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4月 22nd, 202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꾸바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꾸바공화국 주석에게 축전을 보내시였다
아바나
꾸바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꾸바공화국 주석
미겔 마리오 디아스 까넬 베르무데스동지
생일을 맞는 존경하는 동지에게 가장 열렬한 축하와 진심으로부터의 동지적인사를 보냅니다.
나는 제1비서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꾸바당과 국가의 새 지도부가 로세대혁명가들이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꾸바혁명위업을 굳건히 계승하고 힘있게 전진시켜나가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아울러 제1비서동지의 정력적인 령도밑에 적대세력들의 악랄한 제재봉쇄책동과 겹쌓이는 시련속에서도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전진을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있는 형제적꾸바인민에게 굳은 지지와 련대성을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사회주의위업실현을 위한 공동의 투쟁속에서 맺어진 우리 두 당, 두 나라 인민들사이의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가 앞으로 더욱 강화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제1비서동지와 온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할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 정 은
주체110(2021)년 4월 20일 평양
당정책학습을 강화하기 위한 요구
당 제8차대회의 사상과 정신으로 무장하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자
우리 당은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에서 우리 식 사회주의위업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웅대한 설계도를 펼치였다.
당의 구상과 의도대로 우리 국가의 전면적부흥과 발전을 이룩하자면 전체 인민이 당정책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하고 초소와 일터마다에서 당의 사상관철전, 당정책옹위전의 불길을 거세차게 지펴올려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원들과 근로자들모두가 당의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깊이 인식하고 결사관철하는 당정책의 견결한 옹호자, 철저한 관철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
당의 로선과 정책은 당의 조직적의사이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사업과 생활의 유일한 지침이다.우리 당정책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사상이 구현되여있고 혁명과 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갈수 있는 고귀한 지침이 밝혀져있다.
당정책을 모르고서는 당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갈수 없으며 모든 사업을 당의 의도에 맞게 진행해나갈수 없다.꾸준하고 실속있는 학습을 통하여 당의 로선과 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당중앙과 뜻을 같이할수 있고 맡겨진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나갈수 있다.
그러면 당정책학습을 부단히 강화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요구는 무엇인가.
우선 당정책의 진수를 파악하는데 중심을 두고 진행해나가는것이다.
당정책의 진수를 파악한다는것은 당의 사상과 로선, 방침의 본질을 원리적으로 깊이 체득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당의 로선과 정책은 혁명가들이 생명선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사상정신적량식이다.사람이 육체적생명을 유지하자면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것처럼 혁명가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고 빛내여나가자면 그에 필요한 영양소를 끊임없이 섭취하여야 한다.
당의 로선과 정책을 자자구구 깊이 학습하여야 당에서 절실히 바라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깊이 인식할수 있으며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사업을 활력있게 밀고나갈수 있다.
당의 로선과 정책으로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는 사업이 혁명의 요구라는것을 자각한 사람은 결코 시간타발, 조건타발을 하지 않는다.해야 할 일이 많고 어려운 일에 부닥칠수록 중단없이 진행하고 더욱 강화해야 하는것이 당정책학습이다.일이 바빠서 학습을 하지 못한다는것은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에는 혁명을 포기하겠다는것이나 다를바 없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당정책학습을 품을 들여 깊이있게 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당정책학습을 자기 사업에 정통하며 실천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정확히 풀어나가기 위한 방도를 찾는 원칙에서 꾸준히 진행하는것이다.
당정책학습에서 경계하여야 할것은 형식주의이다.당정책학습을 실속있게 하지 않고 건수나 채우는 식으로 하여서는 시간만 랑비할뿐 혁명실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우리가 당정책을 학습하는 목적은 당의 구상과 의도를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자는데 있다.
당정책에는 자기 부문, 자기 단위앞에 나서는 투쟁과업이 명백히 제시되여있고 그 수행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져있다.자기 부문, 자기 단위앞에 제시된 당정책을 잘 알아야 사업을 새롭게 개선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도를 찾아낼수 있고 실천에 옮길수 있다.
