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인민들의 어머니, 그 고귀한 부름속에

주체107(2018)년 3월 22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늘 우리 당은 어머니당이라고 하시면서 당조직들과 일군들이 인민들의 참다운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인민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군, 인민들이 기다리는 일군이 되자면 어떤 품성의 소유자가 되여야 하는가.

인민들의 참다운 어머니,

이것은 우리 일군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이다.

인민을 위한 일밖에 모르고 인민을 위한 일을 성실하고 능숙하게 하며 인민을 위한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일군, 그런 일군이 바로 인민들의 어머니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첫날부터 일군들이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일군들이 인민들의 참다운 어머니가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주체54(1965)년 2월의 어느날도 그런 하루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자신께서 평양시와 지방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료해하신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그이께서 료해하신 문제들은 하나같이 인민생활과 관련된것들이였다.

그무렵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인민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었다.그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실례를 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생활에 대한 무관심성은 곧 사람에 대한 무관심성이며 우리 사회에서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한것보다 더 나쁜것은 없다고 그루를 박아 지적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들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어야 하는 자기들의 책임감을 자각하며 그이를 경건히 우러렀다.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가 일군들의 페부에 뜨겁게 흘러들었다.

인민들은 우리 당에 자기의 모든것을 의탁하고있으며 우리 당을 어머니당이라고 부르고있다.당일군들이 어머니당의 일군으로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인민들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자면 진정으로 어머니다운 품성을 지녀야 한다.이 세상의 좋은것을 다 자식들에게 안겨주고싶어하는것이 어머니의 심정이며 자식을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위험도 가리지 않고 나서는것이 어머니의 성품이다.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티없이 깨끗하고 웅심깊으며 진실하다.그래서 자식들은 기쁠 때에도 어머니를 찾고 슬플 때에도 어머니를 찾으며 다 자라서도 어머니를 찾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자기를 낳아키워준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였다.

자식을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어머니,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락으로 여기는 어머니,

일군들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으로 하여 가슴이 달아올랐고 인민을 위해 어머니의 심정으로 일하여야 할 자신들의 모습을 어머니의 모습에 비추어보게 되였다.

일군들의 이런 심중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아낌없이 다 바친다고, 어머니가 자식을 하나 키우는데 오만자루의 품이 든다고 하여 어머니를 처음에는 오마니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점차 어머니로 되였다는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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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의 세계

주체107(2018)년 3월 18일 로동신문

 

전사회적으로 절약투쟁을 강화하여 한W의 전기, 한방울의 물, 한g의 석탄, 한줌의 세멘트도 귀중히 여기고 극력 아껴쓰며 모두가 높은 애국심과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나라살림살이를 깐지게 해나가는 기풍을 세워나가도록 하려는것이 오늘 우리 당의 의도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절약은 곧 생산이며 애국심의 발현입니다.》

절약은 곧 애국심의 발현!

새길수록 온 사회에 절약기풍을 확립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신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의 세계가 숭엄히 돌이켜진다.

온 나라가 새 조국건설로 들끓던 어느해 겨울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시며 늘 찬방에서 불철주야 헌신하고계시였다.

그래서 일군들이 군불을 때려고 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무도 귀하거니와 새벽에 사람이 일어나 불을 때야 하겠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산에서 싸울 때에는 령하 40℃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에도 천막이 고작이였다고 하시면서 군불을 땔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산에서 싸우실 때처럼 외투를 걸치시고 일을 보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어느날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 자그마한 전열기를 가져다 설치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전열기가 어디서 났는가 알아보시고 도로 가져가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자신을 위한 일에서는 그 어떤 특전이나 특혜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우리 수령님의 풍모를 잘 알고있던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 이 전열기만은 허락해주셨으면 한다고 사정하다싶이 간청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서 하라는대로 하라고 단호하게 이르시였다.

엄혹한 추위가 계속되는 한겨울인지라 일군은 선뜻 움직일수가 없었다.그런 그를 바라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나라의 전기사정이 매우 긴장한 조건에서 내가 일하는 방이라고 하여 전열기를 놓아서는 안된다고, 방에 전열기를 놓으면 방안의 공기는 덥힐수 있을지 몰라도 나의 마음은 덥힐수 없다고,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려면 전열기를 걷어가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그리하여 전열기는 끝내 철수하게 되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들을 우리 어이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그 나날과 더불어 한평생 그 어떤 사소한 특혜나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였고 누구나 높은 애국심과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려 나라살림살이를 깐지게 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어느해 봄날 한 구역의 인민반장들을 만나주실 때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절약투쟁을 강화할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다.그때 어느 한 동에서 인민반장들이 정치사업을 잘하여 지난겨울에 가정들에서 쌀을 한끼에 한숟가락씩 절약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에 많은 식량을 수매하였다는 사실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주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치하하시였다.한알한알의 낟알에 비낀 평범한 녀인들의 애국심을 그리도 중히 여기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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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에 길이 빛나는 혁명의 천리길

주체107(2018)년 3월 16일 로동신문

 

배움의 천리길, 12살 어리신 나이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애국의 길, 혁명의 길을 걸으신 때로부터 세월은 흐르고흘러 95돌기의 년륜을 새기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과 같이 어리신 나이에 애국의 큰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의 지도자는 력사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가장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누구보다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신 위대한 수령님,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높으신 뜻을 받드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신 날은 지금으로부터 95년전 3월 16일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국을 한탄하며 살길을 찾아 류랑길에 오르고 돈냥이나 있는 집 자식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류학의 길에 오르던 수난의 그 시기 우리 수령님께서 단행하신 조국에로의 천리길!

그것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시고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절세의 애국자만이 걸으실수 있는 혁명의 길, 애국의 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사실 그때의 솔직한 심정은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였다고, 조국에 나가서 공부하라니 다른것은 다 좋았는데 부모동생들의 곁을 떨어지는것이 싫었다고, 그렇지만 고향에 가고싶은 생각은 불같았다고 감회깊이 쓰시였다.

그날은 눈보라가 앞을 가리고 바람이 사납게 불어치던 날이였다.

팔도구에서 만경대까지 천리인데 혼자서 갈수 있는가고 물으시는 김형직선생님께 갈수 있다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신 우리 수령님.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먼길을 떠나시는 아드님의 두루마기고름도 다시 매여주고 목도리도 고쳐감아주시며 만경대에 가면 할아버님, 할머님말씀 잘 듣고 공부를 잘하라고, 그리고 편지도 자주 하라고 당부하시였다.

단정한 학생복차림에 강반석어머님께서 밤새워 지으신 두루마기를 입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신 후 동무들의 바래움을 받으시며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천리길을 떠나시는 우리 수령님의 수중에는 자그마한 보꾸레미와 넉넉하지 못한 려비가 전부였다.

