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가에서 다지신 맹세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펼치고
위대한 수령님은 일찌기 애국의 큰뜻을 품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혁명의 길에 나서신 만고절세의 영웅, 불세출의 위인이시다.
력사는 아직까지 10대에 나라찾을 큰뜻을 품으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위한 투쟁에 나서시여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 위인을 알지 못하고있다.
오늘도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큰뜻을 안으시고 걸으신 력사의 천리길을 뜨거운 격정속에 새겨보며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참다운 삶과 행복 그리고 끝없이 번영할 조국의 휘황찬란한 미래가 절세의 위인의 불멸할 그 자욱과 잇닿아있음을 가슴깊이 절감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 인간이 당할수 있는 모진 슬픔과 괴로움을 다 겪으시면서도 오직 혁명만을 생각하시였으며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우리 숭엄해지는 마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펼치고 그이께서 걸으신 잊지 못할 천리길우에 어려있는 만단사연들을 다시금 새겨본다.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1923년 3월 팔도구를 떠나 조국으로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덕학교 5학년에 편입되여 공부하시였다.
이렇게 두해를 보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덕학교졸업을 몇달 앞둔 어느날 외할아버님으로부터 김형직선생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와 사생결단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시며 팔도구로 떠날 차비를 하시였다.
1925년 1월 22일 만경대를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사흘째 되는 날 저녁 포평의 이름없는 한 나루터에 도착하시였다.하지만 선뜻 압록강을 건느지 못하시였다.
팔도구로 건너가시자니 지나온 조국산천이 자꾸만 눈에 밟혀오시였다.
그때의 심정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자신께서 고향을 떠날 때 사립문밖까지 따라나오면서 자신의 손을 쓸어주고 옷깃을 여며주고 눈보라를 걱정해주며 눈물짓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발걸음을 옮길수가 없었다고 쓰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그날의 심중을 우리 어찌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조국에서 보내신 세월은 비록 두해밖에 안되였으나 그 기간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많은것을 체험하시였다.
이에 대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조국에서 보낸 세월은 비록 두해밖에 안되였으나 그 기간에 나는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였다.
가장 귀중한 체험은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를 깊이 리해하게 된것이였다.우리 인민은 소박하고 근면하면서도 용감하고 강의한 인민이였다.어떤 곤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억센 인민, 례절이 바르고 인정이 풍부하면서도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비타협적인 인민이였다.민족개량주의자들은 연정회의 간판을 가지고 반동적인 〈자치〉운동을 벌리고있었으나 로동자와 농민, 청년학생들을 포함한 광범한 인민대중은 피를 흘리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고있었다.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 어떤 힘으로써도 훼손시킬수 없는 민족의 존엄과 강철같은 독립의지를 뜨겁게 감수하였다.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인민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인민을 잘 조직동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라를 찾을수 있으리라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뚝우에 나딩구는 조약돌 하나를 집어드시고 소중히 감싸쥐시였다.
조국의 표적이 될수 있고 조국을 추억할수 있게 하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지고가시여 소중히 간수하고싶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며 천천히 강건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북받치는 설음과 비분을 안으시고 조국산천을 돌아보시기를 그 몇번,
조선아, 조선아, 나는 너를 떠난다, 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 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 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 조선아, 나를 기다려다오라고 마음속으로 뇌이시며 한걸음 또 한걸음에 천만근의 무게를 실으시던 위대한 수령님.
진정 그 한걸음한걸음은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 조국의 모든것을 자신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조국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숭고한 책임감이 없이는 새길수 없는 력사의 자욱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압록강을 건느시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였다.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진 위대한 혁명가, 만고절세의 애국자만이 다질수 있는 철석의 맹세였다.
그날에 다지신 숭고한 애국의 맹세를 안으시고 항일의 혈전만리, 눈보라만리를 헤치시며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이 땅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이시다.
압록강가에서 다지신 그날의 맹세가 심중에서 떠난적 없으시였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건국의 초행길과 전화의 불길만리, 전설속의 천리마를 불러온 기적의 수천수만리도 애국의 크나큰 뜻으로 수놓아오시였다.
진정 위대한 애국의 신념을 안으시고 혁명의 머나먼 길을 헤쳐오신 우리 수령님의 고귀한 헌신과 불멸의 업적을 떠나 년대와 년대를 이어 높이 떨쳐진 사회주의조국의 존엄과 위용에 대하여, 우리 인민의 긍지높고 보람찬 생활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오늘도 우리 인민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구절구절을 다시금 새기며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분을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살아왔는가를 더욱 절감하고있으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 이 땅에 우리 수령님께서 바라시던 사회주의강국을 하루빨리 일떠세울 맹세를 다시금 굳게 다지고있다.(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