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시대의 기수로 성장한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들

주체112(2023)년 4월 5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선구자들의 미풍을 불씨로 하여 온 나라에 긍정창조의 불길이 타번지게 하고 수백만의 용솟는 젊은 힘을 총궐기시킬 때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가 가리킨 새로운 진군방향을 따라 힘차게 나아가는 조선청년들의 특출한 혁명적열정이 높이 발양되고있는 오늘의 벅찬 투쟁속에서 첫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들이 배출되였다.

어머니당의 믿음과 기대를 잊지 않고 영원한 삶의 보금자리인 귀중한 조국을 몸과 맘 다 바쳐 길이 받들어갈 애국의 일념으로 청춘시절의 순간순간을 불같은 헌신으로 이어온 미더운 새세대 청년들,

언제나 조국의 부름앞에 충실하고 사회와 집단앞에 성실하며 당을 따라 곧바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대바르고 열정적인 모습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귀중한 인생의 거울, 참된 삶의 본보기로 된다.

 

《당의 뜻대로 살며 일했을뿐입니다》

 

이번에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의 영예를 지닌 청년들에게서 한결같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당의 뜻대로 살며 일했을뿐입니다.》

이것은 품어주고 키워준 당의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는 길에서 그들이 심장속에 간직한 좌우명이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 박세일동무가 교육도서인쇄공장의 설비현대화사업에 참가한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이였다.

당시 공장현대화에서 제일 선차적인 과업으로 나선것은 어느한 설비의 건조공정을 우리 식으로 새롭게 확립하는것이였다.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건조공정을 꾸릴 결심을 품고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던 박세일동무는 열풍에 의한 고속건조방법을 찾아내게 되였다.그때 그의 착상을 놓고 우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참고할만한 설계도면 한장 없는 상태에서 가능성도 희박한것을 시작하였다가 만약 실패하면 어쩌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박세일동무는 쉽게 물러설수 없었다.이런 순간에 주저하지 말고 앞장에 서라고 당에서는 자기를 과학기술교육의 최고전당인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공부할수 있게 해주고 탐구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수 있게 내세워주었다.

우리 시대의 청년과학자라면 한가지를 연구하고 하나의 창조물을 내놓아도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식으로 할데 대한 당의 뜻을 언제나 사업과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살며 일해나가야 한다는 자각을 언제나 심장깊이 안고 사는 그는 연구집단과 함께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강잉히 이겨내며 피타는 노력을 기울여 끝끝내 새로운 열풍건조공정을 확립하여 교과서생산에 적극 이바지하였다.그후 박세일동무는 높은 실력으로 옥류아동병원을 비롯한 많은 중요대상건설 및 개건현대화에 기여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어머니당에 기쁨을 드리고 2.16과학기술상수상자로, 30대의 박사로 성장하였으며 지금도 평양가죽이김공장개건현대화를 위한 과학연구사업에 청춘의 열정과 지혜를 아낌없이 바치고있다.

천성청년탄광 강호영청년돌격대 대원 김철성동무의 일터는 사람들의 눈길이 잘 미치지 않는 지하막장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일터를 끝없이 사랑하며 한덩이의 석탄이라도 더 캐내기 위해 헌신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그것은 수천길 땅속에 있어도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따사로운 사랑이 해빛처럼 그를 감싸주고있기때문이다.

사실 그의 인생길에는 잘못 살아온 지난날의 떳떳치 못한 흔적이 있었다.하기에 그는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께서 뒤떨어졌던 청년들이 청년돌격대에 탄원하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들의 앞날을 따뜻이 축복해주시였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입술을 깨물며 자책의 눈물을 쏟았다.

우리 청년들이 시대의 기수가 되여 청춘시절을 값높이 빛내이기를 바라시는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뜻을 심장깊이 새겨안고 지난날의 수치스러운 흔적을 진한 땀으로 말끔히 씻어버릴것을 결심한 김철성동무는 강호영청년돌격대에 입대하였다.막장일로 손에 장알이 박힌 성실한 탄부들과 함께 일하면서, 높아가는 석탄산에 자기들의 량심을 비추어보는 탄부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가슴뜨겁게 체감하면서 그는 어떤 자세로 당과 조국을 받들어야 하는가를 심장으로 깨닫게 되였다.

몇해전 장마로 갱이 침수될 위험이 조성되였을 때 그는 남먼저 차디찬 물속에 뛰여들어 여러 시간이나 힘겨운 작업을 진행하면서 끝끝내 갱을 지켜냈으며 침수갱복구작업을 짧은 기일안에 해제끼고 한교대더하기운동을 힘있게 벌려 돌격대가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데 적극 기여할수 있었다.

평양기관차대 기관사 김진혁동무는 평범한 로동자의 아들이다.그런 그가 인민경제의 선행관을 지켜선 기관사로, 조선청년의 최고영예인 김정일청년영예상수상자로, 온 나라가 다 아는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로 성장할수 있은것은 언제 어디서나 당의 뜻대로 자신의 기술실무수준을 끊임없이 높여나가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아글타글 노력했기때문이다.

