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일화/エピソード’ Category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버이 -어버이수령님께서 룡전땅의 한 일군을 믿음과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이야기-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에 대해서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 북청확대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길에서 한 당일군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데 대해서는 사람들이 미처 다 알지 못할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일군들은 실력가가 되여야 합니다.높은 충실성에 실력이 안받침되지 않고서는 복잡한 당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잘해나갈수 없습니다.》
주체50(1961)년 4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났을 때였다.회의장을 나서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력사적인 북청확대회의가 진행된 북청군 룡전리의 당위원장이였다.
그가 제대군관이라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대와는 달라서 당사업을 하자니 힘이 들겠다고 하시면서 그의 사업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인자하고 소탈하신 인품에 끌린 리당위원장은 어려움을 잊고 사업에서 느끼고있던 고충을 사실그대로 말씀드리였다.
그와 함께 길을 걸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당원들을 얼마나 료해하였는가, 조합원(당시)들을 얼마나 만나보았는가, 찾아가서 만났는가, 찾아왔을 때 만났는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물으시였다.
리당위원장은 말문이 막히였다.이곳에 온지 반년나마 되였지만 가을걷이요, 농사차비요, 문화주택건설이요 하면서 분주히 돌아가다나니 찾아온 사람들마저 후날에 만나자고 돌려보낸 일이 적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이런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주 잘못되였다고 하시면서 당사업을 왜 사람과의 사업이라고 하는가, 가을걷이를 하건 씨붙임을 하건 문화사업을 하건 당일군은 먼저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보아야 한다고 깨우쳐주시였다.그러시고는 리에 당원이 몇명이고 조합원은 몇명이며 세대수는 얼마인가를 알아보시고 그럼 동무에게 한가지 과업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조합원이 900여명이라고 하니 한 1년반동안을 계획하고 조합원들을 다 만나보라고 이르시였다.
리당위원장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리당위원장에게 한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말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이 많은 사람도 있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린 사람도 있는것입니다, 백이면 백이 다 소질도 다르고 수준이나 경력도 다른데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는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당일군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알아야 하며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있으며 무엇을 요구하고있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아파하는것을 풀어줄수 있으며 그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이끌어나갈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하시였다.(전문 보기)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 청춘광산으로 전변되기까지
한 희 락
룡양광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텔레비죤소설 《백금산》을 생각하며 7호굴착기와 영웅소대원들부터 떠올리군 한다.
바람세찬 산정에서 온갖 눈비를 다 맞으며 쉴새없이 광석을 퍼올리는 소대원들과 굴착기의 작업모습…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옛말이다. 그렇듯 우리 룡양이 그전날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천지개벽되였다.
그 모습을 대할 때마다 이 땅에 전변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고마움과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 가슴은 뜨겁게 젖어들군 한다.
주체100(2011)년 10월 15일이였다.
이날 대흥청년영웅광산을 현지에서 지도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그길로 우리 룡양광산도 찾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2012년을 향한 혁명적대진군을 진두지휘하시며 조국땅 방방곡곡을 주름잡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또다시 광산에 모시게 된 나는 높뛰는 가슴을 애써 눅잦히며 종합지령실에 들어서시는 장군님께 삼가 인사를 올렸다.
우리들이 올리는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고 지령실안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지령원들이 산업TV화면에 펼쳐진 지하의 여러 채굴장들과 선광직장, 상차대를 비롯한 갱막장과 지상의 모든 생산현장들을 보며 지휘를 하고있는 종합지령실은 채굴과 락광, 파쇄, 선광처리와 같은 거창한 광산의 생산활동을 지휘하는 현장지령실이라기보다는 마치 아늑한 도서관의 열람실을 련상케 했다.
이윽고 광산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경도앞에 진렬한 광석표본들을 주의깊게 보아주시였다.
이때 광산의 한 일군이 우리 광산을 여러차례나 찾아주시고 우리들이 나갈 길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두해전 5월 석수떨어지는 막장에까지 들어오시여 채굴작업의 대형화, 현대화를 실현할데 대하여 주신 강령적과업을 다 관철하였다는것을 보고올리면서 이러한 성과를 거둘수 있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그이께 감사의 인사를 삼가 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며 말씀하시였다.
《내가 2009년 5월에 룡양광산에서 개발한 6월5일갱막장에 들어가보고 다른 갱들도 6월5일갱처럼 채굴작업의 대형화, 현대화를 실현하여 다량채굴, 다량락광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습니다.》
그이께서는 전경도앞에 진렬한 생산물표본을 보니 전기용융크링카도 있는데 그동안 룡양광산에서 내가 준 과업을 관철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는것이 알린다고 치하해주시였다.
계속하여 금산갱지구의 채굴공정도앞으로 다가서신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새롭게 도입한 전면붕괴식채굴방법에 대하여서와 지난 1년반사이에 장군님의 현지말씀을 높이 받들고 금산갱을 비롯한 여러 갱들에 대형채굴장을 4개 더 건설하여 채굴원가는 절반으로 낮추면서도 생산은 3.2배로 장성시키고 많은 광량을 확보한데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들으시였다.
이미전에 6월5일갱을 돌아보시여 전면붕괴식채굴방법에 대하여 환히 알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룡양광산에서 새로 받아들인 그 채굴방법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하는 방법일것이라고 하시면서 광산에서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전문 보기)
위대한 사랑과 헌신의 한평생
태양절!
우리 인민은 해마다 4월 15일을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로 경축하고있다.진보적인류도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경모의 마음을 안고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을 성대히 진행하고있다.
얼마나 뜻깊고 경사로운 날인가.
주체의 태양이 솟아오른 민족최대의 행운의 날이 있어 위대한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의 존엄이 만방에 빛을 뿌리게 되였고 우리 인민이 행복과 영광만을 누려올수 있지 않았던가.
하기에 우리 인민은 자나깨나 어버이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축원하며 그이께서 탄생일의 그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실것을 간절히 념원하였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생신날을 보통날처럼 여기시며 집무를 보시거나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인민의 유족한 살림을 위하여,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위하여, 사랑하는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아래에 전하는 사실들은 뜻깊은 4월 15일이 전하는 감동깊은 이야기들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전후 처음으로 맞는 어버이수령님의 생신날이였다.
