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혁명일화 : 《매봉산》구두에 비낀 소원

주체110(2021)년 10월 29일 로동신문

 

《매봉산》구두는 온 나라에 소문이 났다.질이 좋고 가벼우면서도 형태가 다양해서만이 아니다.우리 인민에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것만을 안겨주고싶으시여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어버이사랑이 하나하나의 제품마다에 뜨겁게 어려있기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 《매봉산》구두에 깃든 하많은 이야기들중에서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감동깊은 사실을 전한다.

주체108(2019)년 4월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외국방문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조국에 돌아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온 나라가 끝없이 설레이고있던 그날 깊은 밤이였다.

집집의 창가마다에 흘러넘치던 불빛들도 꺼지고 삼라만상이 고요속에 잠겨있던 시각, 원산구두공장의 일군들은 뜻밖에도 자기들의 일터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만나뵙게 되였다.

커다란 기쁨과 함께 놀라움에 겨워 어쩔바를 몰라하는 공장일군들에게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이번에 진행된 전국신발전시회에서 원산구두공장에서 만든 신발들이 많이 팔렸다고 하기때문에 올해에 출품한 신발들을 보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를 모시고 제화직장으로 향하는 공장일군들은 《매봉산》구두에 대한 인민들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소식이 얼마나 반가우시였으면 한밤중에 공장을 찾으시였으랴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잠시후 제화직장의 검사탁앞에 이르시여 생산된 신발들을 만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신발을 신어보도록 하시고 신발이 편안한가, 발이 조이지 않는가에 대해 물으시였다.

신발이 편안하다는 한 일군의 이야기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신발이 조이지 않고 편안하면 좋구만.》라고 하시며 만족해하시였다.

도안실에 가시여서도 그이께서는 일군들의 호평을 즐겁게 들으시며 만시름이 풀리신듯 시종 웃음속에 계시였다.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을 이어가시며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치신 그이께 잠시나마 기쁨을 드리게 된 공장일군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리였다.

이윽하여 혁명사적교양실을 돌아보시고 제품진렬실로 걸음을 옮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이곳 강사는 공장을 돌아본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매봉산》구두가 멋있다고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은데 대하여 설명해드리면서 이것은 공장에 바쳐오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뜨거운 헌신의 결과이라고 말씀올리였다.

이때 한 일군이 우리 나라 타조목장에서 나온 타조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어보고나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신발이 정말 좋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의미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원산구두공장에서 만든 〈매봉산〉구두를 신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가 되여야 합니다.》

모두의 심금을 울려주는 말씀이였다.

우리 인민들에게 차례지는 모든것은 세계최고의 수준이여야 한다는 절세위인의 숭고한 뜻을 심장깊이 새기는 공장일군들의 생각은 깊어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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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물고기가공장에서 하신 인사

주체110(2021)년 10월 15일 로동신문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시며 인민을 찾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현지지도 천만리길에는 참으로 감동깊은 일화들이 수많이 새겨져있다.

일곱해전 11월 조국의 동해포구에서 꽃펴난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주체103(2014)년 11월 18일 이른아침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만선의 배고동소리 높이 울리는 제18호수산사업소를 찾으시였다.

당시 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황금해력사창조의 선구자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을 심장깊이 새기고 힘찬 투쟁을 벌려 물고기대풍을 마련하고있었다.

물고기폭포 쏟아지는 부두와 만선기 날리며 돌아온 《단풍》호고기배, 금괴같은 물고기랭동블로크들이 가득 쌓인 랭동고를 만족속에 돌아보시며 그이께서는 사업소의 일군들과 어로공들은 당정책을 교과서의 체계를 외우듯이 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온넋과 피와 땀으로 결사관철한 전위투사들이라고 값높은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절임창고로 향하시였다.

그때 그이앞에 또다시 흐뭇한 광경이 펼쳐졌다.

야외물고기가공장에는 방금 잡아들인 물고기가 무드기 쌓여있었는데 녀성들이 한창 선별작업을 하고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신 그이께로 지배인이 다가서며 그들이 사업소 종업원들과 가족들이라고 말씀올리였다.

꿈결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자기들의 작업장에 모신 사업소 종업원들과 가족들의 가슴마다에서는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일렁이였다.

산같이 쌓은 그리움을 터치며 한달음에 달려가 안기고싶은 심정이였지만 그들모두는 작업현장이 험하고 또 그이의 귀중한 혁명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시키면 어찌하랴 하는 생각으로 울렁이는 가슴을 애써 눅잦히며 눈물을 머금은채 계속 일손을 다그쳤다.

바로 그 순간에 만사람을 놀래우는 가슴뜨거운 화폭이 펼쳐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들모두에게 먼저 뜨거운 인사를 보내시는것이였다.

동행한 사업소의 일군들이 너무 송구스러워 몸둘바를 몰라하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마디마디 곡진한 정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물고기가공장에서 녀성들이 물고기를 가공하느라고 수고합니다.작업하는 녀성들이 수산사업소 종업원가족들이라고 하는데 가족들까지 당의 수산정책관철에 떨쳐나섰습니다.수산사업소 종업원가족들이 물고기를 잡아왔다고 하면 모두가 스스로 달려나와 물고기운반과 가공을 맡아한다고 하는데 집단의 리익을 위하여 자기의 성실한 땀을 바치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시고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쳐들어보이시며 수산사업소의 종업원들과 가족들은 모두가 투철한 당정책관철자, 애국자들이라고 치하해주시였다.

순간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물고기가공장에서 일하던 녀성들모두가 참고참던 눈물을 쏟으며 일제히 《만세!》의 환호성을 터쳐올렸다.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자애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걸음을 옮기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따라서는 그들에게 다시, 또다시 정깊은 인사를 보내시였다.

진정 눈물없이 우러를수 없는 위대한 어버이의 그 모습앞에서 일군들은 목이 꽉 메여 종시 뜨거운것을 삼키고야말았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을 가슴깊이 새기시고 자신의 천만로고를 바치시여 이 땅에 사회주의바다향기 차넘치는 황금해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그 은덕만으로도 온 나라 어머니들과 병사들, 우리 인민모두의 다함없는 고마움의 인사를 받으셔야 할 그이께서 평범한 수산사업소 종업원들과 가족들의 수고를 헤아려 거듭거듭 인사를 하시였으니 그들은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북받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였다.

그때 물고기가공장에서 일하던 녀성들은 모두가 온 한해 바다에서 살다싶이 하는 남편들과 아들들에게 편지를 한장 써도 집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원수님 기뻐하시게 물고기만 많이 잡아달라는 당부를 적어보내던 평범한 안해들과 어머니들이였다.집중어로전투만 개시되면 스스로 사업소에 달려나와 철야작업을 벌리던 편제없는 종업원들이였다.그때도 김장철이였건만 그들은 자기 집 김치독은 후에 채워도 우리 병사들에게 보내줄 물고기부터 사업소랭동고에 가득 쌓아야 한다고 하면서 앞을 다투어 떨쳐나섰었다.

바로 그 마음들이 그리도 소중하시였기에, 그들이 바쳐온 땀과 노력을 속속들이 헤아려보시였기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토록 뜨거운 인사를 거듭거듭 보내주신것 아니랴.

이날 그이께서는 수산사업소 일군들과 종업원, 가족들이 오늘 자신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하시면서 물고기가공장에서 일하던 녀성들까지 다 불러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평범한 녀성들에게 하신 인사!

정녕 그것은 그이의 위대한 심장에 간직된 우리 인민에 대한 끝없는 존중의 발현인 동시에 자기 한가정보다 초소의 병사들을 먼저 생각할줄 알고 아낌없는 땀과 노력으로 사회주의조국을 받들줄 아는 동해포구의 성실한 녀성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고 뜨거운 격려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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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두번이나 들어주신 소원

주체110(2021)년 9월 26일 로동신문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이불작업반 로동자들에게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뜻깊은 기념사진이 있다.자기들이 일하는 생산현장에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혈연의 정이 흘러넘치는 이 기념사진에는 참으로 감동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우리 인민이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충성의 70일전투와 200일전투를 자랑찬 승리로 결속한 환희를 안고 새해를 맞이한 주체106(2017)년 1월 7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을 찾으시였다.

자나깨나 뵙고싶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불과 반년만에 또다시 일터에 모신 공장일군들의 가슴은 무한한 행복감으로 설레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날 새로 꾸린 이불생산공정을 돌아보시면서 만족을 금치 못하시였다.인민생활향상을 위한 또 하나의 창조물이 마련된것이 기쁘시여 멋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각종 이불들을 보시고서는 처녀총각들이 시집장가갈 때 이런 멋있는 이불들을 안겨주면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며 새 가정의 행복넘친 모습을 환한 미소속에 그려보기도 하시였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있을 때 문득 동행한 한 일군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공장을 찾으시였던 지난해 6월에 이 작업반의 일부 동무들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다른 곳에 가있다나니 기념사진을 찍지 못하였다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그 일군이 이런 말씀을 올리게 된것은 며칠전 공장에 나왔던 기회에 한 기능공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에 그를 포함한 여러명의 작업반원들이 참가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였기때문이였다.그들은 한생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한달나마 눈물속에 살다싶이 하였고 그후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새로 꾸린 일터에 문득 다시 찾아오실것만 같아, 영광의 그 시각을 또 놓칠것만 같아 명절날과 휴식일에도 생산현장을 뜨지 않고있었다.

일군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말씀을 올리면서도 그이의 혁명사업을 잘 보좌해드려야 할 자기가 너무 외람된 행동을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조이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의 이야기에서 종업원들의 간절한 소원을 헤아리시고 즉석에서 말씀하시였다.

《이불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가운데 지난해에 나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지 못한 동무들이 있으면 사진을 찍읍시다.》

그러시고는 생산현장을 둘러보시며 친히 사진찍을 위치까지 정해주시는것이였다.

꿈결에도 바라던 영광의 시각을 맞이한 작업반원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곁으로 넘어질듯, 엎어질듯 달려왔다.

