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혁명일화 : 몸소 세여보신 벼이삭알수

2025년 3월 11일《로동신문》

 

륭성번영하는 인민의 제일락원을 일떠세우시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혁명령도의 길에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무수한 일화들이 아로새겨지고있다.이제 우리가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도 그런 감동깊은 사실들중의 하나이다.

이 땅우에 풍요한 가을이 어떻게 오고 대지가 무겁도록 펼쳐진 황금벼바다가 무엇을 전하며 파도쳐 설레이는가를 말해주는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들이 천으로, 만으로 엮어져 우리 농업의 비약적인 발전기가 씌여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전선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입니다.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여야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고 사회주의강국을 성과적으로 건설할수 있습니다.》

2024년 8월 25일, 정오를 금방 넘긴 한낮이였다.성천군을 떠나 찌는듯한 무더위에 달아오른 철길을 따라 평양으로 달리는 렬차가 있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신 전용렬차였다.전날부터 련 이틀째 여러 지방공업공장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먼 후날에 가서도 손색이 없게 시공의 질적수준을 제고하도록 거듭 당부하시고 우리당 지방발전정책에 필수3대건설과제를 추가할데 대한 새로운 중대결단도 천명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이였다.

이제 온 나라 인민들이 또 얼마나 커다란 환희에 휩싸이겠는가 하는 생각에 흥분을 금치 못하면서도 일군들은 그 거창한 결실들을 안아오시기 위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지금보다 두배, 세배가 넘는 중하를 더 걸머지셔야 한다는 사실앞에 마음 무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렬차안에서만이라도 잠시나마 쉬시였으면…)

이런 간절한 마음이 누구의 가슴에서나 세차게 고패치고있었다.허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 시각에도 수행한 일군들에게 여러 부문 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고계시였다.

렬차가 한창 기운차게 달리고있을 때였다.차창으로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전야가 련이어 펼쳐지고있었다.하늘의 변덕을 끝끝내 이겨낸 벼이삭들이 탐스럽게 여물어가는 광경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문득 일군들에게 렬차를 멈춰세우고 철길옆 논에서 벼이삭 몇대를 가져올데 대하여 이르시였다.잠시의 휴식도 없이 늘 깊은 심혈을 기울이시는 농사문제에로 또다시 사색의 세계를 이으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이삭이 여물어가는 논밭옆을 지나실 때마다 길을 멈추시고 농사작황을 료해하신적은 이미 여러 차례나 되였다.어느해인가 함경북도인민들에게 대규모온실농장을 일떠세워주시려 현지로 가시던 길에 달리던 전용렬차를 세우시고 탐스러운 이삭들이 달린 강냉이포기를 통채로 가져오도록 하시여 농사작황을 료해하시였고 또 언젠가는 양덕군에 대한 현지지도길을 이어가시다가 도로옆에 펼쳐진 논의 벼이삭을 손수 드시고 그 알수와 무게를 가늠해보신적도 있었다.련포온실농장 준공식장으로 가시던 길에 차를 세우시고 일군들과 함께 어느한 농장포전의 벼이삭알수를 친히 세여보시던 못잊을 사연, 침수피해를 받은 안변군과 안석간석지의 벼생육상태를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력사에 불멸할 헌신의 자욱을 새기시던 그날의 화폭…

격정없이 돌이켜볼수 없는 만단사연들을 되새겨보며 논에서 뽑은 벼이삭들을 렬차로 가져온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벼알들을 세여보라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얼마후 이삭당 벼알이 보통 150알이상이고 지어 200알이 넘는 이삭들도 있다는 일군들의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해마다 이렇게 나라의 모든 지역들에서 농사가 잘되면 식량문제를 반드시 풀수 있다는 확신을 피력하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도 싱글벙글 기쁨에 겨운 웃음을 피워올렸다.

이윽고 다시 출발한 렬차가 속력을 내며 얼마간 달리였을 때였다.

차창으로 흘러가는 어느한 논에 시선을 보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여기가 침수피해를 받았던 논이 아닌가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의 눈길은 일제히 차창밖으로 향하였다.그러고보니 벼이삭까지 큰물에 잠기였던 흔적이 눈에 띄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침수피해를 받은 이곳 논의 벼작황도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렬차를 다시 멈춰세우도록 하시였다.이미 속력을 내며 달리고있던지라 적지 않은 거리를 지나서야 멈춰선 렬차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가리키신 논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후진하기 시작하였다.일군들은 가슴이 후더워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농사문제를 두고 얼마나 마음을 깊이 쓰시였으면 련거퍼 두번이나 달리던 렬차를 멈춰세우시랴.)

잠시후 렬차에서 내린 일군들은 논에 들어가 벼이삭을 몇대씩 뽑아가지고 돌아왔다.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벼이삭들을 잠시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벼이삭알수가 얼마나 되는가 세여보자고 하시면서 한 일군으로부터 벼이삭을 넘겨받으시였다.

여기저기에서 입속으로 벼이삭알수를 세여보는 수행일군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애로운 시선으로 전사들의 모습을 일별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도 나직한 음성으로 손에 드신 벼이삭의 알수를 세여보시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사실 한이삭에 달린 벼알이라야 다해서 손 한줌에도 차기 힘든것이다.그러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거기에서 헤아려보시는것은 결코 벼알수와 무게만이 아니였다.

바로 그 한알한알의 벼알을 세여보시면서 그이께서는 이제 온 한해 인민들이 마주할 살림살이형편을 심중에 그려보시고 알곡생산목표의 수행여부가 인민경제전반에 미치게 될 영향까지 가늠해보시는것이였다.

문건의 글줄이 아닌 실체로써 그이께서는 농사문제해결을 위해 책정, 포치한 사업들의 집행정형을 자상히 헤아리시고 앞으로의 일감들도 예단성있게 구상하시는것이였다.

어느덧 일군들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저저마다 자기들이 세여본 벼이삭알수를 말씀올리였다.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이삭당 벼알수는 평균 140~150알이였다.

물에 잠겼던 논치고는 벼의 생육상태가 생각했던것보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러르며 일군들모두가 다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이제 태풍피해만 없으면 되겠는데라고 나직이 뇌이시는 총비서동지의 절절한 음성이 일군들의 귀전에 들려왔다.

순간 일군들은 온몸을 휩싸안는 세찬 격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온 한해 농사문제때문에 바치신 로고가 그 얼마인데 황금이삭 무르익는 이 계절까지 근심을 못놓으시고 이처럼 크나큰 심혈을 바치신단 말입니까.)

농사준비로부터 영농물자보장사업, 전국가적힘을 농사에 총집중하는 문제와 관개체계완비문제, 농기계생산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료해하시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몸소 취해주신 강력한 조치들과 아로새기신 불멸의 자욱들은 얼마이고 가물이 들세라, 큰물이 질세라 봄내여름내 무거운 근심을 안으시고 보내신 낮과 밤들은 그 얼마였던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기울이시는 끝없는 사색과 심혈이 정녕 해빛이 되고 자양이 되고 그 어떤 광풍에도 끄떡없는 버팀목이 되여 온 나라 전야에 황금이삭 설레이는 가을이 오고있는것 아니던가.

몇명 안되는 수행일군들밖에 알수 없는 이 감동깊은 사연을 이름모를 농장포전에 남기고 렬차는 다시금 출발하였다.

차창밖으로 멀어져가는 포전을 바라보는 일군들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불같은 웨침이 끝없이 울리고있었다.

노래소리 가득 넘치는 흥겨운 풍년분배장에 서게 될 때, 풍성한 식탁에 마주앉아 즐거운 웃음꽃을 피울 때마다 사람들이여, 부디 가슴깊이 간직하시라.

온 나라 인민의 행복을 가꾸어주시려 일년사시절 어느 하루, 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얼마나 크나큰 로고를 바쳐가고계시는가를.

진정 이 나라 대지에 무겁게 맺힐 황금벼이삭들을 다 세여볼수는 있을지언정 영원히 다 헤아리지 못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위대한 헌신의 세계속에서 우리 농업발전의 휘황한 새 력사가 펼쳐지고 인민이 누려갈 문명부유한 새 생활, 새 행복이 앞당겨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행복한 설날

2025년 3월 10일《로동신문》

 

후대들의 행복과 밝은 웃음을 위해 크나큰 로고와 심혈을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열화같은 사랑에 떠받들려 이 땅우에는 얼마나 많고많은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태여나고있는것인가.

그가운데는 2024년 설날의 이야기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이 하늘처럼 받드는 인민앞에, 인민우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온 나라가 새해를 맞이한 기쁨으로 설레이던 2024년 1월 1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학생소년들의 설맞이공연을 보아주시기 위하여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 나오시였다.

차에서 내리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화려하게 단장된 궁전정문으로 걸음을 옮기실 때였다.

한 일군이 긴장한 얼굴빛으로 그이께로 급히 달려왔다.

일군으로부터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주변나라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파로 하여 발생한 해일이 함경북도를 비롯한 우리 나라 동해안지구로 북상해올것으로 예견된다는 보고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다른 한 일군에게 즉시 해당 기관에 태풍과 관련한 예보자료는 없는가를 빨리 알아볼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나서 설맞이공연관람을 위해 궁전에 나온 간부들을 모두 자신의 곁으로 부르시였다.

뒤이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지도밑에 격식없는 협의회가 열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협의회에서 자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모든 선전 및 통신수단을 동원하여 주의경보를 발령할데 대한 문제, 일군들이 자기 초소들을 차지하고 만반의 대응책을 갖출데 대한 문제…

협의회를 마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상황을 알아보아야겠다고 하시며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향하시였다.일군들도 서둘러 그이를 따라섰다.

그런데 경애하는 그이께서 문득 걸음을 멈추시는것이였다.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아이들의 설맞이공연을 보아주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대하여 아쉬운 심정을 터놓으시며 다음날에 보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물으시였다.

닥쳐오는 지진해일에 온 정신이 쏠려있던 일군들은 그이의 물으심에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뒤미처 한 일군이 그이께 정중히 말씀올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래일이라도 설맞이공연을 보아주시면 아이들이 좋아할것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올리였지만 새해 정초부터 쉬지 못하시고 인민들의 생명안전을 위해 크나큰 심혈을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천만로고가 가슴뜨겁게 사무쳐와 일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였다.

그러는 그에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어서 들어가서 아이들이 울지 않도록 하라고, 설맞이공연을 다음날 꼭 보아주겠다고 정담아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뜨거웠다.

자연의 광란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급박한 순간에조차 아이들의 심정을 깊이 헤아리시여 사랑의 약속을 남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우리 아이들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정을 그대로 안고 일군은 궁전안으로 들어가 웬일인가 하여 눈이 초롱초롱해진 아이들과 궁전 지도교원들에게 경애하는 그이께서 남기신 정깊은 말씀을 정중히 전달하였다.

하지만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린 영광과 행복의 시각을 순간에 놓쳐버린것만 같은 아쉬움과 안타까움, 나라일에 바쁘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정녕 한자리에 모실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학생소년들은 두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치였다.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 새해의 두번째 날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아이들도,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궁전 지도교원들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남기신 사랑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새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하나둘 단잠에 들기 시작하던 그때 너무도 꿈만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궁전으로 나오신다는것이 아닌가.

삽시에 궁전안은 크나큰 격정과 흥분으로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새날을 앞둔 깊은 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아이들의 설맞이공연을 꼭 보아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 또다시 나오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영접나온 일군들에게 설날부터 아이들의 설맞이공연을 미루면 국가사업전반이 밀리는것같아 이렇게 밤이 깊었지만 다시 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새해 첫날의 밤하늘가에 메아리치는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들으며 일군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국가의 중대사로 바쁘신 속에서 설맞이공연을 다음날에 꼭 보아주겠다는 약속을 하여주신것만도 가슴뜨거운데 손꼽아 기다릴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시여 그밤으로 또다시 궁전에 나오시였으니 세상에 이처럼 자애로운분이 또 어데 계시랴.

이런 생각으로 일군들은 경애하는 그이를 숭엄히 우러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온 하루 자신께서 바치신 로고와 심혈은 모두 잊으신듯 시종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아이들에게 온갖 사랑과 축복을 다 안겨주시였다.

온 나라 소년단원들의 마음을 담아 정중히 설인사를 올리는 학생들을 한품에 다정히 안아 육친의 사랑과 정을 부어주시고 학생소년들의 기량발표회를 보시면서는 그들에게 여러번이나 따뜻이 손을 저어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원형홀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있는 학생소년들의 모습을 한동안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신 그이께서는 이어 과학환상모형들이 전시되여있는 곳에 들어서시였다.

친아버지와도 같으신 그이께 아이들은 저저마다 자기가 만든 모형들에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들의 설명을 들으시며 모두 기특하고 용타고 치하해주시였다.

이윽하여 특출한 미술적재능을 지닌 학생들이 있는 곳에 들어서신 그이께서 한 소학교학생이 그린 참대를 보아주실 때였다.

참대를 멋있게 그렸다고, 재간은 재간이라고 하시는 그이의 값높은 칭찬을 받아안은 꼬마가 문득 당돌하게 나서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씀드리는것이 아닌가.