그러나 조국땅으로 향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는 이 세상 누구도 지닐수 없는 가장 큰것이 자리잡고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국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과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김형직선생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대낮에도 어둡고 사나운 맹수들이 무시로 나타나는 오가산령, 가야 할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험산준령…

단신으로 넘으시며 별의별 고생을 다 겪으시였건만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것은 어디서나 보고 느끼시게 되는 조국의 비참한 현실이였다.

험난한 천리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객주집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그날 객주집에는 손님들이 몇명 있었는데 그들속에는 호남벌에서 살다가 간도로 살길을 찾아간다는 어느 한 길손도 있었다.

배고파 우는 어린아이들을 달래며 낯설은 이국땅으로 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 수령님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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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속에서 :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

주체107(2018)년 3월 14일 로동신문

한 상 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근 산림조성사업을 힘있게 벌려 내 나라, 내 조국을 푸른 숲이 우거진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꾸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을 현실로 꽃피워야 한다는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을 받아안고보니 20여년전의 일이 되새겨져 숭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다.

주체68(1979)년 9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당시 황해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있던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도를 현지지도하시기 위해 평양을 떠나시였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안고 황주군으로 갔다.

그곳은 우리 도의 첫 입구였다.나와 도안의 몇몇 일군들이 이곳에서 기다리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황주군 신상협동농장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허리굽혀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모두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고나서 금물결 설레이는 논벼포전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다가 논에 들어서시여 잘 익은 벼이삭들을 만져보시면서 무슨 품종이며 비료를 얼마나 쳤는가를 알아보시였다.

군당책임일군으로부터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사를 잘 지은데 대하여 더없는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러신 그이께서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며 《여기로 오면서 보니 황해북도에 나무 한그루 없는 벌거숭이야산들이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나는 얼굴이 뜨거워오르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도안에는 나무가 없는 산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농업도라고 할수 있는 황해북도에서 농사를 잘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산과 들에 나무를 심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하게 관심을 돌리지 않았던것이다.

우리들의 이런 심정을 헤아려보신 그이께서는 동안을 두시였다가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황해북도에서는 전군중적운동으로 나무를 심어 벌거숭이산들을 하루빨리 없애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땅이 메마른 야산들에는 빨리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심는것이 좋다고, 아카시아나무를 심으면 벌을 놓아 꿀을 뜨고 잎은 집짐승먹이로 쓸수 있으며 땔나무와 부식토도 해결할수 있기때문에 좋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야산들에 아카시아나무를 심으면 좋은 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나서 아카시아나무는 씨를 뿌려도 되고 나무모를 길러 옮겨심어도 된다고 하시였다.

나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고서야 아카시아나무의 우월성과 재배방법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사실 나는 척박한 야산에는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러다보니 도안의 여러 군들에 벌거숭이산들이 많았지만 산림조성사업을 짜고들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참으로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황주군은 평양-개성사이의 도로를 끼고있기때문에 산에 나무를 더 많이 심어야 한다고, 아카시아나무림을 조성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모든 야산들에 아카시아나무가 우거지게 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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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를 헤치시며 수천리

주체107(2018)년 3월 3일 로동신문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은 낮이나 밤이나 인민들을 마음속에 안고 걸으신 은혜로운 사랑의 길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민위천은 장군님의 한생의 좌우명이였습니다.》

어느해 겨울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강도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네 도를 현지지도하고계신다는 소식에 접하고 어린애들처럼 기뻐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한켠으로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자강도 한끝에 있는 어느 한 광산의 광부들이였다.

그들은 어버이장군님을 일터에 모시는것을 더없는 소원으로 품어왔지만 광산으로 오는 길이 너무도 멀고 험한것으로 하여 자기들의 소망을 이룰수 없는 꿈으로만 여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아침 그들은 뜻밖의 일에 접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흰눈덮인 험한 령들을 넘어 광산을 찾으신것이였다.그날로 말하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평양으로 떠나신지 며칠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그런데 어쩌면 멀고 험한 여기까지 그리도 빨리 오실수 있단 말인가?!…

꿈 아닌 현실앞에서 광산사람들은 두눈을 비비고 또 비비였다.

자나깨나 뵙고싶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해빛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차에서 내리시는것을 뵈온 광산일군들은 《장군님! 이렇게 추운 날에 우리 광산로동계급을 찾아주시니 정말…》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광산지구에 들어서니 정신이 번쩍 든다고, 광산전경만 보아도 일군들과 로동자들이 많은 일을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일군들은 너무도 격동되여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오면 꼭 드리려고 했던 인사말도 미처 올리지 못하였다.그때 한 수행일군이 그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평양으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차를 돌려세우시여 이 머나먼 곳까지 오시였다고 알려주었다.

광산일군들의 가슴은 불덩이를 안은듯 달아올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격정에 싸인 광산일군들을 정답게 바라보시며 자신께서는 일을 많이 한 광산일군들과 로동계급이 보고싶어서 왔다고, 며칠전에 자강도에 왔다가 이 광산을 돌아보지 못하고 간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왔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광산이 조국의 최북단에 자리잡고있기때문에 한번 온다는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곳 로동계급이 기다릴것 같아 평양에서 다시 길을 돌려세워 왔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고맙습니다.우리가 도대체 뭐길래 그 멀고 험한 길을…》

광산의 일군들도, 동행한 일군들도 가슴을 들먹이였다.

무릇 인간은 정에 살며 그리움에 산다고 한다.하지만 나라의 령도자가 한 광산의 로동자들을 만나보시려 불같은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수천리 눈보라길을 되돌아온 이야기가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 새겨져있던가.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광산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이곳 로동계급의 영웅적위훈에 대하여 거듭 치하해주시고 친어버이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위대한 장군님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였다.그이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 눈물을 훔치며 따라서는 광산일군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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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민족전통을 빛내이시여

주체107(2018)년 3월 2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민족유산보호에 관한 사상리론을 지도적지침으로 틀어쥐고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에는 민족의 유구성과 우수성, 고상한 정신세계와 고유한 생활세태가 반영되여있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대를 이어 전해오는 가치있는 창조물들과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고 시대적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정책이다.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철저히 구현하며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기 위하여 민족문화와 예술, 민족풍습을 적극 장려하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뜨거운 인민사랑은 민속명절 정월대보름에도 깃들어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고 하시면서 조선엿을 내놓으시였다.그러시고는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과 같은 명절놀이에서뿐아니라 로동생활, 문화생활, 의식주생활, 도덕생활 등에서 우수하고 훌륭한 민속전통을 창조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창조한 민속전통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귀중한 민족적유산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일군들은 비로소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신것이 단순히 정월대보름날이라는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였음을 깨닫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성을 튼튼히 지켜내고 잘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생활에 맞지 않는것, 이색적인것 특히 부르죠아생활양식이 침습하는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이르시였다.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온 민속전통에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례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호와 특성이 반영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민속전통을 가지고있다는 높은 긍지를 간직하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성을 더욱 빛내여나가야 한다.

