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대를 이어 나라의 산림자원을 늘여가는 참된 애국자 -태탄군산림경영소 삼봉리산림감독원 김주철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0(2021)년 6월 17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태탄군 삼봉리에 가면 한겨울에도 푸르청청한 산림을 볼수 있다.

잣나무며 창성이깔나무, 왕밤나무를 비롯한 경제적가치가 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온갖 새가 날아예며 산짐승들이 뛰노는 아름다운 숲의 주인공이 바로 태탄군산림경영소 삼봉리산림감독원 김주철동무이다.

나라의 귀중한 산림을 대를 이어가며 정을 다해 가꾸고 굳건히 지키는 김주철동무의 모습은 이 땅의 공민들에게 애국이란 무엇이며 전세대의 고결한 넋을 이어간다는것이 과연 어떤것인가를 심장깊이 새겨준다.

 

산림감독원의 아들

 

지금으로부터 17년전 가을 산림감독원으로 임명받고 군산림경영소를 나서는 김주철동무의 발걸음은 무거웠다.그 넓은 면적의 산림을 꽤 관리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납덩이처럼 매여달렸던것이다.더우기 그가 맡은 구역에는 고난의 후과로 하여 벌거숭이로 된 곳이 많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는 그를 아버지가 반겨맞았다.

《삼봉리구역의 산림을 네가 맡게 되였다니 정말 기쁘구나.명심해라! 산림감독원의 일이란 부강조국의 뿌리가 되는 일이라는걸.》

지난 시기 그의 아버지도 삼봉리에서 근 30년간 산림감독원으로 일하였다.그러다나니 김주철동무의 어릴적추억은 대부분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심거나 깊은 밤 인적드문 산길을 걷던 일들이였다.

한번은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라 나무를 심고나서 언제면 이 나무가 크게 자라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그러자 아버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하였다.

《한 15년쯤 지나면 잣이 열릴게다.그러면 네가 먼저 잣을 따거라.》

세월이 흘러 그 나무들에 정말 오롱조롱한 잣송이들이 열렸다.그러나 아버지는 그 잣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이건 다 종자로 써야 한다.우리 삼봉리산들에 잣나무가 꽉 들어차게 되면 그때 가서 우리도 마음껏 따먹자꾸나.》

또 이런 일도 있었다.청단군에서 찾아온 한 손님이 아이들에게 주라면서 아버지앞에 왕밤을 한구럭 내놓았다.그런데 이윽토록 왕밤을 바라보기만 하던 아버지는 우리 산에도 이런 왕밤나무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다음날 그는 청단군에 가서 왕밤나무접붙이기에 필요한 접가지들을 구해왔다.아버지의 이렇듯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삼봉리주변의 산발들에는 잣나무와 왕밤나무를 비롯한 여러가지 나무들이 꽉 들어차게 되였다.그런데 아버지가 년로보장을 받은 후 고난이 겹쳐들면서 무성하던 산발이 푸른빛을 잃기 시작했다.아버지는 이것을 두고 몹시 괴로와하였다.…

《난 네가 이 산들을 나라앞에 직무로가 아니라 량심으로 책임진 진짜배기주인이 되길 바란다.주철아, 너에게 산림을 부탁한다.》

삼봉리의 푸른 숲을 가꾸는데 한생을 바친 아버지의 절절한 당부는 김주철동무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김주철동무는 나무를 제일 많이 심어야 하는 구역에 대형구호판부터 세웠다.

《모든 산을 황금산, 보물산으로 만들자!》

그가 나무를 심기에 앞서 먼저 새긴 이 글발은 아버지를 비롯한 전세대들이 피땀으로 지키고 물려준 이 땅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갈 심장의 맹세였고 철의 의지였다.

그러나 정작 일을 시작해놓고보니 산림감독원의 일은 그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우선 나무모보장이 따라서지 못하고 멀리에서 나무모를 날라다 심다나니 사름률도 높지 못한것이 문제였다.

죽어버린 나무모들을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다시 심던 어느날 휴식참에 산리용반의 한 젊은 녀인이 드넓은 빈땅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뿜었다.

《지금같은 속도로 나무를 심다가는 우리가 꼬부랑할머니가 되여도 저 빈땅들을 다 없애지 못하겠군요.》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나무를 심어야 할 면적은 방대한데 자체양묘장을 꾸리자고 해도 녀성들뿐인 적은 로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색날은 책 한권을 책상우에 펼쳐놓았다.그의 아버지가 수십년세월 산을 가꾸면서 얻은 귀중한 경험을 적어넣은것이였다.

아버지의 손때가 오른 책을 펼치던 김주철동무는 첫장에 씌여진 글줄을 보았다.

《까치산의 영웅처럼 살자!》

까치산은 태탄군과 이웃하고있는 벽성군의 어느 한 리에 있는 산이다.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침략자들이 불을 질러 벌거숭이가 되였던것을 그곳 관리위원장이 인민들을 불러일으켜 잣나무를 비롯한 여러가지 나무들을 많이 심었다.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곳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푸른 숲 우거진 까치산을 보시고 그 관리위원장에게 동무야말로 까치산의 영웅이라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고 한다.

까치산의 영웅처럼 삼봉리의 산들도 푸르게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릴 하나의 소원을 안고 한그루한그루 나무를 심어가꾼 아버지였다.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볼수록 그는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아버지가 섰던 초소에 아들이 섰다고 하여 대가 이어지는것이 아니며 직업이나 직무만이 아니라 사상과 정신을 물려받아야 진짜 대를 잇는것임을 그는 아버지가 넘겨준 색날은 책을 보면서 가슴절게 깨달았다.

다음날 그는 산림순시원들과 산리용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체양묘장을 꾸릴 결심을 터놓았다.

우리 삼봉리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겨져있다.이 영광의 땅을 더 아름답게 가꾸지는 못할망정 조건이 어렵다고 주저하겠는가.생각해보자.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고장에 나무가 얼마 없는것을 우리 장군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

마디마디 심금을 울리는 김주철동무의 말을 들으며 산림순시원들과 산리용반원들은 못쓰게 되여가는 나라의 산림을 놓고도 고난이 두려워 주저하며 통이 큰 일판을 벌리지 못한 자기들의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고슬령의 골짜기에 자체양묘장을 꾸리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였다.제멋대로 자란 잡관목들과 풀뿌리를 뽑고 돌부리들을 춰내며 땅을 일구느라 언제 낮이 가고 밤이 오는지 몰랐다.질좋은 거름을 날라다 고루 펴고 잣나무며 이깔나무, 세잎소나무종자를 심었다.

싹이 트자 하루에도 몇번씩 살펴보았고 김만 해도 한해에 열번이상 맸다.그런 지극한 정성속에 나무모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어느덧 옮겨심을 때가 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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