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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지방발전 20×10 정책》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당중앙이 제시한 정책적요구를 철저히 구현하자

주체113(2024)년 3월 27일 로동신문

 

지금 성천군, 구성시, 숙천군, 은파군을 비롯하여 전국의 20개 시, 군들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실현을 위한 투쟁이 활기있게 벌어지고있다.

각지에 파견된 조선인민군 제124련대들의 관병들이 발휘하는 투쟁정신과 일본새는 전국의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에서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게 될 래일에 대한 확신을 배가해주며 혁명열, 투쟁열, 애국열을 비상히 북돋아주고있다.

지방공업혁명에서의 훌륭한 성과, 뚜렷한 결실로 전국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한계단 비약시키고 국가의 전면적부흥장성을 당겨오자면 당중앙이 제시한 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를 가장 철저하게,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여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10년안에 나라의 모든 시, 군에 현대적인 설비들과 생산공정을 그쯘히 갖춘 지방공업공장들을 훌륭히 일떠세우는것은 실로 거대한 사변적의의를 가지는 일대 혁명입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성천군 지방공업공장건설착공식에서 하신 연설에서 시, 군들에 지방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데서 나서는 정책적요구를 명확히 밝혀주시였다.여기에는 인민들의 생활보장에 필수적인 식료공장과 일용품공장, 옷공장들부터 신설하고 철저히 자기 지역의 자연지리적특성과 원료원천에 부합되는 생산공정들을 꾸릴데 대한 문제로부터 시, 군의 크기와 주민들의 수요, 경제적잠재력 등을 잘 타산하여 공장규모를 정하고 공정배치를 합리적으로 하며 지방공업공장들의 현대화수준을 끊임없이 높일데 대한 문제, 건축물의 질과 함께 종업원들의 생활편의시설들과 도로포장, 원림록화를 중시할데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방공업공장건설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원칙들이 뚜렷이 명시되여있다.당중앙이 제시한 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철저히 구현하여야 지방인민들의 숙원을 풀어주고 국가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게 된다.

지금 농촌의 후진성과 종국적으로 결별하는데서 전례없이 방대하고 통이 큰 사업인 농촌살림집건설이 전국적판도에서 본격적으로 벌어지고있으며 가까운 년간에 나라의 농업생산력을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발전궤도우에 올려세우기 위한 사업도 년차별로 힘있게 벌어지고있다.여기에 전국의 지방공업공장들을 10년안에 당중앙의 의도에 맞게 완벽한 실체로 일떠세우고 생산활성화를 실현하면 지방인민들, 전국인민들의 의식주문제해결에서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우리 당이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을 도처에 일떠세울것을 결심하고 강력히 추진하고있는것은 단순히 지방인민들의 초보적인 물질생활수준을 한단계 올려세우자는데만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다.《지방발전 20×10 정책》의 완벽한 실현, 그것은 사람들을 새로운 문명에로 인도하는 중요한 정치적사업이다.전국의 모든 지방공업공장들을 10년안에 당의 정책적의도에 맞게, 지방문명의 척도가 될수 있게 건설하면 도시부럽지 않은 문명을 누리고싶어하는 지방인민들의 숙망이 실현되게 되고 로동과 생활이 더욱 흥겨워지게 되며 사람들의 생활리듬, 생활방식, 생활습성에서도 커다란 개변을 가져오게 된다.

지방공업공장건설과 관련하여 우리 당이 제시한 정책적요구는 지방경제발전의 강력한 토대와 밑천을 마련하기 위한 지침이다.

지방경제에서 지방공업은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이미 있던 공장들을 단순히 개건하고 이빠진 공정들을 보강하는 식으로가 아니라 설계로부터 현대화와 생산공정배치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롭고 선진적인 생산기술적잠재력을 마련하자면 당의 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를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

당중앙의 구상이 철저하게, 완벽하게 실현될 때 지방의 식료, 방직, 일용품공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가 새로운 높이에로 도약하게 되고 우리의 지방경제는 더 큰 발전잠재력을 발휘하며 나라의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요인에도 흔들림이 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정상궤도에 확고히 올려세우는데 적극 이바지할수 있다.

지방공업공장건설과 관련하여 우리 당이 제시한 정책적요구는 지방공업을 동시다발적으로, 균형적이면서도 전면적으로, 효과적으로, 특색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방략이다.

당의 구상대로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바다를 낀 곳에서는 바다를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인민소비품의 가지수와 량, 질을 부단히 제고해나갈수 있게 현대화를 다그쳐나가야 시, 군의 자립적이며 다각적인 발전을 촉진하고 수도와 지방의 차이, 지역간불균형을 극복하는데서 획기적인 진일보를 이룩하게 된다.

