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주머니〉 《돌절구》
어떤 낯선 길손 하나가 허둥지둥 정신없이 원앞으로 달려와 푹 엎드리더니 흑흑 흐느껴울었다.
《사또님, 소인의 억울한 일을 밝혀주십시오.》
원은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온 식솔의 명줄이 달린 재산을 몽땅 잃었소이다. 소인은 연안에 사는 소장사이온데 오늘 이 마을 장에 와서 소 다섯마리를 돈 백냥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가다가 이 장터 뒤골목에 있는 술집에 들어가 돈짐을 그 집마당에 놓여있는 돌절구우에 놓고 들어가 술 한잔을 사먹었습니다. 그때 손님은 저혼자뿐이였는데 나와보니 돈짐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술집주인의 작간이 틀림없으니 사또님, 찾아주십시오. 그 돈은 우리 집 전재산이옵니다.》
소장사는 절망에 차서 말하였다.
원은 곧 술집주인을 불렀다.
《네가 술집주인이냐?》
《네, 그렇소이다.》
《이 사람이 너의 집에서 술먹은 일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너의 집에 들어올 때 무엇을 지고온것이 있었지?》
《네, 무엇인지 한짐 지고 들어왔소이다.》
《그것을 져다가 어디다 놓더냐?》
《마당에 놓인 절구통우에 놓았습니다.》
《너 똑똑히 보았구나. 그럼 이 사람이 너의 집에 술먹으러 들어간 후에 누가 지나간 사람이 있었느냐?》
《그건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네가 주인이면서 모른단 말이 웬말이냐?》
《제 눈으로는 지나간 사람을 못봤습니다.》
원은 돈도적이 분명하나 시치미를 뚝 떼는 술집주인이 괘씸하여 혼내여줄 방도를 생각하다가 꾀를 하나 생각해냈다.
《허,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는데 그 돈이 없어졌다니 그러면 그 돈은 분명 그 절구가 먹었나보다.》
원은 모른척 하며 말했다.
《사또님, 돌절구가 어떻게 돈짐을 먹겠습니까?》
술집주인은 엉겁결에 한마디하였다.
《집어간 사람도 없이 돈이 없어졌으니 절구가 먹었지 누가 먹었겠느냐. 그 절구를 집에 두었다가는 앞으로도 너의 집에 술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의 돈은 다 집어먹을것이다. 그런데 네가 그 절구의 주인이니 그런 못된 절구를 집에 둔 죄로 네가 좀 고생을 해야겠다. 그 절구를 네 등으로 져다가 멀리 상주에 가져다 버려라.》
술집주인은 원의 말에 기가 막혔다.
《그렇게 무거운 돌절구를 저혼자 질수도 없거니와 여기서 900리나 되는 멀고 먼 상주로 어떻게 날라갑니까. 차라리 소인이 그 돈을 물겠습니다.》
《오냐, 그렇다면 그 절구를 상주에 버리는것은 그만두고 앞으로도 그 절구가 돈을 집어먹지 못하게 땅을 파고 묻어라.》
술집주인은 꼼짝 못하고 집에서 돈백냥을 져다 바쳤고 울며 겨자먹기로 절구도 더는 쓰지 못하게 되였다. 원은 돈을 소장사에게 돌려주었고 술집주인의 나쁜 버릇이 떨어질 때까지 돌절구도 파내지 못하게 하였다.
〈작자소개〉박혜영, 최명남(편)
〈출전〉《너도 나도 하하하(1)》의 《익살군》(01년 조선출판물교류협회 발간)에 수록.
(조선신보 2007/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