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3月 24th, 2020
김정일 새 세대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시키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일군과 한 담화 주체58(1969)년 3월 24일-
예술영화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가 괜찮게 되였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잘되였지만 설화가 지내 긴감이 납니다. 이 영화를 만들 때 설화처리에 주목을 적게 돌리다보니 그것을 놓쳤습니다. 영화에서 설화가 지내 길면 보는 사람들에게 지루한 감을 주고 필림이나 랑비하였지 좋을것이 없습니다.
예술영화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에 나오는 노래들이 좋습니다. 위대한 수령님 탄생 57돐경축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에서 예술영화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에서 나오는 노래 《빛나는 조국》을 효과적으로 쓰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노래 《빛나는 조국》은 영화의 주제사상을 더 강조해줍니다. 이 노래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의 준엄한 혈전만리, 눈보라만리를 헤치시면서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고 오늘과 같은 빛나는 조국을 세워주신 그 고마움이 조국에 대한 긍지와 함께 뜨겁게 안겨옵니다.
영화에서 음악과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 좋은 노래가 들어가면 정서적감흥이 훨씬 높아집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기도 하고 평온하게도 하고 우아하게도 합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선률과 장단에 태운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음악은 사람들이 눈으로 볼수 없고 말로는 표현할수 없는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에까지 침투하는 힘을 가지고있습니다. 음악을 잘 알면 사람들의 감정, 내면세계의 움직임을 더 잘 알수 있습니다. 당일군들이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민감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도 음악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일군들이 음악을 잘 알고 음악적감각을 가지고있으면 군중의 사상감정과 호흡을 제때에 예민하게 육감적으로 느끼고 포착하는데 도움을 받을수 있으며 대중의 정치적열의도 남먼저 능숙하게 발동할수 있습니다.
영화배우들은 노래도 부를줄 알아야 합니다.
예술영화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에서도 다른 영화들에서처럼 주인공의 노래를 가수가 대신하는데 역형상을 맡은 배우가 직접 부르게 하면 더 좋았을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을 보니 노래를 잘 부르는 배우가 별로 없습니다. 영화배우가 극장무대에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망신입니다. 영화배우들이 노래도 다 잘 부를수 있도록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예술영화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에서 노래 《빛나는 조국》을 주인공이 직접 부른다면 사회주의조국의 공민된 주인공의 절절한 감정이 더 진하게 안겨올것이며 관중은 어머니조국을 세워주신 수령님의 은덕에 대하여 그리고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하여 백두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싸워오신 수령님의 로고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혁명정신을 더 강렬하게 심장으로 느낄것입니다.
우리는 조국에 대한 영화를 한편 보거나 노래를 하나 불러도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된 혁명정신, 백두의 혁명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나라는 존엄있는 사회주의조국으로 세계에 빛을 뿌리는것입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우리 조국의 혁명정신입니다. 조국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것도 애국심과 백두의 혁명정신을 인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종목에 예술영화 《붉은선동원》에 나오는 노래 《사회주의락원일세》를 반드시 넣어야 하겠습니다. 이 노래는 명곡입니다. 노래 《사회주의락원일세》를 들으면서 사색에 잠기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 대한 자랑과 더불어 조국을 찾기 위하여 온갖 간난신고를 극복하며 싸워오신 수령님의 혁명투쟁업적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그 어떤 난관도 맞받아 뚫고나가는 돌격정신이며 억천만번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이며 자기 손으로 나라를 찾고 사회주의락원을 세우겠다는 자주의 정신입니다.
현시기 혁명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새 세대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시키는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을 가슴에 안지 못하고서는 조국의 귀중함을 알수 없으며 장차 우리 나라를 훌륭하게 건설해나갈수 없습니다.