18살에 기관조사가 된 그에게 있어서 제일 안타까운것은 기술과 기능이 모자라는것이였다.수천개의 볼트, 나트가 어디에 무엇때문에 필요한지, 수백종에 근 1 000개의 부속품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성능과 동작원리를 알아야만 맡은 일을 원만히 할수 있었기때문이다.모르고서는 당이 맡겨준 혁명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없다는것을 절감한 그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열심히 배웠다.

강심을 먹고 피타게 노력하여 실력을 부단히 높인 김진혁동무는 기관사가 된 후 기관차의 기술관리와 자검자수에 필요한 가치있는 기술혁신안들을 창안도입하기 위해 낮에 밤을 이어 피타게 고심하였다.그 나날 그는 기관사들이 운행도중에 고장부분을 제때에 퇴치할수 있는 장치도 창안하여 물동수송에 적극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내연기관차의 주송풍기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조하여 기관차의 실동률을 높이는데 이바지하면서 청년들을 대중적기술혁신운동에로 적극 불러일으켜 기관차의 정상운행에 필요한 기술적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에서 핵심적역할을 하였다.

당의 뜻대로 기술실무수준을 끊임없이 높여나가기 위해 피타게 노력한 결과 그는 중요대상건설장들에 필요한 물동을 언제나 제때에 수송하였으며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할수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이 되고 돌격투사가 되리라

 

우리 당의 구상에 자기의 리상과 포부를 따라세우고 당결정관철을 위한 보람찬 투쟁의 앞장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되고 돌격투사가 되려는것이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들의 공통된 지향이다.

연안군 풍천농장 제3작업반 농장원 장경란동무는 연백벌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알곡증산성과로 빛내이기 위해 청춘의 힘과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다.

나이가 들어 농사일을 할수 없게 된 그의 아버지는 딸에게 말하였다.당에서는 농사일때문에 그토록 관심하고있는데 먹은 나이가 막 한스럽기만 하다.그러니 네가 이 아버지를 대신해주기 바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으로 나간 남편과 오빠들을 대신하여 보탑을 억세게 틀어잡았던 녀성들처럼 연백벌의 참된 실농군이 되여야 한다고 절절히 당부하는 아버지앞에서 장경란동무는 새세대 농업근로자의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였다.

그는 언제나 분조의 앞장에서 농사일을 직심스럽게 해나갔다.

늘 어뜩새벽에 일어나 포전으로 나갔고 달빛을 머리에 이고 집에 들어와서는 농기구들을 손질하며 다음날 작업준비를 선행하군 하였다.맡은 포전에 자기의 땀과 량심을 깡그리 묻어가며 이악하게 노력한 결과 그는 작업반이 다수확을 안아오는데 한몫 단단히 하는 농장이 자랑하는 실농군으로 성장하였다.

황해남도가 농업생산에서 기치를 들고나가기를 바라시는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의 높으신 뜻을 자신의 실천으로 받들어갈 불같은 일념을 안고 그는 오늘도 농장원들의 앞장에 서서 청춘의 기백과 열정을 남김없이 발휘해나가고있다.

김정숙평양방직공장 직포공 권은정동무는 기준량의 2배나 되는 직기를 맡아 당 제7차대회 결정관철기간에 15년분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였으며 지난해에는 9월까지 2년분계획을 앞당겨 완수하는 자랑찬 성과를 기록하였다.

공장에서 로동생활의 첫걸음을 내짚던 시기부터 그에게는 가슴깊이 간직한 소원이 있다.그것은 문강순영웅처럼 일을 잘하여 꿈결에도 그리운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몸가까이 만나뵙는것이였다.

그 간절한 소원을 안고 그는 하루일을 마치고 합숙에 돌아와서도 실매듭짓기련습으로 밤이 깊어가는줄도 몰랐고 시간을 쪼개가며 기능공들에게서 직기순회방법을 익히였다.그렇게 꾸준히 노력한 결과 권은정동무는 공장에 배치된지 1년도 안되여 신입공들중에서 제일먼저 단독으로 기대를 맡아보게 되였으며 그해 인민경제계획을 당창건기념일전으로 수행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울수 있었다.

매일이다싶이 거의 100리나 되는 순회길을 달리고나면 온몸은 땀주머니가 되여 걸음조차 제대로 옮길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아버지원수님께로 가는 길이 멀어진다고 생각하며 비상한 힘과 열정을 발휘하여 짬시간마다 수리공들에게서 기대수리방법까지 배워 웬만한 고장은 자체로 수리하면서 매일 맡겨진 생산계획을 훨씬 넘쳐 수행하였다.

그는 다른 모든 청년동맹원들도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용솟는 청춘의 힘과 열정을 남김없이 떨치도록 적극 이끌어줌으로써 온 나라가 아는 사회주의애국청년선구자의 고귀한 영예를 받아안게 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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