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인민들속에서 :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놓을수 없다

주체107(2018)년 1월 29일 로동신문

김  대  홍

 

(전호에서 계속)

그이께서는 건국실이 훈련소앞에 제기된 과업과 밀접히 결부되여 잘 운영되고있다고 치하하시였다.

그리고 부족점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주시였다.

《학생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키는데서 건국실을 잘 꾸리고 실속있게 운영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건국실은 회의도 하고 학습도 하며 문화사업도 하는 학생들의 훌륭한 교양장소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국실에 광복후 우리 인민이 이룩한 제반민주개혁의 성과와 인민경제발전에 대한 직관물이 적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건국실에는 우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용감히 싸운 우리 인민의 투쟁자료들을 많이 갖추어놓아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력사와 우리 인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우리 인민들의 애국적인 투쟁자료들도 알려주고 특히 항일무장투쟁시기 혁명선렬들이 피흘려 싸운 혁명전통자료들을 많이 알려주어 학생들을 참다운 애국주의와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며 항일혁명선렬들처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전사가 되도록 하여야 할것입니다.》

이렇듯 그이께서는 벌써 그때부터 우리 나라 혁명수행에서 나서는 문제에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당과 취사장에 들리시여 훈련생들의 식사정형을 살펴보시고 친히 밥과 국 그리고 찬맛을 보시면서 부식물보장정형을 료해하시고 식사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할데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그러시고나서 사격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지휘처로 정한 천막주변에서는 각종 저격무기사수들과 포병들이 실탄사격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우리는 이날 보병총, 기관단총, 중기관총 등의 저격무기와 82mm박격포 실탄사격을 진행하게 되였다.

사격장은 그이를 모시고 실탄사격을 하게 된 기쁨으로 들끓었다.간부, 훈련생 할것없이 저마다 높은 성적을 쟁취함으로써 언제나 깊은 관심과 세심한 지도를 주신 그이의 기대에 보답하려는 결의로 충만되여있었다.

《모두들 기세가 좋군.다들 명중시킬 자신이 있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실탄사격을 앞두고 조준련습을 하고있는 동무들에게 이렇게 물으시였다.조준련습장에 있던 동무들은 모두 자세를 바로잡으며 잠시 머뭇거리였다.

《내가 오늘 시험치러 온게 아니요.동무들이 훈련을 잘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구경하러 온셈이니까 자신있게 해보시오.동무들이 백발백중하는 사격술을 소유했는가 한번 봅시다.》

그이께서 이렇게 훈련생들을 고무해주시자 《반드시 명중시키겠습니다.》라고 모두가 씩씩하게 대답올리였다.

《좋소, 그럼 어디 조준련습하는것부터 볼가.》라고 하시면서 그이께서는 조준련습동작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시였다.

그러시다가 그이께서는 한 동무의 총을 손에 잡으시고 몸소 조준동작을 하시며 모범을 보여주시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뜨거워옴을 억제할수 없었다.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도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어린 대원들을 살뜰히 가르쳐주셨고 투쟁의 첫걸음부터 그들이 적과 용감히 싸울수 있는 비상한 힘과 기량을 손수 키워주시였던것이다.

바로 그이께서 오늘은 광복된 조국에서 또다시 이렇듯 새 조선의 청년들을 몸소 가르치고 키워주시는것이였다.

훈련생들의 조준련습을 일일이 살펴보시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격을 잘하자면 원쑤들에 대한 높은 적개심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조준련습을 많이 하여야 하며 목표를 겨눌 때에는 바로 적과 마주섰다는 생각으로 심장이 불타야 합니다.동시에 자기 무기의 성능을 잘 알고 자신심을 가져야 합니다.그래야 한밤에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고 총을 잡으면 원쑤를 첫방부터 족쳐낼수 있고 올리막에 있는 목표나 내리막에 있는 목표, 이동목표, 야간목표나 안개속에서 소리만 들리는 음향목표도 영낙없이 소멸할수 있습니다.요행수로 맞힌다는 생각을 하여서는 안됩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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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속에서 :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놓을수 없다

주체107(2018)년 1월 28일 로동신문

김  대  홍

 

오늘 우리 인민군대는 우리 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필승불패의 강유력한 혁명적무장력으로 장성강화되였다.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무장된 인민군군인들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능히 우리 당과 인민의 고귀한 사회주의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수호할수 있으며 어떠한 적들의 침공에 대해서도 제때에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할수 있는 필승의 신심과 투지로 충만되여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이룩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계승한 우리 인민군대는 정규군으로 강화발전된지 불과 몇년후인 청소한 시기에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과 그의 추종국가군대들의 침공을 영웅적으로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는 력사적승리를 달성하였으며 미제침략자들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산산이 짓부셔버렸다.