민속을 버리면 민족을 잃어버릴수 있다. …

일군들이 받은 충격은 참으로 컸다.

민속이 단순히 한 민족의 세태나 풍속이 아니라 거기에 바로 민족의 숨결과 넋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고유한 풍습과 발자취가 어려있기에 민속, 그것이 없으면 민족도 없다는 우리 장군님의 뜻깊은 교시는 민속전통고수의 고귀한 지침으로 일군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세상을 둘러보면 민속을 경시하고 버린탓에 민족성이 여지없이 짓밟히우고 사라져 민족적전통이란 말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문화전통을 대를 이어 찬란히 꽃피우고있는것이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내놓으시였던 조선엿, 이 하나의 민족음식에도 얼마나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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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푸른 숲은 숭고한 뜻 길이 전하리

주체107(2018)년 3월 1일 로동신문

 

식수절이 다가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새 조국건설을 령도하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모란봉에 오르시여 일제의 식민지통치로 상처입은 조국산천을 바라보시며 나무를 많이 심어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우거진 인민의 락원으로 전변시킬데 대한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신 때로부터 72돐이 되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면서 온 나라 천만군민은 올해에도 나무심기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을 하루빨리 황금산, 보물산으로 전변시킬 애국의 의지로 가슴 불태우고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후대들에게 벌거숭이산, 흙산을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10년안에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설레이는 보물산, 황금산으로 전변시키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이라고 하시면서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여야 하겠다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애국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천만군민이 산림복구전투에 산악같이 떨쳐나선 때로부터 어느덧 여러해가 되였다.

산림복구사업은 10년 앞을 내다보며 하여야 하는 장기적인 사업인것만큼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밀고나가야 한다고, 쟁개비끓듯 하여서는 산림복구사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없다고,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명언을 심장깊이 새기고 산림조성과 산림보호사업을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근기있게 밀고나가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에 아로새기고 전체 군대와 인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림으로써 국토의 면모는 크게 달라졌다.

그 나날 온 나라의 수림화, 원림화를 위한 투쟁을 진두지휘하시며 손수 나무들을 심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모습은 온 나라 천만군민의 가슴에 애국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리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뜨겁게 안겨온다.인민군대의 한 지휘부를 찾으시여 오늘은 해방직후 백두산3대장군들께서 몸소 모란봉에 오르시여 조국의 륭성발전과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식수사업의 첫 봉화를 지펴주신 력사적인 날인 동시에 우리 나라의 식수절이라고 하시면서 몸소 마련해가지고 오신 종비나무와 목련을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판과 어버이장군님의 현지지도표식비가 자리잡고있는 곳에 정성껏 심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날의 숭고한 모습이,

몇해전 중앙양묘장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오시였던 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중앙양묘장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푸른 숲 설레일 조국의 래일을 보는것만 같다고 그리도 기뻐하시던 장군님의 영상이 안겨온다고, 우리 장군님은 조국산천을 자신의 살점처럼 아끼고 사랑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라고 뜨겁게 뇌이신 우리 원수님이시다.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후복구건설시기 온 나라가 떨쳐나 재더미를 털고 일떠선것처럼 산림복구를 자연과의 전쟁으로 간주하고 전당, 전군, 전민이 총동원되여 산림복구전투를 벌리자고 절절하게 하시던 말씀 오늘도 조국강산에 메아리치는것만 같다.

중앙양묘장에 대한 현지지도이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강력한 산림복구전투지휘부를 조직해주시였으며 주체104(2015)년 2월 26일에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자》를 발표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로작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10년안에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설레이는 보물산, 황금산으로 전변시키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이라고 하시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는 은혜로운 사랑 -깊은 밤 수도의 거리를 달린 새형의 무궤도전차에 깃든 이야기-

주체107(2018)년 2월 27일 로동신문

 

지난 2월초 어느날 깊은 밤 수도의 거리로 한대의 무궤도전차가 전조등을 환히 켜고 달리기 시작하였다.시운전길에 나선 그 무궤도전차는 평양무궤도전차공장에서 생산한 새형의 무궤도전차였다.

무궤도전차의 고르로운 동음이 퍼져가는 밤거리는 고요하였다.집집의 창문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단잠에 들어있었다.

정녕 어느 누가 생각하였겠는가.바로 그 시각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새형의 무궤도전차를 타시고 거리를 달리실줄을!

평양무궤도전차공장에서 생산한 새형의 무궤도전차들로 말하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미 며칠전에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보아주신 차들이였다.

하지만 우리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이 리용할 무궤도전차에 미흡한 점이 있을세라 자신께서 타보아야 마음을 놓겠다고 하시며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늦은 밤 무궤도전차에 오르신것이였다.

더 좋은 무궤도전차를 더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문명한 교통조건을 마련해주시려 심혈을 기울이시는 우리 원수님의 로고의 자욱이 2월의 깊은 밤 수도의 거리에 소문없이 수놓아지고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언제나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최우선 보장하고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것은 우리 당활동의 절대적기준입니다.》

천리마거리를 지난 새형의 무궤도전차는 보통문을 돌아 개선문쪽으로 향하였다.무궤도전차의 환한 불빛은 그대로 인민을 위해 꺼질줄 모르는 당중앙의 불빛과도 같았다.

경애하는 원수님께 있어서 인민사랑은 고결한 천품이다.무엇을 하나 보시고 대하시여도 먼저 인민들을 생각하시고 인민들의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불철주야 로고를 바치시는 우리 원수님이시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진행된 새형의 무궤도전차시운전과정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단순한 시운전이 아니였다.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의 숭고한 모범, 위대한 귀감이 깊은 밤의 그 시운전길에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날 겉만 보아서는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수 없다고 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무궤도전차를 타고다닐 인민들의 립장에 서서 부족점이 없는가를 다같이 꼼꼼히 살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말그대로 인민들의 립장에 서시여 인민의 심정으로 타고가시면서 새형의 무궤도전차의 모든것에 대하여 세심히 관찰하시였다.

인민들에게 불편한 점이 하나라도 있을세라 의자너비도 가늠해보시고 차창의 가름대를 두고도 마음쓰시고 차안에 설치된 액정텔레비죤의 화면크기까지 알아보시며…

그러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수십년전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첫 무궤도전차의 시운전을 보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다시 뵈옵는것 같아서였다.

그럴수록 며칠전 평양무궤도전차공장을 찾으시였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혁명사적물보존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1961년 10월 10일에 보아주신 이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천리마 911》형 무궤도전차가 전시되여있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던 일이 뜨겁게 되새겨졌다.

참으로 감동깊은 사연을 안고있는 우리 나라의 무궤도전차들이다.