《이 그림을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께 드리고싶습니다.》

순간 일군들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나어린 학생의 무랍없는 청을 허물하지 않으시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기특하다고, 그림을 자신께서 가져가겠다고 정깊게 말씀하시였다.

친부모의 심정으로 모범적인 소년단원들의 지덕체자랑도 하나하나 들어주시고 학습과 소년단생활도 잘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그들의 창창한 앞날을 축복해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계속하여 학생소년들의 설맞이공연을 보아주시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강대한 내 조국을 떠받드는 소년혁명가, 소년애국자로 억세게 자라나는 학생소년들의 행복한 생활이 펼쳐지고 그들의 충성의 결의가 분출되는 공연을 보시며 종목이 바뀔 때마다 제일 선참으로 박수를 보내주시였다.

공연이 끝나자 학생소년들은 자애로운 아버지를 우러러 목청껏 만세의 환호성을 올리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설맞이공연에 참가한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무대로 향하시였다.

순간 설맞이공연무대에는 학생소년들의 세찬 흥분으로 하여 크나큰 격정과 환희의 바다가 물결쳤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너무 좋아 두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의 손도 잡아주시고 볼도 다독여주시며 그들의 공연성과를 거듭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자애로운 아버지와 자식들간의 혈연의 정이 최대로 분출하는 력사의 순간이였다.

그 순간을 영원히 멈춰세우고싶은듯 아이들은 삽시에 그이께로 달려가 너도나도 안겨들었다.

《아버지원수님, 뵙고싶었습니다! 정말 뵙고싶었습니다!》라고 아뢰이며 그이의 옷자락에 매여달린 아이들.

정녕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화폭이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념촬영을 할 시각이 왔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천여명이나 되는 공연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할수 있게 관람석에 자리를 잡자면 시간이 퍼그나 걸리는것이였다.

자정이 훨씬 지나도록 너무도 많은 시간을 바쳐가시는 그이의 로고가 걱정되여 일군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정깊게 바라보시며 그들이 자리를 다 잡을 때까지 무대에서 오래도록 기다려주시였다.

천만중하를 한몸에 걸머지시고 불철주야 로고를 바쳐가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대해같은 사랑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이렇게 되여 설맞이공연에 참가한 아이들은 2024년 새해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첫 기념촬영을 하는 행운아들로 되였다.

기념촬영이 끝나자 장내에는 아이들이 부르는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졌다.

한생토록 잊지 못할 영광의 순간을 맞이한 아이들의 행복넘친 노래소리를 들으며 일군들이 뜨거운것을 삼키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장내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늘 설맞이모임에 나와 조국의 미래로 씩씩하게 자라나고있는 학생소년들의 밝은 모습을 보니 힘이 솟습니다.》

나라앞에 위기가 조성되였던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사랑의 약속을 남기시고 그 약속을 지켜주시려 깊은 밤 또다시 사랑의 자욱을 새기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진정 그이께 있어서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래소리는 무궁무진한 혁명열, 애국열을 북돋아주는 가장 큰 힘이며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기쁨이였다.

온 나라 인민들이 격정속에, 눈물속에 받아본 2024년 1월 2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설맞이공연소식에는 공연참가자들도, 그들의 부모들도 미처 다 알지 못한 이런 감동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이 세상 가장 위대하신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과 천만로고속에 마련된 2024년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설날,

이날에 꽃펴난 이야기는 우리 조국의 미래가 얼마나 위대한 사랑과 헌신에 떠받들려있고 어떤 힘에 의해 무궁창창한것인가를 깊이 새겨주며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장군님의 인민관

2025년 2월 13일《로동신문》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한생을 빛내이신 절세의 위인

 

2002년 5월 1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5.1절에 즈음하여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를 방문하시고 인민군장병들을 축하하신 소식은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이미 알려졌다.

명절의 하루를 군인들과 함께 보내시며 전사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며 우리 인민은 누구나 가슴뜨거움을 금치 못하였다.하지만 그날의 현지시찰의 길에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믿음으로 빛나는 위대한 인민의 어버이의 위인상이 얼마나 뜨겁게 비꼈는가를 사람들은 다는 모를것이다.

감동깊은 그 사연을 우리는 아래에 전한다.

그날 시찰을 마치신 우리 장군님께서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해군사령부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관람하시였다.

뜻깊은 5.1절날 꿈결에도 뵙고싶던 어버이장군님을 모시고 공연을 하게 된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은 크나큰 영광과 행복으로 가슴들먹이며 자기들이 준비한 종목들을 무대에 펼치였다.

합창 《자랑하세 천하제일명장》으로 시작된 공연의 작품마다에는 위대한 선군령장의 슬하에서 《제2의 선군나팔수》로 자라난 군인가족들의 사상정신세계가 그대로 어려있었다.

수령절대숭배의 열정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수령결사옹위정신, 조국수호정신, 창조와 혁신의 정신이 나래치는 종목들을 보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먼저 박수를 보내주시며 훌륭하다고, 정말 잘한다고 거듭 치하도 해주시고 때로는 깊은 추억의 세계에 잠기기도 하시였다.

장내에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와 감격의 파도가 세차게 일렁이는 가운데 공연은 고조를 이루어 설화와 합창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가 무대에 올랐다.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 우리 인민과 군인들이 위대한 장군님만을 그리며 심장으로 터친 노래, 불사의 힘을 주고 용맹을 준 신념의 노래였다.

절절하게 울리는 노래를 들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깊은 추억의 세계에 잠기시였다.

력사에 있어본적 없는 고난과 시련의 언덕을 넘고 헤쳐온 선군장정의 길에서 직접 체험하신 우리 인민과 군인들의 진정이 가슴사무치게 안겨와 장군님의 안광에는 후더운 빛이 어리였다.

선군장정의 길에서 류다른 인연을 맺으신 다박솔초소의 군인들과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리던 감나무중대의 녀병사들, 눈물을 뿌리며 위험한 배길로 제발 오시지 말아달라고 웨치던 초도의 전사들과 아스라한 절벽길을 톺아오르시여 만나신 오성산의 초병들 그리고 자신의 찬 손을 잡고 너무 무리하지 마시라고 목메여 아뢰던 한 녀강사의 모습이며 배고프지 않은가고 물으시면 오히려 일감을 더 달라고 하던 자강도의 로동계급…

그 잊을수 없는 충직한 인민의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장군님의 사색은 깊어만지였다.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불사신의 우리 인민과 군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고 령도자는 인민과 군대를 믿고 인민과 군대는 오로지 령도자만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만난을 뚫고 승리해온 7년세월의 그 만단사연이 다 회억되시여 격정을 누르지 못하시는 장군님의 눈가는 뜨겁게 젖어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도, 노래를 마음속으로 따라부르는 관람자들도 선군혁명천만리길에서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시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자욱자욱이 어려와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마냥 일편단심 어버이장군님만을 믿고 그이의 선군령도따라 혁명을 끝까지 하려는 우리 인민과 군인들의 불굴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생동하게 보여준 그날의 공연은 최고사령부와 군인가족, 최고사령관과 장병들, 령도자와 인민사이에 혈연적뉴대로 굳게 맺어진 혼연일체가 얼마나 위력하고 진실한가를 다시금 힘있게 과시하였다.

공연이 끝난 후 밖으로 나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연을 정말 잘한다고, 공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씀하시였다.

공연에서 받은 감동이 너무도 강렬하여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윽고 수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동무들, 보시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바로 이런 군대이고 인민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상감정은 이처럼 티없이 순결하고 진실합니다.이런 군대와 인민이 있기때문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혁명이 승승장구하는것입니다.

나는 오늘 군인가족들의 열렬한 사상정신세계가 반영된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훌륭한 우리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굳게 다지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 좀 쉬고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저런 인민을 생각하면 순간도 휴식할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인민을 위하여 우리 대에 한가지라도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마디마디가 가슴을 치는 그 말씀에 일군들은 저도 모르게 눈굽을 적시였다.

지난 7년세월 우리 장군님께서 조국의 운명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줴기밥마저 드시지 못하시며 이어가신 선군령도의 길은 장장 몇천몇만리였고 찬물세면으로 졸음을 쫓으시며 야전집무실에서 맞으신 새벽은 또 얼마였던가.

하지만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최상의 기쁨,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시였으며 오늘은 이렇게 하나의 공연을 보시고도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한생을 깡그리 바치실 각오를 다시금 굳게 가다듬으시는것이다.

격동된 심정을 금치 못하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인민입니다, 우리 일군들은 이런 훌륭한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인민의 참된 충복이 되여야 합니다라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인민에 대한 존대와 사랑이 마디마디에 비껴흐르는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은 계속되시였다.

《내가 늘 말하지만 인민은 우리의 선생이고 스승입니다.일군들은 언제나 인민에게서 배워야 하며 인민을 무한히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위대하고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머리우에 군림하여 호령하고 인민의 존엄을 침해하는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고 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확고부동한 인민관이 뜨겁게 맥박치는 말씀이였다.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 바로 그것이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출발점이며 그이께서 발휘하시는 강의한 의지의 원천이다.

전세계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인 5.1절날에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담겨진 말씀을 깊이 새기며 일군들은 이것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흠모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일군들의 가슴속에서는 만민이 격정에 넘쳐 부르는 노래의 구절이 저절로 울려퍼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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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성해안포병과 약크림

2025년 2월 7일《로동신문》

위대한 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뜻깊은 혁명일화

 

이 일화는 1995년 2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전방부대인 녀성해안포중대를 시찰하신 날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일화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흥미있는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그러나 여기에 전하는 일화는 흥미보다 깊은 감동을 가지고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할 이야기인것이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72년 3월 2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녀성해안포중대의 포진지에 나가시였다.

포진지둘레에는 밀려오는 파도의 물결이 휘뿌려져 얼음이 두텁게 얼어붙었고 맵짠 바다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추위와 해풍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녀성해안포병들의 전투훈련모습을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시다가 《춥지 않는가?》고 다정히 물어보시였다.

군인들이 일제히 《춥지 않습니다.》라고 힘찬 목소리로 대답을 올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인자하신 눈길로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겨울의 찬 해풍에 얼굴이 검실검실하게 탔으나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전투적기상과 기백이 약동하였고 오늘의 영광을 맞이한 희열이 물결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중대병실에 들리시여 스스럼없이 군인들의 사물함을 열어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물함에 있는 크림통을 보시자 손수 뚜껑을 여시고 냄새도 맡아보시면서 지휘관들에게 《군인들이 바다바람에 얼굴이 텄던데 어떤 크림이 좋은가?》고 문의하시였다.

옆에 섰던 지휘관이 크림보다도 오히려 분이 더 낫다고 말씀드렸다.

《분이 더 낫다? 경공업일군들에게 분을 보내주라고 말하겠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무엇인가 깊은 생각을 하시는듯 크림통을 인차 손에서 놓지 않으시였다.

현지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녁에 동행한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아무래도 래일 우리 동무들을 중대에 보내여 녀성군인들의 생활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오게 해야 할것같습니다.나는 시간이 모자라서 그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몇명의 녀성일군들에게 래일 아침 중대에 갔다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튿날 점심시간에 중대에 갔다온 녀성일군이 중대에 가서 실태료해보다 오히려 많은것을 배우고 왔다고 하면서 중대장의 얼굴이 많이 텄다는것을 장군님께 보고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침에 갈 때 약크림을 갖다주지 않았는가고 문의하시였다.수행했던 일군들이 약크림을 보내지 못했다고 보고드리자 장군님께서는 왜 약크림을 보내지 않았는가고 추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라 녀성해안포중대에 갔다왔지만 녀성군인들이 바다바람에 얼굴이 튼데 대해서 가슴아파하지 않고있습니다.의사에게 얼굴이 튼데 바르는 약크림과 고약을 달라고 하여 래일 아침 당장 갖다주어야 하겠습니다.》

일군들은 제구실을 하지 못한데 대하여 크게 량심상가책을 받았다.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 따라 이튿날 아침 고약과 약크림이 든 작은 봉투를 가지고 장령이 녀성해안포중대에로 달려갔다.

그 봉투속에는 《이 약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녀성해안포중대장이 바다바람에 얼굴이 텄다는것을 아시고 의사에게 당장 고약과 약크림을 보내주라고 말씀이 계시여 보내는것입니다.사용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라고 쓴 한장의 글쪽지가 들어있었다.

장령이 약봉투를 전달하자 중대장과 지휘관, 병사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떨구었다.

친부모인들 어찌 이보다 더 살뜰하고 다심할수 있으랴!

중대장은 고약에 깃든 사연을 듣고 최고사령관동지의 그 인자하신 영상을 다시 그려보았고 장군님을 위해 한목숨 기꺼이 바칠 맹세를 다지였다.

그날 저녁 고약을 가지고 중대에 갔던 장령이 돌아와 위대한 장군님께 명령대로 중대장에게 고약과 약크림을 전달하였다는것을 보고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보고를 들으시고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수행했던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감정이 없는 식물인간들입니다.녀성군인들이 바다바람에 얼굴이 텄다는 말을 들었으면 응당 고약이나 크림 같은것을 보내줄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동무들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그런것도 생각 못하는것을 보면 아직 멀었고 목석인간들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은 준렬하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 언제면 장군님의 그 뜨거운 인간애와 높은 덕망을 따를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깊이 자책하였다.