오늘 우리 인민군대는 당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확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강유력한 혁명군대로 장성하였으며 조국의 방선을 그 어느때보다 굳건히 지키고있다.

우리 인민군대가 걸어온 빛나는 승리의 길을 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인민군대를 정규무력으로 꾸리시고 인민무력건설에서 제기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제때에 해결해주시였으며 지어는 매개 전사들의 생활상문제에 이르기까지 친히 보살펴주신데 대하여 언제나 감명깊이 생각하게 된다.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던 우리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조국에 돌아왔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당창건과 민주기지창설의 력사적과업을 해결하시는 한편 세계반동의 원흉인 미제침략자들이 일제를 대신하여 우리 조국의 절반땅인 남반부를 강점한 복잡한 정세에 대처하여 인민무력을 시급히 정규군으로 강화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벌써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일본군대, 헌병, 경찰 및 그 주구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진정하게 싸울수 있는 혁명군대를 조직할것》을 천명하시였으며 광복후 그 구상을 실천에 옮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5년 11월에 평양학원을 창설하시였고 뒤이어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창설하시였으며 여러곳에 보안간부훈련소를 세우시였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과 그의 주구들의 민족분렬정책을 보고만 있을수 없으며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손에서 무기를 놓을수 없습니다.

이 땅에 원쑤가 있는 한 무기를 더 튼튼히 틀어잡아야 합니다.우리는 어느 누가 우리를 독립시켜주며 군대를 조직하여주기를 바라고있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운명을 자기 손에 튼튼히 틀어쥐고 자기가 주인으로 되는 완전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하여 언제든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창설하실 당시에 하신 말씀이다.

조국이 광복은 되였으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것인가 갈피를 못 잡고있을 때 각지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은 종파분자들은 혁명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할바없이 파쟁에만 몰두하고있었다.바로 이러한 때 그이께서는 우리 혁명의 앞길을 멀리 내다보시고 이처럼 정규적인 인민무력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시키시였던것이다.

이때 나는 보안간부훈련소 제1분소에서 사업하고있었다.

어제날 로동자, 농민, 학생이였던 청년들이 조국보위의 커다란 포부와 애국심을 안고 첫기에 700여명이나 자원하여 우리 훈련소를 찾아왔다.그들은 저마다 도착하는 길로 훈련소건설사업에 앞을 다투어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것을 빈터우에서 새로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가 패주할 때 파괴한 낡은 건물을 수리하여 훈련생들이 들수 있는 침실, 식당, 건국실을 꾸려야 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인원을 받아들여 훈련을 진행할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훈련소건설에 전력을 다했으나 작업은 뜻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던 1946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훈련소건설장을 친히 찾아오시였다.

그이를 맞이하게 된 나의 감회는 전에 없이 새로왔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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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속에서 :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주체106(2017)년 11월 1일 로동신문

김금산

 

전후 자그마한 농기계공장으로 발족한 우리 공장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오늘은 대규모적인 뜨락또르공장으로 발전하였다.

몇년전만 하여도 인력탈곡기와 축력제초기 등 중소농기계들을 소규모적으로 만들고있던 우리 공장에 오늘은 1년에 수천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할수 있는 고성능특수기계들과 현대적인 전문설비들이 갖추어졌으며 뜨락또르의 주요한 생산공정이 자동화, 반자동화되였다.

이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75hp대형무한궤도뜨락또르까지 척척 만들어내게 되였다.

나는 이처럼 변모된 우리 공장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전후시기에만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러차례나 찾아오시여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공장의 발전전망을 밝혀주시던 일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된다.

특히 그이께서 안겨주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간직하고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던 때를 영원히 잊을수 없다.

우리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첫 뜨락또르생산에 궐기한것은 1958년 10월이였다.

당시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로력이 가장 많이 드는 운반작업과 밭갈이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하여 뜨락또르와 같은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강냉이탈곡기와 같은 중소농기계들을 만들어내는데 불과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공장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뜨락또르를 만들데 대한 영예롭고도 무거운 임무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자리를 같이하시고 당시 나라의 형편과 앞날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주시면서 뜨락또르생산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여주시였다.

《우리는 이미 농촌에서 사회주의협동화를 완성하였지만 아직도 농업은 급속히 발전하는 공업에 비하여 기술적으로 멀리 뒤떨어져있습니다.우리는 앞으로 농촌에 뜨락또르를 비롯한 현대적농기계를 많이 만들어보내줌으로써 모든 농사일을 기계로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만들어 보내주면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할수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서 농민들이 운반작업을 대부분 등짐으로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농촌에서 락후한 영농방법을 퇴치하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로부터 제초, 추수, 탈곡에 이르는 모든 영농작업과 운반작업을 뜨락또르로 하게 하려고 합니다.그렇게 되면 우리 농민들이 농사일을 헐하고 흥겹게 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보내주자면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합니다.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농촌기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으며 외화도 많이 절약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뜨락또르를 한해에 3, 000대씩 수입하는것으로 보아도 3만대를 수입하자면 10년은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처음에 수입한 뜨락또르가 못쓰게 된다는것을 고려하면 10년이 걸려도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필요한 뜨락또르를 보장하기 곤난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있던 우리들은 나라의 형편이 뜨락또르를 절실히 요구하고 당이 그 길을 가리킨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자체로 뜨락또르를 생산하고야말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졌다.