그날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른새벽에 중화군의 한 농업협동조합(당시)을 찾으시여 축축한 밭머리에서 이곳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농사일을 의논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마을에서 기계로 밀을 심는다는것을 아시고는 기계농사를 하도록 앞길을 밝혀주시였으며 그 부근에 좋은 샘터가 있다는것을 아시고는 또 그곳으로 향하시였다.
샘터가 있는 그곳은 마을의 젊은이들도 들어서기 저어하는 진펄이였다.
일군들이 못 가신다고 말씀드렸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전에 일제놈들과 싸울 때에는 그보다 더 험한 길도 다녔다고 하시며 진펄길에 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일행은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샘터에 이르게 되였다.콸콸 용솟음치는 샘물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물을 리용하여 물고기를 길러 인민들에게 공급하라고 하시면서 금시 펄펄 뛰는 물고기들을 보시는듯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전문 보기)
언제나 인민을 생각하시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습니다.》
어느해 여름 깊은 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즈음 진행하고계시던 함경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와 관련하여 몇가지 문제를 토의하신 후 어서 가 쉬라고 하시며 그의 등을 다정히 떠미시였다.하지만 일군은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시 일군을 바라보시다가 왜 그러는가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거듭 물으시자 일군은 전사들을 생각하시는 몇분의 일이라도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 주의를 돌려주실것을 절절히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일군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였다.
일군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잠시라도 휴식하실수 있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만 하였다.
그러는 그의 머리속에 문득 언제인가 들은적있는 한 일군의 꿈이야기가 떠올랐다.
일군은 위대한 장군님께 정중히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저의 이야기를 하나 들으시겠습니까?10분이면 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면서 10분이면 좋다고, 그러나 그이상 넘기면 약속을 어긴 값을 톡톡히 받을줄 알라고 하시였다.
일군이 무둑히 차오르는 기쁨에 가슴을 울렁이면서 절대로 10분을 넘기지 않겠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리고는 하나의 꿈이야기를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
어느날 한 일군이 사는 마을에 경사가 났다.위대한 장군님께서 마을에 찾아오신것이였다.
일군은 자리를 차고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하여 달려가는 속을 비집고 뛰여들었다.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쏘아보며 물러가라고 소리쳤다.사람들밖으로 밀려난 그는 환호성이 터지고있는쪽을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자기 옷을 훑어보았다.옷은 온통 먼지투성이였고 운동화에는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어 급기야 되돌아서서 집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그런데 그만 눈물이 앞을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아 큰돌에 채워 넘어지는 바람에 꿈에서 깨여났다.
비록 꿈이였지만 그 일군의 충격은 이를데 없이 컸다.
그는 꿈결에 젖어든 눈굽을 씻고나서 위대한 장군님을 임의의 시각에도 만나뵈올 준비가 되여있는가를 돌이켜보았다.그리하여 아침일찍 일어나는 즉시로 양복, 와이샤쯔, 넥타이, 구두 등을 준비하고 그것을 정히 보관할 트렁크도 마련하였다.그리고는 간절한 소원을 안고 그것을 쓰다듬기를 그 몇번…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가 맡은 기업소에도 꼭 찾아오실것이라는것을 믿어마지 않았다.
드디여 기다리던 날이 왔다.위대한 장군님께서 기업소를 찾으신것이였다.(전문 보기)
문수봉이여! 불멸의 그 업적 길이 전하라
해빛찬란한 사회주의 내 조국강산에 봄빛이 짙어가고있다.
대지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봄바람도, 산촌에 쉬임없이 흘러내리는 작은 시내물소리도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한생에 대하여 끝없이 속삭이는것만 같아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이다.
조국땅 그 어디에나 력력히 새겨져 빛나는 절세위인의 불멸의 자욱자욱을 감회깊이 더듬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속에는 70여년전 몸소 문수봉에 오르시여 나무를 심으시던 우리 수령님의 거룩하신 영상이 숭엄히 되새겨진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보통강개수공사의 첫 삽을 뜨시고 문수봉에 오르시여 친히 나무를 심으시며 국토건설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문수봉!
그 이름 조용히 외워보느라면 내 나라의 푸른 숲에 어리여있는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애국의 력사가 우리의 가슴에 파도쳐온다.
해방후 제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려는 우리 농민들의 갈망은 비할바없이 높아졌다.
바로 그러한 시기 우리 수령님께서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기 위한 거창한 사업을 펼치시는 속에서도 방대한 산림조성사업을 구상하고계신줄 우리 인민은 미처 알수 없었다.
지금도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우리 수령님께서 몸소 한조항 한조항 작성하신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의 구절구절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일본제국주의자의 소유였던 산림, 하천, 소택은 일체 몰수하여 인민들의 소유로 하며 그 관리권은 지방정권기관에 위임한다.…
조국이 해방된 그해 10월에 발표하신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에서 벌써 이렇듯 나라의 모든 산림을 국유화하기 위한 혁명적조치를 취하시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시는 력사적인 협의회에서도 산림국유화를 중요하게 강조하신 어버이수령님,
해방된 이듬해 3월 몸소 모란봉에 오르시여 온 나라를 푸른 숲으로 뒤덮이게 할 웅대한 설계도를 무르익히신데 이어 며칠후에 발포하신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서 산림국유화를 정책화하심으로써 우리 인민들이 높은 애국적열성을 가지고 산림조성사업에 참가할수 있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령도는 얼마나 비범한것인가.
이렇듯 부강조국건설에서 산림조성사업을 중시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기에 주체36(1947)년 4월 6일 문수봉에 력사에 길이 빛날 자욱을 아로새기신것이다.
력사의 그날 문수봉에 오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가슴은 참으로 아프고 쓰리시였다.
예로부터 비단에 수놓은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문수봉이라고 불리우던 산이 강도 일제의 수탈에 자기의 옛 모습을 잃고 벌거숭이가 되였으니 우리 수령님의 심중이 오죽하셨으랴.(전문 보기)
은혜로운 사랑의 력사 영원하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노래는 마를줄 모르는 강물의 용용한 흐름과도 같이 전하고 전하여도 끝이 없는 위대한 어버이사랑에 대한 노래이다.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의 고귀한 삶도 그 사랑에서 꽃펴났고 대를 이어 만발하는 사랑의 화원도 그 은정속에 펼쳐지는 위대한 어버이의 품,
위대한 사랑의 력사, 그 갈피갈피를 더듬으면 뜨거움에 가슴젖고 헌신의 자욱자욱을 되새겨보면 눈물부터 앞서 목메여 찾는 어버이수령님!
