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 장수자와 자살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실생활을 통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야말로 자기들에게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라는것을 확신하고있습니다.》
지금 나는 한장의 사진을 보고있다.
우리 당과 국가의 인민적시책에 의하여 사회주의리상촌으로 훌륭히 꾸려진 황해북도 은파군 초구리에서 사는 백살장수자의 모습이다.
나이를 한살두살 먹을수록 걱정이 커가는것이 일반적인 로인들의 심리라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나이든 로인일수록 더 관심하고 온갖 혜택을 다 돌려주고있어 비록 나이는 늘어나도 더욱 활력이 넘친다고, 고마운 사회주의제도가 있어 백살장수자가 되였다고 하던 로인의 말이 지금도 들려오는듯싶다.
어찌 그 로인 한사람뿐이랴.
올해에만도 만경대구역 건국동과 락랑구역 통일거리3동, 평성시 자산리와 정주시 남철동, 태천군 운월리, 곽산군 천봉로동자구, 라선시 라진구역 안주동, 염주군 서진리를 비롯하여 온 나라 곳곳에서 많은 장수자들이 만사람의 축복속에 백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사회주의 우리 집에 기쁨을 더해주며 백살장수자들이 나날이 늘어만가고있는 현실은 인민의 건강과 복리증진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우리 당과 국가의 인민적시책, 년로자보호정책의 뚜렷한 증시로 된다.
육체의 늙음은 어쩔수 없어도 희열과 랑만에 넘쳐있는 청년들처럼 생의 활기에 넘쳐 무병장수를 노래하는 로인들의 모습은 정녕 누구나 인생의 복락을 마음껏 누리며 세상에 부러움없이 사는 우리 공화국의 참모습이고 가장 아름다운 인간사랑의 화원인 사회주의 우리 제도에 대한 꾸밈없는 구가이다.
가슴한가득 차오르는 긍지와 흥분을 안고 백살장수자의 사진을 다시금 바라보는 나의 뇌리에는 하나의 사실자료가 갈마들었다.
얼마전 괴뢰지역의 언론, 전문가들이 최근 3년간 저들지역에서는 세계적인 대류행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더 많다고 개탄한 자살자자료이다. 지어 같은 기간에 발생한 교통사고사망자와 비교해보아도 자살한 사람이 무려 4배에 달하며 결국 자살로 하여 괴뢰지역 군급규모의 도시 하나의 인구가 완전히 없어진 셈이라고 한다.
하나의 실례가 있다.
걸어갈 인생길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안고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약육강식의 치렬한 생존경쟁만이 존재하는 괴뢰사회에서 쓰디쓴 좌절을 당하게 되자 식구들에게 본의아닌 거짓말을 하고 《가짜출근》까지 하던 청년. 하지만 그는 가족을 속인 량심의 죄책과 일자리없는 고통, 앞날에 대한 절망속에 몸부림치다가 《죄송하다.》는 한장의 유서를 남기고 애젊은 나이에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
열혈의 청년들의 실태가 이러하니 연약한 녀성들과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로인들, 병약자들과 장애자와 같은 사회적약자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악성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보다도, 교통사고로 불상사를 당한 사람보다도 제손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더 많다니 너무나도 경악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사는것이 죽는것보다 못한 처지에 놓이게 될 때 자살이라는 막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하다면 괴뢰지역에서 각계층의 처지가 어떠한가 하는것은 그들이 터치는 아우성 한마디이면 명백히 알수 있다.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률)와 3저(저생산, 저소비, 저투자)가 지속되면서 죽음에로 가는 길이 짧아졌다.》
윤석열역적패당의 반로동적인 경제정책과 파쑈악정에 의하여 경제위기, 《민생》위기를 비롯한 사회정치적위기가 심화되고 로동권,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당하고있는 절대빈곤층이 수백만명에 이르고있으며 이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에로 내몰리우고있는것이 바로 괴뢰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 부단히 증가되고있는 괴뢰지역의 자살자들은 스스로 파멸에로 줄달음치고있는 미래없는 사회, 인간의 삶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저주로운 반인민적제도를 보여주는 축도이며 자화상이다.
우리 공화국에서 나날이 늘어나고있는 장수자와 괴뢰지역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증대되고있는 자살자, 이는 인민의 보금자리와 사람못살 인간생지옥이 과연 어디인가 하는것을 명암처럼 대조시켜주고있다.
나는 위대한 인민의 나라, 인민의 세상을 끝없이 받들고 영원히 빛내여나갈 신념의 맹세를 다지며 백살장수자의 사진을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사회과학원 연구사 김 광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