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용사들은 당앞에 다진 맹세를 이렇게 지켰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되여있는 당결정서와 맹세문들을 읽으며-

주체112(2023)년 7월 14일 로동신문

영광스러운 전승세대에 대한 긍지높은 추억-그들처럼 영원히 승리하리라

 

 

당이 제시한 무겁고도 중요한 과업을 수행해야 할 투쟁의 출발선에 나설 때면 우리는 당회의와 모임을 열고 결정서와 맹세문을 채택하군 한다.그 한조항, 한문구, 한글자에 실리는 무게를 심장에 새겨주는 저울, 그앞에서 엄숙히 손을 들어 찬성하는 매 사람의 량심을 선명하게 비추어주는 거울이 있다.

그것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되여있는 당결정서와 맹세문들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 수령께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최후의 결사전에 주저없이 나서고 사지판에서도 최고사령부를 바라보며 불사신의 용맹을 떨친 인민군전사들의 강의한 정신력은 세상을 놀래우는 승전신화들을 낳았습니다.》

근 80성상에 달하는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력사에 조국해방전쟁의 3년간처럼 그토록 많은 당결정서와 맹세문이 채택된 때는 아마도 없을것이다.중요한것은 그중에 집행하지 못한것이 단 한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채택된 당결정서와 맹세문,

그것은 전승에로 가는 길에 찍혀진 용사들의 발자취, 그 혈로에 세워진 하나하나의 승전의 리정표들이며 영웅조선의 위대한 전승사와 더불어 우리 당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조선로동당의 충직한 전사들이 후손만대에 남긴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산 교과서, 당결정결사관철정신의 불멸의 교본이다.

 

《충성을 다할 때는 왔다》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아안으면 군단과 사단의 당총회와 군무자회의로부터 중대의 공개당총회와 당원협의회, 병사모임들에서, 불타는 고지의 전호속이나 지어 적의 포위에 든 적후에서도 당결정서와 맹세문이 채택되군 하였다.

위급한 정황으로 한자리에 모일수 없으면 초안을 매 사람에게 돌리거나 구두로 전하는 방법으로도 채택되였다.전승기념관에는 제3군단 군단장이였던 항일혁명투사 류경수동지가 전선에서 채택된 군단장병들의 맹세문에 제일먼저 수표하는 사진도 전시되여있다.

격식과 틀이 없는 회의형식과 방법도 놀랍지만 그 내용들에 관통되여 흐르는 공통적인 특징에 더욱 감동을 금할수 없다.어느것이나 군더더기나 미사려구가 전혀 없이 정신이 번쩍 들도록 명명백백하고 허구와 가식이란 단 한글자도 없이 무한히 솔직하고 열렬하다.

1950년대 사람들의 성격이 거울처럼 또렷하게 비낀 당결정서와 맹세문들, 마치 한사람이 쓴것처럼 사상과 필치까지도 같은 글발들을 한자한자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조국해방전쟁사에 가장 가렬하고 가장 장기적인 격전으로 특기된 1211고지방위전투는 영웅이 제일 많이 배출된 기록과 함께 가장 많은 당결정서와 맹세문을 전승기념관에 남기였다.

전승기념관에는 1211고지방위전투가 남긴 한장의 사연깊은 당세포회의 결정서초안이 있다.이 결정서가 유명한것은 전호속에서 봇나무껍질에 써서 탄피속에 넣어 당원들이 돌려보았다는 사실에도 있지만 보다는 그 사연과 내용이 너무도 큰 충격을 안겨주기때문이다.

1951년 가을이였다.1211고지의 한 구간을 맡고 완강한 방어전을 벌리고있던 제2보병사단 17련대 2대대 6중대앞에는 많은 희생으로 하여 더이상 지탱하기 힘든 위험한 상황이 조성되였다.

당세포부위원장은 당원들을 결사전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당세포회의를 열고 당결정을 채택할 결심을 하였다.또다시 고지로 기여올라오는 적들때문에 당원들이 한자리에 모일수는 없었다.당세포부위원장은 봇나무껍질을 총탁우에 펴놓고 거기에 결정서초안을 적어나갔다.