조선의 혁명가들이 후대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가장 크고 귀중한 선물은 통일된 사회주의조국입니다. 새 세대들이 조국을 영원히 빛내여나가게 하려면 그들에게 백두의 혁명정신부터 심어주어야 합니다. 실로 백두의 혁명정신은 혁명의 선배들이 새 세대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재부가운데서 가장 귀중하고 값진 재부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조국의 통일도 이룩할수 있고 후손만대의 번영도 이룩할수 있습니다.(전문 보기)
김정일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의 사업을 현지지도하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주체89(2000)년 3월 22일, 24일, 27일-
량강도는 우리 혁명의 사적들이 많은 유서깊은 곳입니다. 량강도의 그 어디에나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이 있습니다. 량강도에는 백두산밀영을 비롯한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밀영들과 숙영지들이 많고 보천보전투, 무산지구전투와 같은 중요한 전적지들이 있습니다.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면 량강도 김정숙군에는 김정숙어머님의 혁명사적이 있고 김형직군에는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사적이 있습니다. 량강도에는 혜산사건으로 하여 희생된 국내혁명가, 애국자의 묘도 많습니다. 량강도는 온 도가 혁명전통교양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혁명의 재보들로 가득찬 대로천박물관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량강도 백두산지구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령님의 혁명활동사적이 집중되여있는 혁명의 성지이며 혁명전통교양의 중요한 거점입니다. 백두산지구에는 수령님의 거룩한 혁명활동사적이 많을뿐아니라 이 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꾸리시려는 수령님의 깊은 뜻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지난 시기 우리 당은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꾸리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가 오늘과 같이 대로천혁명박물관으로, 혁명전통교양의 믿음직한 거점으로 훌륭히 꾸려지게 되고 그에 대한 영구보존체계가 철저히 서게 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혁명사적사업은 우리 당이 직접 맡아 지도한 때로부터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대에 우리 나라에서 혁명전적지들과 혁명사적지들을 발굴고증하여 꾸리는 사업을 크게 벌렸는데 그때에 전국적범위에서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건설을 많이 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혁명사적에 대한 관리체계와 학술연구체계, 혁명사적강사교육체계가 정연하게 서게 되였습니다. 세계에 혁명사적관리체계와 혁명사적과 관련한 학술연구체계, 혁명사적강사교육체계가 우리 나라만큼 정연하게 선 나라는 아마 없을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자랑할만 한 일입니다.
나는 이번에 백두산지구에 와서 백두산밀영, 사자봉밀영, 청봉숙영지, 삼지연대기념비, 베개봉숙영지, 건창숙영지, 신사동혁명전적지, 대홍단혁명전적지, 무포숙영지를 돌아보았습니다.
백두산밀영에 오래간만에 와보았는데 눈덮인 혁명전적지의 풍경이 참으로 볼만 합니다. 백두산밀영고향집에 세운 수령님의 친필송시비가 아주 품위있게 잘되였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비들가운데서 제일 잘된것 같습니다. 친필송시비가 마음에 듭니다. 수령님의 필체는 정말 독특합니다. 수령님의 필체는 보면볼수록 명필중의 명필입니다. 수령님의 친필송시비를 세운 위치도 좋고 비문글자에 색칠을 하지 않으니 더 무게가 있어보입니다. 사적비들과 현지교시판들에 새긴 글자에 금색이나 붉은색을 칠하면 자연미가 나지 않고 무게도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돌로 만들어 세우는 혁명사적비와 유래비, 현지교시판의 글이 친필송시처럼 길지 않을 경우에는 색칠을 하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글이 긴 경우에는 색칠을 하지 않으면 글자를 가려보기 힘들수 있을것입니다. 친필송시비에 새긴 글자의 깊이가 2cm이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깎이지 않을것입니다. 수령님께서 1993년 8월 친필송시비앞에서 강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면서 《내가 동무들과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것은 김정일동지의 령도를 잘 받들라는 의미에서이다, 이것이 나의 부탁이다.》라고 하시였다는데 정말 가슴뜨거운 말씀입니다. 대학생답사자들이 백두산밀영의 대원실벽에 걸려있는 《모두다 공부하자 지식은 황금보다 유력하다》라는 구호를 보고 더 많이 배워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겠다고 결의를 다진다는데 좋은 일입니다.
삼지연대기념비는 확실히 걸작입니다. 삼지연대기념비에 모신 수령님의 동상을 아주 잘 형상하였습니다. 만수대창작사에서 삼지연대기념비에 모실 수령님의 동상을 형상할 때 내가 직접 나가 지도하였습니다. 웅장한 화강석조각상 《진격의 나팔수》도 잘 형상하였습니다. 《진격의 나팔수》는 돌격나팔을 불면서 막 앞으로 내달리는것 같습니다. 《진격의 나팔수》는 국보적의의를 가지는 세계적인 걸작입니다.
베개봉숙영지는 수령님께서 일행천리전술로 대낮에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행군하여 로은산지구로 진출하며 그 일대의 적들을 소멸하고 군중정치사업을 벌릴데 대한 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신 곳입니다. 전적지주변의 이깔나무들이 다 미끈하게 자랐는데 정말 멋있습니다.
무포숙영지는 경치좋은 곳입니다. 무포라는 지명을 불멸의 혁명업적과 숭고한 뜻을 안고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풀이하는데 그것도 그럴듯합니다. 내가 그전에 무포에 와서 낚시질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낚시줄을 드리우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어떻게 정식화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사색을 거듭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무포숙영지 건너편은 중국의 화룡시이고 그 서북쪽은 안도현입니다. 안도현은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신 력사적인 곳입니다. 강반석녀사의 묘도 처음에는 안도현에 있었습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관리도 잘하였습니다.