믿음에 찬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것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수 있습니다.우리가 뜨락또르를 제힘으로 만들어야 기술도 발전하지 남의것을 사다쓰기만 하면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든다는것은 우리 나라 기술혁명에서 큰 발전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헤여지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을 믿습니다.나는 동무들이 당이 제시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반드시 성과적으로 수행하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우리들은 그이께서 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회의실에 모여앉았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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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혁명의 요구라면 못해낼 일이 없다

주체106(2017)년 8월 7일 로동신문

송승필

 

동만의 각 현에 창설된 유격근거지가 날로 확대강화됨에 따라 이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1933년 봄부터 동만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을 대대적으로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내가 있던 연길현 유격근거지에도 달려들었다.유격대앞에는 간고한 시련이 닥쳐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에 기초하여 부대지휘부에서는 달려드는 적들을 격파하기 위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였다.

11월 어느날, 우리 병기창성원들은 지휘부로부터 100개의 작탄을 3일동안에 만들라는 긴급한 지시를 받았다.

작탄은 적들의 《토벌》을 분쇄하기 위한 작전에 긴급히 필요하였다.그런데 이것은 당시 우리 병기창의 형편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였다.

적들의 《토벌》로 인하여 약간의 재료와 불비한 도구마저 연화동 수림속에 파묻은채 사방대로 옮겨온 직후였으므로 우리가 있는 이곳에는 무기를 수리할수 있는 약간한 도구외에 한개의 쇠쪼각, 한오리의 철사, 한그람의 화약도 없었으며 일할만 한 장소도 미처 마련하지 못하고있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100개의 작탄을 3일동안에 만들어낼것인가?》

모든것이 구비된 조건에서 만든다 해도 제 기일을 보장하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항차 적들의 눈을 피해가며 도구를 가져와야 했고 재료들을 마련해야 하였으니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혁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란 없다.혁명의 요구라면 없는것은 만들어내고 부족한것은 얻어내여서 필요한 모든것은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손발이 움직이고 심장이 고동치는 한 맡겨진 과업을 실천하자.)

우리 병기창성원들은 저마다 이런 결의를 다졌다.

혁명임무를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토론하던 끝에 우리는 재료와 도구들을 해결하기 위한 두가지 방도를 강구해냈다.

우선 적들의 경계를 뚫고 연화동 수림속에 가서 우리가 파묻어놓고온 재료와 도구들을 가져오는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부족되는 재료를 보충하기 위해서 적통치구역에 내려가 쇠쪼각들과 염산성분이 들어있는 흙을 파오는 일이였다.우리는 각기 임무를 분담해가지고 즉시 길을 떠났다.

그때 나는 몇명의 동지들과 함께 연화동 수림속에 파묻어놓은 재료와 도구들을 가지러 가게 되였다.

날이 저물 때에 길을 떠난 우리는 바위도 얼어터질듯 한 추위를 무릅쓰고 어두운 수림속의 생눈길을 헤치며 밤새껏 걸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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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유격대부부살림집》에 깃든 이야기

주체106(2017)년 7월 14일 로동신문

강위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백두산시절 부부인연을 맺은 우리(나와 김확실)들에게 돌려주신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회상실기 《그이의 품속에서 꽃펴난 사랑》에 상세히 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우리 유격대부부에게 더욱더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안겨주시였다.

전번에 다 쓰지 못한 그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여기에 더 적는다.

횡산밀영에서 확실동무를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한 후 겨울군복을 만드는 재봉대동무들을 도와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곰의골밀영으로 돌아온 나는 그이께 임무수행정형을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보고를 받으시고 수고하였다고 치하하신 다음 동무에게 또 한가지 어려운 과업을 맡겨야겠다고 하시면서 집을 지을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을 짓되 빨리 지으며 지금까지 짓던 집들보다 더 훌륭한 집을 지어야겠다고 강조하시였다.

뜻밖의 과업이였지만 나는 선자리에서 힘있게 말씀드리였다.

《알았습니다.사령관동지! 귀틀집을 몇채 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과업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고싶었던 나는 그이께서 특별히 맡겨주시는 과업을 수행하게 된것이 무등 기쁘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나의 대답을 들으시고 만족해하시며 대원 몇사람을 붙여줄테니 래일부터 일에 착수하라고 하시였다.