《첫째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일보도 퇴각하지 말것.자기에게 부과된 전투명령을 무조건 집행할것.

둘째 목숨이 붙어있는한 끝까지 싸우라! 탄알을 아끼라!

셋째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소리높이 부르며 1211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자.》

탄피속에 넣어져 당원들의 손과 손으로 옮겨진 그 결정서초안의 뒤면에는 이런 글들이 씌여졌다.

《세포부위원장동무, 결정서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총탄을 아끼겠습니다.》

《내옆에 있는 2분대장 김동무도 같은 심정이라고 하오.절대찬성이라고…

당원동무들!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며 민청원들의 앞장에 서서 싸웁시다.》

그즈음 이와 내용이 거의나 같은 또 한건의 당세포회의 결정서가 같은 사단의 4련대 3대대 8중대에서도 채택되였다.결코 부대와 장소가 같고 정황도 같아 당결정서들의 사상과 필치가 그렇게도 같은것은 아니였다.

1953년 6월, 351고지공격전투를 앞두고 제7보병사단 53련대 2대대에서는 당회의들이 열렸다.회의는 격식과 틀이 없이 결정서초안을 읽고 당원들이 결의를 다지는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당원들이 앞장에서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면서 돌격할데 대한 당결정서를 모두가 손을 들어 찬성하였다.5중대 부소대장 김인택동지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임무를 끝까지 수행할것을 맹세합니다.

당은 나를 영예로운 당원으로 키워주었습니다.당원증을 가슴속에 간직하던 날 나는 당과 수령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몸도 마음도 다 바쳐 싸우겠다고 굳게 결의했습니다.》

3명의 육탄영웅을 배출한 이 전투에서 그는 제일먼저 몸으로 적의 화점을 막았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런 열화같은 충성심에 필을 찍어쓴 당결정서와 맹세문의 사상과 필치들이 어찌 한결같지 않을수 있으랴.

《우리의 친근한 김일성장군님!

우리들은 경계임무를 수행하는 잠복초소에서 장군님께서 주신 조국의 대지에 가슴을 대고 원쑤들의 준동을 예리하게 감시하고있는 긴장한 시간을 보내고있습니다.오늘도 우리들은 품속깊이 간직하였던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러보며 승리의 신심을 몇번이고 가다듬고있습니다.…

만일 놈들이 덤벼든다면 우리 둘이서 40명은 단숨에 해제끼겠습니다.》

이것은 근위 서울제3보병사단의 2명의 병사가 적들을 눈앞에 둔 잠복초소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삼가 올린 맹세문의 구절이다.군기앞에서의 군인의 선서와 수령앞에서의 전사의 맹세가 하나로 합쳐져 태여난 이런 영웅성은 세계전쟁사에도, 세계의 어느 나라 군대에도 없다.

불과 5년!

우리 새세대들이 로동당의 품속에서 태여나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며 자라온 복받은 인생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나날이다.그러나 당결정서와 맹세문으로 안아보게 되는 전화의 용사들의 충성심앞에서는 후세들 누구나 머리를 숙이게 된다.

공화국의 첫 세대들, 그들은 수령의 은혜를 얼마나 고맙게, 무겁게 여기였던가.그에 보답하려는 량심은 또 얼마나 순결하고 열렬했던가.

고향과 학교, 땅과 공장, 공화국제도… 오늘날 우리들이 타고난것으로 례사롭게 여기는 이 모든것을 1950년대 세대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갚아야 할 수령의 하늘같은 은덕으로 여기였다.

《나는 오늘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전투명령을 받았다.가슴은 몹시 설레인다.

나는 화전민의 아들이다.왜정때 가난과 천대, 멸시가 얼마나 심하였던가.아, 너무도 지긋지긋하였다.해방후 장군님의 덕분으로 보낸 행복한 나날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

김일성장군님을 위하여, 당을 위하여 나의 목숨을 마지막까지 바치자.》

이것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드리는 제2어뢰정대의 맹세문이 채택된 1950년 7월 1일 밤에 어뢰정24호 정장 양관익동지가 남긴 일기구절이다.이 글줄에 전화의 당결정서와 맹세문이 왜 그토록 명백하고 솔직하고 절절한가에 대한 대답이 비껴있다.

