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위한 고심분투에 일군의 값높은 삶이 있다 -청진중앙동물원사료보장수산사업소 지배인 김성원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10월 3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숭고한 애국관과 헌신의 각오를 가지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멸사복무하여야 하며 스스로 무거운 짐을 맡아지고 대중의 앞장에서 뛰고 또 뛰여야 합니다.》

중앙동물원을 찾아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인민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조국의 북변에서 일년 사시절 사나운 파도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청진중앙동물원사료보장수산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다.

지난 기간 사업소에서는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수도의 문화정서생활기지들에서 행복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게 하였으며 나라와 인민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여러 차례 기쁨을 드리였다.그처럼 일 잘하는 사업소의 지배인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성원동무이다.

김성원동무의 지배인사업년한은 11년이다.결코 오래다고 할수 없는 그 나날에 그는 자기의 값높은 삶의 자욱자욱으로 우리 일군들이 한생토록 안고 살아야 할 애국의 진리를 이 땅에 새겨놓았다.

 

《우리 사업소》, 《우리 지배인》

 

듣던바 그대로 청진중앙동물원사료보장수산사업소는 한폭의 그림같았다.

주변의 바다경치와 어울리는 색타일들로 산뜻하게 단장된 사무청사와 생산 및 문화후생시설들, 건물벽체와 구내의 여러곳에 게시된 정신이 번쩍 드는 구호들과 표어들…

생산문화, 생활문화가 훌륭하게 확립된 사업소구내의 전경도 그렇지만 신심과 랑만에 넘친 종업원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눈길을 끄는것인가.

날랜 솜씨로 물고기들을 손질하며 한곡조 넘기는 가공작업반 처녀들의 노래소리에 우리의 마음도 절로 흥겨워지는데 동행한 사업소의 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은 누구라 할것없이 〈우리 사업소〉라고 정답게 부르며 맡은 일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쏟아붓고있지만 사업소가 갓 조직되였던 첫 시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국가적조치로 중앙동물원의 사료용물고기보장을 위해 사업소가 새로 조직된것은 2011년 4월이였다.

크지 않은 생산건물과 고기배들, 그것을 보며 종업원들은 새 일터에 정을 붙이기 몹시 힘들어했다.갓 태여난 사업소가 언제 제발로 걸어나가겠는가고 하며 조건이 좋은 다른 수산사업소로 떠나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지배인 김성원동무는 살점이 떨어지는것처럼 아팠다.사업소의 현 상태에서 부족한것은 결코 연유나 어구, 배무이에 필요한 자재만이 아니였다.그의 마음을 제일 무겁게 한것은 사업소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종업원들이 일터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그 상태에서 과연 사업소를 당에서 바라는 높이에 올려세울수 있겠는가고 고심하는 그의 눈앞에 문득 한생을 성실한 모범로동자로 일해온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일찌기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많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막내아들인 자기가 대학을 졸업하고 수산부문의 한개 단위를 책임진 일군으로 성장하였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난 그저 너를 낳기만 했을뿐 당에서 이렇게 키워주는구나.뼈를 깎고 살을 저며서라도 그 사랑과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사업소의 명칭에 새겨진 《중앙동물원》이라는 다섯글자가 그의 마음을 채찍질했다.당에서는 나를 믿고 인민의 웃음소리와 잇닿아있는 귀중한 혁명초소를 맡겨주지 않았는가.사업소를 일떠세우기 전에 종업원들의 마음속에 일터에 대한 애착부터 심어주자.

다음날 아침 김성원동무는 한장의 신문을 들고 종업원들앞에 나섰다.몇달전 대소한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중앙동물원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모셔져있는 《로동신문》이였다.뜨거움에 젖은 목소리로 혁명활동보도를 읽고난 김성원동무는 이렇게 절절히 말하였다.

《동무들,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두고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우리 장군님께서 1월의 추운 날씨에도 중앙동물원의 곳곳을 오랜 시간 돌아보시였겠습니까.우리모두 어버이장군님께서 하늘처럼 떠받드시는 인민의 행복의 웃음을 지켜선 중요한 초소에 서있다는것을 순간도 잊지 맙시다.》

몸은 비록 수도 평양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우리모두는 인민의 웃음소리를 지켜가는 병사와도 같다는 지배인의 호소는 종업원들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주었다.그날 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저 멀리 평양하늘을 우러러 마음속결의를 다지였다.

(우리 청진중앙동물원사료보장수산사업소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해마다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고 사업소를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시는 사업소, 경쟁력이 강한 전국의 본보기수산사업소로 꾸려나가겠습니다.)