단위사업에서 비약과 혁신이 일어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당정책학습에 대한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관점과 립장에 달려있다.당정책학습을 생활화, 습성화하여 자기 집안일처럼 환히 꿰들 때 만사가 풀리고 끊임없는 생산적앙양이 일어나게 된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만능의 백과전서인 당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사회주의의 새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오늘의 투쟁에서 혁명적본분을 다해나가야 할것이다.(전문 보기)
백두대지의 청춘언제는 위대한 사랑과 믿음을 전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을 시대의 주인으로 키워 그들이 사회주의강국의 문패를 달게 하려는것은 우리 당의 의지이며 일관한 방침입니다.》
지금도 귀기울이면 들려오는듯싶다.
5년전 4월 22일, 반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신념의 언제, 대기념비적수력구조물을 일떠세워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에 드리는 자랑찬 선물을 마련한 우리 청년들이 보고싶으시여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를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러러 터치던 백두청춘들의 우렁찬 환호성이.
지휘성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정말 수고들이 많았다고, 우리의 미더운 백두청춘들이 백두산영웅청년3호발전소건설을 당 제7차대회를 앞두고 완공하였는데 자신께서 주신 명령을 넉달이나 앞당겨 끝냈다고, 주체혁명의 시원이 열린 백두대지에서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새로운 영웅청년신화가 창조되였다고 말씀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이날 그이께서는 우리 당의 청년중시사상이 이처럼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을 낳고있으며 당의 품속에서 우리의 청년들은 사상과 신념의 강자, 당정책의 열렬한 옹호자, 관철자들로 자라났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사상과 신념의 강자, 당정책의 열렬한 옹호자, 관철자!
바로 여기에 우리 청년들에 대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뜨겁게 맥박치고있는것인가.
정녕 5년전 백두대지를 진감시키며 울려퍼진 그날의 환호성은 우리 청년들을 혁명의 믿음직한 계승자들로, 사상과 신념의 강자들로 억세게 키워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이 나라 청춘들이 삼가 드리는 다함없는 감사와 경모의 정의 세찬 분출이였다.
믿음, 그것은 최대의 사랑이다.
영웅청년이라는 부름과 더불어 오늘도 온 나라 청년들은 깊이 간직하고있다.
우리 청년들이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건설을 통하여 청춘이라는 그 이름을 조국청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기도록 하여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크나큰 믿음의 세계를.
청년들이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어렵고 힘든 전선에서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며 청춘의 용감성을 높이 발휘하도록 하시려는 숭고한 뜻을 안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건설에서 청년돌격대원들이 영웅청년신화를 창조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잊지 못할 6년전 4월의 그날에 우리 마음을 세워본다.
그러면 성스러운 조선청년운동사에 《영웅청년》이라는 글발이 빛나도록 하여주시려 백두산기슭의 발전소건설장에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새기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이 안겨온다.
그이께서 건설장을 처음으로 찾으신 그날은 주체104(2015)년 4월 19일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심중에 차넘친것은 조선혁명의 시원이 열린 성스러운 백두전구에서 발전소를 건설하고있는 청년돌격대원들모두를 시대의 영웅, 백두산영웅청년정신의 창조자들로 키워 온 나라의 청년들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로 내세우실 웅대한 구상이였다.
발전소전경도앞에서 발전소의 규모와 건설진행정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1호발전소언제를 바라보시며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자신께서 오늘 여기에 온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기신 유산이고 조국의 만년재부인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당시)를 하루빨리 건설하자는것을 청년돌격대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이라고.
그러시고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자신께서는 우리 청년들과 인민군군인들이 군민협동작전으로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를 만년대계의 창조물로 일떠세울것을 다시한번 호소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뜻깊은 그날 백두대지의 하늘가에 메아리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불같은 호소,
여기에는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총진군에서 청년들의 비상한 애국열의와 무한대한 정신력을 총폭발시켜 기적을 안아오도록 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 청년들을 교양,단련시키고 열렬한 조국애로 무장시킴으로써 그들이 청춘시절에 조국과 인민을 위한 투쟁의 길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도록 하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청년들의 발걸음이 빨라야 부강조국의 미래가 앞당겨지게 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하신 이 뜻깊은 말씀은 청년돌격대원들이 북방의 엄혹한 환경속에서 모든 곤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을수 있게 한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이였다.