영예로운 임무를 받은 나는 다음날부터 4명의 대원들과 함께 그이께서 정해주신 《명당자리》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동무들, 우리가 짓는 집은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과업을 주시여 짓는것인데 사소한 부족점도 없도록 알뜰하면서도 춥지 않게 정성을 다해 잘 지읍시다.》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동무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그것은 나자신의 결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걱정도 없지 않았다.어랑촌유격근거지와 처창즈유격근거지에서 그리고 교하원정의 나날에 많은 귀틀집을 지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특별히 잘 지으라고 하신 집을 그전날의 례사로운 집들처럼 지을수는 없기때문이였다.

돌이켜보면 그전에 내가 지은 귀틀집들은 벽이 통나무를 그대로 무은것이여서 어둡고 우둥퉁한것이 결함이였다.나는 절대로 그런 집을 지어드릴수 없다고 생각하였다.같은 귀틀집이지만 해도 잘 들고 아늑하면서도 정갈한 집을 지어드리고싶었다.나는 동무들과 토론을 거듭하였다.지혜를 합치니 좋은 방도가 나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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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잊지 못할 5.1절 -림 춘 추-

주체106(2017)년 5월 1일 로동신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1940년의 5.1절을 안도현 처창즈부근 밀림속에서 맞이하던 때였다.

우리들은 근 10년간을 두고 전세계로동계급의 명절인 5.1절을 간고한 무장투쟁을 하는 속에서 기념하면서도 간혹 유격대식《연회》를 베푼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날에 굶어본적은 없었다.다른 5.1절은 나의 기억에서 희미하나 1940년 5.1절의 이날만은 나의 기억속에서 항상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의 5.1절은 식량과 소금마저 떨어진 어려운 형편에서 맞이하였다.

지봉손동무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자기 배낭에 조금 남겨두었던 반근가량의 강냉이를 들추어내여 군용밥통에 넣고 푹 퍼지도록 끓였다.물을 많이 두고 실컷 퍼지도록 끓였으나 퍼지는것도 일정한 한도가 있으니만큼 극상하여 모두 한사발밖에 되지 않았다.지봉손동무는 우선 김일성동지께서 식사하시기를 권하였다.대원들은 그래도 강냉이알을 다문 몇알씩이나마 나누어먹었으나 그이께서만은 조금도 드시지 않으셨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병들어 앓는 동무들도 있는데 그 동무들에게 나누어주시오.나야 성한 몸이 아니요.》라고 하시면서 끝내 사양하시였다.

당시 우리 부대내에는 김홍수동무를 비롯하여 나어린 5명의 환자들이 있었다.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사랑에 감복되여 굳이 사양하면서 그이께서 잡수시여야 한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어찌할수는 없었다.김홍수동무와 다른 환자들은 그 강냉이 한사발을 나눠먹고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오래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던 끝이라 강냉이알이 효력을 발생한 그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병마를 이겨내게 한것이였다.

일제놈들의 정찰기는 우리 유격대의 종적을 찾으려고 매일과 같이 미친듯이 떠돌았고 적지상부대의 2중3중의 포위속에서 곤난이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특히 식량이 완전히 떨어진 조건에서 여러날을 굶어오면서 임무를 수행한다는것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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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그는 사령관동지의 의지와 신념으로 싸웠다 (권영벽동지를 회상하여)

주체106(2017)년 3월 20일 로동신문

황금옥

 

나는 수도 평양의 거리를 거닐 때마다 혁명가요를 부르며 행진하는 천리마기수들과 용감하고 슬기로운 우리 인민군전사들의 대렬을 보고는 그들과 함께 노래부르며 벅찬 감격에 잠기군 한다.

 

동무들아 준비하라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이 노래와 함께 나의 눈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백두준령을 주름잡아 넘나들며 적을 섬멸하던 항일유격대의 용감한 전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그리고 오늘의 이 행복을 위하여 귀중한 청춘을 혁명에 바쳐싸운 수많은 전우들의 목소리를 나는 지금도 듣는듯 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이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혁명투쟁에 자기의 고귀한 생애를 바친 권영벽동지의 모습과 함께 그의 목소리를 듣는것 같다.

《…우리들의 심장뿐만 아니요.전체 조선사람들의 심장마다에 김일성장군님의 존함을 간직하고있는 이 나라 금수강산에 그 어떠한 원쑤도 영원히 발을 붙일수 없소.일제놈들은 반드시 망하고 우리는 꼭 승리할것이요.자, 보오.조국땅이 얼마나 아름답소.장군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하루속히 일제놈들을 쳐물리치고 저 조국땅을 우리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오.》

이 말은 권영벽동지가 1937년 5월말 보천보전투직전에 우리가 사업하던 장백현 17도구 뒤등에 있는 보리밭에서 김을 매다가 쉬는 참에 조국의 산천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조국, 조국땅,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말인가! 우리 유격대원들은 조국땅의 한줌의 흙, 한포기의 풀을 가슴에 품고다니며 고난속에서도 행복을 느꼈다.

