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조일관계/朝日関係’ Category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 일본반동들의 민족차별행위에 강력히 항의

주체109(2020)년 3월 14일 로동신문

 

총련 사이다마현본부 위원장 신민호를 비롯한 본부, 지부일군들,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 유치반 원장과 교직원들, 학교 교육회리사들과 보호자들,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회장과 사무국장, 변호사를 비롯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일본 사이다마시당국의 무례무도한 민족차별행위를 규탄하는 투쟁을 벌리고있다.

그들은 11일 항의단을 무어 사이다마시역소앞에서 강력한 항의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시당국이 시내 유치원, 보육원에 대한 마스크배포를 결정하면서 《조선유치반이 시의 지도감독시설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리유》로 그 대상에서 제외시킨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이것은 《인권적으로도 인도적으로도 도저히 간과 못하는 만행》이라고 단죄규탄하였다.

그들은 사이다마시당국이 부당천만한 조치를 철회하고 시급히 조선학교 유치반을 마스크공급대상에 포함시켜야 할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조선학교 유치반 원장은 《시의 조치는 우리 재일조선인들의 존엄을 심히 훼손하는 행위이며 본질적으로 마스크 몇장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다.》고 항의하였다.

4시간에 걸치는 완강한 투쟁으로 시당국의 관리는 제출된 항의문을 《검토하겠다.》고 하였으며 배포된 마스크의 《전매》가 우려된다는 망언을 한 담당직원이 사죄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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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반동들의 유치하고 졸렬한 조선인차별행위

주체109(2020)년 3월 13일 로동신문

 

일본 사이다마시당국이 10일 시안의 로인료양시설, 보육원, 유치원 등에 신형코로나비루스감염방지를 위한 마스크를 공급하면서 사이다마조선초중급학교의 유치반만은 제외시켰다 한다.

격분스러운것은 사이다마시당국이 《조선유치반은 해당되지 않는다.》, 배포한 마스크가 《전매될수도 있다.》고 떠벌인것이다.

이러한 차별행위는 사이다마시뿐아니라 일본 각지에서 벌어지고있다.

이에 대해 일본시민들도 국가와 지방자치체가 결탁하여 생명과 건강문제에서까지 조선사람들을 차별하고있다고 비난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조선학교 유치반을 《유아교육, 보육무상화》제도적용에서 제외시킨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전세계를 휩쓸고있는 전염병을 막기 위한 마스크공급대상에서까지 배제시키는 치졸한 망동을 부리고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 대변인담화

주체109(2020)년 3월 10일 로동신문

 

일본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의 불길속에서 미군에 의한 도꾜대공습으로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때로부터 75년이 흘렀다.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무력으로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중일전쟁발발이후만 하여도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하여 침략전쟁터들과 죽음의 고역장들에서 총알받이와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일본 도꾜에 끌려간 조선사람들 역시 정든 고향, 사랑하는 부모형제들과 생리별하고 사람 못살 곳에서, 군수공장과 공사장들에서 가혹한 노예로동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였던 강제련행, 강제로동의 피해자들이였다.

1945년 3월 10일 고역과 학대, 기아와 병마에 쓰러지던 조선사람들은 미군의 무차별폭격속에서 무리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악독한 일제는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 위험하고 고된 로동에 항거하는 조선사람들이 공습의 혼란된 틈을 타서 도망칠수 있다고 하면서 《함바》들에 가두어넣고 오도가도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1만여명이 무참히 희생되고 수만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이것은 전적으로 일제의 조선에 대한 군사적강점과 조선인강제련행만행에 기인된것으로서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우리는 일제의 천인공노할 반인륜적범죄들을 절대로 잊을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패전후 75년이 되도록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유골을 모두 찾아 보낼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자국민의 피해에 대해서만 떠들어대면서 조선인희생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축소, 은페하기 위해 오그랑수를 쓰고있다.

뿐만아니라 살아서 못가면 죽은 뒤에라도 고향땅에 묻어달라는 피타는 절규를 남긴채 눈도 감지 못하고 떠나간 강제련행희생자들의 넋이 깃든 유골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함부로 처리하였는가 하면 선친의 유골이나마 찾아보려는 우리 유가족들의 효도의 길마저 비렬한 방법으로 가로막고있다.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각지에 세워진 력사의 증거물인 조선인강제련행희생자추도비를 없애버리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으며 올해초에는 강제련행피해자들의 직접적인 후손들인 재일조선인들을 모조리 학살하겠다는 망발이 찍힌 《년하장》까지 내돌려 사람들의 경악을 자아냈다.

일본당국과 우익반동들의 이러한 처사의 리면에는 범죄의 증거물을 없애버림으로써 조선인강제련행범죄와 희생자들의 유골문제를 유야무야하고 침략력사를 미화하며 나아가서 과거의 반인륜적범죄에 대한 배상의무를 털어버리려는 속심이 깔려있다.

우리는 조선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비참하고 억울한 희생을 강요하고서도 그에 대한 털끝만 한 죄의식도 없이 력사의 진실을 외곡은페하며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 칼질을 하고있는 일본당국과 우익반동들의 망동에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하면서 이를 준렬히 단죄규탄한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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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감행한 치떨리는 대중적학살만행

주체109(2020)년 3월 9일 로동신문

 

일제의 야만적인 무단통치하에서 온갖 수모와 학대를 받으며 살아오던 우리 민족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는 1919년 3월 1일 전민족적인 반일항쟁으로 폭발하였다.봉기자들은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 만세!》의 구호를 힘차게 웨치며 일제군경의 총칼탄압에 굴함없이 맞서싸웠다.대중적인 시위투쟁은 료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타번졌다.

전국적범위에서 반일항쟁이 벌어지는데 당황망조한 일제는 그것을 교살하기 위하여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일본반동정부는 3월 7일 조선주둔군우두머리에게 무력에 의한 단호한 대책으로 사태를 수습할것을 명령하였다.조선총독 하세가와에게는 밖으로는 대단치 않은 사건처럼 묘사하여 세계여론을 기만하는 동시에 안으로는 반일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라는 비밀지령을 주었다.

일제는 룡산, 라남주둔 2개 사단의 무력과 헌병, 경찰을 총동원하는것으로도 부족하여 본토에서 보병 6개 대대와 헌병 400명을 더 끌어들여 전국도처에 배치하였다.또한 조선총독부의 《제령》 7호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을 비롯한 악법들을 조작하고 모든 권력기구와 폭력수단들을 총동원하여 3.1인민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미쳐날뛰였다.

일제가 감행한 3.1인민봉기 탄압만행의 야수성은 대구참살사건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경상북도 대구에서는 3월 8일부터 수만명의 학생들과 애국적인민들이 일제를 반대하여 시위에 떨쳐나섰다.

일제침략자들은 그들에게 총탄을 마구 퍼부어 학살하였다.그리고 시체를 거두려는 유가족들에게까지 총칼을 휘두르며 폭행을 가하는 반인륜적인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한다고 하여 의사들과 부상자들의 가족을 체포해갔다.일제경찰이 마구 잡아가두고 야수적으로 고문학살한 사람들은 또 그 얼마인지 모른다.

그가운데는 김용해청년과 시위조직자의 한사람인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

일제경찰은 《독립선언서》를 랑독하는 김용해청년에게 달려들어 일본도로 사정없이 찔러 피투성이로 만들었다.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그와 아버지를 체포하여 혹독한 고문을 들이대던 끝에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일제의 극악한 살인만행에 의하여 대구에서 130여명의 사람들이 참살당하였다.80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수백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감옥으로 끌려갔다.