청년돌격대원들은 산악같이 떨쳐일어났다.(전문 보기)
일편단심 당과 수령을 받든 충신들의 한생에서 : 충성의 한마음으로 온넋을 불태운 진짜배기일군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을 지니고 조국과 혁명을 위한 길에 뚜렷한 삶의 자욱을 새긴 수많은 충신들가운데는 우리 나라 기록영화제작사에 빛나는 한페지를 남긴 신윤선동지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 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 30대에 재능있는 기록영화촬영가로 자라난 신윤선동지.
불같은 정열과 남다른 일욕심으로 하여 영화부문에서 《욕심쟁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운 그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재능있는 촬영가였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령도자를 받드는 충실성에서 남다른 사람이라고 평가해야 더 정확할것이다.
1970년대초 신윤선동지가 기록영화부문에서 사업하던 나날에 가슴속에 안고있은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력사적인 혁명활동을 화면으로 기록하지 못하는 문제였다.
한없이 겸허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현지지도를 나가실 때 촬영가들이 따라나서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였으며 어쩌다 기회가 생겨 촬영가들이 그이앞에 나서면 촬영을 하지 못하게 엄격히 막으시였다.
그러다나니 그이의 혁명활동을 화면으로 남기는 일은 좀처럼 성사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을 수록하는 력사적과제를 미룬다는것은 우리 인민과 후대들앞에 만회할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것으로 된다.)
이것이 당시 신윤선동지의 가슴속에 납덩이처럼 들어앉은 고민이였다.
그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군 한 그는 때늦게나마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력사를 화면에 수록할 결심을 더욱 가다듬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제1차 전국예술인학습경연대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접한 그는 몇몇 촬영가들과 함께 급히 경연대회가 진행되는 장소로 달려갔다.
뜻밖에 나타난 신윤선동지를 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누가 동무들을 여기로 오라고 했는가고 하시며 어서 돌아가라고 하시였다.
하지만 신윤선동지는 무작정 그이의 뒤를 따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엄하게 책망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 회의장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신윤선동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였다.
옆에 서있던 한 젊은 촬영가가 이제는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고 말을 건네였다.
그러자 신윤선동지는 버럭 성을 내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동무는 여기로 나올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들의 촬영을 수락하실것이라고 생각했소?나는 여기로 나올 때부터 그이께서 수락하지 않으시리라는것을 예견했단 말이요.앞으로도 그이께서는 자신을 촬영하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수락하지 않으실거요.》
그리고는 한순간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촬영기를 들고 관람석으로 조용히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시종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경연을 지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 우러르고 또 우러를수록 정말 태양같이 환한 모습이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학습경연이 막을 내리고 심사결과에 대한 발표까지 끝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바로 이때였다.신윤선동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주석단가까이로 다가서더니 촬영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1차 전국예술인학습경연대회에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는 불멸의 영상이 우리 당력사에 생동한 화면으로 수록되게 되였다.
여느때는 과묵하고 좀처럼 자기 내심을 드러낼줄 모르던 그였지만 이날만은 어린아이가 된듯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하였다.(전문 보기)
청춘의 삶은 어떻게 빛내여야 하는가
청년들이여, 당의 부름에 심장으로 화답하는 위훈창조의 기수가 되라
혁명의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로 태동하는 이 땅이 청년들의 투쟁열기로 하여 더욱 용암마냥 끓어번지고있다.
