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랑림산줄기에 새겨가는 애국의 자국 -121호림업련합기업소 상창림산사업소 대후주작업소 소장 황보철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1(2022)년 9월 6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높고 험한 산길은 끝이 없을상싶었다.우리는 함께 걷던 상창림산사업소 일군에게 물었다.

《아직 더 가야 합니까?》

힘들어서만이 아니였다.일년사시절 이렇듯 험한 산지에서 통나무를 생산하고있는 벌목공들의 수고가 가슴뜨겁게 헤아려졌던것이다.일군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아스라한 산발이 병풍처럼 둘러선쪽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높다란 산봉우리아래에 바로 대후주작업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했다.산새도 쉬여넘는다는 이런 험산준령에 삶의 닻을 내리고 지난 30년세월 당에서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훌륭히 수행해온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일가고.

힘겹게 산발을 톺을수록 우리의 주인공,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지닌 121호림업련합기업소 상창림산사업소 대후주작업소 소장 황보철동무를 한시바삐 만나고싶은 마음이 걸음보다 먼저 앞섰다.

 

산판의 1등작업소

 

두메의 하루해는 언제나 짧은 법이다.사업소를 떠날 때까지도 해가 중천에 떠있었는데 수십리 산길을 걸어 작업소에 도착하고보니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작업소는 후주천기슭의 크지 않은 마을한복판에 자리잡고있었다.골짜기를 따라 규모있게 들어앉은 산골특유의 살림집마다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모양이 자못 류다른 감흥을 자아냈다.

문득 마을동구길에서 돌각담을 쌓고있는 나이지긋한 로인이 눈에 띄웠다.우리가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여기서부터 소장이 가있는 작업현장까지 수십리가 잘되우다.그러니 손님네가 내처 걷는다 해도 아마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그곳에 당도할겁니다.》

그러면서 로인은 황보철소장을 만나기 전에 로독도 풀겸 자기 집에서 하루밤 묵으며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어떤가고 하는것이였다.이렇게 되여 황보철동무에 대한 취재는 작업소의 오랜 공로자아바이의 이야기를 듣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원래 우리 소장이 태를 묻은 곳은 남포시의 강서탄광마을이지요.그런 소장이 여기 북변의 산중에 뿌리를 박은데는 사연이 있수다.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부르는 당의 호소를 받들고 제대배낭을 림산마을에 풀어놓았던겁니다.그때가 아마 1992년이였던지…》

로인은 수십년전의 나날로 추억의 실꾸리를 풀어나갔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 령장자리가 또렷한 군복차림의 젊은 제대병사가 마을에 들어섰다.황보철동무였다.

이미 책이나 영화를 통하여 어지간히 림산마을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있던 그였지만 작업소에 도착한 첫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도 예상밖이였다.사방을 둘러봐야 아름드리거목들이 꽉 들어찬 우중충한 산발뿐이여서 이런 외진 곳에서 살며 일한다는것자체가 놀랍기만 하였다.

놀라운 점은 그것뿐이 아니였다.어느날 작업소의 형편에 대해 묻는 그에게 한 벌목공이 시무룩한 웃음을 지은채로 대답했다.

《항상 〈1등〉이라는 글자가 따라다니는 작업소라고 할수 있지.》

생산현장의 해발고에서 1등, 생산규모가 큰데서도 1등, 반대로 통나무생산계획수행과 단위의 면모에서는 마지막으로 1등…

황보철동무의 마음은 무거워졌다.그럴수록 부대를 떠나오던 날 그의 손을 잡으며 지휘관이 하던 말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림산일이 헐치 않을거요.하지만 군인기질이면 두려울게 뭐겠소.난 동무가 당앞에 다진 맹세대로 언제나 마음속군복을 벗지 않고 정보로만 걸으리라는걸 굳게 믿소.》

당앞에 다진 맹세!

생각해볼수록 가슴이 뻐근해왔다.황보철동무는 신들메를 든든히 조여매고 흰눈덮인 산판에 벌목공의 첫 자욱을 힘있게 내짚었다.

나무베기뿐 아니라 나무모으기, 사이나르기를 비롯한 작업의 모든 공정을 손금보듯 파악하고 그 묘리를 한시바삐 익히기 위해 애써 노력했고 기계톱으로 나무를 베는 방법을 터득하느라 기능공들의 뒤를 쉴새없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산지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힘겨웠다.허리까지 치는 숫눈길을 헤치며 작업장에 도착하고나면 칼바람이 살을 에이는 모진 추위속에서도 온몸은 땀으로 젖군 했다.아름드리통나무를 베여넘기는 일은 또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어려운것인가.통나무를 자기가 목적한 방향으로 넘어뜨리는것도 쉽지 않았지만 길다란 장대로 통나무를 힘껏 뻗쳐야 하는 밀대공일도 수월한것이 아니였다.길이가 수십m를 헤아리는 거목의 가지자르기 또한 헐치 않았다.