대구에서뿐이 아니였다.3.1인민봉기초기에 평안남도 맹산에서 일제헌병들은 수많은 시위참가자들을 체포구금하였다.이에 격분한 시위자들이 헌병주재소로 밀려가 체포구금한 사람들을 당장 내놓으라고 들이대자 일제교형리들은 그들에게 마구 사격을 가하여 60여명을 무참히 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서는 무고한 주민들을 교회당에 모이게 해놓고는 교회당건물에 석유를 뿌린 다음 불을 질렀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에게 기관총사격을 가하여 마구 죽이였다.3월 하순 평안북도 정주에서는 5 000여명의 평화적시위대렬에 집중사격을 가하여 120명의 사상자를 냈다.

3.1인민봉기의 전기간 일제살인귀들은 1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학살하였다.또한 전국도처에서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켜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의 기간에 국내에서만도 약 4만 6 700명에 달하는 애국적인민들을 체포투옥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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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령토강탈야욕은 파멸만 초래하게 될것이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3월 4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3월 4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반동들이 범죄적인 독도강탈책동에 집요하게 매여달리고있다.

얼마전 일본국회에서 극우익적인 초당파의원들이 《제3차 도꾜〈다께시마의 날〉대집회》라는것을 벌려놓고 독도를 저들의 령토라고 우겨대면서 《비법적으로 점거되여있는》 독도를 탈환해야 한다고 광기를 부렸다.

내각관방장관 스가는 기자회견에서 《두말할것도 없이 다께시마는 력사적사실에 비추어보나 국제법상으로나 명백히 일본의 고유한 령토》라고 떠벌여댔다.

한편 시마네현에서는 당국이 파견한 고위관리의 참가하에 《다께시마의 날》행사가 강행되였으며 《독도령유권》을 부르짖는 가두선전놀음까지 벌어졌다.

이것은 일본반동들이야말로 해외팽창,령토강탈야망을 위해서라면 엄연한 력사적사실도 서슴없이 외곡하는 파렴치한들이라는것을 더욱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신형코로나비루스의 급속한 전파로 민심이 흉흉한 이때 로골적인 령토강탈전,침략전쟁을 선동질하는것을 보면 일본반동들의 날강도적인 령토야망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이미 보도된바와 같이 일본은 올해에 들어와서만도 저들의 침략력사를 미화하고 신성한 우리 민족의 령토를 저들의 땅이라 우겨대는 《령토주권전시관》이라는것을 대폭 확장개건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국민들속에 침략의식을 더욱 고취시키려 하고있다.

그 연장선에서 정계에서는 독도탈환을 주장하는 도발적망언들이 그 어느때보다 거침없이 쏟아져나오고있다.

명백히 강조하건대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공인된 사실은 독도가 조선민족의 고유한 령토라는것뿐이며 여기에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머리를 들이밀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신성한 령토에 《다께시마》라는 해괴한 명칭을 달아놓고 자기의 소유라고 생억지를 부리는것은 재침야망이 뼈속까지 들어찬 일본반동들만이 할수 있는 망동이다.

날이 갈수록 우심해지는 일본반동들의 독도도발행위의 목적은 불보듯 뻔하다.

전쟁국가에 필요한 모든 군사경제적,법률적토대를 사실상 완비한 일본이 독도문제를 여론화,국제화하여 침략전쟁의 합법적명분을 찾고 나아가서 대륙침략의 유리한 발판을 마련해보자는것이다.

일본이 지난 세기 강권과 위협공갈로 조선반도를 타고앉았던 과거를 재현해보려는것은 망상이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일본의 《독도령유권》이란 있을수 없다.

부질없는 령토강탈야망은 오히려 일본을 망치고 파멸만 초래하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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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校無償化:고교무상화 / 民族教育への差別政策に反対/文科省前「金曜行動」200回目迎え大規模抗議デモ 約1100人が集まる

チュチェ109(2020)年 2月 25日 朝鮮新報

 

200回目となる「金曜行動」には、朝大生、朝高生、朝鮮学校の保護者、関東地域の
活動家をはじめとする同胞、日本市民ら約1100人が集まり、差別反対の声を上げた。

 

この日の「金曜行動」は文科省周辺の3カ所で同時に行われた。

 

朝鮮学校への高校無償化適用を求める「金曜行動」が2月21日に200回目を迎えた。これと関連し同日、文 科省前での大規模抗議デモが行われ、朝大生、朝高生、朝鮮学校の保護者、関東地域の活動家をはじめとする同胞、日本市民ら約1100人が集まり、差別反対の声を上げた。

この日の「金曜行動」は文科省周辺の3カ所で同時に行われた。

この日集まった大勢の参加者たちは、日本政府が高校無償化からの朝鮮学校除外措置を是正するどころか、昨年10月から実施された幼保無償化制度からも朝鮮幼稚園を除外したことに憤りを示し、朝鮮学校に通うすべての子どもたちに学ぶ権利を保障することを強く求めた。

はじめに、激励のあいさつに立った総聯中央の南昇祐副議長(写真右)は、「裁判所でどんな不当判決が出ようとも、日本政府の大罪は合理化・正当化することはできない。高校無償化のみならず幼保無償化の対象からも、朝鮮幼稚園の幼い子どもたちを除外したが、日本政府の政策は、世界中から非難の声があがっている」と強調。

日本政府が、昨今、幼保無償化制度の対象外となった幼稚園類似施設に対し、国と地方による追加的な支援策を検討していることに言及しながら、「この対象からも朝鮮幼稚園を排除し孤立させようとする動きがあるが絶対許してはならない。闘争の灯を消すことなく、民族教育の正当な権利を守るために声を上げていきましょう」と参加者たちに呼びかけた。

「200回目となる『金曜行動』、私は朝鮮学校の保護者として今日に至るまで解決できなかったことを、いち大人として、保護者として悲しく思っている。」

冒頭、声を詰まらせながらそう発言した「幼保無償化を求める朝鮮幼稚園保護者連絡会」の宋恵淑代表(写真左)は「後輩たちに、理不尽に屈せず闘う姿を見せてくれたあなたたちが本当に誇らしい。私たちにとって朝大生、朝高生たちは、宝であり誇りであり明るい未来だ」と学生たちに語った。

宋代表は「あなたたちが金曜行動を続けて、裁判闘争を続けて、理不尽 に立ち向かってきたからこそ、日本政府は怖じ気づき、幼保無償化制度においては外国人学校の幼児教育施設すべてを除外するという方法をとった」と指摘。そのうえで「マイノリティの教育を受ける権利を闘い によって守ろうとするあなたたちの闘いはいま世界が注目している。これから卒業する皆さんは、堂々と日本社会に出てほしい。誤ったメッ セージを放ちつづけている日本政府に対し、朝高生、朝大生が見せてくれた闘志を受け継いで闘っていきましょう」と訴えた。

また、この日の金曜行動には、立憲民主党の水岡俊一衆議院議員、阿部知子衆議院議員が来賓あいさつを、平和フォーラムの竹内広人副事務局長、「高校無償化からの朝鮮学校排除に反対する連絡会」の長谷川和男共同代表がそれぞれ連帯のあいさつを行った。

