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교육정책을 깨끗한 량심과 무한한 헌신으로 받든 참된 애국자들 -천리마시대 교원들의 정신세계를 새기며-

주체110(2021)년 6월 30일 로동신문

 

우리 나라 교육부문에서 첫 로력영웅들이 배출된 때로부터 어느덧 60년세월이 흘렀다.

교원영웅, 참으로 긍지높은 부름이다.천리마시대는 평범한 근로인민의 아들딸들을 교원혁명가로, 로력영웅으로, 애국자로 키워 조국앞에 긍지높이 내세워주었다.

천리마시대 교육자들은 조국과 혁명앞에 가로놓인 준엄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부름에 수천수만의 훌륭한 혁명인재를 키워 내세우는것으로써 화답하였다.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진응원, 길확실, 리신자와 같은 천리마기수들이 기치를 들고나갈 때 김수복, 강영숙, 림영균, 렴경재를 비롯한 교육부문의 천리마선구자들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구호를 실생활에 철저히 구현하면서 후대교육사업에 심혼을 바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교원들은 누가 알아주건말건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노력으로 한생을 바쳐 교육초소를 지켜가는 참다운 애국자,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합니다.》

천리마시대 교육자들은 높은 정치실무적자질을 지니는것을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개조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뿐만아니라 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학생들의 교육교양에 오만공수를 들이고 뼈심을 들이였다.

전후에 최우등생, 모범학생대렬을 늘이는 사업을 적극 벌리여 교육부문에서 천리마작업반운동의 기치를 남먼저 들었던 2중로력영웅이며 인민교원인 김수복동지가 발휘한 공산주의적소행은 오늘도 새 세대 교육자들이 따라배워야 할 귀감으로 되고있다.

주체50(1961)년 2월 1일부 《로동신문》에는 김수복교원의 교육사업성과를 소개한 기사 《오직 후대들을 위하여》가 실리였다.

《…인민교원양성소를 나오기는 했지만 정작 교편을 잡고보니 막히는 문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어느 과목도 들여다보면 내용은 환한데 교수안을 작성하자고보면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제딴에는 많이 궁리하고 교단에 올라섰는데 교수는 뜻대로 되지 않아 수업이 끝난 후면 늘 마음이 허전하였다.…》

처음부터 완성된 교원이란 없는것이다.전쟁이 끝난 후 교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김수복교원의 실무적자질은 미숙한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그가 그로부터 7년후 천리마시대가 낳은 첫 교원영웅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학교에 찾아오시여 년한이 어린 교원들을 모두 훌륭한 교육자로 키워야 한다고 간곡하게 하신 당부를 심장깊이 새기고 교육학과 심리학에 정통한 교원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다.

그의 학급에는 성적이 락후한 여러명의 학생들이 있었다.그는 학생들을 모두 나라의 기둥감들로 훌륭히 키우기 위해 교육자가 되기 전에 먼저 학생들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학생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들의 학습과 생활을 따뜻이 돌보아주었고 학부형들에게 부족점이 있으면 그들을 만나 해설과 설복을 꾸준히 하면서 한사람한사람 개조해나갔다.교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면서 자기 손으로 무려 5 500여점의 교편물을 만들었으며 소학교학생들에 대한 우수한 교육방법, 교양방법을 창조하여 널리 일반화하였다.한 학생의 가정생활에 애로가 있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매일과 같이 이른새벽 그 학생의 집을 찾아가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면서 그의 학습과 생활을 따뜻이 돌보아주었다.

그의 완강한 노력은 드디여 결실을 보고야말았다.그가 담임한 학급학생전원이 최우등생으로 자라난것이다.

그는 분과의 교원들도 교양개조하여 그들모두가 맡은 학급학생들을 최우등, 우등생으로 키워낼수 있게 하였으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구호가 교육실천에 더욱 철저히 구현될수 있게 하였다.그리하여 그의 분과는 교육부문에서 처음으로 천리마작업반칭호를 쟁취하는 영예를 지니였다.

이렇듯 자기자신에게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면서 부단히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전진 또 전진한것은 천리마시대 교육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수 있는 완강한 혁명가적기질이였다.

천리마대고조시기 온 나라에 최우등학급의 봉화를 지펴올린 교원들가운데는 로력영웅인 강영숙동지도 있다.

전쟁시기에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교단에 서고싶은 남다른 희망을 안고 교원대렬에 들어섰다.그는 사범전문학교를 통신으로 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전후에는 교원대학에 입학하여 통신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였다.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세 자식을 키우는 속에서도 평양사범대학(지금의 김형직사범대학)의 통신연구원을 다니면서 자질을 끊임없이 높여나갔다.

1960년대초 가정부인들로 무어진 1학년분과의 한 성원이 된 그는 천리마작업반칭호쟁취운동에 궐기해나섰다.

강영숙교원은 지능계발이 더딘 한 학생을 위해 수첩을 만들고 거기에 그 학생을 위한 개별진도표와 지도안을 짜넣었으며 눈병을 앓는 학생을 위해 방학기간에 병원들과 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학생이 눈병을 고칠수 있게 하였다.하여 그는 학급학생전원을 최우등생으로 키웠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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