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에 대한 충성심은 영웅세대, 영웅조선의 근본이다 -1950년대 전승세대의 고결한 충정의 세계를 전하며-
영광스러운 전승세대에 대한 긍지높은 추억-그들처럼 영원히 승리하리라
우리 인민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의 승리의 비결을 론할 때 1950년대의 영웅세대가 발휘한 수령에 대한 열렬하고 순결한 충성심에 대하여 생각하군 한다.
동서고금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그 숭고하고 절대적인 충실성을 떠나서는 영웅조선의 위대한 전승에 대한 그 어떤 철학도 진리도 론할수 없다.조국해방전쟁의 승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와 수령을 한마음한뜻이 되여 절대적으로 받든 우리 인민과 군인들의 불타는 충성심이 안아온 위대한 기적이다.
수령에 대한 충성의 일편단심이 평범하고 소박한 인간들을 어떻게 불굴의 용사, 무적의 영웅, 위대한 인민으로 키우는가를 조국해방전쟁은 인류앞에 뚜렷이 실증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1950년대에 전승세대가 세운 특출한 위훈과 후대들에게 남긴 정신적재부와 유산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귀한것으로 깊이 간직되고있습니다.》
전쟁의 포성이 멎은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하지만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마다에 소중히 간직되였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충성심을 전하는 많은 유물들과 력사자료들은 지금도 사람들을 끝없이 감동시키고있다.전승세대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뜨겁게 안겨오는 수많은 유물들과 자료들이 집대성되여있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그것은 년대와 세대를 이어 이 나라 인민의 심장에 영웅조선의 제일국풍, 제일전통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인간육성의 교정, 충실성교양의 대전당이다.
그 이름도 그리운 김일성장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공화국영웅홀에서 참관자들은 공화국영웅들이 정중히 모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들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공화국이 창건된지 두해만에 일어난 가렬한 전쟁시기에 벌써 우리 인민군병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을 가슴에 모시고 싸운것이 아닌가.
어떻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가슴에 모셨는지 사연은 바이 알길 없다.하지만 전승기념관의 곳곳마다에 영웅조선의 가장 귀중한 전승의 재부로 모셔져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들, 인민군용사들과 인민들이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자기 심장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목숨으로 지켜 싸운 수령의 영상사진에 깃든 가지가지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은 오늘 새세대들에게 그 대답을 주고있다.
조선인민군 공군의 첫 근위추격기련대와 더불어 우리 인민의 기억속에 살아있는 김지상영웅,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신 그의 비행기좌실을 찍은 사진이 전시되여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비행기를 몰고 그는 불과 석달동안에 18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6대를 격상하는 혁혁한 위훈을 세웠다.
하늘에서 삶과 죽음을 판가리하는 비행사가 자기 비행기의 좌실에 가족사진도 아닌 수령의 초상화를 모시고 공중전을 벌렸다는 사실은 세계 그 어느 나라 공군사에도 없다.
김지상동지는 나라없던 그 세월에 철들기 전부터 연약한 어깨가 찢겨지도록 가대기를 끌며 자란 빈농의 아들이였다.
딛고 설 제땅 한뙈기도 없던 그에게 새 조선의 창공을 통채로 안겨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하늘같은 은덕에 목숨바쳐 보답하려는 열망으로 가슴을 끓이던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태워주신 비행기에 그 이름도 그리운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시였다.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비행기는 곧 순간도 떠나선 살수 없는 조국이였고 고향이였으며 부모형제가 있는 정든 집이였다.
그 소중한 모든것을 위해 한목숨바쳐 싸울 일념으로 피를 끓이는 용사앞에서 어찌 생명보호요청서에 명줄을 건 미제침략군의 비행사들이 추풍락엽의 신세가 되지 않을수 있겠는가.
조국해방전쟁사에 특기할 위훈을 세운 유능한 정찰일군 곽칠성동지는 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싸웠다.
사연깊은 초상화를 품고 그는 걸음걸음 적의 총구가 노리는 사지판을 용감하게 헤쳐나갔다.절해고도의 적구에서도 늘 수령님과 함께 있다는 행복감을 안고 힘과 용기를 가다듬으며 최고사령부의 전략적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용감무쌍하게 싸웠다.
최후의 순간에 그는 마지막숨결을 깡그리 모아 부탁했다.