그 맹세를 지켜 그들은 결사의 각오를 안고 분발해나섰다.물고기떼의 류동을 가늠하기 어려워 다른 수산사업소들에서 손맥을 놓고 앉아있을 때에도 대담하게 소형선박에 의한 붉은대게잡이방법을 연구도입하여 생산활성화에 적극 이바지하였으며 실정에 맞는 여러가지 물고기잡이방법을 받아들여 부단히 생산토대를 강화해나갔다.하여 사업소가 무어진 첫해에 벌써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중앙동물원을 찾아 웃음꽃을 피우는 인민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볼 때마다 김성원동무와 종업원들속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지배인동지, 우리도 평양에 갈 날이 있을가요?》

《그럼, 있지 않구.우리가 보낸 물고기들을 먹고 재롱을 부리는 동물들을 보러 꼭 한번 가봅시다.》

자주 주고받은 말이였다.하지만 언제 한번 지켜본적 없는 아니 앞으로 계속 지키지 못할수도 있는 약속이였다.바다를 비우는것은 인민의 웃음소리를 지키는 영예로운 초소를 비우는것과 같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풍랑사나운 날바다우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이렇게 종업원들이 맡은 일에 성수를 내고 뼈심을 바칠수록 그들을 위하는 김성원동무의 진정은 더욱 뜨거워만 갔다.

김성원동무에게는 어길수 없는 일과가 있다.아침이면 종업원들의 휴계실부터 찾아 바닥도 짚어보고 작업장의 온도도 가늠해보았다.먼바다에 나가있는 어로공들의 집을 찾아 가족들의 생활도 구석구석 알아보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고서야 하루일을 시작하였다.

지난 시기에는 기껏해야 낡은 단층건물 몇동밖에 없던 일터에 오늘은 찾아오는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번듯한 작업장과 휴계실, 어구창고며 정양소, 목욕탕 등이 그처럼 훌륭히 꾸려지게 된것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떠나 생각조차 할수 없다고 종업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있다.

김성원동무는 일터의 더 좋은 래일을 안아오기 위해 낮에는 늘 작업복차림으로 블로크도 남보다 배로 지고 뛰여다녔고 밤이면 또 사업소의 래일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무르익혀갔다.

어로공휴계실을 새로 꾸릴 때였다.한겨울에도 뜨뜻한 몸으로 휴식할수 있게 설계한 휴계실은 대번에 종업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건설이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섰을 때 김성원동무가 문득 한가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휴계실에 TV를 놓아줍시다.어로공들이 휴식하면서 영화도 보고 음악감상도 할수 있게 말이요.》

사실 줄창 바다에서 살다싶이 하는 어로공들에게 있어서 제일 그리운것이 문화정서생활이다.그런데 직업상특성으로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던 문제까지도 그토록 세심히 헤아려주는 김성원동무의 진정에 어로공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였다.

종업원들이 수도 평양의 문화정서생활기지들에서 울려나오는 인민의 웃음소리를 지키는 병사들이라면 지배인인 자기에게는 종업원들의 웃음소리까지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이 지워져있다는 관점을 지니고 새 가정을 이루는 청춘남녀들에게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결혼상도 차려주고 갓 입직한 제대군인들에게는 새 살림집도 안겨주며 사업과 생활의 구석구석을 보살펴주는 김성원동무,

이런 일군이 있는 곳에서 어찌 《우리 사업소》, 《우리 지배인》이라는 부름이 스스럼없이 나오지 않을수 있으랴.

높아가는 만선의 배고동소리와 함께 사업소의 곳곳에 흘러넘치는 생기와 약동, 정녕 그것은 위대한 새시대에 태여난 또 한명의 참된 일군, 미더운 복무자가 자기의 뜨거운 애국의 숨결로 지펴올린 창조와 투쟁의 불길이였다.

 

농사일은 우리모두의 일

 

사업소를 짧은 기간에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 수산부문의 전형단위로 추켜세운 김성원동무를 가리켜 사람들은 누구나 애국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한개 농장의 농사까지 도맡아안고 풍요한 농사작황을 이룩하도록 성심성의껏 도와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다.

지난 1월초 가쁜숨을 내쉬며 경성군의 농장들을 오래도록 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김성원동무였다.그가 북방의 사나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도록 사업소의 부업지도 아닌 이웃군의 농장벌을 돌아보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새해의 첫아침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력사적인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전원회의 소식에 접한 김성원동무의 생각은 깊었다.전당적, 전 국가적으로 농사에 힘을 집중하고 농촌을 로력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원할데 대하여 강조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가르치심을 자자구구 가슴에 새길수록 자책감이 온몸을 휩싸안았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농사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고계시는데 나는 과연 그이의 뜻을 얼마나 받들어왔던가?)

지난 시기 사업소일만 생각하며 농촌을 진심으로, 통이 크게 도와주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게만 여겨졌다.하여 그는 초급당일군과의 진지한 토의끝에 알곡생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이웃군을 찾았던것이다.(전문 보기)

 

김성원동무(가운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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