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오직 혁명밖에, 일밖에 모르는 참된 일군 -청진바다가양식사업소 지배인 영예군인 서일권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0(2021)년 6월 9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예군인이다.성스러운 조국보위의 길에서 피흘린 영예군인의 불편한 몸으로 그는 지난 수십년간 당이 맡겨준 혁명초소들에서 지혜와 정력을 깡그리 바치였다.

당의 믿음속에 청진바다가양식사업소 지배인으로 사업한 지난 7년간에도 그는 완강한 투지와 이신작칙의 헌신적노력으로 빈터나 다름없던 사업소의 물질기술적토대를 그쯘히 갖추어놓았으며 종업원들을 사랑과 정으로 묶어세워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신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아픔을 불굴의 신념과 강의한 의지로 이겨내면서 당의 방침을 결사관철하기 위해 혼심을 다 바친 불굴의 인간,

당에 대한 충성심은 어떻게 불타야 하고 참된 애국이란 어떤것인가를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준 서일권동무,

얼마전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닌 그의 모습은 인간의 삶이 무엇으로 아름답고 빛나는것인가를 다시금 가슴뜨겁게 새겨보게 한다.

 

변치 않는 신념의 길에서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7월 어느날, 저녁노을이 물든 군항의 부두가에서 이윽토록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한 젊은 병사가 있었다.

처절썩, 처절썩-

끝없이 울리는 정든 파도소리도 그의 얼굴에 비낀 어두운 빛을 가셔주지 못했고 가슴속번뇌를 씻어주지 못했다.

(정녕 군복을 벗어야 한단 말인가?)

그가 바로 21살의 서일권동무였다.조선인민군 해군 갑판장을 하던 그는 좌초된 배를 구원하던중 다리에 뜻하지 않게 심한 부상을 당하여 더는 군사복무를 할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뇌리에 언듯언듯 떠올랐다.군복을 입고 고향을 떠나던 날 자기의 손을 꼭 잡으며 지휘관들의 말을 잘 듣고 군사복무를 잘하라고 거듭거듭 당부하던 전쟁로병인 아버지는 서일권동무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라가 있어야 가정도 있고 우리의 앞날도 있다.이제는 네 차례다.귀중한 조국을 목숨바쳐 지켜야 한다.》

그 당부를 가슴에 새겨안고 조국의 안녕을 지켜 조국보위초소에서 남먼저 장쾌한 해돋이를 맞을 때의 심정을 그 어디에 비길수 있으랴.

정말이지 병사생활의 하루하루는 한생에 잊지 못할 나날이였다.그런데 이제 더는 초소에 설수 없게 되였다는것으로 하여 서일권동무의 괴로움은 그토록 큰것이였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을 지탱하기조차 힘들것 같았다.

바로 그때 이런 엄엄한 목소리가 그의 귀전을 울렸다.

《갑판장동무, 어디 가나 잊지 마시오.동무는 군인선서를 한 군인이였다는것을.》

방금전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부대지휘관이 한 말이였다.

군인선서, 순간 서일권동무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군기앞에서 다진 맹세의 구절구절이 되새겨졌다.그의 눈가에 붉게 물든 군항의 저녁노을이 새삼스레 비껴들었다.

붉은 노을처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한생을 아낌없이 불태울 신념과 의지가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자리잡았다.

그는 자신에게 스스로 명령하였다.

갑판장 서일권, 군사복무는 끝나지 않았다.비록 영예군인이 되였지만 언제나 화선병사의 그 모습, 그 기백을 잃지 말라.

그것은 그의 심장의 목소리, 추호도 변치 않을 그의 신념이였다.

서일권동무는 제대후 어느 한 영예군인공장에서 일하게 되였다.무슨 일이나 맡겨주면 불이 일게 해제끼는 높은 책임성과 성실성으로 하여 그는 늘 종업원들의 존경을 받았다.

어느날 한창 작업에 열중해있던 그는 곁에 서있는 공장일군을 뒤늦게야 알아보았다.대견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서일권동무에게 일이 힘들지 않은가, 상한 다리는 어떤가 등을 일일이 물어보고난 일군은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자리를 떴다.

서일권동무는 의아한 눈길로 멀어져가는 일군을 보았다.의문은 며칠후에야 풀렸다.

당시 공장에서 오래동안 일하던 자재인수원이 나이가 되여 집에 들어가게 되였는데 그를 대신할만 한 사람이 없어 일군들이 마음을 쓰고있었던것이다.서일권동무에게 맡기고싶었지만 영예군인인 그가 출장이 잦은 인수원일을 꽤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주춤거렸던것이다.

서일권동무는 일군들을 찾아가 자기에게 자재인수원일을 맡겨줄것을 제기하였다.쉽게 결심을 내릴수 없어하는 일군들에게 그는 말했다.

《전 어느 한순간도 내가 군복을 벗었다고 생각한적이 없습니다.병사의 그 정신도 살아있습니다.어서 명령을 주십시오.》

빈말이 아니였다.

항상 의약품을 가지고다니면서 자체로 상처를 처치하군 하면서도 그는 언제 한번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사람들이 몸도 불편한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권고할 때마다 《마음이 앓지 않으면 그만입니다.》라고 흔연히 대답하였다.

공장일군들도 종업원들도 이런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어깨를 들이대는 그의 성미는 그후 여러 초소에서 일할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렀을 때 그는 끝내 한쪽다리를 절단하게 되였다.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비관하거나 락심하는 빛이 없었다.의족을 한 그는 완강한 의지로 걸음련습을 부지런히 하여 보통사람이나 다름없이 걷게 되였다.

그가 청진바다가양식사업소 지배인으로 갓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였다.

몇달동안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진행되여온 한 건물의 기초굴착과 콩크리트치기, 축조작업이 끝나고 층막콩크리트치기가 마감단계에서 진행되고있던 어느날이였다.한쪽에서 혼합물을 이기기 바쁘게 다른 쪽에서 그것을 부리나케 운반하는 작업장은 말그대로 불도가니였다.그속에는 지배인도 있었다.

그날 먼길을 달리며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여 자동차에 싣고 금방 돌아온 몸이였지만 그달음으로 작업장에 뛰여든 지배인이였다.

그는 종업원들과 어울려 맞들이로 혼합물운반을 하였다.한 로동자가 불편한 몸인데 좀 쉬라고 앞을 막아서자 서일권동무는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우리 내기를 하자구.누가 더 많이 나르는가 경쟁하잔 말이요.》

종업원들은 사기가 부쩍 올랐다.서로 경쟁적으로 일손을 다그치는 작업장에서 누가 지배인이고 누가 로동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드디여 층막작업이 단 몇시간만에 결속되였다.

건축공사를 단숨에 해제낀 보람으로 종업원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넘쳤다.

《어떻소, 동무들.이런 기세면 얼마 안있어 우리 사업소가 동해기슭에서 소리치며 일어서게 될게 아니겠소.》

이렇게 말하는 지배인의 주위에 둘러섰던 종업원들은 한순간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때에야 지배인이 의족을 한 영예군인이라는것을 되새기게 되였던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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