주체50(1961)년 10월 10일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한 첫 무궤도전차의 시운전을 진행한 날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장군님과 맺은 정 영원하리

주체107(2018)년 2월 24일 로동신문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이 심장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장군님과 맺은 정 피줄처럼 피줄처럼 지닌 마음

그 언제나 인민은 일편단심 당을 따라 일편단심

아 간직하리

위대한 장군님을 령도자로, 어버이로 모시고 따르며 걸어온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에 대한 성스러운 추억의 노래, 장군님을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충정의 노래인 《인민은 일편단심》,

부르면 부를수록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온 나라 천만군민이 그이의 전사, 제자로 자라난 나날을 사무치는 그리움속에 돌이켜보게 된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께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그이를 하늘처럼 믿고 살아왔다.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혁명의 머나먼 길을 헤쳐오는 그 나날에 우리 인민이 신념으로 간직하고 생명보다 귀중히 여긴것이 있다.

일편단심, 바로 그것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습니다.》

우리 인민의 일편단심은 곧 령도자와 맺은 혈연의 정이다.

인간관계는 인정관계라는 말이 있다.혈연의 정으로 맺어진 령도자와 인민간의 관계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뜨거운 관계이다.

피줄을 가를수 없고 부모와 자식간의 정을 끊을수 없듯이 그 무엇으로도 가를수 없고 깨뜨릴수도 없는것이 위대한 장군님과 우리 인민들사이에 맺어진 정이다.

이 땅에 생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중히 간직하고있고 목숨바쳐 지켜가는 그 뜨거운 혈연의 정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베풀어주신 육친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은 이민위천의 한생, 인민사랑의 한생이였다.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이라는 두 글자가 꽉 차있었으며 인민이 바란다면 하늘의 별도 따오고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것이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신 인민사랑의 뜻이고 의지였다.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펼치면 바다가 되고 쌓으면 하늘에 닿을 우리 장군님의 한생의 업적을 합치면 인민뿐이다.

한평생 인민을 마음속에 안고계신 우리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려볼 때면 어느해 양력설날이 떠오른다.

그날 아침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디엔가 금방 다녀오신듯 한 차림을 하고계시였다.

자신의 차림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마다 양력설이 되면 우리 인민들이 명절을 어떻게 쇠고있는지 생각이 많아지군 한다고, 일군들이 명절공급도 잘되고 명절을 즐겁게 보낼수 있도록 조직사업이 다 잘되였다고 보고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지금 시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나직한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마디마디에 넘치는 열화같은 애민의 정이 일군들모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식탁을 마주하시였다.

명절날이였지만 식탁에 오른 음식은 너무도 수수하고 소박하였다.

남새와 산나물을 꾸미로 얹은 강냉이국수…

일군들은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머리를 숙이였다.(전문 보기)

 


 

노래 《인민은 일편단심

 

[Korea Info]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 우리의것이 제일이라고 하시며

주체107(2018)년 2월 22일 로동신문

김 종 집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위인적풍모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서는 이미 출판물이나 방송을 통하여 수많이 소개되여 세상이 다 알고있습니다.하지만 저는 지난해 9월 우리 공장을 몸소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몸가까이 만나뵙고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으며 심장으로 느낀 몇가지 사실만은 꼭 사람들에게 알리고싶어 펜을 들게 되였습니다.

주체88(1999)년 9월 23일이였습니다.

한낮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곧 우리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을 찾아주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온 공장에 전해졌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여러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셨다는 소식에 접할 때마다 우리 공장에도 그이를 모셨으면 하고 간절히 소원하던 우리들이였지만 영광의 그 시각이 정말로 이렇게 올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황황히 정문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오후 1시 30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우리 공장 수자조종장치 수자분공장 함조립직장현관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중나온 도당의 책임일군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나의 손도 따뜻이 잡아주시였습니다.

《지배인동무입니까.수고합니다.》

잠시후 나에게서 공장의 실태를 초보적으로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서 공장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조립직장안으로 걸음을 옮기시였습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립직장을 환하게 꾸리고 조립대도 군대식으로 전개했다고 못내 기뻐하시였습니다.

이어 조립대앞에 다가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립중에 있는 제품들을 료해하시였습니다.

먼저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가정용전압조절기》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시며 이렇게 절체기를 두개 달아 부하를 절반씩 감소시키면 과저전압의 《침입》을 받아도 텔레비죤이나 랭동기들이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을것이라고 웃음담아 말씀하시였습니다.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찌나 통속적으로 소탈하게 말씀하시는지 나는 어느새 긴장해졌던 마음이 스스로 풀리는것을 느꼈습니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한 전기제품을 가리키시며 이건 처음 보는건데 어디에 쓰자고 만들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그이께서 물으시는 제품으로 말하면 《비상전원안전기》라는 전기용품이였는데 이것은 정전이 되는 경우 여기에 충전되였던 직류전원이 교류(220V)로 다시 변환되여 하던 작업을 원만하게 할수 있게 하는 사명을 수행하고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비상전원안전기〉를 공장자체로 연구하여 만들었다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것 같습니다.

병원수술장들에서 수술을 하는 도중에 정전이 되는 경우 이런 〈비상전원안전기〉가 있으면 수술을 계속할수 있을것입니다.모사전송기나 콤퓨터를 쓰는 단위들에도 이런것을 만들어주면 좋을것입니다.》

이어 외국에서 생산된다는 이 제품의 지속시간(불이 간 후 220V로 다시 방전되는 시간)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면 우리의것이 더 우월하지 않은가고, 비록 외형이 수입제처럼 매끈하지는 못해도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시며 더욱 기뻐하시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이께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두고 왜 그렇듯 기뻐하시는지 그 뜻을 다는 알수 없었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들속에서 :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놓을수 없다

주체107(2018)년 1월 30일 로동신문

김  대  홍

 

(전호에서 계속)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형편과 일부 구분대의 대렬상태와 몇몇 군관들의 사업작풍에 대하여 하나하나 일깨워주시고 매개 지휘관들이 령도예술을 더욱 높일데 대하여 강조하시고나서 련대군의장에게 환자치료정형과 특히 예방대책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당시 구분대가 새로 배치된 이곳에는 지형상으로 우물이 불편한 곳에 위치하고있었고 또 위생적으로도 좋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고 철관을 놓아 다른 곳에 있는 좋은 음료수를 끌어오게 할것을 지시하시며 철관이 있느냐고 물으시였다.

련대지휘관들은 이미전부터 음료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관을 구해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그이께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어디어디를 가보았소? 지금 우리 형편에서 왜 그런것쯤이야 해결 못하겠소라고 하시며 우리들이 철관을 구하러 다닌 곳을 하나하나 물으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많이들 수고했소.그런데 가보아야 할데는 안가보고 다른데만 다녔으니 헛수고만 많이 했소.앞으로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거든 당에 가서 반영시키시오.그래야 해결되오.어떻소? 동무들, 내 말을 알겠소?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앞에 앉아있는 동무들을 보시였다.

