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부활에로 끊임없이 질주해온 일본의 행적(5) 재침의 온상-야스구니진쟈
일본 도꾜에는 야스구니진쟈라는것이 있다.명치유신때부터 왜왕의 칙령에 따라 해외침략전쟁들에서 죽은자들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청일전쟁, 로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일제가 도발한 침략전쟁들에서 《공》을 세웠다는자들의 위패와 명부가 여기에 보관되여있다.
진쟈에 있는 유취관에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침략전쟁들을 극구 미화, 찬양하는 자료들과 함께 《야스구니의 신들》이라는 간판밑에 전장에서 황천객이 된자들의 사진이 수천장이나 전시되여있다.
패망이전에 일제는 전쟁터에서 죽은자들을 《추모》하는 《국가제전》을 이곳에서 벌리군 하였다.
일본국민들은 이 요란한 행사들을 통해 군국주의침략사상을 주입받았다.
패망후에도 야스구니진쟈는 반동지배층의 비호와 후원을 받으며 온 일본땅에 군국주의사상을 전파시키는 온상으로 되여왔다.
일본의 극우익세력은 특급전범자들을 야스구니진쟈의 명부에 올리기 위해 음으로양으로 책동하였으며 1978년 가을 마침내 도죠 히데끼를 비롯한 14명의 특급전범자들을 비밀리에 합사하였다.
인류의 저주와 규탄을 받는 특급전범자들을 《나라를 편안케 한 신》, 《애국자》로 받들고 제사를 지낸다는것자체가 과거죄행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으며 침략야망을 기어이 실현하겠다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놓은것이다.
한동안 도적고양이처럼 국제사회계의 눈을 피해가며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해오던 일본반동들은 1981년에 《모두가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모임》이라는 초당파적인 단체를 조직하고 집단적인 참배놀음을 년례행사처럼 벌리기 시작하였다.
1985년에는 나까소네가 패망후 처음으로 일본수상이라는 공식자격으로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였다.
2001년 8월 13일에는 당시 수상이였던 고이즈미가 패망일을 앞두고 야스구니진쟈를 공식참배하여 군국주의광풍을 일으켰다.
그의 공식참배는 2006년까지 6차에 걸쳐 해마다 강행되였다.
2013년 8월에는 당시 수상이였던 아베가 내각성원들이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는것은 《주권국가 국민의 권리》라고 망발하였다.그리고는 그해말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고 그후 해마다 봄철대제와 가을철대제, 패망일에 꼭꼭 제물을 봉납하였다.
아베의 이러한 행태를 그후의 스가, 기시다 등 후임자들도 답습하였다.
지난해 수상자리에 올라앉은 다까이찌는 올해 4월 야스구니진쟈에 공물을 봉납한데 이어 패망일인 8월 15일에는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가하러 가던중 어느한 주차장에서 진쟈를 향해 요배하는 추태를 부리였다.
이러한 망동은 피로 얼룩진 과거에 대한 전면부정인 동시에 일본사회에 복수주의를 선동하여 《대동아공영권》의 헛된 꿈을 기어이 이루어보려는 위험천만한 군국주의광증의 발로이다.
일본반동들은 이를 통해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전범행위와 특대형반인륜죄악의 책임을 부인하며 전쟁원흉들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저들의 그릇된 군국주의력사관을 새세대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하고있다.
모든 일본인들이 야스구니진쟈에서의 참배를 통해 군국주의사상에 물젖게 함으로써 임의의 시각에 해외침략에 내몰자는것이 일본반동들이 노리는 기본목적이다.
일본반동들이 국제사회의 반발에 대해 참배가 《력사와 전통, 관습에 따른것》이므로 그에 대해 주변나라들이 이러쿵저러쿵할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고있는것은 그야말로 파렴치의 극치이다.
야스구니진쟈를 발원지로 하는 신군국주의사조가 온 렬도를 휩쓰는 속에 일본에서 재무장화와 재침야망실현책동이 더욱 본격적으로 다그쳐지고있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