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발휘된 8.15인민유격대원들의 고결한 정신세계-

주체110(2021)년 9월 7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해방후 처음으로 자기 조국의 품속에서 공장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되여 사람다운 생활과 참다운 행복을 체험한 우리 인민들은 조국이야말로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며 조국을 찾아주신 수령님의 은덕에 한목숨바쳐 보답하는것이 응당한 도리라는것을 가슴깊이 자각하고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희생적으로 투쟁하였습니다.》

며칠전 우리는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찾았다.

한목숨바쳐 공화국을 지키고 길이 빛내인 영웅들의 넋이 깃든 렬사묘를 돌아보던 우리는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8.15인민유격대 대장으로 싸운 공화국영웅 리기형동지의 묘비앞에 여러 사람이 그린듯이 서있었던것이다.알고보니 영웅의 세 자식이였다.

그들은 해마다 전승절과 공화국창건기념일을 비롯한 뜻깊은 날을 앞두고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를 찾군 한다고, 그럴 때면 아버지가 생전에 들려주군 하던 8.15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이야기가 떠오르고 우리 공화국을 대를 이어 굳건히 지키고 빛내여야 한다고 절절히 당부하던 목소리도 들려오는듯싶다고 감회깊은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취재수첩에 그대로 옮겼다.

그것은 리기형동지의 인생담인 동시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로 조직된 8.15인민유격대의 별처럼 빛나는 투쟁의 행적이였다.

 

가자,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해방직후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왜냐하면 8.15인민유격대의 대부분 대원들이 남조선에서 서울법정학교를 다니다가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 극적인 운명전환을 한 청년들이였기때문이다.

그들이 저주로운 남조선땅을 박차고 군사분계선을 넘은것은 해방된 이듬해였다.

해방은 되였으나 남조선을 강점한 침략자들은 민족반역자들과 야합하여 인민들의 총의에 의하여 세워진 인민정권기관들을 강제로 해산하였으며 참다운 배움을 갈망하는 청년학생들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섰다.

해방된 제 나라, 제땅에서 마음껏 공부하고싶어하던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서울법정학교도 원쑤들의 야수적폭거로 하여 강제로 페쇄되였다.

리기형동지를 비롯한 서울법정학교의 학생들은 이에 항거하여 원쑤들과 용감히 맞서싸웠지만 놈들의 총칼앞에서 숱한 피만 흘리고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그들에게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조선의 첫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세워주시고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을 공부시켜주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가자, 북으로, 김일성장군님의 품으로!》

그들은 이렇게 웨치며 모임을 가지고 평양에 새로 건립되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기 위하여 어버이수령님께 청원을 올리기로 결정하고 두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떠나보냈다.

학우들의 절절한 당부를 안고 평양으로 찾아왔던 한 대표는 후날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대표로 지목된 저와 한 교원은 적들의 감시를 뚫고 38゜선을 넘어 1946년 8월 30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청사에서 꿈결에도 그리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습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저희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서울법정학교에서 쫓겨난 학생들이 고뇌와 번민, 울분과 한탄속에 모대기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학교까지 페쇄한단 말인가고 하시며 법정학교 학생들을 종합대학에 받아들여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자고 하시였습니다.

저도 울고 함께 왔던 교원도 눈물을 삼켰습니다.》

사선을 넘어온 대표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친필존함이 새겨진 신임장과 함께 서울법정학교 학생들을 김일성종합대학에 취학시킨다는 문건을 안겨주도록 하시고 서울로 돌아가는 학생대표를 위해 기관차까지 따로 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돌려주신 사랑을 안고 돌아온 학생대표를 맞이한 리기형동지를 비롯한 법정학교 학생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참을수 없어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메여 부르고 또 불렀다.

이렇게 되여 서울법정학교의 90여명 학생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평양에 도착한 그들을 친히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법정학교 학생들이 드디여 왔다고, 기다렸다고 하시며 반가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동무들이 자기 소원대로 북반부에 들어와 마음껏 공부하게 되였으니 공부를 잘해서 새 조국건설의 훌륭한 역군이 되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후 이전날의 서울법정학교 학생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사랑속에 꿈같은 학창시절을 보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나라사정이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그들에게 장학금을 선참으로 보내주시고 교복과 내의류, 교과서와 생활필수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료로 공급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명절날이면 사랑어린 선물을 보내주시고 해마다 매 학생들의 생일상까지 차려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들이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2년후 공화국이 창건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우리의 국기가 창공높이 휘날릴 때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며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조국이 없어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다.자식들만이라도 공부시켜보겠다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며 피타게 뒤바라지를 하던 부모들의 모습이며 눈물겨운 고학의 나날들도 떠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속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자기들의 희망을 마음껏 꽃피워온 학창시절은 그 얼마나 긍지스럽고 보람찼던가.

그들은 휘날리는 공화국기를 숭엄하게 바라보며 참다운 조국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며 그 품에 안길 때만이 배움의 희망도 삶도 꽃피울수 있다는것을 심장깊이 절감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몇해후 자기들이 목숨보다 귀중한 조국,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지켜 원쑤들과의 판가리결사전에 나서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전문 보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으로 열렬히 탄원하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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