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78년사

주체112(2023)년 9월 8일 《우리 민족끼리》

 

1945년 9월 8일 미제침략군이 《해방자》의 탈을 쓰고 인천항에 더러운 군화발을 내짚은 때로부터 78년이 되였다.

80년을 가까이 하는 이 기나긴 세월은 괴뢰지역을 강점한 미제침략군의 살륙만행으로 하여 피로 얼룩진 나날이였다.

《우리들은 해방군이 아니였다. 우리들은 점령하기 위해서, 조선사람이 항복조건에 복종하는가, 안하는가를 감시하기 위하여 온것이였다. 우리는 상륙 첫날부터 조선인민의 적으로서 행동하였다.》

미국의 한 기자가 고백한바와 같이 미제침략군은 강점첫날부터 무고한 인민들을 살륙하는것으로 저들의 야만성을 드러내였다.

1945년 10월 전라북도 남원군인민위원회의 해산을 공포하고 위원들을 마구 잡아들이고 그들의 석방을 요구해나선 적수공권의 항의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수십명을 사살한 사건, 1946년 5월 《정판사위조지페사건》을 날조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검거투옥하고 이에 항의하는 2 000여명의 서울시민들에게 총탄을 마구 퍼부어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은 그 대표적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강점첫해부터 가는 곳마다에서 탄압과 학살, 살인, 강간, 강도, 략탈을 일삼던 미제침략군의 범죄적만행은 해를 넘길수록 더욱 우심해졌다.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로동자 2 600여명을 비롯한 로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8. 15해방 1주년 기념집회장을 둘러싸고 땅크포를 쏘아대고 비행기로 사격을 가하여 530여명에게 피해를 준것을 비롯하여 1946년 한해만에도 4 2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1948년 4월 제주도에서 미제의 야만통치를 반대하는 4. 3인민항쟁이 일어나자 미군정장관이라는자는 《미국은 제주도땅이 필요하지 제주도민은 필요치 않다.》고 고아댔고 미군사고문단장이라는자는 《가능한 빨리, 깨끗이 해치우는것이 극히 중요하다.》고 뇌까리면서 대대적인 진압작전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다음해 6월까지 계속된 학살로 제주도주민 30만명중 7만여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공식 발표된데 의하더라도 제주도인민들에 대한 《토벌》작전을 반대하는 려수군인폭동에 대한 진압작전으로 1949년 경상북도 봉화군을 비롯한 7개의 군에서만도 1만 9 0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학살되였다.

1949년 12월부터 1950년 1월까지의 기간에 지리산, 태백산, 오대산 등 5개 지구에 대한 미제의 《토벌》공세로 4만여명이 살해되고 수만명이 부상당한것을 비롯하여 조선전쟁발발전까지 미제에 의하여 학살된 인민들의 수는 무려 100만명이상에 달한다.

이 땅에서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후 미제침략군의 대량살륙만행은 극도에 이르렀다.

미제는 전쟁초기 1950년 6월 28일부터 1주일사이에만도 경기도 수원의 형무소, 류치장 등지에서 1 146명을 학살하였으며 특히 6월부터 9월사이에는 당시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과 산청, 하동 등지에서 5 000여명을 학살한것을 비롯하여 114개 지역에서 무려 1만 7 700여명의 《보도련맹》성원들을 처형하였다. 미제가 《보도련맹사건》을 구실로 처형한 무고한 사람들의 수는 30만~50만명에 달한다.

살인귀들은 7월초에 충주에서 739명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집단생매장하거나 수장하였고 7월 23일에는 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에서 피난길에 오른 500여명의 사람들을 기총사격을 가하여 살륙하였으며 8월말에는 거제도에서 수백명을 집단수장하였다.

또한 미제침략자들은 부산형무소에 갇혀있던 4 832명도 전부 학살하고 부산시내를 샅샅이 뒤져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은 모조리 체포하여 가차없이 죽이였다.