 

「金曜行動」で見えた光

 

文科省前は約1,100人の「金曜行動」参加者でいっぱいとなった。「日本政府は朝鮮高校に通う学生たちに無償化を適用せよ」 「日本政府は幼保無償化から朝鮮幼稚園を排除するな」 「外国人学校を仲間外れにするな」参加者たちは、プラカードや横断幕を掲げ、約1時間、繰り返しシュプレヒコールを叫んだ。200回目となる「金曜行動」は、最後に、参加者一同が「声よ集まれ、歌となれ」を合唱し、締めくくられた。

朝大政治経済学部3年の李琇禎さんは「高校1年生の時から『金曜行動』に参加しているが、未だに無償化 が適用されていないことに対して憤りを感じる。それでも、今日集まった1100人の皆さんの姿を見ながら、自分たちの運動の力を感じた」としながら「この闘いは民族教育の権利を守るだけでなく、民族としての尊厳を守る闘いだ。大学での勉学により一層励むことで立派な朝鮮人になって、闘いを発展させていきたい」と決意を述べた。(記事全文)

 

文科省前は約1,100人の「金曜行動」参加者でいっぱいとなった

 

シュプレヒコールを叫ぶ朝大生(撮影=康英鶴)

 

「金曜行動」では多くの横断幕が掲げられた

 

シュプレヒコールをあげる参加者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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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설 : 강도적인 방법으로 《한일의정서》를 조작한 일제의 죄악

주체109(2020)년 2월 24일 로동신문

 

1904년 2월 23일은 일제에 의하여 《한일의정서》가 조작된 날로서 우리 민족사에 일제의 피묻은 죄악의 한페지로 기록되여있다.《한일의정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강점이 후안무치한 날강도행위였다는것을 명백히 립증해주고있다.

《한일의정서》조작은 일제가 군사적으로 조선을 강점하고 완전히 식민지화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였다.

일제의 《한일의정서》조작시도는 로일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였다.1903년 12월 30일 일제는 《각의》에서 《한국에 관여하여서는 어떠한 경우에 림하더라도 실력으로써 이를 우리 세력권하에 두지 않으면 안되는것은 물론이지만 가능한한 명의가 서는것을 택하는것이 상책이므로…보호조약을 체결할수 있으면 가장 편리할것이다.》라고 결정하였다.결국 이것은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되 거기에 《외교적인 문서》로 외피를 씌운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는 1904년 1월까지 무려 5개월간에 걸쳐 《외교적인 방법》으로 저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였으나 조선봉건정부의 반대로 파탄되고말았다.

모든것이 실패하자 일제는 군사적힘으로 《의정서》를 강압체결하려 하였다.일제는 로일전쟁의 도발과 함께 이를 구실로 무력을 대대적으로 파견하여 우리 나라를 군사적강점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몰아넣었다.1904년 2월 6일 일제는 짜리로씨야에 국교단절을 통보하는 동시에 미리 편성해놓은 《한국림시파견대》에 출동명령을 내려 인천에 상륙하도록 하였다.

《한국림시파견대》는 한성에 도착한 순간부터 침략군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온 나라가 침략군의 군화발에 짓밟혀 란무장으로 화한 사실에 대해 당시 《매천야록》은 《왜군이 인천에서 한성에 들어온것이 병졸이 5만여명이고 말이 1만여필로서 창덕궁, 문희묘, 환구단, 제경궁, 광제원, 관리서 등 무려 18곳에 련이어 군영을 삼아 주둔하였다.》고 하면서 일제침략군의 점령소식을 상세히 전하였다.일제는 전 조선령토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상태에서 침략적인 《한일의정서》를 조작하였던것이다.

《한일의정서》는 일제의 끈질긴 폭압책동의 강도적인 산물이였다.

조선봉건정부의 최고통치자와 고위관리들에 대한 위협공갈, 랍치구금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일제는 고종황제를 저들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황궁을 봉쇄하여 그를 감금상태나 다름없는 지경에 몰아넣었다.이와 함께 반일적립장을 가진 조선봉건왕조의 고위관료였던 리용익을 랍치하여 일본으로 끌어가는 등 《의정서》체결을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책동을 감행하였다.

사실 리용익, 현상건, 리학균, 길영수 등 관리들의 강한 반발로 하여 《한일의정서》는 조인을 하루 앞두고 파탄에 처하게 되였었다.반대세력을 그냥 두고서는 《한일의정서》를 비롯한 그 어떤 《조약》도 조작할수 없다고 타산한 일제는 침략군을 동원하여 반대세력체포소동을 벌려놓았으며 한밤중에 반대파의 거두인 리용익을 체포구금하여 파직시키고 일본으로 압송하였던것이다.

일제는 이렇듯 반대세력을 철저히 제거하고 리지용을 비롯한 친일분자들에게 위압을 가하여 끝끝내 《한일의정서》를 조작하였다.

《의정서》가 강압적으로 체결상태에 이르게 된 마지막단계에서 그 체결을 맡은 외부대신 리지용이 두려워 달아나려고 하자 그를 연금상태에 두도록 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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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적정체를 고발하는 명백한 증거물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2월 12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2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의 령토야망이 극도에 이르렀다.

얼마전 일본반동들은 독도관련자료를 비롯한 저들의 령토야욕을 정당화하는 자료들이 보관된 《령토주권전시관》을 다른 지구에 이전의 7배나 되게 확장개건하는 놀음을 벌려놓았다.

전시관개관후 오끼나와 및 북방령토대책담당상이라고 하는자는 《전시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령유권에 관한)력사적인 흐름,법적인 흐름을 명확히 하고있고 다께시마는 원래 일본의 령토라는것을 정중히 설명하고있다.》고 하면서 《불만이 있는 나라들은 와서 충분히 보기 바란다.》는 수작까지 늘어놓았다.

이것은 일본반동들의 령토강탈광증이 세계의 규탄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더욱 집요해지고 강렬해지고있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독도는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이다.

《삼국사기》,《고려사》를 비롯한 옛 력사문헌들은 물론 일본의 력대 기본문헌들과 권위있는 지도들까지 독도령유권이 우리 겨레에게 있음을 립증해주고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억지로 뒤집은 전시관의 《자료》들과 전시품들이 황당하고 파렴치한 내용들로 일관되여있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다께시마구역》에 전시한 바다사자박제품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령토팽창주의자들은 이 박제품이 1930년경 독도주변수역에서 서식하던 바다사자라고 설명하면서 일본인들이 에도막부시대 초기인 1600년대초부터 그 수역에서 바다사자사냥을 해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독도는 일본땅이 분명하다고 우겨대고있다.

먼 옛날부터 남의 땅에 기여들어 로략질과 자원강탈을 일삼아온 자료까지 저들의 흉심을 가리우는데 도용하고있으니 그 어리석음과 뻔뻔스러움에 경악을 금할수 없다.

령토문제를 둘러싼 나라들사이의 정치,외교적마찰과 대립이 분쟁을 낳고 그것이 장차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것은 력사가 새긴 교훈이다.

지금 일본의 극우익세력들은 독도와 그 주변해역에 대한 날강도적인 《령유권》주장을 통해 어떻게 하나 군사적충돌을 일으키고 그를 기화로 재침을 개시하려 하고있다.

그 침략수행의 돌격대를 배양하기 위해 꾸려놓은것이 바로 《령토주권전시관》이다.