비록 5년의 새 생활이였지만 그들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품에서 다시 태여난 자신들의 삶의 가치, 받아안은 은덕의 무게를 똑똑히 알고있었다.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은 무조건 옳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철석같은 믿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장군님의 명령을 무조건 집행함은 곧 그이의 아들, 전사의 본분이고 도리이며 또한 영예이고 영광이라는 철리를 교양으로가 아니라 삶의 본능으로 체득하고 받아들인 그들이였다.

그래서 대중의 선봉투사가 되여야 할 당원의 영예를 그토록 무겁게 받아들였고 당앞에 다지는 맹세를 생명보다 더 귀중하고 신성한것으로 여기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오직 자기 당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당결정을 목숨바쳐 받든 견결한 혁명정신이라고 높이 평가하신 전승세대의 당결정결사관철정신은 이런 열원에서 타오른 심장의 불길이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품에서 태여난 새 조선의 첫 아들딸들, 조선로동당이 키워낸 첫 세대 전사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앞에서는 생각도 결심도 꼭같았다.그 모든 당결정서와 맹세문들을 쥐여짜면 이런 하나의 문구가 남을것이다.

《충성을 다할 때는 왔다》

이것은 형상이 아니라 전승기념관에 전시되여있는 불탄 나무에 씌여진 글발이다.

우리는 조선혁명의 1세들의 견결한 정신과 투철한 충성심을 혁명전적지의 구호나무글발들에서 따라배우고 조선로동당의 첫 세대 전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열렬한 충성심을 전화의 당결정서와 맹세문에서 가슴깊이 새긴다.

수령의 명령, 당이 준 과업앞에서 할수 있는가를 론하기 전에 충성을 다할 때는 왔다고 웨치며 너도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당결정서와 맹세문을 채택하던 그날의 로동당원들과 민청원들곁에 자신을 세워보자.

당결정서와 맹세문은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채택하여야 한다.

 

집행 못한 결정은 없다

 

세계전쟁사의 어느 갈피에도 전투장에서 병사들이 쓴 당결정서와 맹세문이 전승의 고귀한 유산으로 전해져오는 례는 없다.보병총에도 사상을 재우면 원자탄을 이긴다는 영웅조선의 승전철학을 해설없이도 환히 깨닫게 해주는 가장 웅변적이고 직관적인 교과서가 다름아닌 전호속에서 병사들이 쓴 당결정서와 맹세문이라는것을 알게 되면 세상사람들은 누구나 놀랄것이다.

비록 종이에 씌여진 길지 않은 글줄이지만 그것이 발휘한 위력은 원자탄에 비할수없이 거대하다는것을 그 한건한건의 당결정서와 맹세문들이 결사관철되여 이룩된 승전들이 여실히 증명해주었다.그 문건에 일단 손을 들어 찬성하고 수표하고나면 평범한 병사도 불사신의 영웅으로, 불과 한개 중대도 수만대적과 맞서 싸우는 전설적인 용사부대로, 단 네척의 어뢰정도 무적함대가 되여 세계전쟁사의 기적을 창조하였다.

누구나 할수 있고 어느때든 해낼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당결정서와 맹세문을 채택할 필요가 없었다.창건된지 2년밖에 되지 않는 신생국가의 청소한 군대가 지구상의 제일 포악하고 강대한 미제국주의침략군대와 그 추종무리들을 상대로 싸운다는것은 너무도 중과부적이였다.

그러나 최고사령부에서 무엇을 믿고 얼마나 무겁게 용단을 내린 명령들인지 인민군전사들은 잘 알고있었다.승리!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어야 하는지도 명백히 알고있었다.

전쟁에서는 승리냐 패배냐 하는 두길뿐 제3의 길은 있을수 없다.때문에 일단 당앞에 승리를 맹세한 인민군전사에게는 자신에게서 가장 귀중한 피와 목숨까지 깡그리 바쳐서라도 그 맹세를 실천하는것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수 없었다.있다면 그것은 벌써 배신이고 죄악이였다.