이에 대해 한 회상자는 《수백명, 수천명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사태는 아마 수만명에 이를것이다. 매일 수천명씩 긴급구속하여 수십대의 화물자동차에다 싣고왔다. 이 사람들을 철사로 묶어 바다에 던져버렸을뿐 아니라 김해, 량산 등지에서 기관총으로 쏘아죽였다. 이 사건은 량민학살사건가운데서 가장 큰 사건이다.》고 절규하였다.

1950년 9월 중순 인천상륙작전이후 미제야수들은 맥아더의 살인명령에 따라 괴뢰 전 지역에서 대대적인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인천에서는 9월 16일 하루동안 1 300여명, 전라북도에서는 9월말에 10만여명, 서울에서는 9월 25일의 대폭격으로 5만여명, 9월 28일부터 3일동안 7만 5 000여명을 학살한것을 비롯하여 1950년 9월~1951년 2월기간 서울에서만도 무려 14만 7 000여명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집계된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쟁 3년간 미제는 남반부지역에서 124만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정전후에도 괴뢰지역 주민들에 대한 미제침략군의 살륙만행은 그치지 않았다.

나물캐는 소녀를 《꿩》이라고 쏘아죽이고 송유관부근에서 놀고있던 3살 난 어린이를 《휘발유도적》이라며 총으로 쏴죽인 1957년의 군산소녀총격사건과 인천송유관어린이사살사건, 구두닦이 고아소년을 도적으로 몰아 칼로 란도질하고 뻰찌로 발톱과 머리칼을 잡아뜯은 후 전신에 골탄칠을 하여 나무상자에 처넣고 못을 쳐 직승기로 실어 내던진 1958년의 부평소년직승기궤짝사건, 나무하는 농부를 《노루》라고 쏴죽인 1962년의 파주나무군사살사건, 《M-16》소총 성능시험을 한다고 하면서 여러명의 주민들을 과녁으로 세워놓고 조준사격하여 학살한 1981년의 총기란사사건, 1992년 미제침략군놈이 동두천미군기지촌의 녀종업원을 릉욕한 뒤 그의 머리를 병으로 내리쳐 실신케 하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녀성에게 짐승도 낯을 붉힐 만행을 저지른 윤금이살해사건, 2002년 길가던 나어린 녀중학생들을 장갑차의 무한궤도로 깔아뭉개여 처참하게 학살한 신효순, 심미선학살사건, 미공군소속 《A-10》전투폭격기가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의 쿠니사격장에서 실전용대형폭탄 6개를 투하하여 주변일대의 농가 200채를 파괴하고 11명에게 심한 부상을 입힌 매향리폭탄투하사건 등은 미제침략군이 얼마나 패륜패덕과 인간증오사상으로 길들여진 살인깡패무리들인가를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2000년대초까지 종합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전후 총격과 폭행 그리고 테로와 강도, 강간, 방화, 고의적인 교통사고 등으로 8만 3 000여명에 달하는 괴뢰지역인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1945년 9월부터 미제침략군에 의한 괴뢰지역의 인명피해자수는 총 사망자가 232만 3 000여명, 부상자는 652만여명에 달한다.

이처럼 장장 수십년간 미제침략군에 의하여 괴뢰지역에서는 《죽음의 행렬》이 끊기지 않고있다.

이것은 바로 《해방자》, 《원조자》, 《보호자》로 자처하는 미제침략군에 의해 빚어진 력사적비극이다.

결국 미국이 입이 닳도록 떠들며 광고하고있는 괴뢰지역에서의 《안보역할》, 《동맹강화》의 력사란 결국 저들의 식민지통치체제유지와 강화를 위한 피비린 학살만행사, 반인륜적범죄사인것이다.

력사와 현실은 미제침략군이야말로 인두겁을 쓴 야수, 천추만대를 두고 용서할수 없는 극악한 살인무리, 괴뢰지역에서 초래되는 모든 불행과 고통, 억울한 죽음을 초래하는 화근이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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