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4.녕안땅에 울린 하모니카소리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3 제9장 제1차 북만원정-

주체108(2019)년 5월 22일 웹 우리 동포

 

 인민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가 인민들한테서 랭대를 받을 때보다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것이다. 원정대가 로야령을 넘는 첫순간부터 이런 랭대에 부딪쳤다고 하면 독자들은 아마 잘 믿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물을것이다. 참된 의리의 창조자이고 옹호자이며 대표자인 인민이 자기의 리익을 수호하는 혁명군대를 외면하거나 푸대접한적이 있었던가고.

 나는 있었다는 말로써 이 상식을 뒤집어놓을수밖에 없다.

 풍요하고 기름진 녕안땅이 곡창지대라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바이다. 그러나 원정대가 로야령을 내려 북만지경에 들어선 초기만 하여도 녕안사람들은 우리에게 밥조차 잘 지어주려 하지 않았다. 궁해서 그런 푸대접을 한다면 련민의 정이라도 느끼련만 오해와 불신을 앞세우고 무턱대고 등을 돌려대니 인민의 지지와 환대에 습관된 우리로서는 아찔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설피를 신고 행전을 친 원정대원들이 멀리서 나타나면 이고장사람들은 《고려홍군》이 왔다면서 무작정 동네에 나가 돌아다니는 아녀자들을 불러들이고 문부터 닫아걸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우리의 동정을 살피였다. 이런 불미스러운 광경은 우리의 자존심에 험한 상처를 내였다.

 우리는 얼마동안 밥도 한지에서 지어먹고 잠도 한지에서 자지 않으면 안되였다. 간도에서는 전혀 체험해볼수 없었던 생소한 현상이였다. 우리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마다 동만사람들은 떼를 지어 달려나와 북과 징을 두드리면서 박수도 쳐주고 가슴팍에 꽃다발도 안겨주었다. 더운물을 떠주고 풋강냉이를 쥐여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제인가는 마촌에 솔대문까지 세워 군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녕안사람들은 우리에게 곁을 잘 주지 않았다. 정찰도 파견하고 지하조직도 발동시켜보았지만 우리는 도대체 이고장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동만에서 주보중이나 북만주 왕래가 번다한 고보배를 통해 사전에 료해했던것보다 훨씬 더 랭혹한 대우였다.

 녕안현에는 옥량하라는 마을이 있었다. 땅이 비옥하고 낟알이 풍족하다고 하여 지명마저 옥량하라고 했다는 마을이였는데 밥은 고사하고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정치사업을 하려고 마을에 나타나서 군중들을 모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좀처럼 응해주지 않아 시국강연조차 할수 없었다. 리성림은 로야령이 험하다고 짜증을 냈지만 이것은 로야령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로운 장벽이였다.

 어떤 대원들은 녕안사람들이 본래부터 그런 랭혈인들이라고 단정하였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장마다 민심이 조금씩 다른것은 사실이지만 손님대접을 후히 하고 그들의 편의를 친절하게 봐주는 중국사람이나 조선사람의 미풍량속이 이고장이라고 하여 달라질수 없는것이다.

 그렇다면 원정대를 아연하게 한 녕안사람들의 인사불성은 어디에 기인되는것인가.

 력사기록에 의하면 녕안땅은 한동안 발해의 수도가 자리잡고있던곳이였다. 이 유서깊은 고도에는 한때 10만명의 주민이 모여 산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개발력사도 비교적 오랜셈이다. 토지는 비옥하고 인민은 근검하고 순박충실하며 신의가 두텁고 정의와 법도를 중히 여긴다는것이 력사에 기록된 이 지방의 공인된 풍토이다.

 발해의 수도가 타고장으로 옮겨지고 백성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후 인구의 부단한 증감과정이 수세기를 거쳐 되풀이되고 세대도 수십차례 바뀌였지만 녕안사람들의 미풍량속만은 퇴색하거나 덞어지지 않고 대대로 고스란히 이어져왔다.

 녕안사람들이 본래부터 차고 야박한 사람들이라는 말은 타당치 못한것이였다.

 어떤 대원들은 녕안이라는 지방이 원래 공산주의운동을 할만한 고장이 못된다는 한심한 주장까지 하였다. 그들이 내놓은 첫번째 론거는 녕안사람들이 의식수준이 낮아 공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이였고 둘째로는 녕안현에 토지가 많은 대신 그것을 경작해야 할 농민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때문에 사회계급적관계에서 적대적모순이 생기지 않으며 따라서 계급투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이런 허무주의적주장은 즉석에서 강력한 반격에 부딪치였다. 세상에 공산주의를 할만한 고장이 따로 있고 하지 못할 고장이 따로 있는가. 공산주의가 뚫고들어가지 못할 고장이 있다면 그런 공산주의를 가지고 어떻게 전세계를 전취할수 있겠는가. 《전세계 로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공산당선언》의 사상을 어떻게 실현할수 있겠는가.

 주민이 적고 땅이 넓어서 적대적모순이 조성되지 않는다는것도 현실을 잘 모르고 내리는 피상적인 판단이다. 그런 리론대로 한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독일이 인구밀도가 희박한 로씨야보다 계급적모순도 더 첨예하고 혁명승리도 먼저 달성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가. 이것은 궤변이다 하고 그 론거들을 일축해버리였다.

 녕안인민들이 공산주의를 리해하지 못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적대시하게 된 원인을 찾으려면 무엇보다먼저 반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죄악에서 찾아야 할것이다. 녕안땅에서 공산주의운동이 활발해지자 일제는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사이에 쐐기를 박기 위하여 일찍부터 비렬한 반공선전을 집요하게 벌려왔다. 정치사상적계몽이 비교적 굼뜨게 진행되여온 녕안에서 그 선전은 주민들속에 쉽게 먹어들어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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