당중앙이 바라는 높이에서 시, 군들에 지방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 과정은 시, 군의 3대혁명화를 추진하는 효과적인 계기이다.지방공업공장건설에서 발휘하는 인민군대의 투쟁기풍을 통하여, 자기들의 생활에 와닿는 질좋은 제품들을 통하여 시, 군의 주민들은 당의 고마움을 깊이 느끼게 되고 당정책관철에 스스로 더욱 분발하여 떨쳐나서게 된다.시, 군의 과학기술력량, 기술자, 기능공대렬을 급격히 늘여나가는 계기들은 사람들속에 과학기술중시기풍을 더욱 고조시키고 훌륭히 일떠선 공장들은 본보기적실체가 되여 지역의 생산문화, 생활문화확립을 부단히 촉진하게 된다.

올해는 지방공업혁명의 포성이 울린 첫해이다.천리길도 한걸음으로 시작되듯이 무슨 일이나 첫시작을 잘 떼는것이 중요하다.20개 시, 군들에서 당중앙이 제시한 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를 착실하게 구현해나간다면 우리는 전망적인 10년목표의 첫 돌파구를 성공적으로 열며 다음단계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발판을 확실하게 마련하게 될것이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중앙이 제시한 지방공업공장건설에서 나서는 정책적요구를 잘 알고 실천투쟁에 철저히 구현해나감으로써 지방진흥의 위대한 새 력사를 활기차게 열어놓아야 한다.

당중앙이 제시한 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를 환히 꿰들어야 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성천군 지방공업공장건설착공식에서 하신 연설은 지방진흥의 새 력사를 힘있게 펼치며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강령적문헌이다.여기에는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분투로써 지방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인민생활을 결정적으로 높이려는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가 깃들어있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연설문헌을 자자구구 학습하여야 한다.학습과정을 통하여 지방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데서 당중앙이 내세운 당정책적요구의 정당성을 깊이 새겨야 한다.당중앙이 바라는 높이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실현하자면 우리모두가 어떤 안목과 각오를 가지고 투쟁해나가야 하는가를 명심하고 끊임없이 분발하여야 한다.

전국의 시, 군들에서는 지방공업공장들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체계를 지금부터 정연하게 세워야 한다.

모든 시, 군들에서는 자기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지향적인 목표를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지방공업공장규모와 부지선정으로부터 인민들의 수요장악에 이르기까지 지방발전정책관철에서 실지 필요한 사업들을 확고히 선행시켜나가야 한다.공장부지를 선정하는데서는 처음부터 전기와 공업용수보장을 비롯하여 공장운영에 필요한 조건들을 충분히 만족시킬수 있는가, 수송에 유리한가 하는것을 잘 타산하며 특히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것을 심중히 고려하여야 한다.설계단위들과 시공단위, 운영단위들사이의 3자합의체계를 철저히 세워 공장건설후 운영과정에 불합리한 문제들이 산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시, 군당위원회들에서는 원료기지조성과 자체의 기술자, 기능공대렬을 늘이는 사업을 당위원회적인 사업으로 확고히 전환시키고 자력갱생원칙과 과학기술에 의거하여 자기 시, 군의 백년대계를 담보해나가야 한다.

당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한 대중의 정신력은 무궁무진하다.

당조직들은 대중에게 당중앙이 제시한 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와 그 진수를 깊이 체득시키는데 중심을 두고 사상교양사업을 화선식으로, 공세적으로, 립체적으로 벌려 그들모두의 힘을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건설이라는 하나의 목표에로 지향시켜야 한다.지방공업공장건설의 정책적요구를 구현하는 과정이 그대로 시, 군내일군들과 주민들속에 자기 고향과 산천의 모든것을 소중히 여기며 정성다해 가꾸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과 문명을 창조해나가겠다는 각오와 자신심을 키워주는 효과적인 계기로 되게 하여야 한다.행정경제일군들이 주도성과 완강성, 대담성과 창발성을 발휘하도록 키잡이를 바로하며 지방공업공장건설을 당중앙의 의도에 맞게 진행해나가도록 요구성을 높여야 한다.수시로 변동되는 정황에 대처하여 령활하고 기민한 작전과 예단성있는 지휘로 성과는 부단히 확대하고 부족점은 적시에 퇴치하며 정상적인 총화와 재포치, 실질적인 대책강구로 당정책집행의 완결을 담보하여야 한다.

우리 당이 제시한 과학적인 투쟁로선과 방침이 있고 당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드는 인민대중의 단결된 힘이 있으며 충분한 경험과 자립경제의 튼튼한 잠재력이 있기에 전국의 모든 시, 군들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들이 일떠선 새로운 전변상은 반드시 펼쳐지게 될것이다.

