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필요한 사람 -사회보장을 받은 몸으로 농업근로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농기구를 창안제작한 평원군 읍 211인민반 박영진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11월 3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농사를 해본 사람들은 심층시비라는 말이 귀에 설지 않을것이다.그것은 심층시비가 알곡소출을 높이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기때문이다.하지만 심층시비는 품이 많이 드는것으로 하여 어려운 농산작업의 하나로 되여있었다.

이것을 간편한 농기구로 해결한 사람이 있다.농민들이 안타까이 해결을 바라던 농기구, 어디서나 호평을 받는 능률높은 부압식논벼심층시비기를 만든 사람은 평원군 읍 211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박영진동무이다.

우리는 오늘 박영진동무가 그 하나의 농기구를 위해 사회보장자의 몸으로 10여년을 어떻게 고심분투하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그의 고결한 정신세계와 애국적이며 헌신적인 모습을 통하여 조국에 필요한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한다.

 

나는 로동당의 아들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평원군농기계작업소에서 4.15기술혁신돌격대 대장으로 사업하던 박영진동무는 뜻밖의 일로 몸을 상하고 사회보장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창 일할 40대의 나이에 사회보장을 받게 된 그는 정신적허탈상태에서 모대기였다.창밖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하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차디찬 서리가 내리고있었다.

이전에는 정답게 들려오던 생활의 모든 음향이 그의 심장을 아프게 허비였다.작업장에 메아리치던 힘찬 동음, 농장벌을 향해 달려가는 뜨락또르들의 경쾌한 발동소리…

벅차게 흘러가던 생활의 한복판에서 밀려났다는 괴로움으로 그의 가슴은 찢기는듯 아팠다.침상에 누워있는 박영진동무의 심중에 지나온 나날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어린시절 그는 나라앞에 떳떳치 못한 아버지문제로 하여 많은 마음속고충을 겪었다.동무들이 아버지자랑을 할 때면 그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군 하였다.나라앞에 떳떳치 못한 아버지의 일을 동무들이 알가봐 은근히 겁이 났던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당은 이러한 그를 차별하지 않고 남들과 꼭같이 걸음걸음 따뜻이 보살펴주었다.

남달리 향학열이 높고 학업성적이 뛰여났던 그는 고등중학교(당시)를 졸업하고 수도의 어느한 대학에서 입학시험을 치게 되였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아파나던 배가 끝내 말썽을 일으켰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픔은 더해만갔다.그의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흘러내렸다.그래도 시험을 끝까지 치르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입술을 사려물고 펜을 놀리였다.시험을 다 끝내고 안도의 숨을 내쉬던 박영진동무는 외마디소리를 내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병원침대에서였다.의료일군들은 조금만 지체되였어도 큰일날번 했다며 혀를 찼다.그때부터 박영진동무가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병원의 호실로는 대학일군들과 교원들이 자주 면회를 왔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면회를 오는것을 보면 환자의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같다는 간호원들의 속삭임을 들을 때마다 그는 모포를 머리우로 끌어올리군 했다.그리고는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대학사업을 료해하기 위해 나왔던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모진 아픔을 참아가며 마지막까지 시험을 잘 치른 수험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왔다.

정말 용타고 등을 두드려주는 일군앞에서 박영진동무는 머리를 수그린채 속마음을 터놓았다.

《사실 저의 아버지는… 나라앞에 죄를…》

말끝을 흐리는 그를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던 일군은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알고있소.그러나 너무 마음쓰지 마오.동무는 로동당의 아들이요.당은 동무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줄것이요.》

일군의 목소리가 그의 심장을 쿵쿵 울리였다.

얼마나 은혜로운 품속에 내가 안겨사는것인가.나의 아버지는 조선로동당이다.

이런 격정을 안고 박영진동무는 일군에게 물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일 걱정하시는 문제가 무엇인가고.

그의 말뜻을 대뜸 알아차린 일군은 심중한 기색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전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농사일이 걱정되시여 평안남북도의 여러 농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소.》

일군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박영진동무의 입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저를 농업대학에서 공부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되여 박영진동무는 농업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였다.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3대혁명소조원이 되여 현실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푸는데 적극 기여하였으며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지니였다.

