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 성실한 땀과 노력으로 영광의 땅을 가꾸어가는 미더운 농업전사 -대관군 대안협동농장 제1작업반 반장 최인순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09(2020)년 10월 28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농사일을 잘하여 알곡증산으로 당을 받들고 조국에 헌신하는 사람이 당의 충직한 농업전사이고 내 나라의 참된 애국농민입니다.》

예로부터 산이 많고 돌이 많아 《산골 돌대관》이라고 불리워온 대관군은 땅이 척박하기로 유명한 곳이다.올려다보면 산이요, 내려다보면 강뿐인 험한 산골에서, 도에서도 서리가 먼저 내리고 눈이 마지막에 녹는 지대에서 농사를 짓는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 극악한 농사조건과 환경속에서도 해마다 벌방지대 못지 않은 알곡소출을 냄으로써 우리 당 농업정책의 정당성을 결사의 실천으로 증명한 애국농민이 있다.그가 바로 대관군 대안협동농장 제1작업반 반장 최인순동무이다.

지난 10여년간 농산과 축산의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확립하고 선진적인 영농방법을 적극 받아들여 다수확의 지름길을 열고 당창건 75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도 많은 알곡을 생산하여 당 제8차대회를 향한 오늘의 총진군대오에 용기를 더해준 최인순동무,

그의 헌신적인 삶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최전방을 믿음직하게 지켜선 우리 농업전사들의 심장은 무엇으로 어떻게 고동쳐야 하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

 

포기할 권리가 없다

 

지금도 황금이삭 설레이고 구수한 낟알향기가 풍겨오는 벌판에서 우리와 처음 만났던 최인순동무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소슬한 가을바람에 가볍게 흐느적이는 누런 벼이삭들을 터갈라진 두손으로 정히 품어안으며 그는 말했었다.

《고생끝에 락이라더니 끝내 알찬 열매를 맺었구만요.총알같이 여문 이 벼알들을 보십시오.올해에도 다수확입니다.》

자연의 온갖 횡포한 도전속에서도 기어이 이 땅을 풍요하게 가꾸었다는 끝없는 기쁨에 저으기 떨리는듯 했던 그 목소리, 검실검실해진 얼굴에 물결치던 행복의 그 미소…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 풍년든 농장벌을 바라보는것보다 더 큰 기쁨, 더 큰 인생의 행복은 없을듯싶었다.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꾸지 않을 그 기쁨, 그 행복감, 그것이 단순히 땅을 다루는 농사군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정이였던가.

오늘도 최인순동무는 난생처음 흰쌀밥을 배불리 먹어보던 그때를 잊지 못하고있다.그의 어머니는 애써 가꾼 낟알로 정성스레 지은 밥을 꿀처럼 달게 드는 자식들을 기쁨속에 바라보며 이렇게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수령님 은덕으로 내가 너희들에게도 흰쌀밥을 지어주게 되였구나.》

최인순동무가 3살 나던 해 어버이수령님께서 대관땅에 찾아오시였다.잊지 못할 그날 산골군인민들을 잘살게 하시려 멀고 험한 길을 이어가시던 수령님께서는 그가 살고있는 마을앞에서 대관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한 방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이렇게 되여 강이 흐르던 곳에 논이 생겨나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에도 행복한 새 생활이 꽃펴나게 되였다.그 행복이 너무도 크고 소중해 어머니는 늘 벌에서 살다싶이 하였다.이른새벽이면 남먼저 거름지게를 지고 집문을 나서고 밤이 퍽 깊어서야 별을 이고 포전에서 돌아오군 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나어린 딸의 가슴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깊이깊이 새겨졌고 당의 품속에 나서자란 새 세대가 한생토록 걸어가야 할 인생길을 정해주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땅에 사회생활의 첫 자욱을 내짚던 날 어머니는 마을앞에 서있는 한그루 나무앞으로 딸을 이끌어갔다.그 나무로 말하면 어버이수령님의 헌신의 자욱을 언제나 잊지 말자고 마을사람들이 정히 떠다심은 나무였다.못 잊을 사연을 전하는듯 바람결에 조용히 설레이는 나무앞에서 어머니는 말했다.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어머니는 늘 이 나무앞에 서군 한다.우리 수령님의 발자취가 어린 이 땅을 가꾸어갈 주인이 또 한명 늘었다고 생각하니 난 오늘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그날 최인순동무는 어머니와 함께 그 사연깊은 나무둘레에 조약돌을 정히 깔며 이렇게 맹세했다.

이 한몸 한줌의 흙이 되여서라도 영광의 고향땅을 황금나락 설레이는 옥토로 가꾸어가겠다고.

비록 군기앞에 다진 군인의 선서는 아니였지만 최인순동무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늘 이날의 맹세를 걸음걸음 되새기며 살았다.밟히우는것은 돌뿐인 고향마을의 포전에서 하나둘 돌을 추어내느라 손이 온통 찢겨졌을 때에도, 눈보라치는 추운 겨울날 늪에서 파낸 흙을 발구와 등짐으로 져나르다 지쳐 쓰러졌을 때에도 그는 결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최인순동무는 마을의 오랜 농장원들보다도 더 이악스럽게 농사를 지었다.몇년후에는 분조장이 되였다.

분조장이 되여 첫 출근을 하던 날 최인순동무는 어머니와 나란히 포전길을 걸으며 이렇게 마음속생각을 터놓았다.

《어머니, 내가 꽤 분조장사업을 해낼가요?막 걱정돼요.》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걷더니 불쑥 이런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인순아, 너도 몇해전 우리 수령님께서 또다시 대관땅을 찾아주신 날을 기억하고있겠지.》

감격도 새로운 주체65(1976)년 10월 어느날, 아침식사도 미루시고 이른새벽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군의 사업을 보살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헌신과 로고를 어찌 잊을수 있으랴.

달리는 렬차안에서 한나절이나 군의 책임일군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군에서 농사가 잘 안되는 원인이며 그 극복방도까지 하나하나 세심히 가르쳐주시고 랭습지를 개량하고 흙깔이를 하는데 필요한 뜨락또르까지 보내주도록 하늘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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