해안포중대 군무생활에서 바다바람에 얼굴쯤 트는것은 응당 있을수 있는 일이며 크게 문제가 될것도 없는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수천만 아들딸들의 친어버이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생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한 전사의 손가락상처를 두고도 마음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생각은 아무리 해안포군무생활을 한다 해도 처녀의 얼굴이 바다바람에 터서는 안된다는 사랑의 높은 경지에 가닿고있는것이다.

생명과 관련되는 비상구급약도 아니고 순전히 얼굴에 바르는 고약과 약크림을 가지고 군대의 장령이 중대에로 달려가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휘하의 일군들을 그처럼 엄하게 책망하신 례가 어느 나라, 어느 군대에 있었던가.

이러한 사실은 세상에서 오로지 위대한 령장을 모신 우리 인민군대에서만이 있을수 있는 일화이다.

그래서 병사들은 《우리 장군님 제일이야》라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있는것이리라!(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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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뜻깊은 혁명일화 : 량강도솜장화

2024년 12월 14일《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인 2010년 5월 어느날 출근길에 오른 근로자들의 발걸음과 나란히 위대한 장군님의 야전차가 초록이 짙어가는 혜산시가를 달리고있었다.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의 명랑한 모습도 비쳐지고 빨래하는 녀인들의 웃음넘친 얼굴도 정답게 비껴지는 압록강반을 따라 달리던 야전차는 어느덧 혜산신발공장에 들어섰다.

흠잡을데없이 환하게 꾸려진 공장이였다.

겉볼안이라고 공장밖은 공원처럼, 공장안은 궁전처럼 꾸려놓고 증산의 동음을 높이 울리고있는 신발생산자들의 작업현장들을 돌아보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냥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지향과 요구수준에 맞는 현대적이고 신기도 편리한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콤퓨터에 의한 생산지휘체계에 따라 쏟아져나오고있었다.

생산흐름선에 따르는 현장들을 돌아보시고 공장에서 생산하고있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가지 형태의 솜신발들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추운 지대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겨울신발들이였다.

그중에서도 두텁게 솜을 넣고 맵시있게 끈을 조여매게 만든 목이 긴 솜신발은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앞코숭이와 바닥, 뒤축을 비롯한 전반모양새가 활동에 편리하게 생긴 솜신발은 누비기도 탐탁하게 잘 누벼져 보기만 해도 저절로 발이 따스해지는것만 같았다.

신발을 손에 드시고 세심히 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목높은 림업용솜신》이라고 쓴 제품이름앞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하나의 신발이름을 두고도 그토록 마음쓰시는지 아직은 누구도 알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장을 다 돌아보시고 공장마당에 나서시였을 때였다.

공장에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종업원들이 정말 일을 많이 했다고 높이 평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림업용솜신이라…》 하고 되뇌이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신발이름을 왜 자꾸만 외우시는지 영문을 알지 못하고 의아해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이 공장에서 만들고있는 목이 긴 솜신발은 림업로동자들뿐만 아니라 추운데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좋아할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일군들은 저저마다 신발이 정말 욕심이 난다고 하면서 호감을 표시하였다.공장의 일군들도 아버지앞에서 해놓은 일을 자랑하는 자식처럼 어려움도 잊고 솜신발자랑을 하였다.

신발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물론 신어본 사람들도 이런 신발은 국제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는 이야기,

이 신발이 좋다고 벌써 소문이 나서 《림방》(림업용신발이라는 뜻), 《림방》 하면서 혜산신발공장에서 생산하는 겨울신을 찾는다는 이야기,

혜산신발공장제품에 대한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있는데 대하여 성수가 나서 이야기하는 일군들의 자랑을 무랍없이 다 들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윽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이 공장에서 인민들을 위하여 훌륭한것을 만들어냈는데 거기에 어울리게 이름도 잘 붙여야 하겠습니다.》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인민들이 좋아하는 량강도의 특산품인것만큼 신발이름을 량강도솜장화라고 다는것이 좋을것같습니다.량강도솜장화! 어떻습니까.》

량강도솜장화!

정말 신통한 이름이였다.

든든하면서도 맵시있고 따스한감을 주는 신발의 모양과 특성이 함축되면서도 제품산지와 리용대상까지 대번에 알수 있는 명쾌한 이름이였다.

일군들은 눈시울을 슴벅이였다.

일년열두달중에 더운 날보다 추운 날이 더 많은 북방에서 사는 인민들의 신발문제때문에 늘 마음을 놓지 못하시던 어버이장군님이시였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전선길을 달리시다가도 병사들의 솜옷이며 솜신발의 두께가 얇지 않은지 근심스러우시여 문득 차를 멈추시던 장군님,

눈덮인 고산지대에서 생활하는 혁명전적지강사들을 마음속에 그려보시며 발이 시려할세라 솜장화를 보내주도록 하시던 자애로운 모습이 동행한 일군들의 눈앞에 숭엄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이 추운 겨울에도 뜨뜻한 옷을 입고 뜨뜻한 신발을 신고 마음편히 살게 하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하시며 잠 못이루시던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크지 않은 지방산업공장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모양곱고 질좋은 솜신발을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해주고있는 사실이 너무도 장하고 기특하시여 우리 장군님의 기쁨은 그리도 큰것이였다.

《추운 고생을 하는 북방사람들을 위하여 이 공장에서 정말 훌륭한 일을 하였습니다.

나는 인민들의 복리에 이바지하는 이런 공장을 돌아볼 때 제일 기분이 좋습니다.》

만사람의 가슴을 후덥게 하는 절절한 말씀이였다.

한컬레의 신발을 놓고도 인민에 대한 복무정신을 헤아려보시는 어버이장군님의 말씀은 한마디한마디마다가 깊은 뜻을 새겨주고있었다.

로동자, 기술자들과 마음을 합쳐 보다 훌륭한 신발을 생산하기 위하여 아글타글 애써온 투쟁의 흔적이 력력한 지배인의 모습을 미더웁게 보고 또 보시면서 동무가 지금 신고있는 운동화가 공장제품인가고 하시는 장군님의 물으심,

예, 우리 공장에서 만든 운동화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으시고 공장것이란 말이지, 공장것이란 말이지, 지배인의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은가고 외우고 또 외우시는 장군님의 말씀,

인민들과 꼭같은 신발을 신고 인민을 위한 충복으로 일하라, 비록 자기는 얇은 운동화를 신더라도 인민들에게는 두터운 솜장화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열정을 바치는 티없이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라, 그런 일군의 마음에서부터 사람들의 발을 덥혀줄 진정한 사랑이 싹트는것이라는 위대한 어버이의 엄숙한 깨우침이 일군들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일군들을 정겨웁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훌륭한 우리 인민을 위하여 멋있는 솜장화를 더 많이 만드시오.약속합시다.추운 겨울날 이 고장에 오면 나도 량강도솜장화를 사신겠소!》

한없이 다정하신 음성이였다.

자애에 넘치는 눈빛으로 뜨거운 약속을 남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목이 메였다.

자신께서는 수수한 신발을 신으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지지도의 강행군길을 걸으시면서도, 자신께서는 수수한 야전복을 입으시고 1년365일 강행군길에 계시면서도 인민들에게는 좋은 옷에 좋은 신발을, 맛좋은 식료품에 훌륭한 살림집을 마련해주시려고 그토록 마음쓰시는 온 나라 대가정의 위대한 어버이.

과연 그 누가 한컬레의 솜신발을 두고도 인민을 위해 그렇듯 뜨거운 정을 기울여본적 있었던가.

량강도솜장화,

그것은 단순한 신발이름이 아니였다.

마안산모포라는 이름이 단순한 모포이름만이 아니고 삼일포특산물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식료품이름이 아닌것처럼, 《봄향기》라는 이름이 단순한 화장품이름만이 아닌것처럼 량강도솜장화라는 그 이름은 우리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위대한 복무정신이 낳은 또 하나의 사랑의 결정체인것이다.

량강도솜장화는 모든 일군들이 다시한번 량심에 손을 얹고 생각하게 하였다.

량강도의 크지 않은 신발공장에서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멋쟁이로 내세울수 있는 훌륭한 겨울신을 만들어낼 때 우리 도에서는, 우리 시에서는, 우리 군에서는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것이 무엇인가.

백두산기슭 량강도에서 인민들에게 웃음꽃을 피워주는 량강도솜장화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홍단엿이라는 말이 태여나고 녀성들이 엄지손가락을 꼽는 삼지연장이라는 말이 태여나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 때 우리는 인민을 위하여 무엇을 해놓았는가.

위대한 장군님께 진정으로 기쁨이 되는 인민의 복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새운 밤은 얼마였던가.

이런 생각으로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눈물에 젖어 어버이장군님을 바래워드리는데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는 인민행야전차는 굽이굽이 령길을 따라 아득히 멀어지고있었다.

야전차는 멀어져도 그이께서 남기신 절절한 말씀은 더욱더 큰 메아리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리여왔다.

추운 겨울날 이 고장에 오면 나도 량강도솜장화를 사신겠소!

그것은 고마운 우리 당과 인민을 하나의 피줄기로 더욱 굳세게 이어주는 위대한 사랑의 메아리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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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뜻깊은 혁명일화 : 반가운 편지

2024년 12월 9일《로동신문》

 

위대한 장군님과 이 땅의 매 가정, 매 사람들사이의 관계는 친부모와 자식들간의 사랑에도 비길수 없는 한없이 뜨거운 혼연일체의 정으로 맺어져있었다.

멀리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차만 보아도 만세를 부르며 달려가고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신 때이면 눈굽을 적시며 가슴속진정을 서슴없이 터놓던 이 나라 인민,

사랑하는 인민을 한품에 안으시고 한없는 은정을 부어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자욱마다에서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그 얼마나 많이 꽃펴났던가.

2001년 우리 당창건 56돐을 맞던 날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의 제대군인부부인 박용철, 김성녀동무의 가정에는 뜨거운 격정이 차오르는 영광과 행복의 순간이 찾아들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회답서한을 그들이 받아안게 되였던것이다.

《좋은 소식 알려주어 반갑습니다.

김정일

2001.10.10》

범안리사람들은 더 말할것 없고 황해북도 아니 온 나라 인민들의 가슴을 그리도 격동시킨 이날의 회답서한을 우리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보내시게 되였는가.

2001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를 현지지도하시였다.

그날도 새벽 3시가 넘도록 제기된 문건들을 다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승용차를 달려 아직 가정주부들도 잠을 깨지 않은 새벽 5시경에 범안리에 들어서시였다.

어둠이 채 가셔지지 않은 농촌길을 걸으시며 새로 건설한 양어장과 리소재지마을을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만면에는 한밤을 지새우신 피로가 순간에 씻겨지고 기쁨의 미소가 넘치였다.

뒤산을 뒤덮은 과일나무숲과 산기슭에 줄지어 늘어선 날아갈듯한 문화주택들, 그앞으로 펼쳐진 드넓은 양어장과 강을 가로질러 건설한 발전소…

실로 한폭의 그림같은 사회주의농촌의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쁘고 만족하시여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바로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이고 사회주의선경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만시름이 풀리신듯 환히 웃으시는 때는 이처럼 인민들이 잘살게 된 희한한 광경을 보시게 되는 시각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고난을 맞받아 준엄한 선군혁명천만리길을 밤낮으로 헤쳐오신것도, 새벽 1시를 초저녁이라 하시며 온갖 로고를 바쳐오신것도 다름아닌 우리 인민의 이런 행복을 지키고 꽃피우시기 위해서였다.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인민입니다, 이런 인민을 위해서라면 잠을 덜 자고 휴식을 못하더라도 더 많이 일하려는것이 나의 결심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위대한 장군님,

인민을 위하시는 그이의 심정이 얼마나 뜨거우시였으면 그리도 기뻐하시였으랴.

마을어귀에 들어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지은 살림집내부를 어서 돌아보자고 하시며 어느한 제대군인농장원부부의 가정을 찾으시였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을 뜻밖에도 자기 집에서 만나뵙게 된 농장원부부와 아이들은 너무도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군사복무는 어디서 했으며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가, 새집들이는 언제 했으며 아이들은 몇인가, 제대군인들이 농촌의 주인이 되였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고 하시며 세간난 자식의 집에 온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따뜻이 물어주시고 치하도 해주시며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윤기흐르는 가구들과 쓸모있는 가정용품들이 그쯘히 갖추어진 세간살이를 만족하신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부엌으로 내려서시였다.

