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강을 보배강, 전기강으로 전변시킨 위훈의 창조자들 -함흥청년1호발전소를 일떠세운 함경남도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의 투쟁-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높이 받들고 함경남도안의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이 금진강에 만년대계의 창조물인 함흥청년1호발전소를 일떠세웠다.
산을 통채로 옮겨놓은듯 한 발전소언제와 독특한 형식의 무넘이언제…
볼수록 장관이다.모든것이 어렵고 부족한 속에서 이처럼 방대한 공사를 해제낀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함경남도를 현지지도하시는 길에서 금진강에 함흥청년1호발전소와 함흥청년2호발전소를 건설하여 함흥시의 전기문제를 풀데 대한 교시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현실로 꽃피우기 위해 함흥청년1호발전소형성안을 몸소 지도하여주시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높이 받들고 도안의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함흥청년1호발전소건설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함흥청년1호발전소건설은 자연의 엄혹한 도전을 물리쳐야 하는 어렵고 방대한 공사였다.
도안의 일군들과 돌격대원들은 발전소를 일떠세워 긴장한 전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리였다.
사석언제, 방수로, 여수로, 무넘이언제, 물길굴공사장 어디서나 자연과의 치렬한 격전이 벌어졌다.
삼복철무더위와 령하 20℃를 오르내리는 혹한속에서도 돌격대원들은 청년돌격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해나갔다.
무넘이언제공사의 첫시작은 돌격대원들이 지닌 불굴의 신념을 검증하는 마당과도 같았다.무넘이언제를 건설하자면 옆에 있는 야산을 통채로 들어내야 했던것이다.그런데 작업환경이 불리하여 륜전기재들을 제대로 리용할수가 없었다.난관앞에 주저하면 전반적인 발전소건설공사에 부정적영향을 미칠수 있었다.
모두의 얼굴마다에 초조한 빛이 어리였던 그 시각 각 대대지휘관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협의회에서는 어떤 불같은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던가.
《륜전기재를 댈수 없다고 물러서겠는가.동무들, 전화의 용사들처럼 돌격로를 열어나가자.》, 《우리 대대에 가장 어려운 대상을 맡겨달라.그러면 저 야산을 통채로 떠옮기겠다.》
협의회소식은 삽시에 온 건설장에 퍼져갔다.뒤이어 돌격대원들의 불같은 맹세가 담긴 웨침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결사전으로 난관을 강행돌파하자는것이였다.
단 25일동안에 해제껴야 할 절토량은 종전의 3배이상, 발전소건설에 진입하여 기록된 가장 높은 실적과 대비해보아도 2배이상이나 되였다.
무넘이언제기초공사의 성과적보장을 좌우하는 절토공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각 대대별로 작업과제가 분담된 가운데 손달구지와 맞들이, 마대 등 흙과 돌을 나를수 있는 수단들이 총동원되였다.
다음날 아침 선전선동력량과 기재들이 작업장에 집중되고 돌격대의 모든 지휘관들이 자기 단위의 제일 어렵고 힘든 모퉁이들을 맡아나섰다.
절토작업장은 격전장으로 변하였다.
먼저 굴착기를 비롯한 중기계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자동차들이 다닐수 있게 림시도로를 개척해나갔다.그뒤를 따라 만짐을 적재한 자동차들이 달리고 또 달리였지만 이것으로 성차할 돌격대원들이 아니였다.그들은 손달구지와 맞들이전을 들이대였고 경사급한 구간에서는 무거운 마대들을 어깨에 메고 가파로운 비탈길을 하루에도 수십차례나 오르내렸다.
추운 겨울 땀으로 온몸을 적시며 수굴작업장에서 하루에 함마 1 000번 치기가 진행될 때 토량처리장에서는 결사전에 나선 돌격대원들이 돌마대를 등에 지고 걸은것이 아니라 뛰였다.이들이 달린 거리를 계산하면 하루에 90여리, 최고 100리였다.
체험자가 아니라면 이들이 그 무거운 돌마대를 등에 지고 하루에 그렇게 긴 거리를 달렸다는 말을 쉬이 믿지 않을것이다.몸이 지쳐 쓰러질 때도 있었지만 누구도 마대의 무게를 줄이는것이 아니라 《한삽만 더》라고 하면서 깨끗한 량심을 바치였다.
신포시대대의 처녀돌격대원들은 손달구지에 담은 버럭을 하루에 400번이나 날랐고 리원군대대의 맞들이조는 하루에 4 000회를 달렸다.
《솔직히 힘들었습니다.하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것은 아무리 날라도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은것입니다.남보다 큼직한 돌을 등에 지고 나르겠다고 이악을 부리는 우리를 지휘관동지들은 만류했습니다.그래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