권영벽동지는 혁명투쟁에 나선 그날부터 자기의 생애를 마치는 순간까지 조국과 사령관동지께 무한히 충직하였다.

《나를 낳아준것은 어머니이고 혁명투쟁에서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준 사령관동지는 나의 스승이며 어버이이시다.나는 일편단심 사령관동지께 충성을 다하리라.》

권영벽동지는 자기의 수첩에 적혀있는 이 말과 같이 조국과 혁명에 대해 충성을 다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모든 사업을 수행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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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 인민들이 지키는 질서는 우리도 지켜야 한다고 하시며

주체106(2017)년 2월 22일 로동신문

림길선

 

평양시의 어느 한 번화한 길가에 제가 일하는 연유공급소가 자리잡고있습니다.

키낮은 4대의 휘발유공급기와 자그마한 건물 한채, 나지막한 꽃벽돌울타리에 둘러싸인 우리 연유공급소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일하는 혁명초소를 더없이 사랑하며 여기에서 보람찬 삶의 기쁨을 활짝 꽃피워나가고있습니다.

제가 일터를 그토록 사랑하게 되는것은 맡은 사업이 중요하다거나 사회생활의 첫꿈을 키워온 정든 곳이라는데서만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도 후세에 길이 전해야 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거룩한 자욱이 뜨겁게 아로새겨져있기때문입니다.

주체61(1972)년 10월 17일이였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서 일을 보고있었습니다.이날따라 웬일인지 연유를 공급받으러 온 차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구내가 복잡하였습니다.그래서 저는 머리쉼을 하고 조용할 때 일을 보려고 밖에 나섰습니다.구내에는 싱그러운 들국화가 한창이였습니다.

제가 구내에로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앞문쪽에서 자동차경적소리가 나더니 까만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서는것이였습니다.

《아니, 저 차가…》

저는 그 자리에 무춤 멈춰섰습니다.휘발유를 넣으러 오는 차들은 반드시 뒤문으로 들어와서 앞문으로 나가는것이 모든 연유공급소들에 세워진 하나의 질서인데 그 차만이 류별나게 앞문으로 들어서기때문이였습니다.저는 자동차운전사에게 말해서 차를 뒤문으로 뽑게 하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기념사진속의 제작소이름

주체105(2016)년 9월 2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현대적으로 개건확장된 평양자라공장을 찾으신것은 궂은비내리던 지난 7월 5일이였다.

불과 1년동안에 희한하게 천지개벽된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자라를 먹이시려고 마음쓰신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할수 있게 되였다고,정말 보람있는 일을 또 하나 해놓았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그이의 환한 미소에 궂은 날씨이지만 공장안팎이 다 환해지는것만 같아 동행한 일군들도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주저앉았던 공장을 세상에 보란듯이 일떠세우시기 위하여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고 개건형성안도 몸소 지도해주시며 일년내내 크나큰 심혈을 기울여오시였건만 오히려 당에서 정해준 시간에 당이 바라는 높이에서 공장을 변모시킨 군인건설자들과 과학자들의 수고부터 먼저 헤아려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달아올랐다.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공장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더없이 기뻐하신 곳이 있었다.무인먹이공급기가 있는 실내자라양식장이였다.

자라의 생육조건에 맞게 꾸려진 양식장안은 그저 서있기만 해도 땀이 철철 흐를 정도로 몹시 덥고 습하고 어두웠다.

그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현장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대뜸 무인먹이공급기를 알아보시고 그앞으로 다가가시였다.《국가과학원 111호제작소》라는 붉은 글자들이 큼직하게 새겨져있는 그 무인먹이공급기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우리 과학자들이 충정의 70일전투기간에 개발하여 우리 나라 양식업에 처음으로 도입한 현대적인 설비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못내 만족하시여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그이께서 제작소일군으로부터 무인먹이공급기에 대한 해설도,군인건설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는 이야기도 다정히 들어주시는데 어느덧 무인먹이공급기가 동작하며 양식못들에 먹이를 주기 시작하였다.마치 눈이라도 달린듯 장애물까지 피해가며 자동적으로 먹이를 주는 모양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일군들도 참 신기하다고 연방 탄성을 올리였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우리 장군님과 4부자운전수

주체105(2016)년 8월 8일 로동신문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선군길우에 꽃펴난 혁명일화들중에는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다.