청봉숙영지를 벼락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현대적인 피뢰침을 두곳에 설치하였는데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청봉숙영지 구호나무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구호나무차광막이 자동적으로 오르내리게 한것도 잘하였습니다. 구호나무를 영구보존하기 위한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워놓으니 김정숙어머님께서 쓰신 구호를 비롯하여 모든 구호들의 글씨가 아주 생동하게 보입니다. 남조선의 한 기자가 청봉숙영지에 와보고 우리가 혁명유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관심을 돌리고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하였다는데 그럴만도 합니다.
사자봉밀영에 있는 구호나무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장치도 잘하였습니다. 구호들가운데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반드시 왜놈치고 다시 만나자던 어머님의 그 말씀을 우리모두 잊지 말자》, 《내 고향을 떠나올 때 옷자락에 매달리며 꼭 왜놈치고 돌아오라던 귀여운 누이동생 부탁 잊지 말자》, 《내 고향을 떠나올 때 왜놈치고 다시 만나자던 고향마을처녀와의 굳은 약속 잊지 말자》라는 생활적인 내용을 담은 구호들도 있는데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좋은 구호들입니다. 수령님께서 이 구호들을 보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락천적으로 생활하였기때문에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승리할수 있었다고 하시였다는데 그 말씀이 옳습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락천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자봉밀영의 대원실과 출판소건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유리로 덧집을 해씌웠는데 잘하였습니다. 출판소건물안에 그때 출판소일군들이 쓰던 필기도구와 등사기를 비롯한 사적물들을 전시한것이 실감이 있습니다. 밀영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하여 출판소의 굴뚝높이를 낮게 하였다고 하는데 수림속에서 연기가 나는것을 알리지 않게 하자면 굴뚝이 낮아야 합니다.(전문 보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혁명전통교양 활발히 진행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을 더 자주 조직하여 모든 일군들과 군인들과 근로자들이 수령님들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혁명업적을 깊이 체득하고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력사적인 백두산군마행군을 단행하시면서 특히 혁명의 지휘성원들이 수령님과 장군님을 닮은 견실하고 유능한 정치활동가들로 자기자신들을 철저히 준비하고 무장하려면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에서는 위대한 김정은시대 일군이라면 누구나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관점밑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적극 조직진행하여 일군들속에 백두의 혁명정신을 뼈속깊이 심어주고있다.
내각사무국 당조직에서는 지난 2월초 답사에 참가할 일군들을 대상으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한 당의 의도를 해설한 다음 답사기간 진행할 정치사업분공을 구체적으로 주었다.답사기간 투사들의 넋이 살아숨쉬는 전투장들과 구호나무들을 돌아보면서 선렬들이 발휘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충실성의 전통을 깊이 새기게 하였다.《적기가》, 《혁명가》 등 혁명가요들을 가지고 소대별합창경연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발표모임도 진행하면서 투사들이 지닌 필승의 신념을 따라배우도록 하였다.
답사자들은 청봉의 밀림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몸을 녹이면서 항일의 피어린 전구마다에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우리 당의 혁명전통의 본질, 기본내용에 대한 문답식학습경연을 진행하여 백두의 혁명정신을 깊이 체득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당조직에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하여 청년동맹일군들을 백두산정신을 체질화한 청년강국의 주인공들로 준비시키고있다.
답사를 조직하면서 당조직에서는 모든 청년동맹일군들이 눈보라속을 뚫고 백두의 전구들을 편답하며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데 대하여 강조하였다.그리고 답사과정에 진행할 정치사업방향도 구체적으로 주었다.
이에 따라 청년동맹일군들은 《가리라 백두산으로》의 노래높이 매일 70~100여리를 강행군하면서 혁명전적지마다에 맥박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깊이 체득하였다.행군로상에서 합창경연, 소묘경연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사업을 진행하여 백두산정신을 뼈에 새기였다.강추위속에서 언 주먹밥과 삶은 통강냉이를 먹고 천막에서 숙영하면서 항일선렬들이 지니였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이 어떤것인가를 실지 체험하였다.
륙해운성 당조직에서는 지난 1월 30여명의 당일군답사행군대를 조직한데 이어 2월에도 답사를 조직하고 겨울철에도 혁명전적지답사를 많이 조직할데 대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말씀에 담겨진 깊은 뜻을 해설해주었다.우등불모임, 시랑송모임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사상사업을 진행하도록 정치사업방향을 구체적으로 주었다.