일찌기 어버이수령님의 품을 이 세상 전부로 알고 수령님품속에 안겨사는 행복을 끝없이 노래하여온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위대한 수령님의 한품속에 영원히 살리!
바로 이 불타는 열망이 은혜로운 사랑의 력사를 천금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위대한 태양이신 우리 수령님을 천세만세 받들어모시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고결한 사상감정이며 영원한 일편단심이다.
* *
한없이 뜨겁고 웅심깊은 인정미와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모든 사람들을 빛나는 삶의 언덕에로 이끌어주시며 인민을 지극히도 사랑해주시고 위해주신 어버이수령님,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신 혁명이였기에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인민을 위하시는것보다 더 숭고한 리념은 없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수령님은 적들앞에서는 백두산호랑이와도 같았지만 전사들과 인민들앞에서는 더없이 친근하고 다정한 어버이이시였다.》
참된 사랑은 인간의 마음을 덥혀주는 따사로운 요람이며 인간을 완성시켜주는 비옥한 토양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타고나신 위대한 혁명가, 인민의 지향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인민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신 우리 수령님,
사랑하는 자식들이 남부럽지 않게 사는것은 부모의 행복이다.
나날이 꽃펴나는 인민들의 살림은 어버이수령님의 더없는 기쁨이였다.
떠나갈 땐 빈배로 가지만 돌아올 때는 배전에 넘친다 …
지금도 이 흥겨운 노래선률이 울릴 때면 인민의 어버이의 불멸할 모습이 뜨겁게 추억되여 격정을 금치 못하는 우리 인민이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잡이전투를 지휘하는 한 일군으로부터 동해에 물고기가 한벌 쭉 깔렸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벌 쭉 깔렸단 말이지, 기름은 걱정말고 푹푹 퍼내라고 못내 만족해하시며 곧 내각의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기름문제와 수송사업을 빈틈없이 짜고들도록 강조하시기 위해서였다.
《떠나갈 땐 빈배로 가지만》하고 그다음에 뭐더라?(전문 보기)
비범한 예지로 밝혀주신 원칙
혁명전통교양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참다운 혁명가로 키워 주체혁명위업을 힘있게 다그쳐나가기 위한 중요한 방도이다.
우리 당은 혁명의 귀중한 만년재보이며 혁명전통교양의 중요한 거점인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훌륭히 꾸리는데 큰 힘을 넣어왔다.
오늘 우리 나라는 그 어디에 가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혁명박물관과 혁명사적관이 꾸려져있어 온 나라가 그대로 혁명전통교양의 학교이다.
저 멀리 북변땅 물소리 소연한 두만강기슭에 가면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불멸의 자욱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더 잘 꾸려 그것이 당의 유일사상교양과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의 나날들에 대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를 꾸리는데서 수령의 동상을 잘 건립하는것이 기본원칙으로 된다.수령의 동상은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의 중심주제이며 성격표현의 기본수단이다.》
주체64(1975)년 3월 중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장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그무렵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은 마지막단계에서 다그쳐지고있었다.
3월이라고 하지만 두만강변의 바람은 살을 에일듯 맵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왕재산대기념비의 봉화탑과 군상, 부각상들의 위치를 돌아보신 다음 교양마당중심에 이르시였다.
일군들을 봉화탑밑에 세우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과 봉화탑사이의 거리를 가늠해보신 장군님께서는 소홀히 할수 없는 문제점을 발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뒤에 탑을 높이 세우니 탑에 먼저 시선이 집중되였던것이다.
그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상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동상을 탑에서 앞으로 더 내다모시고 대돌을 땅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자연바위처럼 해야 한다고 깨우쳐주시였다.
(현장에서 밤낮 살다싶이 하면서도 가려보지 못하다니?! …)
일군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틀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이 새로 준비한 도면을 보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혁명사적지를 꾸리는데서 철두철미 기본을 이루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는것이다.봉화탑과 군상, 부각상들은 그 어느것이나를 막론하고 다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러받들고 옹위하는것으로 되여야 한다.…
일군들의 생각은 깊어졌다.(전문 보기)
고귀한 넋을 새겨준 간곡한 당부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끊임없이 계승발전시키는것은 혁명의 전도, 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의 가슴속에 항일혁명선렬들의 고귀한 넋을 깊이 새겨주기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은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며 빛나게 완성하기 위한 근본담보입니다.》
언제인가 새 세대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준비한것을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이윽고 그 일군은 무슨 가루가 담긴 그릇을 가져다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였다.
일군들의 의아한 눈길이 일시에 그릇에 쏠리였다.
그런 일군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렬차를 타고오면서 눈덮인 산발을 바라보니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가 생각나서 미시가루를 만들어오라고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동무들은 책과 영화를 통하여 미시가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뿐 실지 미시가루로 끼니를 에워본적은 없을것이라고, 한홉이라는것이 몇숟가락 되지 않는다고, 자신께서 미시가루를 물에 타주겠으니 가까이 나앉아서 함께 먹어보자고 하시며 손수 보온병의 물을 고뿌에 부으시고 거기에 미시가루를 한숟가락씩 넣어주시며 어서 풀어서 들라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저저마다 미시가루를 저어 조금씩 맛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맛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잠시 망설이던 그 일군은 맛을 별로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미시가루는 사탕가루를 많이 두어서 맛이 좋지만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사탕가루를 두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먹은 미시가루는 그저 쌀을 닦아 가루를 낸것이지만 이렇게 사탕가루를 넣고 만든것보다 몇배나 더 달게 먹었다고, 령하 40℃를 오르내리는 그 추운 날에도 이런 미시가루를 더운물에 한고뿌씩 타먹으면 속이 훈훈해지군 하였다고 감회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생각은 깊어졌다.(전문 보기)
사연깊은 여섯마리의 메새값
인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의 갈피에는 여섯마리의 메새에 깃든 사연깊은 이야기도 수놓아져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새 조국건설시기 어느 한 산골마을에서 있은 일이다.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집에 들리시였다.