모두다 배가된 분발과 분투로 공화국의 장성발전사에 지방이 변하는 새시대를 빛나게 아로새겨나가자.(전문 보기)

 

[Korea Info]

 

수령결사옹위의 항로만을 날은 견실한 혁명전사 -새 조선의 첫 비행사이며 전쟁로병이였던 안성득동지의 영웅적위훈과 참된 삶에 대한 이야기-

주체113(2024)년 3월 27일 로동신문

 

우리 혁명의 성스러운 력사에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수령의 사상과 위업을 받드는 길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유명무명의 혁명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기록되여있다.

그 갈피마다에 진하게 그리고 뚜렷이 새겨져있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수령결사옹위야말로 혁명전사의 가장 숭고한 본분이고 더없이 신성한 의무이라는 고귀한 진리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화의 그날로부터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나날에 변함없이 당과 수령을 충직하게 받들어온 전쟁로병들의 숭고한 정신과 그들이 조국앞에 세운 빛나는 위훈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없이 소중하고 귀중한것입니다.》

수령결사옹위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최고표현이며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고 빛내이기 위한 기본담보이다.

수령결사옹위!

이는 혁명전사들의 제일생명이며 이를 떠난 혁명가의 삶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을 선렬들은 우리 후대들에게 피로써 물려주었다.

새 조선의 첫 비행사이며 전쟁로병이였던 안성득동지가 수령결사옹위의 길에서 발휘한 영웅적위훈과 그의 값높은 삶을 통하여 우리는 이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된다.

 

투철한 신념, 삶의 좌우명

 

1956년은 우리 당력사에서 시련의 해였다.

전후 재더미를 헤치고 3개년인민경제계획을 완수한 우리 인민에게는 새로운 5개년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여야 할 어렵고도 방대한 과업이 나서고있었다.그런데 나라에는 자재도 자금도 부족하였고 인민생활도 아직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게다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새 전쟁의 불을 지르려고 미쳐날뛰였다.

더우기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 대두한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저들의 《로선》을 우리에게 공공연히 내리먹이려고 책동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이 어렵다어렵다 해도 오늘처럼 이렇게 어려울줄을 몰랐다고 말씀하신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혁명대오안에 숨어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도 때를 기다린듯 우리 당에 도전하여나섰다.

수정주의자들과 결탁한 놈들은 당과 정부를 어째볼 망상밑에 저들의 심복들로 《내각》명단까지 짜놓고는 그것을 실현하려고 비렬한 음모를 꾸미고있었다.

종파적야욕을 실현하려는 이자들의 음흉한 기도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해 6월과 7월사이에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시는 기간에 더욱 로골화되였다.

당시 민용항공국의 비행부국장으로 사업하던 안성득동지는 외국방문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오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비행기의 비행지휘를 맡아할데 대한 중임을 받아안게 되였다.

주체45(1956)년 7월의 그날은 맑게 개여있었다.

문수리비행장(당시)에 있는 비행지휘소를 차지한 안성득동지의 가슴은 누를길 없는 흥분으로 높뛰였다.

그것은 머나먼 외국방문을 끝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오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최대로 안전하게, 가장 편안하게 모셔야 한다는 자각으로부터 오는것이였다.

그는 비행지휘를 함께 책임진 일군에게 자기가 고심하여 세운 다음과 같은 결심을 보고하였다.

비행기의 도착시간을 최대로 단축시켰으면 한다는것, 그를 위해 환영군중에게 답례하는 비행기의 시내상공비행을 중지하고 국경을 통과한 후 비행장으로 접근시키면서 직접 착륙했으면 한다는 내용의 비행지휘방안이였다.

비행지휘를 맡은 안성득동지의 높은 충성심과 고도의 책임감이 반영된 방안은 심중히 토의되고 적극적인 찬동을 받았다.

하지만 그 시각 안성득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비행기를 맞이하게 될 문수리비행장에 얼마나 무서운 음모의 초점이 모아지고있는가를 꿈에도 알수 없었다.

당과 국가의 일부 요직을 차지하고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흉심을 품고 비행기도착시간을 주시하고있었다.그러나 놈들은 오산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비범한 예지와 예리한 통찰력으로 천추에 용납 못할 역적무리의 흉계를 낱낱이 꿰뚫어보고계시였다.

즉시 비행기를 처음 계획했던 비행장이 아니라 미림비행장에 착륙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가 안성득동지에게 무전으로 하달되였다.

지체없이 문수리비행장 비행지휘소를 철저히 봉쇄한 그는 이 사실을 비행장경비호위사업을 책임지고 나와있던 항일혁명투사 오백룡동지에게 보고하였다.