답사자들은 백두산에 올랐을 때와 청봉의 밀림속에서 우등불모임을 진행할 때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설화시 《영원한 조선의 행군길》을 랑송하면서 백두산공격정신으로 당창건 75돐에 드리는 자랑찬 로력적선물을 마련할 불같은 결의를 피력하였다.(전문 보기)
우리 시대 청년대학생들의 고결한 사상정신적풍모 -각지 사범대학, 교원대학 졸업반학생들 삼지연시와 최전연지대, 섬, 산골학교들에 적극 탄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확실히 우리 당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청년들의 충정의 열도는 그 어디에도 비길데 없이 높습니다.》
백두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고수하고 우리 당의 후대사랑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어갈 열의밑에 각지 사범대학, 교원대학 졸업반학생들속에서 삼지연시와 최전연지대, 섬, 산골학교들에 적극 탄원하는 아름다운 소행들이 발휘되고있다.
리계순사리원사범대학 학생 김영임동무는 백두산정신으로 정면돌파전의 진격로를 힘차게 열어제낄데 대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들의 호소문에 접하고 자기도 《백두산대학》의 강사가 되여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기 위한 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칠 결심을 안고 당조직을 찾아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로 보내줄것을 열렬히 탄원하였다.
김형직사범대학 학생 한룡호동무는 혁명의 고향집이 자리잡고있는 삼지연시를 인민의 리상향으로 전변시켜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는데 한생을 바칠 순결한 마음을 안고 삼지연시안의 학교교원으로 탄원하였으며 혜산교원대학 학생 리향옥동무도 혁명의 성지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겠다고 하면서 부모들의 곁을 떠나 백두고급중학교에 가서 후대들을 나라의 역군으로 키우겠다고 결의해나섰다.
원산사범대학 학생 조선화동무는 평범한 로동자의 자식을 조선소년단창립 66돐경축행사에 불러주시여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교원양성의 원종장에서 마음껏 배우도록 하여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사랑과 배려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고 하면서 최전연지대 학교로 보내줄것을 당조직에 제기하였다.
사리원교원대학 학생 전향기동무도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청년대학생답게 조국의 방선을 지켜선 군인들의 자녀들을 키우는 든든한 뿌리가 되고싶다고 하면서 최전연지대 학교교원으로 탄원하였으며 남포사범대학 학생 량복동무는 공화국영웅이며 조국통일상수상자인 할아버지와 한생을 조국보위초소에 선 아버지처럼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자기를 세워달라고 하면서 섬초소학교 교원으로 진출하겠다고 제기하였다.
최희숙함흥교원대학 학생 민류영동무는 외진 섬초소들을 찾으시여 아이들을 따뜻이 품에 안아주시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군인자녀들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해주제2사범대학 학생 조금철동무는 제대군인답게 당이 바라고 혁명이 요구하는 초소에서 후대들을 키우는 직업적혁명가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가겠다고 하면서 가족과 함께 섬분교 교원으로 탄원하였으며 선천교원대학 학생 원옥림동무도 우리 당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숭고한 뜻을 꽃피워갈 일념 안고 섬분교에 탄원하여 후대교육사업에 한생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평성사범대학 학생 채금철동무는 당조직에 찾아가 고급중학교 교원인 안해와 함께 산골학교에 가서 당의 뜻을 받들어 후대교육사업에 모든것을 바치겠다고 하면서 녕원군 읍에서 백수십리나 떨어진 창산리의 분교에 부부교원으로 배치해달라고 하였으며 김정숙교원대학 학생 최정향동무도 후대들을 키우는 사업에 한생을 바치고있는 참된 교육자들처럼 살고싶은 불타는 지향을 안고 청년동맹조직에 찾아가 산골학교 교원으로 보내줄것을 제기하였다.(전문 보기)
전화의 나날로부터 60여년 -력사의 땅 원화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은혜로운 사랑의 이야기-
사연도 많고 뜻도 깊은 력사의 땅 원화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태전 11월에 있은 가슴뜨거운 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날은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63돐을 3일 앞둔 날이였다.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그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평안남도당위원회에서 올린 문건을 마주하게 되시였다.원화협동농장에서 결산분배와 관련하여 명예농장원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분배몫을 올린다는 내용의 문건이였다.
전화의 나날 원화리농민들과 함께 밭고랑도 째시고 삼태기로 거름도 내시며 씨앗을 묻으시였으며 전후 협동조합이 조직되였을 때에는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자신께서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신 어버이수령님!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선거의 날인 어느해 11월 자신께서도 원화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이라고, 그러니 원화협동농장은 다른 협동농장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도당위원회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우리 조국에서의 수령과 인민의 위대한 단결, 그 빛나는 력사의 축도이며 증견자인 평원군 원화리,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심중에 만단사연과 더불어 참으로 깊이 간직된 력사의 고장이였다.
