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조선의 국보적도서《김일성전승기》를 펼치고 : 위대한 령장의 전선길

주체112(2023)년 7월 7일 로동신문

 

이 세상 그 누구도 지녀보지 못한 탁월한 군사사상과 전략전술, 비범한 령도로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을 이끄시여 이 땅에 력사의 기적인 조국해방전쟁의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업적을 전하는 국보적도서 《김일성전승기》,

성스러운 전승의 력사가 응축되여있는 도서를 한장한장 번질수록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걸출한 위인상이 어려와 격정을 금치 못해하는 우리 인민이다.

도서에 수록된 내용들이 다 그러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위험한 최전선길을 헤치시며 전승의 날을 앞당기신 이야기는 만사람의 눈굽을 뜨겁게 적셔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수령님께서는 전선에 나가실 때마다 포화속에서 전사들과 담화도 하시고 그들의 생활도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불비쏟아지는 최전선길을 걷고걸으시며 우리 군대와 인민을 전쟁승리에로 이끄신 거룩한 자욱은 전선의 최남단이였던 광주에도 력력히 새겨져있다.

주체39(1950)년 8월에 들어서면서 인민군대의 노도와 같은 진격으로 전선은 이미 락동강계선에 이르고있었다.당시 대구-부산일대에 압축된 적들은 락동강계선에서 어떻게 하나 인민군대의 공격을 저지시켜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었다.

천리혜안의 예지와 과학적통찰력으로 적들의 기도를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은 누구도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던 서남해안방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였다.궁지에 빠진 적들이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추종국가군대들까지 끌어들여 상륙작전과 항공륙전대투하를 시도한다면 엄중한 후과가 생길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직접 서남해안방어부대들에 나가 대책을 세우고 해방지역의 당, 정권기관 사업을 지도해주실 구상을 안으시고 최전선길을 떠나시였던것이다.

주체39(1950)년 8월 10일 저녁해가 서산너머로 기울기 시작할무렵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일행은 충주계선에 이르렀다.사방을 감시하던 한 일군이 적비행기소리가 들린다고 보고하였다.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비행기소리가 옳다고, 적비행기소리를 제때에 들었다고 하시며 차들을 세우고 빨리 숲속으로 대피하라고 이르시였다.

잠시후 갈가마귀떼같은 적기들이 곧장 도로에 몰려들더니 금방 승용차들이 서있던 곳을 향해 내리꽂히는것이였다.폭격이 점점 더 심해져 파편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가까이까지 날아왔다.수행성원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을 목숨으로 보위할 일념으로 방탄벽이 되였다.

적비행기들이 사라지자 수행성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더는 이런 위험한 길을 다니시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을 쏟으며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그러나 전선에서 싸우는 전투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는데 최고사령관이 어떻게 사무실에만 앉아있겠습니까.

위험하더라도 우리가 전선에 나가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을 고무해주면 그만큼 전쟁승리의 날이 앞당겨지게 됩니다.

전쟁이 승리한 다음 우리가 준엄했던 이 난국을 어떻게 이겨내고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셨는가를 긍지높이 추억합시다.

승리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또 떠납시다.》

이런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수안보에 도착하신것은 20시경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전선형편을 료해하시고 일군들에게 최고사령부의 최종작전방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였다.일군들은 천리혜안의 비범한 군사적예지가 빛발치는 그이의 작전적구상에 접하며 전쟁승리의 그날을 눈앞에 보는것만 같아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수안보에서 공화국남반부를 완전해방하기 위한 최종임무를 하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밤으로 또다시 전선시찰을 떠나려고 하시였다.

전선사령부의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먼길에 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작전회의를 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밤중에 또 어디로 가신단 말인가.

일군들은 그이의 앞을 막아서며 하루밤만이라도 쉬시였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그러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광주에 갔다오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광주에 가서 서남해안방어대책을 세우고 그곳 당, 정권기관 사업을 료해하여보겠습니다.》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전선 최남단인 광주일대에는 아직도 반동들의 준동이 심하다고, 신변안전이 걱정된다고, 절대로 가시면 안된다고 거듭 만류해나섰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놈들의 준동이 있다고 해도 갈길은 가야 한다고 하시며 그밤으로 길을 떠나시였다.그이께서 타신 승용차가 충청북도에 들어선것은 8월 11일 새날이 시작될무렵이였다.