어린애들처럼 막무가내로 그이께 안겨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 뜨거운 격정을 금치 못한 사람들은 공장일군들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처음 공장에 모시였던 주체105(2016)년 6월 20일에 있은 일이 어제런듯 되살아났던것이다.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공장현지지도를 마치시면서 일군들과 종업원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열광의 환호성이 터져오르는 속에 그이께서 얼마쯤 걸음을 옮기시였을 때였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았는지 정신없이 달려오는 공장탁아소, 유치원 보육원, 교양원들의 모습이 구내길에 나타났다.

동행한 일군들이 당황해하는데 공장일군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앞에 나섰다.기념사진을 한번 더 찍어주셨으면 하는 청을 올리던 일군은 그만 말끝을 흐리고말았다.

그날따라 무더위가 얼마나 심하였던지 공장의 곳곳을 돌아보시고 종업원들과 기념사진까지 찍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옷이 땀으로 화락하게 젖어있었던것이다.

일군이 송구스러워 어쩔줄 몰라하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달음질쳐오는 녀성종업원들을 보시고 정깊게 말씀하시였다.

《기념사진을 찍지 못한 탁아소, 유치원 보육원, 교양원들이 달려오고있는데 그들과도 사진을 찍읍시다.》

보육원, 교양원들을 손저어 부르시며 빨리들 오라고, 어서 뒤에도 오고 앞에도 앉아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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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로병들에게 하신 정깊은 당부

주체110(2021)년 9월 24일 로동신문

 

조국을 위해 피흘린 전쟁로병들을 전설적인 영웅시대의 주인공들, 산 증견자라고 불러주시며 시대와 혁명앞에 높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사랑과 믿음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며 온 나라 인민의 심장을 울리는 가지가지의 감동깊은 일화들을 낳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제7차 전국로병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신 지난 7월 29일에 있은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로병동지들이 앞으로도 로당익장하여 영광스러운 한생을 빛내여나가도록 모든 정성을 다해 모실것이며 동지들의 건강과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이날 오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촬영장소인 평양체육관에 나오시였을 때였다.순간 평양체육관은 전쟁로병들이 일시에 터치는 우렁찬 만세의 함성으로 들썩이였다.

전승절이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위대한 년대의 승리자들의 뜻깊은 대회합을 가지였으며 불과 이틀전에도 그이의 몸가까이에서 은정넘친 축하연설도 귀담아들었건만 이날 또다시 태양처럼 환하신 모습을 뵈옵느라니 근 70년전 전승광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듯 심장의 붉은 피가 더욱 세차게 끓어번지는 로병들이였다.

어린애마냥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주름진 두볼에 흐르는 눈물을 연방 닦으며 열광적으로 환호하던 로병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자기들의 촬영대가까이로 다가오시자 너도나도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이께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저마끔 대회과정에 느낀 소감을 말씀올리였다.

한 전쟁로병은 자기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락동강전투에도 참가하였다고 말씀드리였고 또 어떤 전쟁로병은 전국로병대회를 열고 자기들을 평양에 불러주시여 정말 고맙다고, 당의 사랑과 은덕에 감격을 금할수 없다고 하면서 격동된 심정을 스스럼없이 아뢰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주의깊게 들어주기도 하시고 한 전쟁로병이 허물없이 드리는 소청도 기꺼이 받아주시였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가슴설레이는 로병들속에는 아흔살이 가까와오는 오늘까지도 교단에서 예술인재후비육성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바쳐가고있는 녀성전쟁로병교육자도 있었다.

사실 그는 방금전까지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무랍없이 안겨드는 로병들을 보면서 속으로 은근히 그들을 나무람하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자기앞에 이르시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그이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경애하는 원수님, 정말 뵙고싶었습니다!》

그가 목메인 소리로 아뢰이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너무도 꿈만같은 영광을 받아안은 로병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시간에 지장을 주면 안된다는 방금전의 마음속다짐도 다 잊고 그이의 따사로운 손길을 놓칠세라 두손으로 더 꼭 마주잡았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의 행동을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로병의 손을 그냥 꼭 잡으신채 귀가에 대고 건강하라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로병이 크나큰 행복감에 휩싸여있는데 그이께서는 그를 더 따뜻이 품어안으시며 다시금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건강하십시오!》

거듭 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정깊은 당부,

녀성전쟁로병은 그만 그이의 넓은 품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이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한 촬영대에서 다른 촬영대에로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자신께로 물밀듯이 안겨드는 수많은 로병들의 손을 한사람한사람 정겹게 잡아주시며 건강하라고 절절히 당부하고 또 당부하시였다.

뜨거운 정이 한가득 흘러넘치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로병들도, 동행한 일군들도 감격에 목이 메였다.

전쟁로병들을 만나실 때마다 오래오래 건강장수하여 영원히 우리의 힘이 되고 마음의 기둥이 되여주실것을 진심으로 부탁한다고 하시고 로병동지들이 건강한 몸으로 앉아만 계셔도 우리 당과 인민에게는 무한한 힘이 되고 우리 혁명에 커다란 고무로 된다고 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건강하십시오!》

정녕 그 당부에는 준엄한 전쟁의 3년간 피로써 사랑하는 우리 조국을 영예롭게 사수한 고마운 은인, 대를 두고 이어갈 불멸의 영웅정신을 마련하고 오늘도 그 넋으로 새세대들을 이끌어주는 참다운 스승, 훌륭한 혁명선배인 1950년대의 영용한 조국방위자들을 금방석에 편히 앉혀 오래오래 떠받들고싶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열화같은 진정이 담겨져있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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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지키자》

주체110(2021)년 9월 23일 로동신문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하여
온 나라에 수령결사옹위정신, 자력갱생의 투쟁기풍이 차넘치게 하자

리을설

 

오늘 우리 인민은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힘차게 다그치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이 날로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고있고 원쑤들의 무분별한 전쟁소동이 그칠새없이 감행되고있으며 련이은 자연재해로 경제적난관까지 겹치고있는 엄혹한 시련속에서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구호를 힘차게 부르면서 용기백배 기세드높이 강성대국건설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필승의 신념과 혁명적기개는 일찌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백두산에서 심어주신 붉은기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백두의 붉은기정신, 그것은 난관과 시련이 겹치고 비겁분자들이 배신의 길을 가도 혁명가들은 붉은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혁명적인생관이며 붉은기를 휘날리면서 억천만번 죽더라도 끝까지 원쑤를 쳐이겨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가슴마다에 백두의 붉은기정신을 심어주시던 그 준엄한 시절의 이야기를 다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가운데서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1940년 3월 대마록구치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화라즈로 넘어가는 대마록구치기에서 숙영하게 된것은 대마록구전투를 진행한 이틀후였다.

숙영지를 돌아보시고 밤늦게 천막에 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찾으시여 대마록구에서 얻은 신문들을 가져오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때마다 신문, 잡지를 비롯한 출판물들을 수집하도록 하시고 우리 전령병들이 보관하게 하시였다가 보군 하시였는데 그것은 적들의 출판물이긴 해도 놈들의 책동과 정세연구에 참고할것들이 있기때문이였다.

내가 신문을 가져다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자, 동무들도 여기에 와앉소.함께 신문을 봅시다.》라고 하시면서 우리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우리 전령병들은 서둘러 그이의 두리에 모여앉았다.

그이께서는 여느때처럼 우리들에게 신문에 실린 소식들을 몸소 알려주시였다.신문에는 정세소식이 많이 실렸는데 우리들이 전후사연을 몰라 리해하기 힘든것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정세소식들을 알려주시면서 지금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침략전쟁을 계속 확대하고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대륙침략에 미쳐날뛰고있다, 일제침략자들이 벌려놓은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도 그 한 고리라고 말할수 있다, 놈들은 이 작전에 20만의 대병력을 들이밀어 어떻게 하나 조선인민혁명군을 압살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짓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건재하고있으며 싸워서 이기고있다, 우리는 이틀전에도 대마록구를 쳐서 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20만대군의 경계진을 뚫고 백두산동북부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우리가 불현듯 돈화오지로 진출하여 크게 총소리를 내고 바람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두만강연안일대로 진출하여 대마록구를 치게 되자 놈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으며 악에 받쳐 비명을 지르고있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혁명하는 보람이 있지 않는가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을 들으니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혁명하는 혁명가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런데 문득 위대한 수령님의 격하신 음성이 쩡 천막안을 울리였다.

비겁분자, 변절자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시오! 적의 《위공작전》에 겁을 먹고 투항한 림수산이 감히 우리를 《토벌》하겠다고 나섰습니다.왜놈의 사냥개가 되고말았습니다.…

우리는 격분에 치를 떨며 그이께서 보시던 《만선일보》를 들여다보았다.거기에는 왜놈의 개로 전락된 림가의 떠벌임을 적은 글과 함께 놈의 더러운 몰골을 찍은 사진까지 나있었다.

우리는 온몸의 피가 꺼꾸로 솟는것만같아 참을수가 없었다.

《사령관동지, 당장 저놈을 끌어다가 혁명의 이름으로 처단합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말을 들으시고 동무들의 심정은 알만하다, 그래도 한때는 참모장이라고 하여 혁명이 이렇소, 저렇소 하면서 우쭐대던자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원쑤들의 개로 전락되였으니 얼마나 역겹고 가증스러운가, 이렇게 썩은 놈이 허울을 벗고 적들편으로 도망친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개울물 흐린다고 이런 놈이 대오안에 계속 배겨있으면 더 큰 손실을 입을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준엄하고 공정한 심판관이다, 그리하여 림가는 자기의 정체를 더는 숨길수 없었으며 혁명을 배신하는것으로 자기의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원쑤들에게로 도망쳐갔다고 하시면서 문제는 림가의 변절에서 교훈을 찾고 혁명의 길을 더욱 억세게 걸어나가는것이라고 하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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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어머니날에 찾으신 두 수산사업소

주체110(2021)년 9월 3일 로동신문

 

주체105(2016)년 11월 16일, 그날은 어머니날이였다.