* *
어버이수령님께서 원화리농민들과 첫 인연을 맺으신 날은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이였다.
키낮은 울바자에 달린 사립문은 열려져있었으나 집주인을 깨우지 못하게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검부레기들이 흩날리는 쌀쌀한 한지에서 새날을 맞으시였다.이제 날이 밝으면 또 씨붙임전투를 해야 할 마을사람들을 다문 얼마간만이라도 더 재우려고 마음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날 종일 농민들과 승리의 씨앗을 뿌리시며 폭탄구뎅이도 메우고 곡식을 심어야 하며 빈땅같은것도 잘 리용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땅을 한치도 묵이지 말고 모조리 경작함으로써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쉴참에는 울퉁불퉁한 논머리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로인들에게 담배도 권하시며 농촌경리를 발전시키려면 관개공사를 비롯하여 할 일이 대단히 많은데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농민들이 하나로 뭉쳐 일한다면 많은 일을 성과적으로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해야 농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수 있다고,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단합된 힘으로 마을을 잘 꾸려나가면 원화리는 오곡이 무르익고 백과주렁지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고장으로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사회주의협동화의 장엄한 포성과 함께 원화리에 협동조합이 태여났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조합원명단에 자신의 존함을 써넣도록 하시였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자리에서 어느 한 나라의 농업생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일행은 자기들이 어느 협동농장을 참관했을 때 그 농장의 농장원명부에 주석님과 김정일동지의 존함이 있는것을 보았다고 수령님께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농장이 바로 평원군에 있는 원화협동농장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전후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조합이 한창 조직될 때 평원군 원화리에 나가 그곳 조합원들과 담화하면서 나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였습니다.그때부터 나는 원화농업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등록되였습니다.》
찾으실 때마다 원화리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업협동화의 본보기가 마련된 영광의 땅이라고, 나도 여기 조합원이라고, 우리 함께 농사를 잘해서 원화협동농장을 발전시켜보자고 말씀하시며 농산계획도 친히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참으로 원화리농민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갓 조직된 조합에서 운수수단이 부족되여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여러필의 말과 달구지를 보내주시고 자신께서 저택에서 보시던 수많은 농업기술도서와 함께 리용하시던 라지오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원화리농민들이 추워할세라 수백벌의 솜옷도 마련해주시고 그들의 세간을 불구어주시려 수백마리의 양, 오리, 닭, 돼지를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어느해 6월 어버이수령님께서 또다시 원화협동농장을 찾으시였다.
전후에는 이 협동농장에 폭탄구뎅이, 금점구뎅이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메우고 토지를 멀끔하게 정리해놓으니 아주 좋다고, 그동안 원화협동농장에서 일을 많이 하였다고 원화리가 걸어온 길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원화리는 내가 전후에 농촌을 지도하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처음으로 무은 곳입니다.
그때 원화리에 좋은 로인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퍽 늙었을것입니다.그때 내가 남편이 적들에게 피살된 한 아주머니의 아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었습니다.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인민군 어느 부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습니다.아마 그 아주머니도 이제는 늙었을것입니다.》
그 녀인이 아직 농장에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여 전쟁시기 원화리를 지도할 때 찍은 사진이 우리 집에도 있다고 기쁨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제대군인들이 기수가 되도록 이끌어주어 -운흥제련소 초급당위원회에서-
당사상사업을 친인민적, 친현실적으로 전환시켜나가자
운흥제련소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오늘의 정면돌파전의 앞장에 제대군인들을 내세우고 그들의 핵심적역할을 높여주어 맡겨진 혁명과업수행에서 혁신이 창조되게 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조직들은 제대군인들이 군사복무에 충실하였던것처럼 새로운 혁명초소에서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동제련직장에서 용광로보수를 하루빨리 다그쳐 끝내야 할 과제가 제기되였을 때의 일이다.
로보수에 필요한 내화벽돌을 비롯하여 제기되는 자재와 설비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돌격대를 무어 로보수를 벌리였지만 크게 전진이 없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로보수를 앞당겨 끝내는 문제를 놓고 머리를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남에게 의존하려는 내심도 비치였다.
이런 때 주경철초급당위원장은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대군인들의 선구자적역할에서 찾았다.
그는 제대군인들에게 호소하였다.
이렇게 끌끌한 제대군인들이 있으면서 이쯤한 난관도 뚫지 못한단 말인가,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결사관철해나가던 그 나날처럼 정면돌파전의 앞장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자.
