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백두의 행군길 끝까지 이어가리 -로동신문사 기자, 편집원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체험기(3)-
생눈길을 헤치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이 시작되여 벌써 여러날 흘렀다.
행장을 차리고 답사숙영소앞마당에 나서니 백두산바람에 펄럭이는 붉은기가 우리의 걸음을 재촉하는듯싶었다.
답사행군의 나날에 어느덧 정이 든 이깔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들도 새날의 행군길에 오른 우리를 바래우는듯 아지들을 가볍게 흔들고있었다.
사기충천한 대오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주체28(1939)년 5월 무산지구로 진출할 때 하루밤을 보낸 베개봉숙영지를 향하여 발걸음도 씩씩하게 행군해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베개봉숙영지는 수령님께서 일행천리전술로 대낮에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행군하여 로은산지구로 진출하며 그 일대의 적들을 소멸하고 군중정치사업을 벌릴데 대한 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신 곳입니다.》
베개봉숙영지는 해발 1600여m를 헤아리는 베개봉기슭의 천연수림속에 자리잡고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숙영지에 들어선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회의를 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모습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앞에 서게 되였다.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젊음에 넘치신 모습을 우러르느라니 지난해 12월 백두전구에 불멸의 자욱을 새기시던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가 대낮에 갑무경비도로에서 단행한 일행천리행군은 오직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펼치실수 있는 령활한 작전이고 적들의 몇개 사단을 소멸한것보다 더 큰 정치적, 심리적타격을 준 자랑찬 쾌거라고 하신 말씀이 메아리쳐오는것만 같았다.
정녕 그것은 원쑤의 백만대군이 밀려들고 천겹만겹의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오직 맞받아 뚫고나가는 정면돌파전의 위대한 본보기가 아니였던가.
백두의 공격정신으로 부닥치는 모든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자!
이러한 신념과 의지가 베개봉숙영지를 돌아보는 우리의 가슴속에 용암마냥 세차게 끓어번지였다.
우리의 결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베개봉숙영지에 대한 답사를 마치고 큰길에 나서니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했다.답사행군대는 큰길이 아니라 항일유격대원들이 줄기차게 헤친 생눈길을 택하였다.무릎치는 눈길이였다.
말이 쉽지 한걸음한걸음 정녕 쉽지 않은 길이였다.잠간사이에 목에서는 겨불내가 났다.그래도 처음 얼마동안은 질서있게 행진해가던 대오가 둔덕 하나를 넘어서기도 전에 행군속도가 떠지기 시작하였다.
서로 손을 부여잡으며 끌어당기고 떠밀어주며 한치한치 전진해가는 우리의 마음은 항일전의 그날의 행군대오에 선듯 한 심정이였다.《휴식!》구령이 내려지기 바쁘게 너도나도 눈우에 펄썩펄썩 주저앉았다.
뜨뜻한 방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고 든든히 차비를 한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투사들은 적들의 끈질긴 추격속에서 끼니를 번지며 키를 넘는 생눈길을 무슨 힘으로 헤쳐갔을가.
불현듯 총서 《불멸의 력사》중에서 장편소설 《고난의 행군》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가야 한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기어코 조국으로 가야 한다.
비록 앞을 막아나서는 시련과 난관이 산같고 바다같다 한들 한태혁이가, 정지성이가, 김재영이가 불행에 우는 우리 겨레를 구원하고 변주사같은 무리들에게 보복하는 이 행군을 마다할것인가.
…우리의 모든 혁명전사들이 강철처럼 굳센것은 이미 계급해방의 위대한 사상에 눈떴기때문이다.…》
갈증으로 하여 저도모르게 생눈을 입에 넣으니 항일전의 그날 밥이나 빵대신 자기들이 삼키는 눈속에 영양소가 있을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고 그 가설에 대한 론쟁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던 투사들의 강의하고 락천적인 모습이 떠올라 눈굽이 뜨거워났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