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나라와 집단을 위한 사색과 실천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참된 애국자 -라선시건설기계화려단 려단장 최영보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0(2021)년 7월 15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부름앞에 말로써 대답할것이 아니라 자기 한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것이 애국자의 자세입니다.》

애국자의 모습은 어려운 시기에 더욱 돋보인다.아마도 그것은 애국자를 찾는 조국의 부름이 시련이 가증될수록 더욱 절절해지고 그 아름다운 진면모는 우리의 투쟁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교본으로 되기때문일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나라와 집단을 위한 사색과 헌신을 생의 드팀없는 신조로 삼고 오늘의 어려운 난관속에서도 당의 건설구상을 앞장에서 받들어가는 한 애국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한생을 사회주의건설자로 복무하며 값높은 삶의 자욱을 새겨가고있는 라선시건설기계화려단 려단장 최영보동무,

우리는 그의 투쟁과 생활을 통하여 그가 누구이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나라일을 먼저 생각하고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바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당이 바라고 오늘의 현실이 요구하는 참된 애국자라는것을 다시금 심장깊이 절감하게 된다.

 

애국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광복거리건설자, 오늘도 최영보동무는 이 부름을 긍지로 간직하고 산다.

그는 군인건설자로 병사의 첫 자욱을 떼였고 그것으로 보람찬 군사복무시절을 마쳤다.

군복을 벗고 고향에 제대배낭을 푼 때로부터 30년세월이 흘렀지만 최영보동무는 광복거리건설의 나날에 있었던 일을 아직도 잊지 않고있다.

어느날 그가 맡은 벽체미장과제를 남먼저 끝냈을 때였다.벽면을 유심히 살펴보던 지휘관이 흐뭇한 기색으로 서있는 그에게 물었다.

《세멘트를 규정량보다 더 쓰지 않았소?》

최영보동무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사실 그가 맡은 벽체는 구조가 까다로와서 높은 기능을 요구하는것이였다.그래서 세멘트가 좀더 들더라도 손쉬운 방법으로 미장을 했는데 그것을 지휘관이 알아볼줄이야…

《물론 더 쓴 세멘트가 서너㎏정도밖에 안되겠지.그러나 영보, 좀 생각해보라구.동무처럼 일한다면 백여세대나 되는 이 아빠트에서 랑비되는 자재만 해도 얼마나 되겠나.》

그날 지휘관은 애국의 마음은 창조물의 크기나 높이로만 계산되는것이 아니다, 콩크리트가 굳건한것은 그속에 곧바르고 억센 철근이 묻혀있기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실적 그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나라일부터 먼저 걱정하며 높은 실력을 지니고 량심적으로 일할 때 진정한 애국이라고 할수 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국가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준다면 그것은 저 하나만을 위한 저속한 욕망으로밖에 달리는 될수 없다고 준절히 강조했다.

지휘관의 이야기는 최영보동무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으며 그것은 평범한 군인건설자로부터 한개 시의 건설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 성장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 한번 드틴적 없는 삶의 신조로 굳어졌다.

1990년대 초엽 라진땅은 건설의 동음으로 세차게 끓어번지였다.곳곳마다에서 현대적인 살림집들과 극장, 영화관같은 문화정서생활기지들이 우줄우줄 키를 솟구었다.

바로 이러한 때 최영보동무는 군사복무를 마치고 건설사업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였다.

첫 출근의 날 그는 가슴이 뻐근했다.도시와 마을을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일떠세우는 사회주의건설자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가슴가득 차올랐다.그럴수록 건설의 묘리를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막힘이 없는 높은 실력을 갖출 열의가 불타올랐다.

그는 하루를 분과 초로 쪼개며 줄달음쳐 살았다.벽돌 한장을 쌓고 하나의 벽체를 축조해도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더 빨리 할것인가를 늘 사색하며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시공방법을 찾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

기존의 경험과 기술기능을 터득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고 대담한 공법으로 로력과 자재,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건설물의 질을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는것은 그가 늘 견지한 준칙이고 목표였다.

언제인가 고층아빠트를 건설할 때였다.기초굴착공사를 진행하는데만도 두달나마 걸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였다.

그는 안타까왔다.기성리론과 공법에만 매여달리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때부터 최영보동무는 밤잠을 잊고 살았다.공사기일을 단축할수 있는 합리적인 시공방법을 찾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쏟았다.그리하여 마침내 로력과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기초굴착공사를 앞당길수 있는 공법을 찾아냄으로써 아빠트건설을 빠른 시일안에 끝낼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제꼈다.

그의 실력과 책임성이 얼마나 높았는가 하는것은 건설사업소에서 일을 시작한지 몇달 지나지 않아 시공을 책임진 일군으로 임명된것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사업소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중요하고도 무거운 임무를 맡은 20대의 최영보동무를 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이제는 시공에 대해 마음을 놓게 됐다고.

그후 기사장을 거쳐 지배인으로 일하는 나날 최영보동무는 당의 건설구상을 받들어 조국의 최북변을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시키는데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우리는 여기에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한다.

그러나 참된 건설자는 항상 나라일부터 먼저 생각하는 참된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는 지론을 안고 모든 건설을 주먹구구식으로가 아니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으면서도 앞선 건설구조도식과 시공방법을 적극 도입하여 건설예산을 최대한 절약함으로써 나라에 큰 보탬을 준데서, 그에게 어느 건설대상은 얼마만큼 걸려야 할 작업량이고 어느 건물의 보수는 몇시간쯤 걸려야 끝낼수 있다는 기존관념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앞에서 최영보동무가 새겨온 애국헌신의 자욱을 어렵지 않게 더듬어볼수 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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