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용사들이 남긴 충성과 애국의 교본
공화국기발을 피로 지킨 전승세대의 넋을 영원히 안고 살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국보로 보존되여있는 근 200개의 공화국기발에 깃든 사연들을 취재하는 과정에 우리는 지금껏 잘 모르고있었던 뜻밖의 사실에 주목을 돌리게 되였다.
기폭에 글자들이 씌여져있는 기발들이 있었던것이다.그런 기발은 3개나 되였다.그중 하나의 기발에는 한참이나 옮겨베껴야 할 장문의 글이 있었다.
전화의 공화국기에 새겨져있는 글발들!
후손들이 교과서로 삼을 그 고귀한 유산들가운데 글발을 새긴 국기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70여년세월의 흐름으로 하여 어떤 글자들은 알아볼수 없는것도 적지 않았지만 하나로 관통되여있는 사상과 감정만은 우리의 가슴속에 전승세대의 영원한 목소리로 력력히 안겨왔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1950년대 영웅전사들은 정신력이 강하면 원자탄을 휘두르는 제국주의침략군대도 능히 타승할수 있다는것을 실전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붉은 기폭에 글발이 꽉 채워져있는 국기의 주인공은 조국해방전쟁시기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 5보병련대 포병으로 싸웠다고 력사기록에 남아있다.
국기의 글발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일생 나의 기념 공화국기
1949년 5월 15일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지내온 경로…
…학생으로 인민군대 입대하여 라남시에서 근무하다가 49년 평양으로 이동하여 이 국기를 평천리에서 …싸가지고 49년 …에 참가한 후 영화촬영되였으며…》
짤막짤막하지만 입대후부터 전쟁전까지 이 국기와 주인공과의 인연이 어떻게 맺어졌고 깊어졌는가를 생동하게 알수 있게 하는 글발들이였다.성스러운 공화국기와 함께 군사복무를 시작한 조선인민군의 첫 세대 병사들의 정신세계가 화폭처럼 안겨왔다.
국기의 다음글발들은 조국해방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새겨진 로병의 발자취를 따라 엮어졌다.
《1950.6.25 아침 …신호탄 5 즉 조국해방전쟁 첫날 첫시부터 참가하여 …림진강지나 동두천, 의정부, 서울…
6.28 서울시에 11시 입성하여 …한강동뚝에 포배치하여 사격하다 7.1 손가락 부상당하여 경상.》
《한강넘어… 7.12 허리 부상당하면서 공주, 대전시를… 해방시키고… 락동강전투에 참가하였다.》
로병이 복무한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은 조국해방전쟁시기 혁혁한 무공으로 명성떨친 우리 군대의 주력사단들중의 하나였다.
전쟁 첫날부터 최고사령부의 작전도에 그어진 붉은 화살의 선봉에서 용맹하게 싸운 근위사단의 전투경로, 승전기록이 씌여진 국기에서 우리는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에서 휘날리고있던 공화국기는 결코 이 기발만이 아니였다.그 하나하나의 기발들에는 무훈과 승전의 영광만이 찍혀진것이였던가.
이 유명한 사단은 조국해방전쟁사에 《피에 젖은 기발》이라는 사연깊은 국기를 남긴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추억속에 더 깊이 자리잡고있다.
로병의 국기도 그런 《피에 젖은 기발》들중의 하나였다.
《… 소백산맥 타서 소백산 넘어 태백산맥으로 태백산 넘어 오대산 지나 금강산에까지 적후활동하다가 평양에서 락동강전투원들을…
1953.7.27 정전과 함께 강원도 …고지에 휘날린 국기다.
실로 나의 일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전승세대의 전쟁 3년간이 함축되여있는 력사의 기록이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학술연구부에 있는 자료에 의하면 로병은 전쟁초기부터 이 공화국기를 매 전투마다에서 휘날려 전우들을 고무했으며 수차 부상을 당했으나 이 기발만은 가슴속깊이 간직하고있었다고 한다.기발은 1961년 8월 20일 수집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이것은 결코 한 조국해방전쟁참전자의 전투기록으로만 볼수 없다.그것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관철의 제일선두에서 가장 용감무쌍히 싸운 근위사단장병들의 정신세계, 위대한 수령님과 공화국을 위하여 피도 목숨도 기꺼이 바쳐 기어이 전승을 안아온 인민군장병들모두의 숭고하고 고결한 애국심에 대한 기록이였다.
전화의 나날 우리 인민군용사들은 이렇게 국기를 사랑하였다.신성하고 존엄높은 국기에는 오직 진리와 정의의 목소리, 빛나는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겨야 한다는것이 국기를 대하는 전승세대의 자세와 립장이였다.
또 다른 한폭의 국기에는 길지 않지만 메아리가 큰 글발이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영주군내무서 회의실에 걸고.
… 1950.9.26 이 기발을 품고 북으로》
이 국기의 주인공에 대한 자료는 없다.다만 명백한것은 내무원이 분명한 기발의 주인공이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 신념의 려정을 꿋꿋이 걸어왔다는것이다.
《이 기발을 품고 북으로》,
얼마나 굳센 신념과 열렬한 애국심이 차넘치는 글발인가.
이 기발의 주인공처럼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준엄했던 시련의 시기에 우리의 전승세대들은 신념의 표대인 공화국기발을 휘날리며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기어이 찾아왔다.
후대들이 따라배워야 할 그 백절불굴의 신념을 다름아닌 국기에 또박또박 새겨넣은 글발앞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시선을 뗄수가 없었다.
비록 길지 않은 해방후 5년간의 생활이였지만 그들은 국기의 귀중함을 얼마나 뼈저리게 새기고있었는가.
공화국기발은 곧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품이고 수령님만 계시면 우리 공화국도 있고 전승도 있다는 진리를 교양으로가 아니라 삶의 본능으로, 확고한 신념으로 받아들인 전승세대의 투철한 애국관, 조국관앞에서 우리는 머리를 숙였다.
공화국영웅홀에도 글발이 씌여진 공화국기가 전시되여있다.조국해방전쟁사에 특기할 페지를 아로새긴 가칠봉전투, 351고지전투를 비롯한 25차의 전투에서 휘날렸던 국기이다.
많은 글자들이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졌지만 마지막 다섯 글자만은 또렷하게 안겨온다.
《…길이 빛나리》,
이 다섯 글자에 전승세대가 후손들에게 전승의 국기를 물려주며 하고싶은 모든 말이 다 담겨져있다.
오늘날 우리 인민들과 군인들이 사랑하는 노래,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비적명곡인 노래 《우리의 국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지켜온 기발 대를 이어 지켜지리》,
이 뜻깊은 구절을 노래의 가사로만 대할수 없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영원불멸할 국보로 전시되여있는 전승의 국기들에 씌여져있는 글발들의 메아리이다.성스러운 공화국기발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그 기폭에 무엇을 새겨야 하는가를 끝없이 가르쳐주는 전승세대의 목소리이다.
전화의 용사들이 피로 적시고 신념으로 글발을 새겨 공화국의 후손만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국기들은 충성과 애국의 산 교과서가 되여 우리를 가르치고있다.
공화국의 운명이 판가리되던 준엄한 전쟁의 나날에 국기를 승리와 영광으로 떠올린 그때처럼 우리의 공화국기발을 가장 순결하고 가장 열렬한 애국의 피땀으로 물들이라고, 창공높이 휘날리는 강국의 국기에 자기의 애국의 발자취를 긍지높이 아로새기라고.(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