온 나라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서 존경과 감사의 꽃다발을 받으며 기쁨에 겨워하고 초소의 병사들도 고향의 어머니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있던 그날 5월27일수산사업소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참으로 꿈만같은 영광과 행복을 맞이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자기들의 일터를 찾아주시였던것이다.

자나깨나 뵙고싶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물고기대풍이 든 사업소에 모시게 된 일군들의 가슴은 무한한 격정과 행복감으로 하여 세차게 높뛰였다.

무엇보다도 그이께 물고기폭포가 쏟아지는 흐뭇한 광경을 보여드리게 되였다는 생각이 이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물고기잡이전투를 본때있게 벌리며 놀라운 실적을 기록하고있었던것이다.

허나 그때까지만도 일군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왜 이날 사업소를 찾아주시였는지 그 깊으신 심중을 미처 알수 없었다.

일군들모두가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그이를 따라서는데 혁명사적교양실과 문화회관을 거쳐 야외하륙장에 이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방금 부두에 와닿은 사업소의 어느 한 고기배에 몸소 오르시였다.

일군들은 서둘러 그이를 따라섰다.

선창에서 도루메기를 퍼올리는 작업모습도 보아주시고 하륙장에서 물고기폭포 쏟아지는 광경도 기쁨속에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인민군대 수산부문에서 현재까지 많은 물고기를 잡은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마디마디 뜨거운 정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 아침 그 보고를 받고 너무 기뻐 이 소식을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우리 인민들에게 빨리 알려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한달음에 수산사업소로 찾아왔습니다.》

순간 일군들은 세찬 충격으로 하여 목이 꺽 메여올랐다.

혁명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시고 하셔야 할 일, 찾으셔야 할 곳이 너무도 많으신 그이께서 어찌하여 이날 사업소를 찾아주시였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였던것이다.

무릇 생활에서 색다른 음식이 좀 생겨도 집떠나 멀리 있는 자식부터 생각하는것이 어머니들의 심정이다.

어머니들의 명절인 그날에도 우리 어머니들이 더욱 그리워하고 왼심을 쓴것은 다름아닌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아들딸들이 아니였겠는가.

모두가 이런 생각에 잠겨 눈굽을 적시는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절절하게 하시는 말씀이 또다시 일군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우리 인민들이 이 소식을 전해들으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초소에 선 아들딸들이 물고기를 많이 먹게 되였다고 기쁨에 겨워할 이 나라 어머니들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사회주의바다향기 차넘치는 동해포구를 찾아 먼길을 달려오신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정녕 우러를수록 자애로운 그 영상은 이 땅의 천만자식들을 한품에 안아 애지중지 돌보시며 위민헌신의 길에서 더없는 락을 찾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모습이였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와왔다.

하건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순간의 휴식도 없이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그이께서 뒤이어 찾으신 곳은 1월8일수산사업소였다.

우리 인민모두의 가슴속에 그 이름 뜨겁게 새겨져있는 이 수산사업소에서는 또 어떤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졌던가.

이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사업소를 돌아보시다가 랭동저장고에도 들리시였다.

그때 저장고마다에는 물고기가 가득 쌓여있었다.

하나하나의 차디찬 랭동블로크들을 기쁨속에 보고 또 보시고 어루쓸기도 하시며 그이께서는 정말 기분이 좋고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가셔진다고, 이곳 수산사업소를 조직한 보람이 있다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원아들의 친부모, 양로원 로인들의 친자식이 된 심정으로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 초등 및 중등학원, 양로원들에 보내줄데 대하여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이 나라 어머니들의 마음을 다 안으시고, 온 나라 아이들과 병사들, 인민들의 친어버이가 되시여 동해의 포구들에서 보내신 어머니날의 하루!

주체105(2016)년 11월 17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활동보도에는 바로 이런 감동깊은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다섯해전 어머니날에 조국의 동해포구들에서 꽃펴난 이 이야기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한량없는 사랑과 끝없는 헌신을 만사람의 가슴에 뜨겁게 새겨주며 길이 전해질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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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기념촬영장에서 하신 당부

주체110(2021)년 8월 16일 로동신문

 

주체103(2014)년 2월 전국농업부문분조장대회가 성대히 진행된 사실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그 나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대회참가자들에게 력사적인 서한을 보내주시고 대회가 끝난 후에는 그들과 함께 대를 두고 길이 전해갈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였다.

우리가 여기에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날의 기념촬영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은동지는 혁명동지들에 대한 우애심과 의리심이 깊습니다.》

오매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뜻깊은 기념촬영을 하는 영광의 시각을 맞이한 대회참가자들은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담아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를 터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업전선을 지켜 애국헌신의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 대회참가자들을 믿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뜨거운 답례를 보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여러 촬영대에로 자리를 옮겨가시면서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그이께서 어느 한 촬영대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함경남도당위원회의 책임일군을 띄여보시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시였다.자석에라도 끌리듯 일군은 다급히 그이께로 달려갔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촬영장을 진감하는 환호성때문에 그가 잘 듣지 못할것 같아 바투 다가서시며 말씀하시였다.

도의 농업생산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실것이라고 생각하였던 일군은 순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입원치료중인 도안의 어느 한 련합기업소 지배인의 병상태를 알려주시였기때문이다.

일군은 참으로 뜻밖이여서 선뜻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였다.지배인의 병상태도 그렇지만 나라의 천사만사를 돌보시느라 더없이 분망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그에 대하여 어떻게 잘 알고계시는지…

그러는 일군에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도당책임비서가 병원에 가보아야 하지 않겠는가고 사려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대회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속에 계시는 그 시각에도 침상에 있는 한 전사를 두고 그토록 심려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일군의 가슴은 불을 안은듯 달아올랐다.그럴수록 경애하는 그이의 숭고한 사랑과 인정의 세계에 따라서자면 너무도 멀었다는 자책으로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이렇게 되여 기념촬영이 끝난 후 일군은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또다시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이미전에 전화로 병원일군을 찾으시여 지배인의 병상태를 료해하시고 치료를 잘해줄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는것이 아닌가.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기념촬영장에서까지 병원에 가보라고 이르시였으니 정녕 우리의 총비서동지 같으신 어버이가 또 어디 있으랴.

늦게나마 병원을 찾게 된 사연을 말하는 일군의 목소리는 자주 끊기였고 그것을 전해듣는 지배인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몇해전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련합기업소를 찾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감격속에 우러르던 일들이며 장군님께서 도안의 일군들과 로력혁신자, 과학자, 기술자들을 위하여 마련해주신 연회석상에서 경애하는 그이를 몸가까이 뵈옵던 영광의 그 시각이 못 견디게 갈마들어 지배인은 끝내 오열을 터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그저 몇번 뵈왔을뿐이건만 그처럼 심중에 새겨두시고 크나큰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니 어찌 그가 솟구치는 격정을 누를수 있었으랴.

정녕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천금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며 가장 열렬하고 웅심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고결한 위인적풍모를 절감하게 하는 력사의 순간이였다.

태양과도 같은 열과 정으로 온 나라 인민을 품어안으시는 인간사랑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품에 안겨 살며 투쟁한다는것은 그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런 흥분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일군의 귀전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기념촬영장에서 하신 간곡한 당부가 크나큰 메아리로 울려왔다.

우리의 모든 일군들이 다심한 인정미, 열화같은 인간애를 지니고 슬하의 자식을 위해 늘 시름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동지들과 인민들을 따뜻이 돌봐주어야 한다는 자애로운 어버이, 위대한 스승의 사랑의 당부, 그 진정의 메아리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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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봄향기》에 어려오는 어버이사랑

주체110(2021)년 5월 22일 로동신문

 

우리 인민들에게 제일 좋고 훌륭한것을 안겨주시려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사랑은 부피두터운 책으로도 다 전할수 없다.

제일 좋고 훌륭한것을 우리 인민들에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그처럼 따사로운 어버이사랑은 인민들이 선호하는 화장품을 생산하는 신의주화장품공장에도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력력히 어려있는 이 공장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찾으신 그날은 주체107(2018)년 6월 29일이였다.

《〈봄향기〉화장품으로 명성이 자자한 신의주화장품공장에 언제부터 한번 와보고싶었습니다.》라고 하시며 마중나온 공장일군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혁명사적교양실부터 시작하여 공장의 여러곳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였다.

비누직장이며 통합생산지휘실, 화장품직장의 배합작업반, 기초화장품직장을 거쳐 제품견본실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그이의 안광에는 환하신 미소가 어리였다.

기초화장품, 남자용화장품, 기능성화장품, 치료용화장품 등 각양각색의 화장품들과 3.8절기념품, 결혼기념품, 어머니날기념품과 같이 첫눈에도 마음을 끄는 화장품세트들이 이채롭게 진렬되여있는 제품견본실은 하나의 화원을 방불케 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진렬대를 따라 걸음을 옮기시면서 제품견본실을 잘 꾸렸다고, 제품견본실에 전시되여있는 화장품들을 보기만 하여도 흐뭇하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이윽고 살결물을 전시한 진렬대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남자용살결물통에 들어있는 면도전살결물, 면도후살결물, 머리영양물 세가지중에서 면도후살결물 한통을 꺼내여 손에 바르시고 냄새도 맡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향내도 괜찮고 포장도 보기 좋게 잘하였다고, 살결물을 발라보니 괜찮다고 하시며 살결물을 바르면 이렇게 피부가 거뜬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후더워올랐다.

평범한 인민들이 리용하게 될 제품의 질적수준을 몸소 세심히 가늠해보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방금 생산현장을 돌아보실 때에도 겔형세수비누를 개발하였다는 녀성지배인의 설명을 들으시고 새로 개발한 겔형세수비누를 사람들이 많이 요구한다는데 자신께서도 가져다 써보겠다고 친근한 어조로 말씀하신 그이이시였다.

진정 인민을 제일로 위하시며 하늘처럼 떠받드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숭고한 영상이였다.