일본반동들의 독도강탈야망은 절대로 실현될수 없다.

섬나라에 세워진 《령토주권전시관》은 이 나라 반동들의 침략적정체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력사의 증거물로 전해지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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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사대국화책동을 경계하여야 한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2월 11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2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교란하는 일본의 군사적망동이 계속되고있다.

지난 9일 일본은 우리의 《미싸일발사시설》 등 군사시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목적밑에 최신형간첩위성인 《광학 7호기》를 우주공간에 쏘아올리였다.

조선반도와 지역에 조성된 불안정한 정세국면으로 하여 세계가 우려를 금치 못하고있는 때에 일본이 우리를 심히 자극하는 군사적도발을 감행한것은 절대로 묵과할수 없는 행위이다.

이것은 명명백백한 대조선침략책동으로서 재침야망실현을 위한 일본의 군국화책동이 더욱 본격화되고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일본반동들의 재침야망실현에서 첫번째 타격목표가 다름아닌 조선반도라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섬나라의 극우익세력들은 지난 세기에 이루지 못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함에 있어서 조선반도를 타고앉는것을 선차적목표로 정하고 오래전부터 그 실현을 위한 군사적준비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런 속에 오늘 일본의 《자위대》는 구일본군의 군종,병종 및 지휘체계를 그대로 살린 사실상의 정규무력으로,그 공격능력이 서방에서 미국다음가는 수준으로 자라났다.

특히 수십년을 헤아리는 일본의 우주군사화책동으로 말미암아 인류공동의 재부인 우주는 전범국가의 군사적활무대로 화하였다.

1970년 2월 첫 인공지구위성을 쏘아올린 이후 지금까지 무려 100여개에 달하는 위성을 발사한 일본은 대조선정보수집용이라고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가동시키고있는 정탐위성만도 7개나 보유하고있다.

지난해 5월 14일 방위상 이와야(당시)가 기자회견에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감시강화를 위해 정부의 정보수집위성외에 다른 상업용위성까지 리용하는 다층적인 체제를 구축하였다고 떠벌인 사실은 일본의 대조선정탐행위가 실지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많은 위성들의 동원하에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다는것을 립증해주고있다.

여기에 섬나라 정객들이 새로 내오려 하고있는 《우주작전대》도 우주공간에서의 보다 위험천만한 대조선공격을 예고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군국주의에로 줄달음치고있는 일본의 위험성을 더해주고있다.

문제는 섬나라가 《북조선위협》설을 떠들며 극도로 팽창시키고있는 《자위대》무력이 단지 우리 공화국 하나만을 목표로 하고있지 않다는데 있다.

주변나라들을 향해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는 적의와 령토야망,전지구적범위에서 활동을 개시한 《자위대》의 움직임 등은 섬나라의 대조선재침책동이 임의의 순간에 전지역에로 확대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번에 일본반동들이 발사한 간첩위성도 그와 다를바없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자국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이 간첩위성발사를 비롯한 군사적책동에 매여달리면서 항상 조선을 걸고드는데 대해 절대로 곧이 믿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많은 경우 그것은 〈눈가림수〉이고 〈군사대국〉의 길로 나가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일본의 간첩위성은 조선을 감시하는 외에 기타 주변나라들도 중점감시대상으로 하고있다. 이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고 강조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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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강탈책동을 정당화하려는 어리석은 행위

주체109(2020)년 2월 10일 로동신문

 

보도에 의하면 3일 일본 시마네현 오끼노시마정 정장이란자가 독도문제를 특별취급하는 조직을 새로 내오고 정부적인 대응강화를 요구하는 요망서라는것을 일본당국에 제출하는 놀음을 벌렸다.

이날 이자는 일본오끼나와 및 북방령토대책담당상이라는자를 찾아가 요망서를 바치며 남조선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있다.》는 나발을 불어댔다.

오끼나와 및 북방령토대책담당상 역시 독도는 일본의 《고유한 령토》, 《주권과 관련된 중요한 과제》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제의에 따른 그 무슨 대책에 대해 운운하였다고 한다.

독도가 우리 민족의 신성한 령토라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의 력대 봉건정부들도 독도가 우리 민족이 천수백년전부터 개척하고 령유해온 조선의 고유한 섬이라는것을 거듭 인정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독도를 마치 남에게 빼앗긴것처럼 외곡하며 《독도령유권》을 주장하고있는것이다.

특히 일본 시마네현 오끼노시마정 정장이란자의 그 무슨 요망서제출놀음은 일본반동들의 령토도발책동을 민심의 반영으로 정당화하고 렬도내의 광신적인 군국주의자들을 자극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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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설 :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는 극악한 독살만행

주체109(2020)년 1월 22일 로동신문

 

가장 파렴치하고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우리 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들씌우고 력사에 류례없는 파쑈통치를 실시한 일제는 고종황제를 독살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가 고종황제를 독살한것은 황제가 저들의 조선강점을 반대하는 우리 인민의 반일기세에 편승하여 반일립장을 취하고있은것과 관련된다.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를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있던 일제는 1905년에 로일전쟁에서 이기자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확립에 지체없이 달라붙었다.

일제는 우리 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기 위해 이미전에 작성해놓은 《을사5조약》원안을 고종황제와 정부대신들에게 무조건 접수할것을 강요하였다.하지만 고종황제는 《이 조약을 허락하면 곧 나라가 망하는것과 같은것이니 짐은 차라리 종묘사직에 순국할지언정 인허치 못하리라.》라고 하면서 완강히 거부해나섰다.

위협과 공갈, 회유에도 불구하고 고종황제와 많은 관리들이 《조약》체결을 반대하자 일제는 강압과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하였다.

고종황제는 《을사5조약》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비밀외교활동을 벌리였다.

1906년 1월 고종황제는 《런던트리뷴》지 기자를 통해 미국, 짜리로씨야, 도이췰란드 등 여러 나라 수반들에게 보낸 친서에서 《1905년 11월 17일 일본사신과 외부대신 박제순이 체결한 〈조약〉은 내가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으며 또 국새도 찍지 않았다.》라고 밝혔으며 다음해 6월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리준 등 특사들을 파견하여 《을사5조약》이 무효임을 세계면전에서 선언하게 하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완전한 식민지지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종황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한 일제는 헤그밀사사건을 고종황제의 권한을 빼앗는 계기로 삼았다.

일제는 《을사5조약》에 의해 외교권을 일본에 《이관》한 조선이 《통감》의 허가도 없이 국제회의에 특사를 파견한것은 저들에 대한 모독으로 된다고 하면서 고종황제의 퇴위를 로골적으로 강박하였다.고종황제가 완강히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끝내 그를 황제자리에서 쫓아냈다.

고종황제에 대한 일제의 박해는 그후에도 계속되였으며 종당에는 그를 독살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종결후 제국주의렬강들은 1919년 1월 빠리에서 전후의 분배몫을 둘러싸고 강화회의를 벌려놓았다.이 기회를 리용하여 고종이 또다시 헤그밀사사건과 같은 일을 벌려놓을수 있다고 우려한 일제는 1919년 1월 22일 67살 난 그를 잔인하게 독살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 하와이대학 교수는 《일본은 고종황제가 조선인들에게 독립운동을 고취시킬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다고 본다.바로 이런 정황이 일본이 고종황제를 독살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있다.》라고 밝혔다.

