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주체혁명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충신들 : 필승의 신념 안고 붓대포의 위력을 떨친 열혈전사 -혁명투사 최경화동지의 한생에서-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이 한창이던 주체27(1938)년 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전사의 희생이 너무도 애석하시여 밤깊도록 눈시울을 적시시며 한자한자 추도사를 손수 쓰시였다.
그 전사가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문 《종소리》의 주필로 내세워주신 최경화동지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최경화는 글재주도 뛰여나고 그림도 썩 잘 그리는 보기 드문 재사였다.〈종소리〉의 삽화는 대부분 그가 직접 그려넣은것이였다.정치상학시간에는 강사로 나섰고 전투장에서는 선참으로 돌격에 나서군 하는 선봉투사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위훈담을 들으며 혁명열로 가슴끓이던 최경화동지가 혁명에 참가한것은 주체25(1936)년부터였다.
장백현 17도구 왕가골에서 사립학교 교원을 하면서 그는 주체26(1937)년 1월 조국광복회조직에 들었으며 17도구당지부 조직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싸우는것을 최대의 영예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큰 영광으로 간직한 그는 각계각층의 청년들과 인민들을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켜 그이의 두리에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최경화동지는 주체26(1937)년 여름 마침내 그토록 소망하던대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고 얼마후에는 비서처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그 나날 그는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령도력, 한없이 고매한 풍모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그이만 계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슴에 새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내주간신문인 《종소리》가 창간되자 최경화동지에게 그 발행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는 신문에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해설하는 글을 많이 내여 마당거우밀영에서의 군정학습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데 이바지하였다.
《대학생》이란 별명으로 불리운 최경화동지는 언제나 어려운 일에 누구보다 먼저 나섰고 동지들을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종소리》의 주필사업을 하던 최경화나 《서광》의 발행사업을 책임졌던 김영국은 모두 비서처의 쟁쟁한 문필가들이였다고, 그들이 주동이 되여 《대통령감》과 함께 교재내용을 해설하는 글이나 학습에 도움이 될 문학작품들을 부지런히 써서 우리 대내출판물들에 싣기도 하고 또한 열성독자들을 발동하여 땀내가 나고 화약내가 나는 생동한 글들을 얻어내기도 하였다고 쓰시였다.
일제와의 피어린 싸움을 벌려야 하는 속에서 대중을 교양하는 글을 쓴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철석의 신념을 간직하였기에 최경화동지는 맡겨진 《종소리》의 주필사업을 책임적으로 할수 있었다.그가 쓴 한편한편의 글들은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결정체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