소대장 한 동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상동지.하나 물어도 좋습니까?》

《어서 말하오.》

우리모두의 시선은 그리로 쏠렸다.

《당에는 그런 물건이 없지 않습니까?》

소대장의 뜻밖의 질문에 너무도 놀라와서 우리는 모두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그이께서는 웃으시면서 부드럽게 그를 일깨워주시였다.

동무 말이 옳소.당은 경제기관도 아니고 더우기 창고도 아니니까 그런 물건이 없소.그러나 동무들이 알아야 할것은 당에 가서 애로를 말하면 당에서는 동무들이 그것을 해결할수 있도록 지도해주고 도와줄수 있소.왜 그런가? 그것은 동무들이 누구의 군대인가 하는데서부터 설명해보면 알수 있는것이요.…당은 바로 우리 혁명의 참모부이며 우리 인민군대는 당의 무력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가 당에 의해서 조직되였고 조선인민의 리익과 혁명의 성과를 보위하는 당의 혁명적무장력이라는데 대하여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는 전체 군관들의 얼굴마다에는 바로 자기들을 키워주고 승리에로 이끌어주는 당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과 감격의 빛이 어리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과 담화를 마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공화국북반부의 전체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은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지난해에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인민경제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빛나게 수행하였으며 지금은 금년도 인민경제계획을 초과수행하기 위한 증산투쟁을 과감히 전개하고있습니다.

해방직후 우리에게는 공장을 복구할 로동도구 하나 변변한것이 없었으며 인민들에게 줄 식량도 없었습니다.그러나 우리 인민들은 실망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주인이 된 기쁨을 안고 페허로 된 공장과 황페화된 농촌을 복구하기 위하여 모두다 떨쳐나섰습니다.우리 로동자들의 헌신적인 로력투쟁에 의하여 혹심하게 파괴되였던 황해제철소와 강선제강소를 비롯한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이 단기간에 복구되여 조업을 개시하였을뿐아니라 새로운 공장, 기업소들이 급속히 건설되고있습니다.지금 우리의 로동자들과 기술자들이 복구한 공장, 기업소의 기계설비들이 아주 잘 돌아가고있습니다.우리 농민들은 땅의 주인으로 된 감격을 안고 농사를 잘 지어 년년이 풍작을 이룩하고있습니다.

오늘 우리 인민들의 생활수준은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살 때보다는 하늘과 땅차이로 높아졌고 해방직후보다도 비할바없이 높아졌습니다.군인들의 생활도 부대조직초기에 비하여 훨씬 개선되였습니다.동무들이 처음 입대할 때만 하여도 나라의 경제형편이 너무 어려워 군인들에게 군복과 신발도 변변한것을 공급하지 못하였습니다.그때 동무들은 추운 겨울에도 홑옷을 입었고 신발도 변변한것을 신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군복도 좋은것을 입고 군화도 좋은것을 신고있습니다.

앞으로 공장, 기업소들이 완전히 복구건설되고 나라의 경제형편이 더 좋아지면 군인들의 생활은 더욱 개선될것입니다.

공화국북반부에서 해방후 불과 몇해사이에 오늘과 같은 큰 전진을 이룩할수 있은것은 당과 정부의 정책이 정당하였고 전체 인민이 단결하여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기때문입니다.

공화국북반부는 승승장구하고있지만 일제식민지통치에서 한날한시에 해방된 남반부의 형편은 날이 갈수록 더욱 험악해지고있습니다.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는 전체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상정시켜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조작하였으며 그 감시하에 지난 5월 10일에는 남조선에서 망국적인 단독선거를 실시하고 괴뢰정부를 조작하였습니다.남조선〈정권〉은 미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정권입니다.

오늘 남조선경제는 여지없이 파산되고있으며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여오르고 인민들의 생활은 도탄속에 빠지고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리승만역도를 사촉하여 우리의 민주기지를 말살하기 위한 갖은 흉계를 다 꾸미고있으며 전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광분하고있습니다.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이 땅에 제국주의가 있는 한 무기를 손에서 놓을수 없으며 더욱 억세게 틀어잡아야 합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들속에서 :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놓을수 없다

주체107(2018)년 1월 29일 로동신문

김  대  홍

 

(전호에서 계속)

그이께서는 건국실이 훈련소앞에 제기된 과업과 밀접히 결부되여 잘 운영되고있다고 치하하시였다.

그리고 부족점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주시였다.

《학생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키는데서 건국실을 잘 꾸리고 실속있게 운영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건국실은 회의도 하고 학습도 하며 문화사업도 하는 학생들의 훌륭한 교양장소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국실에 광복후 우리 인민이 이룩한 제반민주개혁의 성과와 인민경제발전에 대한 직관물이 적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건국실에는 우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용감히 싸운 우리 인민의 투쟁자료들을 많이 갖추어놓아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력사와 우리 인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우리 인민들의 애국적인 투쟁자료들도 알려주고 특히 항일무장투쟁시기 혁명선렬들이 피흘려 싸운 혁명전통자료들을 많이 알려주어 학생들을 참다운 애국주의와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며 항일혁명선렬들처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전사가 되도록 하여야 할것입니다.》

이렇듯 그이께서는 벌써 그때부터 우리 나라 혁명수행에서 나서는 문제에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당과 취사장에 들리시여 훈련생들의 식사정형을 살펴보시고 친히 밥과 국 그리고 찬맛을 보시면서 부식물보장정형을 료해하시고 식사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할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그러시고나서 사격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지휘처로 정한 천막주변에서는 각종 저격무기사수들과 포병들이 실탄사격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우리는 이날 보병총, 기관단총, 중기관총 등의 저격무기와 82mm박격포 실탄사격을 진행하게 되였다.

사격장은 그이를 모시고 실탄사격을 하게 된 기쁨으로 들끓었다.간부, 훈련생 할것없이 저마다 높은 성적을 쟁취함으로써 언제나 깊은 관심과 세심한 지도를 주신 그이의 기대에 보답하려는 결의로 충만되여있었다.

《모두들 기세가 좋군.다들 명중시킬 자신이 있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실탄사격을 앞두고 조준련습을 하고있는 동무들에게 이렇게 물으시였다.조준련습장에 있던 동무들은 모두 자세를 바로잡으며 잠시 머뭇거리였다.

《내가 오늘 시험치러 온게 아니요.동무들이 훈련을 잘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구경하러 온셈이니까 자신있게 해보시오.동무들이 백발백중하는 사격술을 소유했는가 한번 봅시다.》

그이께서 이렇게 훈련생들을 고무해주시자 《반드시 명중시키겠습니다.》라고 모두가 씩씩하게 대답올리였다.

