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인재육성을 위해 지혜와 열정, 생명까지도 다 바친 참된 교육자 -리과대학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이였던 김일성청년영예상수상자 김철경동무에 대한 이야기-
어릴 때부터 사람들속에서 신동으로 불리웠고 당의 품속에서 수재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후 자진하여 교단에 섰던 한 젊은 교육자가 있다.
리과대학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이였던 김철경동무이다.생을 마칠 당시 그의 나이는 38살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교육은 조국과 혁명의 미래를 가꾸는 영예로운 사업이며 가장 책임적이고 보람있는 사업입니다.》
비상한 두뇌와 뛰여난 실력, 열정적인 기질을 지니고있던 김철경동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과학연구사업에 계속 종사하였다면 시대를 놀래우는 요란한 발명의 주인공이 되고 인민이 존경하고 떠받드는 과학자영웅이 되였을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청춘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나라의 과학자양성의 원종장인 모교의 교단에 고스란히 묻었다.
그 나날은 비록 10년밖에 안되지만 그는 고마운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다지고다진 지식의 전부를 다 바쳐, 피끓는 심장의 마지막박동까지 다하여 세계적인 두뇌경쟁무대에서 조국의 영예를 빛내일 특출한 정보기술인재들을 키워냄으로써 우리 당의 인재강국건설구상을 꽃피우는 진한 밑거름이 되고 억센 뿌리가 되였다.
인재라면 더 많은 인재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자
아마 독자들은 최근년간 우리 나라의 여러 대학 학생들이 국제적인 인터네트프로그람경연들에 참가하여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있을것이다.지난해에도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리과대학의 학생들은 인터네트프로그람경연들중의 하나인 《코드쉐프》도전경연에서 여러차례나 우승을 쟁취하였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 리과대학의 청년대학생들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이 《코드쉐프》도전경연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참가하여 80여개 나라의 3, 160여개 팀을 모두 누르고 단연 1등의 영예를 지님으로써 인터네트상에 우리의 공화국기를 높이 띄웠다.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대학의 명예를 빛내인 이들의 지도교원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김철경동무였다.
김철경동무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가을 어느날 리과대학 책임일군의 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연구사업을 그만두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일군은 자기앞에 서있는 청년과학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체소하나 다부진 체격, 어딘가 수줍은 미소가 비낀 영채로운 눈…
그가 바로 당시 대학 정보기술연구소 연구사였던 김철경동무였다.말이 없고 겉모습이 수수하여 별로 표나지 않는 그였지만 두뇌와 실력은 온 대학에 소문이 자자했다.대학시절 전국적인 프로그람경연들에 나가 매번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며 2006년에는 리과대학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에 참가하여 금상을 쟁취하고 세계결승경연참가자격을 획득하는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보기 드문 수재였던것이다.
여러 부문에서 제기되는 많은 정보기술적문제들을 막힘없이 풀어제끼고있는 프로그람기술인재, 틀림없는 20대 박사감…
대학적으로 손꼽히는 전도유망한 청년과학자가 정보과학소조 지도교원으로 자진해나선것이 일군은 기쁘기도 하고 뜻밖이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에 부딪쳐보니 혼자서는 다 해결하기 힘든 정보기술적문제들이 정말 많고 곳곳에서 프로그람개발자들을 요구하고있습니다.저를 깡그리 바쳐 세계와 당당히 맞설수 있는 프로그람기술인재들을 키우고싶습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 담담한 목소리에서 록록치 않은 강단이 느껴졌다.
일군은 말하였다.
《정말 좋은 결심을 했구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이 총명하기때문에 프로그람기술분야에서 잘하면 짧은 시일에 세계적수준을 돌파할수 있다고 하시였는데 힘껏 밀어줄테니 한번 잘해보오.
그런데 프로그람개발은 젊어서 한때라는 말도 있듯이 전망이 확고한 연구사업을 그만두는것이 동무로선 아쉬울텐데 앞으로 후회하진 않을가?》
김철경동무는 또박또박 힘주어 대답하였다.
《학생들을 잘 키워 그들이 제가 하고싶었던 일을 열배, 스무배로 대신하게 하겠습니다.》
이 남다른 결단으로 하여 사랑하는 안해와 얼굴을 붉히게 될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처녀연구사시절 국제대학생프로그람경연을 준비하는 김철경동무를 사심없이 방조한 애틋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송금애동무는 남편이 선택한 길이 얼마나 큰 대가와 희생을 요구하는 길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명예와 보수는 물론 신혼살림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마다하고 기어코 그 길을 걸으려는 남편이 리해되지 않았다.
앵돌아진 안해에게 김철경동무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였다.그러는 그의 눈앞에 농촌마을의 크지 않은 학교가 삼삼히 어려왔다.
그는 금야군의 농장원가정에서 태여났다.두벌자식을 끔찍이 귀해하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 그는 가갸표와 구구표를 다 익혔다.아직은 발음도 정확치 않은 세살잡이가 머루알같은 두눈을 깜빡이며 《가, 갸, 거, 겨…》를 외우고 《이삼은 륙, 삼삼은 구…》하고 련거퍼 이어나갈 때면 마을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신동이 났다며 그의 볼을 다독여주었다.고마운 선생님들의 손에 이끌려 세살이나 우인 누나와 함께 들어서던 교실, 네살 난 《학생》을 무릎에 앉히고 국어와 수학 등을 하나하나 배워주고 소학교과정안을 한해동안에 다 마치였다고 등을 두드려주던 선생님, 전국적인 속셈경연에서 1초가 뒤져 2등을 하였을 때의 아쉬움…
함흥제1중학교에서의 나날도 주마등처럼 눈앞에 흘러갔다.누구나 허리띠를 졸라매던 고난의 시기 자기 집에서 얼마 안되는 식량을 덜어 밥까지 해먹이며 수학올림픽의 아득한 세계에로 한걸음한걸음 이끌어주던 소조선생님, 전국적인 수학학과경연에서 기발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답을 내여 심사자들을 놀래웠다고 그리도 기뻐하던 열정의 그 모습…
당의 은정속에 꿈과도 같이 들어서던 평양제1중학교의 드넓은 교정, 그다음은 리과대학 학생, 박사원생으로, 오늘은 어엿한 과학자로 자라나지 않았던가.
지나온 생의 나날을 더듬어보느라니 저도모르게 목이 꽉 메여올랐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