그날 밤이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공장을 돌아보았던 당중앙위원회 한 일군은 그이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낮에 제품견본실에서 보시였던 남자용살결물에 대해 또다시 말씀하시며 잘 만들었다고 거듭 치하하시였다.

순간 일군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자정이 가까와오고있었던것이다.

일반적으로 화장품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냄새와 느낌 등이 처음 사용했을 때와 다름이 없을 때 좋은 제품으로 평가된다.그러니 그이께서는 공장을 떠나신 때로부터 여러 시간이 흐르도록 제품의 질적수준을 줄곧 가늠하고계신것이 아닌가.

일군의 가슴은 불을 안은듯 뜨거워졌다.

한 나라의 령도자께서 평범한 인민들이 리용하게 될 새 제품의 질을 여러 시간에 걸쳐 직접 가늠해보신 이런 감명깊은 이야기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격정에 끓는 일군의 마음속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하신 뜻깊은 말씀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모든 생산자들이 인민의 복무자로서의 립장과 자세를 바로가지고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도 정성을 담아 만들도록 하며 그런 운동을 벌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나의 제품에도 정성을 담아!

정녕 자나깨나 인민을 위하시며 하늘처럼 떠받드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위민헌신의 세계는 얼마나 숭고한가.

그처럼 따사로운 어버이사랑에 뿌리를 둔 인민의 행복이여서 이 땅우에는 인민의 밝은 웃음이 끝없이 터져오르고 아름다운 행복의 꽃들이 천으로, 만으로 늘어날것이라는 확신이 일군의 마음속에 뜨겁게 갈마들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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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은 목메여 부릅니다, 아 우리 수령님!

주체110(2021)년 4월 4일 로동신문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김 정 은

 

날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만 가는것이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그리움이다.

만물에 소생의 빛과 열을 주는 저 하늘의 태양과도 같이 이 땅 천만사람들을 은혜로운 빛발로 보살펴주신분이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우리 인민의 운명도 미래도 활짝 꽃피워준 따사로운 빛발,

그것은 바로 위대한 삶의 태양이신 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였다.

인민에 대한 사랑, 이는 우리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열정과 실천활동의 원천이며 본질이며 내용의 전체였다.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며 언제나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신 어버이수령님,

건설장에서 비에 젖은 그이의 옷은 제철소의 평로앞에서 말랐고 이른새벽에 한 포구로 타고가신 승용차에 실은 아침식사는 해저무는 두메길을 달리는 차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학교와 공장, 도시와 마을, 어느 지구, 어느 고장에나 우리 수령님의 거룩한 자욱과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진정 어버이수령님의 이민위천의 력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보다 심오한 의미를 안고 보다 뜨겁고 강렬하게 우리 인민의 심장마다에 흘러들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억압받고 천대받던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의 존엄과 가치를 최상의 경지에서 빛내여주신 위대한 인민의 수령이시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행복을 생각할수록 인민의 마음속에 간직되여있는 위대한 어버이의 자애로운 모습, 거룩한 자욱자욱이 숭엄히 어려온다.

 

《인민을 위한 길인데 무엇을 가리겠습니까》

 

주체49(1960)년 6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간석지개간정형을 료해하시기 위하여 온천군의 운하벌을 찾으시였다.

간석지로 들어가는 길어구에서 차를 멈추게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무연한 간석지땅을 바라보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때 새로 푼 논에서 모내기를 하던 한 로인이 어버이수령님을 알아뵙고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수령님, 이렇게 험한 길을 걸으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로인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고는 무슨 일을 하는가고 물으시였다.그러자 로인은 물고를 보고있다고 말씀올리였다.

이윽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런 논에서도 벼가 잘될것 같은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옛날에는 이 소금땅에 논을 풀 엄두도 못 냈지만 이제는 수령님의 덕분으로 대동강물이 넘어오기때문에 벼가 되여도 썩 잘될것입니다.》

로인은 저도 모르게 신이 나서 말씀올리였다.

벙실벙실 웃음을 짓는 로인의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걸음을 옮기시여 간석지가 시작되는 뚝에 올라서시였다.

마침 썰물때여서 이제껏 바다물에 잠겼던 거치른 땅이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보이며 끝없이 펼쳐졌다.

그윽한 시선으로 간석지를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걸 보니 욕심이 생긴다고, 간석지만 개간하면 전체 인민에게 흰쌀밥을 먹이고도 남겠다고 하시더니 좀더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순간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일군들은 당황해하였다.

(저 진펄로 나가시다니…)

아직 그 누구의 발자취도 어린적 없는 수수천년 바다물밑에서 고이 잠자던 간석지였다.

일군들은 밀물처럼 차오르는 격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어버이수령님의 앞을 막아나섰다.하건만 그이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괜찮소.더 나가봅시다.인민을 위한 길인데 무엇을 가리겠습니까.길이 없으면 우리가 이 간석지에 첫길을 냅시다.》

그러시고는 감탕판으로 성큼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아, 수령님…》

일군들의 가슴은 뜨거운것으로 꽉 메였다.

이 땅에 길이 생겨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과연 그 언제 이렇듯 만사람의 가슴을 치는 인민사랑의 위대한 자욱에 대한 이야기가 새겨진적 있었던가.

한걸음, 한걸음…

정녕 그것은 인민의 행복을 앞당겨오시는 절세위인의 거룩한 자욱이였다.

 

《건설비는 공장을 다 지은 다음에 계산합시다》

 

주체51(1962)년 1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평양제사공장(당시)을 찾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공장일군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어느 한 작업장에 이르시였을 때였다.그곳에서는 배관을 수리하는중이여서 김빠지는 소리가 나면서 작업장안에 김이 자욱히 서려있었다.

한 일군이 그이의 앞을 막아서며 들어가시면 안된다고 간절히 아뢰였다.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은 이런데서 일을 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작업장으로 들어서시였다.

이윽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에 대한 관심만 있었다면 이런 형편을 보고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았을것이라고, 제사공장로동자들에게 로동조건을 잘 보장해주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깊은 자책에 휩싸였다.

그러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제사공장로동자들에게 로동조건을 잘 보장해줍시다.내 생각은 제사공장로동자들에게 금년중으로 공장을 새로 번듯하게 건설해주자는것이요.…

래일부터라도 당장 착수합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길로 밖에 나오시여 새로 지을 공장터전을 잡아주시고 공장의 주인인 로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시면서 협의회까지 여시였다.

협의회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선 새로 짓는 공장은 설계를 잘해서 공장안이 무덥지 않고 통풍이 잘되게 건물을 높이 지어야 한다고, 배기장치를 잘해서 김을 빨아내게 하고 배풍장치를 해서 여름에 더운것을 방지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그리고 목욕탕, 탈의실, 합숙, 식당, 탁아소, 유치원 등을 잘 지어줄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모두들 후더운 생각으로 가슴을 들먹일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동무들, 로동자들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맙시다.건설비는 공장을 다 지은 다음에 계산합시다.로동자들에게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해준 다음에 계산합시다.》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그 어떤 타산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뜻, 그 무한한 사랑에 떠받들려 제사공장은 로동자들의 로동조건, 생활조건이 훌륭히 보장된 공장으로 새로 번듯하게 일떠서게 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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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인민의것이라면

주체110(2021)년 3월 29일 로동신문

손 종 준

 

1941년 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소부대활동을 벌리던 때의 일이다.

김일동지가 지휘하는 우리 소부대성원은 모두 12명이였는데 3월 중순부터 약 50일간을 얼마 안되는 수수쌀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하루 한사람앞에 두숟가락의 수수쌀이 차례졌을뿐이였다.

일제군경놈들은 항일무장투쟁의 초시기부터 감옥이나 다름없는 집단부락을 만들고 주변에 널려있는 부락의 농민들을 여기에 몰아넣음으로써 우리 유격대와 인민들과의 련계를 끊어버리려 하였다.

일제강점의 말기에 이르러서 일제의 이러한 책동은 더욱더 악랄성을 띠게 되였다.사정이 이렇게 되고보니 우리는 식량을 얻기가 매우 곤난하였다.

당시 우리 소부대의 기본임무는 적의 통치구역안에서 지하공작을 수행하는것이였다.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내놓고 적들을 습격할수도 없는 일이였다.그리고 우리는 일정한 기간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공작하여야 했다.

우리들이 아껴먹던 수수쌀마저 다 떨어져버렸다.어느날 몇명의 대원들은 김일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식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밀영을 떠났다.그날은 음력 5월 4일 아침이였다.좁은 골짜기를 밑에 두고 산릉선을 타고 내려가던 우리는 골짜기에서 가늘게 피여오르는 연기를 발견하였다.우리는 나무가지들을 헤치며 연기나는쪽을 내려다보았다.골짜기에는 7채의 집이 있었다.웃골짜기에 4채, 아래골짜기에 3채가 들어앉은 이 집들은 전부터 비여있는 집들이였는데 산아래턱에 바싹 붙어있는 한채의 집에서만은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저 집에는 사람이 살고있으니 저 집 사람들을 통해서 식량을 얻을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될수록 주간행동을 피하던 때였으므로 밤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자 우리는 산을 내려 연기가 피여오르던 집을 찾아갔다.그런데 웬일일가? 이 집 역시 텅 비여있었다.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건 물론이고 방에는 아무런 가장집물도 없었고 부엌에 역시 그릇 하나 없었다.마당도 반반하였다.역시 오래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였다.그러나 부엌아궁에는 불을 땐 흔적이 남아있었다.아무래도 집주인이 가까이 있을것만 같았다.이 집 주인은 자기 집이 그리워 집단부락에서 빠져나왔을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 집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져 앉았다.그동안 풀잎따위로 요기를 해온 때여서 우리는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우리는 집주인을 좀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나는 주변을 더 살펴볼 생각으로 골짜기내가로 나갔다.내가를 오르내리며 인적을 살피던 나는 주춤 서서 개울 건너편에 눈초리를 돌렸다.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는데 밑둥에서 한길쯤 올라가서는 세 갈래로 가지를 뻗고있었다.초생달빛은 그 갈라진 세 가지짬을 어렴풋이 비쳐주고있었다.바로 거기에 둥그런 무엇이 얹혀있었다.