입당하던 날 당원증을 가슴에 꼭 품어안고 성스러운 붉은 당기를 우러르며 박영진동무는 심장의 맹세를 다지였다.

나는 로동당의 아들이다.나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는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위업을 받들어 모든것을 바치리라.

그후 평원군농기계작업소에 배치된 그는 4.15기술혁신돌격대 대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농기계작업소일군들은 한가지 일이라도 더 기계화하고 농민들의 로동을 조금이라도 더 헐하게 하기 위하여 계속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명심하고 박영진동무는 농촌기술혁명수행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였다.

농기계들을 수리하는 과정에 피스톤가락지를 가공하는것이 절실한 문제로 제기된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지구장비를 쓰지 않고 할수 있는 간단한 몇가지 피스톤가락지가공방법을 연구도입하여 국가에 적지 않은 리익을 주었다.그가 연구완성한 가공방법은 전국적으로 진행된 과학기술축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군에서 중소형발전소들을 건설할 때였다.발전소운영에 필요한 설비제작과 설치작업을 책임지고 진행하느라 박영진동무는 늘 현장에서 살다싶이 하였다.그러다나니 가정일에는 전혀 낯을 돌리지 못하고있었다.그런데 하루는 군당책임일군이 그를 승용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하였다.

군당책임일군의 기색이 얼마나 근엄했던지 박영진동무는 어디로 가는가고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승용차가 도착한것은 뜻밖에도 자기 집앞이였다.그제서야 군당책임일군은 발전설비들을 다루느라 험해진 박영진동무의 손을 꼭 잡고 자책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며칠전에 동무의 집에 왔댔는데 가책이 컸소.세대주의 손이 가야 할 곳이 많더구만.동무와 같은 기술자들을 아껴야 한다고 말로만 외웠지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오.며칠동안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푹 쉬오.》

멀어져가는 군당책임일군을 젖은 눈길로 바래우고 집안에 들어서던 박영진동무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갖가지 새 생활용품들과 식량이며 부식물들이 놓여있었던것이다.

아이들에게 새옷을 입혀보던 안해가 눈을 슴벅이며 사연을 알려주었다.군당일군들이 집도 손질해주고 건강에 좋은 보약재들도 마련해주었으며 이렇게 많은 물자들도 가져다주었다는것이였다.

새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는 자식들을 꼭 껴안은 박영진동무의 얼굴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따뜻한 마음, 다심한 손길이 있었기에 지금껏 자기가 보람찬 인생길을 걸어올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따사로운 당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해갈 일념이 가슴속에 더욱 굳게 자리잡았다.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느라니 자신이 이렇게 날개 부러진 새처럼 사회보장이라는 그늘밑에 묻혀있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였다.

나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의 은덕에 보답하지 못하였는데 나라의 혜택이나 받으며 업혀살다니, 그러면 나는 영영 불효자식이 되고만다.충성의 맹세로 시작되고 그 맹세를 실천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는것이 당원의 인생이다.

그렇다면 로동당의 전사, 로동당의 아들인 박영진이 이제부터 할 일은 무엇인가.

충성과 의리라는 전사의 숭고한 자각으로 가슴을 끓이며 박영진동무는 사회보장자라는 육체적조건을 완강히 부정하고 억척같이 일어섰다.

심장이 고동치고 팔다리가 움직이는한 투쟁의 대오에서 물러설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마음속신들메를 굳게 조여맸다.영원히 로동당의 아들로 참된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변함없는 공민의 의무

 

《4.15기술혁신돌격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과학자들과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 기능공들이 과학기술혁명수행에서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을 더욱 높이 발양할것을 바라시여 지어주신 이름이다.

이런 영예로운 돌격대의 한 성원으로 변함없이 살고싶어 박영진동무는 자기가 리용하던 수첩에 이런 글을 새겨넣었다.

《나는 비록 사회보장을 받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이 나라의 공민이며 4.15기술혁신돌격대의 대원이다.공민으로서, 돌격대원으로서의 나의 임무는 무엇인가.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에 필요한 일, 보탬이 되는 일을 스스로 찾아하는것이다.》

불굴의 인생을 살자면 뚜렷한 목표와 함께 완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장기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속에서도 박영진동무는 나라의 농업발전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는 문제를 삶의 목표로 내세우고 사색을 이어나갔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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