제대군인들의 심장은 끓었다.기어이 용광로보수기일을 앞당길 불타는 열의를 안고 그들은 떨쳐나섰다.
초급당일군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부족되는 자재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군인들과 함께 단천과 함흥을 비롯한 수백리 먼길을 다녀오기도 하였다.그리고 작업의 쉴참에는 맨손으로 연길폭탄을 만들어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긴 항일혁명선렬들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그들의 뼈에 새겨주기도 하였다.
제대군인들은 더욱 분발하였다.한몸이 그대로 내화벽돌이 되여서라도 기어이 용광로보수기일을 앞당길 결사의 각오로 심장을 불태우며 그들은 정면돌파전의 앞장에서 핵심적역할을 다하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된 제련소의 일군들과 기술자, 종업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로보수를 질적으로 다그쳐 끝내기 위한 사업을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섰다.이에 맞게 김영남지배인을 비롯한 행정일군들은 사업조직을 더욱 짜고들었다.
이렇게 되여 제련소에서는 동제련직장의 용광로보수를 성과적으로 끝내고 또다시 생산의 동음을 높이 울릴수 있었다.
지난 2월 직장의 기술자, 제대군인들은 초급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전로에 규산광장입용설비를 새롭게 제작설치하여 당결정에 반영한대로 새 기술혁신을 위한 사업에서 또다시 큰걸음을 내짚었다.
제대군인들을 앞장에 내세워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성과를 확대해나가고있는 이곳 초급당위원회의 앞으로의 사업이 기대된다.(전문 보기)
주목되는 《잠수함사냥군함》의 침로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평양 3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
최근 일본에서 새로 건조한 최신형감시선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있다.
16일 카나다의 어느 한 방송은 《일본이 거의 30년만에 처음으로 기능이 높은 잠수함사냥군함을 진수》하였다고 하면서 《본토부근수중에서 작전하고있는 중국잠수함들에 대한 도꾜의 우려》에 대해 보도하였다.
11일 중국홍콩신문 《사우스 챠이나 모닝 포스트》는 이 소식을 보다 상세히 전하면서 《일본에 있어서 주되는 목표는 중국과 북조선이며 그중 중국의 잠재적위협이 더 크다.》고 언급한 일본의 한 대학교수의 발언을 인용하였다.
상기 감시선은 수백km밖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의 추진날개소음을 감지하고 수자화하여 잠수함형과 국적까지 확인가능한 최신수중음향측정함으로서 전문가들속에서 《잠수함사냥군함》,《전문정탐선》으로 불리우고있다.
태평양에서의 해상 및 수중작전수행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이 군함의 움직임이 지역나라들의 주목을 받고있는것은 당연하다.
이미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 다음가는 해상무력을 보유한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주변위협을 걸고들면서 제해권강화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2018년부터 중국동해에서의 경계감시를 주요임무로 하는 22척의 신형호위함건조계획을 다그치고있으며 올해부터는 초계함건조에 착수하여 《2030년대에 가서 중국동해에서의 감시태세를 완전히 구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반 사실은 일본해상무력의 군사작전중심이 명백히 렬도의 서쪽에로 향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새로 진수된 《잠수함사냥군함》이 수집한 자료를 미국이 구축한 해저감시망에 제공하며 중국과 령유권분쟁이 있는 수역과 가까운 기지에 배비될것이라는 전망은 지역사회의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있다.
오늘날 섬나라에서 종종 울려나오는 《중국의 잠재적위협》론은 귀따갑게 들리던 《북위협》설에 이어 자국의 군사력증강을 변호하는 단골소리로 되고있는 형편이다.
현실은 《일중관계의 새로운 시대,새로운 발전》을 광고하는 일본의 허위성,량면성을 다시금 부각시키고있다.(전문 보기)
민족건축유산에 대한 악랄한 파괴략탈책동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13)
일제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건축력사를 보여주는 유산들에도 파괴략탈의 검은 마수를 뻗치였다.
고유한 조선식건축물은 합리적인 조형적형태, 여러가지 벽화와 채색장식 그리고 조각과 내부장식 등이 결합됨으로써 민족문화유산의 종합체로 불리웠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을 개시한 첫날부터 식민지통치 전기간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략탈을 일삼았다.일제는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파괴략탈에 앞서 그를 위한 종합적인 《조사》에 달라붙었다.
조선강점이 보다 명백해지던 20세기초인 1902년 6월 일제는 도꾜제국대학에 명령하여 조선의 각지를 편답하면서 력대 왕궁을 비롯한 중요건축물과 문화재들을 깡그리 《조사》할것을 명령하였다.이 《중임》을 맡은자가 다름아닌 당시 도꾜제국대학 공과대학 조교수였던 세끼노 다다시였다.