그가 비행지휘소를 나서려고 할 때 뜻밖에도 당시 공군지휘부의 요직에 있던자가 내무성의 책임적인 위치에 있는 놈을 앞세우고 지휘소로 다가왔다.이것은 엄연히 규정위반이였고 예상치 못했던 정황이였다.

안성득동지는 단호히 놈들의 앞을 담벽처럼 막아나섰다.

《여기에는 누구도 들어올수 없습니다.》

《비행기가 어데쯤 왔는지 알아보려고 그러오.》

《밖에서 기다리십시오.착륙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내무성에 있는 놈이 도끼눈을 하고 덤벼들었다.

《그래 나도 못믿겠다는건가?》

당장에 무슨 벼락이라도 칠듯 눈을 부라리던 그놈은 이어 악의에 찬 목소리로 지껄였다.

《내 명령을 거역하면 총살도 면치 못한다는걸 알겠지?》

순간 안성득동지의 눈에서 섬광이 번뜩이였다.그는 불이 펄펄 이는 눈길로 놈들을 쏘아보며 이렇게 웨쳤다.

총살을 하겠으면 비행지휘가 끝난 다음에 하라.

비수같이 날아와박히는 안성득동지의 말에 놈들은 흠칫 놀랐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투철한 신념을 지닌 혁명전사가 터친 불같은 선언이였다.

이때 오백룡동지가 달려와 놈들을 밀어내며 누구든 호위안전사업에 훼방을 놀면 즉석에서 처단하겠다고 추상같이 소리쳤다.

그제서야 놈들은 풀이 죽어가지고 비실비실 뒤걸음질하였다.그러는 사이에 비행기는 어느덧 안주상공에 이르렀다.

분초를 다투던 그때 한달음에 미림비행장으로 달려간 안성득동지는 지휘소를 차지하고 모든 지혜와 정력을 다하여 비행기의 안전한 착륙에 전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는 순간 그의 온몸은 땀에 푹 젖어있었지만 얼굴에는 이름할수 없는 희열이 한껏 어려있었다.

안성득동지는 그후 앙심을 품고 발악하는 종파잔당들의 갖은 박해속에서도 추호의 동요를 몰랐으며 이자들의 책동으로 비행기의 조종간을 일시 놓게 되였을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철석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당의 은정속에 다시 비행기의 조종간을 잡게 된 안성득동지가 보답의 일념 안고 비행장에 나가살다싶이 하던 어느해 초봄이였다.

감기에 걸려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훈련에 열중하던 그에게로 불쑥 항일혁명투사 오백룡동지가 찾아왔다.

안성득동지에게 나쁜 놈들의 죄행과 그가 당한 모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까밝혀준 투사는 얼마전 어버이수령님께서 준엄했던 1956년 반종파투쟁시기를 회고하시면서 그때 비행부국장을 하던 동무에 대하여 물어보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전해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투사는 어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오러 가자고, 그날의 사연도 다 보고드리자고 하며 안성득동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안성득동지는 눈물을 흘리며 못가겠다고, 내가 왜 마스크를 끼고있는지 짐작되지 않는가고, 지금은 절대로 위대한 수령님앞에 나설수 없다고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오백룡동지는 그러한 그를 와락 부둥켜안으며 네가 독감에 걸렸구나, 너는 정말 둘도 없는 진국이구나, 진국이야라고 하며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보장해드리는것은 이 땅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첫째가는 도리인데 나도 달리야 살수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안성득동지의 한생에 관통되여있은 삶의 좌우명이였다.

 

보답의 한길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주체38(1949)년 12월 18일은 안성득동지가 한생토록 잊지 못할 영광의 날이였다.

평양학원 항공과 비행사, 기술근무원반 학생들의 졸업식이 진행된 그날 안성득동지는 추격기비행사들을 대표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시범비행을 보여드리는 특전을 지니게 되였다.

몸소 졸업식에 참석하시여 안성득동지에게 조선청년의 기개를 마음껏 떨치라고 고무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공을 날아예는 그의 비행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저렇게 속도가 빠른 비행기를 혼자서 짧은 기간에 타게 된것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이라고, 참 재간둥이라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안성득동지가 비행을 끝마치고 착륙했을 때 비행장은 텅 비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습격기들의 폭격, 사격시범비행을 보시기 위하여 폭격장지휘소로 가시였던것이다.

이때 한대의 승용차가 안성득동지의 앞에 와 멎어서더니 그를 태우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기운차게 보고를 올리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하다고, 잘했다고 하시며 조국의 하늘을 동무들에게 맡긴다는 크나큰 믿음의 말씀을 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사진촬영대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성득동지는 자기가 받아안은 사랑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미처 다 알수가 없었다.