《좋소, 그럼 어디 조준련습하는것부터 볼가.》라고 하시면서 그이께서는 조준련습동작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시였다.

그러시다가 그이께서는 한 동무의 총을 손에 잡으시고 몸소 조준동작을 하시며 모범을 보여주시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뜨거워옴을 억제할수 없었다.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도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어린 대원들을 살뜰히 가르쳐주셨고 투쟁의 첫걸음부터 그들이 적과 용감히 싸울수 있는 비상한 힘과 기량을 손수 키워주시였던것이다.

바로 그이께서 오늘은 광복된 조국에서 또다시 이렇듯 새 조선의 청년들을 몸소 가르치고 키워주시는것이였다.

훈련생들의 조준련습을 일일이 살펴보시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격을 잘하자면 원쑤들에 대한 높은 적개심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조준련습을 많이 하여야 하며 목표를 겨눌 때에는 바로 적과 마주섰다는 생각으로 심장이 불타야 합니다.동시에 자기 무기의 성능을 잘 알고 자신심을 가져야 합니다.그래야 한밤에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고 총을 잡으면 원쑤를 첫방부터 족쳐낼수 있고 올리막에 있는 목표나 내리막에 있는 목표, 이동목표, 야간목표나 안개속에서 소리만 들리는 음향목표도 영낙없이 소멸할수 있습니다.요행수로 맞힌다는 생각을 하여서는 안됩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들속에서 :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놓을수 없다

주체107(2018)년 1월 28일 로동신문

김  대  홍

 

오늘 우리 인민군대는 우리 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필승불패의 강유력한 혁명적무장력으로 장성강화되였다.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무장된 인민군군인들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능히 우리 당과 인민의 고귀한 사회주의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수호할수 있으며 어떠한 적들의 침공에 대해서도 제때에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할수 있는 필승의 신심과 투지로 충만되여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이룩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우리 인민군대는 정규군으로 강화발전된지 불과 몇년후인 청소한 시기에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과 그의 추종국가군대들의 침공을 영웅적으로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는 력사적승리를 달성하였으며 미제침략자들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산산이 짓부셔버렸다.

오늘 우리 인민군대는 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확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강유력한 혁명군대로 장성하였으며 조국의 방선을 그 어느때보다 굳건히 지키고있다.

우리 인민군대가 걸어온 빛나는 승리의 길을 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인민군대를 정규무력으로 꾸리시고 인민무력건설에서 제기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제때에 해결해주시였으며 지어는 매개 전사들의 생활상문제에 이르기까지 친히 보살펴주신데 대하여 언제나 감명깊이 생각하게 된다.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던 우리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조국에 돌아왔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당창건과 민주기지창설의 력사적과업을 해결하시는 한편 세계반동의 원흉인 미제침략자들이 일제를 대신하여 우리 조국의 절반땅인 남반부를 강점한 복잡한 정세에 대처하여 인민무력을 시급히 정규군으로 강화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벌써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일본군대, 헌병, 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을 천명하시였으며 광복후 그 구상을 실천에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5년 11월에 평양학원을 창설하시였고 뒤이어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창설하시였으며 여러곳에 보안간부훈련소를 세우시였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과 그의 주구들의 민족분렬정책을 보고만 있을수 없으며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손에서 무기를 놓을수 없습니다.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더 튼튼히 틀어잡아야 합니다.우리는 어느 누가 우리를 독립시켜주며 군대를 조직하여주기를 바라고있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운명을 자기 손에 튼튼히 틀어쥐고 자기가 주인으로 되는 완전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하여 언제든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창설하실 당시에 하신 말씀이다.

조국이 광복은 되였으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것인가 갈피를 못 잡고있을 때 각지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은 종파분자들은 혁명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할바없이 파쟁에만 몰두하고있었다.바로 이러한 때 그이께서는 우리 혁명의 앞길을 멀리 내다보시고 이처럼 정규적인 인민무력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시키시였던것이다.

이때 나는 보안간부훈련소 제1분소에서 사업하고있었다.

어제날 로동자, 농민, 학생이였던 청년들이 조국보위의 커다란 포부와 애국심을 안고 첫기에 700여명이나 자원하여 우리 훈련소를 찾아왔다.그들은 저마다 도착하는 길로 훈련소건설사업에 앞을 다투어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것을 빈터우에서 새로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가 패주할 때 파괴한 낡은 건물을 수리하여 훈련생들이 들수 있는 침실, 식당, 건국실을 꾸려야 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인원을 받아들여 훈련을 진행할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훈련소건설에 전력을 다했으나 작업은 뜻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던 1946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훈련소건설장을 친히 찾아오시였다.

그이를 맞이하게 된 나의 감회는 전에 없이 새로왔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민들속에서 :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주체106(2017)년 11월 1일 로동신문

김금산

 

전후 자그마한 농기계공장으로 발족한 우리 공장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오늘은 대규모적인 뜨락또르공장으로 발전하였다.

몇년전만 하여도 인력탈곡기와 축력제초기 등 중소농기계들을 소규모적으로 만들고있던 우리 공장에 오늘은 1년에 수천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할수 있는 고성능특수기계들과 현대적인 전문설비들이 갖추어졌으며 뜨락또르의 주요한 생산공정이 자동화, 반자동화되였다.

이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75hp대형무한궤도뜨락또르까지 척척 만들어내게 되였다.

나는 이처럼 변모된 우리 공장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전후시기에만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러차례나 찾아오시여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공장의 발전전망을 밝혀주시던 일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된다.

특히 그이께서 안겨주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간직하고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던 때를 영원히 잊을수 없다.

우리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첫 뜨락또르생산에 궐기한것은 1958년 10월이였다.

당시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로력이 가장 많이 드는 운반작업과 밭갈이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하여 뜨락또르와 같은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강냉이탈곡기와 같은 중소농기계들을 만들어내는데 불과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공장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뜨락또르를 만들데 대한 영예롭고도 무거운 임무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자리를 같이하시고 당시 나라의 형편과 앞날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주시면서 뜨락또르생산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여주시였다.

《우리는 이미 농촌에서 사회주의협동화를 완성하였지만 아직도 농업은 급속히 발전하는 공업에 비하여 기술적으로 멀리 뒤떨어져있습니다.우리는 앞으로 농촌에 뜨락또르를 비롯한 현대적농기계를 많이 만들어보내줌으로써 모든 농사일을 기계로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만들어 보내주면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할수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서 농민들이 운반작업을 대부분 등짐으로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농촌에서 락후한 영농방법을 퇴치하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로부터 제초, 추수, 탈곡에 이르는 모든 영농작업과 운반작업을 뜨락또르로 하게 하려고 합니다.그렇게 되면 우리 농민들이 농사일을 헐하고 흥겹게 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보내주자면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합니다.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농촌기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으며 외화도 많이 절약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뜨락또르를 한해에 3, 000대씩 수입하는것으로 보아도 3만대를 수입하자면 10년은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처음에 수입한 뜨락또르가 못쓰게 된다는것을 고려하면 10년이 걸려도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필요한 뜨락또르를 보장하기 곤난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있던 우리들은 나라의 형편이 뜨락또르를 절실히 요구하고 당이 그 길을 가리킨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자체로 뜨락또르를 생산하고야말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졌다.