15년전 7월 7일 드넓은 대지로 전변된 황해남도 태탄군 류정협동농장의 다네벌에서 있었던 사실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거창한 대자연개조전투에 참가하여 애국충정을 바친 사람들의 위훈부터 먼저 뜨겁게 헤아려주시였다.

그리하여 장풍군 공훈뜨락또르운전수 김범룡동무와 그의 아들인 김영수,김철수,김인수동무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집떠나 고생하는 자식을 오래간만에 만나는 혈육의 심정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자애에 넘치신 눈길로 바라보시며 《토지정리에 얼마나 동원되였습니까?》라고 정깊은 어조로 물으시였다.

꿈만 같은 일을 당하여 몸둘바를 몰라하며 김범룡동무가 4년동안 동원되였는데 토지정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일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볼수록 대견하신듯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좋은 일입니다.용습니다.》

나라없던 세월 소경엄마의 손을 잡고 이 골목,저 골목 동냥길을 헤매이던 김범룡동무가 군토지건설사업소 불도젤운전수로 자진한것은 고향땅에 제대배낭을 푼 그날부터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전 전선을 종횡무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토지정리의 포성을 장엄히 울리시였다는 소식은 이들 4부자를 무한히 격동시키였다.그들은 지체없이 강원도토지정리현장으로 탄원하였다.

강원도토지정리,평안북도토지정리,황해남도토지정리…

아버지와 남편의 정을 그리워하고 남자손을 바라는 처자와 멀리 떨어져 일하는 이들에게는 말 못할 가정사정도 없지 않았다.(전문 보기)

 

혁명일화 : 소수점아래 수자

주체105(2016)년 4월 17일 로동신문

 

70일전투열풍은 황금해의 새 력사를 새겨가는 우리 조국의 어장들에도 세차게 타번지고있다.

포구들에 펼쳐진 《이채어경》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울수록 우리 인민에게 더 많은 물고기를 먹이시려고 그토록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올라 그리움에 목메이는 천만군민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주체65(1976)년 1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동해지구수산부문열성자회의를 지도해주실 때의 일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수산사업소 지배인에게 가지고있는 배가 모두 몇척이나 되며 그가운데서 기관선은 얼마나 되는지 마력수별로 이야기하라고 하시였다.

지배인은 수십척이나 되는 배를 부류별로 나누어 보고드리기 시작하였다.

지배인의 대답을 들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중단시키시였다.그러시고는 배가 두척이나 비는데 어떻게 된것인가고 물으시였다.

지배인은 다시 계산해보았다.

확실히 총수자와 부류별수자의 합계가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부끄러운 속에서도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우리 장군님의 《주경야독》

주체105(2016)년 4월 4일 로동신문

 

온 나라에 70일전투의 승리를 담보하여주는 학습열풍이 세차게 일어번지고있다.

길거리는 물론 뻐스와 지하전동차안에서 손에손에 책을 들고 학습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과학기술전당과 인민대학습당을 비롯한 전민학습의 대전당들에 넘치는 전례없는 학습열풍,통일적인 보급망을 형성한 과학기술보급실들에서 누구나 탐구하며 현대과학기술을 습득해가는 이채로운 풍경…

전민학습의 새 경지를 보여주는 이 광경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오늘도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다시금 깊이 절감하면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일화들을 가슴뜨겁게 더듬어보게 된다.

온 나라 인민이 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적호소를 높이 받들고 전후복구건설에 산악같이 떨쳐일어나 세인을 경탄시키는 기적을 창조해가던 주체44(1955)년 1월 어느날이였다.

밤깊도록 어느 한 도서실에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독서에 여념이 없으시였던것이다.

도서실의 한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로 조용히 다가가 매일 밤늦도록 책을 보니 피곤하시겠다고 말씀드리였다.그제야 책에서 시선을 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손수건으로 눈을 비비시였다.그이께서는 일군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일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히 쉬시는 날이 없으신데 자신께서 어떻게 편안히 지내겠는가고 하시면서 이젠 습관이 되여 그런지 밤늦도록 책을 보아도 피곤한줄 모르겠다고,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것이 안타깝다고 나직이 뇌이시였다.

일군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였다.

책을 한번 잡으시면 밤이 새도록 놓을줄 모르시는 그이의 열정이 가슴속에 품으신 높은 뜻에서 불타오르는것임을 느꼈기때문이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승리의 봄을 부른 화선오락회

주체104(2015)년 6월 28일 로동신문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들,전선원호에 떨쳐나선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시면서 열화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전쟁의 승리를 안아오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인민군전사들이 싸우고있는 고지를 찾으신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싸우는 고지의 전사들을 찾아 머나먼 전선길을 떠나시였다.

전선으로 기운차게 달리던 차가 어느 한 곳에 이르러 갑자기 멎어섰다.