몸소 부엌에까지 내려서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집주인은 아직 전기로 밥까지 해먹지는 못한다고 나직이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알뜰한 주부의 손길이 느껴지는 부엌의 구석구석을 살피시다가 생각깊으신 어조로 여기에 발전소를 건설했으면 응당 그 덕을 보는것이 기본이지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좋은 집에서 전기로 밥까지 해먹으면 얼마나 좋겠소.》

안겨진 사랑과 차례진 행복에 만족만을 느껴오던 그들부부는 아직은 자기들이 바라지도 못하고있던 전기로 밥을 해먹는 문제때문에 근심을 놓지 못하시는 장군님께 황송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우리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를 주면 열백을 더 주고싶은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인민을 하늘로 여기시는 우리 장군님의 사랑의 세계는 이 땅의 천만부모들의 그 모든 사랑에도 비길수 없는 웅심깊은것이였다.

온몸에 흙냄새가 푹 배인 평범한 농민들까지도 전기화된 문화적인 농촌살림집에서 세상에 부럼없이 살게 하시려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이며 숭고한 뜻이였다.

그래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농장원의 진정어린 대답을 들으신 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아니요, 전기로 밥까지 지어먹으면 더 좋지 않겠소.》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발전소를 건설한바치고는 효률을 더 높여 집집마다 전기로 밥까지 지어먹게 해주자고 간곡하게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농장원에게 《…전기화가 완전히 실현되여 전기로 밥을 지어먹을수 있게 되면 나한테 편지를 써보내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농장원부부는 격정으로 가슴이 높뛰여 무엇이라고 말씀드릴수 없었다.아직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적도 없고 소문난 혁신자도 아닌 자기들이 무엇이길래 이른새벽 몸소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처럼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는것인가.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밖으로 나오시여 집주변을 둘러보시며 이런데는 남새도 많이 심고 줄당콩도 많이 심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신 후 갓 까나온 새끼오리들을 보시며 집짐승도 많이 키워 고기문제까지 풀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다심한 사랑이 어린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매지게 늘어선 문화주택마을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집주인쪽으로 돌아서시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집에 찾아오면 제집을 얼른 알아 못보겠다고 하시며 매 집에 문패를 꼭 해 달라고 당부하시였다.

친부모도 미처 생각 못할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온 가족을 한품에 안으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어버이사랑에 농장원가족과 일군들은 끝없는 감사의 정에 넘쳐있었다.

떠나시기에 앞서 장군님께서는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올리며 떨어지기 섭섭해하는 농장원부부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거듭 이렇게 당부하시였다.

《이제 전기밥가마로 밥을 지어먹을 때 나에게 꼭 편지를 하시오.》

위대한 장군님께서 떠나가신 때로부터 두달후 범안리의 제대군인농장원부부는 온 마을의 전기난방화가 실현되고 전기밥가마로 밥을 지어먹는 기쁨과 감격을 담아 그이께 삼가 편지를 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은정넘친 회답서한을 보내주신데는 이런 뜻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과 평범한 농장원부부사이에 오고간 한통의 편지와 회답서한은 온 나라를 격동시키였다.

력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선혁명은 세기를 이어 절세의 위인께서 창조하신 력사의 재현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해방직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원도 산골의 리계산농민을 친히 만나주시고 문맹을 퇴치한 후 제손으로 자신께 편지를 쓰라고 뜨거운 은정을 베푸시였으며 그 하나의 불꽃으로 온 나라의 문맹퇴치를 실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범안리의 한 평범한 농민가정에 보내주신 회답서한도 한점의 불꽃이 되여 온 나라에 휘황한 현실을 안아왔으니 우리 조국의 륭성번영은 년대와 세기를 이어 이런 위대한 혼연일체속에서 이루어지고있는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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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강자만이 인생을 참답게 빛내일수 있다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펼쳐보며-

주체113(2024)년 5월 12일 로동신문

 

사람에게 생은 한번밖에 차례지지 않는다.그 귀중한 한생이 력사와 후대들앞에 떳떳하고 자랑스럽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꼭같을것이다.허나 바란다고 하여 인생이 저절로 빛나는것은 아니다.

떳떳하고 긍지높은 삶, 그것은 신념의 인간들만이 누릴수 있는것임을 우리는 항일혁명투사들의 고귀한 생애를 더듬어보며 다시금 확신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적신념을 굳건히 간직한 사람만이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수 있으며 조국과 인민앞에 떳떳할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새세대들이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자주 펼쳐보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이 땅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물려가야 할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가 글줄마다에 어려있기때문이다.사람을 참된 인생길로 떠밀어주고 그길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다잡아주는것이 다름아닌 혁명신념이라는 철리가 깊이 새겨져있기때문이다.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이것은 우리 인민 누구나 오늘도 깊은 감동과 여운속에 되새겨보는 항일의 녀투사 최희숙동지의 불같은 웨침이다.

항일혁명투사 김명화동지는 자기의 회상기에 이렇게 썼다.

《1938년 겨울 남패자에서 북대정자에로의 고난의 행군때에 그에게는 두려운것이 없었으며 남자대원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이 고난의 시련을 이겨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이께서는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끄시고 가신다.)

이렇게 그는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나 위대한 수령님의 충직한 혁명전사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나아갔으며 그이께서 맡겨주신 과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실천할줄 아는 충직한 동무였다.희숙동무는 오직 그이와 혁명의 승리만을 믿고 싸웠다.》

투사가 회상한것처럼 최희숙동지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가슴깊이 안고 산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혁명의 승리만을 굳게 믿는 신념이였다.

그런 신념의 강자였기에 그는 최후를 앞둔 시각에조차 《나에게는 지금 눈이 없다.그러나 나에게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라고 소리높이 웨쳐 적들을 전률케 하였던것이다.

전문섭동지는 자기의 회상기에서 혁명이 승승장구하여 거침없이 전진할 때에는 혁명을 한다고 자처하며 따라나서지만 곤난하고 긴박한 혁명의 시련기에는 신념이 흔들리는 그런 《혁명가》는 락오자가 되거나 놈들의 개가 되고만다고 회상하였다.

그렇듯 신념은 사람의 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혁명승리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간직한 사람은 언제나 좌절을 모르지만 신념이 확고하지 못한 인간은 준엄한 시기에 례외없이 혁명의 길에서 탈선하고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력갱생정신도 그렇고 하자고 결심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강의한 의지와 대담성, 모든 고생을 달게 여기며 난관을 웃으며 맞받아나가는 락관주의와 혁명적인생관도 드놀지 않는 신념을 기초로 하고있다.하기에 신념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격을 가르는 시금석과도 같다고 말하는것이다.

항일혁명투사 지경수동지는 회상실기 《난관을 뚫고》에서 1940년 겨울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썼다.

《무엇이, 그 어떠한 힘이 우리들을 이 첩첩한 포위속에서 20여일씩 굶으면서 그리고 4명의 환자까지 업고 이끌면서 끝끝내 난관을 뚫게 하였는가!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따르는 우리의 혁명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념,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일념, 사랑하는 조국을 짓밟고 인민을 노예화하는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분노가 우리 가슴에 불타고있었기때문이다.》

이렇듯 그 어떤 난관속에서도 수령을 끝까지 따르려는 필승의 신념을 지니면 있는 힘은 더 커지고 보이지 않던 길도 찾아낼수 있으며 더 높은 곳으로 치달아오를 담력과 배짱도 생기는 법이다.지혜의 샘과 같고 힘과 용기를 백배해주는 원동력과도 같은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떼여놓고 어찌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에서의 위대한 승리를 안아온 투사들의 영광스러운 인생행로에 대해 말할수 있겠는가.

하기에 우리 인민 누구나 도서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가리켜 신념의 도서라고 이야기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신념이 무너지면 정신이 죽고 정신이 죽으면 인간자체가 무용지물로 된다고, 인간의 도덕의리나 량심도 다 신념에 바탕을 두고있다고, 신념이 없는 사람들은 량심도 지닐수 없고 도덕의리도 지킬수 없으며 인간적인 체모도 유지할수 없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렇다.혁명적신념이야말로 한생을 값있게, 참되게 살아나갈수 있게 하는 사상정신적원천이다.떳떳하고 긍지높은 생, 존엄높은 삶을 누리려거든 누구나 우리 당만을 굳게 믿는 혁명신념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 우리 당은 위대한 인민, 사랑하는 후대들을 위하여 전면적국가부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고있다.

누구에게나 걸머져야 할 일감은 방대하며 우리의 전진을 걸음걸음 막아나서는 난관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그러나 애로와 난관이 아무리 많다 한들 항일전의 그 간고함에 어찌 비길수 있겠는가.혁명의 요구라면, 사령관동지의 명령이라면 야장간에서 폭탄도 만들어내고 쌀 한줌, 실 한토리를 얻자고 해도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를 벌려야 하는 험악한 조건속에서도 식량과 군복을 명령받은 기일까지 무조건 마련하던 투사들의 후손들인 우리가 어떻게 무엇이 좀 부족하다고 하여 남에게 손을 내밀수 있으며 조건타발, 패배주의의 우는소리를 할수 있겠는가.

당의 구상을 현실로 꽃피우는 투쟁에 떨쳐나선 우리에게 지금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것은 자금도 자원도 아니며 그 누구의 원조도 아니다.그것은 항일혁명투사들이 생명보다 더 귀중히 간직했던 투철한 혁명적신념이다.

사람들이여, 난관이 앞을 막을 때마다 회상기를 펼쳐보시라.그리고 투사들의 모습앞에 자신들을 세워보라.그러면 혁명의 1세들이 피로써 찾아준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해야 할 성스러운 혁명임무가 다름아닌 자신들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는 숭고한 사명감이 가슴을 파고들것이다.그들의 후손으로서 과연 어떻게 살며 투쟁해야 하겠는가를 다시금 뼈속깊이 자각하게 될것이다.

모두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에 대한 열화같은 충성심으로 일관된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간직하고 당결정결사관철의 길에서 생의 하루하루를 값있게 빛내여나가자.

누구나 바라는 존엄높은 삶, 그것은 오직 혁명신념에 충실한 사람들만이 누릴수 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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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장군님과 인민들

주체112(2023)년 12월 16일 로동신문

어버이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뜻깊은 혁명일화

 

언제인가 북부지구의 한 기계공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승용차를 타시고 다른 기업소 앞도로를 지나실 때였다.

거리를 오가던 로동자들과 사무원들, 청년들과 학생들 그리고 시안의 주민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라는것을 알고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차길옆으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두손을 높이 쳐들어 열광적으로 흔들면서 달려오는 로동자들, 미처 승용차를 따라설수 없어 나지막한 둔덕우에 올라서서 인사를 드리는 로인들, 차길량쪽에 성벽처럼 어깨성을 쌓고 《만세!》환호를 올리는 청년학생들, 발을 동동 구르며 차를 따라서는 어린이들…

(우리 장군님께서 건강하시다!)

삽시에 군중의 하나같은 기쁨과 환희가 온 거리에 차넘쳤다.사람들은 건강하신 위대한 장군님을 먼발치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뵙고싶던 평생의 념원이 뜻밖에 이루어진 행복감으로 하여 서로서로 두손을 맞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환한 미소를 지으신채 차창을 내리우시고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보내주시면서 운전사에게 《차를 천천히 몰아야 하겠습니다.숱한 청년들이 만세를 부르며 내가 탄 승용차를 향하여 달려오고있는데 그냥 지나갈수 없습니다.》라고 이르시였다.운전사가 장군님의 멀고도 촉박한 현지지도로정을 생각하며 주저하는것을 짐작하신 그이께서는 너그러운 미소를 담으신채 《시간이 바쁘다고 그냥 지나가면 저 청년들이 얼마나 섭섭해하겠습니까.우리가 시간을 좀 지체하는한이 있더라도 차를 천천히 몰아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그이의 거듭되는 말씀에 운전사는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장군님을 모시고 함께 가던 일군의 심정도 격정으로 꽉 메였다.분초의 휴식도 없이 동에서 서에로, 남에서 북으로 강행군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께서 북변의 자그마한 산골도시사람들을 위하여 천금같은 시간을 바쳐주시다니…

바쁘신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평범한 자기들이 올리는 인사에 친히 손저어 일일이 답례를 표시하시는 그이의 한없이 인자하신 모습을 뵈온 군중들의 환호는 더욱 절정에 달하였다.

티끌만한 가식도 없이 끝없이 순결한 인민들의 마음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격동된 심정을 금할수 없으시여 길량쪽의 군중들을 향하여 번갈아 손을 흔드시였다.집에 남은 자식을 믿고 먼길떠나는 아버지의 믿음과 먼길가는 아버지의 안녕을 축복하는 자식들의 바래움과 기다림이 뒤섞인 한식솔의 모습그대로였다.