믿음에 찬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것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수 있습니다.우리가 뜨락또르를 제힘으로 만들어야 기술도 발전하지 남의것을 사다쓰기만 하면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든다는것은 우리 나라 기술혁명에서 큰 발전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헤여지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을 믿습니다.나는 동무들이 당이 제시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반드시 성과적으로 수행하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우리들은 그이께서 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회의실에 모여앉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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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혁명의 요구라면 못해낼 일이 없다

주체106(2017)년 8월 7일 로동신문

송승필

 

동만의 각 현에 창설된 유격근거지가 날로 확대강화됨에 따라 이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1933년 봄부터 동만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을 대대적으로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내가 있던 연길현 유격근거지에도 달려들었다.유격대앞에는 간고한 시련이 닥쳐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에 기초하여 부대지휘부에서는 달려드는 적들을 격파하기 위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였다.

11월 어느날, 우리 병기창성원들은 지휘부로부터 100개의 작탄을 3일동안에 만들라는 긴급한 지시를 받았다.

작탄은 적들의 《토벌》을 분쇄하기 위한 작전에 긴급히 필요하였다.그런데 이것은 당시 우리 병기창의 형편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였다.

적들의 《토벌》로 인하여 약간의 재료와 불비한 도구마저 연화동 수림속에 파묻은채 사방대로 옮겨온 직후였으므로 우리가 있는 이곳에는 무기를 수리할수 있는 약간한 도구외에 한개의 쇠쪼각, 한오리의 철사, 한그람의 화약도 없었으며 일할만 한 장소도 미처 마련하지 못하고있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100개의 작탄을 3일동안에 만들어낼것인가?》

모든것이 구비된 조건에서 만든다 해도 제 기일을 보장하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항차 적들의 눈을 피해가며 도구를 가져와야 했고 재료들을 마련해야 하였으니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혁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란 없다.혁명의 요구라면 없는것은 만들어내고 부족한것은 얻어내여서 필요한 모든것은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손발이 움직이고 심장이 고동치는 한 맡겨진 과업을 실천하자.)

우리 병기창성원들은 저마다 이런 결의를 다졌다.

혁명임무를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토론하던 끝에 우리는 재료와 도구들을 해결하기 위한 두가지 방도를 강구해냈다.

우선 적들의 경계를 뚫고 연화동 수림속에 가서 우리가 파묻어놓고온 재료와 도구들을 가져오는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부족되는 재료를 보충하기 위해서 적통치구역에 내려가 쇠쪼각들과 염산성분이 들어있는 흙을 파오는 일이였다.우리는 각기 임무를 분담해가지고 즉시 길을 떠났다.

그때 나는 몇명의 동지들과 함께 연화동 수림속에 파묻어놓은 재료와 도구들을 가지러 가게 되였다.

날이 저물 때에 길을 떠난 우리는 바위도 얼어터질듯 한 추위를 무릅쓰고 어두운 수림속의 생눈길을 헤치며 밤새껏 걸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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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유격대부부살림집》에 깃든 이야기

주체106(2017)년 7월 14일 로동신문

강위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백두산시절 부부인연을 맺은 우리(나와 김확실)들에게 돌려주신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회상실기 《그이의 품속에서 꽃펴난 사랑》에 상세히 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우리 유격대부부에게 더욱더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안겨주시였다.

전번에 다 쓰지 못한 그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여기에 더 적는다.

횡산밀영에서 확실동무를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한 후 겨울군복을 만드는 재봉대동무들을 도와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곰의골밀영으로 돌아온 나는 그이께 임무수행정형을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보고를 받으시고 수고하였다고 치하하신 다음 동무에게 또 한가지 어려운 과업을 맡겨야겠다고 하시면서 집을 지을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을 짓되 빨리 지으며 지금까지 짓던 집들보다 더 훌륭한 집을 지어야겠다고 강조하시였다.

뜻밖의 과업이였지만 나는 선자리에서 힘있게 말씀드리였다.

《알았습니다.사령관동지! 귀틀집을 몇채 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과업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고싶었던 나는 그이께서 특별히 맡겨주시는 과업을 수행하게 된것이 무등 기쁘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만족해하시며 대원 몇사람을 붙여줄테니 래일부터 일에 착수하라고 하시였다.

영예로운 임무를 받은 나는 다음날부터 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이께서 정해주신 《명당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동무들, 우리가 짓는 집은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과업을 주시여 짓는것인데 사소한 부족점도 없도록 알뜰하면서도 춥지 않게 정성을 다해 잘 지읍시다.》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동무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그것은 나자신의 결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걱정도 없지 않았다.어랑촌유격근거지와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그리고 교하원정의 나날에 많은 귀틀집을 지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특별히 잘 지으라고 하신 집을 그전날의 례사로운 집들처럼 지을수는 없기때문이였다.

돌이켜보면 그전에 내가 지은 귀틀집들은 벽이 통나무를 그대로 무은것이여서 어둡고 우둥퉁한것이 결함이였다.나는 절대로 그런 집을 지어드릴수 없다고 생각하였다.같은 귀틀집이지만 해도 잘 들고 아늑하면서도 정갈한 집을 지어드리고싶었다.나는 동무들과 토론을 거듭하였다.지혜를 합치니 좋은 방도가 나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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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잊지 못할 5.1절 -림 춘 추-

주체106(2017)년 5월 1일 로동신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1940년의 5.1절을 안도현 처창즈부근 밀림속에서 맞이하던 때였다.

우리들은 근 10년간을 두고 전세계로동계급의 명절인 5.1절을 간고한 무장투쟁을 하는 속에서 기념하면서도 간혹 유격대식《연회》를 베푼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날에 굶어본적은 없었다.다른 5.1절은 나의 기억에서 희미하나 1940년 5.1절의 이날만은 나의 기억속에서 항상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의 5.1절은 식량과 소금마저 떨어진 어려운 형편에서 맞이하였다.

지봉손동무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자기 배낭에 조금 남겨두었던 반근가량의 강냉이를 들추어내여 군용밥통에 넣고 푹 퍼지도록 끓였다.물을 많이 두고 실컷 퍼지도록 끓였으나 퍼지는것도 일정한 한도가 있으니만큼 극상하여 모두 한사발밖에 되지 않았다.지봉손동무는 우선 김일성동지께서 식사하시기를 권하였다.대원들은 그래도 강냉이알을 다문 몇알씩이나마 나누어먹었으나 그이께서만은 조금도 드시지 않으셨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병들어 앓는 동무들도 있는데 그 동무들에게 나누어주시오.나야 성한 몸이 아니요.》라고 하시면서 끝내 사양하시였다.