아침밥상을 물리고 앉아있던 주인은 밖에서 승용차가 멈춰서는 소리를 듣고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혹시 도에서 내려오는 손님들이 아닌가고 생각하며 주인은 문밖으로 나섰다.
일행중에는 젊으신분이 계시였다.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하지만 인적드문 산골에서 사는지라 주인은 미처 위대한 수령님을 알아뵙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인에게 지나가던 길에 몸을 좀 녹이려고 들리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방에 모시였으나 주인은 못내 송구해하였다.방이 너무 루추해서였다.
방안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앉아서 이야기나 하자고 하시며 그의 손을 잡아 가까이 앉히시였다.그러시고는 그가 해방전 농사와 막벌이를 하며 살아왔다는것을 아시고 그때와 지금의 생활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우리같이 농사짓는 사람이 살기에는 참 좋은 세상이라고 하는 주인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어떤 점이 좋습니까라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좋은 점이 많다고 하며 주인은 우선 제땅에서 농사를 지으니 지주놈의 꼴을 보지 않아 좋고 지주놈들이 없어져서 뜯기지 않아 살림도 펴이니 좋다고 성수가 나서 이야기하면서 참말 지금은 먹는 밥이 살로 가고 마음이 편안하여 발편잠을 잔다고 자기의 심정을 스스럼없이 터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옳은 말이라고 긍정해주시고나서 가정살림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아직 살림이 넉넉치 못한것을 사려깊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새세상을 만났으니 일을 열성껏 해서 농사를 잘 지으면 잘살게 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살아갈 방도에 대해서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주인은 마음속으로 젊으신분이 찬찬도 하지, 어떤분이시길래 산골농사군의 살림을 그렇게도 살뜰히 걱정해주시는가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전문 보기)
혁명전통교양의 대전당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아서(24) : 위대한 전승의 기적을 안아오신 강철의 령장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새로 개건된 조선혁명박물관을 현지지도하신 뜻깊은 날을 맞으며 박물관으로는 참관자들의 물결이 더욱 뜨겁게 굽이쳤다.
그들과 함께 우리가 들어선 곳은 조국해방전쟁시기관이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창작된 어느 한 시의 구절에는 폭격에 참새들마저 없어진 조선이라는 표현이 있다.
미제가 일으킨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거리와 마을을 비롯하여 많은것을 잃었지만 조선은 영웅의 나라로 우뚝 솟구쳤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생애, 혁명력사에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참관자들과 함께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라는 글발이 부각되여있는 벽면앞이였다.
현지향강사는 주체39(1950)년 12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가 진행된데 대하여 해설하고나서 수령님께서 친히 작성하신 전원회의보고문을 가리키며 거기에 깃든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를 지도하시기 위해 장강군 향하리에 도착하신것은 회의를 이틀 앞둔 날이였다.
전원회의는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특별히 의의를 부여하신 회의였다.
당시의 형편은 나타난 결함들을 빨리 극복하고 당을 더욱 강화하며 전체 인민을 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움으로써 전쟁의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준비를 더 잘 갖출것을 요구하고있었다.
현지에 도착하시는 길로 회의장소준비와 회의참가자들의 도착정형, 숙식조건에 대해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한 대책을 세워주신데 이어 전원회의준비에 착수하시였다.
그날 밤부터 소마강기슭의 동기와집에서는 회의보고문집필이 시작되였다.하늘에 뭇별이 총총한 산촌의 겨울밤 가물거리는 등잔불밑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투를 걸치신채 집필에 열중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보고문의 마지막장을 넘기신것은 다음날 회의시작을 불과 몇시간 앞둔 때였다.
이틀밤을 꼬박 새우시고 그길로 회의장으로 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에서 《현정세와 당면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우리 당력사에 빛나는 페지를 아로새긴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의 새날이 밝아오던 향하리의 밤,
그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과 이런 뜻깊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전쟁이란 신념과 의지의 대결이고 동시에 정열의 대결이기도 하다.우리는 필승의 신념과 락관을 가지고 아무리 준엄한 시련앞에서도 웃으며 전쟁을 해야 한다.그래야 이긴다.우리는 빨리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앞당겨야 한다.그래서 이 밤도 정열을 가지고 지새우는것이 아닌가.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야 한다.우리의 승리는 멀지 않았다.…
필승의 신념, 그것은 우리 수령님의 무한대한 열정의 근본원천이였다.(전문 보기)
인민들의 어머니, 그 고귀한 부름속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늘 우리 당은 어머니당이라고 하시면서 당조직들과 일군들이 인민들의 참다운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인민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군, 인민들이 기다리는 일군이 되자면 어떤 품성의 소유자가 되여야 하는가.
인민들의 참다운 어머니,
이것은 우리 일군들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이다.
인민을 위한 일밖에 모르고 인민을 위한 일을 성실하고 능숙하게 하며 인민을 위한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 일군, 그런 일군이 바로 인민들의 어머니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첫날부터 일군들이 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정신을 지니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일군들이 인민들의 참다운 어머니가 되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주체54(1965)년 2월의 어느날도 그런 하루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자신께서 평양시와 지방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료해하신 문제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그이께서 료해하신 문제들은 하나같이 인민생활과 관련된것들이였다.
그무렵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인민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었다.그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실례를 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생활에 대한 무관심성은 곧 사람에 대한 무관심성이며 우리 사회에서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한것보다 더 나쁜것은 없다고 그루를 박아 지적하시였다.
일군들은 인민들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어야 하는 자기들의 책임감을 자각하며 그이를 경건히 우러렀다.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가 일군들의 페부에 뜨겁게 흘러들었다.
인민들은 우리 당에 자기의 모든것을 의탁하고있으며 우리 당을 어머니당이라고 부르고있다.당일군들이 어머니당의 일군으로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인민들의 믿음과 기대에 보답하자면 진정으로 어머니다운 품성을 지녀야 한다.이 세상의 좋은것을 다 자식들에게 안겨주고싶어하는것이 어머니의 심정이며 자식을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위험도 가리지 않고 나서는것이 어머니의 성품이다.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티없이 깨끗하고 웅심깊으며 진실하다.그래서 자식들은 기쁠 때에도 어머니를 찾고 슬플 때에도 어머니를 찾으며 다 자라서도 어머니를 찾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자기를 낳아키워준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였다.