어느덧 승용차는 거리를 벗어났다.그러나 군중들은 서로 팔을 끼고 《김정일 결사옹위》의 구호와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서 그이께서 지나가신 차길을 뒤따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을 뒤로 돌리시고 멀리에서 뒤따르는 인민들에게 계속 손을 흔들어주시면서 옆의 일군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눈물을 흘리며 환호를 하면서 달려오는 청년들의 감정은 지어낼수도 없고 돈을 주고 살수도 없습니다.온 사회가 일심단결된 우리 나라에서만이 있을수 있는 참모습입니다.》

일심단결된 우리 나라의 참모습,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마디마디 새기는 일군의 눈앞에는 이미 영화문헌을 통하여 우리 인민모두의 뇌리에 생생하게 새겨진 주체84(1995)년 7월 7일의 력사적인 화폭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궤도전차를 타시고 금수산지구를 돌아보시였는데 그때에도 도로주변에서 잔디를 심던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군중이 궤도전차를 따라 달려오면서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녀성들과 아이들, 대학생들과 남녀로소 각계각층 군중이 궤도전차가 지나가는 곳으로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면서 달려왔는데 그들의 눈빛에는 하늘땅이 다하도록 자기 령도자만을 따르려는 진심이 력력히 어려있었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직은 생활에 일부 애로가 있지만 그런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 령도자와 로동당만을 끝까지 따르는 우리 인민이 정말 좋은 인민이라는것을 다시금 절감하시면서 뜨겁게 손저어 답례를 보내주시였다.

며칠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인민들이 내가 탄 궤도전차를 따라 환호하면서 달려왔는데 그 누가 조직을 하여서는 그런 진실한 광경이 펼쳐질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이런 인민을 보면서 그들에게 더 좋은 생활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혁명을 더 잘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이 일심단결, 혼연일체의 감동깊었던 그날을 되새겨보고있을 때 멀리 차창밖에 눈길을 주시고 잠시 사색에 잠기셨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확신과 신심에 넘치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저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가는 사회주의길이 옳고 사회주의는 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살아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은 일군의 심장속에 령도자와 인민사이에 흐르는 심원한 정신세계를 새로운 높이에서 다시금 깊이 새겨주었다.

그것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는 곧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고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사회주의는 령도자를 중심으로 일심단결된 인민의 마음이라는 가장 순결하고 진실하며 숭엄한 사상감정이였다.뒤따르던 군중들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어찌 이들뿐이랴.

적의 초소가 코앞이여서 《만세!》의 격정을 터뜨리지 못하고 두손만 높이 쳐들어 열광적으로 흔들던 판문점의 군인들, 걷어올린 바지가랭이도 미처 내리울새없이 논두렁을 타고넘으며 장군님 가시는 길에 따라서던 북청의 농민들, 최전연으로 가시는 아버지장군님을 발을 동동 구르며 바래워드리던 야영길의 학생소년들…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길에서 자주 이런 광경을 보아온 일군의 눈앞에는 이날따라 인민들의 모습이 새롭게 안겨들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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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위인의 1분1초

주체112(2023)년 12월 9일 로동신문

어버이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전하는 뜻깊은 혁명일화

 

우리 장군님은 흘러가는 시간을 그리도 귀중히 여기시며 1분1초를 쪼개가며 사업하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주체96(2007)년 2월하순 어느날이였다.

군에 지도사업을 나갔던 어느 도의 한 책임일군이 사무실로 돌아온것은 밤이 퍽 깊어서였다.

제기된 문제들을 처리하고 이제 더는 제기될 일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의자에 앉아 생각을 더듬다가 어느새 꿈나락에 빠져들고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따르릉, 따르릉…》

방안의 정적을 깨뜨리는 다급한 전화종소리에 일군은 잠에서 깨여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어오시는 전화임을 알게 된 일군은 급히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정중히 전화를 들었다.

이윽고 수화기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울려나왔다.

《건강은 어떻소? 내가 또 잠든 동무를 깨웠구만.》

이렇게 일군의 안부를 다정히 물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없으신듯 인차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인민생활문제를 비롯하여 도가 틀어쥐고나가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음성은 정력에 넘쳐있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하나하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업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시는 강령적지침을 받아안는 일군의 가슴은 빛나는 예지와 불타는 열정을 지니신 희세의 위인을 모시고 혁명하는 전사된 긍지로 하여 세차게 높뛰였다.

일군이 은연중 시계를 보니 바늘은 새벽 4시 20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일군은 자기 도의 사업때문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또 이렇게 밤을 밝히시였구나 하는 생각으로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간절하게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 새벽 4시가 넘었습니다.또 밤을 새우시면 어떻게 합니까.이젠 잠시라도 쉬십시오.》

일군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밤을 새우는것은 자신의 습관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에게는 인민을 위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시고는 몇가지 문제를 더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에 대답을 올린 일군은 다시 용기를 내여 장군님께서 부디 쉬시기를 바란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뭘 그러오.나에게는 지금이 한창 일할 시간이요.》라고 하시고는 일군과 인사를 나누신 후 전화를 놓으시였다.

뜻깊은 전화대화는 끝났지만 받은 감동이 너무 커서 일군은 못박힌듯 한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인민을 위한 불같은 헌신,

새벽 4시이후도 한창 일하시는 시간!

우리 장군님의 고결한 헌신과 로고를 벅차게 느끼는 일군의 머리속에는 어버이수령님의 회고록에 담겨진 《군로신일》이라는 말뜻이 문득 떠올랐다.

령도자는 밤이 지새도록 끝없는 로고를 바치고 전사들과 인민들은 발편잠에 들어 단꿈을 꾸는 오늘의 선군시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런 눈물겨운 화폭들이 어느 하루도 번짐이 없이 이 땅우에 끝없이 펼쳐지고있는것이다.

(정녕 우리 장군님은 언제 주무시고 언제 식사를 하시는가?)

자신께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일을 더 많이 할수 있게 한초가 한시간이 되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한초를 한시간이 되게 늘일수만 있다면 그만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겠는데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안타깝다고 하시며 겹쌓인 피로속에서도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며 전사들과 인민들은 송구함과 감사의 정에 목메인다.

어느덧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일군은 창문을 열어제끼고 평양의 하늘을 우러르며 심장으로 맹세다지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위업인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1분1초를 쪼개가시는 천출위인의 혁명시간에 맞추어 더 많은 일을 하리라고.(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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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민족의 영광과 긍지를 새겨주는 위인일화 : 《세멘트암》이 세상에 태여나기까지

주체112(2023)년 10월 26일 로동신문

 

오늘도 이 땅에서는 인민을 위한 대건설사업이 끊임없이 벌어지고있다.화성지구 2단계 1만세대 살림집건설과 서포지구 새 거리건설, 강동온실농장건설,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진행되고있는 농촌살림집건설,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전개되고있는 대상건설들…

이 위대한 변혁, 보람찬 창조투쟁의 전초선을 지켜선 자각 안고 한t의 세멘트라도 더 생산하여 건설장들마다에 보내주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고있는 세멘트생산자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선견지명을 지니신 위인중의 위인이십니다.》

1970년대중엽에 들어서면서 인민경제 여러 부문과 사회주의건설장들에서는 많은 세멘트가 요구되였다.

늘어나는 세멘트수요를 충족시키자면 결정적으로 세멘트생산량을 늘여야 하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있던 세멘트공장들을 보강하는 한편 능력이 높은 세멘트공장들을 곳곳에 건설하도록 대담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도처에 세멘트생산기지들이 일떠서고 세멘트생산능력이 높아지자 예상치 못했던 난문제들이 제기되였다.그중 세멘트부가원료인 점토를 보장하는것은 매우 긴급한 문제로 나섰다.원래 세멘트는 석회석을 주원료로 하고 점토를 포함한 여러가지 부가원료를 리용하여 생산하는것이 세계적으로 공인되여있었다.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생산능력이 큰 세멘트공장들이 건설되고보니 점토보장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되였다.순천세멘트공장(당시) 하나만 놓고보아도 생산을 정상화하자면 순천과 평성은 물론 평양지구의 넓은 지역에 있는 진흙층을 다 들이밀고도 모자랄 형편이였다.

이러한 문제를 둘러싸고 일군들과 전문가들이 안타까이 모대기고있을 때 그 해결을 위한 명철한 방도를 가르쳐주신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우리 다같이 대책을 세워보자고 하시며 원래 석회석과 점토를 리용하여 세멘트를 생산해온것은 처음 세멘트를 개발한 나라들에서 써온 방법으로서 거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다른것을 리용하여 해보자고 하시였다.

또 언제인가 자연계에 세멘트생산에 필요한 모든 성분들을 다 포함하고있는 암석이 있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한번 찾아볼데 대한 과업을 주신분도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탐사를 진행하던 전문가들은 놀랍게도 우리 나라의 여러곳에서 세멘트원료로 리상적인 암석을 찾게 되였다.

그것을 가지고 시험생산을 해본 결과 성공이였다.

일군들이 그에 대하여 보고를 드리면서 아직 암석의 이름을 달지 못했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 암석을 《세멘트암》이라고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세멘트암》은 이렇게 태여나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과업을 받고 해당 부문의 일군들과 전문가들이 나라의 여러곳을 탐사해보니 그 매장량은 실로 대단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세멘트암》을 가지고 세멘트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건설되게 되였으며 나라의 세멘트공업은 비약적발전을 이룩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 인민은 이 땅우에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다져주시기 위해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되새겨보며 세세년년 길이 전해가고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긴장하던 세멘트원료문제를 해결해주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신분을 모시고 혁명을 해왔는가를 가슴깊이 절감하게 하여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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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질문으로 찾아주신 예비

주체112(2023)년 8월 21일 로동신문

태양민족의 영광과 긍지를 새겨주는 위인일화

 

전 세계 인류가 태양으로 높이 칭송하는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적풍모를 전하는 사실들가운데는 그이께서 비범한 예지와 령도실력으로 혁명실천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문제들의 요점을 대번에 포착하시고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도를 제시하신 이야기들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심오한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력,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인민, 시대와 혁명앞에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가장 걸출한 수령, 희세의 정치원로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전직후 복구사업이 한창 벌어지고있는 평양방직공장(당시)을 찾으시였을 때 있은 일이다.

얼마전에도 이곳을 찾으시여 공장복구사업이 5년이상 걸릴것이라고 생각하는 일군들에게 군인건설자들의 힘찬 일본새와 드높은 열의면 얼마든지 두달동안에 끝낼수 있을것이라는 신심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하지만 전쟁을 겪으며 온갖 고생을 다한 우리 인민들의 입는 문제해결을 위해 깊이 마음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하실수 없으시였다.그래서 그이께서는 공장복구에서 걸린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해결해주시기 위해 또다시 현지에 나오시였던것이다.

그때 방직공장복구사업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수많은 군인들이 동원되여 통이 크게 벌어지고있었는데 벽돌이 미처 보장되지 못하여 원만하게 진척되지 못하고있었다.

온 나라가 복구건설에 떨쳐나섰던 그때 어디서나 요구하는것이 건설자재인데다 벽돌공장확장공사도 아직 끝나지 않은 때여서 벽돌을 해결한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일군들이 여기저기 안타까이 뛰여다녀보았지만 벽돌문제를 도저히 해결할수가 없었다.

이러한 실태로 하여 많은 로력이 동원되였으나 방직공장복구사업은 일정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고있었다.공사장 곳곳에서 벽돌, 벽돌 하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울리였지만 일군들은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건설장을 둘러보시였다.

군인건설자들이 정리하고있는 마사진 건물이며 무너진 벽체들…

원쑤들이 파괴한 공장의 전경이 그이의 안광에 가슴아프게 안겨들었다.

페허나 다름없는 공장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방직공장복구사업에 동원된 부대지휘관을 부르시였다.그러시고는 지금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이 몇명이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옛, 2만명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군인 한명이 낡은 벽돌 다섯장씩 모으면 몇장이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옛, 10만장입니다.》

그때까지도 지휘관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의도를 알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장씩 모으면 얼마나 되는가고 재차 물으시였다.

《옛, 20만장…》

지휘관은 말끝을 채 맺지 못하였다.

세번째만에야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께서 물으시는 의도를 깨달은 그는 차렷자세를 취하며 부족되는 벽돌을 매 군인이 20장이상 수집하여 자체로 해결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그 시각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지휘관과 하시는 대화를 듣고있던 일군들은 탄복을 금할수 없었다.

(단 세번의 질문으로 벽돌 40만장을 순간에 해결해주시다니!)

일군들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천재적인 예지와 뛰여난 령도실력을 지니신 희세의 위인을 우러르며 다함없는 흠모심을 금할수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것이 파괴되였던 땅우에 자립경제의 주추를 다지던 전후복구건설의 나날에 태여난 이 일화는 혁명령도의 전 기간 대중의 자각성과 창조력을 불러일으켜 기적과 변혁의 력사를 아로새기신 희세의 위인이신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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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감나무중대에 남기신 사랑의 약속

주체112(2023)년 6월 9일 로동신문

 

해빛은 그늘을 남기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혜로운 사랑은 내 조국땅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골고루 미치며 천만자식들의 가슴을 따뜻이 덥혀주고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모두의 마음속생각까지 헤아리시며 다심한 정을 기울이신 열화같은 사랑의 이야기 천이런가, 만이런가.

그중에는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감나무중대에 남기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지켜주신 하늘같은 은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가을에 있은 일이다.

수도 평양에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조선인민군 제4차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대회가 성대히 진행되고있었다.

