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갈피에서 : 전쟁을 몰아온 타협정책

주체107(2018)년 10월 19일 로동신문

 

인류력사에서 가장 참담한 비극을 빚어낸 뮨헨협정의 체결은 대국으로 자처하는 나라들이 파쑈도이췰란드의 침략행위를 부채질한 만고의 죄악으로 력사에 기록되여있다.

뮨헨협정은 영국수상 쳄벌렌의 타협정책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승리자가 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막심하였다.때를 같이하여 도이췰란드에서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세계지배를 주장하면서 전쟁준비에 미쳐날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아픔을 체험한 유럽은 1930년대에 와서 새 전쟁의 위험이 닥쳐오자 그것을 피해보려고 모지름을 썼다.1937년 5월 영국의 수상으로 된 쳄벌렌은 온화한 외교정책 즉 타협정책을 실시하였다.그는 도이췰란드의 요구만 만족시켜주면 전쟁을 능히 막을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쳄벌렌은 내각과 국회내에 있던 반대파의 주장을 무시하고 측근을 도이췰란드로 파견하여 히틀러에게 도이췰란드가 《볼쉐비크를 반대하는 서방의 장벽》이라고 올려추어주도록 하였다.그의 말을 통해 히틀러는 영국이 도이췰란드의 중유럽침략을 반대하지 않을것이며 프랑스도 영국의 지지가 없이 도이췰란드와 싸우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히틀러는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게 되자 1938년 3월 11일 거리낌없이 오스트리아로 진격하였다.이틀후에는 오스트리아를 자기의 동방주로 선포하였다.4월초에 영국은 오스트리아주재 대사관을 철수시키고 대신 윈주재 령사관을 설치하였다.이것은 사실상 도이췰란드의 오스트리아병탄을 승인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타협적인 태도에 의해 오스트리아를 쉽게 손에 넣은 파쑈도이췰란드의 야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이번에는 침략목표를 체스꼬슬로벤스꼬(당시)로 정하고 슈제트지방의 자치를 요구하였다.

당시 슈제트지방에는 게르만족사람들이 많이 살고있었다.히틀러는 이것을 구실로 앞에서는 슈제트지방의 자치를 요구하고 뒤에서는 슈제트에 대한 진공작전계획을 짜놓고있었다.

쳄벌렌은 침략열로 들뜬 히틀러를 달래기 위해 또다시 타협의 길을 택하였다.

1938년 9월 중순 그는 히틀러에게 서로 마주앉아 평화적해결방법을 모색하자고 지급전문을 날리고 직접 히틀러를 찾아갔다.하지만 쳄벌렌의 고달픈 도이췰란드행각은 헛수고로 되고말았다.

히틀러는 쳄벌렌과의 회담에서 슈제트지방의 자치가 아니라 아예 그것을 도이췰란드에 넘길것을 강요하였다.그에 굴복한 쳄벌렌은 프랑스와 함께 체스꼬슬로벤스꼬정부를 위협하여 항복을 받아낸 다음 다시 도이췰란드로 날아가 히틀러에게 영국과 프랑스가 도이췰란드와 체스꼬슬로벤스꼬의 새 국경을 보증한다고 말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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