며칠째 그치지 않고 내린 비로 길옆에 있는 개울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길을 뭉청 끊어놓은것이였다.

호위성원들은 차길을 마련하기 위해 안타까이 뛰여다녔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발을 벗으시고 물에 들어서시였다.

4월이라고는 하지만 산골물이여서 얼음같이 찼고 아직 새벽어둠이 가시지 않아 물깊이도 가늠할수 없었다.

호위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위험하다고 말씀올리며 그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우리는 여기에서 잠시도 시간을 지체하면 안된다,우리가 이 찬 개울물을 한번 건는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고지의 전사들은 이 시각도 목숨걸고 미제와 싸우고있다고 하시며 오히려 그들을 달래시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우리 원수님과 녀자탁구선수

주체104(2015)년 5월 27일 로동신문

 

지난해 10월 28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새로 개건된 5월1일경기장에서 평양시민들과 함께 국가종합팀과 월미도팀사이의 녀자축구경기를 관람하신 날에 있은 일이다.

경기가 끝나고 열광의 환호를 올리는 선수,감독들과 관람자들을 향해 오래동안 손저어 답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관람석을 나서실 때였다.

문득 그이께서는 한 일군을 찾으시여 전번에 김정선수를 만나지 못했는데 그가 왔는가고,왔으면 빨리 데려오라고 따뜻이 이르시였다.순간 그이를 우러르는 일군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아니 그럼 그 약속때문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해한것은 김정선수였다.

(그렇게 바쁘신 원수님께서 나를 잊지 않고계시다니!)

허둥지둥 경애하는 원수님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는 김정선수의 얼굴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금메달로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빛내이고 우리 당을 받드는 체육인들을 모두 영광의 단상에 내세우고싶은것이 나의 심정입니다.》

그날로부터 열흘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들에서 금메달을 쟁취한 선수,감독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영광을 받아안은 선수,감독들은 태양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다가오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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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거듭 찾아보신 지능교육도서

주체104(2015)년 5월 10일 로동신문

 

지난 1월 2일부 《로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신년사를 하신 그길로 평양육아원과 애육원을 찾으신 소식을 보도하면서 원아들에게 친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시는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을 모신 사진문헌들도 게재하였다.

그중에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림책을 펼쳐드신 사진문헌도 있다.

그것은 애육원일군이 자기네 지능놀이실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들중 한권을 정중히 올린것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보아주시는 화폭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일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평양육아원을 먼저 돌아보실 때부터 시작되였다.

마침 점심시간이니 원아들이 밥먹는것부터 보자고 하시며 식당에도 가시고 보육실과 잠방,물놀이장도 돌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지능놀이실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그곳에서는 육아원 원아들이 수자맞추기와 쪼각그림맞추기를 하고있었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수자맞추기와 쪼각그림맞추기를 하는 어린이들이 모두 맞추기놀이를 잘한다고 칭찬하시였다.아이들이 모두 똘똘하다고 못내 기뻐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지능놀이실의 책꽂이앞으로 다가서시여 《우리 말을 배워요》를 손수 꺼내드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여기에 어린이들의 지능을 계발시키는데 필요한 책들도 있다고 하시면서 육아원일군에게 아이들이 몇살부터 글을 읽는가고 물으시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식수절에 바치신 3시간

주체104(2015)년 4월 27일 로동신문

 

온 나라 인민이 떨쳐나 나무를 심는다. 조국의 산들을 황금산,보물산으로 전변시키기 위해 애국의 구슬땀을 흘린다.

그 모습들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량심의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김정일애국주의란 무엇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애국주의는 내 나라,내 조국의 풀 한포기,나무 한그루까지도 다 자기 가슴에 품어안고 자기의 더운 피로 뜨겁게 덥혀주는 참다운 애국주의입니다.》

지난 식수절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의 어느 한 군부대를 또다시 찾으시였다.

그이를 만나뵙게 된 군부대지휘관들과 전투비행사들의 가슴은 마냥 설레였다.

친어버이품에 안기듯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는 군부대지휘관들과 전투비행사들에게 답례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안광에도 육친의 정이 그득히 넘치였다.

그이께서는 다정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시며 오늘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무심기운동의 첫 봉화를 지펴주신 뜻깊은 식수절이라고 하시면서 올해 식수절을 맞으며 어느 부대에 찾아가 나무를 심을것인가고 생각하다가 선군조선의 영용한 붉은 매들의 영웅정신,희생정신,자폭정신이 탄생한 고향부대의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나무를 심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군부대지휘관들과 전투비행사들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3년전의 바로 그날 어느 한 부대를 찾으시여 나무를 심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던것이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새로 생긴 67개의 좌석

주체103(2014)년 10월 11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지난해 11월 어느날 삼지연군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때에 있은 일이다.