나는 곧 개울을 건너가서 나무우를 쳐다보았다.세 가닥 나무가지짬에 얹힌것은 석유통이였다.석유통우에는 삿갓이 덮여있었다.나는 나무앞으로 다가서서 삿갓을 들고 통속을 들여다보았다.그속에는 흰쌀이 가득 들어있었다.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나는 곧 김일동지에게로 달려가서 사실을 보고한 후 두 동무를 데리고가서 그 쌀통을 날라왔다.

우리는 무척 배가 고팠다.그렇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한 때이므로 그 쌀에 손을 대지 않았다.

우리는 골짜기와 산등성이로 다니며 주인의 자취를 찾았다.그러나 허사였다.

끝끝내 주인을 찾을수 없게 된 우리는 심중하게 토의를 했다.주인을 찾아낼수 없는 쌀을 그냥 처분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더 기다릴것인가를 론의하였다.그러나 우리는 다음공작을 위해서 우선 그 쌀로 밥을 지어먹기로 했다.이날 저녁에 우리는 오래간만에 흰쌀밥을 먹었다.그리고 근거지에 남은 동무들에게도 쌀을 보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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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그는 언제나 사령관동지의 명령집행에 충실하였다 -(오중흡동지를 회상하여)-

주체109(2020)년 11월 14일 로동신문

김 철 만

 

오늘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튼튼히 무장하고 조선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이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투쟁하며 당정책관철에서 날에날마다 새 기적을 창조하는 우리 인민들의 자랑찬 투쟁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난 시기 항일유격대원들의 사령관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생각하게 되며 특히 그중에서도 그이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오중흡동지를 회상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서 성장한 오중흡동지는 어떤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로선을 견결히 지지옹호하였으며 항상 그이의 명령지시를 철저히 관철하였다.

나는 한때 그의 련락병으로 있으면서 사령관동지에 대한 그의 충실성을 일상적으로 보아왔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고난의 행군때에 있은 사실은 지금도 나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미 잘 알려진바와 같이 1938년 겨울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던 어느날 사령관동지의 전략전술적방침에 따라 우리 부대는 적들의 《토벌》력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3개 방향으로 각기 행동하게 되였다.

이때 우리 7련대는 사령관동지로부터 적을 끌고 상강구방향으로 이동하여 활동할데 대한 명령을 받고 강행군을 시작하였다.

적의 대병력을 상대로 하루에도 수십차례 싸우며 10여일이나 행군하고나니 우리는 극도로 피로했었다.

일부 신입대원들속에서는 얼마동안이라도 적을 떼여버린 다음 식량을 해결하여가지고 다시 행군을 계속하였으면 하였다.그것은 적들을 어지간히 멀리 끌고왔으니 이제는 떼여버린다 해도 사령부와 다른 부대의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대원들은 행군하다가도 쉴 때면 오중흡련대장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련대장인들 어찌 대원들의 고통을 모르겠는가.

대원들은 련대장의 수척하고 거칠어진 얼굴에서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심정을 헤아리고있음을 알수 있었고 이와 함께 어떤 역경속에서도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관철하고야말리라는 단호하고 강의한 그의 의지를 감촉할수 있었다.

대원들의 기분을 민첩하게 파악한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가장 곤난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적과 싸우고있소.그러나 우리가 곤난하다고 하여 여기서 적들을 떼여버린다면 결과는 사령부에 놈들이 집중되게 될것이요.아무리 곤난이 크다고 한들 우리가 어찌 이것을 허용할수 있겠소.우리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절대로 이것을 허용할수는 없소.

동무들,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두 기운을 냅시다.》

그의 한마디한마디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격동시켰다.오중흡동지의 말은 어떠한 명령보다도 더 큰 힘을 낳게 하였다.

어디서 힘이 솟았던지 우리는 모두 벌떡 일어섰다.

하늘에서는 적비행기가 돌아치고 지상에서는 수십마리의 군견을 앞세운 적들이 미친듯이 달려들면서 우리에게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으려고 발악했다.

땅에서 하늘에서 끊임없이 달려드는 대적을 족치고는 끌고가고 끌고가다가는 또 족치면서 상강구쪽으로 행군하던 그때의 곤난을 어떠한 말과 글로도 다 표현할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굴함없이 오히려 적들이 떨어질세라 끈덕지게 끌고가면서 때로는 호되게 족쳐대였다.

오중흡동지는 시종일관 허리까지 치는 눈을 헤치며 길을 내는 대렬선두로 나갔다가는 따라오는 적들과 싸움이 붙을 때는 대렬뒤켠으로 달려나가며 그야말로 초인간적인 힘으로 련대의 전투를 지휘하였다.

《속담에 고생끝에 락이 온다는 말이 있소.우리가 지금은 고생을 하지만 이것을 이겨내면 반드시 승리가 올것이요.우리가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철저히 관철하면 그만큼 조국을 해방할 그날이 가까와올것이고 따라서 조선혁명의 승리를 앞당기게 될것이요.》

오중흡동지는 이렇게 대원들을 고무하고 교양하면서 오직 한마음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관철해내자는 굳은 의지로 련대를 힘있게 이끌고나갔다.

바로 이러한 의지적인 단결이 있었기에 한사람한사람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극복해나갈수 없었던 그 무서운 곤난을 이겨낼수 있었다.

대적이 사방으로 달려드는 위험한 전투인들 몇백번이였고 생눈길을 헤치며 험산준령을 얼마나 많이 넘었는지 헤아릴수 없다.그러나 우리는 어떤 위험, 어떤 난관앞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어려운 곤난이라도 뚫고나갔다.

우리는 적의 주력이 다른데로 빠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하여 놈들이 기진맥진하여 따라오지 못하고 떨어지면 되돌아가서 놈들을 쳐서 어떻게 하나 끌고가군 하였다.

이렇게 가렬처절한 싸움과 고난에 찬 행군을 달포나 계속한 끝에 우리 련대는 마침내 적의 주력을 상강구까지 끌고가고야말았다.이렇게 하고나서야 오중흡동지는 비로소 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의 명령대로 적들을 여기까지 끌고왔으니 이제는 놈들도 하강구로 내려가지는 못할것이요.오늘은 적을 떼여버리고 식량을 해결합시다.이제부터는 이 지대에서 활동하면서 설도 쇠고 사령관동지께서 부르실 때까지 기다립시다.》

오중흡동지는 물론 대원들의 얼굴에도 만족한 미소가 어리여있었다.

혁명전사에게 있어서 사령부의 명령을 관철한것보다 더 높은 영광 더 큰 기쁨이 또 어데 있으랴.

맡겨진 혁명과업을 완수한 다음에 느낄수 있는 기쁨, 이것은 련대장 오중흡동지에게만 한한것이 아니였다.

오중흡동지는 언제나 사령부에서 주는 과업의 어렵고 쉬운것을 따지거나 환경조건의 리롭고 불리한것을 타산하기 전에 무조건 접수하고 그 해결방도를 찾았으며 스스로 어려운 임무를 맡군 하였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혁명가의 립장이며 태도인것이다.곤난과 위험이 두려워서 어려운 일을 못한다면 혁명을 어떻게 수행하며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고 보장되기만 기다렸다면 그토록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을 어떻게 장기간 전개할수 있었으며 적은 력량을 가지고 어떻게 강적 일본제국주의를 타승할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혁명이 간고하다고 하여 유리한 정세가 도래하기만 기다리면서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혁명력량을 축적할수도 없고 혁명도상에 조성되는 어려운 국면들을 타개할수도 없게 될것입니다.》

오중흡동지는 이 진리와 사령관동지의 불패의 혁명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체득하고있었다.

그러기에 그 간고한 고난의 행군때에도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관철해낼수 있었던것이다.

우리는 오중흡동지의 지휘밑에 그날 밤 발자국을 장백으로 통하는 큰길에 이어놓은 다음 자취를 감추고 감쪽같이 적을 떼여버렸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근방에 있는 목재소를 습격하여 식량을 해결하였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낟알구경을 하고 다문 며칠이라도 쉴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오중흡동지는 《사령관동지께서는 지금 어느곳에 계시는지, 식량이나 떨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소.》라고 하면서 멀리 가재수방향으로 오래동안 눈길을 돌리군 하였다.

자기가 곤난한 때일수록 사령부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련대에 식량이 생겼을 때 사령부에서 식량곤난을 겪지 않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그였다.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와도 같이 어느곳에 있든지 언제나 사령부로 향하는 뜨거운 마음, 이것이 바로 오중흡동지의 심정이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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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혁명의 요구라면 못해낼 일이 없다

주체109(2020)년 10월 29일 로동신문

송 승 필

 

동만의 각 현에 창설된 유격근거지가 날로 확대강화됨에 따라 이에 당황망조한 일제는 1933년 봄부터 동만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을 대대적으로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내가 있던 연길현 유격근거지에도 달려들었다.

유격대앞에는 간고한 시련이 닥쳐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에 기초하여 부대지휘부에서는 달려드는 적들을 격파하기 위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였다.

11월 어느날, 우리 병기창성원들은 지휘부로부터 100개의 작탄을 3일동안에 만들라는 긴급한 지시를 받았다.

작탄은 적들의 《토벌》을 분쇄하기 위한 작전에 긴급히 필요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우리 병기창의 형편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였다.

적들의 《토벌》로 인하여 약간의 재료와 불비한 도구마저 연화동 수림속에 파묻은채 사방대로 옮겨온 직후였으므로 우리가 있는 이곳에는 무기를 수리할수 있는 약간한 도구외에 한개의 쇠쪼각, 한오리의 철사, 한그람의 화약도 없었으며 일할만 한 장소도 미처 마련하지 못하고있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100개의 작탄을 3일동안에 만들어낼것인가?》

모든것이 구비된 조건에서 만든다 해도 제기일을 보장하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항차 적들의 눈을 피해가며 도구를 가져와야 했고 재료들을 마련해야 하였으니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혁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란 없다.혁명의 요구라면 없는것은 만들어내고 부족한것은 얻어내여서 필요한 모든것은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손발이 움직이고 심장이 고동치는 한 맡겨진 과업을 실천하자.)