고종황제독살사건에 일제가 깊숙이 관여하였다는 자료들은 여러곳에서 찾아볼수 있다.

1921년 중국 상해에 있던 《림시정부》가 작성발표한 《제2차 독립선언서》와 의친왕의 친서에는 《고종이 죽은 직후에 그의 온몸에는 붉은 반점이 많이 나타나있었다.…두 사람이 시신을 검진했을 때 온몸에 붉은 반점과 함께 미란이 많이 돋아나있는것을 발견하고 독살이라고 주장하자 일제는 그들을 잡아가두었다.》라는 내용이 씌여있었다.다른 자료에는 《…사실의 진상은 드디여 폭로되였다.일본이 적신(역적) 한상학을 시켜 독약을 친 식사를 진상시켰던것이다.황제(고종)는 한시간도 못되여 중병을 일으키고 〈무엇을 먹었기에 이리도 괴로운것인가.〉고 웨치다가 돌아갔다.페하의 두눈은 벌겋고 온몸에 반점이 돋아나 썩고있었다.시녀 두명도 또한 급사하였다.그 녀자들이 사실의 진상을 목격하였기때문이다.》라고 기록되여있다.

2010년 어느 한 국제학술대회에서도 고종황제독살사건의 진상이 론의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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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말살을 노린 고전압수소각만행

주체109(2020)년 1월 14일 로동신문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 (11)

 

일제가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들중에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민족고전들을 수많이 소각해버린 죄악도 있다.

조선강점후 일제는 우리 인민의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서적들에 대한 《조사》놀음을 벌려놓고 수많은 도서를 압수소각해버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1910~1918년 1차로 《자료수집》의 명분을 내걸고 전국각지의 서원, 사찰, 향교, 서당 등을 대상으로 헌병, 경찰, 관리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고전들을 수색압수하였다.이 시기에도 다 수탈할수 없게 되자 기한을 연장하면서까지 민족고전들을 말끔히 강탈하여 없애버리려고 발악하였다.

조선총독 데라우찌는 《조선의 관습과 제반 제도조사》라는 미명하에 전국의 각 도, 군경찰서를 동원하여 력사책을 비롯한 각종 도서들을 대대적으로 압수하는데 광분하였으며 《대한신지지》, 《을지문덕》 등 무려 20만여권에 달하는 고전들을 불태워버렸다.

일제는 도서들을 불태우는데만 그치지 않고 력사책들을 숨겨두거나 몰래 읽는 조선사람들을 검거투옥하는 폭거도 감행하였다.

당시의 한 출판물은 《합방즉시 조선력사를 적은 서적을 몰수하여 불무지에 던져버렸고 책방과 민가를 불문하고 조직적으로 가가호호를 대수색하여 우리 나라의 력사에 대한것이 반페지라도 있으면 반드시 불태워버리였으며 조선력사책 한권을 숨겨둔 사람이 있어도 범죄시하였다.…조선사람들이 자기 나라 력사책을 읽은 죄로 30일간 구금되거나 징역을 산것이 심히 많았다.》라고 일제의 범죄적인 서적압수소각만행과 검거책동에 대하여 낱낱이 폭로하였다.

애국적인민들은 일제의 날강도적만행에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으며 날로 우심해지는 책동속에서도 력사책을 더욱 깊숙이 보관하고 탐독하였다.

일제는 조선력사를 외곡날조할 목적밑에 《조선사》편찬이라는 흉책을 꾸미고 이를 구실로 민족고전압수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일제는 1922년 12월에 《조선총독부훈령》 64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조작해냈다.

또한 《조선사》를 편찬하면서 사료들을 강탈하기 위한 계획까지 세우고 추진시켜나갔다.

1923년 1월 조선총독부에서 열린 지사회의에서 사이또는 특별히 《조선사사료보존에 관한 협의회》를 개최하고 각 도지사들에게 사료보존에 관한 일장훈시를 하면서 관, 민이 협력할데 대하여 떠벌이였다.

이와 함께 일제는 1926년 12월에 《사료채방내규》를 조작하여 사료수탈을 위한 법적근거를 만들어냈다.일제는 일부 조항에 《출발에 앞서 반드시 채방지역의 도청, 군청에 조회하여 사료수집에 관한 원조를 의뢰한다.》고 규정해놓음으로써 식민지행정 및 군사, 경찰까지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수탈할수 있는 제도적담보를 마련해놓았다.

일제는 교묘한 방법으로 귀중한 조선민족고전들을 수많이 강탈하여 력사외곡에 써먹을 자료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조리 없애치웠다.그것도 성차지 않아 우리 나라에서 쫓겨가면서 일제어용사가들을 시켜 《조선사편수회》문서와 수많은 조선사사료들을 모두 불살라버리는 야만적인 행위를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결국 일제의 민족고전소각말살행위로 하여 해방전까지 우리의 귀중한 민족고전들은 거의나 사라져버리고말았다.

일제가 감행한 만행의 리면에는 외곡날조된 저들의 책만 남겨놓아 조선인민의 민족적자부심을 말살하고 조선사람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극악한 목적이 깔려있었다.

간과할수 없는것은 일제가 저들의 침략성에 대해 로골적으로 지껄여댄것이다.

우리 나라의 애국적인 력사가였던 박은식은 자기의 저서에서 일본의 한 문학박사라는자가 《조선사가 남아있으면 일본이 조선문화를 받아들였다는것이 남아있게 되므로 조선사를 진멸하여 그 흔적을 일소하는것이 제일 좋다.》고 줴쳐댄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일제는 도서나 압수소각하는 방법으로는 조선력사를 없앨수 없다고 하면서 조선인동화를 위해서 저들의 비위에 맞는 새로운 력사책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뇌까렸다.

력사에는 강점한 나라에서 도서들을 무차별적으로 소각한 침략자들에 대하여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하지만 일본과 같이 한 민족의 넋과 민족성을 깡그리 말살하기 위해 력대로 내려오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을 닥치는대로 파괴, 강탈하고 불태우다 못해 력사마저 완전히 외곡날조하려고 미쳐날뛴 날강도, 문명파괴자는 찾아볼수 없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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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배상하라 -남조선진보단체 세계련대행동성명 발표-

주체109(2020)년 1월 13일 로동신문

 

보도에 의하면 8일 남조선의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련대가 일본, 미국, 카나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 지역의 43개 단체가 수요시위를 시작한 때로부터 28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세계련대행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1990년 11월 16일 남조선의 녀성단체들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일본군성노예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여 수요시위를 진행해온데 대해 밝혔다.

그러나 전범국인 일본정부는 아직까지 과거 성노예범죄를 부정하고있다고 성명은 단죄하였다.

뿐만아니라 2015년 박근혜《정부》와의 불법적인 일본군성노예문제《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였다.》고 하면서 반성은커녕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고있다고 성명은 비난하였다.

성명은 일본정부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있는 평화비건립운동에 로골적으로 간섭하고 성노예피해자들의 인권회복활동마저 방해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일본정부는 전쟁범죄 인정하고 력사외곡 중단하라!

일본정부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배상하라!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의 인권회복활동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중단하라!

일본정부는 옳바른 력사를 교육하라!

《정부》는 일본정부의 《위로금》을 즉각 반환하라!