이날 삼지연군문화회관을 찾아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회관의 관리실태와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군예술소조는 정상적으로 운영하는가, 영화상영은 어떻게 하는가도 물어주시고 회관천정의 조명상태도 일일이 헤아려보시며 회관의 관람실로 들어서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가운데통로 중간쯤에 이르시여 스스럼없이 관람석의 한 자리에 앉으시였다.

관람자들이 앉군 하는 평범한 좌석에 허물없이 앉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도와 군의 일군들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해하고있는데 관람실을 둘러보시던 원수님께서 문득 가운데통로를 왜 이렇게 넓게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뜻밖의 말씀에 일군들은 인차 대답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회관관람실의 널직한 가운데통로는 공연관람때마다 책상과 의자들을 들여놓고 일군들을 앉히기 위하여 남겨둔 공간이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짐작이 가신듯 웃음어린 어조로 이곳에서는 탁구도 칠수 있겠다고 유모아적으로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에 어떤 뜻이 담겨져있는가를 깨달은 일군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윽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가운데통로에 의자를 한 둬줄 더 놓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전문 보기)

 

[Korea Info]

혁명일화 : 왕들을 위한 특별연회

주체103(2014)년 6월 30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국제아동절을 맞는 평양애육원 원아들을 찾으시였던 다음날인 6월 2일이였다.

너무나도 뜻밖에 찾아오시여 하늘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종업원모두가 밤을 꼬박 새우고난 아침에 애육원마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연줄연줄 들어섰다.

평양시와 모란봉구역의 일군들,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맞이한 애육원의 종업원들은 무슨 일일가 하고 눈이 휘둥그래졌다.뒤미처 갖가지 음식들을 실은 여러대의 자동차들이 줄줄이 애육원마당이 비좁도록 들어와 멈추어섰다.

아직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있는 평양애육원 원장의 손을 꼭 잡으며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 말해주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애육원에 또다시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원장도 종업원들도 놀라움과 격정에 아무 말도 못하고 굳어져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을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하는것이 우리 당의 투쟁목표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예고도 없이 조용히 평양애육원의 마당에 들어서신것은 행복넘친 국제아동절의 하루해가 저물어가던 저녁무렵이였다.국제아동절을 맞는 평양애육원 원아들이 보고싶어 왔다고,내가 아이들의 명절날에 애육원 원아들을 찾아오지 않으면 어디에 가겠는가고 하시며 해님처럼 환하게 웃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미소에 온 애육원이 눈부시게 밝아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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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대회장에서 지어주신 아기이름

주체103(2014)년 6월 23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지난 태양절에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의 페회를 선언하시였을 때였다.

비행사들은 영광의 하루가 다 지나간 아쉬움을 안고 열광의 환호를 올리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주석단을 내리지 않으시고 다시 자리에 앉으시는것이였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실가,혹시 긴급전투명령을 하달하시려는것이 아닐가?

비행사들은 긴장한 눈빛으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우러렀다.전국의 령공을 통채로 개방하고 전체 비행사들의 대회합을 하는 뜻깊은 그 시각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비행기들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고있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놈들의 전쟁연습쯤은 쉬파리떼가 돌아치는것만큼도 여기지 않으시는듯 환한 미소를 담으신채 동무들과 한가지 더 의논할것이 있다고 다정히 말씀하시는것이였다.그러시면서 어느 한 비행부대 부부비행사의 아기이름을 짓는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대회참가자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당사자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최고사령관동지를 우러르며 그들은 지나간 일들을 감격속에 되새기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김정은동지는 령도자로서 지녀야 할 특출한 실력과 풍모를 갖추고있으며 인민들로부터 전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있습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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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명예총장의 20분간 강의

주체103(2014)년 4월 23일 로동신문

지난해 11월 평양건축종합대학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명예총장이 되겠다고 하신 사실은 온 나라 인민들과 교육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바로 그날에 있은 일이다.

대학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미술실기실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거기에서는 학생들이 한창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미래의 전도유망한 건축가들로 자라나는 학생들의 모습을 사랑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인물속사하는데 몇분 걸리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학생이 5분간이면 된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러면 한 10분정도 기다릴테니 여기 온 일군들을 선택해서 인물속사를 한번 해보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그러시고는 동행한 일군들가운데서 한 일군을 몸소 선정해주시였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일군들도 대학 교원들도 깜짝 놀랐다.

(일분일초도 귀중한 현지지도의 시간을 학생들의 미술실기때문에 내시다니?!)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마치도 수업종소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선 스승의 다정하고 친근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보시며 환히 웃고계시였다.

모두의 눈길이 화판을 앞에 놓고 앉은 3명의 학생에게 쏠리고 미술실기실에는 연필소리만이 조용히 울리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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