그가 이 장소에 오기 전에 있은 일이였다.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사진촬영준비가 다되였다고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이제 비행한 추격기비행사가 왔는가고, 그 동무를 빼놓고 어떻게 사진을 찍겠는가고, 그 동무가 올 때까지 좀 기다리자고 하시며 승용차까지 보내주시였던것이다.

영광의 기념사진촬영장에 서게 된 안성득동지는 이 세상의 행복은 혼자서 다 독차지한것만 같아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우리 수령님께서 새 조선의 첫 비행사들과 남기신 력사적인 화폭에는 이런 감동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가렬처절한 전화의 시기 안성득동지는 21살의 젊은 나이에 제56추격기련대 대대장이 되여 조국해방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는 주체39(1950)년 6월 26일 리문순비행사와 함께 의정부와 춘천쪽으로 가는 철도교차점상공에서 적군용렬차를 습격파괴하였으며 다음날에는 영등포비행장에 폭탄을 퍼부어 수많은 적비행기와 군수기재들을 날려보냈다.

그리고 새 조선의 첫 비행사들이 날강도 미제공중비적들에게 단단히 본때를 보여준 6월 28일에는 적기 1대를 격추하였으며 후날의 공중전에서 또다시 적기를 쏴떨구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믿음과 사랑을 불사의 힘으로 간직하였기에 그는 어느한 전투에서 비행기가 십여발의 적기총탄에 맞아 천개가 날아나고 몸에 파편이 박혔을 때에도 굴함없이 싸웠으며 평양하늘을 지키던 나날에는 갈가마귀떼처럼 날아든 적기들을 주저없이 맞받아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난 새 조선의 비행사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였다.

가렬처절한 전투가 계속되던 어느날 안성득동지는 새로운 임무를 받아안게 되였다.전쟁이 날로 격렬해짐에 따라 시급히 비행사후비를 키워낼데 대한 전투명령이였다.

그는 비행사를 양성하는 사업이 곧 전투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교시를 깊이 새기고 지체없이 비행사속성양성기지로 떠났다.

그러나 양성기지에 펼쳐진 현실은 예상밖이였다.비행장활주로에는 풀이 무성하고 숙소도 없었으며 훈련보장기재도 한심하여 도무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의 뇌리에는 한 일군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되새겨졌다.

며칠전 비행사후비양성을 추격기련대의 3대대장에게 맡기려 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각나오, 졸업식날 나에게 시범비행을 보여준 그 재간둥이 말이지, 그 동무는 꼭 해낼게요, 그 재간둥이가 앞선 나라의 비행사양성관례를 깨뜨리고 불과 몇달만에 전투비행사가 되여 나를 기쁘게 하여준 우리 당의 매였지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는것이였다.

(이 한몸이 열쪼각, 백쪼각이 난대도 최고사령관동지의 하늘같은 믿음에 결사의 실천으로 보답하리라.)

이런 비상한 각오로 충만된 안성득동지는 밤을 새워가며 비행훈련계획을 작성하는것과 동시에 전시환경에 맞는 강도높은 비행훈련일과표를 작성하였다.그리고 연유보급차를 대신하여 20여개의 물초롱을 구해다 보급기재를 준비하고 착륙훈련에 필요한 표식끈은 백포를 가지고 리용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시작을 뗀 사업이였으나 그 과정은 실로 간단치 않았다.

훈련생들을 맡아 하루에도 몇차례씩이나 하늘에 날아올라 비행훈련을 지도하여야 하고 조종술교육체계의 기존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초보련습기의 훈련이 끝난 다음 중간고등련습기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투련습기에로 뛰여넘는것으로 하여 안성득동지가 받는 정신육체적중압은 말할수없이 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롭고 참기 어려운것은 사대주의사상에 쩌들대로 쩌든 일부 나쁜 놈들이 직권을 내흔들며 걸음마다 헐뜯고 위협하여나서는것이였다.

이자들은 큰 나라에서도 비행사 한명을 키우자면 몇년이 걸려야 하는데 이것은 모험이고 개인영웅주의라고, 석달동안에 아무리 날고뛰여도 비행사는커녕 자동차운전사도 키울수 없다고 시비해나섰으며 만약 비행사들이 전투를 제대로 못하면 군사재판에 회부될것이라고 압력을 가하였다.

그때마다 안성득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모든것을 지켜보고계신다는 든든한 배심을 안고 우리에게는 수령님께서 배워주신 우리 식이 있다, 나는 수령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것밖에는 모른다고 하면서 훈련속도를 계속 높여나갔다.

드디여 하루를 천날맞잡이로 피타게 훈련한 양성생들이 66일만에 쇠소리나는 비행사로 자라나게 되였다.