온 나라 인민이 대회참가자들에게 따뜻한 축복을 보내고있던 그 시각 불물처럼 끓어번지는 마음을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한 제대군관이 있었다.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사연깊은 감나무중대에서 정치지도원으로 복무하다가 불과 몇달전에 제대된 녀성이였다.그는 조금만 더 군복을 입고있었더라면 전군의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들과 나란히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신 영광의 대회에 참가하였을것이라는 생각으로 못내 서운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가 북받치는 아쉬움을 달래지 못하고있는데는 남다른 사연도 있었다.

제대를 몇달 앞두고 그는 평양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중대장과 함께 중대를 떠난적이 있었다.

바로 그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중대에 찾아오실줄 어이 알았으랴.

중대에 돌아와 꿈결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중대군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집체사진도 찍어주시고 헤여지기 서운해하는 심정을 헤아려 매 군인을 곁에 세우시고 또 기념사진을 찍어주신 사실에 접한 그와 중대장은 놀라움과 격정, 한없는 부러움에 휩싸였다.

그런 그들에게 중대군인들이 뜻밖의 가슴뜨거운 사실을 들려주었다.

현지지도의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평양에 올라간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이 돌아오면 못내 아쉬워할것이라고 하시며 후날 중대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오랜 시간 중대의 군인들을 한명씩 곁에 세우시고 사진을 찍으실 때에도 중대를 떠나있는 그들이 마음에 걸리시여 꼭 다시 찾아와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는 사랑의 약속을 남기시였다는것이다.

그들의 두볼로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자기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려 은정어린 약속까지 남겨주시였으니 세상에 이처럼 자애롭고 고마우신분이 또 어데 계시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경애하는 그이를 중대에 다시 모실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군사복무년한이 다되였던 정치지도원은 얼마 안있어 제대명령을 받았다.그때의 서운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었겠는가.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정든 초소를 떠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달후 우리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에서 또 하나의 중대한 리정표로 될 조선인민군 제4차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대회가 성대히 열리였으니 그의 아쉬움과 서운함은 이루 다 말할수 없었다.

이러한 때 녀성제대군관은 참으로 꿈만같은 사실에 접하게 되였다.

인민군대의 한 정치일군이 그를 찾아온것이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동무를 부르시오.어서 대회장으로 갑시다.》

일군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군복을 벗은 어제날 중대정치지도원을 전군의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들의 대회합이 진행되고있는 뜻깊은 장소로 불러주시였다니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하였다.

녀성제대군관은 자기가 어떻게 평양에까지 왔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영광의 시각을 앞두고 손등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옷깃을 바로 여미기도 하면서 가슴을 들먹이던 녀성제대군관은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것을 느끼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그에게로 다가오시는것이였다.

그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라고 목메여 부르며 그이께로 막 달려갔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눈물범벅이 되여 인사를 올리는 그를 반갑게 맞으시며 다정히 물으시였다.

《제대되여 당학교에서 공부한다지?》

녀성제대군관은 어제날 정치지도원의 자세로 씩씩하게 대답올리였다.

《올해 2월에 제대되여 당의 배려로 도당학교에서 공부하고있습니다.》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동무는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혁명대학을 졸업한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혁명군대의 군인정신과 군인기질로 일을 잘해서 앞으로 훌륭한 일군이 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어서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그와 그 자리에 있던 감나무중대 중대장을 자신의 곁으로 부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감나무중대의 전 정치지도원과 감나무중대 중대장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는 감격적인 화폭이 펼쳐졌다.

녀성제대군관은 그토록 바라던 소원을 이룬 행복감에 어쩔바를 몰랐다.

하여 그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해빛같은 존안을 우러르며 목메여 말씀드리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감나무중대에 남기신 사랑의 약속을 이렇게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격정에 겨워하는 그를 다정하게 바라보시며 오늘 내려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하자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일군들에게 《며칠동안 대회참가자들과 같이 참관을 하게 하시오.》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이 사실을 그가 속해있는 당조직에 알려주고 그가 내려갈 때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가게 하라고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이르시였다.

순간 녀성제대군관은 또다시 격정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자기들을 위해 하신 사랑의 약속을 소중히 간직하시였다가 전군의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들의 대회합이 열린 뜻깊은 장소에서 지켜주신것만도 가슴뜨거운 일인데 몇달전에 제대되여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마음속아쉬움까지 헤아려주시니 그는 이 세상 복이란 복은 자기가 다 받아안은것만 같았다.

녀성제대군관은 뜨거운 눈물속에 이렇게 절절히 아뢰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정말 고맙습니다.감나무중대 정치지도원이였던 저는 한생 겉도 속도 다 붉은 감처럼 변함없이 총비서동지만을 따르는 충신이 되겠습니다!》

일군들도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였다.

끝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잠간 인연을 맺으신 사람들도 잊지 않으시고 따뜻한 정을 기울이시며 사랑에 사랑을 더해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오늘은 한 녀성중대에 남기신 약속을 지켜주시며 대해같은 은총을 베풀어주시니 정녕 그이의 품에 안겨사는 우리 인민은 얼마나 복받은 인민인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잊지 않고 지켜주신 사랑의 약속,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이 이야기는 친어버이정으로 온 나라 인민을 보살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하늘같은 믿음과 열화같은 사랑, 그이의 위인적풍모를 전하는 감동깊은 전설로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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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두번이나 미루어진 졸업식

주체112(2023)년 4월 19일 로동신문

 

혁명가유자녀들의 친아버지가 되시여 그들을 주체혁명의 피줄기를 꿋꿋이 이어갈 믿음직한 핵심골간후비들로 키우시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사랑에 떠받들려 태여난 감명깊은 이야기들은 그 얼마이던가.

지난해에 성대히 진행된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창립 75돐 기념행사와 더불어 꽃펴난 이야기중에서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가슴뜨거운 일화를 전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혁명가유자녀들의 영원한 친어버이이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혁명가유자녀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봐줄것입니다.》

주체111(2022)년 8월 어느날이였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창립 75돐을 앞두고 여느때없이 들끓었고 일군들과 교직원, 학생들은 끝없는 환희에 넘쳐 창립일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하지만 창립일전에 졸업식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접한 졸업반학생들은 기념행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아쉬움으로 섭섭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학원에 입학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받아안은 어머니당의 사랑은 그 얼마였던가.대를 두고 길이 전할 남다른 영광과 행복을 다 받아안은 그들이였건만 학원의 발전행로에 뜻깊은 날로 아로새겨질 창립 75돐 기념행사에까지 참가하고 졸업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그 누구의 마음속에나 깊이 간직되여있었던것이다.그러나 교육강령에 따르는 국가적인 조치는 어쩔수 없는것이여서 묵묵히 감수하여야만 했다.

바로 그러한 때 혁명학원의 일군들은 뜻밖의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졸업반학생들이 창립일전에 졸업하게 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졸업식을 미루더라도 그들을 기념행사에 참가시킬데 대한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는것이 아닌가.

이 사실을 전달받은 학원일군들의 심중에는 이름못할 격정이 고패쳤다.

(졸업식을 미루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입니까.)

이 땅의 천만자식들을 돌보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졸업반학생들을 위해 이런 특별조치까지 취해주시였으니 혁명학원 학생들에 대한 그이의 믿음과 기대가 얼마나 크나큰것인가를 다시금 절감하게 되는 뜻깊은 순간이였다.

이렇게 되여 10월 12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온 나라의 축복속에 성대히 거행된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창립 75돐 기념행사에는 졸업반학생들도 참가하게 되였다.

그날 모든 행사참가자들이 다 그러하였지만 특히 졸업반학생들의 감격은 비길데없이 컸다.기념행사에 참가한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데 꿈결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을 받아안았으니 그 기쁨과 격정을 무슨 말로 다 헤아리랴.

하지만 졸업반학생들은 더 크고 따사로운 사랑을 받아안게 될줄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4일이 지난 10월 16일, 그날은 졸업반학생들이 졸업식을 하고 새로운 혁명초소로 떠나게 되여있은 날이였다.

그런데 어이 알았으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며칠전 기념행사에 참석하시여 주말에 꼭 다시 오겠다고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또다시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아주실줄을.

너무도 꿈만같은 경사에 학원의 전체 교직원, 학생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만세의 환호를 올리고 또 올리였다.

그날 만경대혁명학원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학원의 교육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바쳐가시며 졸업반학생들의 격술훈련을 보아주신데 이어 권총실탄사격도 보아주시였다.학생들이 만점을 받았을 때에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선참으로 박수도 쳐주시고 사격묘리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그이의 모습은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그대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사격에 참가한 졸업반학생들과 함께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였다.

천만중하를 한몸에 걸머지시고 불철주야 로고를 바쳐가시는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혁명학원을 찾고 또 찾으시며 대해같은 사랑을 거듭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혁명학원의 지위와 역할을 그토록 중시하시며 학생들모두를 혁명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골간들로 키워주시려 마음쓰시는 그이의 숭고한 뜻이 다시금 가슴뜨겁게 미쳐와서였다.

혁명가유자녀모두를 자신의 살붙이로 여기시며 사려깊은 눈길로, 세심한 마음으로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헤아려주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사랑속에 꿈같은 행복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기념행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여 하급생들을 부러워하던 졸업반학생들, 한가슴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크고 따사로운 사랑을 거듭 받아안은 그들의 격정은 하늘에 닿았다.자기들이야말로 졸업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두차례나 찍은 졸업생들, 복중에 가장 큰 행복을 받아안은 행운아들이였던것이다.

허나 그때까지도 혁명학원 학생들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사랑이 얼마나 다심하고 웅심깊은것인지 누구도 헤아릴수 없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날 학생들이 인차 졸업한다고 하는데 사진을 빨리 뽑아 그들에게 안겨줄데 대하여서와 학원에 인차 명기소를 보내주겠으니 꼭 소고기를 먹이고 방학을 보내며 졸업도 시킬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그렇게 되여 학생들의 졸업식은 또다시 미루어지게 되였다.

두번이나 미루어진 졸업식,

이런 특전과 특혜를 받아안은 졸업반학생들에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는 만경대의 아들딸들을 친아버지의 심정으로 한점의 그늘도, 아쉬움도 없게 애지중지 품어 키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속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혁명일화이고 바로 여기에 우리 혁명의 원기둥, 원피줄이고 대동맥인 만경대혁명학원의 졸업생들에 대한 당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뜨겁게 어려있다.

그날의 혁명학원졸업생들은 백두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혁명의 전위에서 우리 국가의 강대성과 불패성을 떨치기 위해 자기의 온넋을 깡그리 쏟아부으며 가슴뜨거운 사랑과 믿음의 이야기를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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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민족의 영광과 긍지를 새겨주는 위인일화 : 순간에 밝혀내신 설계도면의 차이점

주체112(2023)년 3월 7일 로동신문

 

세계의 이름난 위인들치고 기억력이 뛰여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은 기억력에 있어서도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따를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비범한 관찰력과 통찰력, 분석력과 판단력, 과학적인 예견성은 그의 특출한 천품입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설계일군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중요건설대상의 설계도면을 검토해주신적이 있었다.

총건평이 수만㎡에 달하는 큰 건축물의 설계도면인지라 여간만 복잡하지 않았다.

설계도면을 한장한장 번져가시며 구체적으로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어느 도면의 한곳을 연필로 짚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이 부분은 전번에 볼 때와 좀 다르구만.》

설계일군은 깜짝 놀랐다.

그 도면으로 말하면 몇달전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아주신것이였다.그때 그이께서는 앞으로 시간이 있을 때 다시 보겠으니 더 연구하여 고칠것이 있으면 고쳐서 완성하라고 하시였다.

설계집단에서는 그동안 도면을 놓고 집체토론을 거듭하였으며 크게 제기되는것이 없는지라 그대로 보관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시 보아주시겠다는 련락을 받고 설계일군은 그것을 깨끗이 한통 복사하여가지고 왔었다.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 사연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모를 일이라고 입속말로 뇌이시고나서 그러나 이 부분 세부조직은 전번에 본 도면과 다르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누가 도면을 좀 고친것같은데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일군은 그 사연을 알아보았다.그랬더니 아닌게아니라 전번 도면과 약간 차이가 났다.도면을 복사할 때 접혔던 부분의 세부조직이 좀 어슴푸레해지다나니 그만 잘못 복사하였던것이다.

일군은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한번 보고는 표상이 안겨오지 않는 그처럼 방대한 건축물의 설계도면, 그것도 몇달전에 보신 도면의 한켠 구석에 그어져있는 선 하나에 이르기까지 기억하고계시는 그이의 기억력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신비한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 이뿐이랴.

어느해인가 중요당회의를 앞두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떤 자료에 대하여 물으신적이 있었다.

누구도 정확한 수자를 기억해내지 못하고있던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즉석에서 그 구체적인 수자를 보고드리시였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의 비상한 두뇌는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다고, 그의 지식창고에는 없는것이 없다고, 《고양이뿔》에 대한 자료도 있을런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당과 국가의 모든 사업을 돌봐야 하는 령도자에게 있어서 기억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의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의 기억력은 수없이 만났다 헤여지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생일은 물론 명인들과 그들이 남긴 업적, 크고작은 정치적사변들,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기술적발명들과 모든 창조물들의 기념비적의의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었다.