《정부》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일본정부에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라!(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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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론해설] : 《한성조약》을 통해 본 간악한 일본의 과거죄악

주체109(2020)년 1월 9일 로동신문

 

지금으로부터 135년전인 1885년 1월 9일 일본은 갖은 모략과 위협공갈로 조선봉건정부에 날강도적인 《한성조약》을 강요하였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와 일본이 조선봉건정부를 협박하여 조작해낸 《강화도조약》, 《제물포조약》이 그러하듯이 《한성조약》 역시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란폭하게 유린하고 조선에 대한 침략책동을 더한층 강화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또 하나의 불평등조약이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사회발전의 합법칙적요구에 따라 자체력량에 의한 근대적개혁운동이 벌어지고있었다.

음흉하고 교활한 일본은 조선에서의 부르죠아개혁을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 갑신정변을 파탄시키기 위하여 음으로양으로 책동하였다.만약 부르죠아개혁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근대화가 실현되는 경우 조선을 독점적식민지로 만들려는 저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다고 타산하였던것이다.

이로부터 일본은 정치자금해결을 위한 개화파의 활동을 파탄시켰으며 신식군대를 양성하려던 개화파의 시도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한편 갑신정변시 애국적인민들은 일본공사관을 포위하고 일본의 조선침략책동을 규탄배격하였다.급해맞은 일본공사는 저들의 공사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일본은 이를 구실로 조선에 대한 침략정책을 더욱 추진시킬 모의를 꾸몄다.

일본침략자들은 조선사람들이 《공사관을 습격방화하였다.》, 《일본거류민들이 피살되였다.》라고 떠벌이면서 2개 대대의 무력과 7척의 군함을 끌고 인천항에 기여들었다.그다음 조선봉건정부에 갑신정변당시 저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날강도적인 조약체결을 강요하였다.이렇게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날조된것이 바로 《한성조약》이다.

력사적사실이 보여주다싶이 《한성조약》은 국제법적가치를 전혀 상실한 협잡문서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조약체결에서는 국가들사이의 자주권존중의 원칙과 평등, 호혜의 원칙이 엄격히 준수되여야 하며 체약국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여야 한다.

그러나 일제는 무력적위협공갈로 조선봉건정부를 여러차례나 강박하면서 조약에 《조선은 국서를 내여 일본에 사과》의 뜻을 표시하며 《일본인을 살해한 조선사람을 조사체포하여 중형에 처할것》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갑신정변과 관련하여 발생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조선봉건정부에 뒤집어씌웠다.또한 일본상인들의 《손해》를 보상하고 불탄 공사관을 다시 짓는다는 미명하에 조선봉건정부가 10여만원의 돈을 내야 한다는것을 한개 조항으로 박아넣었다.

그야말로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의 날강도적인 행위였다.

《한성조약》의 조작과정은 일제의 간교성과 악랄성, 침략적본성을 여지없이 폭로해주고있다.

일제는 이런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불법비법의 범죄적문서들을 련이어 날조해냈으며 끝내는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일제는 조선을 비법강점한 후 40여년간 류례없이 가혹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노예의 운명을 강요하고 조선에서 인적, 물적자원을 수많이 략탈해간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찌는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폭언을 공공연히 내뱉고 그대로 실행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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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에 찬 과거는 절대로 가리울수 없다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1월 8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1월 8일발 조선중앙통신)

일본의 과거 성노예범죄를 고발하는 증거자료들이 계속 드러나고있다.

지난해말 일본 도꾜도 신쥬꾸구에 있는 《녀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은 구일본군이 성노예녀성들을 가두어두었던 장소들을 표시한 지도를 10년만에 개정하여 웨브싸이트를 통해 공개하였다. 각국에서 발견된 공문서자료 등에 기초하여 작성된 지도에는 23개 나라 및 지역에 관한 수천개의 자료가 반영되여있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지금까지 특정한 나라 및 지역에 대한 조사연구자료는 있었지만 이번에 작성한 지도는 구일본군이 점령한 아시아태평양지역전체의 <위안소>자료들을 수집정리한 대단한것》이라고 하면서 실태를 해명하는데서 기초로 될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성노예범죄는 절대로 감출수 없는 엄연한 력사적사실이며 세월이 흐를수록 범죄의 진면모가 더욱 낱낱이,명백히 밝혀지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알려진바와 같이 일제가 아시아의 《맹주》가 되여보려는 야망밑에 지난 세기 침략전쟁을 벌리면서 저지른 성노예범죄는 정부와 군부에 의해 국가조직적으로,체계적으로 감행된 동서고금에 있어본적이 없는 특대형반인륜범죄였다.

일제는 극도로 부패타락한 《황군》의 동물적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선과 중국,필리핀,타이,윁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많은 아시아나라 녀성들과 유럽녀성들까지 침략전쟁터들에 끌고다니면서 인간으로서,녀성으로서의 그들의 존엄과 권리를 무참히 유린하였다.

특히 성노예주요보급지,원천지로 조선을 정한 일본은 처녀들은 물론 남편과 자식이 있는 녀인들 지어 11살의 미성년소녀들까지 도합 20만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랍치,유괴하여 갖은 치욕을 다 안기였으며 증거인멸을 위해 집단학살하는 귀축같은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범죄에 가담하였던자들의 실토,끊임없이 발견되고있는 관련문서 등으로 론박할 여지조차 없는 범죄의 력사를 뻔뻔스럽게 강부인하고있다.

지어 성노예피해자들을 《매춘부》,《돈을 바라고 한 자발적행동》 등으로 모독하다 못해 《일본군성노예》라는 표현조차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외교청서》에 박아넣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본이 과거의 침략범죄를 한사코 부정하고 정당화하는 정치적사기행위에 집요하게 매달리는것은 과거청산의 법적,도덕적의무를 벗어던지고 력사의 시궁창에 처박힌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하기 위한 군국주의정신적기초를 다지자는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하다.

일본반동들의 과거범죄부정책동은 전범국 일본에 대한 세계의 경계와 증오의 눈초리만 더욱 날카로와지게 할것이다.

일본당국은 파렴치한 책동에 계속 매달리는 한 언제 가도 세인의 신의를 얻지 못하게 될뿐더러 전체 렬도를 처참한 멸망의 길로 이끌어가게 된다는것을 깨닫고 이제라도 바른 길을 택하여야 한다.

그 선택의 첫 순서는 과거청산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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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한 도자기략탈만행

주체109(2020)년 1월 7일 로동신문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10)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략탈해간 문화재들가운데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의 하나가 바로 여러 시대에 만들어진 각종 도자기이다.

일제는 도자기략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그가운데서 가장 악랄하고 날강도적인것은 우리 선조들이 제일 공경해온 조상의 무덤을 백주에 도굴하여 부장품으로 묻힌 도자기들을 략탈한것이다.

광란적으로 감행된 일제의 도굴략탈만행으로 고려시기의 옛무덤들은 완전히 파헤쳐져 페허로 변하였다.이 과정에 략탈당한 고려자기들은 수십, 수백만점을 헤아렸다.

한 일본인은 《고려도자의 연구》에서 《고려자기, 이것들은 어느것이나 도굴에 의하여 고려시대의 옛무덤에서 드러난것이다.때로는 가마터의 출토품도 있으나 전세품은 거의 없다고 할수 있다.》라고 폭로하였다.

일제시기 고려자기에 대하여 언급한 도서들은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고려자기들이 모두 도굴품이라는것을 실토하였다.