당시 공과대학 학장이라는자는 세끼노에게 조선의 건축에 대한 사적연구범위를 넓게 잡고 진행하며 옛 건축물을 비롯한 전통적인 문화재를 샅샅이 《조사》하도록 과업을 주었다.
일제가 옛 건축물에 대한 《조사》를 선행시킨것은 그것이 지질, 력사, 사회, 민속 등을 포함한 모든 정신적 및 미적관념의 총체일뿐아니라 조선문화재의 총본산으로서 이것만 장악하면 조선의 문화재를 모조리 략탈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세끼노가 3년동안 완성한 우리 나라에 대한 건축조사보고서를 놓고 《일본에 있어서 침략중의 조선문화실상에 대한 기초자료로 되고 겸해서 수많은 조선문화재수탈의 장부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한 사실을 놓고서도 《조사》의 침략적, 략탈적목적을 알수 있다.
세끼노는 일제침략군의 보호속에 수십일간 우리 나라의 곳곳을 싸다니며 여러 시대의 고적과 왕궁, 사원, 릉묘, 서원, 유물 등은 물론 미술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면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보고서를 작성하였다.보고서는 비공개적으로 인쇄되여 일제의 조선강점이 림박한 1905년 8월 정부에 제출되였다.
일제는 건축물《조사》를 통해 건축문화유산은 물론 조선문화재에 대한 종합적인 략탈대장을 만들어놓은데 기초하여 건축문화유산들을 대대적으로 파괴략탈하였다.
우리 나라를 강점한 후 일제는 조선봉건국가의 상징이며 대표적인 민족건축물인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황궁을 파괴소각하는데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이와 함께 일제는 궁전안의 많은 건물을 마구 팔아버리였다.
건축가의 탈을 쓴 한 일본놈은 1912년 건춘문안에 있던 비현각을 자기 집으로 옮겨지어놓고 설계사무소로 리용하다가 거리낌없이 불태워버렸다.또한 많은 건물이 일본놈들의 료리점이나 사원건물로 변하였다.
일제는 각종 모임, 전시회 등을 진행하면서 경복궁이 황궁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게 만들었다.궁궐안에 남아있던 주요건물은 물론 7만 2 000평의 부지안에 있던 기타 건물들을 모두 허물고 5 200여평에 각종 진렬관을 새로 건설하게 함으로써 경복궁의 면모를 없애버리였다.(전문 보기)
■ 련재기사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1)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2)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3)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4)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5)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6)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7)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9)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10)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11)
-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13)
남조선에서 감염자 8 961명, 사망자 111명
확대되고있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피해, 그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
보도들에 의하면 남조선에서 23일 0시기준으로 비루스감염자는 64명, 사망자는 7명이 추가로 발생하였다.
이로써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자는 8 961명으로, 사망자는 111명으로 증가하였다.
새로 확인된 감염자들중 26명이 대구와 경상북도지역(대구 24명, 경상북도 2명)에서 나왔다.
이밖에 경기도에서 14명, 서울에서 6명, 충청북도에서 2명, 부산, 세종, 경상남도에서 각각 1명 등의 비루스감염자가 추가로 발생하였다.
남조선군에서도 1명의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자가 나왔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1일 하루동안에 발생한 추가확진자 98명중 15명이 해외려행자라고 하면서 유럽 등 해외에서 비루스감염증이 계속 류입되고있다고 밝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전지역에서 국민들이 외출, 모임, 식당에서의 식사, 려행 등을 모두 연기하거나 취소할것을 요구하였다.(전문 보기)
미국에서 감염자수 3만명 초과, 뉴욕시장 우려 표시
확대되고있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피해, 그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
미국에서 22일현재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자수가 3만 3 276명에 달하였다.사망자수는 417명으로 늘어났다.
전염병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고있는 뉴욕주에서 감염자수가 1만 5 000여명, 사망자수는 110여명에 이르렀다.
뉴욕시에서만도 약 9 6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였다.
뉴욕시장은 마스크 등 의료품부족난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하였다고 하면서 시의 심각한 비루스전파상황에 관심이 돌려지지 않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는 4월에 피해상황이 3월보다 더 악화될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였다.