하다면 우리 장군님의 기억력의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에 대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과 혁명앞에 지닌 무거운 책임감은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라도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기억하게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당과 혁명앞에 지닌 책임감, 이것으로 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같은 정력으로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시였고 비상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모든것을 기억하시고 혁명과 건설에 구현해나가신것 아니랴.

순간에 밝혀내신 설계도면의 차이점.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비상한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걸출한 위인을 모시였던가를 다시금 새겨주며 태양민족의 영광과 긍지를 더해주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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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민족의 영광과 긍지를 새겨주는 위인일화 : 단 몇시간만에 집필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

주체112(2023)년 2월 7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비상한 탐구력으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여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시고 김일성주의가 자주시대의 위대한 지도사상으로 더욱 빛을 뿌리게 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불후의 고전적로작《주체철학에 대한 옳바른 관점과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를 집필하시던 때에 있은 이야기는 인류가 칭송하는 사상리론의 대가이신 우리 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을 천만의 가슴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계시던 주체79(1990)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자정이 훨씬 넘을 때까지 일군들과 함께 일련의 문제들과 그 해결대책을 협의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행한 일군들에게 어서 돌아가 쉬라고 이르시였다.그리하여 일군들은 제각기 흩어져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였다.일군들은 여느때와 달리 두툼한 종이묶음을 옆에 끼고 방에 들어서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무슨 종이묶음일가?)

일군들은 한결같이 이런 의문을 안고 위대한 장군님께 아침인사를 올리였다.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시려는듯 상우에 종이묶음을 내려놓으시며 자신께서는 지난밤에 동무들을 돌려보내고 글을 썼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지고오신 원고를 읽기 시작하였다.자자구구 주옥같은 명제로 일관되여있는 원고는 주체철학의 독창성이 과학리론적으로 깊이있게 론증되여있는 그야말로 대걸작, 대명작이였다.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심오한 철학적문제를 다룬 이런 훌륭한 로작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집필되였다는것이 참으로 충격적이였고 상상을 초월했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 한 일군이 스스럼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시면서 그처럼 깊이있는 로작을 어떻게 그리도 빨리 쓰시였는가고 물음을 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미소를 지으시다가 비결을 알고싶어하는 일군들의 심정을 헤아리시고는 이렇게 이야기하시였다.

자신에게는 글쓸 시간이 따로 없는데 써야 할 글은 많다고,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으로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그것은 일을 하면서 머리속으로 글을 쓰는것이라고.

일군들은 한없는 경탄과 흠모심을 안고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렀다.

그것은 일을 하면서 머리속으로 글을 쓴다는 말은 태여나서 처음 들어보았기때문이였다.

눈이 휘둥그래진 그들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자신께서는 일을 하면서 늘 사색한다고, 그러다가 현실적으로 해답을 주어야 할 문제가 제기되면 그때부터 일을 하면서 머리속으로 글을 쓴다고, 밥을 먹으면서도 문장을 만들고 길을 걸으면서도 문맥을 이어나가며 차안에서도 론제를 세우고 사업을 토의하면서도 짬짬이 내용을 전개해나간다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긴장하게 사업하시면서 동시에 저술사업을 하시였던것이다.결국 절세위인의 특출한 저술력은 그이의 정력적인 심혈과 로고의 산물이였다.

일군들은 그 어느 위인도 따를수 없는 출중한 저술력을 지니시고 인류사상사에 영원히 빛날 거대한 사상리론적재부를 마련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심과 함께 그이의 로고가 가슴에 어려와 저도 모르게 눈굽을 적시였다.

걸출한 사상리론가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사람을 경탄시키는 놀라운 속도로 불후의 고전적로작을 발표하신 사실은 이뿐이 아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강령을 선포하신 다음날에 불후의 고전적로작《당선전일군들은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를 발표하시였으며 그 이틀후에는 불후의 고전적로작《사설혁명을 일으킬데 대하여》를, 또 엿새후에는 불후의 고전적로작《당사업에서 낡은 틀을 마스고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하여》를 발표하시였다.

그처럼 짧은 기간에 여러편이나 되는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련속 내놓으시였다는것은 경이적인 사실이 아닐수 없다.이를 어찌 우리 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지와 비상한 집필능력의 결과이라고만 하랴.

혁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 주체혁명위업수행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실 고결한 헌신성을 지니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다르게 뛰여난 저술능력을 발휘하시여 조국과 혁명의 만년재보를 마련하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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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새해 첫날에 보아주신 새 교복견본

주체111(2022)년 10월 4일 로동신문

 

수도 평양으로부터 두메산골, 외진 섬마을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새 교복을 산뜻하게 차려입고나선 모습으로 하여 우리 조국이 더욱 밝아지고있다.

우리 인민모두가 눈시울을 적시며 바라보는 새 교복, 거기에는 어떤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후대들을 위한 사업은 우리 당의 제일중대사입니다.》

지난 1월 1일 당중앙위원회의 한 일군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온 한해 불철주야 로고를 바치시고 한해가 저무는 마감날까지도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전원회의를 지도하시느라 분망한 시간을 보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무슨 일로 새해 첫날에 찾으실가 하는 생각을 안고 일군은 한달음에 그이께로 달려갔다.

삼가 옷깃을 여미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던 일군은 그만 못박힌듯 한자리에 굳어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학생들의 새 교복견본을 보시며 환하게 웃고계시는것이 아닌가.

일군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잠시후 일군에게 시선을 돌리신 그이께서는 반가운 기색을 지으시며 어서 오라고 다정히 이르시였다.그러시고는 주런이 걸려있는 소학교와 초급, 고급중학교 학생들, 대학생들의 새 교복견본들을 바라보시며 전국의 학생들에게 만들어 입힐 새 교복의 견본들을 잘 만들었다고 거듭 치하하시였다.

일군이 송구함을 금치 못해하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소학교 녀학생들의 교복견본과 고급중학교학생들의 봄가을교복견본을 가리키시며 웃옷을 제낀깃양복으로 만들고 깃의 테두리에 줄장식을 하였는데 보기 좋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새로 만든 교복견본들이 다 좋은것만큼 그 견본대로 교복을 성의있게 잘 만들어 우리 학생들에게 입혀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일군에게는 잊지 못할 나날이 되새겨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학생들의 새 교복도안을 창작할데 대하여 말씀하신것은 두해전인 주체109(2020)년 8월 15일이였다.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학생들에게 교복을 다시 만들어 입힐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소학교와 초급, 고급중학교 학생들의 교복도안을 잘 만들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후대사랑의 뜻을 정히 받들어 새 교복도안을 창작하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지던 어느날 창작지도일군들과 창작가들은 총비서동지께서 보내주신 사진자료들을 받아안게 되였다.

그들의 가슴가슴은 이름할수 없는 흥분으로 세차게 높뛰였다.

새롭고 특색있는 도안을 내놓을 열의를 안고 창작에 달라붙었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높은 뜻에 자기들의 지혜와 재능이 미처 따라서지 못하여 마음속고충도 컸던 그들이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새 교복도안창작에 필요한 사진자료들까지 친히 한장한장 골라 보내주시였으니 그들의 가슴이 어찌 격정으로 설레이지 않을수 있으랴.

우리 학생들을 세상이 보란듯이 내세워주시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깊은 밤에도, 이른새벽에도 보고 또 보시였을 사진자료들앞에서 그들은 오래도록 눈길을 뗄수 없었다.

그렇듯 세심한 령도의 손길이 있어 창작가들은 수많은 도안들을 손색없이 창작하여 내놓을수 있었다.

나라의 천만사로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들이 보고드린 도안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였다.

그러시고 친히《소학교는 1여름, 4봄가을안으로, 초급중학교는 2안으로, 고급중학교는 4안으로, 대학은 3안으로 하는것이 좋겠다.》라는 친필을 남기시였다.그날은 주체110(2021)년 8월 28일이였다.

잊지 못할 그 사연을 깊은 감회속에 더듬어보는 일군의 귀전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또다시 들려왔다.

《우리 학생들이 이런 새 교복을 입고나서면 학부형들도 좋아하고 온 나라가 환해질것입니다.》

온 나라가 환해진다!

학생들의 새 교복도안을 놓고 그렇듯 명절날, 휴식날도 다 바치시며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면서도 새 교복을 입고 좋아할 학생들과 학부형들을 생각하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는 위대한 어버이, 세상에 이런분이 또 어데 계시랴.

이런 생각으로 일군은 시종 가슴을 들먹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정깊은 사랑속에 새롭고 특색있는 도안이 완성되였을 때 모두가 기뻐하였지만 그를 비롯한 해당 부문 일군들은 걱정도 없지 않았다.

사실 온 나라 학생들에게 새 교복을 해입히자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야 했다.더우기 세계적인 보건위기로 하여 나라의 경제사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어려웠다.

하여 일군들은 새 교복생산에 필요한 자금과 관련한 문제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보고드리면서 죄스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하지만 나라의 자금사정이 아무리 긴장하다고 하여도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새 교복과 가방, 신발을 만들어 입히시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의지에는 추호도 드팀이 없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전원회의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에서는 아낄것도 주저할것도 없다고, 력사상 처음으로 아이들의 교복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것을 당과 국가의 정책으로 내세우신 수령님과 장군님의 마음까지 합쳐 교복생산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공업부문에 막대한 자금을 지출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일군이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감격을 금치 못하고있는데 그이께서는 그를 정깊게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학생들에게 새 교복을 다 해입히면 정말 한시름을 놓겠습니다.》

순간 일군은 목이 메여올랐다.

정녕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심중에는 자식들을 잘 키워 내세우고싶어 마음쓰는 이 땅의 천만어머니들의 시름이 꽉 차있는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무엇인가 한가지라도 더 좋은것을 안겨줄 때 마침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시름을 덜게 된 행복감으로 눈물짓는 어머니처럼 학생들에게 멋진 새 교복을 해입히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정말 한시름 놓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진정 그이는 온 나라 아이들을 한품에 안아 나라의 기둥감들로 훌륭히 키워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이시다.

새해 첫날 학생들의 새 교복견본을 친히 보아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뜻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일군에게는 환히 보이는것만 같았다.온 나라의 거리마다에 꽃송이마냥 활짝 피여난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그로 하여 더욱 밝아질 내 조국의 모습이.(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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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앞세워주신 항일의 로투사들

주체111(2022)년 8월 21일 로동신문

 

혁명선배들을 끝없이 존대하고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도덕의리에 받들려 태여난 감명깊은 이야기들은 그 얼마이던가.

그가운데는 제4차 전국로병대회가 열린 주체104(2015)년 7월 25일에 있은 가슴뜨거운 사실도 있다.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대회장으로 나가시기 전에 먼저 만나주신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항일의 혈전만리도 헤치고 가렬한 전화의 언덕도 넘으며 한생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로투사들이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그들이 기다리고있는 어느한 방에 들어서시자 투사들은 감격에 겨워 어쩔바를 몰라하였다.그러는 그들을 자애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삼륜차에 앉아있는 항일혁명투사 황순희동지에게로 다가가시였다.

《할머니, 건강하십니까?오래간만입니다.》

이렇게 다정히 말씀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두손을 꼭 잡는 황순희동지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맺히였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뵈올 때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다시 뵈옵는것만 같아 크나큰 격정을 누를길 없었던 녀투사였다.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끝없이 안겨주시는 절세의 위인의 해빛같은 사랑이 그 순간 더욱 후덥게 어려와 녀투사는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러는 녀투사의 눈물을 몸소 손수건으로 닦아주시며 각별한 정을 부어주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한 일군에게 오늘 대회가 오랜 시간 진행될수 있는데 할머니가 오래 앉아있어도 일없겠는가고, 요새 건강상태가 어떤지 근심이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진 일군이 목메인 소리로 일없다고 대답올리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시는듯 일군들에게 모두 대회장으로 나가자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대회장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뜻밖에도 로투사들을 먼저 앞세우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것은 아직까지 있어보지 못한 일이였기때문이다.온 나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성대하게 열린 뜻깊은 대회장의 주석단으로 어찌 전사들이 먼저 나갈수 있겠는가.

그이께로 다가간 한 일군이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앞에서 나가셔야 한다고 정중히 말씀올리였다.로투사들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경애하는 그이께서 먼저 대회장으로 나가주실것을 간절히 바랐다.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일군들에게 항일혁명투사들을 앞세우라고 다시금 이르시고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선배들을 내세우는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의리입니다.오늘은 마땅히 혁명의 1세대들인 항일의 로투사들이 앞장에서 나가게 하여야 합니다.》

절세의 위인의 숭고한 도덕의리의 세계에 로투사들은 가슴이 후더워올라 두눈을 슴벅이였다.일군들도 눈굽이 젖어들었다.

격정에 넘쳐있는 좌중을 둘러보시며 그이께서는 어서 대회장으로 나가라고, 우리의 귀중한 로병동지들이 기다린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삼륜차에 앉은 혁명의 1세들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보다 먼저 대회장으로 들어서는 감명깊은 화폭이 펼쳐지게 되였다.