고려자기의 최대략탈자는 조선통감이나 조선총독을 비롯한 우두머리들이였다.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는 우리 나라의 도자기를 대대적으로 긁어모아 일본으로 빼돌린 략탈자, 도적무리의 괴수였다.

이에 대하여 《도자여적》의 필자는 《…최초의 골동품수집열은 이또 히로부미가 이것저것 막 긁어가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되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함으로써 이또 히로부미가 다름아닌 고려자기의 최대략탈자라는것을 폭로하였다.

이또는 숱한 고려자기들을 일본으로 반출하였는데 그중 103점의 우수한 명품을 왜왕에게 바쳤다.또한 고려자기들을 《선물》로 대관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그 광경에 대하여 《도자여적》에는 《한번은 이또가 전례대로 고려청자를 한짐 싣고 도꾜역에 도착했다고 한다.역홈에 마중나온 사람들에게 이또가 내려오면서 〈자네들에게 주려고 고려청자를 선물로 가져왔으니 기차에 올라가 꺼내가지라.〉고 했다 한다.그러자 모두들 앞을 다투어 기차에 뛰여올라 깨진 청자병이며 사발 등을 서로 먼저 가지려고 법석을 떨었다고 했다.》고 씌여져있다.

이또가 고려자기략탈에 피눈이 되여 날뛴것은 그가 동방예술의 최고를 이루는 고려자기의 예술적가치나 고고학적가치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조선의 우수한 민족문화를 파괴략탈하여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말살하려는 체질적인 강도적본성과 식민지의 최고권력자, 조선침략의 원흉으로서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비렬한 목적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초대조선총독이였던 데라우찌도 이또에게 짝지지 않게 고려자기략탈에 열을 올리였다.

이자는 고향에 《조선관》을 설립하고 우리 나라에서 략탈해간 수천점에 달하는 문화재를 소장하였는데 그중에는 고려시기 무덤들에서 도굴한 고려자기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여있었다.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로 흐른다고 침략과 략탈의 원흉들의 본을 따서 형형색색의 인간쓰레기들이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와 앞을 다투어 도자기략탈에 광분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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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노린 《오보》소동인가 –조선중앙통신사 론평–

주체109(2020)년 1월 6일 조선중앙통신

 

(평양 1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

야망달성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일본의 실체가 또다시 드러났다.

새해를 앞두고 일본의 NHK방송은 《북조선미싸일이 혹가이도동쪽 2 000㎞ 해역에 락하》하였다고 보도하였다가 20여분이 지나 《실수》니,《오보》니 하며 세상을 소란케하였다.

소위 고도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이러한 《오보》소동을 단순히 실수나 착각으로 보기에는 그속에 내재되여있는 흉심이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명백히 자국내에 우리에 대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그를 기화로 재침을 위한 무력현대화를 다그치려는 속심의 뚜렷한 발로이다.

《오보》소동과 때를 같이 하여 일본언론이 2020년부터 일본방위성이 중거리대공미싸일이 장착된 현존 미싸일방위종합체를 현대화할 계획이며 앞으로 수년안에 완성하려 한다고 공개한 사실이 이를 실증해주고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그 누구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밑에 재침을 위한 군사대국화의 발판을 《착실히》 닦아왔으며 그 준비를 완성하는데 더욱 본격적으로 달라붙고있다.

또다시 섬나라를 전쟁국가로 만들려고 날뛰는 일본반동들의 위험한 기도는 민심의 배격을 받고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평화헌법공포일을 맞으며 전국적인 개헌반대시위가 열리고 《전쟁과 무력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온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기어이 옛 식민지종주국의 지위를 다시 획득하려는 군국주의야망에 환장한 일본반동들과 더우기 개헌을 일생일대의 정치목표로 내세운 수상 아베에게 있어서 헌법개정에 대한 사회적지지를 받는것은 최대급선무로 나서고있다.

일본반동들이 민심을 역전시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려고 고안해낸것이 바로 미싸일《오보》소동이다.

외신들은 NHK가 지난 2018년 1월에도 류사한 허위경보를 내보낸 전적이 있다고 하면서 《이 모든것이 조선에 대한 적대적립장을 유지하기 위해 아베정부가 고의적으로 조작해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고 한결같이 평하고있다.

그러면서 《일본국영보도매체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을 저지른다는것이 리해되지 않는다.》,《이러한 허위경보가 무장분쟁으로 번질수 있는 지금처럼 예민한 시점에서 〈무책임적인 실수〉가 경시되여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질타해나서고있다.

국민들속에 우리에 대한 공포증과 반발심을 야기시키고 국제사회의 시선을 흐려놓으려는 일본반동들의 교활한 술수는 절대로 통할수 없다.

일본이 재침야망에 들떠 적반하장격으로 놀아대다가는 멸망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결과만을 가져오게 될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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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공노할 왕릉도굴만행

주체108(2019)년 12월 30일 로동신문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9)

 

일제의 문화재파괴략탈에서 첫 대상으로 된것은 전국각지에 분포되여있던 각이한 시대의 옛 무덤들이였다.

선조들의 분묘를 알뜰히 보호관리하고 해마다 제사를 정성들여 지내는것은 조선민족의 오랜 풍습이였다.우리 민족은 특히 력대 왕조들의 시조릉에 대한 보호관리와 제사를 중시하였다.우리 인민이 그토록 신성시하고 대대로 보존관리하여오던 력대 왕조들의 릉묘는 일제침략자들의 야만적인 만행으로 무참히 파괴략탈당하였다.

일제침략군에 의한 도굴과 파괴략탈은 청일전쟁, 로일전쟁시기에 본격화되였다.

력사기록에는 《1894년-1895년 청일전쟁시기에 벌써 일본인문화재략탈집단이 대거 침입하였다.1904년-1905년 로일전쟁전후시기에 그들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이나 강화도일대에서 고려고분을 철저히 도굴하였다.》고 씌여져있다.자료에 의하면 청일전쟁때 일제침략군은 릉묘의 형태를 갖춘것은 다 도굴하였다.지어 2차, 3차 들이닥쳐 도굴한 릉묘들도 적지 않았다.한 일본인은 《재일조선문화재와 일본인의 책무》에서 《1904년부터 2~3년동안이라고 하면 마침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터닦기가 진행되고있던 때인데 이 기간에 개성과 강화도, 해주 등에서 고려의 왕릉을 비롯한 약 2 000기의 분묘에 대한 대도굴이 행하여졌다.일본군대는 백주에 공공연히 폭약까지 써서 10만점이 넘는 청자와 그밖의 부장품들을 략탈하였다.》고 그 죄행을 폭로하였다.어느 한 왕릉을 도굴할 때 헌병, 경찰 등 수십명으로 무리를 이룬 침략군 대도굴단은 릉의 째임새에 무식하였으므로 나드는 곳을 찾지 못하여 무덤무지의 북쪽부분을 폭파하고 그안에 들어가 많은 량의 유물을 략탈해갔다.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한 후 일제는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을 공포한데 이어 5개년에 걸치는 《고적조사계획》을 발표하였다.이것은 더 많은 옛무덤을 도굴하여 유물들을 략탈하기 위해서였다.

