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자욱을 따라 : 온 나라 인민을 안고 걸으신 길 -중화군에 깃든 절세위인의 불멸의 자욱을 더듬어-
우리 조국의 날과 달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그 어느날이나 할것없이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수놓아져있기때문이다.
얼마전 우리가 중화군에 대한 취재길에서 되새겨보게 된 주체59(1970)년 3월 27일도 바로 그런 날들중의 하루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뜨거운 인정미와 한없이 검박하고 소탈한 품성을 지니시고 인민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중화군에 들어선 우리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읍남새전문협동농장이였다.
농장일군은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시려 그처럼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이 자기 농장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정미소로 이끌었다.
정미소에 꾸려진 닭우리에는 수백마리의 닭들이 우리가 좁다하게 돌아치고있었다.
흐뭇한 광경앞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3월의 봄날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고 어느 한 닭공장을 찾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곳 농장의 정미소로 향하시였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당시 우리 나라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아래 곳곳에 닭공장들이 일떠서 더 많은 고기와 알을 생산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있었다.그러나 개인세대들에서 닭을 기르는 문제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있었다.일군들부터가 닭을 기르자고 말만 했지 실지 닭먹이문제와 닭관리문제 등에 대하여서는 이렇다할 방도를 내놓지 못하고있었다.더우기 협동농장들의 정미소와 작업반들에서 닭을 기르는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우리 농장의 정미소를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협동농장들의 탈곡장들에서는 닭을 50마리씩 기르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정미소와 탈곡장들에서 닭을 기르는데서 나서는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일군은 그때부터 농장의 정미소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대로 많은 닭을 기르고있다고 하면서 해마다 마리수를 늘여가니 그 덕을 단단히 보고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속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잊지 못해하는 우리 인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시의 군수매량정사업소 정미공장과 명월협동농장에도 령도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깊어지는 생각을 안고 우리는 명월리로 취재길을 이어갔다.
명월리는 읍에서 시오리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구릉지대를 끼고 아담하게 펼쳐진 리의 전경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포전에서 우리와 만난 유정길관리위원장은 무척 감동깊은 표정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기 고장을 찾으시였던 50년전 그날에로 추억을 더듬어갔다.
한낮이 기울무렵 이곳 농장을 찾으시여 정미소마당가에 차를 세우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기계를 뜯어놓고 정비를 하고있던 정미소책임자의 기름묻은 손도 허물없이 잡아주시며 출미률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그러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벼겨에서 닭먹이가 나오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정미소책임자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