우리 병기창성원들은 저마다 이런 결의를 다졌다.

혁명임무를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토론하던 끝에 우리는 재료와 도구들을 해결하기 위한 두가지 방도를 강구해냈다.

우선 적들의 경계를 뚫고 연화동 수림속에 가서 우리가 파묻어놓고온 재료와 도구들을 가져오는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부족되는 재료를 보충하기 위해서 적통치구역에 내려가 쇠쪼각들과 염산성분이 들어있는 흙을 파오는 일이였다.

우리는 각기 임무를 분담해가지고 즉시 길을 떠났다.

그때 나는 몇명의 동지들과 함께 연화동 수림속에 파묻어놓은 재료와 도구들을 가지러 가게 되였다.

날이 저물 때에 길을 떠난 우리는 바위도 얼어터질듯 한 추위를 무릅쓰고 어두운 수림속의 생눈길을 헤치며 밤새껏 걸었다.

적들과의 수차에 걸친 전투끝에 다음날 어두워서야 우리는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었다.

우리는 재료가 들어있는 독을 파내기 시작하였다.

어둠속에서 손더듬을 하며 땅을 파헤치자니 독이 깨여질 위험성도 있거니와 얼어붙은 땅이여서 삽날이 들지 않아 시간은 몹시 지체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한순간도 지체할수 없기때문에 삽으로만이 아니라 손으로도 언땅을 뜯어냈다.손끝에서는 피가 흘렀다.

우리는 언땅속에서 파낸 재료와 도구들을 나누어지고 사방대를 향하여 급히 돌아섰다.

우리가 림시병기창으로 정한 사방대 뒤산에 도착하였을 때는 자정이 넘어서였다.

림시병기창은 눈속에 절반이나 파묻힌 자그마한 《함지막》이였다.

여름에 서까래대신 나무 몇대를 가로놓고 함지를 파던 이 초막은 바람조차 막을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초막을 새로 지을수도 없었다.

작업은 공정단위로 조를 나누어 흐름식으로 진행했다.나는 장약조에서 일하였다.

일에 착수하고보니 우리앞에 가로놓인 난관이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작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폭약다지기, 폭약의 밀도맞추기, 심지와 폭약과의 접촉작업 등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넘길수 없는 공정이였으며 재빠른 손동작을 요구하는 작업이였다.

그런데 좁은 초막안에 작업대까지 설치해놓고보니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수도 없었고 터진 손가락은 자꾸만 쑤셔나고 곱아들어서 화약을 다지는 일도, 쇠줄을 감는 일도 뜻대로 해낼수가 없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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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대청리농장원들에게 하신 인사

주체109(2020)년 10월 19일 로동신문

 

은파군 대청리라고 하면 아마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것이다.그러던 대청리가 오늘은 우리 인민은 물론 온 세상이 다 아는 고장으로 되였다.

위대한 어머니당의 열화같은 사랑속에 수재민들은 군당위원회청사에서 걱정없이 생활하고 군당위원회 일군들은 야외의 천막에서 일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꽃펴난 곳, 그토록 짧은 기간에 어제날의 시대적락후성과 큰물피해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게 사회주의선경을 펼친 영광의 땅 대청리,

만사람을 감동시키는 대청리의 가슴뜨거운 사연들가운데서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이야기를 여기에 전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인민을 끝없이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절대시하며 인민들을 참다운 어머니심정으로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주체109(2020)년 8월 7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친히 운전대를 잡으시고 큰물이 채 찌지 않은 은파군 대청리로 야전차를 달리시였다.

큰물이 난 때부터 지금껏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험한 진창길을 맨 앞장에서 헤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따라설수록 일군들은 격정에 목이 꽉 메여왔다.

전날 몸소 은파군당의 책임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인민들의 생명안전, 생활상문제부터 제일먼저 물어주시고 그달음으로 현지에까지 나오시여 큰물피해상황을 료해하시며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사랑의 특별조치들을 취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

그러시고도 피해지역 인민들에 대한 걱정으로 한밤을 꼬박 지새우시고 정녕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또다시 그 험한 곳을 찾아주시였던것이다.

피해를 많이 입은 곳들에 한번 가보자고, 아무리 길이 험하여도 피해상황이 어떤지 직접 돌아보아야 하겠다고 결연히 말씀하시며 발목까지 잠기는 감탕길도 주저없이 걸으신 경애하는 원수님,

이렇듯 눈물겨운 헌신의 자욱자욱을 새기시며 수재민들의 생활안정과 피해복구를 위한 은정어린 조치를 거듭 취해주신 원수님께서 귀로에 오르시였을 때였다.

폭우에 의해 여기저기 물웅뎅이들이 나있는 곳을 헤쳐나가던 그이의 야전차는 그만 길섶의 논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되였다.

심하게 기울어지는 야전차, 거듭 공회전하는 차바퀴, 그럴수록 더욱 지쳐내리는 차체…

그 순간 어느 누구보다 가슴옥죄여든것은 은파군당의 책임일군이였다.

이 험한판에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신것만도 세상에 다시없을 죄되는 일인데 야전차까지 빠지였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한달음에 야전차로 달려가 어깨를 들이밀었다.

허나 몇 안되는 일군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수 없었다.

천금같은 우리 원수님의 혁명시간이 분분초초 흐를수록 일군들은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때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10여명의 농장원들이 어푸러질듯 달려왔다.

그렇게 달려와서는 온통 흙탕물로 얼룩진 야전차를 보고는 너무도 억이 막혀 울음조차 터치지 못하고 그대로 진창속에 몸을 던졌다.

북받치는 오열을 삼키며 야전차를 힘껏 떠밀기를 그 몇번…(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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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조국해방 3대로선 만세!》

주체109(2020)년 8월 11일 로동신문

최 용 진

 

최근년간 백두산지구를 비롯하여 전국도처에서 발굴되고있는 구호문헌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니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솔밑에 우리가 백두산에서 일제놈들을 반대하여 싸울 때 나무에 구호를 쓰던 일들이 삼삼히 떠오른다.

특히 신흥군 서곡리에서 발굴된 조국해방 3대로선에 관한 구호문헌들을 보니 이제는 오랜 세월이 지나가서 기억에 희미해지던 사실들이 어제일같이 되살아난다.

우리가 서곡리의 두무봉에 조국해방 3대로선에 대한 구호를 쓴것은 1943년 2월이였다.

이해에 들어서면서 세계정세도 혁명의 편에 유리하게 급변하였다.

몇달어간에 이전 쏘련을 다 집어삼킨다고 장담하던 파쑈도이췰란드는 쓰딸린그라드부근에서 벌어진 대격전에서 크게 패하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전선에서도 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일제도 중국전선에서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몰려들어가고있었으며 태평양전선에서도 세력균형을 완전히 잃고 패전을 거듭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제의 멸망은 더욱더 명백해졌으며 조국해방의 대사변도 당면한 문제로 되여가고있었다.

급변한 정세는 조국해방을 위한 일제와의 최후결전준비를 더욱 철저히 갖출것을 요구하였다.

정세발전의 추이를 예리하게 살피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신흥지구비밀근거지의 두무봉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 소부대, 소조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소집하시였다.

그때 훈련기지에서 군정훈련을 하고있던 우리 지휘관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흥으로 가게 되였다.

우리는 련락을 받은 즉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시하신대로 대원 두명씩을 데리고 먼저 두만강을 건는 다음 증산봉에 올랐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구체적인 임무를 받고 또 신분증도 받았다.

신분증을 펼쳐보니 징병, 징용모집원으로 되여있어 그것을 가지면 어디나 마음대로 다닐수 있게 되여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신분에 맞게 행색을 갖추고 청진까지 걸어나와서 기차를 탔다.

걸어올 때도 그랬지만 기차를 타고보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우리가 오른 렬차칸만 둘러보아도 일제의 구두발밑에 무참히 짓밟히고있는 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엿볼수 있었다.

한쪽켠에는 열대여섯살쯤 되는 처녀애들이 조그마한 보퉁이를 가슴에 꼭 껴안고 앉았는데 얼굴엔 눈물자욱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차안의 려객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부모들의 품을 떠나 방직공장과 제사공장으로 팔려가는 처녀애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다른 모퉁이에는 경찰의 호송을 받는 청년들 서너명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징병과 징용을 기피하여 숨어다니다가 체포되여간다는것이였다.

그밖에 여기저기 앉아있는 사람들 역시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 담겨져있었다.

렬차칸이 그대로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 모든 정상을 보니 가슴에서 불이 일어 견딜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청년들을 호송하는 경찰놈들과 처녀애들을 끌고가는 놈들을 요정내고싶었다.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더욱 안타까왔다.

그런데 우리가 탄 렬차가 성진 (지금의 김책)역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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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속에서 :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주체109(2020)년 7월 21일 로동신문

김금산

 

전후 자그마한 농기계공장으로 발족한 우리 공장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오늘은 대규모적인 뜨락또르공장으로 발전하였다.

몇년전만 하여도 인력탈곡기와 축력제초기 등 중소농기계들을 소규모적으로 만들고있던 우리 공장에 오늘은 1년에 수천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할수 있는 고성능특수기계들과 현대적인 전문설비들이 갖추어졌으며 뜨락또르의 주요한 생산공정이 자동화, 반자동화되였다.

이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75hp대형무한궤도뜨락또르까지 척척 만들어내게 되였다.

나는 이처럼 변모된 우리 공장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전후시기에만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러차례나 찾아오시여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공장의 발전전망을 밝혀주시던 일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된다.

특히 그이께서 안겨주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간직하고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던 때를 영원히 잊을수 없다.