자식을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어머니,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락으로 여기는 어머니,
일군들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으로 하여 가슴이 달아올랐고 인민을 위해 어머니의 심정으로 일하여야 할 자신들의 모습을 어머니의 모습에 비추어보게 되였다.
일군들의 이런 심중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아낌없이 다 바친다고, 어머니가 자식을 하나 키우는데 오만자루의 품이 든다고 하여 어머니를 처음에는 오마니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점차 어머니로 되였다는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전문 보기)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의 세계
전사회적으로 절약투쟁을 강화하여 한W의 전기, 한방울의 물, 한g의 석탄, 한줌의 세멘트도 귀중히 여기고 극력 아껴쓰며 모두가 높은 애국심과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나라살림살이를 깐지게 해나가는 기풍을 세워나가도록 하려는것이 오늘 우리 당의 의도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절약은 곧 생산이며 애국심의 발현입니다.》
절약은 곧 애국심의 발현!
새길수록 온 사회에 절약기풍을 확립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신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의 세계가 숭엄히 돌이켜진다.
온 나라가 새 조국건설로 들끓던 어느해 겨울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시며 늘 찬방에서 불철주야 헌신하고계시였다.
그래서 일군들이 군불을 때려고 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무도 귀하거니와 새벽에 사람이 일어나 불을 때야 하겠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산에서 싸울 때에는 령하 40℃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에도 천막이 고작이였다고 하시면서 군불을 땔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산에서 싸우실 때처럼 외투를 걸치시고 일을 보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어느날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 자그마한 전열기를 가져다 설치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전열기가 어디서 났는가 알아보시고 도로 가져가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였다.
자신을 위한 일에서는 그 어떤 특전이나 특혜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우리 수령님의 풍모를 잘 알고있던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 이 전열기만은 허락해주셨으면 한다고 사정하다싶이 간청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서 하라는대로 하라고 단호하게 이르시였다.
엄혹한 추위가 계속되는 한겨울인지라 일군은 선뜻 움직일수가 없었다.그런 그를 바라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나라의 전기사정이 매우 긴장한 조건에서 내가 일하는 방이라고 하여 전열기를 놓아서는 안된다고, 방에 전열기를 놓으면 방안의 공기는 덥힐수 있을지 몰라도 나의 마음은 덥힐수 없다고,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려면 전열기를 걷어가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그리하여 전열기는 끝내 철수하게 되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들을 우리 어이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그 나날과 더불어 한평생 그 어떤 사소한 특혜나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였고 누구나 높은 애국심과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려 나라살림살이를 깐지게 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어느해 봄날 한 구역의 인민반장들을 만나주실 때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절약투쟁을 강화할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다.그때 어느 한 동에서 인민반장들이 정치사업을 잘하여 지난겨울에 가정들에서 쌀을 한끼에 한숟가락씩 절약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에 많은 식량을 수매하였다는 사실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주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치하하시였다.한알한알의 낟알에 비낀 평범한 녀인들의 애국심을 그리도 중히 여기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전문 보기)
력사에 길이 빛나는 혁명의 천리길
배움의 천리길, 12살 어리신 나이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애국의 길, 혁명의 길을 걸으신 때로부터 세월은 흐르고흘러 95돌기의 년륜을 새기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과 같이 어리신 나이에 애국의 큰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의 지도자는 력사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가장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누구보다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신 위대한 수령님,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높으신 뜻을 받드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신 날은 지금으로부터 95년전 3월 16일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국을 한탄하며 살길을 찾아 류랑길에 오르고 돈냥이나 있는 집 자식들은 저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류학의 길에 오르던 수난의 그 시기 우리 수령님께서 단행하신 조국에로의 천리길!
그것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시고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절세의 애국자만이 걸으실수 있는 혁명의 길, 애국의 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사실 그때의 솔직한 심정은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였다고, 조국에 나가서 공부하라니 다른것은 다 좋았는데 부모동생들의 곁을 떨어지는것이 싫었다고, 그렇지만 고향에 가고싶은 생각은 불같았다고 감회깊이 쓰시였다.
그날은 눈보라가 앞을 가리고 바람이 사납게 불어치던 날이였다.
팔도구에서 만경대까지 천리인데 혼자서 갈수 있는가고 물으시는 김형직선생님께 갈수 있다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하신 우리 수령님.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먼길을 떠나시는 아드님의 두루마기고름도 다시 매여주고 목도리도 고쳐감아주시며 만경대에 가면 할아버님, 할머님말씀 잘 듣고 공부를 잘하라고, 그리고 편지도 자주 하라고 당부하시였다.
단정한 학생복차림에 강반석어머님께서 밤새워 지으신 두루마기를 입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님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신 후 동무들의 바래움을 받으시며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천리길을 떠나시는 우리 수령님의 수중에는 자그마한 보꾸레미와 넉넉하지 못한 려비가 전부였다.
그러나 조국땅으로 향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는 이 세상 누구도 지닐수 없는 가장 큰것이 자리잡고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국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과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김형직선생님의 숭고한 뜻이였다.
대낮에도 어둡고 사나운 맹수들이 무시로 나타나는 오가산령, 가야 할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험산준령…
단신으로 넘으시며 별의별 고생을 다 겪으시였건만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것은 어디서나 보고 느끼시게 되는 조국의 비참한 현실이였다.
험난한 천리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느 한 객주집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그날 객주집에는 손님들이 몇명 있었는데 그들속에는 호남벌에서 살다가 간도로 살길을 찾아간다는 어느 한 길손도 있었다.
배고파 우는 어린아이들을 달래며 낯설은 이국땅으로 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 수령님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하였다.(전문 보기)
인민들속에서 :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
한 상 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근 산림조성사업을 힘있게 벌려 내 나라, 내 조국을 푸른 숲이 우거진 살기 좋은 인민의 락원으로 꾸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을 현실로 꽃피워야 한다는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을 받아안고보니 20여년전의 일이 되새겨져 숭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다.
