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는 참된 과학자 -《신양2》호복합균을 개발한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 생물비료연구실 실장 김창유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09(2020)년 12월 29일 로동신문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농업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은 과학기술의 알찬 열매로 풍년로적가리를 높이 쌓을 애국의 마음을 안고 농업생산에서 절박하게 나서는 문제들을 종자로 틀어쥐고 연구사업을 목적지향성있게,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내밀어야 합니다.》

최근년간 농업부문에서 《신양2》호발효퇴비가 크게 은을 내고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신양2》호복합균은 소문이 났지만 그 개발자가 과연 누구이며 그가 얼마나 고심참담한 탐구의 초행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아마 많지 못할것이다.

우리의 현실에 발을 붙이고 화학비료를 적게 쓰면서도 알곡수확고를 훨씬 높일수 있게 하는 훌륭한 연구성과를 이룩하여 나라의 농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 생물비료연구실 실장 김창유동무,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당의 농업정책관철을 위해 청춘시절부터 20여년세월 묵묵히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으며 오늘날 공훈과학자로,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영광의 단상에 올라선 한 농업과학자의 인생길을 더듬어보며 우리는 탐구자의 삶은 과연 무엇으로 빛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길

 

만나보니 수수한 사람이였다.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수집음까지 타는 고지식하고 어진 사람이였다.그처럼 소박하게 보일수록 우리는 한 농업과학자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의 향기를 더더욱 진하게 느낄수 있었다.

1980년대말에 사리원농업대학(당시)을 졸업한 김창유동무가 박사원과정을 거쳐 농업과학연구사업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을 때는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그는 처음에 축산에서 전염병을 미리막기 위한 연구사업을 하였는데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연구결과를 현실에 도입하기 위해 목장과 농장들에 무던히도 다녔다.

그러던 주체86(1997)년 초봄이였다.김창유동무는 강좌장을 찾아갔다.당시 그는 생물공학강좌의 연구사로 있었다.

《제가 유기질을 속성부식시키는 연구사업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김승일강좌장이 놀라와하였다.

강좌장에게 그는 언제부터 품고있던 생각을 터놓았다.

농촌에 나갔다가 농장원들이 퇴비를 생산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겨울에 낟알짚에 집짐승의 배설물을 섞고는 그것을 뒤져주느라 품을 들이고 또 온도를 보장하느라 온돌을 놓고 불까지 때는것을 볼 때면 꼭 저렇게 퇴비를 생산해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나마 낟알짚이 잘 썩지 않아 농장원들이 애먹는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이왕이면 미생물이 사람의 품을 대신하게 할수 없겠는가.)

이렇게 늘 머리를 써오던중 마침내 결심품고 나섰던것이다.

강좌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현실에서 아주 절박한 문제이지.그런데 미개척분야여서 누구도 돕지 못하오.참고할 문헌도 없을거요.이를테면 단독항행이지.…혹시 한생이 걸려도 결과가 없으면 후회하지 않을가?》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고 위대한 장군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한 길인데 제가 왜 후회하겠습니까.》

수의축산학부 졸업생인 김창유동무는 이렇게 생소한 분야의 연구사업에 몸을 잠그게 되였다.

김창유동무는 그 강좌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사람들이 자기의 연구사업을 두고 머리를 저을 때에 학계의 권위자로서 적극 지지해주었다.한번은 시험포전까지 마련해주려고 애쓰는 그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당조직에서 믿어주면 그만이지.다른 생각말고 앞을 보면서 곧바로 나가라구.》

그러한 스승앞에, 조국앞에 자신을 증명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낟알짚이 빨리 부식되게 하자면 활성이 강한 균들이 있어야 했는데 김창유동무는 그러한 균들을 우리 나라에서 반드시 찾아내리라 마음먹었다.실험실에서 유리한 환경을 지어주어 배양한 균들은 설사 좋은 특성을 나타낸다 해도 정작 야외에 내다놓으면 제구실을 하지 못했던것이다.김창유동무는 시료채집을 위해 쉬임없이 다녔다.

20대의 청춘시절에 스스로 어려운 개척의 길에 나선 김창유동무가 나라의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무슨 일인들 못 겪어보았겠는가.더우기 산과 강, 호수와 늪, 바다기슭 등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들을 골라다니느라 험지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 겪었다.

일년치고 몇달을 산발을 타고 감탕길을 걸으며 시료를 채집하고 거기서 균들을 분리해냈다.남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명절과 휴식날에도 온종일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수천종을 분리검토하였어도 한종의 쓸모있는 균도 골라내지 못할 때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다.어쩌다 힘들게 찾아낸 균마저 죽어버렸을 때에는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몰리해를 당하고 별들이 총총한 깊은 밤 홀로 눈물을 쏟은적은 얼마였고 육체가 견디지 못하여 쓰러진적은 또 몇번이였던가.

그는 강의한 의지로 고뇌의 한초한초를 이겨냈고 쓰러졌다가도 소스라쳐 일어났다.

어떻게 하나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푸는데 이바지하겠다고 속다짐하며 언제 성공할지 기약할수 없는 길을 꿋꿋이 걸어온 그 깨끗한 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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