지난 3월 남포시안의 140여명 청년들이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의 사상과 정신을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농촌으로 첫 진출을 한데 이어 전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로 앞을 다투어 달려나가고있다.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주요전구에로 전국적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계속되는 청년들의 탄원열기는 오늘날 청춘의 삶은 어떻게 빛내여야 하는가를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나서자란 고향과 경력은 서로 달라도 당이 부르는 곳에서 청춘의 리상을 꽃피울 하나의 마음을 안고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용약 달려나가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 진군길에 떨쳐나선 전체 인민을 위대한 새 승리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더운 피 펄펄 끓는 청춘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나팔소리, 북소리를 꽝꽝 울리며 기세높이 나아가면 강산이 들끓고 온 나라에 비약의 열풍이 휘몰아치게 될것이며 강성할 래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입니다.》
오늘 우리 혁명은 새로운 력사적전환기에 들어섰다.자존과 번영의 새시대를 맞이한 우리 청년들은 위대한 김정은시대의 청춘이라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보다 휘황할 래일을 위하여 힘차게 투쟁하고있다.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의 다음단계에로 확고히 이행시켜야 할 오늘의 투쟁에서 우리 청년들은 창조와 혁신의 주인공으로, 미덕과 미풍의 선구자들로 위훈떨칠 혁명적열의에 넘쳐있다.
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의 첫해 진군길의 앞장에서 기치를 들고나가야 할 세대,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나가야 할 주인공들은 다름아닌 우리 청년들이다.약동하는 생기와 활력에 넘쳐 끊임없이 비약하는 위대한 우리 조국은 젊은 힘이 용솟음치는 자기의 장한 아들딸들을 부르고있다.지금이야말로 청년들이 경제건설의 주요전구들을 배심있게 타고앉아 기세좋게 나아감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의 승리적전진을 더욱 다그쳐나가야 할 때이다.
당의 부름에 심장으로 화답하며 수많은 청년들이 진출하는 인민경제의 주요전구들은 보통의 각오나 결심으로는 쉽게 선택할수 없는 가장 어려운 곳, 제일 힘든 부문이다.하지만 애국의 더운 피로 심장을 끓이는 우리 청년들에게 있어서 어렵고 힘든 곳이야말로 청춘의 삶을 가장 값높이 빛내일수 있는 위훈창조의 전구로 되고있다.불길속에서 강철이 단련되듯이 간고하고 시련에 찬 투쟁속에서 우리 청년들은 참다운 혁명관, 인생관을 지닌 불굴의 투사로 자라나게 된다.사회주의경제건설의 어렵고 힘든 전구들은 말그대로 청춘의 희망을 꽃피우고 아름다운 삶을 빛내일수 있는 활무대이며 참다운 혁명가를 키워내는 용광로이다.
지금 진주보석과 같은 청년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는 온 나라를 미풍창조의 불도가니로 부글부글 끓어번지게 하고있다.동지들을 위하여 한몸 서슴없이 내대고 어렵고 힘든 일에 남먼저 뛰여들며 외진 산골과 섬마을의 교단에도 찾아가는 청년들의 훌륭한 미덕과 미풍들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구호를 높이 들고 공산주의를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 사회에 화목과 단합, 뜨거운 정과 활력을 더해주고있다.숭고한 집단주의정신과 혁명적동지애, 고상한 도덕풍모를 지닌 순결하고 건전한 청년들이 사회의 활력있는 부대로 자랑떨치고있기에 우리의 새로운 진군길은 첫걸음부터 비상히 력동적이다.
당의 부름에 심장으로 화답하는 청년들의 고상한 미덕, 온 사회를 혁명열, 투쟁열로 들끓게 하는 청년들의 훌륭한 미풍에는 수령에 대한 순결한 충성심이 비껴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조선청년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며 혁명의 새 승리를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우리 시대 청춘들의 사상정신적풍모의 바탕으로 되고있다.
우리 청년들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품속에서만 청춘의 꿈과 리상을 꽃피울수 있다는 진리를 투쟁속에서 뼈속깊이 새긴 혁명의 새 세대이다.력사의 온갖 풍파속에서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보살펴주는 어버이의 손길,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우리 청년들은 혁명의 계승자들로 억세게 성장하였다.세계적으로 청년문제가 풀길없는 난문제로 되고 청년들이 온갖 사회악의 피해자, 첫째가는 희생물로 전락되고있는 오늘 우리 청년들이 고상한 미덕과 미풍의 창조자로, 사회의 활력있는 부대로, 혁명의 계승자로 억세게 자라나고있는것은 우리 당의 숭고한 청년중시사상, 청년중시정치의 빛나는 결실이다.