주체68(1979)년 9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당시 황해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있던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도를 현지지도하시기 위해 평양을 떠나시였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안고 황주군으로 갔다.
그곳은 우리 도의 첫 입구였다.나와 도안의 몇몇 일군들이 이곳에서 기다리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황주군 신상협동농장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허리굽혀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모두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고나서 금물결 설레이는 논벼포전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다가 논에 들어서시여 잘 익은 벼이삭들을 만져보시면서 무슨 품종이며 비료를 얼마나 쳤는가를 알아보시였다.
군당책임일군으로부터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사를 잘 지은데 대하여 더없는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러신 그이께서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며 《여기로 오면서 보니 황해북도에 나무 한그루 없는 벌거숭이야산들이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나는 얼굴이 뜨거워오르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도안에는 나무가 없는 산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농업도라고 할수 있는 황해북도에서 농사를 잘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산과 들에 나무를 심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하게 관심을 돌리지 않았던것이다.
우리들의 이런 심정을 헤아려보신 그이께서는 동안을 두시였다가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황해북도에서는 전군중적운동으로 나무를 심어 벌거숭이산들을 하루빨리 없애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땅이 메마른 야산들에는 빨리 자라는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심는것이 좋다고, 아카시아나무를 심으면 벌을 놓아 꿀을 뜨고 잎은 집짐승먹이로 쓸수 있으며 땔나무와 부식토도 해결할수 있기때문에 좋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야산들에 아카시아나무를 심으면 좋은 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나서 아카시아나무는 씨를 뿌려도 되고 나무모를 길러 옮겨심어도 된다고 하시였다.
나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고서야 아카시아나무의 우월성과 재배방법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사실 나는 척박한 야산에는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러다보니 도안의 여러 군들에 벌거숭이산들이 많았지만 산림조성사업을 짜고들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참으로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황주군은 평양-개성사이의 도로를 끼고있기때문에 산에 나무를 더 많이 심어야 한다고, 아카시아나무림을 조성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모든 야산들에 아카시아나무가 우거지게 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전문 보기)
눈보라를 헤치시며 수천리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이어가신 현지지도의 길은 낮이나 밤이나 인민들을 마음속에 안고 걸으신 은혜로운 사랑의 길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민위천은 장군님의 한생의 좌우명이였습니다.》
어느해 겨울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강도를 찾으시였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네 도를 현지지도하고계신다는 소식에 접하고 어린애들처럼 기뻐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한켠으로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자강도 한끝에 있는 어느 한 광산의 광부들이였다.
그들은 어버이장군님을 일터에 모시는것을 더없는 소원으로 품어왔지만 광산으로 오는 길이 너무도 멀고 험한것으로 하여 자기들의 소망을 이룰수 없는 꿈으로만 여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아침 그들은 뜻밖의 일에 접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흰눈덮인 험한 령들을 넘어 광산을 찾으신것이였다.그날로 말하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평양으로 떠나신지 며칠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그런데 어쩌면 멀고 험한 여기까지 그리도 빨리 오실수 있단 말인가?!…
꿈 아닌 현실앞에서 광산사람들은 두눈을 비비고 또 비비였다.
자나깨나 뵙고싶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해빛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차에서 내리시는것을 뵈온 광산일군들은 《장군님! 이렇게 추운 날에 우리 광산로동계급을 찾아주시니 정말…》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광산지구에 들어서니 정신이 번쩍 든다고, 광산전경만 보아도 일군들과 로동자들이 많은 일을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일군들은 너무도 격동되여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오면 꼭 드리려고 했던 인사말도 미처 올리지 못하였다.그때 한 수행일군이 그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평양으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차를 돌려세우시여 이 머나먼 곳까지 오시였다고 알려주었다.
광산일군들의 가슴은 불덩이를 안은듯 달아올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격정에 싸인 광산일군들을 정답게 바라보시며 자신께서는 일을 많이 한 광산일군들과 로동계급이 보고싶어서 왔다고, 며칠전에 자강도에 왔다가 이 광산을 돌아보지 못하고 간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왔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광산이 조국의 최북단에 자리잡고있기때문에 한번 온다는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곳 로동계급이 기다릴것 같아 평양에서 다시 길을 돌려세워 왔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고맙습니다.우리가 도대체 뭐길래 그 멀고 험한 길을…》
광산의 일군들도, 동행한 일군들도 가슴을 들먹이였다.
무릇 인간은 정에 살며 그리움에 산다고 한다.하지만 나라의 령도자가 한 광산의 로동자들을 만나보시려 불같은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수천리 눈보라길을 되돌아온 이야기가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 새겨져있던가.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광산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이곳 로동계급의 영웅적위훈에 대하여 거듭 치하해주시고 친어버이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위대한 장군님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였다.그이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 눈물을 훔치며 따라서는 광산일군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시였다.(전문 보기)
우수한 민족전통을 빛내이시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민족유산보호에 관한 사상리론을 지도적지침으로 틀어쥐고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에는 민족의 유구성과 우수성, 고상한 정신세계와 고유한 생활세태가 반영되여있다.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고 대를 이어 전해오는 가치있는 창조물들과 미풍량속을 귀중히 여기고 시대적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정책이다.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철저히 구현하며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높이 발양시키기 위하여 민족문화와 예술, 민족풍습을 적극 장려하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와 뜨거운 인민사랑은 민속명절 정월대보름에도 깃들어있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고 하시면서 조선엿을 내놓으시였다.그러시고는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과 같은 명절놀이에서뿐아니라 로동생활, 문화생활, 의식주생활, 도덕생활 등에서 우수하고 훌륭한 민속전통을 창조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창조한 민속전통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귀중한 민족적유산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일군들은 비로소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신것이 단순히 정월대보름날이라는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였음을 깨닫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성을 튼튼히 지켜내고 잘 살려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생활에 맞지 않는것, 이색적인것 특히 부르죠아생활양식이 침습하는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이르시였다.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온 민속전통에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례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호와 특성이 반영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민속전통을 가지고있다는 높은 긍지를 간직하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특성을 더욱 빛내여나가야 한다.
민속을 버리면 민족을 잃어버릴수 있다. …
일군들이 받은 충격은 참으로 컸다.