대전시의 도로에서 승용차를 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충청북도당위원장과 충청남도당위원장, 충청남북도내무부장들을 만나시였다.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해방지역 일군들의 놀라움과 감격은 그지없이 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동무들과 만나자고 한것은 적들의 책동으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일련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미제침략자들이 저들의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추종국가군대까지 조선전선에 투입하여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기도하고있는데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조성된 정세는 전체 인민이 승리에 대한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지고 적들의 새로운 공격기도를 짓부시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며 구체적인 과업들을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떠나실 시간이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일군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면서 동무들은 언제나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춤으로써 미제침략자들의 새로운 해안상륙기도를 포함한 대규모적인 무력침공기도를 철저히 짓부셔버려야 한다고, 여기에 승리의 열쇠가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충청남북도일군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이곳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라남도 광주를 향해 또다시 전선길을 달리시였다.이른새벽에 전라북도 전주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마중나온 도당위원장과 도내무부장에게 전라북도에서 시급히 수행해야 할 과업들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온밤 쉬지 못하시고 야전승용차강행군을 하시면서 공화국남반부해방지역의 당, 정권, 내무기관 사업을 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틀무렵 전주를 출발하시여 아침녘에 전라남도 광주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8월 11일 오전 광주시에 있는 제26해안방어려단지휘부를 찾으시였다.

려단장이 몹시 놀라며 달려나와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멀고도 위험한 전라도에까지 나오시였는가고, 장군님의 신변이 걱정된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일제놈들과 싸울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때 우리는 대원 몇명을 데리고 걸어서 만주에서부터 온성에도 가고 신흥에도 나오군 했는데 지금이야 제 나라, 제땅에서 차를 타고 큰길로 다니는것이 무슨 고생이고 위험인가고 말씀하시였다.

려단장은 하지만 해방된 공화국남반부에는 아직도 패잔병들과 반동들이 곳곳에 숨어서 못된짓을 하고있으니 장군님께서 신변안전에 특별히 류의하셔야 한다고 거듭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려단장의 방에 들어서시여 해안방어조직에 대하여 료해하시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 나온것은 앞으로의 전선정황에 대처하여 서남해안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에서 해안을 강화하는것은 력사적으로 보나 오늘의 현시점에서 보나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고, 락동강좌안의 좁은 지역에 몰킨 놈들은 여기서 인민군대의 공격을 저지시키고 력량을 수습한 다음 해안상륙을 배합한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시도하며 최후발악을 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놈들의 책동을 일격에 물리칠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라남도당위원회에도 들리시여 당단체복구와 인민정권건설, 제반 민주개혁실시를 비롯한 도의 전반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그 수행방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8월 11일 광주에서의 일정을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곳을 떠나실 때는 점심시간이였다.수행일군들은 어느 인민군부대 지휘부나 지방당기관에 들려 위대한 수령님의 식사를 보장해드리려고 마음먹고있었다.그런데 승용차가 달리기 시작하여 얼마 안되였는데 그이께서 광주천가에 차를 세우게 하시더니 여기서 식사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이르시는것이였다.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준비해가지고오신 줴기밥을 나누어주도록 하시였다.일군들은 사선의 고비를 헤치면서 광주에까지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식사도 제대로 보장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죄송함으로 눈굽을 적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하루빨리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세상에서 제일 강대한 나라를 제힘으로 반드시 일떠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위험한 전선길을 걷고 또 걷고있습니다.

나의 전선길은 곧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 수령님 이어가신 최전선길이 어찌 광주에만 새겨져있다고 하랴.

전선에서는 이 시각에도 전투원들이 적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주저하고있겠는가고 하시며 우리 수령님 야전차로 림진강의 위험한 철교를 건느신 사연이며 적들이 떨군 나팜탄과 폭탄이 수시로 작렬하고 주위에 박혀있는 시한탄들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천만한 길을 20여리나 걸어서 직동령 서쪽산이라고 불리우던 지혜산에 오르신 이야기는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어가신 최전선길이야말로 우리 군대와 인민들에게 멸적의 크나큰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승리를 앞당겨오게 한 력사적인 장거였음을 웅변하여주고있다.

세상에는 한다하는 군사령관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우리 수령님과 같이 최고사령관으로서 직접 최전선길을 끝없이 이어가며 군인들과 인민들을 전쟁승리에로 불러일으키신 례가 있었던가.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서 불비쏟아지는 최전선길에 새기신 거룩한 그 자욱을 따라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를 쳐물리치고 승리의 7.27을 안아왔으니 우리 수령님 걸으신 최전선길들을 우리 어찌 격정없이 대할수 있으랴.

그렇다.

세월이 가고 산천이 변해도 우리 인민은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켜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만고불멸의 업적을 후손만대 길이 전해갈것이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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