세계해전사의 기적을 창조한 주문진해전의 지휘관이였던 김군옥영웅은 그 전설적인 승전의 비결을 후세들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아안고 정대해병회의에서 채택한 맹세문을 읽어주군 하였다.

《경애하는 수령이신 김일성장군이시여!

조국의 바다에 오만하게 기여든 미제해적선을 수장시키고야말 결의에 충만된 우리들은 전투출항을 앞두고 당신에게 이 글월을 드리는바입니다.

조국의 바다는 끝없이 넓지만 미제해적선이 떠있을 자리는 한치도 없다는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의 가슴은 조선로동당의 참다운 전사답게, 항일선렬들의 고매한 뜻을 이은 조선청년답게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히 싸워 미제해적의 무리들을 바다속깊이 수장해버릴 결의에 충만되여있습니다.…》

제2어뢰정대의 네척의 어뢰정은 이 맹세문을 어뢰에 재우고 적순양함집단을 공격하였다.몇백배의 무장과 고용병해적무리를 가진 순양함집단이라한들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이런 무기의 공격에 견디여낼수 없었다.그날의 맹세문은 그 어떤 침략선도 감히 조선의 바다를 한치도 침범할수 없음을 오늘도 뢰성마냥 힘차게 선언하고있다.

《우리의 좌지곁에는 탄피가 덮여 작은 산을 이루고있습니다.우리는 이 탄피산이 태산이 될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우리는 탄알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 수류탄이 떨어지면 육탄으로 원쑤의 숨통에 복수의 총창을 꽂고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고야말것입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이시여!

당신의 아들들인 우리가 살아있는한 1211고지는 영원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지로 솟아있을것입니다.》

이 맹세문은 인민군대의 제일 작은 전투단위인 분대의 명의로 채택되였다.영웅고지의 전호를 지켜선 모든 분대들이 이런 맹세문으로 성돌을 쌓아 1211고지를 영웅조선의 난공불락의 요새를 상징하는 승리봉으로 조국의 지도우에 영원히 우뚝 세워놓았다.

용사들전원이 살아남지 못한 가렬한 전투는 있었어도 집행되지 못한 당결정서와 맹세문이 과연 있었던가.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준엄한 시련의 시기 조국에 닥쳐든 가장 큰 위험을 불과 한개 해안포중대가 막아낸것으로 하여 위훈이기 전에 신화로 전해지는 월미도방어전투, 그 전투에서 용사들의 맹세문은 3일간의 혈전의 마지막날인 9월 15일에 채택되였다.

《…인제는 포도 마사지고 포탄도 떨어져가고있습니다.

중대장과 포장 구학균외 20명의 붉은 전사인 우리들은 락심하지 않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합창으로 부르면서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상륙땅크에 육박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이시여!

적들의 상륙을 좌절시키라는 당신의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고있을뿐만 아니라 월미도해안포중대 당원들과 민청원들은 불타는 포화속에서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의 만수무강을 길이길이 축원합니다.》

최후의 결사전을 앞두고 하고싶은 하많은 말들을 다 담은 이 맹세문은 월미도에서의 마지막무전문으로 전해졌다.월미도용사들의 목소리는 오늘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전파가 되여 후대들의 귀전에, 심장에 메아리치고있다.

수령앞에 다진 맹세를 집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조선인민군 전사의 수치이고 죄악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339고지에 대한 근위 서울제3보병사단 9련대 2대대 두개 중대의 공격은 엄청난 적의 화력으로 하여 일시 좌절되였다.살아남은 군인은 33명, 적진에서 불과 45m 떨어진 《푸른 언덕》이라고 부르는 지점에서 그들은 공개당총회를 열고 결정서를 채택하였다.회람으로 결정서의 내용이 병사들에게 전달되였다.

《첫째로 조국의 고지 339고지를 기어코 점령할것.

둘째로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일성장군님께 드리는 맹세문을 채택할것.

셋째로 공화국기발과 민청중앙위원회 모범기발을 고지우에 휘날릴것.》

당결정대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드리는 맹세문이 채택되였다.