이제나저제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등단하실 시각을 기다리던 전쟁로병들은 그이보다 먼저 주석단으로 나오는 항일의 로투사들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찌 대회참가자들만이였던가.온 나라 인민이 그 뜻깊은 화폭을 접하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도덕의리의 세계를 다시금 뜨겁게 절감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야말로 혁명선배들을 제일로 존대하고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인간, 한없이 자애로운분이시다!

바로 이것이 그날의 화폭앞에서 대회참가자들과 일군들, 아니 천만인민모두가 마음속으로 터친 격정이였다.

진정 도덕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여 혁명선배들의 삶이 값높이 빛나고 이 땅우에는 공산주의적미덕과 미풍이 활짝 꽃펴나는것 아니랴.(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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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새로 생겨난 무궤도전차운행로선

주체111(2022)년 6월 15일 로동신문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110돐이 되는 주체111(2022)년의 뜻깊은 태양절날 아침부터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 앞도로로 무궤도전차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구슬다락 경루동의 주인들이 우리 무궤도전차운행로선이라고 정담아 부르는 이 새 운행로선에는 어떤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건설이 한창이던 주체110(2021)년 8월 20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비내리는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건설장을 찾으시였다.

착공한지 불과 몇달만에 독특한 자태를 드러낸 다락식주택구의 전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자연기복을 그대로 살리면서 주택구를 형성하니 정말 보기 좋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몸소 우산을 드시고 가파로운 비탈길을 앞장에서 걸으시면서도 인민들에게 새 문명을 또 하나 안겨주게 된것이 못내 만족하시여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일군들이 솟구치는 격정속에 자애로운 그 영상을 숭엄히 우러르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앞으로 이곳에서 살게 될 주민들이 주택지구를 에돌지 않고 집에서 곧바로 내려와 교통수단을 리용할수 있게 걸음길도 잘 내주고 교통수단배치도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에서 살게 될 인민들의 교통상편리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신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들의 뇌리에 지난 3월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이곳에 새로 건설할 다락식주택구형성안을 지도해주시던 때의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날 형성안과 관련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문득 여기에서 가까운 지하철도역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물으심에 일군들은 한순간 어리둥절하였다.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건설에 대하여 말씀하시다가 왜 갑자기 지하철도역에 대하여 물으시는지 영문을 알수 없었던것이다.

그런 속에 한 일군이 개선역이 있다고 대답을 올리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곳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시는듯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개선역까지는 거리가 너무 먼것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때 다른 일군이 승리역도 있다고 말씀드리였다.그러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 대답이 반가우신듯 그곳까지는 몇분 걸리는가고 재차 물으시였다.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존안에 못내 아쉬운 표정이 어리였다.

《여기에서 지하철도를 리용하자면 승리역이나 건설역을 리용해야 하겠는데 그 역들까지는 10분이상 걸어야 갈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일군들에게 앞으로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앞을 지나는 북새강안도로에 새 무궤도전차운행로선을 내와야 하겠다고 이르시는것이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일군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새 운행로선을 내오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세심히 밝혀주시였다.

며칠후 다락식주택구가 일떠서게 될 현지에 또다시 나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 건설의 중요성과 시공단위들이 도시주택건설의 본보기적경험을 창조할데 대하여 간곡하게 가르쳐주시다가 전번에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앞으로 로선뻐스가 다닐수 있게 하라고 하였는데 로선조직을 어떻게 하고있는가에 대하여 다시금 알아보시였다.

일군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뜻을 받들어 새 무궤도전차운행로선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하고있는 사실을 보고드리였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화력-서평양무궤도전차로선을 보통문옆에서 돌려 무궤도전차가 북새강안거리와 영웅거리를 지나 지하철도 혁신역쪽으로 가게 하면 된다는것과 그렇게 하면 북새강안거리와 영웅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이 교통운수수단을 리용하기가 보다 편리해질것이라는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일깨워주시였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하나하나 찍어주시는 운행로선을 수첩에 또박또박 적어넣는 일군들의 가슴은 불덩이를 안은듯 달아올랐다.

그해 정초 력사적인 당 제8차대회에서 사회주의건설의 새 승리를 위한 웅대한 작전과 설계도를 펼쳐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 거창한 실천투쟁을 진두지휘하시며 그이께서 친히 관심하시고 세심히 지도해주시고 직접적으로 돌보셔야 할 나라일, 혁명사업은 그 얼마나 많던가.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자리가 있는 보통강강안지구에 평범한 근로자들을 위한 희한한 다락식주택구를 일떠세울것을 발기하시고 건설의 방향과 성과적인 수행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는것만도 가슴뜨거운 일인데 앞으로 새 주택구에서 살게 될 주민들의 교통문제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안으시고 그 구체적인 로선까지 정해주시니 인민을 위하시는 우리 총비서동지의 하늘같은 은정의 세계는 정녕 어디까지인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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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혁명사적교양실에서의 30분

주체111(2022)년 5월 9일 로동신문

 

우리 국가의 전면적발전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시간은 그 1분1초가 천금같이 귀중하다.

흐르는 분과 초를 쪼개며 정력적인 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이 나라의 많은 일터를 찾으실 때마다 혁명사적교양실에 들리시여 우리모두가 한생토록 간직해야 할 혁명의 철리를 가르쳐주고계신다.

주체103(2014)년 12월 19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현지지도하실 때였다.

만부하의 동음높은 공장의 여러 생산현장을 커다란 만족속에 돌아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혁명사적교양실로 가보자고 하시였다.

순간 공장일군들의 마음속충동은 컸다.

바로 1년전에도 공장을 찾아오시여 혁명사적교양실과 연혁소개실을 오래동안 돌아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전하는 사진문헌들을 더 잘 모실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였다.

강사의 인사를 반갑게 받으시며 혁명사적교양실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현관홀에 환하게 새로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사진문헌을 바라보시면서 천연색사진문헌으로 모시니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하는 사진문헌들을 깊은 감회속에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한상의 사진문헌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주체45(1956)년 12월 31일 사랑하는 딸자식들과 함께 새해를 맞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공장설맞이모임에 참석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고 로력혁신자들을 축하해주시는 사진문헌이였다.

그날의 감동깊은 화폭을 그려보시는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 사진문헌앞에서 퍼그나 오래동안 서계시였다.

수행한 일군들도 숭엄한 감정에 잠겨 뜻깊은 사진문헌을 우러르고있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장당위원회 확대회의를 지도하시는 사진문헌이 있지 않습니까?》

공장의 녀성당일군이 반색을 하며 《예, 2호실에 모셔져있습니다.》라고 대답올리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따라 2호실을 향하여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공장일군들은 북받치는 격정을 누를길 없었다.

그 사진문헌으로 말하면 주체51(1962)년 1월 6일 어버이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에서 공장당위원회 확대회의를 지도해주시는 력사적인 사진문헌이였다.

그런데 1년전 공장을 찾아오시여 혁명사적교양실을 돌아보실 때 이미 보아주신 그 사진문헌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마음속에 그렇듯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고 생각하니 수행한 일군들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회의장을 울리는 어버이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금시 울려나오는듯한 사진문헌앞에서 걸음을 멈추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공장 사업을 얼마나 중시하시였으면 공장일군들을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에 부르시여 공장당위원회 확대회의를 지도해주시였겠는가고 마디마디 깊은 의미를 담아 말씀하시였다.

수첩을 든 손을 꼭 모아잡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러르는 녀성당일군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수행한 일군들이 받은 충격도 컸다. 그들중에는 전번 현지지도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이 혁명사적교양실을 돌아본 일군들도 있었다.하지만 그들중에 어느 누가 저 력사적인 사진문헌을 우리 총비서동지처럼 그렇듯 가슴깊이 새기고있었던가.

온 나라의 수많은 일터들을 찾으실 때마다 혁명사적교양실에 꼭꼭 들리군 하시는 우리의 총비서동지, 그 많은 혁명사적교양실들에 모셔진 한상한상의 사진문헌들이 그이의 마음속에 얼마나 소중히 자리잡고있는가를 다시금 절감하게 하는 감동깊은 순간이였다.

격동과 자책의 감정에 휩싸여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정을 담아, 뜻을 담아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혁명사적교양실에 모셔져있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진문헌들과 령도사적들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분들을 수령으로 모시고 혁명을 하였으며 우리 일군들이 어떤 인민관을 지니고 일해나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입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동행한 일군들은 수첩이 아니라 심장에 새기고 또 새기였다.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일터마다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들의 령도업적을 어떻게 간직하고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스승의 강의는 계속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이른새벽에 거듭 걸어오신 전화

주체111(2022)년 4월 2일 로동신문

 

우리 조국에 흐르는 날과 날들은 후대들의 행복을 위해, 밝은 웃음을 위해 끝없이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크나큰 헌신과 로고의 자욱자욱을 뜨겁게 전하고있다.

주체110(2021)년 9월 15일도 그러한 날중의 하루이다.

이날 이른새벽 평양시당위원회의 책임일군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를 받게 되였다.

다정하신 음성으로 그의 건강에 대해 물어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방금 평양시에서 시험생산한 젖가루를 풀어 맛보았는데 우유의 고유한 맛과 색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질적측면에서 미흡한 점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순간 책임일군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이 새벽에 시제품젖가루를 몸소 맛보시다니?!)

밀물처럼 차오르는 격정에 책임일군은 눈앞이 흐려졌다.

평양시에서 젖가루생산을 위한 설비제작이 본격화된것은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전원회의가 있은 후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젖제품을 비롯한 영양식품을 공급하는것을 당의 정책으로 수립할데 대하여 언급하시고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여주시였다.

힘겨울수록 어린이들에게 정성을 더 쏟아붓는 우리 당의 숭고한 후대사랑의 뜻을 높이 받들고 평양시에서는 한달동안에 여러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침내 새로운 젖가루생산설비를 제작하였고 첫 시제품을 생산하여 당에 보고드리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이른새벽에 그 시제품젖가루를 친히 맛보시고 전화를 걸어오실줄 어찌 알았으랴.

나라의 천사만사를 돌보시느라 늘 밤을 지새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로고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니 일군은 마음속에 납덩이가 들어앉는것같았다.

그가 너무도 죄송스러워 자신을 자책하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미 생산한 젖가루가 남아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식료공업부문을 비롯한 해당 부문 일군들이 왜 그런 부족점이 나타나는가 하는것을 연구해보도록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평양시당위원회 집행위원들도 그 젖가루를 풀어 마셔보게 하라고 간곡히 이르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가르치심을 정중히 받아안고 송수화기를 놓은 책임일군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어린 자식에게 음식을 먹일 때 뜨겁지는 않는지, 간은 맞는지 제가 먼저 맛보고 먹이는것이 어머니의 마음일진대 우리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처럼 친부모의 심정으로 시제품젖가루를 맛본적이 있었던가.과연 언제면 그이의 후대사랑의 숭고한 뜻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따를수 있겠는가.

책임일군의 귀전에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전원회의의 높은 연단에서 모든 일군들이 어린이들의 친부모가 된 심정에서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을 잘 먹이는데 각별한 관심을 돌리며 당의 육아정책관철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것으로써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 대한 충실성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절절한 음성이 뜨겁게 메아리쳐왔다.

책임일군이 자신의 사업을 돌이켜보며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고있을 때 다시금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또다시 전화를 걸어오신것이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젖가루를 풀어본 상태에 대하여 다시금 말씀하시면서 젖가루생산에서 나서는 기술적문제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그러시면서 우유의 맛과 색갈, 풀림도를 다시 검토해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것을 찾아 보고하라고 이르시였다.

후대들을 위하시는 숭고한 사랑의 세계가 마디마디에 어려있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책임일군의 가슴은 후덥게 달아올랐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러시고도 놓친 점이 있을세라 마음쓰시며 원인을 찾고 설비를 완성한 다음 생산에 들어갈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충성의 맹세로 가슴끓이며 꼭 훌륭한 젖가루를 생산해내겠다고 대답올리는 책임일군에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젖가루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먹이기 위한것이므로 자그마한 부족점도 없이 잘 만들어야 합니다.》

자그마한 부족점도 없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것은 그 무엇이든지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제일 좋은것이여야 한다는 위대한 어머니사랑이 응축된 뜨거운 당부가 전류를 타고 책임일군의 심장속에 새겨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전화를 놓으신 후 시계를 바라본 책임일군은 목이 꽉 메였다.

시계바늘은 새벽 4시 20분을 가리키고있었다.

그는 가슴가득 차오르는 격정을 안고 창가에 다가갔다.

이 나라 천만자식을 품에 안아 키워주는 위대한 어머니의 불면불휴의 로고속에 또 하루 조국의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잊지 못할 그 새벽에 이어 평양시당 책임일군에게 젖가루생산과 관련하여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세심한 가르치심은 그 얼마였던가.이렇듯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거듭되는 지도속에 평양시에서는 짧은 기간에 우리 어린이들에게 먹일 표준화된 젖가루를 생산하는데 성공하게 되였다.

이른새벽에 거듭 걸어오신 사연깊은 전화!

정녕 그날의 전화종소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젖제품 하나도 조직자, 생산자, 공급자의 직분에 앞서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심정으로 정히 대해야 한다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고귀한 뜻을 일군들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새겨주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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