《…전쟁이 승리하면… 이 영상사진을 가지고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 나의 마지막보고를 전해주오.》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제2전선에서 무비의 용맹을 떨친 적후투쟁의 맹장이였던 련대장 최우동지는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접수할 때, 당회의와 군무자집회를 할 때 먼저 품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꺼내여 정중히 모시군 하였다.지휘관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초상화를 우러르며 장병들은 적구에서도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앞에 선 심정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되새겨보군 하였다.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나를 따라 앞으로!》라고 웨치며 앞장에서 포위를 뚫기 위한 돌격로를 열어제끼고 련대를 북행길로 떠밀어보내면서 그는 이런 마지막부탁을 남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면 련대가 장군님께서 주신 명령을 끝까지 관철했다고, 이 최우가 장군님을 몹시 그리워했다고 보고드려주시오.…》
전사할 때까지 그가 심장처럼 소중히 품고 싸운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시고 련대는 사선천리를 뚫고 헤쳐 끝끝내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에 안겼다.
인간은 온넋을 바쳐 따르고싶은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죽음도 불사하는 기적같은 힘을 발휘한다.그럴진대 가장 준엄한 전화의 나날 삶의 은인이시며 운명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간직한 병사들이 발휘하는 무비의 힘과 용맹을 과연 무엇으로 산출해낼수 있겠는가.
미24사 사단장 띤은 오산전투를 앞두고 《스미스특공대》 대장과 그의 병사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그러나 《스미스특공대》는 전멸되였다.신의 가호를 운명의 전부로 여긴 사단장 띤 역시 조선인민군 병사에게 포로되였고 그의 《상승사단》도 괴멸되였다.
적들은 전투를 앞두고 십자가부터 긋군 하였지만 인민군용사들은 결전을 앞둔 때이면 가슴속에 품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르며 승리를 맹약했다.원쑤들은 몇푼의 딸라를 위해 싸움판에 뛰여들었지만 우리의 인민군용사들은 수령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을 바쳐 불뿜는 적의 화구도 가슴으로 막았다.바로 여기에 전승신화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 있다.
수령을 따르고 옹위하는 길에선 살아도 죽어도 영광이라는 그 하나의 신념, 바로 여기에 수령과 자신을 하나의 생명체로 결합시킨 우리 인민의 인생관이 있는것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사에 기록된 가장 나어린 병사의 한사람이였던 정춘모동지의 생이 바로 그것을 확증해주고있다.
전승기념관에는 그가 한생토록 간직해온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가 정중히 모셔져있다.13살의 어린 나이부터 전쟁 3년간 꼬마병사로 싸운 그가 남녘의 소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삼촌이 감옥에서 안겨준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품고 인민군대에 입대한 그의 가슴속에 꽉 차있는것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 품에 안겨야만이 바라는 모든것을 이룰수 있다는 오직 한생각뿐이였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쟁의 3년간에 대대의 사랑받는 나어린 구대원, 조선로동당원으로 성장한 그는 불비쏟아지는 전장을 누구보다 많이 누빈 련락병이였다.허나 전쟁전기간 그 어떤 총알도 그의 심장을 뚫지 못했다.
온 중대, 대대가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품고있는 애어린 용사를 지켜주었다.결사전에 나갈 때면 그가 품속에 소중히 간직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마지막 피 한방울 다할 때까지 싸울것을 다짐했다.
한생토록 간직해온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와 함께 정춘모동지가 삼가 올린 편지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런 뜻깊은 친필을 새겨주시였다.
《수령님의 영상사진을 심장깊이 모시고 승리를 위해 싸운 로병동지에게 숭고한 경의와 전투적인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여 새세대들에게 고귀한 투쟁정신, 50년대 영웅정신을 그대로 이어주기 바랍니다.
김정은
2013 8 14》
오늘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우리 인민의 심장을 세차게 높뛰게 하는 뜻깊은 기발이 있다.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모신 민청모범기발이다.
1952년 5월부터 조선인민군의 모범적인 민청단체들에 수여된 이 기발은 전화의 용사들모두의 최상의 존엄과 영예였으며 투쟁의 기치, 승리의 표대였다.그 기발아래서 판가리전투를 앞두고 터치던 용사들의 목소리가 새세대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준다.