당시 우리 부대내에는 김홍수동무를 비롯하여 나어린 5명의 환자들이 있었다.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사랑에 감복되여 굳이 사양하면서 그이께서 잡수시여야 한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어찌할수는 없었다.김홍수동무와 다른 환자들은 그 강냉이 한사발을 나눠먹고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오래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던 끝이라 강냉이알이 효력을 발생한 그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병마를 이겨내게 한것이였다.

일제놈들의 정찰기는 우리 유격대의 종적을 찾으려고 매일과 같이 미친듯이 떠돌았고 적지상부대의 2중3중의 포위속에서 곤난이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특히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조건에서 여러날을 굶어오면서 임무를 수행한다는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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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그는 사령관동지의 의지와 신념으로 싸웠다 (권영벽동지를 회상하여)

주체106(2017)년 3월 20일 로동신문

황금옥

 

나는 수도 평양의 거리를 거닐 때마다 혁명가요를 부르며 행진하는 천리마기수들과 용감하고 슬기로운 우리 인민군전사들의 대렬을 보고는 그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벅찬 감격에 잠기군 한다.

 

동무들아 준비하라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이 노래와 함께 나의 눈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백두준령을 주름잡아 넘나들며 적을 섬멸하던 항일유격대의 용감한 전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그리고 오늘의 이 행복을 위하여 귀중한 청춘을 혁명에 바쳐싸운 수많은 전우들의 목소리를 나는 지금도 듣는듯 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이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혁명투쟁에 자기의 고귀한 생애를 바친 권영벽동지의 모습과 함께 그의 목소리를 듣는것 같다.

《…우리들의 심장뿐만 아니요.전체 조선사람들의 심장마다에 김일성장군님의 존함을 간직하고있는 이 나라 금수강산에 그 어떠한 원쑤도 영원히 발을 붙일수 없소.일제놈들은 반드시 망하고 우리는 꼭 승리할것이요.자, 보오.조국땅이 얼마나 아름답소.장군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루속히 일제놈들을 쳐물리치고 저 조국땅을 우리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오.》

이 말은 권영벽동지가 1937년 5월말 보천보전투직전에 우리가 사업하던 장백현 17도구 뒤등에 있는 보리밭에서 김을 매다가 쉬는 참에 조국의 산천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조국, 조국땅,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말인가! 우리 유격대원들은 조국땅의 한줌의 흙, 한포기의 풀을 가슴에 품고다니며 고난속에서도 행복을 느꼈다.

권영벽동지는 혁명투쟁에 나선 그날부터 자기의 생애를 마치는 순간까지 조국과 사령관동지께 무한히 충직하였다.

《나를 낳아준것은 어머니이고 혁명투쟁에서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준 사령관동지는 나의 스승이며 어버이이시다.나는 일편단심 사령관동지께 충성을 다하리라.》

권영벽동지는 자기의 수첩에 적혀있는 이 말과 같이 조국과 혁명에 대해 충성을 다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모든 사업을 수행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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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 인민들이 지키는 질서는 우리도 지켜야 한다고 하시며

주체106(2017)년 2월 22일 로동신문

림길선

 

평양시의 어느 한 번화한 길가에 제가 일하는 연유공급소가 자리잡고있습니다.

키낮은 4대의 휘발유공급기와 자그마한 건물 한채, 나지막한 꽃벽돌울타리에 둘러싸인 우리 연유공급소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일하는 혁명초소를 더없이 사랑하며 여기에서 보람찬 삶의 기쁨을 활짝 꽃피워나가고있습니다.

제가 일터를 그토록 사랑하게 되는것은 맡은 사업이 중요하다거나 사회생활의 첫꿈을 키워온 정든 곳이라는데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도 후세에 길이 전해야 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거룩한 자욱이 뜨겁게 아로새겨져있기때문입니다.

주체61(1972)년 10월 17일이였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일을 보고있었습니다.이날따라 웬일인지 연유를 공급받으러 온 차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구내가 복잡하였습니다.그래서 저는 머리쉼을 하고 조용할 때 일을 보려고 밖에 나섰습니다.구내에는 싱그러운 들국화가 한창이였습니다.

제가 구내에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앞문쪽에서 자동차경적소리가 나더니 까만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서는것이였습니다.

《아니, 저 차가…》

저는 그 자리에 무춤 멈춰섰습니다.휘발유를 넣으러 오는 차들은 반드시 뒤문으로 들어와서 앞문으로 나가는것이 모든 연유공급소들에 세워진 하나의 질서인데 그 차만이 류별나게 앞문으로 들어서기때문이였습니다.저는 자동차운전사에게 말해서 차를 뒤문으로 뽑게 하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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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기념사진속의 제작소이름

주체105(2016)년 9월 2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현대적으로 개건확장된 평양자라공장을 찾으신것은 궂은비내리던 지난 7월 5일이였다.

불과 1년동안에 희한하게 천지개벽된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자라를 먹이시려고 마음쓰신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수 있게 되였다고,정말 보람있는 일을 또 하나 해놓았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그이의 환한 미소에 궂은 날씨이지만 공장안팎이 다 환해지는것만 같아 동행한 일군들도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주저앉았던 공장을 세상에 보란듯이 일떠세우시기 위하여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고 개건형성안도 몸소 지도해주시며 일년내내 크나큰 심혈을 기울여오시였건만 오히려 당에서 정해준 시간에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공장을 변모시킨 군인건설자들과 과학자들의 수고부터 먼저 헤아려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달아올랐다.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공장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더없이 기뻐하신 곳이 있었다.무인먹이공급기가 있는 실내자라양식장이였다.

자라의 생육조건에 맞게 꾸려진 양식장안은 그저 서있기만 해도 땀이 철철 흐를 정도로 몹시 덥고 습하고 어두웠다.

그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현장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대뜸 무인먹이공급기를 알아보시고 그앞으로 다가가시였다.《국가과학원 111호제작소》라는 붉은 글자들이 큼직하게 새겨져있는 그 무인먹이공급기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우리 과학자들이 충정의 70일전투기간에 개발하여 우리 나라 양식업에 처음으로 도입한 현대적인 설비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못내 만족하시여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그이께서 제작소일군으로부터 무인먹이공급기에 대한 해설도,군인건설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는 이야기도 다정히 들어주시는데 어느덧 무인먹이공급기가 동작하며 양식못들에 먹이를 주기 시작하였다.마치 눈이라도 달린듯 장애물까지 피해가며 자동적으로 먹이를 주는 모양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일군들도 참 신기하다고 연방 탄성을 올리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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