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전 그날은 오늘도 천백배 복수의 의지를 새겨준다 구성시에서 감행된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야수적만행을 단죄하며
얼마전 구성시계급교양관을 찾았던 우리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이곳을 강점한 미제침략자들이 단 하루동안에 66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한 자료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미제가 구성지구에 침략의 더러운 발길을 들여놓았다가 쫓겨나기까지는 불과 하루밖에 안된다.하지만 그 하루동안에도 원쑤놈들은 이렇게 두발가진 승냥이로서의 야수적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놓았다.
미제의 잔인성과 악랄성을 더욱 뼈저리게 새겨주는 자료를 보며 분노를 금치 못하는 우리에게 관장 김철우동무는 구성시에는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한이 서린 만행장소들이 무려 수십개나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하여 우리는 인간야수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안고 시의 여러곳으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순간도 늦추거나 소홀히 할수 없는것이 반제계급교양입니다.》
구성시라고 하면 구주성과 북장대를 비롯하여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친 우리 선조들의 애국심을 전하는 국보적인 력사유적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있다.
바로 이 하나하나의 력사유적들도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고발하는 증견자로 되고있다는 김철우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제일먼저 향한 곳은 시의 중심에 자리잡고있는 구성남문이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구성남문은 미제공중비적들이 마구 투하한 소이탄에 의해 형체도 알아볼수없이 무참히 파괴되였었다고 하며 관장은 이런 사실을 전해주었다.
미제침략자들은 전쟁이 일어난지 사흘만에 구성지구에 대한 야만적인 폭격만행을 감행하였다.
당시 이곳에는 전시수송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철길다리들이 있었다.미제공중비적들은 이 철길다리들을 끊어버리려고 거의 매일이다싶이 줄폭탄을 퍼부으며 미친듯이 날뛰였다.
철길다리폭격에 참가하였다가 격추되여 겨우 목숨을 건진 한 미군비행사놈은 자기가 34번째 폭격에 나왔다가 이렇게 되였다고 실토하였다.
철길다리들에 대한 파괴를 목적으로 시작된 미제의 폭격만행은 점차 공장과 병원, 학교, 저수지, 농가들을 비롯하여 평화적인 대상들과 주민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감행되였다.
하여 력사유적들과 공장들은 물론 풍산저수지(당시)가 무참히 파괴되여 수백정보의 땅과 농가들이 침수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 시안의 곳곳에서는 500㎏짜리 폭탄을 비롯하여 미제가 투하한 수많은 불발탄들이 발견되였다고 한다.각종 폭탄들을 구성시 한개 지역에만도 1만 8천여개나 떨군 사실을 통해서도 미제야말로 우리 나라 전 지역을 초토화하고 무생명지대로 만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극악무도한 야수의 무리임을 알수 있다.
미제에 대한 천백배의 복수심으로 가슴끓이며 우리는 시내중심의 북쪽에 위치한 북문턱고개로 향하였다.
그 옛날 외래침략자들과의 싸움을 지휘하던 장수들의 군사지휘처들중 하나였던 북장대가 자리잡고있는 이곳은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있고 경치가 류달리 아름다와 인민들이 즐겨찾는 명승지로 되고있다.관장은 인민의 웃음소리 넘치는 이곳에서도 침략자들의 악랄한 살인만행이 감행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구성지구로 기여들던 미제는 발길이 닿는 마을마다에서 집들을 불태우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길안내로 나서라는 제놈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 고개에서 또다시 여러명의 사람들에게 총탄을 퍼부어 무참히 살해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단 하루사이에 660여명의 인민들이 학살되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660여명, 그것은 원한의 땅 신천에서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이 평균 하루에 학살한 사람들의 수와 거의 맞먹는것이였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가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하는데 관장은 미제의 죄행을 고발하는 장소들이 시의 거의 모든 동과 리들에서 발굴되였다고, 이것은 놈들의 발길이 찍혀진 그 어디서나 인민들에 대한 학살만행이 감행되였음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고 하는것이였다.
미제는 이르는 곳마다에서 전복된 착취계급의 잔여분자들을 비롯한 불순적대분자들을 규합하였는데 《치안대》를 비롯한 각종 반동단체들이 조직되여 침략자들이 감행한 계획적인 살인만행에 적극 가담하였다.이런 악착한 살인귀들에 의해 구성시는 단 하루동안에 죽음의 지대로 변하였던것이다.
그날의 피비린 참극을 잊을수 없어 만행체험자 전보패로인은 오늘도 새세대들에게 자기 가정의 피맺힌 원한을 들려주고있다며 관장은 우리를 그가 살고있는 상석농장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상석농장 축산작업반마을의 생매장터에서 로인을 만났다.