비행사양성기간 66일!

이것은 아직 세계공군사가 알지 못하는 기적이였다.

어엿하게 자라난 비행사들을 전선으로 떠나보내던 시각 최고사령부 하늘가를 숭엄히 우러르는 안성득동지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그것은 보답의 한길에서 불가능을 모르는 혁명전사의 억센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그가 양성한 비행사들중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중우세》를 뽐내던 미제공중비적들을 전률케 한 백기락, 안홍준, 강정덕영웅들도 있었다.

그후 안성득동지는 또다시 짧은 기간에 우수한 비행사들을 양성하여 전선으로 떠나보내였다.

 

마음은 언제나 충성의 항로에

 

수령을 받드는 충성의 항로에서 착륙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이 안성득동지가 지닌 인생관이였다.그는 전쟁로병으로서 예순이 넘을 때까지 비행사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히 복무하였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정든 비행기의 조종간을 놓게 되였을 때 그는 마치도 제살붙이를 잃은것만 같아 허전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안성득동지는 새 조선의 첫 비행사가 되여 조국의 푸른 하늘을 날던 그날에 자신을 세워보며 마음을 다잡군 하였다.

온 나라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였던 주체82(1993)년 3월 자기의 복대를 열렬히 호소하는 한 전쟁로병이 있었다.그가 다름아닌 안성득동지였다.

떼질하다싶이 해서 탄원자명부에 이름을 등록하고 돌아온 그날부터 안성득동지는 비행기에 대한 복습과 조종술모방훈련을 직심스레 하였다.저녁이면 또 저녁대로 야간비행을 위한 계기보기와 자세를 바로잡는 동작을 익히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적들이 덤벼들면 돌아올 연유대신 폭탄을 더 적재하고 맞받아나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비행사답게 영용하게 싸우리라는것이 안성득동지의 불같은 신념이였다.

언제나 충성의 항로에 마음을 얹고 사는 그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적인 공군무력건설사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을 고증하는 사업에 자신의 정력을 기울였으며 여러편의 회상실기도 집필하였다.또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희생된 전우들의 전투위훈을 하나라도 더 확증하기 위해 애썼다.

지금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학술연구부에 보관되여있는 로병의 두툼한 고증자료에 의하여 새 조선의 첫 비행사들로부터 전쟁시기 당과 수령을 위하여 충직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비행사들의 위훈이 후대들에게 보다 정확히 알려지게 되였다.

안성득동지는 이것을 더없는 자랑으로, 긍지로 여겼다.

언제인가 대학에 다니는 손자가 안성득동지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전쟁로병으로서 큰 공을 세우고도 왜 영웅이 못되였는가고.

그때 안성득동지는 난 그저 전승이라는 거목에 뿌리가 되였다면 그이상 더 바랄것이 없다고 흔연히 말하였다.

이것은 한생토록 당에 충실해온 한 전쟁로병의 진정이였다.

세차례의 전국로병대회에 이어 제4차 전국로병대회에도 참가한 안성득동지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신 주석단에 20대 비행지휘관시절의 군복차림으로 앉게 되였다.

무한한 감격에 휩싸여있던 그 시각,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우리의 전쟁로병들은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결사수호한 민족의 장한 영웅들이며 진정한 애국자들이라는 최상최대의 평가를 안겨주실 때 그는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과연 이 세상 그 어디에 우리 전승세대들처럼 이렇듯 영광의 최절정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많은 생각이 갈마들수록 안성득동지는 전쟁로병으로서 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였다.

그는 전쟁로병인 안해와 함께 새세대들에게 전승세대들이 간직하고 산 충실성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 혼심을 다 바쳤다.

그는 생의 마지막순간에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조국의 운명이시고 미래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일편단심 충성다해 받드는 길에 후손만대의 행복과 번영이 있다는것을 꼭 명심하라고.

이것이 한생토록 변함없이 충성의 항로만을 줄기차게 이어온 안성득동지가 남긴 간곡한 당부였다.

그의 값높은 생은 우리 새세대들에게 수령결사옹위에 혁명가의 가장 빛나는 삶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그렇다.

수령결사옹위는 혁명전사들에게 있어서 지상의 의무이며 이길에 우리의 승리도, 찬란한 미래도 있다.

조국은 곧 수령의 품이라는 고귀한 철리를 온넋으로 안고 사는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수령결사옹위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갈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장과 윁남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부장사이의 회담 진행

주체113(2024)년 3월 27일 로동신문

 

조선로동당대표단 단장으로 윁남을 방문하고있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장인 김성남동지와 윁남공산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이며 당중앙위원회 대외부장인 레 호아이 쭝동지사이의 회담이 25일 하노이에서 진행되였다.