현재 여러 주와 대도시들에서 심각한 의료품부족난이 초래되고있다.지어 의료성원들에게 필요한 마스크, 보호안경 등이 모자라 긴급대책을 세워줄것을 요구하고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 워싱톤주의 전염병방역에 방위군부대들이 동원되였으며 캘리포니아주가 주요재해지역으로 선포되였다.(전문 보기)
192개 나라와 지역에서 감염자 33만 6 000여명, 사망자 1만 4 600여명
확대되고있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피해, 그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
신형코로나비루스가 192개 나라와 지역에서 퍼지고있다.
보도에 의하면 22일 24시현재 33만 6 075명이 이 비루스에 감염되고 1만 4 613명이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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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22일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자수가 2만 1 638명으로 늘어났으며 그중 1 685명이 사망하였다.
이란무력 총지휘참모장은 콤시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한 후 군대가 나라의 방역사업을 적극 지원하고있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의 50여개 군대병원에서 감염자들에 대한 치료사업이 벌어지고있다.
이란당국은 수도 테헤란의 상업봉사기관들에 문을 닫을것을 지시하였다.
식료품 및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의 영업활동만이 허용되며 이 지시에 불복하는 상업봉사기관들은 처벌을 받게 된다.
전국의 모든 약국들에 보호마스크와 손소독제 등 위생용품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취해지고있다.
또한 테헤란서부지역에 있는 대규모전시관이 림시병원으로 리용될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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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이 계속 전파되고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전국적인 감염자수가 1 306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사망자수는 10명에 이르렀다.
수도 꾸알라 룸뿌르에서 진행된 대규모종교행사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속에서 감염자들이 계속 나오고있다.
22일 새로 확진된 123명의 감염자중 74명이 거기에 갔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같은 날 타이에서 188명의 감염자가 발생하여 그 수는 599명으로 늘어났다.
뛰르끼예에서는 289명이 비루스에 감염되고 9명이 사망하여 감염자수와 사망자수가 각각 1 236명, 30명으로 증가하였다.
인도네시아정부는 국내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증에 의한 사망자가 48명으로서 동남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많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에서 23명이 또 감염자로 확인되였는데 그중 18명이 유럽과 아메리카 등지를 다녀온 사람들이다. 현재 이 나라에는 455명의 감염자가 있다고 한다.
인디아에서 391명, 필리핀에서 380명의 감염자가 등록되였다.
이란외에 중동의 다른 나라와 지역에서도 전염병피해는 의연 심각하다.
레바논에서 감염자수가 248명에 이른것과 관련하여 이 나라 내무상은 더이상 비루스의 전파를 억제할수 없게 되였으며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233명, 쿠웨이트에서 188명의 감염자가 등록되였으며 이스라엘에서는 하루에 188명이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여 감염자수가 1 071명에 이르렀다.
아프리카에서는 이 비루스가 41개 나라에 퍼져 약 1 200명의 감염자와 약 40명의 사망자가 났다.(전문 보기)
단평 : 천대받는 《정치초년생》
4월 《총선》이 박두하면서 《정치초년생》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 황교안에 대한 저주와 랭대가 제 족속들내에서도 련일 비발치고있다.
얼마전에는 홍준표가 《당을 이끌 능력이 부족하면 차라리 입다물고 종로구에나 집중하라.》고 황교안을 향해 독화살을 날리더니 또 엊그제는 측근중의 측근이라던 한선교가 황교안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고 비례대표후보들을 선출한것으로 하여 여론을 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미래통합당》에 기신기신 들어온자들까지 황교안비난에 가담해나서고있는 판이다.
지난 20일에는 류승민파인 리혜훈이 황교안과 《미래통합당》에 대해 《유명하고 인기있는 사람들은 다 배제되는 이상한 선거가 되고있다.》고 하면서 《제대로 표를 끌어모을지 걱정된다.》, 《이럴것 같으면 왜 통합을 했을가.》고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내뱉았다.
까놓고보면 황교안이 하는 짓거리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공개적인 도전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대권》을 넘보는 황교안으로서는 참으로 망신살이 뻗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정치초년생》으로 불리우는 황교안이 이번 선거를 통해 자기의 《능력과 자질》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갈수록 험산이라고 오히려 당내의 비난과 조소만 받고있으니 그 처지가 정말 말이 아니다.
하기에 제 집안에서도 수모를 당하는 황교안의 꼴을 두고 인터네트에 《보수의원들도 옳은 소리 할 때도 있다.》, 《황교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아군마저 비판을 하겠는가.》 등의 야유글들이 차고넘치고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제 집안에서까지 개몰리듯하는 《정치초년생》 황교안이 《단호한 결심》을 운운하며 아무리 주먹을 불끈 쥐여도 파멸로 질주하는 《미래통합당》이라는 마차를 어떻게 멈춰세우랴.
그러다가 사등뼈가 부러지지 않겠는지…(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