민속이 단순히 한 민족의 세태나 풍속이 아니라 거기에 바로 민족의 숨결과 넋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고유한 풍습과 발자취가 어려있기에 민속, 그것이 없으면 민족도 없다는 우리 장군님의 뜻깊은 교시는 민속전통고수의 고귀한 지침으로 일군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세상을 둘러보면 민속을 경시하고 버린탓에 민족성이 여지없이 짓밟히우고 사라져 민족적전통이란 말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한 문화전통을 대를 이어 찬란히 꽃피우고있는것이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내놓으시였던 조선엿, 이 하나의 민족음식에도 얼마나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전문 보기)
조국의 푸른 숲은 숭고한 뜻 길이 전하리
식수절이 다가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새 조국건설을 령도하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모란봉에 오르시여 일제의 식민지통치로 상처입은 조국산천을 바라보시며 나무를 많이 심어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우거진 인민의 락원으로 전변시킬데 대한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신 때로부터 72돐이 되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면서 온 나라 천만군민은 올해에도 나무심기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을 하루빨리 황금산, 보물산으로 전변시킬 애국의 의지로 가슴 불태우고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후대들에게 벌거숭이산, 흙산을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10년안에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설레이는 보물산, 황금산으로 전변시키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이라고 하시면서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여야 하겠다고 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애국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천만군민이 산림복구전투에 산악같이 떨쳐나선 때로부터 어느덧 여러해가 되였다.
산림복구사업은 10년 앞을 내다보며 하여야 하는 장기적인 사업인것만큼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밀고나가야 한다고, 쟁개비끓듯 하여서는 산림복구사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없다고,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명언을 심장깊이 새기고 산림조성과 산림보호사업을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근기있게 밀고나가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에 아로새기고 전체 군대와 인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림으로써 국토의 면모는 크게 달라졌다.
그 나날 온 나라의 수림화, 원림화를 위한 투쟁을 진두지휘하시며 손수 나무들을 심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모습은 온 나라 천만군민의 가슴에 애국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리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뜨겁게 안겨온다.인민군대의 한 지휘부를 찾으시여 오늘은 해방직후 백두산3대장군들께서 몸소 모란봉에 오르시여 조국의 륭성발전과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식수사업의 첫 봉화를 지펴주신 력사적인 날인 동시에 우리 나라의 식수절이라고 하시면서 몸소 마련해가지고 오신 종비나무와 목련을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판과 어버이장군님의 현지지도표식비가 자리잡고있는 곳에 정성껏 심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날의 숭고한 모습이,
몇해전 중앙양묘장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오시였던 날을 감회깊이 회고하시며 중앙양묘장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푸른 숲 설레일 조국의 래일을 보는것만 같다고 그리도 기뻐하시던 장군님의 영상이 안겨온다고, 우리 장군님은 조국산천을 자신의 살점처럼 아끼고 사랑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라고 뜨겁게 뇌이신 우리 원수님이시다.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후복구건설시기 온 나라가 떨쳐나 재더미를 털고 일떠선것처럼 산림복구를 자연과의 전쟁으로 간주하고 전당, 전군, 전민이 총동원되여 산림복구전투를 벌리자고 절절하게 하시던 말씀 오늘도 조국강산에 메아리치는것만 같다.
중앙양묘장에 대한 현지지도이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강력한 산림복구전투지휘부를 조직해주시였으며 주체104(2015)년 2월 26일에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전당, 전군, 전민이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에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자》를 발표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로작에서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 10년안에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설레이는 보물산, 황금산으로 전변시키자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며 의지이라고 하시였다.(전문 보기)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는 은혜로운 사랑 -깊은 밤 수도의 거리를 달린 새형의 무궤도전차에 깃든 이야기-
지난 2월초 어느날 깊은 밤 수도의 거리로 한대의 무궤도전차가 전조등을 환히 켜고 달리기 시작하였다.시운전길에 나선 그 무궤도전차는 평양무궤도전차공장에서 생산한 새형의 무궤도전차였다.
무궤도전차의 고르로운 동음이 퍼져가는 밤거리는 고요하였다.집집의 창문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단잠에 들어있었다.
정녕 어느 누가 생각하였겠는가.바로 그 시각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새형의 무궤도전차를 타시고 거리를 달리실줄을!
평양무궤도전차공장에서 생산한 새형의 무궤도전차들로 말하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미 며칠전에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보아주신 차들이였다.
하지만 우리 원수님께서는 인민들이 리용할 무궤도전차에 미흡한 점이 있을세라 자신께서 타보아야 마음을 놓겠다고 하시며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늦은 밤 무궤도전차에 오르신것이였다.
더 좋은 무궤도전차를 더 많이 만들어 인민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문명한 교통조건을 마련해주시려 심혈을 기울이시는 우리 원수님의 로고의 자욱이 2월의 깊은 밤 수도의 거리에 소문없이 수놓아지고있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언제나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최우선 보장하고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것은 우리 당활동의 절대적기준입니다.》
천리마거리를 지난 새형의 무궤도전차는 보통문을 돌아 개선문쪽으로 향하였다.무궤도전차의 환한 불빛은 그대로 인민을 위해 꺼질줄 모르는 당중앙의 불빛과도 같았다.
경애하는 원수님께 있어서 인민사랑은 고결한 천품이다.무엇을 하나 보시고 대하시여도 먼저 인민들을 생각하시고 인민들의 문명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불철주야 로고를 바치시는 우리 원수님이시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진행된 새형의 무궤도전차시운전과정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단순한 시운전이 아니였다.인민에 대한 헌신적복무의 숭고한 모범, 위대한 귀감이 깊은 밤의 그 시운전길에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날 겉만 보아서는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수 없다고 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무궤도전차를 타고다닐 인민들의 립장에 서서 부족점이 없는가를 다같이 꼼꼼히 살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말그대로 인민들의 립장에 서시여 인민의 심정으로 타고가시면서 새형의 무궤도전차의 모든것에 대하여 세심히 관찰하시였다.
인민들에게 불편한 점이 하나라도 있을세라 의자너비도 가늠해보시고 차창의 가름대를 두고도 마음쓰시고 차안에 설치된 액정텔레비죤의 화면크기까지 알아보시며…
그러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수십년전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첫 무궤도전차의 시운전을 보아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다시 뵈옵는것 같아서였다.
