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하던 두메산골에 염소떼, 젖소떼 흐른다 -강동군 구빈축산전문협동농장을 돌아보고-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제힘으로 흥하는 길을 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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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강동군 구빈리라고 하면 염소기르기를 잘하여 덕을 보는 고장으로 생각한다.척박하던 두메산골에서 오늘은 염소떼, 젖소떼가 흐르고 갖가지 젖가공품을 생산하여 수도의 봉사단위들에 보내주는 현실이 펼쳐지고있다.
취재차를 타고 읍에서 동쪽으로 근 100리정도 달리니 구빈리소재지가 나타났다.아름드리나무가 꽉 들어찬 산발들, 산기슭을 따라 규모있게 들어앉은 농촌문화주택들, 맑은 시내물이 감돌아흐르고 염소떼가 흰구름마냥 흘러가는 한폭의 그림같은 산촌의 풍경이 눈앞에 안겨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하여야 합니다.》
구빈리는 주변이 온통 산이고 경사진 돌밭만 듬성듬성 있는 두메산골이다.
이런 고장이 어떻게 오늘처럼 흥하는 삶의 터전으로 전변되였을가 하는 생각이 줄곧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소재지입구에서 만난 구빈축산전문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은 우리의 취재목적을 듣더니 단마디로 대답하였다.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할데 대한 당의 뜻대로 우리는 염소, 젖소기르기를 꾸준히 하여 오늘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농장이 되였습니다.》
시원스러운 그의 목소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였다.산기슭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는 하천을 따라 산언덕에 올라서니 축산제1작업반의 염소우리가 나졌다.
생각했던것보다 그 규모가 작아 실망하는 우리의 마음을 엿본듯 작업반장은 이런 염소우리들이 곳곳에 널려져있는데 농장적으로 근 100개나 있다고 말하는것이다.
《그렇다면 분산사육을?》
그러자 그는 바로 맞혔다고, 큰 우리에서 많은 염소를 기를 때에는 병이 전염되여 무리로 페사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분산사육방법을 도입한 후부터 이런 현상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자기 고장의 지형상특성에도 꼭 맞는 무리별담당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농장주변의 산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급한 경사지로 되여있다.골짜기들도 좁아 무연하게 펼쳐진 풀판은 찾아보기 힘들다.이런 조건에서 일군들은 관리공 두명이 30마리정도 되는 염소무리를 하나씩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하였다.이와 함께 풀판조건에 맞게 작은 염소우리들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였다.포전담당책임제를 하듯이 염소도 관리공들이 무리별로 담당하고 관리하니 먹이원천과 로력예비를 합리적으로 리용할수 있게 된것은 물론 전염병을 막는데도 좋았다고, 특히 관리공들의 책임성을 높여 새끼밴 어미염소에 대한 영양관리를 개선함으로써 한배에 2마리이상의 새끼염소를 생산할수 있었다고 하였다.이렇게 무리별담당관리를 하여 해마다 염소마리수는 계속 늘어나 이제는 농장의 년간 젖생산량은 수백t에 이르고 관리공 한명당 한해에 5t이상의 젖을 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농장에서는 염소우리 하나를 건설해도 멋따기식으로 한곳에 집중하여 크게 짓지 않았다고 한다.축산을 해도 제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자기식으로 해나가려는 구빈리사람들의 일본새를 엿볼수 있게 하는 작업반장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진진하였다.
흰구름이 내려앉았는가 풀판을 하얗게 뒤덮은 염소떼를 보며 걷느라니 《즐거운 방목길》의 경쾌한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흥이 나서 방목길을 따라걷던 우리는 염소떼를 몰고가는 관리공들을 만났다.
《우리가 염소를 처음 기를 때만 해도 오늘처럼 이렇게 산마다 염소떼가 흐르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얼마 없었습니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