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4. 첫 당조직ㅡ건설동지사 -김일성동지회고록《세기와 더불어》 2 제 4 장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

주체110(2021)년 4월 10일 웹 우리 동포

 

카륜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1930년 7월 3일 우리가 새형의 당조직을 내온 사실은 여러해전에 공개되였고 그 모임에서 한 나의 연설도 이미 세상에 나갔다.

당이 혁명에서 참모부의 역할을 수행하며 당의 역할에 따라 혁명의 승패가 좌우된다는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혁명이 력사의 기관차라면 당은 혁명의 기관차라고 말할수 있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당을 중시하고 당을 꾸리는 일에 그처럼 큰 심혈을 기울이는것이다.

맑스가 과학적공산주의리론을 창시한후 실천투쟁의 첫 사업으로 공산주의자동맹을 창건하고 《공산당선언》을 발표한것이 그의 활동에서 가장 큰 공적으로 오늘까지도 찬양되고있는것은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에서 당이 노는 사명과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의의를 가지기때문인것이다.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로동운동상에서 나타났던 여러가지 류형의 기회주의, 개량주의도 구경은 당에 대한 견해와 립장이 그릇된데서 발생된다고 말할수 있다.

공산주의가 새로운 시대사조로서 로동운동무대에 출현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이 지구상에서 이룩해놓은 모든 세기적변혁들은 그 어느것이나 다 당이라는 신성한 이름과 련결되지 않는것이 없다.

우리는 카륜회의에서 내세운 과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먼저 당조직을 내오는 사업에 착수하였다.

우리가 새형의 당을 창건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그 방도를 전면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것은 조선공산당이 국제당에서 제명되였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였다.

우리 나라에서 공산당이 조직된것은 1925년 4월이였다. 각국에서 로동계급의 리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속속 출현하여 대중을 이끌던 세계적추세에 발을 맞추어 정치적활동의 자유와 권리의 불모지였던 우리 나라에서 공산주의정당이 창건되였다는 사실은 새 사조와 시대적추세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정치적감수성이 얼마나 민감하고 풍부하였는가를 실증해준다.

조선공산당의 창건은 조선로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발전의 필연적귀결이며 합법칙적산물이였다.

조선공산당은 창건후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속에 사회주의사상을 보급하고 로동운동을 령도하여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령도되는 새로운 페지를 열어놓았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조선공산당이 존재하는 기간 6.10만세시위투쟁과 같은 큰 규모의 투쟁을 지도하여 민족의 기개를 과시하였으며 민족주의자들과의 합작으로 신간회와 같은 대중단체도 만들어 반일애국력량을 집결시키는 사업에도 이바지하였다.

조선공산당이 창건되고 그 령도밑에서 로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대중운동이 전개된것은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의 시초를 열어놓은 하나의 력사적사변으로서 민족해방운동발전을 일정하게 추동하였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상층인물들의 파쟁으로 하여 1928년에 조직된 력량으로서의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국제공산당에서는 1928년 여름에 있은 제6차대회에서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취소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실에 있어서 조선공산당이 국제당대렬에서 제명되였음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물론 우리는 조선공산당이 존재할 때에도 파쟁을 일삼는 그 상층부에 대하여서는 시답지 않게 여기였다. 그러나 그 당마저 국제당대렬에서 제명되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분하고 수치스러운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는 그때 국제공산당의 처사에 대하여 야속하게 생각하였다. 이때부터 나는 비록 나이도 어리고 공산주의운동경험도 적지만 우리자신이 주인이 되여 새형의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순결하고 참신한 새형의 당을 창건하자면 여러가지 장애와 난관을 타개해야 하였다.

가장 큰 난점은 공산주의대렬안에 종파주의가 의연히 남아있는것이였다. 종파주의가 청산되지 못하였기때문에 초기공산주의자들은 당재건운동도 통일적으로 하지 못하고 여러갈래로 분렬된 상태에서 파벌별로 하였다.

조선공산당이 국제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은후 우리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국내외에서 당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을 치렬하게 벌리였다. 그러나 일제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방해책동으로 어느 파벌도 재건에 성공할수 없었다. 화요파와 엠엘파가 재건운동을 포기하고 만주지방에 조직되여있는 총국을 해체한다고 선언한후 서상파가 국내에서 재건바람을 일으켰지만 그것마저 로출되여 많은 당원들이 감옥에 끌려가는것으로 막을 내리고말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해산된 당을 재건하거나 파쟁의 악습에 물젖은 기성세대에 의거해가지고서는 혁명적당을 창건할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였다.

당을 창건하는데서 제기되였던 다른 하나의 난관은 국제공산당이 제정한 1국1당제원칙에 의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만주지방에서 독자적인 당을 창건하는것이 불가능한 일로 된것이였다.

국제당은 제6차대회에서 채택한 규약의 총칙에서도 국제공산당에 소속되는 개개의 당은 해당 나라의 공산당(국제공산당지부)이라는 명칭을 가지며 매개 나라에서는 하나의 공산당만이 국제당의 지부로서 존재할수 있다는 1국1당제의 원칙을 규정하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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