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부활에로 끊임없이 질주해온 일본의 행적(2) 조선전쟁을 호경기로 삼고
일본군국주의가 패망하면서 그의 경제적기초는 여지없이 황페화되였다.
1945년 11월 공업생산량은 전시 최고수준의 9%로 떨어졌다.일반국민들의 생활형편은 극도의 령락상태에 놓이게 되였다.
당시 미제는 일본군국주의를 재생, 재무장시켜 그를 아시아침략의 돌격대, 길잡이로 써먹을것을 계획하였다.
미국은 각이한 방법으로 일본군수산업의 생산토대를 보존하였으며 그 복구확장을 위하여 적지 않은 액수의 자금을 투자하였다.
그리하여 일본독점자본은 1940년대말에는 기간공업부문을 발판으로 다시 일떠서게 되였다.
일본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위한 물질적토대를 야금야금 쌓아나갔다.
특히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으로 하여 일본의 군수산업은 패망전의 수준을 훨씬 릉가하는 단계에로 올라설수 있게 되였다.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정부는 구일본군무력을 적극적으로 참전시켰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전쟁개시 한달후 벌써 조선에 파견되여 미군과 함께 군사작전에 참가한 일본군인은 약 2만 5 000명이나 된다고 폭로하였다.
이밖에도 후방에서 미군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에 종사한 일본청장년들은 20여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자국령토를 미군의 병참기지, 보급기지, 수리기지로 내맡겼다.
미제가 조선전선에로의 출동을 위하여 일본에서 리용한 기지시설들은 1953년 1월현재 220개의 병영과 44개의 비행장, 30개의 항만, 79개의 련습장, 116개의 통신시설 등 모두 730여개나 되였다고 한다.
1950년 7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일본은 조선전쟁에 248척의 선박을 동원하여 근 100만t의 미군수물자를 수송하였다.
일본은 미국의 병기창노릇도 하였다.무기, 탄약을 공급해주고 파괴된 무기와 전투기재들을 수리해주어 미군의 군사작전을 적극 보장해주었다.
조선전쟁 전 기간 일본의 군수공장들이 미제의 《특수주문》을 받고 미군에 공급한 군용자동차, 장갑차, 비행기, 저격무기 등과 의료품, 식료품의 총량은 무려 23억~24억US$분에 달하였다.
미국의 한 신문이 폭로한데 의하면 조선전쟁개시후 1년동안에 조선에서 파괴된 자동차의 84%, 땅크의 38%, 각종 포의 68%, 저격무기의 70%가 일본의 공장들에서 수리되였다.
일본은 조선전쟁기간 우리 인민의 피의 대가로 막대한 전쟁리윤을 얻었고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고도경제성장의 재정적기초를 마련할수 있었다.
조선전쟁 첫해에 일본의 3대강철회사가 그 전해의 20여배, 3대광업회사가 무려 100배이상에 달하는 리윤을 올린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수백개 기업체들의 리윤률은 1950년 상반년에 18.3%였던것이 하반년에는 70.3%로 급격히 증가되였다.
도요다자동차회사는 미군의 군용자동차주문으로 거의 3억¥을 벌어 파산의 위기를 모면하고 일본의 5대자동차독점체의 대렬에 들어설수 있었다.
일본경제의 전반이 군수생산에 집중되였다.
제강업, 조선업 등 기간공업부문의 업체들이 군수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고 농업부문은 군량생산을, 운수부문은 군수물자와 병력의 수송을 각각 보장하는 등의 과정을 통하여 경제전반이 군수의존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확대되였다.
하기에 일본의 대독점자본가들은 미제가 조선전쟁을 도발하자 《신이 내려준 행운》, 《하늘의 도움》이라고 환성을 올리였던것이다.
일본은 조선전쟁기간 침략무력을 들이밀고 미제의 《특수주문》을 받아 무기와 군사장비들을 생산보장해줌으로써 조선인민앞에 또다시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으며 막대한 돈벌이를 하고 군국주의부활, 재무장의 물질적토대를 강화할수 있었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