령도자의 두리에 천겹만겹의 성새를 이루고 당중앙의 구상과 의도를 관철하는 길에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려는것은 우리 청년들의 확고부동한 신념이고 의지이다.실생활을 통하여 당을 끝까지 받들고 따르는 길은 언제나 승리와 영광의 길이라는것을 깊이 체감하였기에 우리 청년들이 택한 신념의 길은 오직 당을 따라 곧바로이다.
당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는 길, 바로 그 길에 우리 청춘들의 값높은 영예, 긍지높은 삶이 있다.
당을 따라 곧바로,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우리 청년들의 충성의 열도는 날이 갈수록 더욱 승화되고있다.당 제8차대회의 결정관철을 위하여 산악같이 떨쳐일어난 청년들의 자랑찬 모습은 자기 수령, 자기 당을 굳게 믿고 따르는 우리 청년들의 사상정신적풍모의 과시로 된다.새로운 5개년계획수행을 위한 첫해 진군길을 다그쳐나가는 청년들의 앙양된 기세로 하여 전국도처에서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고있다.(전문 보기)
청년들이여, 당의 부름에 심장으로 화답하는 위훈창조의 기수가 되라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서-
-강서구역 덕흥협동농장에서-
본사기자 찍음
사회주의는 우리 생활, 우리 생명
우리는 왜 사회주의를 열렬히 사랑하는가.
우리는 왜 사회주의를 목숨처럼 지키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의 착공을 알리며 울려퍼진 발파소리에서도 찾아본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그날의 발파소리가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그 메아리는 결코 약동하는 3월의 대지만을 뒤흔든것이 아니였다.
우리 사회가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임을 온 세상에 다시금 선언한 이 장쾌한 뢰성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세찬 격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있다.
지금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에서 하신 연설을 되새겨볼 때마다 우리 인민은 누구나 눈굽을 적신다.
우리 당과 국가가 펼치는 대규모의 살림집건설작전은 어떤 경제적리득을 위한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국가의 재부와 근로대중의 창조적로동의 결과가 고스란히 근로자들자신의 복리로 되게 하는 숭고한 사업이라고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이의 연설을 자자구구 새겨볼수록 인민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이 북받쳐오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근본인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리익보다 더 신성한것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주의제도에서 인민은 하늘처럼 떠받들리우고있다.
위대한 우리 국가의 수도 평양의 중심에 인민대학습당이 자리잡게 된데는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다.
수십년전 10월 어느날 모란봉에 오르시여 평양시의 전경을 부감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남산재를 가리키시며 저기에 무슨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평양시복구건설계획도 작성사업을 지도해주실 때 남산재일대를 수도의 중심부로 정하고 그곳을 축으로 도시를 형성하도록 가르치심을 주시면서도 남산재자체는 공지로 남겨두도록 하시였다.
세월이 흘러 남산재앞으로는 김일성광장이 꾸려지고 그 주변에도 크고작은 건물들이 키돋움하며 일떠섰으나 그곳만은 여전히 공지로 남아있었다.
어느해인가 한 설계일군이 그 좋은 자리가 그냥 비여있는것이 아쉽게 생각되여 거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청사를 앉힐 안을 만들어올린적이 있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설계안을 론의에 붙여보지도 않으신채 부결하시였다.그런 일까지 있었던지라 일군들은 남산재에 어떤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는가고 하시는 그이의 물으심에 쉽게 대답을 드릴수가 없었다.
일군들의 그 마음을 헤아려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래 중심광장에는 박물관이나 회관, 도서관, 문화궁전과 같은 인민을 위한 건물을 앉혀야 한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인민을 위한 건물!
그때로부터 두달후 어느날 일군들과 함께 몸소 남산재에 오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이곳을 정리할 때가 되였다고 하시면서 평양에는 이미 인민문화궁전도 있고 학생소년궁전도 있으니 여기에다는 도서관을 하나 크게 짓자고, 학생소년궁전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여기서는 어른들이 공부하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수도의 중심에 인민대학습당이 솟아나게 되였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광장에 정무원청사를 하나 앉혀놓았는데 그것도 중앙에 앉힌것이 아니라고, 중앙에는 인민을 위한 인민대학습당을 앉히고 그옆에 정무원청사를 앉혔는데 그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의 심부름을 많이 하라고 앉힌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얼마나 뜻깊은 교시인가.(전문 보기)
이역의 아들딸들이 대를 이어 받아안는 크나큰 사랑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전하는 이야기-
백화만발하는 4월의 이 봄날 이역의 동포들이 어머니조국으로부터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또다시 받아안았다.어느덧 167번째, 동서고금에 그 류례가 없는 사랑의 력사가 64돌기의 년륜을 아로새기였다.