그럴수록 며칠전 평양무궤도전차공장을 찾으시였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혁명사적물보존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1961년 10월 10일에 보아주신 이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천리마 911》형 무궤도전차가 전시되여있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던 일이 뜨겁게 되새겨졌다.
참으로 감동깊은 사연을 안고있는 우리 나라의 무궤도전차들이다.
주체50(1961)년 10월 10일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한 첫 무궤도전차의 시운전을 진행한 날이다.(전문 보기)
장군님과 맺은 정 영원하리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이 심장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
장군님과 맺은 정 피줄처럼 피줄처럼 지닌 마음
그 언제나 인민은 일편단심 당을 따라 일편단심
아 간직하리
…
위대한 장군님을 령도자로, 어버이로 모시고 따르며 걸어온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에 대한 성스러운 추억의 노래, 장군님을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시려는 충정의 노래인 《인민은 일편단심》,
부르면 부를수록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온 나라 천만군민이 그이의 전사, 제자로 자라난 나날을 사무치는 그리움속에 돌이켜보게 된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께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그이를 하늘처럼 믿고 살아왔다.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혁명의 머나먼 길을 헤쳐오는 그 나날에 우리 인민이 신념으로 간직하고 생명보다 귀중히 여긴것이 있다.
일편단심, 바로 그것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습니다.》
우리 인민의 일편단심은 곧 령도자와 맺은 혈연의 정이다.
인간관계는 인정관계라는 말이 있다.혈연의 정으로 맺어진 령도자와 인민간의 관계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뜨거운 관계이다.
피줄을 가를수 없고 부모와 자식간의 정을 끊을수 없듯이 그 무엇으로도 가를수 없고 깨뜨릴수도 없는것이 위대한 장군님과 우리 인민들사이에 맺어진 정이다.
이 땅에 생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중히 간직하고있고 목숨바쳐 지켜가는 그 뜨거운 혈연의 정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베풀어주신 육친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은 이민위천의 한생, 인민사랑의 한생이였다.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이라는 두 글자가 꽉 차있었으며 인민이 바란다면 하늘의 별도 따오고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것이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신 인민사랑의 뜻이고 의지였다.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펼치면 바다가 되고 쌓으면 하늘에 닿을 우리 장군님의 한생의 업적을 합치면 인민뿐이다.
한평생 인민을 마음속에 안고계신 우리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려볼 때면 어느해 양력설날이 떠오른다.
그날 아침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디엔가 금방 다녀오신듯 한 차림을 하고계시였다.
자신의 차림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마다 양력설이 되면 우리 인민들이 명절을 어떻게 쇠고있는지 생각이 많아지군 한다고, 일군들이 명절공급도 잘되고 명절을 즐겁게 보낼수 있도록 조직사업이 다 잘되였다고 보고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지금 시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나직한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마디마디에 넘치는 열화같은 애민의 정이 일군들모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식탁을 마주하시였다.
명절날이였지만 식탁에 오른 음식은 너무도 수수하고 소박하였다.
남새와 산나물을 꾸미로 얹은 강냉이국수…
일군들은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머리를 숙이였다.(전문 보기)
노래 《인민은 일편단심》
주체시대를 빛내이시며 : 우리의것이 제일이라고 하시며
김 종 집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위인적풍모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서는 이미 출판물이나 방송을 통하여 수많이 소개되여 세상이 다 알고있습니다.하지만 저는 지난해 9월 우리 공장을 몸소 찾아오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몸가까이 만나뵙고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으며 심장으로 느낀 몇가지 사실만은 꼭 사람들에게 알리고싶어 펜을 들게 되였습니다.
주체88(1999)년 9월 23일이였습니다.
한낮무렵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곧 우리 6월1일청년전기기구종합공장을 찾아주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온 공장에 전해졌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여러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셨다는 소식에 접할 때마다 우리 공장에도 그이를 모셨으면 하고 간절히 소원하던 우리들이였지만 영광의 그 시각이 정말로 이렇게 올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황황히 정문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오후 1시 30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우리 공장 수자조종장치 수자분공장 함조립직장현관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중나온 도당의 책임일군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나의 손도 따뜻이 잡아주시였습니다.
《지배인동무입니까.수고합니다.》
잠시후 나에게서 공장의 실태를 초보적으로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서 공장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조립직장안으로 걸음을 옮기시였습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립직장을 환하게 꾸리고 조립대도 군대식으로 전개했다고 못내 기뻐하시였습니다.
이어 조립대앞에 다가가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립중에 있는 제품들을 료해하시였습니다.
먼저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가정용전압조절기》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시며 이렇게 절체기를 두개 달아 부하를 절반씩 감소시키면 과저전압의 《침입》을 받아도 텔레비죤이나 랭동기들이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을것이라고 웃음담아 말씀하시였습니다.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찌나 통속적으로 소탈하게 말씀하시는지 나는 어느새 긴장해졌던 마음이 스스로 풀리는것을 느꼈습니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한 전기제품을 가리키시며 이건 처음 보는건데 어디에 쓰자고 만들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그이께서 물으시는 제품으로 말하면 《비상전원안전기》라는 전기용품이였는데 이것은 정전이 되는 경우 여기에 충전되였던 직류전원이 교류(220V)로 다시 변환되여 하던 작업을 원만하게 할수 있게 하는 사명을 수행하고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료해하고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습니다.
《〈비상전원안전기〉를 공장자체로 연구하여 만들었다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것 같습니다.
병원수술장들에서 수술을 하는 도중에 정전이 되는 경우 이런 〈비상전원안전기〉가 있으면 수술을 계속할수 있을것입니다.모사전송기나 콤퓨터를 쓰는 단위들에도 이런것을 만들어주면 좋을것입니다.》
이어 외국에서 생산된다는 이 제품의 지속시간(불이 간 후 220V로 다시 방전되는 시간)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면 우리의것이 더 우월하지 않은가고, 비록 외형이 수입제처럼 매끈하지는 못해도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시며 더욱 기뻐하시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이께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두고 왜 그렇듯 기뻐하시는지 그 뜻을 다는 알수 없었습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