김성남동지는 조선로동당의 대미, 대적투쟁로선과 정책에 대하여 언급하고 두 당 수뇌분들의 력사적합의를 전면적으로 리행하여 친선협조관계를 가일층 공고발전시킬데 대해서 강조하였다.

레 호아이 쭝동지는 윁남과 조선 두 당, 두 나라사이의 관계는 사회주의리념에 기초한 굳건한 관계이라고 하면서 전통적인 윁남조선친선관계를 승화발전시켜나갈 윁남공산당과 정부, 인민의 확고부동한 립장을 표명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두 당, 두 나라사이의 정치적뉴대를 확대강화하며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을 활성화하고 국제무대에서 긴밀히 지지련대하여 쌍무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려세우기 위한 문제들을 토의하고 견해일치를 보았다.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조선로동당대표단 성원들, 윁남주재 우리 나라 림시대리대사가, 상대측에서 윁남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부 부부장을 비롯한 당대외부, 외무성 일군들이 참가하였다.

이날 조선로동당대표단은 윁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마련한 환영연회에 초대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인종주의왕국에서 대를 두고 고통받는 불운아들

주체113(2024)년 3월 27일 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2004년 미국의 수도 워싱톤에서 인디안박물관이 문을 열었다.과학, 우주, 예술, 력사와 관련한 박물관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에 인디안박물관이 세워졌다는 소식은 세상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안들을 무참히 학살한데 대한 죄의식때문인가 아니면 《미개인의 문화》에 대한 대비선전으로 백인지상주의를 합리화하자는것인가?

이런 호기심을 품고 박물관을 찾았던 사람들은 실망감을 금치 못하였다.아무런 성의도 없이 거칠게 세운 콩크리트건물인데다가 전시물이라는것도 력사유물은 얼마 없고 온통 시시껄렁한 상품들이였기때문이다.말이 박물관이지 인디안의 력사와 관련하여 배울것은 전혀 없었다.행여나 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튀여나온것은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라는 말이였다.

이 나라에는 인디안들의 력사를 취급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영화회사와 TV방송회사들은 우주개발, 괴물, 악한, 테로 심지어 노예제주제의 영화, 동영상편집물은 닥치는대로 만들면서도 인디안들의 력사를 소재로 한것은 만들념을 안한다.

미국에서 력사학자들의 주되는 관심을 끌고있고 교과서들에도 광범히 서술되여있는것은 오직 《두가지 사변》 즉 미국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다.미국인들이 《대륙탐험기》로 표현하는 인디안살륙의 력사는 그 어디에서도 취급되지 않는다.선거전에 나선 정객들은 또 그들대로 민심을 낚기 위해 라틴아메리카계이주민들과 혼혈인들 지어 흑인들에게까지 접근해도 인디안들에게는 말조차 걸지 않는다.자기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인디안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때문이다.

수백년전 북아메리카대륙에 기여든 양키식인종들은 《미개인들은 떠나야 한다.》, 《죽은 인디안만이 좋다.》고 떠벌이면서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피비린 살륙전을 벌리였다.쫓겨가는 인디안들을 한사코 추격하여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였으며 짐승처럼 가죽을 벗겨죽이기도 하였다.지어 어떤자들은 인디안의 가죽으로 면도칼을 가는 도구를 만들었는가 하면 턱뼈를 잘라내여 《기념품》으로 자랑삼아 가지고다니기도 하였다.양키들은 저들의 학살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골상학까지 류포시켰다.모든 인종은 동등하지 않다는것 특히 인디안은 멸살시켜도 무방한 렬등인이라는것이다.

미국서부에는 운디드 니라는 자그마한 지역이 있다.미국력사상 최후의 인디안살륙전이 감행된 곳이다.1890년 12월 29일, 그날은 몹시도 추운 날이였다.피에 주린 양키기병대원들이 한 인디안종족이 살고있던 이곳으로 쓸어들어와 무장해제를 강요하였다.형세가 불리하자 족장은 부락한복판에 흰기를 띄우고 종족성원들이 공손히 무기를 바치게 하였다.대부분이 무기라고 할수 없는 원시적인것들이였다.기가 오른 양키들은 인디안들의 집세간들을 마구 내동댕이치고 들부시기 시작하였다.격분한 인디안젊은이들이 거세게 항거해나서자 곧 몸서리치는 살륙전이 시작되였다.여러정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인간백정들은 남녀로소 가림없이 닥치는대로 쏘아죽이였다.간신히 살아남은 인디안들도 모조리 찾아내여 무참히 죽인 후 구뎅이에 처넣었다.말그대로 대참살이였다.이로써 그때까지만 하여도 자유롭게 살고있던 인디안종족이 종말을 고하였다.이 사건이 있은 후 몇주일만에 미련방정부는 《국경확정이 종결》되였음을 선포하였다.