우리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첫 뜨락또르생산에 궐기한것은 1958년 10월이였다.

당시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개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로력이 가장 많이 드는 운반작업과 밭갈이작업을 기계화하기 위하여 뜨락또르와 같은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강냉이탈곡기와 같은 중소농기계들을 만들어내는데 불과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공장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뜨락또르를 만들데 대한 영예롭고도 무거운 임무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자리를 같이하시고 당시 나라의 형편과 앞날의 전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주시면서 뜨락또르생산의 필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여주시였다.

《우리는 이미 농촌에서 사회주의협동화를 완성하였지만 아직도 농업은 급속히 발전하는 공업에 비하여 기술적으로 멀리 뒤떨어져있습니다.우리는 앞으로 농촌에 뜨락또르를 비롯한 현대적농기계를 많이 만들어보내줌으로써 모든 농사일을 기계로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만들어 보내주면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할수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서 농민들이 운반작업을 대부분 등짐으로 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농촌에서 락후한 영농방법을 퇴치하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로부터 제초, 추수, 탈곡에 이르는 모든 영농작업과 운반작업을 뜨락또르로 하게 하려고 합니다.그렇게 되면 우리 농민들이 농사일을 헐하고 흥겹게 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농촌에 뜨락또르를 많이 보내주자면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합니다.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하여야 농촌기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으며 외화도 많이 절약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뜨락또르를 한해에 3, 000대씩 수입하는것으로 보아도 3만대를 수입하자면 10년은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처음에 수입한 뜨락또르가 못쓰게 된다는것을 고려하면 10년이 걸려도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필요한 뜨락또르를 보장하기 곤난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있던 우리들은 나라의 형편이 뜨락또르를 절실히 요구하고 당이 그 길을 가리킨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자체로 뜨락또르를 생산하고야말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졌다.

믿음에 찬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것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수 있습니다.우리가 뜨락또르를 제힘으로 만들어야 기술도 발전하지 남의것을 사다쓰기만 하면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든다는것은 우리 나라 기술혁명에서 큰 발전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와 헤여지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을 믿습니다.나는 동무들이 당이 제시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반드시 성과적으로 수행하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우리들은 그이께서 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회의실에 모여앉았다.

많은 동무들이 서로 앞을 다투며 연단으로 뛰여나가 기어코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시제품을 생산하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

주체109(2020)년 7월 6일 로동신문

오 백 룡

 

1933년 초봄 어느날이였다.

아직 날씨는 춥고 두만강에는 얼음이 두터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우리 유격대원들은 두만강기슭에 있는 량수천자부근의 어느 한 농막앞에서 잠시 휴식하게 되였다.

우리는 농막집마당에서 휴식하기 위하여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집안에서 분명 인기척이 있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주인은 전혀 응대하지 않았다.

추운 날씨였으나 어느 누구도 문을 열고 농막안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휴대품을 토방에 내려놓고 마당에서 휴식하기로 하였다.살을 에일듯이 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행군하던 몸으로 밖에서 휴식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더우기 부상당한 동무를 생각하니 불현듯 더운 집안에 눕히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그러나 우리는 항일유격대는 인민을 위한 참된 군대가 되여야 한다 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간곡한 교시를 잊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외투를 벗으시여 친히 부상당한 동무를 덮어주시고는 우리들에게 《추운 때에는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하는것보다 운동을 하는것이 더 좋거든.》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수 도끼를 드시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오시였다.이렇게 되자 대원들은 모두 그이를 따라나섰다.어떤 동무들은 집주위의 눈을 치고 마당을 쓸었으며 어떤 동무들은 샘터에 가서 얼음을 까고 물을 길었고 어떤 동무들은 나무를 해다가 불을 피워놓고 식사준비를 서둘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때까지 우리 유격대를 대해본 일이 없는 이 농막집주인은 우리가 마당으로 들어서는것을 보자 일제군경놈들인줄 알고 겁이 나서 집안에 숨어있었다.

그런데 문틈으로 밖을 엿본 그들부부의 눈에는 의외의 광경이 띄였다.살을 에이는 추운 날씨건만 대원들이 모두 마당의 눈을 치고 산에 가 나무를 해다가 불을 피우고 마당 한쪽에 쌓아놓은 짚단도 깔지 않고 앉아 쉬고있는 광경을 본 그들부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보다 더 그들을 감동시킨것은 마당에 눕힌 부상당한 대원을 생각하여 자기 외투를 벗어서 덮어주며 정성스레 간호를 하고있는 군대들의 지극한 우정이였다.《아무리 보아도 왜놈의 군대같지는 않군!…》, 《글쎄 무슨 군대들일가.… 저런 군대는 난 처음 보오! 확실히 일본군대는 아니요.》, 《어떻게 할가?…》라고 말하면서 부부는 잠시 망설이고있었다.마침 이때 잠에서 깨여난 어린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그바람에 주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이윽고 우리가 어떤 군대란것을 알게 된 그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어쩔바를 몰라 당황해하면서 지금까지 품고있던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리고 안해에게 더운물을 끓이게 하고는 우리더러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옷소매를 당겼다.그뿐만아니라 그는 얼마 안되는 식량가운데서 강냉이 몇말과 추녀끝에 매달았던 배추시래기까지 아낌없이 내놓는것이였다.우리는 그 성의만은 고맙다고 치하하면서 굳이 사양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담배를 권하시였다.그리고 이 집은 오랜 농민의 집이 분명한데 어째서 닭 한마리도 치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에게 털모자 하나 사씌우지 못하느냐고 하시며 가정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물으시자 로인은 깊은 한숨을 지으면서 자기의 가난한 생활을 《타고난 팔자》로 돌리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이 로인의 생활과 고생에 대하여 한집안식구처럼 걱정하시면서 조중인민이 할아버지처럼 가난하게 사는것이 《타고난 팔자》탓이 아니라 일제와 동북군벌, 토착봉건지주들의 2중3중의 비인간적인 착취와 략탈때문이라는것을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우리가 잘살수 있는 길은 오직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길만이라는것을 일깨워주시였다.로인은 자기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대하여 례를 들어가며 일깨워주시는 그이의 말씀에서 비로소 모든것을 깨달은듯 눈물을 머금고 자기도 유격대를 따라가고싶다고까지 말하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곳에서 휴식을 끝마치신 후 농막을 떠나실 때 로인앞에 얼마간의 돈을 내놓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 집 할머니까지도 입고계신 옷이 헐어서 당장 문밖출입을 못하시는것 같습니다.적은 돈이지만 보태쓰십시오.그리고 닭도 사다가 기르시면서 아이들에게 고기도 먹일수 있게 해주십시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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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 인민의것이라면

주체109(2020)년 3월 21일 로동신문

손 종 준

 

1941년 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소부대활동을 벌리던 때의 일이다.

김일동지가 지휘하는 우리 소부대성원은 모두 12명이였는데 3월 중순부터 약 50일간을 얼마 안되는 수수쌀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루 한사람앞에 두숟가락의 수수쌀이 차례졌을뿐이였다.

일제군경놈들은 항일무장투쟁의 초시기부터 감옥이나 다름없는 집단부락을 만들고 주변에 널려있는 부락의 농민들을 여기에 몰아넣음으로써 우리 유격대와 인민들과의 련계를 끊어버리려 하였다.

일제강점의 말기에 이르러서 일제의 이러한 책동은 더욱더 악랄성을 띠게 되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보니 우리는 식량을 얻기가 매우 곤난하였다.

당시 우리 소부대의 기본임무는 적의 통치구역안에서 지하공작을 수행하는것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식량을 해결하기 위하여 내놓고 적들을 습격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그리고 우리는 일정한 기간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공작하여야 했다.

우리들이 아껴먹던 수수쌀마저 다 떨어져버렸다. 어느날 몇명의 대원들은 김일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식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밀영을 떠났다. 그날은 음력 5월 4일 아침이였다. 좁은 골짜기를 밑에 두고 산릉선을 타고 내려가던 우리는 골짜기에서 가늘게 피여오르는 연기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나무가지들을 헤치며 연기나는쪽을 내려다보았다. 골짜기에는 7채의 집이 있었다. 웃골짜기에 4채, 아래골짜기에 3채가 들어앉은 이 집들은 전부터 비여있는 집들이였는데 산아래턱에 바싹 붙어있는 한채의 집에서만은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저 집에는 사람이 살고있으니 저 집 사람들을 통해서 식량을 얻을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될수록 주간행동을 피하던 때였으므로 밤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자 우리는 산을 내려 연기가 피여오르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웬일일가? 이 집 역시 텅 비여있었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건 물론이고 방에는 아무런 가장집물도 없었고 부엌에 역시 그릇 하나 없었다. 마당도 반반하였다. 역시 오래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였다. 그러나 부엌아궁에는 불을 땐 흔적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가까이 있을것만 같았다. 이 집 주인은 자기 집이 그리워 집단부락에서 빠져나왔을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 집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져앉았다. 그동안 풀잎따위로 요기를 해온 때여서 우리는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 우리는 집주인을 좀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나는 주변을 더 살펴볼 생각으로 골짜기내가로 나갔다. 내가를 오르내리며 인적을 살피던 나는 주춤 서서 개울건너편에 눈초리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는데 밑둥에서 한길쯤 올라가서는 세갈래로 가지를 뻗고있었다. 초생달빛은 그 갈라진 세 가지 짬을 어렴풋이 비쳐주고있었다. 바로 거기에 둥그런 무엇이 얹혀있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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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9권 : 명령은 무조건 끝까지 관철해야 한다  
오백룡

주체109(2020)년 3월 16일 웹 우리 동포

 

혁명조직과 상부의 명령, 지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끝까지 관철하는 혁명적기질은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히 간직하여야 할 품성이다.