온 하루 통나무와 씨름을 하고나면 녹초가 되다싶이 했다.하지만 황보철동무는 순간도 마음의 탕개를 늦추지 않았다.너무도 힘에 부쳐 주저앉고싶을 때면 참기 어려운 훈련의 극한점도 완강하게 이겨내던 군사복무시절을 돌이켜보았고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곳에서 한생토록 조국과 인민을 위해 복무하리라 마음다지던 그날의 맹세를 되새겨보군 했다.

하여 그는 벌목공으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업소의 당당한 혁신자로, 작업반장으로 성장하였다.사람들은 제대군인이 과연 다르다고, 투지와 인내력에서 따를 사람이 없다고 너나없이 이야기했다.하지만 그들은 미처 알수 없었다.그의 가슴속에 얼마나 강렬하고도 뜨거운 지향이 끓고있었는지.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는 자각,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어려운 일도 무조건 해야 하며 또 할수 있다는 배심, 바로 이것이 황보철동무가 힘겨우면서도 보람찬 로동의 나날 자기의 뼈와 살에 더 깊이 새긴 드팀없는 신조였다.…

《통나무생산에서 기본은 베는것이 아니라 나르는 일이지요.토장까지 끌어내리는게 중요한데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때여서 뜨락또르들이 부속품때문에 자주 애를 먹였수다.바로 그러한 때 그가 작업반장으로 일하게 되였지요.》

아바이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어느날 아침 작업반의 뜨락또르가 뜻밖의 고장으로 가동을 멈추었다.운전수는 물론 작업반원들모두가 눈판에 털썩털썩 나앉았다.뜨락또르가 멎었으니 그날계획수행은 불보듯 명백했던것이다.

이때였다.황보철동무가 작업반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계획은 절대로 드틸수 없소.》

그리고는 말없이 고장난 뜨락또르부속품을 해체하여 등에 진채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모두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 않았던것이다.작업현장에서 공무기지까지는 60여리, 무거운 짐을 지고 그 먼길을 어떻게 갔다오겠는가 하는 걱정어린 기색이 얼굴마다에 비꼈다.

하지만 그날 밤 다시금 힘차게 울리는 뜨락또르의 동음을 들으며, 운재길의 곳곳에 불망치를 꽂아놓고 백수십리 먼길을 달린 피로도 아랑곳없이 대오를 이끄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깨달았다.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그후 작업반은 통나무생산계획수행의 앞장에 섬으로써 작업소는 물론 림산사업소의 본보기로 되였고 황보철동무는 당의 신임에 의하여 대후주작업소 소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는 더욱더 불같이 살며 일했다.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앞에서 불가능이란 말조차 모르며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끝까지 해내고야마는 그의 완강한 투쟁기풍과 일본새는 심심산중에 갖추어진 뜨락또르수리설비들과 예비부속품창고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오늘도 이곳 종업원들은 몇해전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맏아들을 바래주기 위해 혜산으로 나갔던 소장이 도리여 아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돌아온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있다고 한다.그날 렬차시간을 기다리며 가족과 함께 시내를 돌아보던 황보철동무는 문득 어느한 상점매대앞에서 별안간 무릎을 치며 웨치다싶이 말했다.

《바로 저거요, 저거!》

그것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도 사용할수 있는 휴대용용접기였다.그 용접기를 둘러멘채 그는 《학성아, 지금 이 순간도 멎어선 뜨락또르들이 나를 기다리고있다.앞으로 꼭 이 아버지를 리해할 날이 있을게다.》라고 절절히 이야기하고는 서둘러 작업소로 돌아왔다.

《지금도 우리 작업소는 여전히 1등작업소입니다.하지만 그가 소장으로 일해온 지난 10여년간 두가지 의미만은 정 반대로 달라졌지요.통나무생산계획수행과 단위의 면모에서 이제는 련합기업소의 수십개 작업소중 제일 앞자리니까요.》

로인의 이야기는 끝났다.창밖을 내다보니 밤하늘에 새별이 반짝이고있었다.그 별은 말해주는듯싶었다.

언제나 당앞에 다진 맹세를 잊지 말라고, 그 맹세를 한생의 의무로 새겨안고 당정책관철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칠 때 그런 삶은 새별처럼 밝게 빛나게 된다고…

 

하늘아래 첫 일터의 주인

 

산촌의 아침공기는 맑고 시원했다.8월이라고는 하지만 선뜩한감이 느껴지는 이른아침의 서늘바람을 맞받아 우리는 또다시 길을 떠났다.

《이제부터는 길이 더 험합니다.자, 이걸 받으십시오.》

단단한 사스레나무로 만든 지팽이를 손에 쥐여주며 사업소일군이 하는 말이였다.사스레나무는 북부고산지대에서 볼수 있는 나무인데 해발고가 2 000m를 넘는 곳에서도 잘 자란다고 설명하던 그는 문득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말은 들어보았겠지만 하늘아래 첫 일터라는 말은 처음이 아닙니까?》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는 대후주작업소 사람들은 자기네 일터를 그렇게 부른다고, 여기에는 높고 험한 곳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터에 대한 끝없는 애착이 담겨져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황보철동무가 소장사업을 시작했을 때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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