《경애하는 수령님이시여!

339고지는 조국의 고지, 우리의 고지입니다.

여기에 적들이 둥지를 틀 자리도 없으며 우리가 물러설 곳도 없습니다.간악한 원쑤들을 이 고지에 남겨둔다는것은 우리의 최대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근위부대성원의 영예를 깊이 간직하며 공화국기와 민청중앙위원회 모범기발을 339고지마루에 휘날릴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근위병들은 자기들의 맹세를 실천하였다.

전쟁 3년간 인민군전사들이 결의하고 집행 못한 결정은 단 한건도 없었다.하기에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건 최고사령부의 작전들은 어느것이나 세계전쟁사의 기적을 창조한 위대한 전승으로 결속될수 있었다.로동당의 전사들만이 발휘할수 있는 사상의 힘, 정신력으로 승리한 전쟁이였기에 우리의 전승을 조선로동당의 위대한 승리라고 하는것이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나의 몸이 흉탄에 맞아 쓰러진다면 나의 자동총으로, 자동총마저 마사진다면 수류탄으로, 수류탄마저 없어진다면 나의 공병삽으로, 삽마저 마사진다면 나의 손으로, 손마저 없어진다면 나의 발로, 발마저 없어진다면 이발로 물어뜯어서라도 1211고지를 고수할것을 당과 수령앞에 맹세합니다.》

이것은 제2보병사단 4련대 1대대 82㎜박격포중대 포장 로태진동지가 마지막전투를 앞두고 남긴 맹세문이다.

로동당원들이여, 이 피가 튀는 맹세문의 구절로 당앞에 다진 자신의 맹세를 돌이켜보자.성스러운 당결정을 《수령께 맹세한 붉은 맘으로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라는 노래와 함께 전승이라는 가장 위대한 결과로 빛내인 영웅세대가 그대들을 지켜보고있다.

전승의 축포, 그것을 아름다운 불보라로가 아니라 용사들이 뿌린 피방울로 심장에 새겨안는 사람만이 전승기념관의 당결정서와 맹세문의 가치를 알수 있다.

 

마지막맹세문

 

전승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은 3년간의 전쟁의 마지막나날에 채택된 당결정서와 맹세문들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군 한다.《빛난 훈장 가슴팍에 내 집으로 돌아가면》이라고 전호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려보던 그날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온 전쟁의 마지막해 마지막달에도 결사전은 있었고 당결정서와 맹세문은 피로 물들었다.

1953년 7월중순, 근위 서울제3보병사단직속 공병대대 대원이였던 당세포위원장 김병모동지는 적의 고지에 대한 공격전투를 앞두고 열린 공개당세포총회에서 자기 손으로 쓴 이런 결정서를 병사들앞에서 엄숙히 랑독하였다.

《첫째 근위사단의 영예를 끝까지 고수할것.

둘째 탄약을 다 사용하여도 적의 화점이 멎지 않으면 육탄으로 막을것.…》

당세포위원장은 당결정대로 자신이 먼저 육탄으로 적의 화점을 짓부시고 당앞에 다진 로동당원의 마지막맹세를 집행하였다.조선로동당의 첫 세대 전사들은 이렇게 위대한 전승으로 자신들의 충성심과 당성을 떳떳이 총화하였다.

전승의 축포가 올랐다고 우리 혁명이 끝났던가.전쟁이 끝났다고 우리의 당결정서와 맹세문에서 결사관철이라는 말이 사라졌던가.(전문 보기)

 

[Korea Info]

 

Leave a Reply

《웹 우리 동포》후원 안내
カレンダー
2023年7月
« 6月   8月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31  
最近の記事
バックナンバー
  • 2024
  • 2023
  • 2022
  • 2021
  • 2020
  • 2019
  • 2018
  • 2017
  • 2016
  • 2015
  • 2014
  • 2013
  • 2012
  • 2011
  • 2010
  • 2009
  • 2008
  • 2007
  • 2006
  • 2005
  • 2004
  • 2003
  • 2002
  • 2001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