아무리 좋은 결정이나 방침이 채택되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집행하는 일군들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정확하게 끝까지 관철하지 않는다면 그 결정과 방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오직 혁명전선의 모든 단위에서 투쟁하는 모든 일군들이 어떤 어려운 정황이나 조건에서도 높은 책임성과 완강성을 가지고 혁명임무를 철저히 관철할 때에만 혁명의 승리를 쟁취할수 있는것이다.

지난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사령부의 명령과 조직의 지시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언제 어떠한 조건에서도 반드시 그를 어김없이 실천하는 혁명적기풍을 견지하고 싸워왔다.

일제의 강대한 무력을 상대로 싸워온 항일유격대원들은 오늘의 조건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곤난과 애로를 헤치면서 하나하나의 혁명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만약 그때에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지기를 바라거나 쉽고 헐하게 일해보자는 안일한 생각에 조금이라도 사로잡혔다면 혁명에 나서기는커녕 혁명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것이며 혁명의 길을 걸을수도 없었을것이다.

우리는 혁명임무를 수행하는데서 조건이나 능력을 앞세워 생각한것이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며 또 할수 있다는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항상 이악하게 달라붙어 어떤 난관도 물리치며 맡은 임무를 끝까지 정확하게 실천하군 하였다.

1940년 가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신 우리 부대앞에는 겨울을 날 량식을 마련해야 할 과업이 긴급하게 나서고있었다. 이것은 적의 집중공격으로부터 부대의 력량을 보호할뿐아니라 이 겨울동안에 부대의 전투력을 군사, 정치적으로 더욱 강화하며 나아가서는 장차 일제에게 더욱 큰 타격을 주고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사업이였다.

이 과업은 영예롭게도 우리 련대가 맡게 되였다.

이것은 적들의 《토벌》력량이 집중된 정황속에서 800여섬의 식량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이만저만한 과업이 아니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 《이 일은 부대의 운명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꼭 실천해야 하오.》라고 당부하시며 자신께서 차고다니시던 《단모폴》싸창을 나의 손에 쥐여주시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는 맡은 임무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느끼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과업을 기어이 수행해내고야말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사령관동지로부터 우리는 출발에 앞서 행동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받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선 연길현 로두구근방 집단부락의 적을 쳐서 부대가 당장 먹을 식량을 마련해놓고 돈화, 안도쪽으로 나가서 겨울날 량식을 해결할데 대하여 그리고 그곳까지 어떻게 행군해가며 부락의 적은 어떻게 치며 또 겨울량식을 보관할 비밀장소는 어떻게 만들것인가 하는것 등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곧 련대를 인솔하고 연길현쪽으로 떠났다.

우리 련대는 행군을 다그쳐 로두구방향으로 나갔다. 그러나 행군은 예상했던것처럼 빠르지 못하였다.

당시 적들은 우리 혁명군부대를 《소멸》하자는 기도밑에 저들의 《토벌》력량을 이 지대에 집결시켜 산릉선들과 골짜기들을 타고 눌러앉아서 우리의 길목을 지키군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산중복을 타면서 놈들을 이리저리 피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렇게 되여 행군은 더디게 되고 날자도 곱절이나 걸리게 되였으며 이에 따라 대원들의 끼니가 문제로 되였다.

당장 식량을 마련하여 대원들의 기운을 돋우어가지고 가자면 목적지까지 가기도 전에 폭로될수 있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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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새로 생겨난 닭알삶는 터

주체109(2020)년 1월 15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원수님의 열화같은 인민사랑에 떠받들려 종합적인 온천치료봉사기지, 다기능화된 복합체육문화휴식기지로 훌륭히 일떠선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바로 여기에 깃든 우리 원수님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 천이런가, 만이런가.

그중에는 우리 인민에게 보다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기울이신 크나큰 심혈의 세계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하나의 이야기도 있다.

주체107(2018)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장을 찾아주시였을 때의 일이다.

건설총계획도앞에서 건물들의 여러가지 배치방안을 료해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모든것을 다 참고하여 건축미학적으로나 편리성에 있어서 최고의 수준을 보장할데 대하여 강조하시고나서 온천용출구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흰김을 뭉게뭉게 피워올리며 땅속에서 콸콸 솟구쳐오르는 온천물은 보면 볼수록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다.

이 온천과 더불어 이제 머지않아 희한하게 꾸려질 온천문화휴양지에서 사회주의문명을 마음껏 향유할 우리 인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이윽토록 용출구를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이 마실 물인데 우리가 먼저 맛보자고 하시며 제일먼저 뜨거운 온천물이 담긴 고뿌를 받아드시였다.물맛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번에는 80℃가 넘는 온천물에 몸소 손까지 잠그어보시고나서 온천물이 정말 뜨겁다고, 이 물온도면 닭알도 삶을수 있겠다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벌써 몇번째로 하시는 닭알이야기였다.

두달전 양덕땅을 처음으로 찾으신 그날에도 온천의 용출량과 온도를 알아보시다가 불쑥 80℃이면 닭알을 삶을수 있지 않는가고 물어보시고 어느 한 온천용출구앞에 이르시여서는 닭알을 이 온천의 용출구에 넣고 30분정도 있으면 반숙된다고 하는데 이런 온천이 바로 진짜 고온천이라고 못내 만족해하신 우리 원수님이시였다.

그런데 오늘은 자신께서 몸소 온천물의 온도를 가늠해보시며 또다시 닭알을 삶을수 있겠다고 기뻐하시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군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어이하여 거듭 닭알이야기를 하시는지 그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있었다.

이윽고 건설장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오랜 시간에 걸쳐 온천문화휴양지건설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득 용출구에 가서 닭알을 삶아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수행일군들은 초조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삼지연시건설장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건설장을 찾으신데 이어 순간의 휴식도 없이 양덕온천문화휴양지건설장으로 먼길을 달려오신 그이께서 점심식사마저 번지시면 어쩌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허나 그이께서는 자신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늘 정말 기분이 좋다고, 인민들에게 온천관광지구를 잘 꾸려 안겨주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며 또다시 용출구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수행일군이 닭알들을 온천물속에 조심히 담그는것을 유심히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한 일군에게 닭알이 몇분이면 익을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우리가 시험해본데 의하면 17분이면 됩니다.》

그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럼 20분만 삶아보자고 하시면서 자신의 손목시계에 눈길을 주시였다.닭알삶는 시간을 측정해보시려는것이였다.

한초한초…

천금같이 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시간이 산골군의 이름없는 온천용출구앞에서 흘러갔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바치는 시간보다 더 귀중한 시간은 없으신듯 용출구옆의 수수한 의자에 앉으시여 닭알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주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은 한없는 격정으로 높뛰는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여기에 닭알삶는 터도 만들어주어야 할것 같소.닭알삶는 터까지 만들어주면 인민들이 좋아할거요.》

그때에야 비로소 일군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온천물의 온도에 대하여 그토록 관심하시고 오늘은 점심시간도 미루시며 닭알삶는 시간을 측정하고계시는가를 깨닫게 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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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일화 : 사연깊은 철사다리

주체108(2019)년 11월 19일 로동신문

 

봄날치고도 류달리 쾌청하던 지난 5월 4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금야강2호발전소를 찾으시였다.

절세위인을 모신 기쁨을 노래하는가 저수지의 푸른 물은 천구슬, 만구슬로 부서지며 눈부신 빛을 뿌리였다.

출렁이는 물결을 품어안고 거연히 서있는 언제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금야강2호발전소 언제를 정말 멋있는 위치에 건설하였다고, 지금과 같은 갈수기에도 발전소저수지에 많은 물이 차있는것을 보니 기분이 대단히 좋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발전소운영실태를 료해하시였다.

금야군당 책임일군은 군에서 자체의 힘으로 발전소를 건설해놓고서도 발전기가 부족하여 1호발전기밖에 돌리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말씀올리였다.

2호발전기는 어떻게 제작하려고 하는가를 알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금야강2호발전소가 능력대로 전기를 생산할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줍시다.》

그러시면서 한 일군에게 발전기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과업을 주시였다.

군당책임일군은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자기들의 안타까움을 대번에 헤아리시고 즉석에서 대책을 세워주시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감격에 겨워있는 군당책임일군을 정겹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시금 언제쪽에 시선을 얹으시며 저기로 올라가보자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조정지순회점검다리로 올라가는 곳에 설치된 철사다리를 띄여보시고 반색을 지으시였다.

《철사다리가 있구만.저쪽으로 올라가기요.》

뜻밖의 말씀에 일군들은 당황함을 금할수 없었다.

군당책임일군의 심정은 더욱 그러하였다.그 철사다리는 발전소 근무성원들이 언제와 수문의 상태, 수위 등을 감시하기 위하여 순찰할 때 리용하는것이였는데 경사가 매우 급하고 협소하기 그지없었다.지금껏 많은 일군들이 발전소에 와보았지만 과연 그 누가 철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가보았던가.

그런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리로 오르시겠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수 있으랴.

일군들모두가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벌써 철사다리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으시였다.

한 일군이 《경애하는 원수님, 위험합니다.》라고 간절히 아뢰였다.

철사다리앞에 이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의 걱정을 눅잦혀주시려는듯 사다리를 몇번 당겨보시고는 더 만류할 사이도 없이 거기에 올라서시였다.

한계단 또 한계단…

옥죄여드는 마음을 안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던 일군들이 뒤이어 철사다리를 타고 올랐을 때 그이께서는 벌써 조정지순회점검다리의 한가운데 서시여 주변의 전경을 부감하고계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저수량이 괜찮다고, 물이 언제나 차있으니 전기를 생산하는것은 물론 그 물로 음료수도 보장하고 농사도 지을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군당책임일군에게 군안의 인민들이 좋아하는가고 물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군안의 인민들이 전기덕을 보고 먹는물도 충분히 보장받으니 로동당만세를 부릅니다.》

군당책임일군의 자랑에 겨운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발전기를 더 설치하여 전기덕을 단단히 보게 되면 그들이 정말 좋아할것입니다.》

군당책임일군은 가슴이 뭉클해졌다.그제서야 뭇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여기에까지 굳이 오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이 헤아려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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