌건설대를 조직하던 시기 일부 사람들이 농사짓는 로력도 긴장한데 어떻게 군농촌건설대를 조직하겠는가고 하며 농촌주택건설을 공업화할수 있는 물질기술적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조건에서 농촌건설대를 조직하는것은 시기상조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있는 건설부문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을 건설대에 받아들이는 한편 군사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제대군인들과 중학교졸업생들도 인입하였다.그리고 선반, 볼반을 비롯한 여러가지 공작기계들도 자체로 해결하여 공무작업장을 꾸려놓았고 블로크양생로를 만들어놓고 추운 겨울에도 하루에 블로크를 수천장씩 생산하였다.이와 함께 성능높은 블로크성형기를 비롯한 건설기계들과 기공구도 마련하였다.
하다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성과를 안아오게 하였던가.
그것은 전쟁의 상처가 말끔히 가셔지지 않은 군에 찾아오시여 신해방지구 농민들의 살림살이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생활수준을 높일 방도를 하나하나 의논해주시면서 주택문제를 우선적으로 풀어줄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였다.
농민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그 사랑을 하루빨리 현실로 꽃피워야 할 무거운 임무가 자기들의 어깨에 지워져있음을 깊이 자각한 그들이였다.
연안군농촌건설대원들은 기세충천하여 건설에 달라붙었다.
작업준비를 빈틈없이 갖춘데 기초하여 살림집기초공사를 불이 번쩍 나게 해제낀 그들은 축조, 미장 등 매 사람의 체질과 능력, 기술기능수준을 고려하여 작업조직을 구체적으로 하고 건설을 흐름식으로 내밀어 매일 계획을 300%이상 해제끼였다.
하여 몇달 안되는 짧은 기간에 지붕공사와 외부벽체미장작업을 끝내고 내부미장작업을 마감단계에서 다그침으로써 한해에 수백세대 농촌문화주택의 새집들이를 할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마련해놓았다.
이것은 비단 연안군농촌건설대원들에게서만 보게 되는 모습이 아니였다.
이미 여러가지 합리적인 건설방법을 창안도입하여 많은 목재와 로력을 절약한 북청군의 농촌건설자들은 농촌문화주택도 조립식방법으로 지을수 있다는 자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실천하는 과정에는 애로와 난관이 적지 않았다.하지만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은 당이 준 농촌문화주택건설과업은 결코 집행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것이 아니라 무조건 집행하여야 할 사업이라는 사상적각오를 가지고 집체적지혜를 합쳐나갔다.마침내 그들은 중형부재를 건설현장에서 직접 만들어낼수 있는 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였으며 이어 달구지식기중기를 창안하여 동력이 없이도 부재 등을 손쉽게 들어올릴수 있게 하였다.
결과 로동생산능률을 훨씬 높이면서도 많은 자재를 절약하였으며 살림집도 더 아담하고 질적으로 건설할수 있게 되였다.
우리 농민들에게 살기 좋은 살림집을 마련해주어 주택에 대한 그들의 세기적숙망을 실현시켜주려는 당의 숭고한 뜻을 한몸바쳐 기어이 관철하려는것이 농촌건설자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한결같은 지향이였다.
그 불같은 지향은 그대로 혁신적인 건설성과로 이어졌다.
그에 대하여 주체55(1966)년 11월 20일부 《로동신문》에는 《농촌문화주택이 줄지어 일떠선다》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실었다.
《당과 국가에서는 해마다 수만세대의 농촌문화주택을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지어주고있다.
금년에도 농민들에게 차례지게 될 농촌문화주택은 수만세대에 달할것이 예견되고있는데 각지 농촌건설대들에서는 최근 한달동안에 당대표자회가 있기 이전인 9월에 비하여 매일 19세대의 농촌문화주택을 더 지어 농민들에게 넘겨주었다.
올해에 건설하기로 된 농촌문화주택의 95.6%를 준공하였거나 거의 끝내가고있는 평남도내 농촌건설대들에서는 〈100일전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있다.
…
이미 금년도주택건설을 성과적으로 끝낸 강원도 안변군농촌건설대원들도 겨울철에 건설을 계속할수 있도록 난방시설을 갖춘 부재직장을 새로 꾸리고 기술장비들을 더욱 튼튼히 마련하고있다.
각지 농촌건설대들에서는 명년에 금년보다 더 많은 농촌주택을 짓게 되는것과 관련하여 부재생산기지를 더 튼튼히 꾸리며 지방자재원천을 더 잘 리용하기 위한 예비탐구사업을 추진시키고있다.》
이렇듯 우리 당과 조국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1960년대, 70년대의 자랑찬 성과속에는 당의 문화농촌건설구상을 자기의 리상과 포부로 받아안고 우리 나라 농촌의 면모를 일신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농촌건설자들의 위훈도 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전원회의는 세기적인 변혁을 안아오는 하나의 혁명이며 인민들이 제일 반기는 사업인 살림집건설을 제1차적인 중요정책과제로 내세우고 2022년에 축적된 경험에 토대하여 올해 농촌건설에 더 큰 힘을 넣을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였다.
우리 당이 제시한 사회주의농촌건설목표에는 온 나라 농촌을 세계가 부러워할 지상락원으로 전변시키려는 숭고한 뜻이 어려있다.
누구나 수령의 뜻을 충성으로 받든 전세대 농촌건설자들처럼 당의 결정을 무조건 수행하여야 한다는 사상적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이악하게 달라붙으면 농촌진흥의 새시대는 하루빨리 앞당겨질것이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