《고적조사계획》이 완전한 략탈적성격을 띠였다는것은 이 계획수행을 위해 조직된 《조선고적조사위원회》의 구성과 행태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일제는 중추원안에 25명으로 구성된 《조선고적조사위원회》를 조직하였는데 이 기구의 절대다수는 총독부고관들이였고 전문고고학자는 한두명에 불과하였다.그들은 기구조직후 2~3개월동안에 고려시기의 무덤들을 포함한 수백기의 옛무덤을 파헤치고 수많은 유물을 략탈하면서 아무런 과학적발굴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일제의 악랄성은 조선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을 비롯한 력대 왕조들의 시조릉부터 파헤치고 파괴략탈한데서 뚜렷이 나타났다.그렇게 한 목적이 유적유물들을 략탈하여 저들의 부를 축적하자는데도 있었지만 보다는 시조왕들에 대한 우리 인민의 숭배심을 억제하고 말살하자는데 있었다.

주목하게 되는것은 1909년 일제가 세끼노를 비롯한 어용학자들을 내세워 조선의 옛 건축물, 옛무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실시하던 첫 시기에 벌써 강동의 단군릉에 검은 촉수를 뻗치고있었다는 사실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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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을 노린 전면적인 조사행위

주체108(2019)년 12월 23일 로동신문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7)

 

일제는 조선침략의 길에 나선 첫 시기 우리 나라의 문화재를 파괴략탈할 목적으로 조사놀음부터 벌려놓았다.

일제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무직건달군들과 같은 인간쓰레기들을 우리 나라에 들여보내여 조선민족의 우수한 문화재들을 마구 강탈하도록 하는것과 동시에 어용학자들을 침략과 략탈의 척후병들로 파견하였다.《학자》의 탈을 쓰고 기여든 이자들은 우리 나라의 여러 지방을 돌아치면서 문화재들을 빠짐없이 장악하였으며 《조사》의 명목으로 고분들을 파헤치고 수많은 문화유물들을 략탈하였다.

이러한 조사는 청일전쟁, 로일전쟁과 같이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중요한 사변들이 발생할 때마다 선행되군 하였다.

청일전쟁전야에 조선봉건정부의 움직임을 내탐하기 위해 수많은 밀정들이 우리 나라에 침입하였는데 그들중에는 《고고학자》로 가장한자들도 끼여있었다.도꾜제국대학에 적을 둔 야기는 그러한자들중의 하나였다.이자는 1893년에 삼국시기 옛무덤이나 고인돌을 《조사》한다는 미명하에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와 여러 지역을 싸다니면서 수많은 문화유적들에 대한 자료를 걷어쥐였다.야기는 우리 나라에 기여든 일제침략군의 비호하에 뻐젓이 무덤을 도굴하고 유물들을 략탈해갔다.

20세기초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로일전쟁을 준비하는 속에서도 일제는 조선의 문화재들을 략탈하기 위해 사전작업으로 세끼노 다다시라는 어용학자를 들여보내여 중요한 문화재들을 모조리 조사장악하게 하였다.

1902년 당시 도꾜제국대학 교수였던 세끼노 다다시는 《학장의 복명》이라는 지령하에 6월부터 8월까지 부산, 경주, 대구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의 유적과 옛 건축물들을 조사하고 그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조선건축조사보고》를 정부에 제출하였다.이 조사는 조선의 문화재를 략탈하기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이였다고 할수 있다.

세끼노는 1909년에 다시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와 문화유적들에 대한 보다 세밀한 조사에 착수하였다.목적은 통감통치로 조선의 사법권을 강제로 틀어쥔 조건에서 건축물을 어떻게 다룰것인가 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것이였다.그를 위해 세끼노는 옛 건축물들에 대한 자료를 쥐는 한편 고분들도 적지 않게 파헤쳤으며 전국의 유적들을 샅샅이 조사하였다.조선의 유적유물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세끼노는 《조선유적일람표》를 지방별로 작성하였으며 등록된 유적들에 《갑을병정》의 등급까지 달아놓았다.

한 일본인은 《조선의 고대문화》라는 책에서 《조사》의 미명하에 감행된 유적유물략탈행위에 대해 이렇게 실토하였다.

《우리들의 학술조사는 고물수집가(일본인도굴군과 골동상)들에 의한 유적의 파괴를 조장시킨 좋지 못한 면도 있음을 부정할수 없다.대체로 조선에서의 유적의 파괴 특히 고분도굴은 로일전쟁후 고려청자가 부장되였던 개성지역으로부터 시작되여 경북 선산부근을 위주로 하는 락동강류역에 한하였고 1923~1924년에는 락랑고분군이 또한 대규모의 도굴을 당하게 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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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종에도 뻗친 강탈의 마수

주체108(2019)년 12월 16일 로동신문

일본이 과거에 감행한 날강도적인
조선문화재파괴와 략탈범죄(6)

 

일찌기 우리 선조들은 금속주조기술을 부단히 발전시켜 우아하고 훌륭한 종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봉덕사종을 들수 있다.이 종은 전반적형태가 세련되고 표면에 새겨진 장식조각이 훌륭하여 예술적품위에서 그 어디에 비길데 없을뿐아니라 종소리 또한 아름다운것으로 하여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함축되여있다고 할수 있다.

봉덕사종과 같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취와 독특한 구조양식을 갖춘 종들이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 걸려있었다.

문명수준이 매우 락후했던 일본으로서는 조선종과 같이 훌륭한 종을 자체로 만든다는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해외침략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우고있던 일본침략자들은 고려시기부터 우리 나라에 빈번히 기여들어와 많은 조선종을 도적질해갔다.

략탈해간 조선종들가운데서 《추명이 있는 종》(략탈해간 후 덧새긴 글이 있는 종)은 10여개에 달하며 절반이상의 새김년대가 1367년부터 1381년사이라고 한다.이것은 고려말기에 일본침략자들의 조선종략탈만행이 우심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일본침략자들의 날강도적인 조선종략탈만행은 임진조국전쟁시기에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였다.

대규모적인 무력으로 우리 나라를 침공한 일본침략자들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살인방화를 일삼는 한편 불교사원들을 돌아치면서 종들을 닥치는대로 략탈해갔다.침략자들은 우리 나라 불교사원들에 있던 상궁신사종, 대원사종을 비롯하여 략탈해간 종들을 일본의 여러 절간에 걸어놓았다.

결국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조선종은 얼마 남지 않게 되였다.

일본인들자체도 조선보다 오히려 일본에 조선종이 더 많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어용사가였던 세끼노 다다시는 신라의 범종이 조선에 몇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고려시대의 범종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일본에 전해진것이 아주 많기때문에 당대(고려시대)의 동종양식을 충분히 연구할수 있다고 함으로써 일본이 여러 시대의 조선종을 수많이 략탈하였다는것을 밝혔다.

또한 일제의 우리 나라 강점시기 조선총독부 고적조사과의 촉탁이였던 후지다 료사꾸도 《고려문화》라는 글에서 《조선종의 이름밑에 내지(일본)에 있어서 국보로 된것은 모두 고려시기의 범종으로서 조선안에 남아있는것은 적다.》고 함으로써 세끼노 다다시의 기록이 사실이라는것을 립증하였다.

일본통치배들은 적지 않은 조선종들을 일본의 《국보》로 지정해놓고 저들의것이라고 우겨대고있다.

사실들은 일본침략자들이 조선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거세말살하기 위해 얼마나 악랄하고 파렴치하게 날뛰였는가를 실증해주는 동시에 우리 나라에 대한 일본의 뿌리깊은 침략과 략탈의 력사를 만천하에 폭로하고있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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