로인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날의 생매장터는 이렇게 이름으로만 남아있지만 한해두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의 눈앞에는 원쑤들의 낯짝이 더욱 생생히 떠오른다며 격분을 토로하는것이였다.
당시 이곳에서 전보패녀성과 리민청위원장이였던 그의 언니 전순탄녀성은 원쑤들의 악착한 고문을 받았으며 놈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들을 생매장하려들었다.
바로 그 시각 인민군대의 재진격이 시작되여 전보패녀성과 그의 언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이 죽음의 학살터에서는 이미 면당위원장(당시)을 비롯한 당원들이 무참하게 생매장당하였다.
정녕 만나는 사람마다,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우리의 가슴속에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야수적본성을 더욱 깊이 새겨주고있었다.
이처럼 단 하루사이에 수백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학살된 사실은 심각한 피의 교훈도 남기였다며 관장은 양하동부근에서 감행된 살인만행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동산면 양지리자위대장(당시)이였던 백형규는 마을의 소문난 씨름군이였다고 한다.그런것으로 하여 불순적대분자들은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도 선뜻 범접할념을 못하였다.
그러나 미제침략자들이 마을에 기여들자 원쑤놈들은 때를 만난듯이 상전들을 앞세우고 그의 집에 달려들었다.
당시 그는 후퇴조직사업으로 집을 떠나있었고 만삭이 된 안해와 3살짜리 딸만이 남아있었다.
차마 임신부와 어린애까지야 해치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그들을 소개대렬에서 떨구어두었던것이 한생의 한으로 남을줄 어찌 알았겠는가.
놈들은 그의 안해를 끌어내여 온갖 행패질을 다하다가 나중에는 총창으로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여 밟아죽이였다.
그리고는 고사리같은 두손을 내밀고 엄마를 부르며 기여오는 어린 딸애에게 수십발의 총탄을 퍼붓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원쑤놈들이 저지른 이런 악랄한 살인만행에 대한 이야기는 기룡리에서도 들을수 있었다.
취재길을 이어가던 우리가 독립3분조원들이 살고있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얼굴마다에서는 치솟는 분노가 서리발치고있었다.
알고보니 리의 계급교양강사가 농장원들에게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마을에서 감행된 계급적원쑤들의 학살만행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는것이였다.
리에서는 자주 이곳에서 복수결의모임을 조직하고 농장원들의 가슴마다에 투철한 계급의식을 심어주고있었다.
당시 마을의 당세포위원장이였던 리동필동지를 체포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던 놈들은 그의 어머니를 이곳에 끌어다놓고 아들이 간 곳을 대라고 하면서 몽둥이로 머리를 내리쳤다.
로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놈들은 이번에는 큰 돌로 또다시 내리쳐 무참히 학살하였다.
며칠후 기룡리 배양고개에서 리동필동지를 체포한 놈들은 그를 나무에 묶어놓고 열손가락과 발가락들에 대못을 박으면서 고문하다가 악착한 방법으로 살해하였다.
그때 놈들속에는 리동필동지와 한마을에서 살던 놈도 있었다고 한다.
원쑤놈들은 이렇게 구성시의 가는 곳마다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기 위해 미쳐날뛰였다.하지만 해방후 행복한 생활을 안겨준 공화국에 대한 우리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절대로 꺾을수 없었다.
6명의 당원들을 생매장한 대안리 소재지마을뒤산의 막운골생매장터와 리인민위원장(당시) 최광준동지를 무참히 학살한 조일리의 자그마한 다리앞을 비롯하여 시안의 곳곳에는 최후의 순간에도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원쑤들을 전률케 하던 애국자들의 뜨거운 피와 넋이 슴배여있었다.
오랜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강산은 많이도 변하여 수십년전 그날의 원한이 서린 곳마다에도 지금은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새 살림집들이 일떠섰으며 행복의 웃음소리가 넘치고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그 장소들을 찾고 또 찾고있다.그곳에서 억울하게 쓰러진 이들이 흘린 피의 흔적을 찾아볼수는 없지만 인간의 탈을 쓴 살인귀들의 죄행을 되새기며 천백배 복수의 의지를 벼리고있는것이다.
단 하루동안에 66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무참히 살해된 70여년전 그날은 오늘도 우리모두의 가슴마다에 누가 누구를 하는 계급투쟁의 길에서는 순간의 해이도 있어서는 안되며 철천지원쑤들을 가장 무자비하게, 철저히 박멸해야 한다는 견결한 계급의식과 투철한 주적관을 더욱 깊이 새겨주고있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