대살륙전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인디안들은 삶의 터전으로부터 강제추방되였다.그들이 걸은 고행의 길은 《눈물의 길》로 전해지고있다.불행한 사람들은 맨발로 수천㎞를 걸어야 하였다.3분의 1이 로상에서 목숨을 잃었다.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시 아무런 쓸모도 없던 땅으로서 양키들이 《대아메리카사막》으로 명명한 서부평원지대에서 수천만마리의 들소들과 공생하게 되였다.그들은 그것도 불행중 다행으로 여기였다.그러나 이런 《평온한 생활》도 오래가지 못하였다.후날 양키들이 그 땅까지 빼앗으려고 쫓아왔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인디안들에 대한 정책은 여전하다.오늘 미국인구의 1%도 안되는 인디안들은 자기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에 시달리며 사회의 최하층에서 생활하고있다.인디안지역의 실업률은 보통 70~80%에 달하며 자살률도 높다.평균수명은 50살미만이다.

10여년전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추격전을 벌리면서 미군은 작전대호를 《제로미노》라고 달았다.제로미노는 20세기초에 죽은 아파치족 족장의 이름이다.보는바와 같이 인디안족장의 이름이 미국에서 첫째가는 원쑤, 없애버려야 할 인물의 대명사로 통용되고있는것이다.

인종주의왕국에서 대를 두고 고통받는 불운아들, 바로 이것이 북아메리카대륙의 진짜주인들이였던 인디안들의 비참한 모습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로씨야대통령 전체 인민이 단결할것을 호소

주체113(2024)년 3월 27일 로동신문

 

로씨야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이 23일 TV화상연설에서 전체 인민이 단결할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모스크바교외의 극장에서 일어난 대규모테로공격사건은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것이라고 하면서 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테로범죄를 막기 위한 특별조치들이 취해졌으며 테로공격사건의 세부를 해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될것이라고 밝혔다.

테로행위의 집행자들과 조직자들, 주문자들은 응당한 징벌을 받게 될것이라고 하면서 로씨야는 테로분자들의 뒤에 누가 있고 누가 로씨야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였는가 하는것을 하나하나 해명하여 대가를 치르게 할것이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로씨야는 준엄하고 참기 어려운 시련을 수없이 이겨내며 더욱 굳세여졌다고 하면서 그는 로씨야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것은 모두가 하나의 대오에 서있는것이다, 우리의 의지, 결심, 용감성 그리고 단결된 로씨야인민의 힘앞에서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맥을 추지 못할것이다고 언명하였다.

23일현재 테로행위를 직접 감행하고 우크라이나로 도주하려던 4명의 테로분자를 포함하여 총 11명이 체포되였으며 테로분자들과 공모한자들을 적발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고있다고 한다.(전문 보기)

 

[Korea Info]

 

상식 : 혈압이 낮아지게 하는 10가지 비결(2)

주체113(2024)년 3월 27일 로동신문

 

5.차를 마신다.

어떤 차들은 혈압을 효과적으로 낮출수 있다.이러한 차들에는 무궁화차, 국화차, 록차 등이 있다.매일 2~3고뿌 마시며 여러 품종을 섞어 마시는것이 가장 좋다.

6.음식에 사탕무우를 첨가한다.

질산염이 풍부히 들어있는 사탕무우는 일산화질소로 전환되여 혈관을 확장하고 혈압을 낮춘다.질산염이 많이 들어있는 기타 남새들에는 진채와 배추, 꽃부루, 줄기양배추, 마늘파, 향미나리, 시금치 등이 있다.

7.해빛쪼이기를 한다.

해빛은 피속에서 일산화질소가 산생되게 하여 혈압을 낮추는데 도움을 준다.해빛방지크림을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20~30분동안 해빛을 쪼인다.

8.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

다 아는바와 같이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고혈압을 초래하는 원인들중 하나이다.매일 명상에 잠기거나 심호흡을 하면 혈압을 효과적으로 낮출수 있다.

9.잠의 질을 개선한다.

잠이 부족하거나 잠의 질이 낮으면 고혈압발생위험성이 높아질수 있다.또한 수면시무호흡도 고혈압을 초래할수 있다.필요한 경우 해당한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10.체육운동을 규칙적으로 진행한다.

체육운동은 혈압을 낮출수 있다.인내력훈련(걷기와 자전거타기 등)과 힘운동(력기 등)은 혈압을 낮추는데 리롭다.이밖에 될수록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고 서있는 시간을 적어도 반나절정도 유지해야 한다.하루에 1만보 걷는것을 목표로 한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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