《김일성장군님은 언제나 이렇게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승리에로 령도하고계십니다.》
《영예의 민청모범기발과 함께…사랑하는 조국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마지막순간까지 싸워 이길것입니다.》
어느때, 어느곳에서든지 김일성장군님을 옹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리라는것은 그들의 억척불변의 신념이였다.민청모범기발이 나붓기는 곳에서 이기지 못한 적이 없었고 그 기발과 함께 점령 못한 고지가 없었다.
제2전선을 지휘하던 항일혁명투사 최현동지는 적후활동에서 큰 공을 세운 한 분대장에게 해방직후부터 가슴에 품고 다니던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사진을 안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훈장보다 더 쎈 표창이야.… 이 사진을 간수하고 다니면 총알이 네 심장을 뚫지 못해.》
훈장보다 더 쎈 표창, 이것은 영웅메달보다 더 값높은 영광이라는것이다.
총알도 뚫지 못한다, 이것은 죽음도 이기는 불사신이 된다는것이다.
항일대전의 나날부터 수령에 대한 투철한 충성심을 심장깊이 간직한 백전로장의 이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말에 얼마나 고귀한 진리가 담겨져있는것인가.
전화의 용사들이 위대한 영웅세대로 후세토록 그 이름 떨치는것은 이렇듯 누구를 막론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자신의 심장처럼 귀중히 간직하고 싸웠기때문이다.
나이도 고향도 경력도 달랐다.그러나 그들은 모두 김일성장군님의 품에서 한날한시에 다시 태여난 그이의 아들딸들이였다.김일성장군님의 품은 곧 그들모두의 고향과 가정, 운명의 전부였다.
1211고지의 불비쏟아지는 갱도에도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가 정중히 모셔져있었으니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은 이 나라 용사들을 영웅으로, 불사조로 키운 크나큰 힘이였고 이 나라의 모든 고지들을 영웅고지, 승리의 고지로 만든 백승의 위력이였다.
세계 그 어느 나라 전쟁사에도 장령으로부터 평범한 전사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수령의 영상을 심장에 품고 싸웠다는 기록은 없다.바로 이것으로 하여 우리 군대는 영웅군대, 우리 인민은 영웅인민, 우리 나라는 영웅조선으로 만방에 자기의 명성과 영예를 떨칠수 있은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전승 60돐을 맞으며 새로 건설되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승세대의 그 열화같은 마음을 모두 합쳐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어버이수령님의 립상을 높이 모시도록 해주시였다.전쟁의 불길속에서 언제나 그립던 그 영상, 전승의 광장에서 승리자의 자부심안고 뵈옵던 그 거룩하신 모습을 삼가 우러르며 전쟁로병들은 누구나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오직 수령을 위하여!
오늘도 세상사람들은 조선인민의 순결무구한 충실성에 대한 일화들과 사실자료들에 접할 때마다 큰 충격을 받군 한다.
타래쳐오르는 불길속에서도, 풍랑사나운 날바다에서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목숨바쳐 보위한 하많은 이야기들…
그렇듯 순결하고 열렬하게 자기 수령을 따르고 받드는 우리 인민의 백옥같은 일편단심을 떠나 어찌 이 나라에서 이룩되는 모든 기적과 승리에 대해 생각할수 있겠는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에서 세차게 분출된 전인민적인 사상감정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바로 이것일것이다.
세계력사에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전민이 한마음한뜻으로 일시에 떨쳐나 도발자들의 아성을 며칠만에 해방한 실례가 없다.
1950년 6월 26일,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방송연설을 높이 받들고 전국의 공장과 농촌, 교정들에서 전선탄원모임이 진행되였다.공화국의 남녀청년들은 너도나도 김일성장군님의 전사가 되겠다는 불같은 맹세를 토로하며 앞을 다투어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해나섰다.
전승기념관에 전시되여있는 공화국청년들의 전선탄원서중에는 한 소녀의 열렬한 결의가 적혀있는 탄원서도 있다.
《김일성장군님이시여
이제는 군대에 복무할만큼 자라났습니다.
몸도 튼튼합니다.나의 끓는 피를 최후의 한방울까지 바쳐 싸우려는 결의를 장군님께서는 꼭 들어주시리라고 믿습니다.저를 전선에 보내주십시오.
수령과 당에 의하여 교양받은 옥순이를 전선에 꼭 참가시켜주십시오.
1950년 7월 18일 강원도 철원녀자중학교 3학년 김옥순》(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