대를 이어 끊임없이 베풀어지는 그 사랑, 그 은정에 동포들 누구나 감격에 울고웃는다.절세위인들에 대한 북받치는 감사의 정을 안고.
이 지구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해외교포들을 가지고있다.하지만 재일동포들처럼 유치원으로부터 대학까지 정연한 교육체계를 보란듯이 갖추어놓고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고있는 해외교포들이 그 어디에 있는가.이역만리에로 끝없이 굽이치는 절세위인들의 한없이 숭고한 후대사랑이 이런 경이적인 현실을 펼쳐놓았다.
생각할수록 가슴뜨거워진다.추억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의 력사가 시작되던 60여년전의 그날에로 거슬러오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력사에는 총련을 전체 재일동포들의 권리와 리익을 대표하는 주체적해외공민단체로 강화발전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총련이 결성될 당시 민족교육의 실태는 매우 엄혹하였다.자기들이 겪은 무지와 몽매의 설음을 자식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으려고 재일동포들이 한푼두푼 돈을 모아 일본 각지에 학교들을 세웠지만 그 토대는 너무나도 빈약하였다.당시 우리 동포들 대다수가 최하층의 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재정난이 가장 큰 문제였다.가까스로 건설을 시작한 학교들이 자금때문에 해를 넘기면서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설립후에도 여러해나 가교사신세를 면하지 못하고있었다.총련 조선대학교도 도꾜조선중고급학교의 교실 몇개를 빌려쓰고있는 형편이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직원들의 생활비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많은 교원들이 아침은 건빵에 물 한고뿌, 점심은 학생들이 날마다 번갈아 가져오는 주먹밥으로 끼니를 에웠다.저녁을 번지는것은 보통이였고 잠자리는 학교경비실이였다.비바람이 새여드는 판자집교사, 백묵 하나 변변한것이 없는 교단에서 배움의 기쁨과 희망에 한껏 부푼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던 이역의 교육자들이였다.
많은 동포들이 술과 담배를 끊고 반찬값까지 절약하여 한푼두푼 모은 돈을 민족교육에 바치였지만 도저히 자금난을 해소할수 없었다.
예로부터 행복에 웃는 자식보다 불행에 우는 자식을 더 생각하고 제 집에 끼고 사는 자식보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자식에 대해 더 마음쓰는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거치른 이역땅에서 동포들이 겪는 수난, 그중에서도 민족교육이 처한 어려운 실태를 깊이 헤아려보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주체44(1955)년 9월 29일 조국해방 10돐경축 재일조선인축하단 성원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공화국정부는 재일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힘껏 도와줄것이다.교육원조비와 장학금도 보내주고 교과서도 보내주려고 한다.
순간 축하단성원들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깊은 조국의 엄혹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였기때문이였다.전후복구건설로 한푼의 자금도 귀하던 때였다.파괴된 공장과 농촌들을 복구해야 했고 학생들에게 해빛밝은 교실을 안겨주어야 했으며 아이들의 발에서 아버지들의 지하족도 벗겨주어야 하였다.인민들의 생활은 의연히 어려웠고 아이들의 교육환경과 조건도 불비하였다.하지만 아무리 나라살림이 어렵다 해도 이역에서 고생하는 동포자녀들을 위해 꼭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는것이 어버이수령님의 뜻이였다.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장학금은 한두번 보내주고 그만두어서는 안된다.일본에 우리 동포가 있고 배워야 할 어린이가 있는 이상 계속 보내주어야 한다.
주체46(1957)년 1월 국가예산초안을 토의하는 내각전원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간곡한 말씀은 오늘도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이렇게 되여 세상에 없는 예산항목인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 태여나게 되였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